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대기자 인터뷰] 백설헌 한국한복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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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인터뷰] 백설헌 한국한복협회 회장

한복협회를 이끄는 백설헌 회장의 오늘
‘한복학습관’ 설립, ‘韓服匠人’ 제도 필요
‘한복의 綿 시대’ 열자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면서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리고 있는 보이 그룹 BTS가 도포를 입고 춤을 추는 사진을 보고선 미소를 지은 적이 있다. 속으로 "그래 이거야!”라고 외쳤던 기억이다. 긴 도포의 선이 BTS의 춤 선과 잘 어우러지면서 한복의 매력을 물씬 풍겼던 까닭이었다. 기자의 생각에 사물은 선이 고와야 예쁜 법이다. 옷과 춤이 서로의 곡선미를 위해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한복과 젊은 세대 간의 접점을 발견한 것 같아 흥분됐다.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에 이런 차림의 젊은이가 나타난다면 단박에 그 세대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 작금의 한복은 우리 전통문화의 한 축임이 분명한데도 갈수록 존재감이 떨어지고 있다. 단순한 옷 차원을 넘어 우리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한복의 의미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한국음악과 한복은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2005년부터 한국한복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설헌 선생을 만났다. (20211012일 오후 2시 청담동 설헌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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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백설헌 한복협회회장과 안상윤 국악신문 대기자, (사진=김동국 사진전문기자) 2021-10-12.

 

Q. 16년 동안 한복협회 회장을 맡아 하시면서 한복의 발전을 위해 공을 많이 들이셨죠?

A380여 회원들 간에 소통 기회를 마련한 것이 가장 큰 노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한복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 때문에 다른 집에도 안 가고 자기 집에 초대하지도 않았어요. 서로 상대의 작품을 보도록 기회를 만든 거죠. 서울과 지방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와 기능인들에게 교차 방문의 시간을 마련해줌으로써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배울 수 있도록 한 거죠. 한복의 소재, 색감, 문양, 디자인, 트렌드 그리고 마케팅 등에 관한 지식을 공유한 거죠. 그 덕에 식견이 다들 넓어졌어요. 색상도 파스텔 톤의 높낮이 조정과 원색의 임팩트(impact)화를, 염색 방면도 쪽이라는 식물을 발효시켜서 황산구리를 섞으면 진한 색을 얻을 수 있듯이 매염제에 따라 여러 색을 낼 수 있다는 지식도 알려주고, 롤 플레이(role play)도 했어요. 디자이너와 고객으로 나눠 역할 분담을 시킨 거죠. 그렇게 해서 상담차 들른 손님들에게 다양한 소재들로 상하와 고름, , 노리개 등을 종류별, 색상별로 구성해 보여주면서 매력을 느끼도록 끌어내는 노하우를 가르쳤지요. 얼굴에 맞는 디자인, 겉감과 안감의 배색, 목 길이에 따른 동정의 폭 조정, 눈동자나 피부색에 맞는 색상 조정에 대한 감각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Q. 한복 보급률도 낮고 인식도 낮은 게 우리 한복 문화 현실인 것 같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A. 네 확실히 한복이 복식 문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한복을 제대로 입을 줄 모르죠. 속치마를 앞에 입어야 하는데 뒤로 원피스처럼 입기도 하죠. 불편해하구요. 학교에서 교양 수업으로 한복 제대로 입는 법을 가르치면 좋겠어요. 생활 속에 파고들지도 못하고 있어요. 인생의 어떤 기념할 만한 날에는 한복을 입는 게 당연한 불문율처럼 조성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학교 교육서부터 방송에 이르기까지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죠. 돌이나 입학식, 졸업식, 성인식, 결혼식, 결혼기념식, 잔치, 은퇴 기념식 등등의 날에 한복을 입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어요. 결혼식 때도 혼주나 신랑 신부 외에 가까운 하객들도 축하의 마음을 담아 우아하고 품격 있는 복식으로 성의를 보이는 그런 문화가 있으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일본 여성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만 해도 5벌의 기모노를 맞춰 입는다고 하지 않아요? 부모들이 애들 잘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러 갈 때도 반드시 전통 의상을 입혀서 데리고 간다잖아요. 전통문화가 스며 있는 옷을 입는다는 형식 절차가 인생의 한 매듭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진지한 각오를 다지도록 역할하는 거죠. 우리는 성인식 때도 안 입죠. 우리도 한복에 대한 이해나 애정이 그 정도 되면 좋겠어요. 한옥 마을에, 한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학습관을 세우면, 한복에 대한 인식 함양이나 홍보에 얼마나 효과가 커지겠어요? 그런 노력이 범국민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Q. 사업상 파티나 동호인 모임, 손님 초대 때 드레스 코드(dress code)를 한복으로 삼는 것도 좋겠군요. 

A. 너무 좋죠. 한복 드레스 코드가 어려운 게 아니라 흔한 회색 계열에 하얀 스카프 하나 두른 홈웨어(home-wear) 같은 한복도 얼마든지 멋있을 수 있거든요. 입기 편하면서 멋을 낼 수 있도록 얼마든지 디자인 한복이 가능해요.


Q. 한복의 디자인은 진화를 거듭해왔는데 어떤 메커니즘을 거쳤는지요?

A. 궁중 의궤나 출토 복식 등에서 영감을 얻는 식이지요. 그런데 옛 복식은 굉장히 단순해요. 상도 청, , , 황 등 몇 가지 안되고요. 거기에 바리에이션(variation)을 줘야죠. 원형에서 영감을 받아 그 위에 디자이너의 창의력이 가미되는 메커니즘을 거쳐 작품이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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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청담동 ‘백설헌衣’ 앞에서 고운 모습으로 포즈를 취한 백설헌 회장. (사진=김동국 사진전문기자) 2021-10-12.

 

Q 20세기 초 개화기 복식이 오랫동안 지배하다 현대에 들어 조선 초기나 중기의 스타일이 발굴됐죠?

A. . 그래서 대학의 연구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요. 궁중에서 입은 당의(唐衣)에는 짧은 저고리가 없어요. 남자들도 바지저고리 위에 꼭 두루마기를 걸쳤죠. 상복에 관한 논문을 쓰며 궁중에서 입던 흰색의 무명 상복과 하얀 족두리 등의 당의가 일반에서는 혼례식 때 쓰인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죠. 계층별로도 복식이 다 달랐어요. 상민, 사대부, 기녀, 궁중 나인, 상궁, 왕족, 임금이 입던 복식이 다 따로 있었어요. 계절마다도 달라지고요. 기녀들이 디자이너 노릇을 하며 패션을 선도하기도 했죠. 가슴을 졸라매고 허리띠를 하고 치마를 풍성하게 만들었어요. 대학의 연구가 없으면 복식 문화가 뒤죽박죽이 돼버릴 겁니다. 이런 걸 알고 나서 디자인을 해야 제대로죠. 당의에 바탕하면 파티복 아니라 골프복도 만들 수 있어요. 꽃도 장식하고.


Q. 대학의 관련 학과가 그런 점에서 큰 역할을 해왔군요. 그런데 연구나 발굴과 달리 디자인은 또 다른 영역인데 대학에서 한복의 디자인을 창의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A. . 한복의 디자인은 거의 도제 형식으로 전승되는 게 바람직하죠. 실제로도 그럴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저도 많이 받아봤지만,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 못 견디고 떠나버려요. 그들은 바느질을 배우고 싶어 할 뿐, 디자인에는 관심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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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저고리와 치마, 깃과 동정, 장신구 등의 색상을 조화롭게 구사해 한복 전체의 품격을 높인다. (사진=김동국 사진전문기자) 2021-10-12.

 

Q. 예술을 배우려는 게 아니라 기능을 배우려는 거군요.

A. . 저희도 바느질을 배워서 직접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인데 문화를 계승하는 정신보다 손 기능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게 현실입니다.


Q 오늘날 한복집들의 현주소겠군요?

A. . 한때 동대문에 그런 한복 만드는 사람들이 4천여 명이 있을 정도였어요. 한복을 착용하면 궁궐 입장에 무료 혜택을 주는 게 그런 장사 마인드에서 비롯된 거죠. 그 결과 청바지 위에 한복을 덧입는 현상을 보이면서 한복의 우아한 멋이 실추됐다고 봅니다.


Q 한복을 우리 정신문화의 한 축이라고 볼 때, 복식 디자인 능력을 함양하는 게 절실하겠군요?

A. .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가죽 제품 제작을 가르치는 학교, ‘Leather School’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어요. 그곳에서는 구두서부터 옷까지 가죽으로 만드는 법을 교육하고 있더군요. 어떻게 착용해야 멋을 내는지도 가르치고. 우리도 옷을 짓고 입는 법을 가르치는 한복 학교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Q. 직접 학교를 세워서 후진을 양성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A. 한복 제작의 선배로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은 꼭 필요하고 가슴 설레는 일이죠.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Q. 한복 디자이너 브랜드는 몇 개나 되는지요? 

A. 글쎄요. 열 개나 될까요?


Q 나머지는 모두 상인들 수준이군요. 

A.. 그렇죠.


Q 한복 디자이너들은 한복장(韓服匠)’ 같은 명예 수여가 없나요? 

A. 바느질 분야에 바느질장은 있지만, 디자인에는 없어요.


Q. 기능장들에게만 주는군요.

A. . 한복의 복식이 전승되는 게 정신문화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의미가 크지만, 디자이너들을 위한 명예는 마련이 안 돼 있어요.


Q. 유기장, 한지장(韓紙匠) 등은 있잖아요? ‘한복 장인이 없으라는 법은 없어 보이는데요? 

A. 그러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 정책은 그런 이상적 상황을 추구하지 못하지요. 안타까움이 드는 대목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동대문 시장이라는 터전이 없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4만 명의 종사자들이 한복에 기대 밥을 먹고 있는 현실이 있어서 정책화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일 거예요.


Q. 기능인들이 만드는 게 상품이라면,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건 작품 아닌가요? 일반인들을 위한 한복은 기능인들에게 맡기고, 디자이너들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만들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국내외의 영향력 높은 유명 인사들에게 한복을 입혀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하는 역할을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맡을 수 있도록 거시적 관점에서 정부가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A. . 정말 최고의 생각입니다. (웃음)


왕년의 오드리 헵번이나 그레이스 켈리, 알랭 들롱, 요즈음의 안젤리나 졸리나 이자벨 아자니, 브래드 피트가 디자이너 브랜드의 한복을 입었다면,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한복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을 거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시각 효과는 힘이 세다. 언젠가 일본 아키타에서 수양벚꽃이 핑크색을 발하며 늘어져 있고, 검은색 담장이 쭉 이어진 길을 붉은 기모노에 빨간 양산을 받쳐 든 일본 여인이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서울에서도 봄날에 키 작은 매화를 배경으로 퓨전 한복을 입고 선 모델 한혜진 씨의 사진이 한복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한껏 풍기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런 효과를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작품으로 창출해줘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정부가 복식 장인으로 대접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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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한복의 재료는 계절별로 실크류와 양단, 삼베, 모시 등이 사용된다. 백 회장은 "입기 편하고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한 면(綿)을 써서 디자인 한복을 만들어야 젊은 세대와 외국인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김동국 사진전문기자) 2021-10-12.

 


Q.공급 측면에서 우리 한복업계에 절실하게 개선이 요구되는 분야가 있을까요?

A. . 저는 소재 면에서 개혁이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복 하면 실크죠. 합섬 실크나 물 실크 모두 실크 계열 일색이에요. 겨울에는 양단을 쓰죠. 여름에는 모시나 삼베가 있는데 이 소재들 모두가 다 손질이 어려워요. 그런 소재서 탈피해 면(綿)을 써보자는 거죠. 만들기도 쉽고, 입기에도 편하고, 세탁하기에도 좋아서 생활 한복을 정착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되거든요. 외국 면들 가운데는 꽃무늬도 들어 있고 누비는 퀼트(quilt)도 있어요. 익숙한 소재라서 외국인들에게도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 거구요. 면에 프린트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적 문양도 넣을 수 있고, 디자인하기에도 좋고, 서양식 옷들과 매칭 하기에도 좋고, 장점이 많을 걸로 판단됩니다. 대기업들이 장삿속으로 마구 대량 생산해내던 개량 한복이 아닌 디자인 한복을 만드는 거죠. 수요만 확보되면 정말 만들고 싶어요. 생뚱맞다고들얘기할 수도 있지만, 생뚱맞다는 자체가 창작이잖아요? 혁신이 될 수 있는 거죠. 면 업체들도 성장할 수 있고요.


Q. . 좋은 시도가 될 것 같군요. 젊은이들에게도 어필할 것 같아요. 한복이 젊은 세대들에게도 받아들여지려면 불편하다는 느낌을 탈피해야 하고, 디자인 면에서도 서구 것과 퓨전이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상하의를 다른 문화로 입거나, 한복에 바카라나 스와로브스키 같은 크리스털을 장신구 엘리먼트로 달 수도 있겠죠. 퓨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BTS가 바지 위에 도포를 걸쳐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선 2000년을 전후해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한복 사이의 접점을 찾은 듯해서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청담동에 그런 차림의 젊은이가 상체를 노출하고 도포를 걸친 채이거나, 양복을 입은 위에 두루마기를 입고 나타나도 눈길을 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A. . 동감입니다. 퓨전과 크로스오버가 한복의 트렌드 요소가 돼야 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그런 접점을 찾는 데 필요한 부분이 한복의 면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면으로 만든 한복이 그런 트렌드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대학에서 한복 디자인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나 도제식 한복 제작을 이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참가자로 삼아서 한복 제작 콘테스트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A. 몇몇 대학에서 실시한 바 있고, KOEX에서도 콘테스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Q. 아니, 제 말씀은 기존의 한복 제작 방식을 답습하라는 것이 아니고, 트렌디한 주제를 던져주자는 거죠. 예를 들어 ‘2021년 가을 청담동을 걷는 젊은이가 선보여서 주의를 환기하고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널리 전파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보라는 구체적인 주문을 하는 거죠. 그 과정을 국악 TV나 국악신문이 방송하고 보도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면, 한복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A.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희 한복협회가 주관해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국악신문과 국악방송이 좀 힘써주시면 좋겠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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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인생의 중요한 날에는 우아한 한복을 입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백 회장의 바람이다. (사진=김동국 사진전문기자) 2021-10-12.

 

Q.한국음악과 한복은 어떻게 상생을 도모할 수 있을까요?

A.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 있습니다. 한국음악을 양복을 입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한국음악 공연자들 덕에 한복이 수요를 지탱하고 있죠. 요즈음 한국음악 오디션도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던데 참가자들의 공연 점수 외에 한복 맵시도 가산점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연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복식도 공연 문화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보거든요.


기자는 어느 해 가을에 북촌의 고색창연한 조선집에서 고운 한복을 입은 여성이 부르는 정가(正歌)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청아한 목소리만큼이나 그 여성의 치마저고리 역시 전통음악을 대변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확실히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때도 있는 듯싶었다. 한국음악은 소리로 시작해 복식으로 완성되는 형식미를 가질 법하다는 생각을 했다.


Q. 교육대학을 나와 10년간 교직에 있다가 늦은 나이에 한복 디자이너의 길을 밟으셨어요. 성대 한복학과에서 공부해서 한복 디자인 정규 교육을 받은 1호 디자이너가 되셨죠? 사명감이 남다를 거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남다를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A. 오늘 숙제가 많이 생겼어요. (웃음) 역시 사명감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의 정신문화를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겁니다. 한복이 저조해지면서 대학이나 대학원의 관련 학과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앞서 얘기한 이탈리아의 가죽 학교 같은 한복 학교를 세워 교육에 종사하는 게 선배로서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의 후반부를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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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체형, 얼굴, 눈동자 색 등에 맞춰 재료와 색상을 배합함으로써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한복 문화 정착은 디자이너의 창의력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진=김동국 사진전문기자) 2021-10-12.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1959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 <회색인>에서 작가 최인훈은 주인공 독고준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줄리엣과 로미오를 대신할 날이 올까? 그런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야.”


최인훈의 비관적 전망은 2021BTS가 얻고 있는 세계적 인기 앞에서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외국인 팬들이 한글로 된 가사를 외워 따라 부른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로 피케팅을 하고 댓글을 단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BTS의 춤 선에 매료당한다. 우리의 옷, 한복은 그 사건을 계기로 도약의 모멘텀(momentum)을 가져야 마땅하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 일선에 한복 디자이너들의 창의력이 잘 닦은 창검처럼 빛을 번뜩이고 있다. 그 창검을 잘 쓸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힘을 보태야 한다.


 "면으로 한복을 만들자라는 백설헌 씨의 획기적 제안은 소구력(訴求力)이 커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한복 도약의 관건이다. 정부는 일선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한복 장인 제도도 만들어 한복 디자이너들을 대우하고 지원해야 한다.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서의 디자이너 한복이 세계인의 마음을 뺏을 수도 있다. 단순히 옷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정신문화를 온전히 지키고 널리 알리려는 앞선 세대의 공통된 사명감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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