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지난 해 세 건의 성명서만을 내고 해산한 ‘수습위원회’가 있었다. 소수인원에 편향성 오해로 한 측으로부터 배척을 당해 단명했지만, 이 수습위의 결성 목적은 분명하고 명분이 있었다. 위원 모두가 이 목적을 이해하고 공유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목적은 "원고와 피고(국악협회 대리인)를 배재하고 실기(實技)인이 아닌 인물의 이사장 체제를 수립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집단지성으로 실현한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명분을 공유하지도 못하고 해산했지만, 이 의도는 지금의 난맥상에서 다시 돌아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양측 모두 인정하지 않겠지만, 금년 4월 총회 두 이사장 선출은 오는 8월 또는 9월의 맞고소 1심 판결에서 쌍방 무효 판결이 날 것으로 예측된다. 한 측은 원천적인 자격문제, 또 한 측은 절차 위반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양측은 승소를 견고하게 믿고 있는 듯하다. 이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즉, 만일 어느 한쪽이 승소하면 한 쪽이 항소로 이어져 2년 전의 전철을 밟게 되고, 협회는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상태가 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하게도 한 측에서 자진 사퇴라는 용단을 내렸다. 늦었지만 옳은 판단이다. 수습의 단초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이제 사태는 원점에 선 것이다.
원로모임, ‘집단지성’ 발휘해야
이제 어떤 수습책이 있을 수 있을까? 다행하게도 이영희 前 이사장(23대/24대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원로모임이 1차 회의를 갖고 수습위원회로의 확대를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늦었지만 기대를 갖게 한다. 임웅수씨의 사퇴와 명실상부한 협회 60년사의 한 주역이 중심으로 나섰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의 원로모임이 중심을 잡고 한국국악협회를 재건한다는 사명감으로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전 국악협회 회원들은 물론 국악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누구든 수용할 수 있는 곧,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을 이끌어 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집단지성’, 이 말은 사회학자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의 ‘구슬실험’ 결과로 확립된 이론이다. 공동체 내의 난제(難題)를 푸는 해결책으로 부각 되고 있는데, 여기서의 난제란 외부에서는 공동체 내의 질서나 관행을 이해할 수 없어 관여가 어렵고, 이를 아는 일부에 의해 해석을 주도함으로 해결이 어려운 사정을 말한다.
제임스 교수가 유리병에 구슬 850개를 넣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보여준 다음 구슬의 총 개수를 맞춰보라는 실험을 했다. 48명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직감을 각각 제시했다. 교수는 48명의 대답을 합산하고 이를 평균값을 냈다. 결과는 871개였다. 그런데 전체 학생의 답변 중 이보다 더 정확하게 맞춘 답변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다른 연구자에 의해서도 확인이 되었다. 영국 과학자 후란시스 달톤(Francis Galton)이 시장에 팔려나온 소의 무게를 맞추는 실험으로,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의 추측을 모아 평균을 냈다. 그 결과는 실제의 무게에 매우 가깝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후 100명 이상의 더 많은 참여 관찰 실험일수록 평균값이 실제의 근사치에 가깝게 나온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후 이 실험은 공동체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확산 되었다. "양이 질을 만들고, 집단은 특정 조건에서 내부의 우수한 개체보다 지능적이다”라는 이론이 확립된 것이다.
당연히 집단의 지성이 구현되는 데는 조건이 부여된다. 최근의 연구 결과로는 첫째, 충분한 다양성(Diversity) 보장이다. 둘째, 독립성(Independencey) 보장으로 각자의 의견이 보장되어야 한다. 편향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신뢰(Trust)의 과정이 주어져야 한다. 즉, 집단지성이 통한다는 신뢰에서 조율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서 함께 이뤄낸 집단지성은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어 창발과 혁신을 이뤄낸다는 것이다.
최대한 다양한 층의 국악인 참여 조건, 충족시켜야
그렇다면 원로모임도 최선의 방안을 이 집단지성을 도출해 내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 하나는 진상파악의 객관성 담보이다. 이를 위해 법률 자문단을 통해 진상을 정확하고 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전 회원과 국악인들에게 알려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선결과제이다. 다음은 사태의 전말을 이해하고, 사태 수습 의지를 가진 회원과 국악인을 대상으로 집단 토론과 투표형식으로 대책을 성안해 내야 한다. 기존의 협회 정관 규정 범위 대상으로는 부족하다. 한 편의 관계망에 얽힌 이들은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늦더라도 넓고, 깊게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마지막은 진행 전 과정은 영상(映像) 보고서로 작성해야 한다. 누구든 열람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차후의 전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건에서 얻어진 대책은 예측할 수 없다. 두 인물을 배제 시킨 상태에서 비대위 체재로 가며 정관 개정 등을 완비한 후, 새 인물을 선출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또한 양 측 중 한 사람을 선택하여 체제 개선과 안정을 꾀하여 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지부 지회 자체의 법인 설립을 도와주고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중앙회는 최소화 하여 명예직 이사장 체재로 가는 방식도 있다. 그동안의 지부/지회/중앙회간의 수직관계를 민주화하 해야 한다는 열망에서는 있을 수 있는 방안이다.
국악계 거성(巨星)들이 쌓아 온 50년 역사, 재건 절실
또 아니면 극단적 방식으로 아예 단체를 해체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차라리 지지부진하다 스스로 자진(自盡)하여 해체되는 것도 있을 수 있다”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는 점에서 거론될 만한 방안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비극적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국악계의 거성(巨星)들이 쌓아 온 50년 역사를 지우는 일이니 그렇다. 이 점에서 이번의 대책 수립의 절박성이 있고, 대책 마련에 협회 회원을 넘어선 국악계 전반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한 측의 자진 사퇴와 원로모임의 출범은 국악협회인에 의한, 국악협회를 위한, 국악계 안정과 발전을 향한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이어야 한다. 이 앞에서 전 회원들과 국악인들은 ‘집단’으로, ‘지성’ 발휘의 주역이어야 한다.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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