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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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 천진한 아이들이 마스크 벗는 것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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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지친 당신, 식물로 힐링! 벵갈고무나무‘코로나19’ 장기화로 일상이 많이 달라짐에 따라 무기력증이나 스트레스, 수면 부족,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한 외부 활동이 제한되어 실내생활이 많아졌는데 현대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실내공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예식물은 공기를 맑게 해주고 습도를 높여주는 등 공기정화 능력이 뛰어나므로 실내에서 파릇파릇한 반려식물을 가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책브리핑(www.korea.kr)에서는 ‘코로나19’ 우울감 해소와 실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공기정화식물을 소개한다. 이번 5회는 ‘벵갈고무나무’이다. 음이온 발생량 ‘최상’…거실이나 창가에 두면 좋은 ‘벵갈고무나무’ 벵갈고무나무는 음이온 발생량이 ‘최상’ 등급이고, 자일렌 제거량은 ‘중’ 등급으로 우수한 공기정화식물이다. 음이온은 멀리 퍼지지 않으므로 화분을 사람과 가까이 두어 관상하고, 잎의 독특하고 선명한 무늬를 유지시키려면 햇빛을 많이 받아야므로 거실이나 창가 쪽에 놓는 것이 좋다. 고무나무는 상록 또는 낙엽성의 목본이며 덩굴성인 것도 있다.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약 800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관엽식물 외에도 과실과 어린 잎을 식용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열대 관엽식물 중에서 가장 보편화된 식물이며 분화뿐만 아니라 꽃꽂이용 절엽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줄기에 상처를 내면 하얀 수액이 나오는데 이것을 굳히면 생고무가 되며 여기에 유황을 첨가시킨 것이 탄성고무이다. 처음에는 공업용 고무를 얻기 위하여 많이 재배되었는데 최근에는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된다. 고무나무 종류에는 인도고무나무(Ficus elastica), 대만고무나무(F. lyrata), 벵갈고무나무(F. benghalensis), 벤자민고무나무(F. benjamina), 왕모람(F. pumila) 등이 있다. 고무나무의 번식법은 삽목(식물의 가지, 뿌리 잎 등의 일부를 잘라내어 흙 또는 모래에 꽂아 발근, 발아시켜 독립의 식물체로 하는 영양번식법)이나 취목(모식물의 줄기(가지) 일부분에서 뿌리가 뻗어 나오는 것을 기다려 모식물에서 떼어내는 식물의 무성번식(영양번식)법의 일종)을 이용한다. 잎의 무늬가 독특하고 화려하여 실내 조경식물로도 많이 이용된다. 관리 요령 ▲ 빛 : 반양지 ▲ 온도 : 생육적온 25~30°C, 겨울에는 15°C 이상 유지 ▲ 관수 : 물은 겉흙이 마르면 화분 밑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충분히 준다. ▲ 관리 : 건조할 때는 자주 분무해주고, 습할 때는 환기를 자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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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국악신문 국악계 10대 뉴스 선정국악신문은 정책 자료화와 현안 파악을 위해 2020년 국악계 10대 뉴스를 선정·발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사)한국국악협회·국립국악원·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등 주요 기관 및 단체의 자료를 참고하였으며 선정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선정하였다. 선정위원회는 신동립 뉴시스 선임편집위원·이무성 화백·유지숙 (사)향두계놀이보존회 회장·김대진 전통문화예술진흥재단 팀장·김병준 KBS 작가·김경순 국악방송 작가 등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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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웅수, "그 분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김호규 1주기 추모사지난 21일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린 국악인 故김호규 1주기 추모 「씻김」에서 (사)한국국악협회 임웅수 이사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적게나마 김호규 선생을 기억하는 분들이 모였는데, 정작 김호규 선생은 이 자리에 안 계시다는 게 참 서글픕니다. 선생과 알고 지낸지도 어느새 40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형동생처럼, 친구처럼 함께했던 분인데 그 분의 추모사를 제가 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분과의 첫 만남을 기억합니다. 86년 저는 ‘마당 풍물놀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지도하고 활동했는데 어느날 낯선 젊은 분이 분장실로 들어오더니 농악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김호규 선생이었습니다.당시 선생은 인천의 어느 쇠 가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 차가운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손가락 마디가 절단됐지만, 반쪽 밖에 안남은 손가락으로 열채를 잡고 힘겹게 당신의 아버지가 치셨던 가락을 하나씩 기억해가며 따라했던 그 분의 열정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언젠가 김호규 선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국악신문을 만들겠다고…. 그때만 해도 국악인들에게 국악을 전문으로 하는 신문이란 굉장히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국악인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쓴 소리 하고, ‘국악인들이 다 굶어죽겠다. 나라도 나서서 지지하고 위로해서 국악인들의 치어리더가 돼야겠다.’ 했던 그 뜨거운 열정에 저는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국악인들에게 신문을 제대로 돈 주고 팔 수나 있었겠습니까. 추운 겨울,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국악인들에게 건네러 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종로에서 김호규는 불나방 같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국악사, 의상실, 연구소 등등 이곳저곳 다니면서 소식을 전하는 그는 뜨거운 불나방이면서 국악인들을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였습니다. 그가 없는 종로는 이제 텅 빈 듯합니다. 저는 이분이 이렇게 허탈하게 갈 줄은 몰랐습니다. 항상 소탈하게 웃는 분이었고, 얼렁뚱땅해보여도 가슴이 뜨겁고 따뜻했던 분이었습니다. 지금 국악협회가 많이 어렵습니다. 만약 김호규 선생이 지금 계셨더라면 국악협회의 난관도 함께 극복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분의 빈자리가 몹시 크게 느껴집니다. 제가 27대 이사장 선거에 나왔을 때, 뇌경색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서 응원의 말을 건네줬던 호규 형…. 그가 보고 싶습니다. 제가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국악인들이 주변부에 머물 게 아니라 종로, 명동, 강남 등 사대문 안으로 들어와 중심에 서야 한다셨습니다. 그 분의 의지를 저와 국악협회와 국악인들이 함께 이어가겠습니다. 차가운 공장에서 쇠를 깎다가 국악계로 와서 국악인들을 단합시키고 융합시키고 긍지를 갖게 했던 그 분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좋은 곳에서 부디 편안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공연은 오는 12월 28일 오후7시, 한국문화재재단 유튜브와 네이버tv 채널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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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경고! 코로나야기미양/국악신문 객원기자 여봐라 코로나야 무슨미련 그리많아 가라해도 가지않고 여기저기 떠다니냐 가라할때 빨리가면 손흔들이 있겠지만 더 버티고 미적대면 백번이나 실신한다 그게 바로 뭔가 하니 백신이라 하는거다 아파서 졸도한다 맞기전에 떠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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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세계의 중심도시 서울에서 만나는 현대적 국악 프로젝트‘[국악신문=우재현] 막바지에 이른 10월...,,, 깊어가는 가을이 덕수궁 돌담길을 붉은 단풍나무 그늘 아래 반짝이는 갈색 낙엽으로 더욱 운치있는 무대로 연출해 놓았다. 어느 詩에서처럼 덕수궁에 가을이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음악 소리에 길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어느새 돌담길은 무대가 되었다. 현시대의 옷으로 갈아입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랜만에 나서는 외출이라 다소 설레이기도 했지만 거리로 무대를 옮긴 ‘국악버스킹IN서울’ 소식에 마음이 더욱 들떴던 것이 사실이다. 오래전 파리 샹제리제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버스킹 공연을 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그 때문인지 오늘 버스킹 공연이 더욱 소중하다. 버스킹 장소에 가까워지자 이미 음악소리가 시작된 뒤였다. 덕수궁 돌담길을 감아 돌자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현시대의 옷으로 갈아입은 ‘국악버스킹IN서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도시, 세계 중심도시 서울과 국악이 하나가 되어있는 한국예술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대중과 국악의 소통의 길이 되다 마치 완성도 높은 음악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듯 감동적이다. 감미롭게 튕겨진 기타 음들이 해금 선율을 등에 업고 하늘로 날아오르자 약속된 각본처럼 낙엽이 타고 내린다. 세상에 처음 만들어진 조화로운 소리가 음악이란 이름으로 대중들 귀로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녹아들었다. 피리, 아쟁, 장고, 북소리가 부추기자 추임새가 쏟아지며 소통의 장으로 발전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친 대중들에게 이만한 치유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싶다...... 덕수궁과 가을, 서울과 국악, 시민들과 예술가... 한 치의 오차도 발견할 수 없는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서로 소통하며 때론 각자의 몫을 향유하며 가을에 물든 덕수궁 돌담길가엔 소박하지만 따뜻한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전통적 제재만으로 국한하지 않고 전통음악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세계 음악과 접목한 콜라보레이션 프로그램을 시연한 실험적 무대는 시민들의 선호도에 맞는 수준 높은 공연의 양질을 모두 만족시키는 기획이었다. ‘국악버스킹IN서울‘을 기획한 김중현 총감독은 제한적인 형식을 중요시하는 국악의 취약점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자유로운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 시민들과 만나 격이 없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같은 기획으로 전통문화의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며 향후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남아 많은 대중들에게 전통문화를 전달하는 장으로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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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故 김호규 사장님 영전에. 속없고 철없는 사람故 김호규 사장님! 국악신문 김호규 사장님, 272일 만에 늦은 추모식을 올립니다. 2019년 12월 13일, 추도문 낭독도, 노제도 없이 보내드렸습니다. 너무나 급작스러워 황망한 탓이었습니다. 오늘 2020년 9월 7일, 사장님의 영혼이 담긴 국악신문의 창간 26주년을 맞았습니다. 이에 하늘문공원에서 사장님의 피속에 흐르던 ‘김병섭류 설장고’ 가락과 혼이 담긴 국악신문 창간호, 제10호, 제100호를 올립니다. 영원히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영전에 삼가 보고 드립니다. 특별한 국면과 새로운 언론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의 지면 신문에서 인터넷신문으로의 전환으로 재창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준비한 인터넷 국악신문 9월 7일자 첫 입력 기사로 사장님의 늦은 추모사와 재창간 축사를 올립니다. 많은 분들의 격려와 관심으로 새 활로를 찾았습을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출범하는 ‘인터넷 국악신문’에서는 사장님을 ‘故 김호규 사장님’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명복을 비옵니다. 2020. 09. 07 삼가 양주 하늘문추모공원에서 직원일동 드립니다. 故 김호규(金浩奎/1959~2019) 사장 1970~1987년 김병섭(1921~1987)선생께 설장구 및 우도농악 사사 1978년 서울국악중고등학교 졸업 1994~2019년 25년간 국악신문 대표/발행인 1995년 국악예술단 창단 2000~2016년 어린이국악명인전 개최 2001년 서울실버국악제전 주최 2006년 (주)국악엔터테인먼트사 설립 2006~2012년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2008년 문화부장관상 수상 2010년 한국구악협회 공로상 수상 2010년 평화기원 전국국악경연대회 주최 2011~2016년 한국춤제전 차세대명무전 개최(5회 개최) 2016~2019년 국악로전통문화학교 설립 운영(교장 안숙선) 2017년 서울특별시장상 2018년 한국국악사 개업 2017~2018년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수상 2019년 문화계 대표단 일원으로 청와대 간담회 참가 2019년 12월 11일 소천 [추도사] 속없고 철없는 사람 박종철(극작가, 연출가) 전문예술단체 한국창극원, 창덕궁소극장 대표, 문인협회(희곡) 연극협회(연출)회원 사람이 명을 달리하여 세상에서 헤어진다면 어떤 사람은 가슴에 묻고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그 사람을 추억하고 기억한다. 그런 삶을 살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 국악신문사를 운영하였고, 국악평론가로, 실연자로 살다 간 김호규 사장을 추억하고자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사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냥 철없는 형과 철없는 동생이었다. 필자에게 형이라 부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국악계에서, 국악로와 행사장, 공연장에서 나에게 형- 부르며 나를 챙기고 찾던 정겨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사람으로서 대화하지 못할 길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게 되었다. 올해 나이 70에도 속없고 철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더 철없이 살던 그 사람이 술잔을 건네며 다소 엉뚱한 제안과 또는 나의 작품 활동을 기사로 쓰겠다며 정답게 굴던 그의 생전모습이 문뜩 문뜩 또 보고 싶어진다. 전생과 사후세계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가! 사람의 인연은 맺고 끊어짐이 계속되고 있기에 살아생전 그 이별을 수 없이 겪고 사는 것을 막을 수 없으련만, 왜 이리도 그 사람의 빈자리가 느껴지는지! 그는 뼈 속 깊이 국악인이었다. 국악예술계를 제일 깊이 알고 이해하며 그 분야의 발전에 책임을 지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철없어 보이겠지만 그가 떠난 국악로는 활기를 잃은 것이고, 어느 날 그가 툭 튀어나와 형 하고 부를 것 같은 그리움으로 남는 사람이다. 그립다 왜 떠나면 더 그리운 것인가! 그동안 그렇게 살다 간 기인으로 김호규 망인의 부인과 자제들의 마음고생 등을 위로하고 싶다. 그러나 한편 그의 활력과 추진력, 뿌리 깊은 국악인으로 평생 국악신문을 만들고 기획하고 그 지면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국악발전에 기여하였으니 오랜 동안 그의 생을 기억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히 자제가 국악신문의 역사를 이어간다니 각별한 관심과 지원, 국악가족으로 국악예술인 이 함께 기뻐할 일이다. 계승은 순수 전통음악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생 하늘에는 코로나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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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군함도’, ‘아리랑’ 같이 갈 수 있나?지난 6월 16일 화요일, 외교부의 정례브리핑 기사를 보고 올 것이 왔다는 사실에서 가슴이 아팠다. 2015년 여름, 명동 유네스코 한국본부 앞에서 일본의 군함도 인류문화유산 등재에 문제를 제기하는 성명서 낭독과 회원들의 일인시위를 할 때 이미 이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본의 유네스코에 대한 장악력에서나 관광자원화라는 등재 목적이나 기존의 외교적 행태로 보아 당연한 결과이다. 2017년 7월 군함도를 방문했을 때 곳곳의 현장 안내판에서도 이를 강하게 느꼈다. 아리랑학회와 (사)아리랑연합회가 제기한 문제는 이 군함도로 인해 인근에 ‘아리랑고개’가 생겼다는 사실 확인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서 과연 아리랑과 등가(等價)의 보편가치가 있는가라는 회의감 때문이었다. # "나가사키현에 ‘아리랑 고개’라는 지명을 확인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되어 끌려 온 조선인 탄부들이 미츠비시 조선소 공장을 오가며 아리랑을 부른 사실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인간 이하의 처우에 반발하면서 고난을 이겨내고자 아리랑을 노래했을 것이다. 나가사키의 평화운동가 기무라 히데토,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 연구원 다케우치 야스토 등 일본인들도 이를 인정하는 팩트이다.”(기미양, <군함도 기행기>, 뉴시스 2017.07.03 ) 결국 일본은 우리들의 문제 제기에 정보센터를 세워 조선인들의 강제동원과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내용을 밝히겠다고 했고, 유네스코는 일본의 이 같은 약속을 믿고 조건부 승인을 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최근 건립한 정보센터에 이런 고백을 적시하지 않았다. 우리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 "하시마(군함도) 탄광에는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이 일을 찾아 왔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출신지와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동료로서 좋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이 전부이다. 그야말로 ‘일본답다’.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고, 유네스코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았음에도 이를 방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외교부가 문제를 삼은 것이다. 당연한 외교적 조치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조해서 일본 측이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권고한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준수해나가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할 예정입니다. 유네스코 측에 대해서도 관련사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사실 이런 정도는 그야말로 ‘외교적 수사’ 일 뿐이다. 대책에 대해 매우 미온적이다. 더 강력하게 유네스코 본부에 조건을 충족시키게 하든, 아니면 등재를 취소하라고 강하게 촉구해야 한다. 오늘(6월 23일) 두 단체는 긴급 모임을 가졌다. 유네스코에 대한 항의 성명서 채택과 다시 명동 유네스코 본부 앞에서 일인시위를 전개할 것을 합의하였다. 결코 군함도와 아리랑을 같은 보편가치를 지닌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여러 문화단체의 동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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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국악신문, 사반세기 만에 거듭납니다1994년 9월 창간한 지령 25년의 국악전문지 ‘국악신문’이 오는 8월 재창간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결성했다. 지난달 10일 6인으로 구성된 ‘국악신문 재창간 자문위원회’는 우선 5월2일 ‘지역문화연구회’를 방문, 전국 국악 행사의 실상과 규모 등을 파악했다. 이어 주요 국악단체를 찾아가 7월 말까지 실무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5월15일에는 메이저 일간지 출신 문화전문기자와 사업담당자를 초청해 인터넷과 종이신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한편 국악신문은 5월15일부터 인턴기자를 모집하고 있다. 최종합격자들은 경력기자들의 지도로 3개월 간 인턴과정을 거쳐 8월 재창간 시 수습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경력기자(편집위원)로 방송, 일간지, 주간신문의 베테랑 4인을 영입한다. 사업부를 신설한다. 대외사업이나 마케팅은 물론, 내년 재창간 1주년을 기해 설립되는 법인 업무를 중점적으로 담당할 예정이다. 지난 4월 초 재창간 준비 소식이 전해지자 국악계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국내외 행사에 적극 참여 중인 아리랑 웹사이트 운영자 기미양 대표(벤처아리랑)는 "국악정책 관련 정론지가 절실하다. 주변에 주식 공모 참여를 권하겠다”고 전했다. 대금연주가 원장형 명인은 "기존의 틀을 깨고 언론의 기능에 충실한 국악계 대변지로 재창간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축하했다. ‘정창관의 아리랑’ 사이트와 함께 아리랑 유튜브를 운영하는 정창관 유튜버는 "국악신문도 핫 트렌드인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국악신문재창간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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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아리랑 인생이 담긴 정선아리랑 제2집 앨범을 내면서...,어느덧 아리랑 소리에 입문한지 40년이 지나고, 정선아리랑 제1집 앨범을 출시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훌쩍 지났군요. 첫번째 앨범은 정선아리랑을 최대한 담백한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장고반주만 곁들였습니다. 그동안 주위에 많은 분들이 정선아리랑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그분들의 호응과 응원에 힘입어 제2집 앨범을 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1집 앨범에서는 "수심편, 산수편, 애정편, 처세편, 무상편, 엮음편”으로 광범위하게 가사를 분류했었고, 제2집 앨범은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해금, 대금, 가야금, 장고, 아쟁, 피리로 기악반주를 가미하고, 방대한 정선아리랑 가사를 우리 인생과 비유해 "사랑, 부부, 시집살이, 술, 세월, 자연, 역사, 엮음긴아리랑, 엮음자진아리랑, 서울경기제 정선아리랑”으로 분류해 부제도 이현수정선아리랑 "아리랑 인생”으로 엮어 보았습니다. 제게는 아리랑 자체가 삶이자 인생이지요, 오십 여년 동안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고비도 아리랑이 늘 옆에서 지켜주었답니다. 제2집 앨범에서 먼저 사랑으로 문을 여는 이유는 아리랑의 주제가 사랑이기도 하지만,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간의 사랑 없이는 제대로 번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랑으로 가장 먼저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맺어진 두 남녀가 한 ‘부부’로 탄생되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늘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살다보니 곤궁한 살림살이와 ‘시집살이’에 후회도 막심하고, 속상한 일도 많아 ‘술’을 벗 삼아 때론 타락도 되고, 일탈도 꿈꿔보지만, 고독과 슬픔을 달래는 진정한 벗은 역시 술과 일탈이 아니라, 정선아리랑 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해 두해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검은 머리도 파뿌리가 되고, 육신도 늙고 병들어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얻게 됩니다.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한 세대를 살다 생을 마감하지만 개인사는 대부분 보편적인 가사로 묻히고,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소리와 가사들은 자손 대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리랑의 모태이자 고향인 "정선아리랑”은 우리나라의 국난극복사와 다를 바 없고, 애국가 못지않은 소중한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고려의 충신들이 망국의 한을 소리로 담아 불렀고, 대원군이 경복 중수 시 타 지역 아리랑 생성의 주역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항일 저항운동으로서의 역할, 6.25동란이후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아리랑 등 수 많은 정선아리랑가사들이 그 암울했던 역사를 그대로 증빙하고 있습니다. 엮음 편은 정선아리랑의 풍자와 해학이 제대로 가미된 랩 형식의 음악으로 엮는 부분이 끝나고 아리랑가락으로 회귀하는 부분을 긴아리랑 형태로 부른 것을 ‘엮음 긴아리랑’, 자진가락으로 부른 것을 ‘엮음 자진아리랑’으로 정리했습니다. ‘서울·경기제 정선아리랑’편은 이창배 선생님이 1940년대에 정선지역의 정선아리랑 중 긴아리랑과 자진아리랑을 빼고 엮음과 후렴부분만 경토리제로 편곡해 취입한 음반이 알려지면서 서울의 전문소리꾼들이 애창하며 오늘에 이른 통속적인 정선아리랑을 담았습니다. 앞으로 정선아리랑을 더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세요. 더불어 제게도 사랑과 용기를 듬뿍 주시고 따끔한 충고를 주시면 더 좋은 소리로 보답하겠습니다. 끝으로 금번 앨범이 나오기까지 연주를 맡아 주신 해금 김정림, 대금 문재덕, 가야금 강혜미, 장고 강형수, 아쟁 배런, 피리 장수호 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녹음과 마스터까지 맡아 주신 이음사운드 이정면 대표님과 음반 제작에 힘써주신 창광문화사 백승옥 대표님과 관계자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9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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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대한민국농악연합회 임웅수 이사장 신년사금년은 농악인 모두가 어느 해 보다 분주했고 바쁘게 보낸 한 해였습니다.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다짐하며 전쟁과 분단의 가슴 아픈 역사를 청산하고 공동번영의 새날을 열어 나갈 4.27 공동선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경사에 전국의 농악인들은 6월13일 광화문 광장에서 [평화가 옵니다, 희망이 옵니다, 정의가 옵니다]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앞까지 농악으로 신명을 불러내어 하늘과 땅에 우리민족의 소원을 비는 길놀이를 하였고 구름떼같이 몰려든 세계 만방의 시민들과 어우러져 흥에 겨운 뒤풀이를 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는 대동의 한마당을 이루었습니다. 10월14일에는 전국의 농악인 2,000여명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매년 11월 27일을 농악의 날로 선포하고, 질경이같은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농악이 민족의 전통문화 유산의 상속자로 당당하게 자리 매김하는 기념일을 갖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전국의 국악인 여러분 !!!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국적 불명의 문화의 홍수 속에서 올곧은 전통문화의 뿌리를 틀어쥐고 고군분투하시는 여러분은 전통문화의 도도한 역사를 미래의 세대들에게 이어주는 문화유산의 상속자이며, 전령사입니다. 국악인 여러분의 작은 몸짓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엮어내는 정신문화의 주체이고 주인입니다. 황금 돼지의 해 기해년에는 국악인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시고 장독과 곳간에도 차고 넘치는 축복의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대한민국농악연합회 이사장 임웅수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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