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흙의 소리 이 동 희 못다한 이야기 3 '난계유고'부록에 시장諡狀 신도비명神道碑銘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시장은 유현儒賢 공신功臣 들의 시호諡號를 내릴 때 미리 세 가지를 의정議定하여 임금에게 올리고, 그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였는데 그 시망諡望을 상주할 때 생존시의 한 일들을 적은 글발이다. 박연의 시장은 영조英祖 때 문신(이조판서) 홍계희洪啟禧가 찬撰하였다. 여기에 그 시장을 간추려 일대기一代記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박연의 생애 이야기를 맺고자 한다. 1378년 박연은 나면서부터 자질이 뛰어난 데다가 총...
흙의 소리 이 동 희 못다한 이야기 2 그리고 이선생도 그래서 여기를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선비가 살던 마을을 뜻하는 거사리, 거기에 박연의 유배 모습을 담아 보자. 어떤 기록이 나올 때까지. 이날 제2 제3의 마을을 찾아 그 가능성을 더듬어 보았다. 옥포리玉浦里, 백도리百島里, 옛 이름은 온섬 원셈 마을, 붉은 바위가 있는 자암紫巖마을, 평지마을 등. 아무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잠간 얘기한 대로 이선생은 박연이 고산 귀양지에서 쓴 가훈을 소개하고 그 배경을 설명하였다. 가훈을 먼저 보자. 열 일곱 ...
흙의 소리 이 동 희 못다한 이야기 1 2020년 9월 17일 시작하여 이제 마무리를 하면서까지 2년이 넘는 동안 난계 박연 이야기에 매달려 썼다. 세종실록을 비롯한 몇 왕조실록 난계유고 등을 많이 인용하였고 박연에 대한 다른 두 세 소설을 참고를 하였는데 말년에 대한 사항은 새로 제시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영동 박연이 태어나고 자란 길을 국악로라고 명명命名하고 있고 그곳에 난계국악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거기에 마지막 생애의 부분이 추가되고 고쳐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연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 고산으로 귀...
흙의 소리 이 동 희 바람 속에 물 속에 5 셋째 계우가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연루가 되어 투옥 되고 종내에는 교형絞刑에 처해진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단종 1년(1453)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사건이다. 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단명短命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남지南智 우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왕세자가 등극하였을 때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였다. 남지가 병으로 좌의정을 사직한 이후 좌의정은 김종서, 우의정은 정분鄭笨이 맡았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문종...
흙의 소리 이 동 희 바람 속에 물 속에 4 셋째 아들 계우季雨로 하여 생긴 일이었다.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림학사를 역임하고 경연經筵에 출입하면서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등과 도의道義 충의忠義의 의誼를 다지고 있었던 것인데 늘 꽁생원 아버지에게 ‘저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습니다’하고 입찬 소리를 하였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보다 못한 자식이 되면 쓰느냐고, 불초不肖 얘기만 하였다. 좌우간 얼마 뒤의 일이었다.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었다. 박연은 매일 매일 자신의 주...
흙의 소리 이 동 희 바람 속에 물 속에 3 어려 황황자화 남산유대 녹명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들이다. 궁정의 연회와 전례 때의 의식시儀式詩에 풍風 아雅 송頌이 있고 아에는 소아 대아가 있다. 정악正樂의 노래말이다. 앞에서도 몇 번 얘기하였지만. 중추원부사 박연은 또 다른 일로 상언하였다. "태봉胎峯 아래에 백성들의 오두막집을 철거하고 그 전토田土를 폐지하니 지극히 통석痛惜합니다.” 태봉 아래 여사廬舍를 철거하고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안타깝다고 아뢴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닭이 ...
흙의 소리 이 동 희 바람 속에 물 속에 2 "가동歌童이 끊겨지지 않는 것은 전날 무동舞童의 남은 풍습에 인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를 폐지한다면 원묘原廟에서 송덕頌德하는 음音이나 공적으로 빈객을 연향宴享하는 악樂이 어찌 되겠습니까. 신의 망견으로는 가동은 폐지할 수 없으며 세종께서 무동은 혁파한 것은 오로지 계속하기 어려운 때문이라고 하였을 뿐이요 예가 아니기 때문에 없애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계속할 수 있어 오래 할 수 있는 대책을 얻게 되면 전의 법규를 수복修復하는 성주의 계술繼述하는 데 해롭지 않을 것입...
흙의 소리 이 동 희 바람 속에 물 속에 1 세종 32년(1450) 정월 인수부윤 박연을 응교應敎 김예몽金禮蒙 수찬修撰 유성원柳誠源과 함께 불러 내약방內藥房에서 의학에 관한 서적을 7일간 상고하여 보게 하였다. 그것이 세종 때 마지막으로 한 일이었다. 세종 임금에 이어 문종 단종 임금 때에도 박연은 같은 자리에서 하던 일을 전과 같이 하였다. 일흔을 넘은 노구老軀는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마음과 필력筆力은 변함이 없었다. 문종 즉위년(1451) 3월 박연은 풍수학제조 이정녕李正寧 공조판서 정인지鄭麟趾와 함께 상...
흙의 소리 이 동 희 순명順命 5 누가 명한 것이겠는가. 박연의 괴로움은 말할 수가 없고 부끄러움은 하늘을 덮었다. 사실이 그렇고 아니고를 따질 염치도 없었다. 그저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는 나이이고 체면이라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았다.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 하지 않았던가. 공자의 말씀이다. 일흔 살에는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물론 그가 성현의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을지 모르지만 주야로 수신修身을 하고 마음을 고쳐 먹고 하...
흙의 소리 이 동 희 순명順命 4 참으로 민망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천금을 잃은들 그보다 더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 도의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죄 짓는 일 악하고 추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고 제 정신으로 길이 아닌 데를 가지 않고 말이 아닌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늙고 쇠하니 볼성 사나운 일이 자꾸 생기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어찌 할 수가 없는 일이지만 임금 앞에 보이게 되어 괴로웠다. 자신을 생각해 주고, 그것이 총애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껴주고 ...
흙의 소리 이 동 희 순명順命 3 같은 해 앞에서 말한 조하의절朝賀儀節을 꾸미었다. 왕세자王世子조하의절 군신君臣조하의절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는데 줄곧 상언하고 있는 글과 달리 두 조하를 예의에 맞게 악절樂節을 기록하여 전범典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난계선생 유고』에는 가훈家訓과 함께 잡저雜著로 구분 정리되어 있다. 세종실록에도 기록되지 않은 문서로 청정淸正 조회악율소朝會樂律疏와 함께 박연의 조회朝會음악에 대한 족적으로 조하의식 절차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종 25년(1443) 9월에 박연은 다시 중추원부사...
흙의 소리 이 동 희 순명順命 2 세종 24년(1442) 10월 박연은 예조참의로 제수되었다. 다음 해 정월 예조참의 박연은 최양선崔揚善이 말한 풍수설風水說을 가지고 의논해서 이뢰라는 명을 받았다. 직집현전直集賢殿 남수문南秀文 응교應敎 정창손鄭昌孫과 함께였다. 세종 임금은 호기심이 많았다. 그 호기심이라고 할까 그런 심리를 과학적으로 전환시키기 일쑤였다. 장영실의 과학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그런 과학자 세종의 뒷받침이 있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15세기 과학시대를 이끌었던 합리주의 군주 세종은 최양...
흙의 소리 이 동 희 순명順命 1 이듬해 정월에 박연은 다시 제악祭樂에 관한 글을 올리었다. "제악은 천신天神을 제사할 경우 강신降神함에 4궁宮을 쓰는데 악樂은 6성成으로 변합니다. 육변六變을 쓰는 것은 천제天帝가 진震에서 나옴을 취함이요 진은 묘위卯位에 자리하였으니 묘의 수는 여섯인 것입니다. 따라서 환종궁圜鍾宮을 사용해야 하니 협종夾鍾 2성 황종각黃鍾角 고선궁姑洗宮 2성 태주치太蔟徵 남려궁南呂宮 1성 고선우姑洗羽 대려궁大呂宮 1성이고, 송신送神에는 협종궁 1성을 사용합니다.” 천신을 제사하고 묘악廟樂에는 사성四聲을...
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 5 박연의 상언은 아주 세세하며 구체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연속부절로 이어졌다. "금년 납향臘享부터 모든 제향에 전奠 찬饌 메〔飯〕국 떡 흰떡〔餌〕등을 미리 진설하지 말게 하고 문소전文昭殿의 예에 의거하여 임시에 진설하게 하되 경점更點에 따라 그 시간을 한정하고 장찬掌饌을 세워서 그 임무를 맡게 하고 기장 피 벼 수수 국 떡 등의 제물들을 뜨거운 것으로써 때를 맞추게 하여 향내가 오르게 한 뒤에 제사를 행하기를 청합니다.” 박연의 청원은 바로 예조에 내려서 의정부와 더불어 같이 의논하...
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 4 박연의 상언은 계속되었다. 종묘 사직에 관한 너무도 간곡한 청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천신에게 제사하는 제례가 있어서 원단의 의식을 세우고 여려 해 동안 제사를 거행하다가 제후국의 법도에 어긋난다는 까닭으로 그만두고 시행하지 아니한 지 이미 여러 해이다. 오직 이 풍운뇌우의 단만은 왕(성상聖上)이 천신을 공경하여 제사하는 곳이므로 더욱 급급하게 개정하고 시일이 지나기를 기다리지 말 것이다. 왕년에 신이 이런 폐단을 고치기를 청하였으나 정부의 의논이 합치되지 아니하여서 윤가允...
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 3 종묘 사직에 관한 간곡한 청원이었다. "그러나 신이 생각하건대, 제단을 개정하는 일은 마땅히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또 공사는 전우殿宇를 화려하게 건축하는 사치도 없는 것이고 깎고 단청 칠하는 사치도 없으며 단지 돌을 포열布列하여 단을 쌓고 바깥으로 난간과 담장을 마련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불긴不緊한 것으로 보고 여러 해 동안 지체하는 것은 매우 불가한 일입니다.” 양심이 있는 선비로서 첨지중추원사 일을 맡은 관리로서 부당하고 온당치 못함을 사안의 옳고 그름을 밝혀 건의하는 것이...
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 2 애초에 봉상시奉常寺에서 소장되었던 은찬銀瓚은 종묘에서 임금이 친히 제향하는데에만 쓰던 것인데 도둑에게 잃어버리자 왕은 바로 박연에게 다시 주조鑄造하게 하였다. "우순虞舜은 종묘 제향을 옥가玉가(잔盞의 뜻인 가)로 하고 하후씨夏后氏는 식玉式(옥과 식이 합자된 것임)을 썼다 하니 식은 곧 작爵이며 옥玉으로 만든 것입니다. 주례周禮에 태제太帝가 선왕을 제향할 때에 옥작이라 불렀고 천자는 종묘 제향에 규찬圭瓚을 썼다 했으며 송나라 시대에 와서는 황제가 친히 태묘太廟에 제향하는데 옥가로 술을 올리...
흙의 소리 이 동 희 천명天命 1 공자는 오십에 천명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박연은 쉰을 훨씬 넘도록 천명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저 주어진 자리 부닥친 일을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 알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정신을 거기 다 쏟았다. 그런 10년이었다. 그 전이나 그 후나 다를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쉰 아홉이 되는 박연은 정초부터 늘 그 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먹을 갈아 썼다.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면 폐백을 요대燎臺에서 불사르고 지기地祇에게 제사 지내고 인귀人鬼에게 제향하면 폐백을 예감瘞...
흙의 소리 이 동 희 연결 5 박연은 왕에게 충성을 하였고 왕은 박연은 총애하였다. 신하가 왕에게 충성을 하고 나라에 충성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왕이 신하를 총애한 것은 행운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총애는 유난히 사랑하는 것이다. 왕이 신하를 그 누가 됐든 사랑하는 것은 또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특별히 유난히 사랑하는 것은 드문 일이요 귀한 일이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신하가 혹 저지하고 신하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임금이 혹 듣지 아니하기도 하...
흙의 소리 이 동 희 연결 4 박연은 그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하여 무엇이든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 하였으며 혼신의 힘을 다 하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이었다. 누구의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일도 아니요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위하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신념이었다. 자신을 위해서였다. 왕(세종)을 위하여 왕을 의식하고 말하자면 왕에게 보이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때도...
흙의 소리 이 동 희 연결 3 그해(세종 15년) 1월 1일 세종은 근정전에서 왕세자와 여러 신하에게 신년하례를 받은 후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몇 번 얘기한 대로 그 때 처음으로 아악雅樂을 사용하였다. 왕은 아악을 만든 박연에게 말하였다. "내가 조회 아악을 창제創制하고자 하는데 입법立法과 창제가 예로부터 하기가 어렵다. 임금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신하가 혹 저지하고 신하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임금이 혹 듣지 아니하며 비록 위와 아래서 모두 하고자 하여도 시운時運이 불리한 때도 있는데, 지금은 나의 뜻이 먼저 ...
흙의 소리 이 동 희 연결戀結 2 그 소설은 얘기를 바로 하지 않고 이리 저리 둘러 대고 있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 것 같다. 소설을 쓴다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대개 거짓말을 하고 있다 허위 날조다 허구다 라고 할 때 그런다. 소설은 그런 것이 아니다. 허구라는 말은 픽션fiction이란 뜻이다. 픽션이란 말은 소설이란 말로도 쓴다. 그러나 허구란 말을 소설이란 말로 쓰지는 않는다. 소설은 그냥 허구가 아니라 허구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가능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소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흙의 소리 이 동 희 연결戀結 1 연戀은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이며 어떤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하고 즐기는 것이다. ᄉᆞ랑ᄒᆞ하다는 생각하다의 옛말이다. 박연은 예악을 즐기고 음악을 소중히 여기며 주야로 추구하였다. 왕을 어릴 때 세자 때는 귀중히 여기고 왕이 되어서는 받들어 모시며 어려워하였다. 다래는 아끼고 애틋하게 생각하였다. 무엇이나 맡은 일을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고 즐기며 끔직히 생각하...
흙의 소리 이 동 희 새 걸음으로 6 또 문文은 보태평이라 하고 무武는 정대업定大業이라 하였다.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에서 연주하는 악무로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줄여서 정대업이라 부른다. 모두 11곡과 이에 해당하는 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역시 세종에 의하여 원래 회례악으로 창제된 것이고 직접 간접으로 공을 끼친 역대 왕들과 선조들의 무덕武德을 찬양안 내용이다. 창제 당시에 15곡이던 정대업은 세조 때 개작되면서 보태평과 같이 11곡으로 되었다. 소무昭武(인입장) 독경篤慶 선위宣威 탁령濯靈 ...
흙의 소리 이 동 희 새 걸음으로 5 보태평保太平이 있다. 종묘 제례의 영신迎神과 전폐奠幣 초헌례初獻禮의 악무樂舞인데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를 줄여서 그렇게 부른다. 모두 11곡과 그에 해당하는 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과 악장은 세종대왕에 의하여 회례악會禮樂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건국에 공을 끼친 역대 왕들과 선조들의 문덕文德을 찬양한 내용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창작創作은 아니고 조선 초기의 향악鄕樂을 바탕으로 하여 창제創制한 것이다. 창제는 새로 만들거나 제정하는 것으로 훈민정음訓民正音 서문의 新制...
흙의 소리 이 동 희 새 걸음으로 4 세종실록 56권에 있는 기록이다. 세종 14년 5월 임금의 영令이었다. "이제 회례 때의 문무文舞 무무武舞 두 가지 춤에 연주할 악장은, 마땅히 현금現今의 일을 가영歌詠하여야 한다고, 박연이 말하였으나 내가 생각해 보니 대체로 가사歌辭라는 것은 성공을 상징하여 성대한 덕을 송찬頌讚하는 것이오.” 임금은 좌우 신하들에게, 주무왕周武王이 천하를 평정하였고 성왕成王 때에 이르러 주공周公이 대무大武...
흙의 소리 이 동 희 새 걸음으로 3 박연은 계속하여 상언하였다. "제향이나 조회 때의 주악奏樂에 사용하는 기구와 예복과 의식용儀式用 물품은 국가의 경비가 적지 않은 것인데, 맡아 지키는 관리가 보관 수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오래 가지 않아서 파손되고 헐어질 것이 염려됩니다. 원컨대 지금부터는 주무관아로 하여금 불시에 검찰하게 하여 그의 공과 허물을 기록하였다가 포폄褒貶에 증빙으로 삼게 하소서. 이러한 조항에 대하여서는 상언한 바에 따라 조曹의 전향사典享司의 낭청郎廳으로 하여금 불시에 가서 살피게 하소서.” 이...
흙의 소리 이 동 희 새 걸음으로 2 파직은 되었으나 하던 일은 멈추지는 않았다. 며칠 실의에 빠져 헤매다가 생각을 고쳐 더욱 힘을 내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생각하면 한 번도 그는 무엇을 잘 못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실수를 해 본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이번 일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그렇게 자만을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늙어갈 뻔하였다. 다시 또 한번 진심으로 임금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일이 이렇게 된 운명 같은 횡액에 대하여 감사를 하였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흙의 소리 이 동 희 새 걸음으로 1 박연은 정초鄭招 김진金鎭 등과 함께 혼천의渾天儀를 올렸다. 세종15년(1433) 6월 9일, 세종실록 60권 기사이다. 정초는 대제학으로 과학 사업에 중요한 소임을 맡아 정인지와 함께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연구, 「칠성내편七星內篇」을 편찬하고 간의대簡儀臺를 제작 설치하는 일을 관장하고 있었다. 그 전 후가 되지만 「농사직설農事直說」「회례문무악장會禮文武樂章」을 편찬하기도 했다. 혼천의는 서전書傳 「순전舜典」의 선기옥형도璇璣玉衡圖를 본 떠 만든 천체관측기구로서 북극고도(관측자의 위...
일본 니포노폰 취입 조선민요 ‘경성란란타령’, 1913년 Nipponophone 6170 SP음반.(국악신문 소장자료) ...
쏘가리 문양 도편 한 점 없이 이규진(편고재 주인) 계룡산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조선 왕도로서의 도읍지를 생각한다면 무학대사를, 민속신앙의 터전을 염두에 둔다면 신도...
1897년 8월 13일 ‘대조선 개국 505회 기원절 경축식’에서 계관시인 윤치호가 작사한 무궁화노래(찬미가 제10장)가 처음 발표된 독립관 전경. 현 애국가의 원형 ‘...
경기검무 경기검무(京畿劍舞)는 서울 및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 악기의 반주에 맞춰 칼을 들고 휘두르며 추는 춤 및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의미한다.경기검무는...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로 손꼽히는 남원춘향대전(남원춘향제)이 오는 5월 10일(금)부터 5월 16일(목)까지 7일간 남원시 광한루원 일대에서 열...
4월 18일부터 20일, 남산국악당에서 아트플랫폼 동화의 모던연희극 ‘新칠우쟁론기’가 펼쳐졌다.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는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된 채치성 예술감독님을 만났다. 그는 국악방송 사장, KBS 국악관현...
2024 쿼드초이스_틂 (사진=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나승열)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학로극장 쿼드의 ‘쿼드초이스’...
지난 4일, 국립국악원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118명으로 구성된 연합 관현악단 무대 ‘하나되어’를 국...
칠순을 넘어서는 길목에서 중견작가 김경혜(영남이공대 명예교수) 작가의 열번째 작품전이 오는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대구시 중구 슈바빙 갤러리에서 열린다.전시되는총 50여 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III ‘한국의 숨결’이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박상후의 지휘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국립국악관현악단...
한상일(1955~)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는 국악에 입문한 지 올해로 60여 년을 맞는다. 때 맞춰 지난 1월 25일 서울문화투데이 신문에서 선정하는 제15회 문화대...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2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2024 명연주자 시리즈 ‘공존(共存)’ 무대가 펼쳐졌다. ‘명연주자 시리...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2일부터 22일, 국립정동극장은 대표 기획공연 사업 ’창작ing’의 두 번째 작품, 소리극 ‘두아:유월의 눈’을 무대에 올렸다. ‘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