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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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와 함께한 '향두계놀이', 그리고 유지숙과 박애리 명창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최하고 향두계놀이보존회(이사장 오현승)가 주관하는 서도소리극 '향두계놀이'가 2일 경기도 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향두계놀이’는 북한 평안도에서 전해지는 두레정신을 담긴 마을공동체 결속을 다지는 전통놀이 연희극으로 서도소리와 평안도 지역 고유한 대동놀이를 대표하는 민속놀이다. 1966년 전국민속놀이대회에 나가면서 민속예술성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이날은 향두계놀이보존회는 경기도 양주시와 파주시에 정주하고 있는 사할린동포 100여 명을 초대한 특별한 공연이었다. 갑자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양주 율정마을 시민들이 1층 객석이 꽉 채웠다.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는 마을제 길놀이, 북청사자놀음, 고유제 무대가 오르기 전 농악대가 객석 뒤에서부터 좌우로 갈라져서 '지신밟기'를 펼치는 길놀이를 보여주었다. 이 나라 이 땅을 지키는 동서남북 신에게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안전과 태평을 기원드리는 마당굿을 올렸다. 꽹가리, 징, 장구, 북소리가 높이높이 메아리쳤다. 이어서 눈처럼 하연 사자탈을 쓴 연희자들이 나타나서 북청사자놀음이 시작되면서, 곧이어 꼭두쇠의 익살과 재담으로 '향두계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400여 명의 청중은 꼭두쇠가 가르쳐 준 추임새 학습을 받고 '잘한다' 하며 맛깔스런 재담에 우뢰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어서 본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와 객석의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잠시후 무대 왼쪽에 조명이 차차 밝아졌다. 유지숙 보유자가 나타나서 무릎을 꿇고 마을을 지키는 당목 아래에서 정화수를 바친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우고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고축(고유제)를 올렸다. 무녀로 분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강과 풍작 및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신앙적 의례를 재현했다. "일년은 열두달 삼백은 예순날/ 황도 길일 좋은날 잡아서/ 오늘 열손 모아 비나이다" 서도소리의 백미, 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서도소리는 주로 황해도와 평안도(서도 지방)에서 전승되던 노래를 말한다. 민요·선소리·잡가 등을 포함한다. 널리 알려진 민요로는 평안도의 ‘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황해도의 ‘자진염불’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몽금포타령’ 등이 있다. 얇게 떠는 목을 구사하면서 콧소리가 특징이다. 긴아리는 빠른 한배의 '자진아리'와 짝으로 불린다. 현재 서도소리 보유자로 지정된 김광숙과 이춘목 명인, 전승교육사 유지숙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수심가'는 남도민요의 대표적 '육자배기' 와 쌍벽을 이루는 민요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아리랑만큼 사랑하고 애창하던 구전민요이다. 그래서 서도소리의 백미라고 불린다. 유지숙 명창의 수심가는 한번 들으면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어진다. 애절함이 극치에 달하면서 치유가 되는 '노래의 힘'이 느껴진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면서 사할린 동포들이 이 곡의 제목을 물어보았다. 명곡은 시대를 넘나들고 공간을 초월한다. 일제감점기 음반과 방송을 통해 전국 랭킹 1위 유행가가 바로 수심가이다. 1926년 영화주제가 '아리랑'이 나오기 전까지 민중이 애창한 민요이었다.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세상 공명(功名) 꿈밖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세월이 가는 것/동달아 나 어이 할거나(수심가) 향두계놀이보존회의 각 지역 지부장과 경·서도소리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 서도소리극을 올렸다. 풍물 반주는 꽹과리(1)·징(1)·장구(2)·북(1)으로 구성된다. 향두계놀이 전 과장은 마당 준비과정, 입장, 도리깨질소리. 모심기 준비 과정, 모찌기 및 모심기, 논두렁 밟기, 초벌 논매기, 새참 가래질 소리 및 연기 피우기, 만벌(세벌) 논매기,풍년 기원 두레놀이 12과장이다. 제1장 '씨앗 뿌리기'과장에서 '긴아리'에 이어 '자진아리'가 불려진다. 야 조개는 잡아서 저절 절이구/ 가는 님 잡아서 정들이잔다(긴아리) 아이고 아이고 성화로구나(후렴) 요놈의 종자야 네 올 줄 알고 썩은/ 새끼로 문 걸고 잤구나 일하든 오금에 잠이나 자갔디 /재넘어 털털 뭘하래 왔음나 울넘어 밖에서 꼴베는 총각아/ 눈치나 있거든 이떡을 받아라(자진아리) 제4장 모내기하는 일꾼들이 새참과 막걸리로 지친 몸을 쉬면서 향두계놀이를 시작한다. 서도소리 ‘청춘가, 개성난봉가, 양산도, 개타령 등이 불린다. 박연폭포 흘러가는 물은/ 범사정으로 감돌아 든다 에 에헤야 에헹에루화 좋구 좋다/ 어럼마 디여라 내 사랑아(후렴) 월백설백 천지백하니 산심/ 야심이 객수심이로다(개성난봉가) 전 회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서도소리가 담긴 '향두계놀이'를 신명과 흥으로 표출시켰다. 특히나 어린 학생들이 신명나는 춤사위와 함께 빠르게 내지르는 청아하고 맑은 서도소리는 잠시나마 궂은 세상살이를 잊게했다. 국악인 박애리의 빛나는 진행 국악인이면서 방송인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박애리 명창의 맛깔스런 평안도 사투리로 진행하는 역활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아직 전 국민 대상으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국악은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제한적 접근성이 문제인데, 박애리는 이러한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국악 장르는 갈래가 복잡하고 곡명이나 작품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는 쉽지않다. 해설하는 내용이 명확해야 전달력이 높아진다. 빛나는 진행 솜씨로 향두계놀이 공연을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정확한 발음과 발성으로 청중을 집중시켜서 다음 나오는 작품의 진가를 높여주었다. 타고난 말솜씨가 재담가 수준이어서, 시원시원한 평안도 사투리 실력은 관중들의 집중력을 배로 증가시켰다. 즉흥적 대응과 교감이 느껴졌다. 그만큼 철저한 준비를 해 온 성의가 빛을 발했다. 맨 뒷자석 관중들은 아예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국악인이면서 문화매개자의 역활을 톡톡히 보여 주었다. 특히 무대에서 내려와서 한바퀴를 돌면서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오늘 아주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네다. 객석 불을 밝혀주시라우요. 안녕하십니가요. 사할린에서 오신 동포 어르신들 어디에 계시나요. 손을 들어보시라우요. 우리 어마니 아바지." 하고 사할린 동포들을 찾아가서 눈을 마추치고 악수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인사를 드려서 폭풍 박수를 받았다. 방송인 박애리 명창은 이미 사할린 동포들에게도 트롯트 가수들(?)의 인기를 넘나드는 스타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어느 무대에서도 소통이 가능한 전무후무한 국악전문 진행자이면서 차세대 국악을 보증하는 스타이다. 오늘 무대는 성공적이다. 이미 꽉찬 관중석의 뜨거운 박수와 무대에 꽂쳐버린 눈길이 말해준다. 오늘 박애리 명창이 역시 기대 이상으로 단단히 한 몫을 하고도 남았다. Q.유지숙 회장님 '향두계놀이' 전국 순회공연을 하시면서, 지금은 북한에서 잊혀진 북녁의 '서도소리'를 극으로 만들어서 알리고 계시는데, 많은 보람이 있으시죠. A.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는 무대라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 열심히 불렀습니다. 특히 오늘은 더욱 뜻깊은 공연이었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이 70년 만에 귀국해서 한국에서 사신지가 15년이나 된다는 것은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북쪽에 본관을 두신 실향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순회공연 하는 지역과 연계해서 사할린 동포들을 모시고 싶습니다. 다음 강화도 공연에는 인천에 사시는 동포들을 모시고 싶어요. 유지숙 명인은 2018년 광복절 사할린강제징용 80주년 남·북·러 합동공연을 위해 국립국악원과 국립남도국악원 연희자와 함께 남한 국악인을 대표해서 사할린 무대에 섰다. 당시 필자도 사할린주한인협회 초청을 받고 참석하였는데.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 무대 뒤에서 유지숙 명인을 만나서 "오늘 아리랑을 부르시나요" 하고 물으니, 첫 곡 선정 변경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아리랑메들리에서 북한지역 민요 '서도소리'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음악은 빠른데 서도소리 중 무슨 곡을 불러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시 2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을 통해 러시아 동포들이 좋아하는 장르의 노래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오늘 공연의 진객, 사할린동포들은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성장해서 차이코프스키 음악과 발레를 보고 자란 세대이다. 주말이 되어 공연을 보러가는 날에는 넥타이를 메고 붉은 장미꽃 한송이를 들고 가는 것이 일상이다. 주로 1941년에서 1945년 사이 출생한 사할린1세(법적)이다. 빠른 음악과 스텝에 익숙한 청중으로 살아오다가 15년 전에 한국에 귀국한 사람들이다. 전통국악보다는 트롯트에 익숙한 청중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Q.권경석 회장님, 오늘 북녁 사람들이 애창했던 서도소리극 '향두계놀이'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A. 태어나서 서도소리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청아하고 맑은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술성이 너무나 뛰어난 민족입니다. 이렇게 작은 땅에 살면서 북쪽과 남쪽의 소리가 이렇게 다르다니, 전 세계를 매혹시키는 한국 가수들의 뿌리는 바로 전통의 소리에서 나왔다는 게 실감납니다. 유지숙 명인이 부르는 서도소리는 북녁 사람들의 심장 소리라고 하면 표현이 될까요. 누가 들어도 유지숙 명창의 소리는 하늘이 낸 소리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전통민요라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잊혀져가는 전통의 소리를 남한에서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오늘 품격 높은 공연을 선사한 향두계놀이보존회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오늘 박애리 명창이 사할린 동포들을 무대에서 소개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잊지못할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권회장은 사할린에 태어나서 북한에 유학을 가서 3년간 공부를 하고 모스크바에서 살다가 한국에 영주귀국했다. 대부분 사할린 동포들은 러시아에서 평생 유럽음악을 접하고 온 분들이다. 아마도 우리 전통민요는 다소 생소한 장르이지만 오늘 무대에서 'K-한류'의 원천을 맛보고 가셨으리라고 본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내내 오늘 공연을 통해 우리 전통 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오늘 공연이 사하린1세 가슴에 잠재되어있는 한민족 밑바닥에 깔린 심성을 건드렸나보다. 우리 민족의 높은 예술성을 실감하고 가슴에 담아갔다고 본다. 전날 전 출연자가 하루종일 리허설을 하면서 이 무대 동선을 익히고 조명 및 음향이 맞아 떨어져서 공연의 완결성을 이끌었다고 본다. Q. 최나타샤(사할린아리랑합창단장) 회장님, 오늘 공연에서 어떤 노래가 가장 가슴에 남나요. A. 작곡가인 남편하고 같이 못와서 아깝네요. '수심가'라는 노래가 가슴을 울립니다. 슬프고도 아름답다고 할까요. 집에 돌아가서 유지숙 명창의 서도소리 공연 동영상을 찾아서 남편과 같이 보고 나니 "우리나라 젊은이들 노래 잘하는 세계적 스타가 앞으로 계속 나오고 있다. 재주있는 민족이다라"고 합디다. 그리고 아침방송에 나오는 박애리 명창이 평안도 사투리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설명을 잘해주어서 우리가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역시 최고입니다. 박애리!! 만나고 싶은 스타이었는데, 다음에는 꼭 사진 한장 남기고 싶어요. 우리 부모님은 북한땅에서 살다가 사할린에 이주하여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북한 노래를 들으니 평생 고향에도 못가보고 사할린에 묻히신 부모님과의 추억도 떠오릅니다. 늘 흥얼흥얼거리며 부른 노래가 바로 북한 전통민요였다는 것도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우리는 이 공연을 기다리겠습니다. 유지숙 회장님. 귀한 공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나타샤 단장은 러시아 극동 최고 도시 하바롭스크한인협회에서 부회장을 30년 하다가 14년 전에 양주시에 영주귀국하여 부회장을 계속 맡고 있다. 남편은 사할린 동포 중 유일한 작곡가이다. 현재 사할린아리랑보존회장을 맡고 있다. 하바롭스크와 한국과의 문화행사에서 동시통역을 맡고 있다. Q.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님, 오늘도 주말에 먼길 시간내서, 늘 사할린 동포들과 함께 해주시네요. A. 사할린 동포들 이제는 연로하시고 많이 힘드십니다. 어제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얼굴이나마 뵈려고요. 영주귀국하신지 15년이 넘네요. 재임기간 3년을 마치고 올해 초 귀국해서 경기도 지역 행사는 거의 다 좇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올해 에트노스학교가 국립남도국악원 재외동포 연수교육에서 '진도북춤'을 한달동안 수업을 받을 때 잠깐 만났습니다. 그렇게나마 사할린 동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조금씩 동포들의 삶과 애환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오늘 공연을 사할린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올해에도 연수교육을 받게되어 진도에 오게되면....... 저도 오늘 서도소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감동입니다. 이 공연에 대해서 소개할 때, 사할린 동포들이 소리극이란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쉽게 설명하면 서양의 오페라 같은 거라고 답을 했다. 어떤 주인공이 나오고 주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데 제대로 답을 못했다. 서도소리극 장르는 소리극으로써, 토속민요인 서도소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극이다. 오늘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적인 요소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각 과정마다 극 중 인물이 구현하려는 곡명과 사설의 내용 전달과 함께 등장인물들의 대화 형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고 받는 대사(또는 노래)가 들어가야 한다. 특히 극의 주요 요소인 등장인물의 갈등구조 없이 대단원으로 막이 내려졌다. 즉 스토리텔링 작업이 잡히지 못해서 아쉬웠다. 일제강점기라는 모티브를 넣는다면 당시 최고 유행가 '수심가'도 강조할 수 있고, 당시 유성기 음반 출연과 방송을 통해 유행된 신민요나 유행가를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한 두곡 곁들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트롯트와 댄스곡만 보여주었지만, 극적 전환일때는 의상도 바꿔입어야 한다. 2부에서 극의 흐름을 이끄는 주인공 역활을 하는 향두어른이 나와서 트롯트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장날 마누라 몰래 넥타이를 메고 양복을 걸치고 읍에 나가서 유행가를 불렀으면 극의 흐름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2부 첫막에서 향두어른이 1부에서 입었던 의상과 상투를 틀고 나와서 독창으로 트롯트를 불러서 적지않게 당황했다. 이 노래를 왜 부르는지 주고 받는 대사 또는 해설자의 명확한 설명이 있었으면 기대 이상의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변사가 나와서 설명을 해주어도 극의 흐름이 생생하게 살았을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누구나 보는 내내 욕심을 내게 마련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성공요인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일단 일반적인 다른 문화재 전승 구성원보다 인적 구성이 아주 젊은 국악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10살 전후부터 시작한 많은 제자들이 이제 40대 전후가 되어간다. 특히 본부가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에 있고 전국에 있는 각 지부에서 재능있는 인적 동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로지 작품의 컬리티를 위한 공연연습 외 업무는 단단한 기획사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 더 부치면 무형문화유산의 학술적 국면과 공연 작품은 이원화 해야한다. 관객을 위해서 만든 작품은 진화해햐 한다. 시대의 코드에 맞게,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MZ시대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생산자가 있으면 수용자가 있어야 지속적 계승이 이루어진다. 행사를 마치고 로비에서 권경석 회장과 유지숙 회장이 만나서 인사를 나누면서 앞으로 전국 순회공연에 전국 사할린 동포 어른들을 초청해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권경석 회장은 이번 행사에 전석 초대와 함께 파주와 양주에 이동할 수 있는 버스도 보내주셔서 추운 날씨에 편하게 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최나타샤 사할린아리랑합창단장은 유지숙 회장과 박애리 명창에게 러시아 초코렛을 선물로 전했다. 지난해부터 사할린 동포 위문공연에 앞장 서고 있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회장과 회원들도 사할린 동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이어 유지숙 회장과 전 회원들이 동포들을 위해 준비한 따끈한 떡과 귤 상자 선물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실어 보냈다.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은 동포들과 뜨거운 포옹을 하고 배웅을 했다. 오랜만에 양주와 파주에 사는 동포들이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쉬움을 남기고 버스는 파주를 향해 떠났다.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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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음악, 이 시대 ‘반도’의 음악11월 24일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한국 전통 음악의 기원을 알리는 팀 ‘반도(BANDO)’의 첫 정규 공연이 열렸다. ‘동시대 전통예술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2023 Project contemporary 문밖의 사람들:門外漢’ 선정 기획공연으로,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가는 전통예술의 동시대성을 그려냈다. 반도는 "우리 전통 음악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팀이다. 이 무대에서는 네 명의 연주자가 한반도라는 공간적 공통점에서 새로운 한국음악의 실마리를 찾아내 음악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이 시대의 음악을 그려냈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시도를 위해 설립된 곳으로, 갤러리, 라이브홀 등의 시설에서 전시와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작업을 담아내고 있는 공간이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은 연주자의 연주를 거의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친근했고, 푸르스름한 조명을 받은 악기들이 무대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회장을 방불케 하는 느낌 있고 아늑한 무대에는 모던하고 현대적인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왔고, 곧 네 명의 연주자들이 등장했다. 연주는 기타에 이시문, 거문고에 황진아, 색소폰에 김성완, 드럼에 강전호가 함께 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신만의 활동을 펼쳐 온 네 명의 연주자들은 바다, 강, 섬, 논, 길 등 한국의 지형적 특징을 소재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로 연주된 곡은 ‘동해’였다. 반도의 팀 이름과도 잘 어울리는 곡으로, 힘차고 강렬한 사운드로 연주를 시작함과 동시에 공연장 무대의 3면(무대 중앙, 좌측, 우측)이 파도치는 바다 영상으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현란한 미디어 아트 덕분에 무대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음악은 색소폰이 주선율이 되어 자유롭게 연주하고, 그 뒤에 다른 악기들이 힘 있게 받쳐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색소폰이 주가 된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파도치는 영상 속을 헤엄치다 보니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영화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가 떠올랐다. 그만큼 열정적이던 곡 ‘바다’는, 이리저리 휘몰아치며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다의 풍경을 절로 그려냈다. 바로 이어 연주된 ‘안개’는 거문고와 색소폰의 여린 사운드가 반복되는 리프와 함께 몽환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이 흐릿한, 안개 낀 것 같은 미디어 아트 영상이 무대를 감쌌고, 휘모리장단을 연주하는 드럼, 독특한 사운드의 색소폰 솔로에 거문고와 일렉 기타가 리듬 형태로 얹히며 뿌옇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 공연에서는 중간중간 연주자들이 번갈아 가며 토크를 진행했다. 두 곡이 끝난 후 거문고 연주자 황진아가 마이크를 잡고 반도 팀을 소개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땅에 비슷한 정서로 함께 사는 한국인의 ‘현재의 음악’을 추구한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욱 편안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뭐로 가도 서울만’이라는 곡은 자신의 만취 상태를 그리며 감상해 보라는 멘트와 함께 유쾌하게 시작되었다. 선명한 색감의 네모난 색종이 같은 조명이 연주자들을 하나하나 비추었고, 이는 마치 네이버 온스테이지(onstage) 무대를 보는 듯 모던하고 예술적이었다. 그들은 ‘4+3+3+2’의 리듬 소박을 반복하며 강세를 가지고 선율을 쪼개거나 이어 자유롭게 연주했다. 악기는 각자 솔로를 연주하다가도 다른 악기의 솔로에 맞추어 주고, 절뚝거리는 리듬 소박을 가져가다가도 하나 된 합을 맞추어 연주함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한국적 리듬, 선율의 자유롭고 재미있는 상·하행 진행을 듣고 있자니 유쾌하고 여유로운 서울의 밤이 연상되며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네 번째 무대는 ‘남쪽 섬’으로, 수천 개의 섬이 있는 한반도 남쪽을 그리며 ‘열매 따는 소리’라는 노동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곡이다. 경쾌한 리듬과 일렉 기타의 명랑한 코드 진행 위에 색소폰의 선율과 거문고의 현란한 솔로가 얹어졌다. 관객들은 저마다 리듬을 타며 그루비한 음악에 몸을 맡겼다. 이 곡에서 일렉 기타는 장조(major)를 주로 연주했고, 색소폰은 그와 반대로 단조(minor) 선법을 베이스로 연주하여 서로 다른 이질감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매력을 선보였다. 컬러풀한 패턴의 영상과 함께 음악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산을 따라 사는’은 거문고의 피치카토 연주로 시작됐다. 중후하고 자연 친화적인 낮은 거문고 소리가 무대를 잔뜩 감싸며 차분한 산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무대는 특히 미디어 아트가 음악과 잘 어울렸는데, 흑백으로 된 많은 나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나의 산을 만들어 낸 것이 흥미로웠다. 색소폰의 공기 반 소리 반의 오묘하고 매력적인 사운드에 일렉 기타의 부드러운 소리가 섞이며 신비로운 산의 장관이 그려졌다. ‘강’은 관객들의 집중도를 최대로 끌어올린 곡이었다. 색소포니스트 김성완은 강을 생각하면 거리감이나 인생의 시간이 떠오른다며, 강의 깊고 고요함을 색소폰으로 표현하였다. ‘강’은 색소폰의 끊이지 않는 하나의 음정으로 시작했다. 지직거리며 균등하지 않은 사운드의 질감과 흔들림 가운데에도 굳건한 지속음이 아름답게 연주됐다. 고요하고 편안한 강물의 물결 영상 아트는 아주 조용한 어느 강변으로 데려다주었고, 그 앞에 앉아 시를 읽는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다음으로 연주된 곡은 논밭을 가르는 초록빛 영상, 조명과 함께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날 부딪히는 농기구 소리와 농부의 노랫소리를 연상시키는 ‘여름 논’이었다. 드럼은 하이햇(hi-hat)으로 농기구 소리를 표현해 연주하며 흥미로운 리듬꼴을 들려주었다. 또 일렉 기타의 선법이 특히 독특했는데, 단조(minor) 기반의 몽환적인 색이 가미된 음을 추가하여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반도 팀은 이렇듯 곡마다 예상하지 못할 그들만의 음색과 코드, 리듬 형태 등을 자유롭게 구현해 냈다. 뻔하지 않고 독특하면서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 그들의 음악은 대중적이고 현대적이며, 또 한국적이었다. 한반도를 돌아다니는 밴드 반도의 모습을 그려낸 마지막 곡 ‘길’을 끝으로 무대는 막을 내렸다. 반도는 그들만의 뚜렷한 색채와 자유로운 연주로 완성도 높은 음악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무대에서 음악보다 더욱 눈에 띄었던 건, 그들의 단합력이었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 주며 존중하는 모습은 토크와 음악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솔로 악기에 자리를 내어주고 양보하며 연주로 뒷받침해 주고, 눈빛과 호흡, 미소로 완벽한 합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 처음 관객에서 선보여진 밴드 반도의 무대는 다채로운 미디어 아트와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더해져 이 시대의 한국 음악이 나아갈 가치 있는 가능성을 끌어냈다. 그들이 앞으로 보여 줄 그들만의 예술, 한반도의 예술을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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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탈공작소, ‘탈 오셀로와 이아고’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금나래아트홀에서 젊은 탈꾼 예술단체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창작한 ‘오셀로와 이아고(Othello and lago)’ 공연이 펼쳐졌다. 인간을 탐구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셀로’를 흥과 넉살로 가득한 탈춤의 미학으로 재해석하여 흥미롭게 풀어나간 작품이다. 더 나아가 한국 전통 음악이 가진 예술성과 정신을 깊이 있게 체득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어법을 받아들여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음악그룹 나무가 음악을 맡아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 공연은 음성해설과 자막해설, 수어통역이 함께 존재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로 진행되었다. 누구나 수신기를 통해 음성해설을 들으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고, 극 중 모든 대사는 수어 통역사들이 나와 수어로 통역해 주었으며, 무대 화면에는 대사의 자막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특히 문자에 감정과 상황을 넣는 이미지 작업이 포함되어 더욱 풍성한 상상력으로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무장애 공연으로 진행되었기에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이 확대되고, 인식개선에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더 많은 관객과 함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에 힘을 쓴 것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고전과 탈춤의 만남을 2017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팀이다. 이들은 다양한 무대에서 수많은 작업을 해 왔기에 어느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오셀로와 이아고’는 첫 관람이었고, 음악을 담당한 음악그룹 나무의 음악이 극에서 어떤 식으로 연출될지 매우 궁금했기에 기대를 갖고 관람하였다. 시작과 동시에 1980년대에 유행하던 질감의 전자음악 사운드가 무대를 감쌌다. 그 소리는 오래된 셰익스피어의 고전, 이 시대의 탈춤과 함께 어우러지며 강렬한 느낌을 내뿜었다. 신스(synth) 베이스의 전자 사운드에 맞추어 장구, 태평소가 더불어 연주했는데, 3+2를 활용한 소박의 전통 장단을 함께 연주함으로 리드미컬하고 한국적이며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등장인물은 오셀로와 이아고, 데스데모나 세 명으로 이루어졌다. 극의 초입은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로 시작되었다. 앞뒤 내용을 모른 채 처음부터 이 극이 비극임을 알게 되어버려서일까, 극단적이고 신랄한 그 장면이 더욱 기묘하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결말 부분이 지나간 후, 이탈리아 베니스의 장군 오셀로가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시작됐다. 이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 두 남녀가 함께 오래도록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사랑하게 되는 것을 춤으로 표현했다. ‘스칠 듯 말 듯 서로를 스치는 단소 소리’라는 감정 자막이 나올 때는, 말 그대로 악기끼리 같은 음을 내는 유니즌(Unison)으로 연주하다, 각각 반음과 1도 간격의 선율 진행으로 부딪힘을 반복하며 만날 듯 만나지 않을 듯 유려한 연주로 서로 얽혀 들어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춤을 추던 데스데모나와 오셀로는 익살스러운 베이스 연주와 함께 장난치듯 춤을 추고, 결국 사랑을 이루어 냈다. 이 장면의 초반부는 음성해설 없이 무대를 관람했고, 후반부는 음성 해설을 통해 관람하며 차이를 느껴 보았다. 음성 해설이 있을 때는 어떤 동작으로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지 모두 설명해 주기에 극을 이해하기에 수월했고, 해설 없이 춤을 추는 장면만 볼 때는 온전한 상상으로 춤을 해석할 수 있었다. 해설을 듣거나 듣지 않는 두 가지의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기에 더욱 흥미롭고 다양한 감정으로 무대를 즐길 수 있었으며, 음성 해설을 통해 무대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는 관객도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무대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또 특별했던 건, 이 음성해설은 실제 탈꾼이 녹음한 해설로, 정보 전달만 하는 딱딱한 대사가 아닌 탈춤이 가진 맛깔스러운 재담과 추임새를 활용하여 전달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와 사랑을 이루는 장면에서 나온 음성해설에서는, ‘사랑을 이룬 두 사람, 서로를 붙잡고 춤을 추어보는디!’ 하는 정겹고 구성진 말투가 사용되어 한국적인 매력이 돋보였으며, 더욱 흥미롭게 극을 감상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은 오셀로와 이아고, 데스데모나 세 명으로 이루어졌다. 극의 초입은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로 시작되었다. 앞뒤 내용을 모른 채 처음부터 이 극이 비극임을 알게 되어버려서일까, 극단적이고 신랄한 그 장면이 더욱 기묘하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결말 부분이 지나간 후, 이탈리아 베니스의 장군 오셀로가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시작됐다. 이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 두 남녀가 함께 오래도록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사랑하게 되는 것을 춤으로 표현했다. ‘스칠 듯 말 듯 서로를 스치는 단소 소리’라는 감정 자막이 나올 때는, 말 그대로 악기끼리 같은 음을 내는 유니즌(Unison)으로 연주하다, 각각 반음과 1도 간격의 선율 진행으로 부딪힘을 반복하며 만날 듯 만나지 않을 듯 유려한 연주로 서로 얽혀 들어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춤을 추던 데스데모나와 오셀로는 익살스러운 베이스 연주와 함께 장난치듯 춤을 추고, 결국 사랑을 이루어 냈다. 이 장면의 초반부는 음성해설 없이 무대를 관람했고, 후반부는 음성 해설을 통해 관람하며 차이를 느껴 보았다. 음성 해설이 있을 때는 어떤 동작으로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지 모두 설명해 주기에 극을 이해하기에 수월했고, 해설 없이 춤을 추는 장면만 볼 때는 온전한 상상으로 춤을 해석할 수 있었다. 해설을 듣거나 듣지 않는 두 가지의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기에 더욱 흥미롭고 다양한 감정으로 무대를 즐길 수 있었으며, 음성 해설을 통해 무대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는 관객도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무대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또 특별했던 건, 이 음성해설은 실제 탈꾼이 녹음한 해설로, 정보 전달만 하는 딱딱한 대사가 아닌 탈춤이 가진 맛깔스러운 재담과 추임새를 활용하여 전달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와 사랑을 이루는 장면에서 나온 음성해설에서는, ‘사랑을 이룬 두 사람, 서로를 붙잡고 춤을 추어보는디!’ 하는 정겹고 구성진 말투가 사용되어 한국적인 매력이 돋보였으며, 더욱 흥미롭게 극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음악그룹 나무의 연주는 훌륭했다. 무엇보다 흥미롭고 와 닿았던 것은 모든 음악에 장단을 기본으로 가져가 온전히 전통에 기반을 둔 무대를 꾸려냈다는 것이다. 전자 음악 등 현대적인 사운드가 주를 이룰 때도, 장구가 아닌 드럼으로 연주할 때도 장단이 음악의 뼈대를 이루었고, 그에 맞추어 한국적인 선율이 연주됐다. 각 악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였다. 대금과 태평소의 화려한 혀치기 기법이나 빠른 패시지로 쪼개는 리듬꼴 연주, 피리의 아름답고 높고 낮은 음색의 변화 등을 통해 국악기의 음색과 특징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또 창작곡뿐 아닌 전통을 들어볼 기회도 많았는데, 장구와 대금, 피리로 연주한 서도대풍류는 시원시원하고 흥겨워 그 전통의 색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하지만 더불어 아쉬웠던 건, 서도대풍류가 흘러나올 때 자막으로 나온 글이 ‘우아하지만 답답하고 따분한 소리’였다는 것이다. 물론 기획의 의도였겠으나, 서도대풍류가 답답하고 따분하게 들리지 않았던 관객 입장으로선 그 자막의 설명과 들리는 음악에 괴리감이 느껴져 아쉬웠다. 오로지 자막에만 의존하여 무대를 상상해야 하는 관객이 그 자막을 보며 상상할 음악과 서도대풍류가 주는 감정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을 느끼는 감각은 상대적이지만, 자막해설에 감정과 상황을 넣는 이미지 작업을 할 때는 지금보다 더욱 그 음악의 결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문구를 설정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연은 또한 ‘탈’을 통한 연출이 돋보였다. 오셀로는 처음 등장할 때 전쟁영웅으로 호전적인 면모를 돋보이기 위해 붉고 거친 탈을 착용했는데, 이아고의 계략에 넘어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분노하며 광기 어린 하얀 탈로 바꾸어 착용했다. 이 장면의 음성 해설에서는 ‘마음을 숨기는 탈’을 쓴다고 전하고, 이아고는 ‘다들 겉과 속은 다른 거 아냐?’라며 이중성을 드러냈다. 탈을 통해 진실을 감추고 마음을 숨기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또 데스데모나는 오셀로를 만나고 탈에 빨간 립스틱으로 웃는 입을 그렸다가, 오셀로에게 죽임을 당한 후 그 입을 문지르고, 붉은색이 얼굴 전체에 번짐으로 죽음을 표현했다. 탈의 변화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연출이 흥미로웠으며, 탈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색있는 무대라고 느꼈다. ‘오셀로와 이아고’는 천하제일탈공작소가 고전과 탈춤의 만남을 시도한 첫 번째 작품이다. 천하제일탈공작소의 목표는 보편적인 주제와 가치관을 담아낸 이야기를 가져오자는 것, 그리고 무대 예술과 조응하는 형태의 공연을 창작해 보자는 것이라고 한다. 그 두 가지 생각으로 고르게 된 것이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였고, ‘오셀로와 이아고’ 작품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전통 탈춤을 이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다는 목표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 시대와 통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고전을 엮어 탈춤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전통 기반의 창작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가치는 ‘오셀로와 이아고’에 그대로 묻어났다. 탈춤은 익명성이라는 특징으로 풍자의 요소를 지니는 게 특징이다. 이 무대는 탈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여 가장 한국적이면서 모두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연출해 냈다. 또 깔끔하고 직관적이며 한국적인 대사나 몸짓, 음악이 더해져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그들만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진실을 감추고, 마음을 숨기지만 그만큼 수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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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대만, 풍성한 어우러짐 ‘화이부동’대만과 한국 전통 음악 연주자들이 모여 뜻깊고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였다. 지난 11월 10일과 11일 양일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과 국립대만국악단의 교류 공연 ‘화이부동(和而不同)’이 펼쳐졌다. 공연의 첫날인 10일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과 국립대만국악단의 합동 공연으로, 11일은 국립대만국악단의 단독 연주 무대로 꾸며졌다. 국립국악원과 국립대만국악단은 양국의 전통예술 발전을 위해 2018년 상호 교류 공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18년 대만과 2019년 한국에서 각각 초청공연을 진행한 바 있다. 지난 두 차례의 공연에서는 국립국악원이 대만의 음악을, 국립대만국악단이 한국의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를 선보였다면, 올해는 두 단체가 하나의 관현악단이 되어 함께 무대에 올라 풍성한 음악을 선보였다. 추운 날씨였지만 예악당에는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로 북적였다. 대만 전통 음악은 익숙지 않았기에 과연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낼지 큰 기대를 품고 관람하였다. 첫 곡은 최성환 작곡의 ‘아리랑 환상곡’이었다. ‘아리랑 환상곡’은 널리 연주되고 있는 대중적이고 유명한 곡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을 다양한 리듬과 박자로 변화 주어 환상곡 풍으로 작곡된 작품이다. ‘아리랑 환상곡’은 아주 여린 소리로 시작되어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기존에 익숙하게 들어온 국악관현악 버전의 ‘아리랑 환상곡’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연한 사운드로 음악이 시작됐다. 작고 조심스러워 긴장되면서도 아름다운 관현악단의 연주가 평온하게 흘렀다. 대만 전통악기는 국악기보다 더 강한 베이스 음역과 울림이 특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각국의 악기가 함께 연주되니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느낌이었다. 한국적이라거나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신선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동양적 색채가 강했다. 또 음악 진행이 상당히 다이내믹했는데, 이는 지휘를 맡았던 국립대만국악단의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인 치앙 칭포의 지휘를 통해 느껴볼 수 있었다. p(피아노)와 f(포르테) 등 악상의 구분이 명확하고 모든 악기군이 조화롭게 연주되며 자연스러움을 자아냈다. 상생과 화합을 가득 느껴볼 수 있는 아리랑이었다. 두 번째 곡은 공연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강원도’. 관즈와 피리를 위한 이중 협주곡으로, 린신핀의 작품이었다. ‘관즈’는 대만 전통 관악기로, 피리에 기반을 두었지만 전승되는 과정에서 이름과 재질이 달라진 악기다. 피리 같기도, 태평소 같기도 한 이 악기에선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했는데, 피리는 나무와 같은 재질로 자연 친화적이고 따뜻한 소리라면, 관즈는 금관악기 소리에 조금 더 가까웠다. 약간 텁텁하고 우직하면서도 부드럽게 감싸주는 매력적인 음색이었다. 관즈를 연주한 추이저우순은 "피리는 노래하는 듯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반면 관즈는 강한 연주를 선보이는 데 적합하다.여기에 각국의 문화적 배경이 더해지니 두 악기가 다른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는데, 이처럼 관즈와 피리 음색은 상당히 다르면서도 조화로웠다. ‘강원도’는 강원도 민요 ‘한오백년’과 경기민요 ‘도라지’에서 유래된 창작곡이다. 1악장에서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무대를 감쌌다. 가야금을 비롯한 현악기들이 왈츠 느낌의 3박을 깔아주고, 관현악이 차분히 음악을 받쳐줄 때 피리와 관즈는 번갈아 가며 강원도 아리랑 선율을 연주했다. 그 선율과 관현악의 조화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했다. 2악장 ‘도라지’는 관즈의 강한 솔로로 시작했는데, 색소폰의 재즈 솔로처럼 화려하고 멋스러웠다. 간드러지면서도 힘 있는 두 관악기의 서정적이면서도 정겨운 연주가 편안함을 선사해 주었다. 다음으로 연주된 곡은 계성원 작곡의 관악 중주곡 ‘바람의 향연’이었다. 대나무 관에 생기를 불어넣듯 바람을 불어넣어 오묘한 떨림을 만들어 내는 피리잽이들의 악기를 모아 그들만의 멋과 신명, 흥의 어우러짐을 만들었다는 이 곡은 한국의 피리, 생황, 태평소를 비롯하여 대만의 관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악기들의 음색은 생각보다 더 잘 어우러졌고, 악기 군별로 그룹을 나누어 각 악기의 기량을 뽐내거나 강렬한 합주로 매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장구와 대만 타악기의 리듬 꼴에 맞추어 관악기로 함께 리듬을 쪼개고, 늘리며 각 악기의 주법을 잘 표현하였다. 눈과 귀를 뗄 수 없던 이 무대에서는 마치 바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불어오는 듯했다. 네 번째 무대는 최지혜 작곡의 해금과 얼후를 위한 협주곡 ‘이현’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두 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국 전통 악기 해금과 대만 전통악기 얼후의 조화를 그린 곡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동양 음악에서 일반적으로 두루 쓰이는 5음 음계를 활용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해금과 얼후는 음역대가 겹침에도 공명과 울림이 달라 사운드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졌다. 얼후는 해금과 달리 손끝으로 연주하는 운지법을 사용하기에 끌어 올리거나 흘러내리는 표현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도드라져 해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감상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또 해금과 얼후는 공통으로 ‘활’을 이용하는 찰현악기인 만큼 활을 다양하게 활용한 연주를 선보였다. 두 악기가 하나의 악기처럼 활을 사용하다가 변화를 주고, 또다시 합쳐지는 부분은 각 악기의 음색을 맘껏 감상할 수 있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무대는 홍치엔후이 작곡의 ‘Vive les Percussions!’가 장식했다. 대만국립국악단이 한국공연을 위해 위촉한 곡으로 한국의 사물놀이와 대만의 전통 타악기가 어우러지며 다양한 박자와 리드미컬한 연주를 선보였다. 도입부부터 타악기의 강렬한 사운드로 압도당한 이 곡에서 특히 신선했던 것은 사물놀이 악기로 대만의 전통 음악 리듬을 연주하는 걸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물놀이 네 대의 악기로 연주할 땐 전통 장단을 연주하기 마련인데, 관현악 연주인 데다 타국의 악기와 함께하니 더 특별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사물놀이와 대만 타악기는 ‘리듬’으로 얽히며 함께 어우러져 나갔는데, 끊임없이 변화하는 리듬과 다이내믹한 연주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대만의 다양한 타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 곡의 첫 번째 부분은 4/4박자로 대만의 전통 사자 북 음악인 ‘징과 북’ 리듬 스타일이 주로 사용되었다. 익숙지 않은 리듬이었지만, 특수한 그 나라만의 문화가 잔뜩 녹여져 있던 리듬 꼴과 선율 진행을 통해 대만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고, 두 번째 부분에서 사용된 5/8박자는 2+3, 3+2가 번갈아 가며 사용되어 리듬의 다양한 변화구에 홀리는 듯했다. 관현악기는 타악이 주가 되는 만큼 함께 리듬을 다양하게 활용했는데, 헤미올라(2박으로 나뉘어 있던 박자를 3개로 쪼개서 쓰는 음악 기법)가 자주 사용되었고 리듬의 변화와 더불어 동양적이고 독특한 선율이 연주되었다. 3도 화음을 쌓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신비로움을 나타내기도 하고, 변화하는 구간마다 느낌을 다르게 주어 지루할 틈이 없던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리듬은, 한국과 대만 전통 악기의 매력을 물씬 나타내며 관객들의 우렁찬 함성과 박수를 끌어냈다. 이 무대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본 후에도 계속해서 생각난 단어는 ‘화합’이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대만 전통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을뿐더러 과연 우리 전통 음악과 잘 어우러질지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각국의 연주자들은 최고의 전통 음악 조합을 선사해 냈고, 그 음악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한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졌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한국도, 그리고 대만도,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전통 음악에는 공통적인 과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통적 요소의 특성을 살려 이 시대와 미래, 세계인이 공감할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 전해져 온 전통 음악이야말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국립대만국악단과 함께 무대를 만듦으로 인해, 각 연주자는 각자가 경험해 온 음악을 공유하고 상대의 음악을 이해하며 각 나라의 음악에서 더 나아가 동북아권의 음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간 문화 예술 교류가 앞으로도 더 다양하게, 자주 이루어져 전통의 역사가 오래도록 깊게 남아 더욱 발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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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유지숙, “서도소리는 나의 운명”알록달록한 색으로 갈아입고 있는 가을의 한복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유지숙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의 민속악단을 향한 마음, 소리 인생, 작업 방향과 염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어 보았다. 물들어 가는 가을의 풍경과 잘 어울리던 따뜻하고 유쾌한 그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다시 한번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바로 민속악단 정기연주회가 있었어요. "꽃신신고 훨훨”이라는 제목으로 삶과 끝에서 마주하는 평안이라는 주제의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또 그 후 지방공연, 기획공연, 상설공연 등의 모든 공연과 단의 살림을 살피느라 아주 바쁜 나날을 보냈어요. 정-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취임으로 인해 예술적으로든, 삶적으로든 변화된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우선 감독직을 수행하다 보니 민속악단을 살펴야 할 일이 많아 외부 활동을 자제하게 되며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어요. 제자를 양성하는 일, 외부 개인 공연, 심사, 강의 등 여러 스케줄이 엉켜 처음엔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을 정리하며, 오히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모든 것을 다 떠안고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려놓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죠. 그리고 그런 일들은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 이전 생활의 패턴과 달라진 것이 아쉽지는 않으세요? A. 아뇨. 생각을 해보니, 전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끝도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소리를 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거나, 공연하는 등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내는 것이 늘 즐거웠어요. 그렇게 하는 일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일은 점점 늘어났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그게 처음엔 속상하기도 하고 아쉬웠지만, 어느 순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 이 시기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죠. 저는 늘 제게 있어 삶과 행복은 소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겪은 모든 삶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나누어 주고, 소리의 길을 제시하며 안내, 독려해 주는 스승의 역할을 더욱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 개인적으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신가요? 선생님께서 만들어 나가고 싶은, 그려내고 싶은 민속악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A. 우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은 각자의 기량이 굉장히 뛰어난 분들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이분들이, 최고의 악단에서 개인의 기량을 최고로 뽐낼 수 있도록, 자부심을 갖고 음악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 주고 싶어요. 저도 민속악단에서 30여 년을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준다기보다는,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누고, 같이 살피며 함께 동행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힘든 일이 오더라도 늘 편안할 수 있는 단체, 그리고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정- 사실 전 이 질문을 드리며 민속악단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실 거로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단원들을 가장 먼저 마음 깊이 생각하시는 모습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던 제가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의 민속악단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다음으로는 선생님께서 오랜 시간 해 오신 서도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요. 사실 ‘서도소리’ 하면 우리 갈 수 없는 지방의 민요이기에, 무언가 아득하고 애절한 느낌이 들다가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겨움이 듭니다. ‘서도소리’하면 어떤 감정, 느낌이 드시나요? A. 그냥, 제 운명 같아요. 이런 표현이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너무 좋다. 눈물이 나도록 좋다는 표현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서도소리는 제 삶 그 자체에요. 정- 학부 시절, 서도풍류를 듣고 너무 좋아 연주하고 싶어 몇 없는 음원을 모으고, 악보를 직접 채보해 가며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도 음악은 남도나 경기제처럼 익숙하지 않고 공부하기 더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데요. 서도 소리의 길을 오래 걸어오신 선생님도 이런 부분에서 외로우셨으리라 감히 생각해 봅니다. 돌이켜 보았을 때 서도 소리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기악의 경우 자료가 많지 않고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어려운 점이 아무래도 더 많았을 것 같네요.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노래인데, 여긴 그 지역이 아니고, 우리는 배운 대로, 익힌 대로 노래하고 전승해야 하므로 진짜 그 원형을 찾기 위해 더욱 고민해야 합니다. 소리의 경우 어려운 점은, 서도소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소리가 일반적이지 않으며, 어렵다는 거예요. 특히 가장 어려운 게 ‘요성’입니다. 모든 국악의 기본 바탕은 ‘요성’인데, 서도소리의 요성은 잘게 떨면서도 깊어야 해요. 잘못 떨면 발발성 요성이 되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소리의 맛이 이상해지죠. 또 음을 곡선처럼 흘러내리는 특징이 있는데, 배우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걸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특히 고민이 많이 되어요. 그런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구전심수라고 하죠. 배우는 사람이 선생님의 소리와 혼과 마음까지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그 방법으로 소리가 전승되고 있잖아요. 가장 원시적이지만 가장 정확한, 올곧은 교육, 그리고 마음이 있기에 이 소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정- 선생님께서는 제자 양성에도 꾸준히 힘을 쏟고 계시죠.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어떤 소리꾼이 되었으면 하시나요? 또 무얼 가장 강조하시나요? A. 예전에는, 제자들이 많은 게 참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서도소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소리의 본연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인만큼, 진정한 소리꾼이 되기 위해 온 마음으로 노력하는 학생이 있다면,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가르칠 때 기술적으로는, 서도소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떠는 요성, 흘러내리는 곡선의 맛, 시김새 등을 기본적으로 많이 가르치죠. 그리고 그 외에 제가 강조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음악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돼요. 우리는 대중 앞에 서서 노래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인데, 거짓이 몸에 배어있다면, 그 음악이 과연 진실할 수 있을까요? 항상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음악을 대하고 삶을 대하길 바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 선생님께서는 맥이 끊어졌던 토속민요를 발굴하여 다듬고, 전승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작업을 계속하고 계시는지, 또한 앞으로도 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A. 그럼요. 토속민요는 보물이에요. 토속민요 작업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모르던 소리를 들으면 참 신기하고, 좋고, 모르던 맛을 배우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하죠. 토속민요는 같은 노래인데도 여러 형태로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중 가장 잘 부르신 분의 음악을 기준으로 하여 소리를 다듬고,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하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정형화되어 사람들에게 불리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소리를 오래 하다 보니, 악보만 보아도 꺾거나 흘리는 구간이 어느 순간 바로 알아차려질 때가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토속민요 작업을 했을 때 서도소리가 딱 만들어지면, 마치 죽어있는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꽃을 피운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토속민요 작업은 어렵지만, 그만큼 참 가치 있고 귀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연주와 작곡을 통해 토속민요 작업을 늘 해 보고 싶었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의 길을 잘 알지 못해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데요, 이렇게 소리꾼들이 소리의 길과 결을 찾아내고, 음악가들이 힘을 모아 토속민요 발전을 도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계획 중이신 개인 발표나 음반 계획이 따로 있으신가요? A. 네, 음반의 경우 이달 말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또 앞서 이야기했지만, 기존에 불리던 소리뿐 아닌 안 불리던 소리, 토속민요 작업을 계속 해 나갈 생각이에요. 이젠 제자들도 많이 이어받아서 해 주고 있어 참 기쁩니다. 그리고 무대에서 제 소리만 하기보다는, 자라나는 소리꾼들이 장을 펼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내년에는 ‘서도예인전’이라 하여 소리꾼들을 선발하고,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정- 곧 있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연주회에 관해 이야기 해주세요. A. 이번에 있을 공연은 ‘생생풍류’라는 이름의 기획공연이에요. 100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어렵고, 근본이 되는 민속악 ‘대풍류’, ‘시나위’를 중심으로 구성하여 깊게 감상해 볼 수 있도록 무대를 기획해 보았습니다. 추가로 경기소리풍류, 서도소리풍류도 함께 연주하기에 다양한 우리의 민속음악을 들어볼 좋은 기회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단원들이 아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정- 선생님은 어떤 소리꾼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늘 마음으로 염원해요. 소리를 참 잘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요. 사람들이 평가하는 제가 아닌, 저 자신이 평가하는 제가요. 내가 내 소리에 취하고, 자유자재로 소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실 그 생각도 해요. 내가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될 땐, 목이 안 나오겠구나. 그래도, 소리가 잘 안 나오더라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소리꾼. 그런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서도소리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던 ‘운명’이라는 단어가 인터뷰 내내 마음을 휘감고 떠다녔다. 어쩜 이렇게 소리를 사랑하실 수 있을까. 계절을 맘껏 즐기고, 행복한 삶을 살며 가장 사랑하는 소리를 꾸준히 해 나가고 싶다는, 모든 일에 평안히 마음을 쏟고 싶다는 유지숙 선생님. 따뜻하게 채워진 그 마음과 열정은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오래도록 아름다운 소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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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 다시 피리를 마주하다: 박범훈 명인갑작스러운 찬 바람으로 계절이 바뀜을 실감하게 되던 11월의 어느 날, 곧 있을 ‘박범훈류 피리산조 연주회: 회향(回向)’ 연주회 준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계신, 국악계의 원로 박범훈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만났다. 120명의 연주자와 함께 할 이번 공연부터, 피리산조, 배움과 가르침, 전통과 창작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어보았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A. 국악계에 남은 생을 기여하고자 노력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품도 열심히 쓰고, 지휘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요즘은 40여 년 전에 스승(지영희)의 가락을 바탕으로 만들었던 피리산조를 제자들과 함께 연주하며 전승, 보존하는 데에 힘쓰고 기여하고자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나에게 허락되는 데까지, 이렇게 계속 국악계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며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선생님께선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석좌교수를 맡고 계시죠.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2023년 서울캠퍼스에 개설되었고, 이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신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학과 운영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A. 예. 입학 정원은 15명이었지만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제가 뭘 했다기보다는, 서울의 메이저 대학 안에 국악과를 설립해 주었다는 점에서 동국대 측에 참 고맙죠. 아직 설립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학부 과정 외에도 대학원 석사, 박사, 석박 통합과정까지 모두 만들어져 있어 한국음악과의 앞날이 더욱 기대됩니다. 특히 문화재급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직접 학생들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Q.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불교음악과 맥을 같이 하며 포교를 위하여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 국악과와 비교했을 때 수업 과정 등에 차이가 있나요? A. 큰 차이라기보다는,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는 맞춤형 교육을 한다는 데에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공수업에서 학년별로 배워야 할 커리큘럼만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개개인 학생의 역량에 맞추어 가르칠 것을 정한다는 거죠.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상의하고, 흥미나 보완점 등을 찾아 그에 맞춘 전공 수업을 하는 겁니다. 또 가무악을 함께 가르치며 지휘, 무용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합니다. 그러한 맞춤 수업이 이 시대의 전통음악을 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국악계가 더욱 발전하는 큰 초석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맞춤형 수업이라니, 개개인의 역량이 더욱 늘 수밖에 없는 좋은 수업이네요. 학생들의 미래가 함께 기대됩니다. 요즈음 준비 중이신 11월 25일 공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120명이 연주하는 피리의 향연이라는 부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번 공연은 어떤 공연인가요? A.이번 공연은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대학교수부터 연주자, 학생, 취미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제게도 참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네요.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연주하는 문중들이 한데 마음을 모아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죠. 떼 피리로 연주하는 겁니다. 프로그램 순서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대의 첫 막은 이 피리산조를 잉태한, 모태가 되는 경기시나위를 연주합니다. 특히 지영희 선생님의 첫 제자인 최경만 선생이 연주함으로 더욱 의미가 있죠. 그 외에도 제가 산조를 만들 때 많이 참고했던 지영희 선생님의 해금산조 연주도 있고, 박범훈류 피리산조에 관해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 중 토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Q. 공연 기획부터 함께함의 목적에 이르기까지 참 뜻깊은 무대가 아닐 수 없네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께서 창시하신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지영희 경기시나위를 모체로 조와 다양한 전조 등을 활용하여 창시한 산조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영희 선생님의 경기시나위와는 차별을 둔 부분, 즉 작곡가, 창시자로서 선생님만의 특수한 주안점을 두고 만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산조를 만든다는 건 산조의 틀, 짜는 기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죠. 또 악기의 특징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피리산조의 경우 피리로 불었을 때 특징이 드러나는 산조여야 합니다. 그 가락을 대금이 불어서 더 좋으면 과연 피리산조로써의 매력이 있을까요? 산조는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자가 만들어야만 값어치가 있습니다. 전 산조를 만들며 피리의 특수 주법이나 특징, 그리고 독창성을 다르게 하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Q. 박범훈류 피리산조에는 경토리가 굉장히 많이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잖아요. 경토리를 산조에 녹여낼 때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셨나요? A. 보통 산조에는 전라도의 남도제가 많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지영희류 해금산조, 지영희제 경기시나위에는 경기제. 즉 경토리의 특징이 특히 강합니다. 경기 시나위에는 경토리와 계면조의 특징이 모두 녹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꺾는 음도 남도제와는 조금 다르고, 계면조라고 해도 너무 심각하거나 애절하지만도 않죠. 또 경토리와 계면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피리의 특징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속음악과의 관계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무속음악에서 피리는 반주에 많이 쓰였습니다. 무녀가 노래할 때 조(key)가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조에 맞추어 반주해야 하기에 관의 변화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제에서 주법이 굉장히 많이 발전했어요. 목튀김, 혀치기 등 특수주법이 아주 다양해졌죠. 피리만의 특징이 생긴 겁니다. 저는 그런 경기제의 특징, 피리의 주법을 제 산조에 다양하게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들어보면 조성의 변화가 많고, 관을 올려잡고 내려 잡으며 주법이 많이 변화하는, 경토리가 도드라지죠. Q. 요즈음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유파를 만들고 산조를 기본으로 삼아 음악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조를 어떻게 보시나요? 또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A. 젊은 연주자들이 산조에 관심을 두고 만들어 나가는 현상이 참 좋네요. 유파를 짜서 남기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산조의 특징을 확실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악기를 오랫동안 연주하고, 악기의 특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게 중요하죠. 그 악기의 도사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산조의 틀. 즉, 장단, 조성, 시김새 등의 조건을 확실하게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저 즉흥으로 짜서 연주하고 남기기엔 생명력이 없어요. 그렇게 꾸준히 연구하고, 연주하고, 기본적인 특징을 확실히 살린 후에 본인의 독창성이 입혀지면, 오래도록 남는, 인정받는 산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Q. 특히 선생님께선 수많은 창작곡을 오랜 세월 만들어 오신 작곡계의 원로시기에 더더욱 여쭙고 싶던 질문입니다. 전통이든 창작 음악이든, 창작하는 데 있어 어떤 것을 기본적으로 꼭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창작이라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게 아니에요.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거지. 음악에 들어있는 게 하나도 없으면 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건 소리로써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항상 작곡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소리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라.’ 그러려면 인풋(input)이 정말 중요합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좋은 곡이 나오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죠. 다양한 음악적 소양과 경험, 고민, 습득이 필요해요. 그렇게 내게 다양한 것들이 축적되면, 음악은 그때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예요. 내가 만들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하게 잡고 음악을 만들고 나면, 결국 생명력을 가진 곡이 되어 오래도록 연주될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질문드릴게요. 저도 그렇지만, 다양한 음악이 유입되고 수많은 장르가 뒤섞이며 어디서든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배울 수 있는 시대기에 더욱 이 시대의 전통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악인들이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할 마음가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전통이든, 현대음악이든 간에, 예술을 전공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에요. 미(美)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저는 어느 자리에 있든 내 전공을, 음악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왜? 좋으니까요. 억지로 하는 사람들은 도중에 그만두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음악을 하며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그 고비를 끝까지 넘습니다. 내가 좋아서 한다는 그 마음가짐, 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놓지 않고 전통을 해 나가길 바랍니다. 이 시대의 존경받을 원로로 통하는 박범훈 석좌교수가 전통 예술계에 오랜 시간 이바지하며 높은 평판을 이루어 온 데에는, 음악을, 창작을 전심으로 사랑해 온 꾸준한 세월이 있었다. 11월 25일 펼쳐질 그의 공연 제목은 ‘회향’. 긴 세월 쌓아온 음악을 돌아보며, 그 음악의 뿌리, 근원으로 돌아가 피리를 오롯이 마주한다는 의미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어온, 그리고 미래를 이을 박범훈류 피리 산조가 들려 줄 우리 음악에 대한 강인함, 사랑, 그리고 굳건함이 벌써 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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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요?”11월의 초입, 점점 깊어져 가는 가을의 주말, 금나래아트홀에서 ‘고고와 도도’ 공연이 펼쳐졌다. 부조리극의 대명사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2023년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 선정작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며 예술단체로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상자루’(상자와 자루)의 신작이다. 발레, 음악극, 오페라, 총체극 등을 그만의 환상극으로 재탄생시키는 임선경 연출과 쉬운 언어로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조정일 작가가 함께 제작한 이 작품은, ‘새롭게 보고, 듣고, 느끼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주제로 우리의 삶과 그 이면의 모든 것을 다시금 조망해 볼 색다른 기회를 전해준다고 하여 더욱 기대를 모았다. 로비에는 ‘고고와 도도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나요?’라는 문구와 함께 각자가 기다리는 무언가를 적을 수 있게끔 포스트잇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저마다 기다리는 것에 대해 소중하게 적어 내려갔고, 과연 고고와 도도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일지, 궁금증을 안고 공연을 관람하였다. 무대 중앙엔 상자루가 연주할 악기들이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었다. 장구와 아쟁, 거문고와 건반, 기타 등 공연에서 사용될 다양한 악기들이 푸른 조명을 받으며 관객들을 반겼다. 이윽고 시작된 무대.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영어로 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문장은 늘어나고 줄어드는 변화를 거듭하며 하나의 사운드가 되었고, 그 샘플링 음원을 토대로 장구의 장단이, 그리고 아쟁과 거문고의 빠른 패시지가 얹혀 연주되었다. 그리고 상자루의 매력이 특히 도드라지는 강렬한 주제 음악과 함께 두 명의 주연 배우가 등장했다. 중절모를 쓰고 정장을 입은 배우들은 각각 무대의 좌측과 우측에 서서 급박하게 뛰는 동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명이 멈추면 한 명이 달리고, 그 한 명이 멈추면 또 다른 한 명이 달렸다.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달리던 그들은, 음악이 끝나자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고고와 도도였다. 고고와 도도는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는 ‘고도’를 함께 기다린다. 이전부터 그들은 쭉 고도를 기다려 왔다.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무얼 하지?” 두 사람은 재치 있고 유쾌하게 극을 끌어나갔다. 배고프다며 식사하자는 고고의 눈을 가리고, 도도는 당근을 주며 ‘당근을 곁들인 파스타’라든지 ‘당근을 곁들인’ 어떤 고급 음식을 먹여주는 양 행동했다. 해학적으로 표현된 장면이지만, 이 장면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착각과 희망을 넘겨볼 수 있었다. 분명 당근임이 분명한데, 당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 당연히 당근이 아닐 거라 믿고 희망을 품는 것. 그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가 바로 당근 같은 존재임을 암시하는 장면이었고, 이는 앞으로의 극이 어떻게 흘러갈지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고고와 도도는 고도를 기다렸다. 고고와 도도의 연기와 더불어 극과 잘 어울리는 상자루의 음악이 중간중간 장면과 걸맞게 흘러나왔다. 고도를 영원히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추측되는, ‘Forever’라는 대사가 끝나자마자 등장한 음악은 마치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빛나는 음악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고,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군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듯, 밝은 척 연기하며 현실에서 도피하지만, 실상은 불안에 휩싸여 있는 느낌. 밝음의 모순이었다. 고고는 하고 싶은 게 많다. 맛있는 걸 먹고 싶고, 좋은 집에 살며 편하게 자고도 싶다. 하지만 나무 밑에서 고도를 기다려야 하기에 그 모든 것은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 고고는 고도를 왜 기다려야 하는지 계속해서 의심을 품는다. 하지만 도도는 그렇지 않다. 의심을 품는 고고에게 화를 내기도, 그를 달래기도 하며 ‘고도를 기다려야지.’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들은 나무 앞에서 고도를 기다리는데, 이 나무가 고도가 오기로 한 나무 앞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저 맞을 거라 확신하며, 묵묵히 나무 앞을 함께 지켜낸다. 그러다 고고와 도도에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도가 오늘이 아닌 내일 온다고 전하러 온 목소리다. 특이했던 건, 이 목소리는 밖에서 들린 것이 아닌, 고고와 도도의 목소리로 전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고도가 올지 오지 않을지 결정하고 믿는 것은 고고와 도도 본인들이었고, 고도는 그들이 만들어 낸 존재이자 희망하는 그 무언가였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들은 후, 고고와 도도의 마음을 대변하듯 음악이 흘러나왔다. 피치카토를 활용한 아쟁의 매력적인 선율이 루프스테이션을 통해 쌓이고, 점점 발전됐다. 고고와 도도의 아픔, 슬픔, 간절함과 그 모든 걸 덤덤하게 눌러내는 감정이 음악에 온전히 묻어났다. 50년 동안이나 함께 했다는 고고와 도도는, 고도를 기다리다 지쳐 ‘이제 그만 가자’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면서도 나무 밑을 떠나지 못한다. 특히 도도는 고도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 고고에게 ‘고도를 기다려야지.’하고 달래듯 말한다. 극을 보다 보니, 고고와 도도가 실은 같은 인물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는 고도를 기다리는 걸 그만두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심’이고, 도도는 어떻게든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인내’, 그리고 ‘신념’이었던 것이다. 의심과 인내와 신념의 모순이 공존하는 한 사람은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상자루의 음악은 혼란스러운 고고와 도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약음기를 끼고 연주하는 sordino 주법처럼, 거문고는 한 손으로는 현을 막고 한 손으로는 술대로 강하게 장단의 리듬을 연주하며 답답하면서도 강렬한 연주를 선보였다. 아쟁 또한 계면조 등 한국적 어법을 활용하면서도 그 표현에만 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대중적인 연주를 보여주었다. 고고가 ‘우리가 고도에게 꽁꽁 묶여있는 게 아닐까?’라고 한 장면에서는, 아쟁의 기묘하고 음산하면서도 강한 연주가 다양한 음정을 넘나들고 선이 농현이 되며 고음과 저음이 공존하는 음악을 연출해 냈다. 고도에게 묶여있는 고고와 도도를 그 어떤 것보다 잘 표현한, 그리고 다양하게 회오리치는 생각을 음악을 통해 정리해 준, 극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연주였다. 고도를 기다리며 점점 초조해지는 고고와 도도는 괴로움과 노여움이 폭발하여 앞에 서 있던 나무를 부러뜨린다. 수많은 풍선을 들고나와 행복하게 바라보다가 모두 짓밟아 터뜨리고, 소품을 내던지며 화를 분출한다. 이때 미니멀한 전자 사운드의 리프가 반복되고, 장구와 아쟁, 거문고가 저음 악기의 매력을 발산하며 강하게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고고와 도도가 화를 내는 동안, 연주자들은 한 명씩 각자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 앞에 ‘거꾸로’ 앉아 ‘거꾸로’ 연주를 시작했다. 반대되고 모순되는 마음, 그리고 뒤집혀 버린 것 같은 세상을 거꾸로 연주하는 연출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이 장면을 보며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2004)’이 떠올랐다. 반복적인 전자 사운드, 그리고 비디오 아트 예술가였던 백남준의 작품처럼 홀리듯 빨려 들어가는 현란한 영상 디자인이 특히 그 영화를 더욱 떠올리게 했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소중했던 추억을 붙잡으려 애쓰며 고군분투하던 두 주인공이 그려지며, 극을 통한 영화적 연출이 색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연기와 음악, 조명, 영상 모든 것이 하나로 합치된, 온전한 종합예술 무대였다. 그 난리를 치고도, 고고와 도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고도를 기다려야지’라는 말과 함께 다시 고도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통 ‘비나리’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과 함께 무대는 끝이 났다. 그들을 그렇게 기다리게 한 고도가 무엇인지 관객들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이 작품의 원작인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 또한, 본인도 고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개개인의 사람이 다르듯, 개개인의 고도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무대를 보는 내내 내가 기다리고, 만나길 희망하는 고도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하며 의심했다는 것이다. 아마 많은 관객들도 고민하고, 생각했으리라. 놓고 싶으면서도 놓지 못하는 희망, 그리고 신념이라 불리는 무언가. 우리는 모두 우리의 고도를 기다리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욘 포세(Jon Fosse)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닌, 수수께끼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수께끼 같은 이 길에서 어떤 고도를 어떻게 마주하며,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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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잇는 오늘의 제례악, 퓨전국악극 ‘러닝타임’ 리뷰"당신 인생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10월 27일 저녁, 김희수아트센터 SPACE1에서 퓨전국악극 '러닝타임'이 무대에 올랐다. 유튜브 구독자 약 57만 명을 보유한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그룹 '레이어스 클래식'의 피아니스트를 겸한 작곡가 강대명의 음악극으로 더욱 기대를 모은 이 작품은 공연이나 영화의 상영 길이를 뜻하는 ‘러닝타임’이라는 용어를 인생의 길이에 비유한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의문의 카운트다운’을 둘러싼 긴박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며, 국악을 중심으로 현대 발레 무용수들의 군무와 연극적 요소들이 결합하였다. 본 공연은 수림문화재단의 창작지원 사업인 ‘수림아트랩 신작지원 2023’ 선정작으로, 기존 작업에서 탈피하거나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을 격려하기 위한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공연 시간은 19시 30분이었지만, 특이하게도 하우스 오픈 시간이 늦어져 관객들은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19시 25분이 되자, 저 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었기에 피리 소리는 공연장을 가득 메웠고, 맑고 아름다운 울림이 마음을 휘감았다. 슬픈 듯하면서도 자유로운 피리의 선율은 점점 가까워졌다. 피리 연주자는 피리를 불며 천천히 무대 입구로 걸어왔고, 그 뒤로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걷는 건지 달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마치 슬로우 모션 같은 동작으로 따랐다. 이들은 모여있는 관객들을 뚫고 천천히 무대로 들어갔고, 관객들은 그들을 따라 입장했다. 무대에는 다양한 음높이의 종소리가 자유자재의 리듬, 음정으로 연주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소리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대를 기획한 김서현 기획자는 2022 이태원 참사를 통해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죽음을 마주한 이후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작품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공연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이틀 앞두고 올려졌기에, 더욱 착잡하면서도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품고 무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무대에는 악사들이 둥그렇게 앉아있었고, 곧이어 강대명이 등장하여 피아노 앞에 앉아 ‘작은 제례악’을 연주함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단조로 이루어진 감미로운 리프 선율이 반복되며 점점 발전되어 나갔다. 선율은 촘촘해지고, 리듬은 빨라지다가 결국 여유를 찾고 처음의 단순했던 선율만이 남아 조용히 공간을 울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됐다. 이 국악극은 음악 반주와 무용수들의 춤, 그리고 몇몇 장면에서의 내레이션과 노래로 이루어졌을 뿐 따로 배우가 나와 연기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프로그램 북을 통해 시놉시스를 알 수 있었기에,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흘러가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1. 12시간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인생의 남은 시간이 12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는 한 사람. 죽음을 맞이하게 될 시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혼란스러움은 음악에서 잘 드러났다. 반복적으로 연주된 피아노 선율의 이국적이며 몽환적인 음계는 마치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의 그노시엔느(Gnossiennes) 작품을 연상시킬 정도로 우울하면서도 오묘했다. 피아노 선율 위에 국악기들이 하나둘 자유롭게 쌓이기 시작하고, 무용수들은 로비 퍼포먼스 때처럼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동작을 보여주며 죽음을 앞둔 혼란스러운 시간을 예술적으로 표현하였다. #2. 8시간 – 방랑자 무기력하고 공포가 커지는 일상, 정처 없이 방랑하며 희망과 기쁨이 희미해지고 절망으로 번지기 시작하는 시간. 피아노와 타악기는 장단을 통해 이러한 절망감을 잘 드러냈다. 일정한 3+2+2+2 소박으로 연주하다가도 어느 순간 리듬 하나를 튼다거나 첫 박을 바꾸어 버리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자유롭게 보여주며 혼란스럽고 두려운 감정을 표현하였다. 계속해서 바뀌는 리듬 형태는 통일성이 있다가도 사라졌고, 이는 마치 정리되지 않는 마음과는 다르게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걸 나타내는 것 같았다. #3. 4시간 – 피난처 불안함과 두려움이 지나고 도착한 피난처에서 어두운 현실을 잊고 환상에 빠지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게 되는 장면. 꿈결 같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던 이 장면에서는 사랑스러운 사극풍의 곡이 연주되었다. 피리와 해금, 소금이 마치 봄을 연상시키는 왈츠풍의 피아노 연주 위에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고, 남녀 무용수가 나와 서로 사랑하며 춤을 추었다.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 따뜻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춤은 역설적으로 슬픔을 자아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립고 아릿한 향수가 바로 이런 것일까?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 #4. 2시간 - 흘러간 시간으로 연결된 음악에서는 지난날을 추억하고 인생의 덧없는 허무함을 노래했다. ‘허무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가사로 불린 인생무상의 그 노래를 통해, 무대는 아름다우면서도 공허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5. 1시간 – 행복의 상대성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 마음이 급해지고 행동은 서두르게 된다. 마지막까지 행복을 찾아 나서는 장면, 급박한 피아노의 선율과 세 무용수의 힘 있는 몸짓이 합쳐지고, 그 위에 내레이션이 입혀졌다. 마치 잠언처럼 지혜로운 자와 우둔한 자를 비교하며 삶을 이야기하는 그 내레이션은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며 마무리되었다. 삶은 결국 죽음을 향한 길을 걷는 일이고, 인생은 덧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행복한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바로 상대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특히 이 장면의 음악이 참 인상적이었다. 피아노의 반복적인 리프 선율에 얹어지는 국악기는, 대중적이면서도 악기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고유의 시김새나 표현을 다채롭게 연주함으로써 한국적인 이 시대의 창작 음악을 멋지게 연출해 냈다. 늘 죽음을, 슬픔을 생각하며 동시에 삶과 살아있는 기쁨을 누리는 것. 한없이 질러내는 악기들의 소리와 간절함이 담긴 구음이 이러한 삶을 온전히 대변해 냈다. #6. 30분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인생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때’에 대한 장면은 생황과 대금, 장구, 그리고 가야금의 아름다운 연주로 시작되었다. 전통 음악 ‘타령’ 선율을 연주하며 삶을 노래했는데, 해학적이면서도 유흥적이고 애상적인 내용으로 표상되는 타령이 삶의 때와 어우러지며 여유롭고 흥청대는 장단으로 새롭게 탄생한 연출이 흥미로웠다. 아련하면서도 덤덤한, 죽음의 ‘때’를 맞이하기 위한 여리면서도 단단한 마음이 음악으로 전해지며,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순간, 모든 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7. 5분 – 카운트다운 주인공은 절망을 희망으로, 불안을 평안으로 생각하며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있다. 피아노는 한 음을 반복해서 강하게 치고, 국악기는 다양한 주법을 활용한 연주로 두렵고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그 음악은 담대한 눈빛과 간절한 몸짓을 표현하는 무용수 다섯 명의 춤과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음악, 무용, 그리고 인생을 담은 노래가 함께 무대를 끌어 나가며 처절하게 하나의 삶을 그려냈고,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있는 것은 이미 있었고, 있을 것도 이미 있었다.’는 노래의 마지막 가사와 함께, 무용수 네 명이 한 명을 높이 들어 땅에 내동댕이치며 끝이 났다. 죽음이 다가왔다.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 펼쳐지는 파노라마,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 프롤로그에 나왔던 이 공연의 테마 음악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연주되었던 모든 음악이 짧게 축약되어 하나로 연주되었다. 인생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걸 지금까지 연주했던 곡을 압축하여 연주하는 것으로 신선하게 연출한 것이다.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음악. 숨죽여 무대를 관람하던 관객들의 큰 박수로 무대는 막을 내렸다. 악기 연주와 노래, 내레이션, 무용이 하나 되어 악·가·무 일체 형태로 펼쳐진 이 무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제례악이었다고 한다. 제례악은 사람과 사람(조상)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음악이다. 세상을 먼저 살았던 이와 현재를 살고 있는 이, 나중을 살아갈 이가 모두 ‘죽음’과 ‘삶’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은 이 공연에서는 인생에 대해,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져 주었다. 젊음도, 청춘도 모두 허무일 뿐이지만 행복하고 또 행복한 날이 있기에 삶은 살아갈 가치가 충분하다. 후회 없이 빛날 마지막을 위하여 나아갈 우리의 러닝 타임은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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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얼굴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몸 선을 드러내는 새빨간 의상을 입은 우희는 경극 '패왕별희'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동명 영화에서 장궈룽(장국영)이 극 중 경극 배우로 여장했던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이 역을 창극 무대에서 소리꾼 김준수(32)가 맡는다. 다음 달 11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창극 '패왕별희'는 국립창극단의 가장 파격적인 레퍼토리다. 2019년 초연과 재연 이후 4년 만에 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규모를 키워 올리는 공연이다. 김준수는 초연과 재연 때도 우희 역을 맡아 중국 경극의 전설적 배우 메이란팡을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 25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준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더더더더' 노력했다"고 힘줘 말했다. 배역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창극 무대에 서는 소리꾼의 자질이지만, 남자인 그가 여자 캐릭터 우희를 연기하는 데는 '더'가 4번은 들어가야 할 만큼 노력이 필요했다. 캐릭터의 성별뿐만 아니라 손끝으로 세상을 표현한다는 경극의 몸짓을 익히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김준수는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유연함이 필요한 역이라 연습실에서도 계속 치마를 입고 있다"며 "손동작이나 몸동작을 여성적인 선을 살리면서 작게 해야 하고, 보폭을 아주 짧게 해서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요란하면 안 되고, 우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평소 걸음걸이가 빠르다. 사뿐사뿐 걷는다고 걷는데도 남성적인 면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머쓱해했다. 김준수가 여성 캐릭터를 맡은 건 '패왕별희'가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초연한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 역을 맡았다. 다만 헬레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캐릭터였다. 머리 스타일도 가발 없이 짧은 상태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반면 우희는 항우와 슬프고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여성이다. 머리카락도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오고, 진한 화장은 물론 긴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도 칠한다. 의상에서도 호리호리한 몸 선을 한껏 드러낸다. 김준수는 "사실 초연 때는 빨간 매니큐어나 긴 머리, 치마 모든 게 다 어색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지금은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에 얼굴에 뭐라도 하나 더 바를 수 있을지, 네일아트도 뭘 더 해야 할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살도 2㎏ 정도 뺐어요. 의상이 타이트하거든요. 재연 때는 의상을 좀 더 넉넉하게 만들어주셨는데, 핏(모양새)이 타이트할 때보다 안 예쁘니까 도저히 못 입겠는 거예요. 옷 자체에 우희의 예쁜 선이 들어가 있는데, 그 디자인을 포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번에는 핏도 살리면서 팔을 들거나 움직일 때 안 불편할 정도로 옷을 고쳤어요." 우희는 '패왕별희'의 명장면인 '쌍검무'도 소화해야 한다. 양손에 긴 칼을 들고 추는 고난도 검무다. 이 춤의 백미는 허리를 뒤로 90도 가까이 젖히는 장면이다. 김준수는 '쌍검무'를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자 "너무 혹독해요"라며 웃었다. 그는 "허리 꺾는 신이 딱 절정이다. 우희가 항우의 이별을 암시하는 이별의 춤이라 잘 마무리돼야 관객들도 함께 슬픈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허리를 꺾을 때 검이 땅에 닿는 순간까지 꺾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초연 때는 춤추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었다"며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호흡을 알고 있어서, 호흡을 분배할 줄 알게 되니 여유가 좀 생겼다"고 덧붙였다. 창극에는 없는 경극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판소리에도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인 '발림'이 있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마임처럼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차이가 있다. 김준수는 "소리꾼의 발림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정형화돼 있다"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손동작으로 표현한다. '대왕님, 근심을 달래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이 대사도 '근심', '달래다', '어떤가' 하나하나 표현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창극 '패왕별희'가 경극의 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인 부분은 경극의 요소를 살리되, 대사나 음악 등 청각적인 측면은 창극의 매력을 부각했다. 김준수는 "경극의 창법이나 발성은 쓰지 않고, 소리꾼에게 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며 "대신 우희는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제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보통 소리꾼은 단전에서 뽑아 올리는 힘찬 소리를 내잖아요. 슬프면 '아이고∼'라고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희는 전쟁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니, 그 절절한 마음을 누르면서 노래하려고 해요. 절제된 소리를 경극 특유의 동작들과 함께 보시면 새로운 맛이 있으실 거예요." 김준수는 창극뿐 아니라 TV 예능, 뮤지컬 등에서도 활약하며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지만, 자신의 뿌리는 '소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김준수는 방학 때면 스승 박금희 명창을 따라 '산공부'를 다녔다고 했다. 박 명창의 또 다른 문하생 송가인도 함께 산공부를 다니던 멤버였다. 고등학생 때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소리를 안 하겠다며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소리'라는 생각에 몇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이후 2013년 국립창극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고, 2018년에는 3시간이 넘는 '수궁가' 완창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에도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소리 공부를 해왔다. "몇 달 전에 10년 만에 춘향가 공부를 끝냈어요. 국립국악원 유미리 선생님께 배운 6시간 분량이에요. 공부를 게을리해서 이제야 끝냈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끝까지 소리를 놓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소리는 제 근본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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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음악, 巨木’ 오마주! 당연히 感動도오늘의 민속음악 전형성(종목의 세련미)이 형성된 1960~70년대, 큰 그림자를 드리운 이들. 이름하여 巨木! 산조의 서용석, 민요의 안향련, 남해성, 오정숙, 춤 임이조, 호남여성농악이다. 28일 이들의 예술혼을 계승하여 승화시킨 무대가 있었다. 2023 국립민속국악원(원장 김중현) 정기공연 ‘민속음악, 巨木’은 이 명인들의 오마주(Hommage)다. 분위기도 스타일도, 당연히 감동도! 예술감독은 조용안(국악연주단 예술감독), 산조합주 구성은 심상남(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초대단원), 민요연곡 구성: 방수미(창극단 악장), 살풀이 구성은 : 진유림(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살풀이 이수자),연희 구성은 유순자(전라남도무형문화재 호남여성농악 포장걸립 보유자),무대디자인은 박은혜(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무대디자인 강의교수)가 맡았다. ‘거목’들에 대한 헌사(獻辭)다. "민속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서용석, 여류 명창의 시대를 연 안향령 남해성 오정숙 명창, 그리고 선운이라 불리는 임이조 명무의 살풀이, 유랑의 꽃 여성농악까지, 작고한 민속음악의 거목들과 레파토리를 추억하며 오늘의 민속음악으로 다시 만나는 무한한 감동의 무대 한민족 '민속악'의 진수와 신명을 세계로~ ” 산조합주 무대는 1970년대 후반 서용석의 대금과 윤윤석의 아쟁 합주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무대였다. 산조의 특성상 유파별로 다양하여 하나의 산조를 위주로 선율의 짜나가는 형태라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이 번 무대는 심상남 선생의 구성으로 서용석류의 대금 아쟁 피리 해금산조로 빚은 다성(多聲)의 합주 진가를 보여주었다. "불리는 이름이 많은 아이는 사랑 받는 아이다.”란 말대로 ‘살품이’는 이름이 매우 많다. 더욱이 무속적 연행에서 ‘내면의 춤’이라는 무대예술로 선 것도 사랑받으며 온 결과이다. 임이조((林珥調, 1950~ 2013)선생은 살풀이 보유자. 2013년 11월 30일 세상을 뜨셨으니 딱히 금년 이즈음이 10주기이다. 오마주의 참뜻이 반영된 무대이다. 이번 ‘살풀이’ 무대는 가히 ‘살풀이 진유림’이란 성가로 활동하는 진유림 선생이 구성하고 함께함으로서 백색 명주의 신성함과 합무의 유려함을 수놓았다. 6인에 의한 여성 민요연곡 무대는 60년대 흑백시대 TV무대로 이끌었다. 한복의 색감과 헤어스타일이 특히 그랬다. 한 때 김소희 선생 제자들 중 두각이었던 안향련의 매력을 오늘의 무대로 재현하였다. 여기에 남해성과 오정숙의 남도적 성음을 더해 세련된 민요 연곡을 선사했다. 마치 60, 70년대 음반 자켓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김치켓’으로 상징되는 서구풍 가요시대의 시간여행을 하게 했다. 그럼에도 힘찬 민속악기 반주가 단순한 유행 재현이거나 유행(통속)의 복고가 아닌, 이 시대 무대예술로 보여준 점이 여운을 크게 하였다. 호남여성농악 무대는 호남좌도풍물의 독특하고 여성적인 풍미를 보여주었다. 오늘의 ‘여성농악대’가 갖고 온 나름의 서사는 ‘상쇠 유순자’의 것이지만, 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부포놀이는 대가다운 진가를 보여준 무대였다. 객석의 추임새로 마무리되었다. 기자의 오랜만의 남원 취재는 한마디로 "남원 답고 국립민속국악원다운 무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