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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거목' 박헌봉 기념 '기산음악박물관' 11일 개관우리나라 국악 이론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기산 박헌봉 선생(1906∼1977)을 기리는 박물관이 문을 연다. 9일 전통음악계에 따르면 경기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계곡 인근에 위치한 '기산음악박물관(기산 M&B MUSEUM)'이 11일 개관한다. 기산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에 전국을 돌며 명창의 민요와 판소리를 녹음하고 채보한 인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국악예술학교와 국악관현악단(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설립을 주도하며 한국 전통음악 계승과 발전에 기여했다. 또 창악 기원과 유래, 음조 등을 비롯한 창악 이론이 모두 담아 '국악대사전'으로 불리는 '창악대강'을 집필했다. 이어 한국음악을 집대성한 '국악대관'을 집필하던 중 탈고하지 못하고 1977년 병환으로 별세했다. 3층으로 지어진 박물관에는 창랑 장택상 선생 등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그림이 전시된다. 조선 후기 명창들의 육성 판소리를 녹음한 릴테이프 원본도 최초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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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국악관 설립 계획서(國樂館 設立 計劃書)1957년 국악박물관 건립을 계회한 기획서이다. 주체는 국악예술학교 박헌봉 교장이다. 매우 이른 시기 국악박물관 설립을 계획한 것은 당시 국악 진흥과 발전을 위한 의욕의 증거이다. 결국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국악의 대계를 설계한 이는 박헌봉 교장이 유일했다는 것이다. 모두 급급하고 앞가림에 내일을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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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설장고 명인 김병섭 선생 사진 및 기사자료김병섭 선생은 5, 60년대 설장고로 활동한 명인이다. 특히 70년대 초 까지 대학가와 외국인에게 풍물을 전수하고 풍물패를 육성한 인물이다. 국악신문 창간자 김호규 사장의 부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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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 집, '제4회 곽동현의 서도소리' 발표회6일 오후 7시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곽동현(1981년생,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 한양대 겸임교수)이 '제4회 곽동현의 서도소리'를 발표한다. '지금'이라는 주제로 80분 동안 발표회를 개최한다. 전석초대로 무료공연이다. 전국을 대표하는 젊은 남창 소리꾼을 들자면 '경기민요'에 이희문을 들수 있고, '경서도소리' 부문에서 곽동현은 독보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작년 서도소리발표회에서는 서도소리의 백미 '수심가'의 애절한 선율을 남창의 목소리로 내지를 수 있는 꿋꿋한 절제미를 투명하게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관객들에게 여창이 부르는 서도소리와 남창이 부르는 서도소리의 경계를 자연스레 느끼게 해주었다. 이번 발표회는 서도송서, 서도잡가, 서도재담, 서도민요을 중심으로 엮어진다. 곽동현은 "서도송서 적벽부, 시창(詩唱)과 비슷한 '관산융마'(關山戎馬)를 비롯한 배따라기, 서도소리의 진수를 밝히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서도소리에 숨겨져 있는 '서도송서 '적벽부', '축원경', '파경'은 그동안 무대화 작업이 희박한 서도소리 중 하나이다. 4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명절이 되어도 만나지 못한 정이 그립고, '지금'이라는 주제와 잘 맞을 것 같아서 '시대의 노래'로 '축원경'과 '파경'을 소환했다."라고 설명했다. 다음 사설을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축원덕담경' 아들을 낳면 효자낳고 딸을 낳으면 열녀낳고 나라에는 충신동이 부모에는 효자동이 일가문중에 화목동이 형제에는 우애동이 친구에는 유신동이 둥글둥글 수박동이 부채살에 화락동이 (같이)세상천지 으뜸동아 동방삭에 명을 빌고 강태공에 나이를 빌어 '파경' 일쇄동방선도경(一灑東方潔道場) 이쇄남방에득청량(二灑南方得淸凉) 삼산반락은 청천외(三山半落靑天外)요 이수중분능라도(二水中分綾羅島)라 능라도(綾羅島)며 을밀대(乙密臺)요 을밀대면 만폭대(萬瀑臺)라 그는 사설을 읊으며, 이번 추석에는 화목한 가족들과 친구들을 고향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축원경은 잘 불려지지 않는 소리지만 우리 모두에게 축원을 드리는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해서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고개를 숙였다. 파경은 이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한 코로나 기운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물리치자(깨버리자)는 마음으로 택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그래서 주제가 '지금'이라고 한다. 이번 무대의 구성 및 예술감독을 맡은 그는 "2019년 '곽동현의 경서도잡가1'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였다. 독창회를 준비할 때마다 매번 부족함을 느끼지만 막상 끝내고 나면 희미하게만 보이던 제 소리의 행로가 선명해질 것이다."라고 당찬 각오를 보였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서도지역)에서 전승되던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하며, 서도소리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 서도잡가, 한시를 읊은 시창(詩唱)과 극적 구성을 띠고 있는 배뱅이굿이 있다. 평안도 민요에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안주애원성 등이 있는데, 조선 전기부터 서도지방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자 그 설움을 푸념으로 읊은 '수심가'가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서도소리의 가락은 흔히 수심가토리라고 불린다. 조금은 구슬프지만 투명하고 절제있는 청명한 소리가 압권이다. 이번 무대에서 불려지는 젊은 남창 소리꾼이 어떤 목소리에 어떤 정서가 담긴 서도소리의 멋을 전달해줄 것인지 기대가 된다. 한양대에서 '영남지방 유희요 연구'로 박사를 받은 곽동현은 일찌기 12세부터 '영남민요'와 '경기소리'를 정은하(아리랑 명인) 선생에게 사사하고, 한예종에서는 이호연(경기소리 보유자) 선생에게 경기민요를 사사했다. 이후 한양대에서 유지숙(서도소리 전수조교)선생과 김광숙(서도소리 보유자)에게 서도소리를 사사했다. 곽동현이 리더로 운영되고 있는 국악아카펠라 그룹 '토리스' 는 2012년 러시아 사할린 주정부 문화교육국의 주최로 개최된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인형극장에서 열린 ‘제4회 전통음악 국제콩쿠르’ 대상을 비롯한 국악계 큰 상을 받아왔다. 창작과 작곡을 통해 전통민요를 국내외에 널리 알려왔다. 이번 무대 첫막은 서도송서 '적벽부'로 막을 연다. 반주에는 가야금 조요인, 대금 심성욱, 피리 박새한, 해금 원유빈, 장구 이지안이 함께한다. 1. 서도송서 '적벽부' <적벽부>는 서도 송서로 경기 송서로도 다 불린다.송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1036~1101)가 1082년 귀양을 가서 쓴 <적벽부>에서 유래한다. 내용은 소동파가 벗(양세창)과 술잔을 기울이며 뱃놀이를 하면서 조조의 대군과 오나라의 대군이 일전을 겨룬 적벽대전을 회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것이다. 2. 서도잡가 '제전' <제전>은 북망산에 묻힌 임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드리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노래이다. 첫때 대목은 제물 꼬이는 법을 풀이하고, 둘째 대목에서는 제상에 차려진 산해진미의 이름을 든 다음 초헌·아헌·종헌의 절차를 그리고, 셋째 대목에서는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맺고 있다. 3. 서도잡가 '관동팔경' <관동팔경>은 국악예술학교 교장을 지낸 박헌봉이 작사를 하고 이창배가 곡을 붙였다고 한다. 관동팔경은 대관령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동해안을 따라 바닷가 경치를 대표하는 여덟 군데의 명승지이다. 관동팔경은 간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삼척의 죽서루, 양양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통천의 총석정, 평해의 월송정 등이다. 4. 서도민요 '날 찾네' <날찾네>는 서도좌창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서도민요로도 분류할 수 있다. 다른 서도좌창의 특징과 같이 수심가조로 마뮤리를 하는 것이 특색이다. 즉 민요와 좌창의 중간 형식을 띠고 있다고 보겠다. 5. 서도소리 '축원경&파경'(소리 곽동현, 소리 최윤영, 소리 전병훈) `이 소리는 맹인들이 돈을 벌기위해 부르는 것으로 오래살고 행복하고 돈을 많이 벌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안이 잘 되라고 덕담으로 축원하는 풍자적인 노래이다. <파경>은 경을 끝낸다는 말이다. 복을 빌고 난 다음 여러 잡귀를 쫓는다는 내용이다. 6. 서도잡가 '배따라기' 현재 서도창에서 불려지는 <배따라기>는 평안도 영유지방(지금의 평원군)에서 뱃사람의 무사를 기원하는 굿에서 시작하여 많은 변형을 가져온 것이다. 내용은 뱃사람이 풍랑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살아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배따라기>는 굿에서 왔을 것이나 전문창자에 의해 좌창으로 변형되어 계승되고 있다. 7. 서도민요 '산염불', '잦은염불' 산염불은 <긴염불>이라고도 하며 <해주 산염불>이라고도 한다. 황해도에서 발전한 것이다. 염불이라는 말이 들어가 곧 불가를 연상하게 되나, 실제 사설이나 음악 내용은 불교와 관계가 없다. <산염불>은 무속에서 행해졌던 것이나 민요형식으로 된 <산염불>은 점차 전문 예능인들의 음악행위와 어법이 더해져서 전문성을 띠는 소리가 되었다. 8. 서도민요 '느리개타령','금드렁타령','어랑타령','궁초댕기' <느리개타령>은 황해도민요로 봄의 아름다움을 담은 소박한 내용이다. 이어 황해도 지방의 신민요인 금드렁타령과 함경도지방의 신민요인 어랑타령과 궁초댕기를 이어서 부른다. 어랑타령은 신문물의 도래와 관련해 전통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한 사회 현상을 노래로 잘 담고 있으며, 궁초댕기는 급속한 개화의 바람과 시대적 변화속에서도 순전한 사랑을 다짐하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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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제13회 박헌봉 국악상 추천·신청 접수산청군은 기산국악제전위원회와 ‘제13회 박헌봉 국악상’ 수상자 후보를 추천·신청 받는다고 9일 밝혔다.박헌봉 국악상은 산청군과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지난 2011년부터 국악 창작과 연구, 예술 등 전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예술인을 발굴해 시상하고 있다.특히 국악운동의 선구자이자 대한민국 국악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국악계 큰 스승 기산 박헌봉 선생을 기리고 전통문화 계승·발전에 앞장서 온 국악인들의 업적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마련했다.제13회 박헌봉 국악상 수상자 후보 추천·신청은 오는 16일까지로 우편접수나 이메일로 가능하다.우편은 ‘서울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370길, 201호 기산국악제전위원회’로 이메일은 ‘kugakfam@naver.com’으로 접수하면 된다.제출서류는 국악계 저명인사 추천서, 이력서, 업적 증빙자료 등이다.기산국악제전위원회는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최종 수상자는 오는 9월 산청군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며 시상은 9월 22일 기산국악제전에서 이뤄진다.수상자에는 상금 500만원과 박헌봉 국악상 상패가 수여된다.자세한 사항은 기산국악제전위원회(02-564-0269)로 문의하면 된다.한편 지난해 박헌봉 국악상에는 국가무형문화재인 가야금 명인 이영희 선생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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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1) <br> 이애주의 명인의 '승무' 춤사위승무 승무는 우주가 열리면서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성숙하고 열매 맺은 다음 다시 제자리로 회귀하는 생명 본성의 근본을 형상화한 춤이다. 승무에서 춤 이름에 나타난 ‘승’의 의미는 소승小乘을 넘어선 대승大乘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포함한 온 중생, 우리 모든 사람들을 뜻하여 인간의 춤, 우리들의 춤이라는 큰 의미의 보편성을 갖고 있으며 춤에 불교의 고깔과 가사·장삼이 차용되어 승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다.춤은 사람들이 살면서 움직여지던 몸짓이 토대가 되어 나왔듯이 승무 또한 우리가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몸짓에서 그 골격이 세워졌다고 할 수 있다. 고대 부족국가시대부터 하늘을 숭배하고 제의를 지내던 몸짓, 수렵과 사냥의 몸짓, 농사의 몸짓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지신을 밟고 씨를 뿌리는 모습, 김매고 추수하는 움직임에서 승무의 가고 오는 발놀림이라든지 장삼을 뿌리고 앉는 사위 등이 서로 일맥상통하고, 울러 메고 타작하는 모습 등이 승무에서는 어깨에 메고 흩뿌리는 춤사위로 나타난다. 이애주 (1947-2021) 서울 출생 1954년 김보남(1912~1964) 선생 입문 1970년 한영숙(1920∼1989) 승무 사사 1992년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 2017년 제7회 박헌봉 국악상 2013년 옥조근정훈장 2003년 제7회 만해대상 예술부문 2019년 제1회 대한민국 전통춤 4대명무 한영숙상 수상 2020.03~2021.05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2019.09~2020.03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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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예담촌·기산국악당서 11월까지 마당극·국악공연,‘얼쑤! 힐링산청군의 주말이 마당극과 국악공연 등 풍성한 상설 문화예술 공연으로 채워진다. 22일 오작교 아리랑을 첫 무대로 20회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19일 산청군에 따르면 오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동의보감촌과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얼쑤! 산&청 힐링 상설공연'을 운영한다. 첫 무대를 선보이는 시흥시립전통예술단은 한국의 전통연희의 다양한 종목(풍물, 탈춤, 무속, 남사당놀이 등)과 가야금, 대금, 아쟁 등의 기악앙상블로 이뤄진 관현악단에 한국무용, 판소리 등을 포함한 총체적 전통예술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번 상설공연은 산청을 대표하는 우수한 인물과 문화관광자원을 스토리텔링한 마당극 공연과 기산 박헌봉 선생의 생가에서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먼저 마당극 상설공연은 대한민국 힐링여행 1번지로 각광받고 있는 동의보감촌 잔디광장에서 열린다. 첫 무대인 오작교 아리랑은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의 유쾌한 혼례대작전으로 전통혼례, 함팔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전통연희 마당극이다. 마당극 상설공연은 동의보감촌 잔디광장에서 열리며 전문예술단체인 큰들문화예술센터가 산청을 대표하는 우수한 인물, 문화관광자원을 스토리텔링한 마당극 △효자전 △오작교 아리랑 △찔레꽃 △남명 △목화 등 5개 작품을 선보인다. 오는 22일 오후 2시 오작교 아리랑을 첫 무대로 20회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5~6월은 토·일요일 오후 2시, 8월에는 금·토요일 오후 7시, 10~11월은 오후 2시 공연이 열린다. 이와 함께 기산 박헌봉 선생의 업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관을 비롯해 옥외 공연장 등도 마련돼 볼거리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산청군 관계자는 "상설 문화공연이 산청의 우수한 문화관광자원과 잘 어우러져 관광객 유치와 지역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는 우수 관광상품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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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국악계 명사들의 계획과 신년인사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아온다. 코로나의 영향권에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요즘, 국악계 역시 일상을 되찾아 가고 묵혀 두었던 계획을 실현하고자 분주하다. 국악계 주요 명사들의 신년 계획을 들어보았다. 이춘희님, 명인·명창 함께하는 공연 준비 코로나 등으로 지금까지 국악인들이 큰 공연을 못했는데, 신년 3월 11일(토) 국립극장에서 명인·명창들 함께 공연을 계획하고 준비 중입니다. 지금은 이 공연에 매진해서 연습 중입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공연으로 관객 분들을 만나 뵐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코로나로 인해서 국악계와 국악인들이 너무 침체되었기 때문에 올해는 모두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악신문도 2022년도에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 비를 세우는데 일년 동안 큰 일조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종목 22개 중 처음으로 세운 '유네스코 등재 아리랑 기념비'라는 큰 일을 해냈기 때문에, 그만큼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고요. 저도 그날 건립식에 함께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국악 발전에 국악신문도 함께 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임웅수님,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의 뚝심을 흥과 신명으로 특별한 계획보다는 해야만 하는 것을 열심히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백만 국악의 중심인 ‘한국국악협회’가 정상화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고, 정상화시켜서 국악인들에게 복리를 증진시키고, 국악인들이 화합해서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이 가장 큰 소망입니다. 사업적으로는 ‘대한민국 농악연합회’가 있어요. 민속음악의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농악의 뚝심을 좀 더 흥과 신명으로 풀어내는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광명농악’이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광명보존회는 신년에 좀 더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고요, 2023년에 15번째 ‘광명농악축제’는 더욱 전국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바람이 더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단체종목이 와해되거나 상당히 약화되어 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축이 되어 활동하는 농악을 비롯해서, 탈춤, 굿, 줄타기, 줄다리기 같은 민속놀이의 단체종목, 이러한 연희와 관련된 학생들 동아리 등이 위축되어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이 속한 단체에서 취미·전문 동아리 활성화가 되었을 때, 농악 발전의 근간이고 샘물이 되는데..... 이것이 막혔다는 거죠. 3년간 위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복원하는데 정부나 지자체 기관이나 국악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랑스런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의 대가 끊이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천년 만년 이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덕수님, 시대와 호흡하며 전통의 멋을 즐기는 신명나는 무대 준비 신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전통예술로 관객 분들을 만나려고 준비 중입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형태로 전통을 즐기는 새로운 무대를 마련하고자 해요. 현재 사람들이 열광하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의 문화적 근본은 전통에 있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작품을 두 가지 형태로 선보이려고 합니다. 하나는, 마당놀이 형식을 새롭게 하는 것인데요, 80년대 초에 전통공연(마당극)을 바탕으로 연극계와 접목해서 시작했던 ‘마당놀이’라는 형태가 있습니다. 이것을 새롭게 부활시킨 작품을 2023년 가을쯤에 올리려고 합니다. ‘마당놀이의 재창조’죠. 전통공연 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면서 관객 분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시대성(근현대사)을 갖춘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조국을 지켜주셨던 분들의 이야기로 찾아가려고 합니다. 공연을 통해 민족의 얼과 선인들의 불굴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로 전통공연예술을 통해 공감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물놀이를 바탕으로 한 음반(음원)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내년(2023년)이 사물놀이 45주년이에요(1978년 시작). 전통음악 자체도 미래에 중요한 근본이니까요. 현재 지도하는 학생들과 준비 중인 공연도 있습니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과 함께 봄에 서울에서, ‘경기 도담굿’을 소재로 전통을 재창조 하는 형식의 공연을 준비 중이고 학생들도 열심히 연습 중입니다. 민속문화·예술은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담아 온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판소리, 민요 등이 있지만, 그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장단’이에요. 꽹가리, 징, 장구가 가지는 울림이고, 신명입니다. 그 울림과 장단이 많은 분야에서 재창조되고 기운과 신명을 대중과 나눔으로써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만의 신명이고, 한류의 뿌리이고 정신입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죠. 그것을 우리가 아껴주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이광수님, 민족음악원 캠프와 '사물놀이' 경연대회 여기 ‘민족음악원’(원장 이광수, 충남 예산)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1박2일 진행되는 ‘월말 캠프’가 2-3월부터 시작 예정입니다. 해마다 여름·겨울 캠프가 있고요. 고향에서 우리 음악을 배우고 즐거워하는 분들을 만나고 흥을 함께 하는 나누는 것이 큰 행복인데요, 올해도 더 다양하고 많은 분들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9-11월 사이에 ‘예산전국사물놀이 경연대회’가 있습니다. 새해에는 23회를 맞는데요, 그것도 중비 중입니다. 해외 공연을 하면, 외국인들로부터 갈채를 받고 큰 호응을 얻는데,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주시고 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풍류천하 세계평화’입니다. 비나리를 할 때 쓰는 표현이기도 한데요, 우리 소리와 함께 모든 인류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문희님, 인류무형문화유산 ‘동초제 판소리’ 중심으로 미국 공연 준비 작년 연말에 했던 작업(‘사백연가 섣달그믐’, 동초제 심청가 전승발표·완창무대)을 올해는 미국에서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대략 8월 초 정도 예상하고 있고요. 동초제 소리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한국적인 장르로 구성해서 선보이려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판소리 관계자들과 준비 중에 있고요, 한국 제자 4명 정도와 함께 공연을 구상중입니다. 하루는 전통 판소리를 주 무대로, 다음날에는 젊은 소리 완창 판소리의 맥과 이야기를 담은 입제창,그리고 남도민요(흥타령,육자백이)가락 등 같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저의 레파토리인 ‘춘향가’ 음반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음반작업 준비를 하고 있고요. 이것을 위해 공부하고, 녹음하면서 준비 중입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진행할 예정입니다. 올해도 후진양성 하면서 많은 전국경연대회에 참가하도록 했는데요, 더 많은 제자들이 다양한 대회에서 제자들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그만큼 저 역시 정진할 계획입니다. 또 이런 계획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건강도 잘 챙기려고 합니다. 국악신문 독자들은 이미 소리를 많이 아끼시는 분들이니까 지금처럼 꾸준히, 그리고 더 다양하게 국악을 사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건강 먼저 유지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요. 장사익님, ‘사람이 사람을 만나’ 해외공연과 사진전 준비 올해는(2023년) 작년에 시작된 ‘사람이 사람을 만나’ 공연이 전국순회 공연을 해요. 이어서 외국 공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공연하니까, 내년(2024년) 공연을 위한 곡도 더 준비할 예정이고요. 음악은 물론이고, 건강을 위해서도 내실을 다지려고 합니다. 그 동안 국악계가 많이 힘들고 침체되었는데요, 올해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서 다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공연과는 별도로, 올해는 부산 쪽에서 6월쯤 사진전을 계획하고 있어요. 제 노래 외로, 즐거움으로 하루하루 해 온 일인데요, 작년에(2022년) ‘장사익의 눈’ 사진전을 3월에 했는데 러브콜을 받았어요. 핸드폰 사진으로 찍은 사진들로요. 올해는 부산에서 6월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제가 올해 75살이에요. 음악을 시작한 지 29년이고, 내년이면 30년이 돼요. 남들 50-60년 되는데 부끄럽기는 하지만, 올해부터 음악도, 건강도 내실을 다져서 내년(2024년) 30년 공연을 멋지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악계 선생님들, 동료 분들, 제자들 모두 다함께 좋은 일 가득하고,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원장현님, ‘한음회’ 공연준비와 독주회 구상, 제자들의 활동 기회 확장 소망 가까운 계획은 1월 11일 세종문화화회관 대극장에서 ‘크라운해태제과’에서 후원하는 ‘한음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계속해서 제자들 가르치고 있고요. 바라는 것은 올해 가을 쯤, 간단하게라도 개인 독주회를 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좀 있지만, 아직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줄 수 있고, 후배들에게도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서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해요. 그 동안 침체되었던 문화계 모든 활동, 공연들이 침체되었고, 국악인들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코로나 빨리 씻어지고, 국악인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젊은 국악인, 제자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제자들도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자식들이 힘들어 하고, 기죽어 있으면 어떻게 마음 편하겠어요? 저도 같은 마음이죠. 젊은 국악인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이나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조순자님, ‘목요풍류’와 ‘인문학강좌’로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의 가곡 전파 모색 1월 12일 가곡전수관 정음연주단 신년연주회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3월부터 ‘가곡전수관’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요,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매달 1회씩 열리는 ‘목요풍류’ 공연이에요. 늘 해왔지만, 가곡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즐기게 하려고 좀 더 새롭게 꾸미려고 해요. 코로나 때도 중단하지 않고 유튜브로 생중계해서 이어왔고, 지금까지도 현장 공연과 유튜브 생중계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 공연 때마다 다른 주제로 찾아가는데, 이 주제에 대해서도 연주단원들과 함께 의견 나누고 반영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할 예정입니다. 또 ‘가곡전수관’에서 진행하는 강좌도 새롭게 준비 중입니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하는 강좌가 다른 포맷으로 나갈 예정이에요. 작년에 ‘인문학 강좌’를 통해서 국악과 연결된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어요. 수강생들과 대화하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올해는 이것을 준비 중입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워도 어린이와 청소년들 대상으로 하는 ‘토요풍류학교’는 그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배운 아이들이 국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국악을 통해서 역사를 알게 되요. 그런 것들을 옆에서 보면서 긍지를 느낍니다. 모든 일반인, 어린이 대상 강좌들은 모두 무료로 진행합니다. 저와 같은 예능보유자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해요. 재정적으로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이 책무를 다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우수이수자 전수활동 지원사업(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선정)’에서, 저희 이수자(신용호, 명인의 아들)가 가곡 총보(통합악보, 6개 악기의 반주와 노래 악보가 함께 있는 악보)를 발표해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46페이지 정도 되는 양이고, ‘우조, 이삭대엽 버들은’, ‘계면조, 이삭대엽 언약이’ 두 곡의 악보입니다. 당시 관계자분들께서 ‘논문 수준’이라고 학술지에 올려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이 총보 작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가곡계의 발전이나 가곡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종실님, ‘산청국악축제’와 ‘기산국악제전’ 준비 사단법인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 ‘산청국악축제 토요상설공연’, 봄·가을 공연을 예정입니다. 젊은 국악인들이 무용, 소리, 기악 등 다양하게 선보이는 토요상설공연을 기산 국악당에서 계획하고 있고요. 9월 예정인 제17회 기산국악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 박헌봉국악상, 국악한마당 공연. 기산추모제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헌봉국악상'은 상금 500만원이 수여될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기산국악당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힐링국악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예정입니다. 그 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했는데, 제3회 기산배(杯) 국악인골프대회를 내년 5월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골프와 국악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국악인들 중에서도 골프 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제전위원회에서 기산선생님의 정신을 기리고, 국악인들이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산 박헌봉(岐山 朴憲鳳) 선생님께서는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1960,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시고, ‘국악협회’라는 조직을 만드시는 등 국악계를 위해 평생 헌신하신 분입니다. 기산 선생님의 존함 아래 국악인들 모두 서로 교류하고 힘을 모아 발전할 수 있도록. 뜻을 기리는 자리로 마련하려고 합니다. 한국국악협회가 국악인들의 중심 단체인데,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서 많은 국악인들이 마음 아파하고 실망스러워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내년 계묘년(癸卯年에)는 국악인들이 단합하고 화합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행복한 국악계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욱님, 창단 35주년 기념공연, 8월 독일·프랑스 공연 예정 올해 ‘이병욱과 어울림’이 창단 35주년, 예술단이 10주년이에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 6월 15일 서울남산국악당(서울시 중구)에서 공연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해가 ‘한-독 수교 140주년, 파독(1960-1970년대 대한민국 광부, 간호사 등이 서독에 파견 근무) 60주년’입니다. 8·15 광복절을 함께 기념해서, 재독한인총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문화행사에 초청되어 공연할 예정입니다.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글을 공모해서 선정된 글을 제게 전해주시면, 저는 현지 교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그 작품들을 토대로 곡을 만들어서, 독일에서 공연될 예정입니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독일 청소년 합창단(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이 있다고 해요. 그 합창단이 부를 예정입니다. 공연은 8월 17일 예정이고요. 그 이전 8월 15일, 프랑스에서, 프랑스 한인회 중심으로 개최되는 ‘광복절 기념 행사’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독일의 경우, 제가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1984-1988년) 애착이 가기도 하고, 특별한 기억도 있는데요, 당시에 윤이상 선생님 사진을 품고 다니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프라이부르크 역) 선생님을 뵈었어요. 처음으로. 그 이후로 추천서(독일학교 입학을 위해)를 써주시기도 했어요. 제 나이 33세에 갔는데, 당시 선생님께서 제게 당부하신 말씀이 ‘한국적인 곡을 써라.’ 그 말씀 한마디에 제가 국악을 접목하는 음악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마리소리골(마리소리음악연구원)에서 수업도 계속 진행합니다. 문화강습, 무용, 기타강습, 그리고 화·수·목요일에 여기 홍천(강원도)에서, 토·일·월은 인덕원(경기도)에서 수업하고 있어요. 우리 음악이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꾸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서, 국악에 대한,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갖춰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음악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에요. 누구나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일반인들도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경험했으니까요. 독일에 있을 때, 경험한 것이, 누구나 악기 하나씩 가지고 있고 즐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역 문화센터 등을 통해서 음악적인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도 지금 대부분의 강좌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소라님, 경상도 ‘상부(喪夫)소리’ 연구 출판 준비 책을 준비 중이에요. 작년에 ‘경기도 논매기소리 음원집’이 나왔고요, ‘청양의 옛 노래집’이 음원하고 합쳐서 나왔습니다. ‘강원도 논매기 소리 총서’ 부록에 서울, 인천, 북한, 제주도 논매기 소리까지 함께 있는데요, 경기도 ‘논매기소리’ 책 내용이 많아서, 강원도 총서에 부록으로 넣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논매기소리를’ 완성했습니다. 내년에는 ‘상부(喪夫)소리’(장례요) 관련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경상도 지역을 다룰 예정입니다. 또 올해는 개인 책 발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자 분들께 새해에는 ‘늘 자기 나름대로의 꽃을 피워라.’라고 전하고 싶어요. 식물을 보면 다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상진님, 지속가능한 한류문화를 위한 정책 수립에 일조하고파 현재 ‘국악신문’에 ‘박상진의 한류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3회 정도면 50회가 돼요. 그 정도 분량을 단행본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국악신문’에서도 함께 도움 주신다고 해서, 힘을 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류가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의 전통 음악적 요소들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이 한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함께 발전되어 세계 속에서 한류문화가 지속가능했으면 좋겠다. 그런 취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책 한권으로 집약적으로 묶어져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다 넓은 시야에서 한류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저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그 동안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류문화 확산을 위해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트로트, 케이팝(K-Pop) 등에 전통 음악적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것은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만들어 내고, 문화예술인들이 시행해야 해요. 저와 같은 전문가들이 현상을 분석해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한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전통문화’가 한류를 만드는 ‘영양소’라는 것을 모르고, 이야기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팥 없는 찐빵’이거든요. 그 풍부한 ‘영양소’를 바탕으로 한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그 역할에 구체적인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정리하면, 우리는 서로 줄 세우고 비교해요. ‘금수저’, ‘흙수저’ 라고도 하잖아요. 하지만, 지구촌 안에서 보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우리 국민성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아요. 다른 민족이 따라올 수 없는 특유의 유전자와 기질, 역동적인 국민성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발휘해라. 하고 싶은 것을 발휘하며. 해라(You can do it.).’ 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남의 것 흉내 내지 않고, 우리만의 것을 만들면 세계 최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동국대 학생들)에게도 강조합니다. ‘나라 안에서는 줄 세워져 있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국민이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그러면 세계 최고가 된다.’고 말해요.’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이런 민족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그런 본질적 바탕에서 출발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더 크게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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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41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이번 회에서는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교육부의 제 8차 교육과정 개정 작업 중 음악과(科) 교육 과정에 있어서 지속 가능한 한류와의 관련성, 즉 국악교육에 대해 살펴보면서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중앙일보 기사 등 인용 및 참조) 올해 말 확정 · 고시 예정인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에서 국악이 전면 배제되면서 국악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는 "졸속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며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한국국악협회 등 100여개 관련 단체가 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판소리를 전공한 트로트 가수 송가인도 청계천 광장에서 치러진 교육부를 규탄하는 자리에 나와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 분위기에 가세했다.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에 따르면, 교육부가 2022년 4월 중순 공개한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의 ‘성취 기준’ 항목에 국악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 목표를 의미하는 ‘성취 기준’은 학교 수업 · 평가와 교과서 편찬의 가이드라인이 된다. 이에 따라 현행 음악과 교육과정에서는 총 6개 항목의 국악 관련 내용이 ‘성취 기준’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현행 초중고 음악 교과서에서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정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 8차 음악과교육과정 개정 작업 중 국악이 송두리째 빠져버린 ‘교육과정 시안’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걸까. 국악계는 교육부가 시안 개발 연구에 앞서 2021년인 지난해에 진행한 기초 연구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연구진 2명이 모두 서양음악 전공자인 탓에 국악 교육을 후퇴시키는 편향적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부산교대 교수인 정은경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장은 "기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장단과 리듬, 한배와 빠르기의 용어를 일원화하자고 제안하고 있다”며 "국악의 장단엔 리듬뿐 아니라 속도의 의미가 있고 한배는 단순한 빠르기가 아닌 길이의 의미를 포함하는 개념인데, 이를 모르는 국악 문외한의 주장”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렇게 국악 교육 체계가 흔들리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국악계는 교사 양성 과정을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전국교대국악전공교수협의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 교사를 양성하는 전국의 교육대학에서 국악 관련 필수과목 수업 시수는 서울교대 1시간, 부산교대 1.5시간, 청주교대 2시간 등 평균 2.11시간에 불과하다. 4년 동안 주 2시간 정도 국악 수업을 한 학기만 들으면 된다는 의미가 된다. 중등 교사 양성 기관인 사범대의 경우 국악 교육의 실태는 더욱 열악하다. 음악교육과에 국악 전공 전임교수가 있는 학교는 교원대와 공주대, 단 두 곳밖에 없다. 이렇게 국악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채 공교육 현장으로 나온 교사들이 또 서양음악 위주의 수업을 하면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학교 음악 교육은 시작부터 서양음악 중심이었다. 최근 시가 200억원 상당의 땅을 문화재청에 기증해 화제가 된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이영희 명인은 국악 교육을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받지 못했다. 중학생 때인 1951년 퇴기(退妓) 김향초에게 춤을 배우면서 그의 가야금 연주하는 모습에 매료되었고, 이후 농사꾼 풍류객인 이덕열을 찾아가 가야금 · 단소 · 양금 등을 익혔다. 그 당시 국악 공부는 정규 학교가 아닌 누군가의 집 한쪽에서 이뤄졌다. 이렇게 인간문화재급 국악 명인들이 훗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괄시받고 서러운 세상을 살았다”고 회한을 털어놓는 배경이다. 60여 년 전 박헌봉, 박귀희 등 국악인들은 후진들에게 그 서러움을 주지 않기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민속음악 위주의 학교를 직접 만들었다. 그것이 1960년 개교한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이다. 이렇게 공교육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국악 교육은 국악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출 뿐만 아니라, 서양음악과 전통음악 관련 기본 음악적 소양을 교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허선형 경기 산본고등학교 교사는 안양 신기중학교 재직 시절 전교생에게 가야금과 해금을 가르쳤던 경험을 들려주며 "학교에서 가르치는 순간 보편적 악기가 된다. 한 학기 만에 국악의 오음계 ‘중임무황태’에 익숙해졌고 모두 진도아리랑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K팝이 세계 음악시장에서 부상하면서 국악의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2022년 3월에 퓨전 그룹 킹덤이 발표한 ‘승천’은 종묘제례악과 K팝을 접목한 ‘크로스오버 국악’으로 아마존 뮤직 ‘베스트셀러 디지털 송’ 차트(1위)와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6위) 등에 이름을 올렸다. 국악이 단순한 옛 전통이 아닌 동시대적 가치가 큰 문화자산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에서는 일찍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국악의 휘모리장단으로, 소녀시대의 ‘I Got A Boy’ 는 동살풀이장단으로 작곡되어졌다고 규명한 적이 있다. 전통음악이 K-POP 등 한류음악의 원형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부는 교육 과정 개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국악이라는 용어를 드러내지 않고 좀 더 포괄성을 높여 일반적인 용어로 표기했을 뿐 여전히 국악은 살아있다”면서 "향후 시안 개발 2차 연구와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학계 및 현장 교원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지만, 모데라토와 중모리장단은 보통빠르기로서 같은 의미로도 사용한다. 그러나 중모리장단에는 빠르기와 장단, 그 안의 리듬이 중모리장단(3/4박자, 4마디로 구성되어 한 장단을 이룸)만이 갖는 독특한 리듬이 포함되어 있다. 빠르기만의 의미인 모데라토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국악 용어를 숨기고 포괄적인 서양음악 용어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 이유이다.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고 하지 않는가. 최근, K-푸드, K-팝, K-드라마, K-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류 붐이 일지만 유독 ‘교육’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인들이 한글을 배우려 하고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당연히 K-컬처가 그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교육부는 그동안의 7차까지 교육과정 개정을 거듭하며 국악교육이 남긴 결과를 8차 교육과정 개정에서 깡그리 뒤집는 우(憂)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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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봉 국악상에 무형문화재 이영희 명인 선정경남 산청군은 '제12회 박헌봉 국악상'에 이영희 명인을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지정된 이영희 명인은 기산 박헌봉 선생이 설립한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했고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도 활동했다. 활발한 연주 활동과 더불어 문화재청에 무형문화재 전수관 건립 토지기부 등 국악의 계승 및 발전에 이바지하며 전통예술의 미래와 후학 양성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았다. 박헌봉 국악상은 산청 출신으로 국악운동의 선구자이자 국악교육의 큰 틀을 세운 국악계 거목 기산 박헌봉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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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제16회 기산국악제전' 개최산청군은 23~24일 국악운동의 선구자이자 국악교육에 큰 업적을 남긴 故 기산 박헌봉 선생의 고향 산청에서 제16회 기산국악제전을 펼친다고 21일 밝혔다.이번 기산국악제전은 기산 박헌봉 선생 추모제를 시작으로 차세대 기산 제자들과 함께하는 국악콘서트 ‘국악한마당-기산처럼 살라하네요’등이 마련됐다.전통문화예술 창달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는 ‘제12회 박헌봉 국악상’, 기산 박헌봉 선생의 뜻을 이어가는 인재발굴을 위한 ‘전국국악경연대회’도 개최된다.특히 23일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 열리는 기산국악제전 국악한마당은 전영랑, 월드뮤직밴드 ‘도시’와 타악그룹‘타고’, 미스터트롯 ‘강태관’, 유지나, 장구의 신 ‘박서진’이 출연해 산청군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준 높은 국악콘텐츠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또 국악인의 저변확대와 신센대 국안인을 발굴하고 국악 발전을 도모하는 전국국악경연대회는 24일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 열린다.이번 제16회 기산국악제전은 산청군이 주최하고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주관한다. 경남도,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상남도교육청, 산청군의회가 후원에 참여했다.산청군 관계자는 "가을의 문턱 가을의 정취와 신명나는 국악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문화 향유와 관광을 통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우리 국악계의 큰 스승인 故 기산 박헌봉 선생은 민족예술의 창조적 발전에 기여한 선구자다.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했다.산청군은 국악선양 정신을 계승시키고 국악인의 저변확대와 국악교육의 발전 및 후학 양성에 힘쓴 기산 박헌봉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해마다 기산국악제전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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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스타 '퀸' 산청서 크로스오버 국악 선보인다국내 최초의 국악 유튜버로 활동하며 국악 한류열풍을 선도하고 있는 국악그룹 '퀸(Queen)'이 산청을 찾는다. 산청군은 오는 27일 오후 3시 단성면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 대밭극장에서 퀸의 'NEW WAVE' 공연이 열린다고 밝혔다. 국악그룹 퀸은 지난 2008년 창단, 국내외 다양한 공연활동을 통해 경험과 실력을 쌓아왔다. 특히 국내 최초의 국악 유튜버로 활동하며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퀸은 30여 개국 50여 도시에서 80여 차례의 해외공연을 진행, 한국문화를 알리는 한편 국악 한류열풍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퀸'이 '겨울왕국2'의 삽입곡 '숨겨진 세상'을 가야금과 대금, 장구 등 국악기로 해석해 연주한 커버 영상은 현재까지 누적 조회수 315만건을 기록하고 있다. 퀸의 이번 공연 'NEW WAVE'는 전통예술에 재즈와 락, 라틴 등 다양하고 친숙한 음악을 접목, 다채롭고 다이나믹한 크로스오버 국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이번 공연은 산청군이 단성면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진행하는 '얼쑤! 산&청 힐링 상설공연'의 하나로 진행된다. 기산국악당에서는 지난 5월부터 오는 11월12일까지(7월 16일~8월 20일 하절기 미운영) 매주 토요일 다채로운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상설공연에서는 국악계의 큰 스승이신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지를 잇는 젊은 국악인과 명인들이 전통예술과 현대를 잇는 국악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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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여름 산공부 가시나요?”[류기자의 시선]올여름은 무더위와 더불어 벌써 3년이 되어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위축되고 있다. 국악계 역시 크고 작은 공연이나 행사가 영향을 받으면서,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악계 선생님들은 이 여름을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들어보았다.(류정은 기자/ 인터뷰 순) 안숙선님 "도심 속 조용한 곳에서” "여름은 물론, 봄, 가을에도 산공부 떠나서 몸 수련, 기술 연마하기도 하고, 동네 분들과 어울리기도 하는데요, 올해는 너무 더워서 아직 가지 못하고, 시간 나면 10월 정도에 갈 생각 중입니다. 지금 사는 곳이 도시지만, 공기 좋은 곳이라 작은 연습실 마련해서 제자들 가르치기도 하고, 혼자 연습하기도 합니다. 시간 내서 제자들과 못다 한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많은 프로그램들 찾아서, 가을에 어떤 음악들로 여러분들 만날까 생각 중입니다. 여름에는 지치지 않도록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다른 음악도 받아들이고, 정신건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춘희님, 열린 대화로 마음 다스려 "한참 더울 때, 복날은 3대 명절이죠. 좋은 사람들 만나서 공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저는 특히, 제자들과 한 번씩 들놀이처럼 갑니다. 좋은 얘기도 나누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해요. 제자들과 격이 없이 지내요. 제자들을 큰, 중간, 어린 제자들, 세 부류로 나눠서 따로 만나요. 그러면, 저도 제자들도 대화하기도 좀 더 편하죠. 마음이 굉장히 중요해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마음이 편하게. 그래야 더위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운 것은 어쩔 수 없잖아요. 여름에 쉽게 지칠 수 있지만, 자신의 건강도 돌보면서, 사람들과 관계도 더 돈독하게 하는 지혜가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광수님, 칠순공연 준비와 ‘비나리’ 음반작업 "작년에 계획했던 칠순 기념 공연을 올해 가을에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 시기에 맞춰서 음반(비나리)도 준비 중입니다. 음반 작업 마무리 단계예요. 지금은 가을 공연을 위해 내 스스로 건강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건강해야 옆 사람들이 안전하니까. 또 운동도 하고 공부하면서 일상생활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 꾸준히 건강관리하면서, 지금까지 코로나 안 걸리고 잘 지내왔습니다. 국악인들 모두, 이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사익님, 메시지 담은 정기공연 준비 "저는 늘 아침 일찍 5시 전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30분 정도 운동합니다. 목 풀기도 하구요. 아령을 30년 이상 했어요. 그것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10월에 2년마다 하는 정기적인 공연, 메시지를 가지는 공연이 있는데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하다, 오랜만에 다시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올여름은 이것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계절을 인생으로 본다면, 여름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예요. 하지만, 삶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죠. 자연도 여름에 영글고, 가을에 열매 맺잖아요. 여름에는 덥고 힘들지만, 만물은 이때 성장합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도 여름에 힘들고 어려워도 건강 잘 유지하셔서 이루고자 하는 것에 매진하신다면, 가을, 겨울, 그 이후에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덕수님, 이열치열, 풍물정신 살리는 신나는 배움터 "전북 임실군, 필봉문화촌에서(필봉농악,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김동원, 김철기, 양진성 교수 등 분들과 함께 여름 특강 중입니다. 지금 전통무용, 경기민요, 농악, 사물놀이 등을 지도하고 있고, 2주일 정도 진행합니다. 다음 주쯤에 마무리되겠네요. 재학생, 졸업생도 수강 가능하고.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여기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에요. 이런 자연 속에서 전통예술 교육과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교육자로서, 국악인으로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곳은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80년대부터 사용했고 전국 대학 풍물동아리들도 많이 공부해온 곳입니다. 풍물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예요. 이곳의 정체성이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죠. 요즘 퓨전국악처럼, 전통 외의 것도 한 번씩은 도전해보고 싶은 열정도 있을 텐데요, 그럴수록 전통 알려고 노력하고, 그런 과정을 경험할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더운 날, 이열치열, 시원하게 설장구 한 판 치면, 그것만큼 더 좋은 것 없고, 시원한 술 한 잔이면, 천하가 내 것이죠. 이 시간을 우리 전통과 정신으로 즐깁시다.” 유지숙님, 마음과 정 나누며 소리 연마 "늘 여름에는 산공부 하러 제자들과 떠나잖아요. 공부도 공부지만, 서로 못 다한 얘기도 나누고, 한 노래나 분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도 하고요. 산공부 마치고 오늘(8/1) 올라왔어요. 충북 쪽에서 했고요, 20명 조금 안 되는 인원이 다녀왔습니다. 제자들끼리도 큰 제자들, 작은 제자들은 평소 서로 만날 시간이 없어서, 처음에는 서먹서먹 하다가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나이 상관없이 서로 담소도 나누고, 모르는 것은 언니에게 물어서 하기도 하구요. 서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제자들에게 1대1로 발성 지도 같은 평소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것들에 집중했습니다. 또 바빠서, 어려워서 얘기 못했던 것들, 고민들 얘기 나누기도 했어요. 어린 제자들이 의젓하게 규칙적인 생활 하는 모습도 너무 예뻤어요. 여름에는 힘나는 시간이 제자 보는 시간이죠. 삶의 활력소에요. 못 봤던 제자들 내면의 모습도 보게 되요. 특히 한 제자가 후배들 인성교육하려고, 타로 점을 보면서 대화했는데, 서로의 마음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산공부가 자기 수련기간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마음과 정을 나누는 시간인 것 같아요. 제 모든 삶이 제자와 연결되니까, 제자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죠. 그러니 서로를 다지게 하는 시간은 큰 의미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많은 제자들 한 명 한 명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제가 처지면, 제자들도 처질 수 있으니까 1-2일 잠깐 쉬었다, 이 좋은 분위기를 모아서 다시 수업 하려고 합니다. 선생의 숙명이지만, 제자들 커가는 보람에 행복합니다. 제자들에게도 늘 노력해야 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유영대님, 산공부 찾아 국악인들 응원 "국악인들이면 산공부는 기본적으로 하시는데요, 도회지 떠나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잠자는 시간 빼고, 공부에 매진하는 기간이죠. 제 취미가 산공부하시는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2-3일 정도 함께 있기도 하면서, 애쓰시는 국악인 분들 격려도 합니다. 앞으로 몇 분의 선생님들 산공부에 찾아 뵐 예정입니다. 예술가에게 여름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9월에 그 결과가 바로 나옵니다. 기악, 성악, 모든 분야 관계없이, 충실하게 보내야 좋은 결실이 나기 때문이죠. 모든 우리 국악인들이 올여름, 의미 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원장현님, 제자들 지도와 가을 공연 준비 "집, 연구실에서 연습하고, 제자들 가르치고, 때때로 공연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적당한 운동 하면서, 제 때 식사하고, 걷기 운동이나 산책하면서,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올 10월에 공연 계획이 잡혀 있고, 8·9월에도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 준비 중입니다. 모든 국악인 분들, 코로나 잘 이겨내셔 가을까지 건강 잘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병욱님, 마리소리골에서 세대 넘나드는 국악교육 "제가 있는 마리소리골에서 소리 체험 프로그램 진행 중입니다. 어르신들에서 학생들까지 참가 연령도 다양합니다. 오늘은 학생들 수업이었는데, 기타를 통해서 국악을 배웁니다. 제가 국내 최초로(1988) 기타 연주로 전통음악을 작곡했거든요. 기타가 다른 나라에서는 민속 악기라서, 나름의 전통과 민족혼이 있다는 면에서 우리 국악과 통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기타를 통해서 국악을 접하고, 어떻게 굿거리장단을 표현할 수 있는지 같은 것도 배우게 됩니다. 여기는 한국음악의 산실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곡을 만들었고. 국내 최초 국악기박물관이기도 하죠. 여기 있는 악기들은 우리 자신이고, 독창적인 것들이니까, 아이들에게 우리의 얼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교육적으로 정말 의미 있는 곳이에요.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왜 소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민요 한가락은 부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민요가 독창적이라 해외에서 인정받고, 외국인들 관심도 상당히 높습니다. 또 외국에서 인정받는 대표적인 한국문화가 한, 아, 비(한글, 아리랑, 비빔밥)라고 합니다. 한글이 그 우수성으로 과거 세계문자올림픽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외국에서는 아리랑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멜로디라고도 하고, 비빔밥은 재료들이 어우러져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내는 것으로 ‘융합’, ‘단결’ 같은 가치와 연관되기도 합니다.” 이소라님, ‘논매기소리’ 포함한 서적 출간 "올해 책을 3권이 나올 예정인데, 한 권은 이미 나왔고, 8월에 한 권, 나머지는 연말에 나올 예정이에요. 지금 정신없이 바쁩니다. 그래도 먹는 것은 세 끼 시간 맞춰서, 저녁은 가볍게 먹고, 제시간에 먹으려고 합니다. 20-30분 걷기도 하구요. 이렇게 더울 때, 일하는 것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올해 나오는 책들은, 100년 후에 후손들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작업해 놓은 것 중에는, 후손들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아요. 1980년대에, 1900년대 생분들 음원 녹음한 것들도 있고요. 올해 총 결산 한 것이죠. 음원과 함께 나올 예정이에요. 2000년대 초반 녹음했다면, 찾기 어려운 자료들도 있어요. 책이 1000페이지가 넘습니다. 두꺼워서 그런지. 지금 연구자들은 잘 안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에 있으니, 구입하지 않더라도 관련 연구하시는 후배들은 꼭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이 중에, '논매기소리'가 제일 중요한데. 삼한시대 부족국가와 연결되는 노래거든요. 70이 넘은 선배가 1년에 책 3권 쓰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후배님들도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종실님, 9월, 경남 산청 기산국악제전 준비 "저는 경남 산청, 기산 박헌봉 선생을 기리는 ‘기산국악당’에 있습니다. 토요 상설공연(연 20회)을 기획, 준비하고 있는데요, 3년째 우리 국악계 젊은 명인, 명창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날씨 때문에 한 달 쉬고, 가을에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지방이지만, 작년에 이생강 선생님도 공연하셨고. 대나무 숲 야외공연장도 갖추고 있어요. 산청군에서 예산 지원받아서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재작년에는 국악인들이 코로나19로 어려운데도, 비대면으로 지속적으로 공연(토요상설 공연) 해왔어요. 기악, 성악, 등 다양한 분야로요. 비대면이라도 꾸준히 공연할 수 있던 것은 국악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죠. 9월에 기산국악제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국악한마당 공연, 전국 국악경연대회, 박헌봉 국악상 시상 등을 준비 중입니다. 기산 선생님의 국악 운동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시대에 국악 발전을 위해 애쓰신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국악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을 어렵게 하지만, 국악인들은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명감 가지고, 어려울수록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위기를 극복하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명곤님. 적절한 재충전이 창조력·영감의 원동력 "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9, 10, 11월 예정된 공연 준비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자연이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휴가 잡아서 자연 가까이에서 쉬기도 하면서. 작품 구상하고, 집필한다던가, 대본 쓰고, 연출 준비하고, 그런 작업들 하면서 조용히 지냅니다. 도심에서 체력 소모하기보다는, 여름이니까 자연을 더 가깝게 느끼면서, 휴식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체력 보충하고 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집중해서 쓰잖아요. 공연, 창작 등은 계절에 관계없이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가끔씩은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습니다. 에너지 너무 소진하지 말고 충전해라. 다음 작업 위해서. 에너지 생기니까. 그래야만 창조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쉬어야 할 기간에는 쉬어라.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임웅수님, 광명농악, 경기도무형문화제 대축제 준비 "가을에 광명농악대축제, 경기도 무형문화재 대축제가 예정되어 있어서 전국 국악인들은 모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국악협회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장기간 끌고 오고 있기 때문에, 지정된 사업을 원활하게 할 수 없어서, 국악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빨리 국악협회가 재정비되고 국악인이 주체가 되어, 전통문화의 기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어렵게 생활하는 국악인들이 건강관리 잘하셔서 이중고 삼중고가 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초복, 중복, 말복을 넘기는 절기는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전해주신 옛 어른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풍습이 아닌가 싶어요. 보양식뿐만 아니라 심신을 다스리는 여러 방법으로 더위를 잘 견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국악인들, 정갈한 곳에서 산공부도 하시면서, 전통문화가 가진 신명으로 혼을 깨워서, 곧 다가올 가을에 지역 문화예술 축제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장문희님, 배우며 쉴 수 있는 지혜 "저는 어제 광주MBC 국악 프로그램 촬영을 제자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또 얼마 전에, 제자가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서 기쁜 일이 있었고요. (제가) 작년에 (전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 지정을 받게 돼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동초소리(동초제 판소리) 발판을 넓히려 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국립극장에서 심청가 5시간 완창을 준비하고 있고, 7월 30일부터 특별 하계 연수를 계획하고 있어요. 몇몇 학생들만 데리고, 이달 30일부터 2주 정도, 이모님(이일주 국창) 전수관에 들어가서, 소리의 본질이나 깊이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려고 합니다. 저는 공연하는 사람이고 주어진 일만으로도 바쁘지만, 늘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3년 정도 전에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소리 공부를 하면서 온몸을 긴장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허리가 안 좋아지기 시작해서, 혼자 조용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요가를 시작하게 됐어요. 다도에도 관심을 가져서 보이차 마신 지도 오래 됐구요.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온몸으로 순환이 되면서, 조용히 자신과 대화를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점이 좋습니다. 그냥 무조건 쉰다고 잘 쉬는 건 아니고, 결과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면서, 한 가지씩 배워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책도 읽으면서, 조용히 자기 성찰하면서. 그렇게 보내는 것이 의미 있게 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펼쳐 놓은 그 마디마디에는 지난 세월 담아온 국악에 대한 열정과 자신만의 소신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늘 그렇듯, 자신의 자리에서 열정을 쏟아 내고 있었으며, 국악을 진정 사랑하고, 동료들을 보듬어 주고,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도 묻어났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국악이라는 완전체의 큰 울타리를 지켜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올여름은 3년이 넘는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지만,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명장들의 열정은 여름날보다 더 뜨거웠다. 국악계, 그리고 선후배와 제자들에게 다가올 가을, 의미 있는 결실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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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전통음악이 한자리에, 재즈국악 산청 찾는다재즈와 전통음악을 여러 장르로 채색하는 프로젝트팀 ‘가배장’이 오는 9일 오후 3시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을 찾는다.‘가배장 프로젝트’는 아름다울 가(佳), 무리 배(輩), 베풀 장(張)의 의미를 담은 팀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가지고 모여 어떤 일을 벌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판소리 이다현을 중심으로 피아노 임슬기, 드럼 한순옥, 콘트라베이스 이태호 등 각자의 음악을 기반으로 전통음악을 재해석하는 팀이다.이번 산청 기산국악당 공연에서는 판소리대목 중 사랑가, 만고강산, 이야홍타령, 꽃타령, 사철가, 함양양잠가, 도라지, 아리랑 등 우리나라 전통 판소리와 민요에 재즈의 색채를 더해 선보일 예정이다.이번 공연은 산청군이 단성면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진행하는 ‘얼쑤! 산&청 힐링 상설공연’의 하나로 진행된다.기산국악당에서는 지난 5월부터 오는 11월 12일까지(7월 16일~8월 20일 하절기 미운영) 매주 토요일 다채로운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상설 공연에서는 국악계의 큰 스승이신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지를 잇는 젊은 국악인과 명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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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국악 신예 경성구락부 “산청에서 조선팝”MBN ‘조선판스타’와 JTBC ‘슈퍼밴드2’에 출연하며 국악계 슈퍼 루키(신예)로 떠오른 ‘경성구락부’가 산청을 찾는다.산청군은 오는 7월 2일 오후 3시 단성면 남사예담촌 기산 국악당 대밭극장에서 경성구락부의 ‘신(新) 청년’ 공연이 열린다고 밝혔다.경성구락부는 지난 2021년 5월 결성된 퓨전국악 밴드다. 이들은 어린이날을 제창한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18년 문화예술로서 독립 정신을 설파하기 위해 설립한 청년 문화예술단체 ‘경성청년구락부’의 정신을 계승한 팀이다.조선시대 민중의 음악이었던 민요를 현시대에 맞게 편곡해 현대적인 국악으로 대중에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음악적 의미로서의 ‘퓨전국악’에 그치지 않고 국악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한민족의 얼을 더 많은 사람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이번 산청 기산국악당 공연에서는 사설난봉가와 태평가, 궁초댕기, 사설방아타령, 신(新) 창부거리, 까투리타령, 비나리 등의 민요를 현대적인 트로피컬,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 재구성해 선보일 예정이다.한편 이번 공연은 산청군이 단성면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진행하는 ‘얼쑤! 산&청 힐링 상설공연’의 하나로 진행된다. 기산국악당에서는 지난 5월부터 오는 11월 12일까지(7월 16일~8월 20일 하절기 미운영) 매주 토요일 다채로운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상설 공연에서는 국악계의 큰 스승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지를 잇는 젊은 국악인과 명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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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재주로 즐거움 주는 '청배 연희단' 산청서 공연창단 21년을 맞는 전통연희 전문 공연단 ‘청배 연희단’이 경남 산청을 찾는다.산청군은 오는 25일 오후 3시 단성면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 대밭극장에서 청배 연희단의 ‘원(ONE)’ 공연이 열린다고 24일 밝혔다.청배 연희단의 연희는 演(펼 연), 戱(놀 희)라는 의미로 말과 재주를 부려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난 2001년 창단된 청배 연희단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들로 구성된 전문 공연단이다.전통 가무악의 총체적인 예술인 전통연희를 기반으로 연희라는 문화적 언어로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목표다.이들의 대표 공연작품인 ‘원(ONE)’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음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ONE)되기를 원(願)하는 연희 프로젝트다.이번 산청 공연은 기존의 원 공연에서 체험과 민요 교육 시간을 더해 관객과 연희자가 함께 무대를 만드는 공연으로 구성했다.군 관계자는 "산청군은 매주 주말 기산국악당에서 토요상설 국악공연을 열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악을 대표하는 명인들의 공연부터 젊은 국악인들의 재기 넘치는 공연을 매주 주말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많은 분들이 즐겨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이번 공연은 산청군이 단성면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진행하는 ‘얼쑤! 산&청 힐링 상설공연’의 하나로 진행된다. 기산국악당에서는 지난 5월부터 오는 11월12일까지(7월16일~8월20일 하절기 미운영) 매주 토요일 다채로운 국악공연이 펼쳐진다.상설공연에서는 국악계의 큰 스승이신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지를 잇는 젊은 국악인과 명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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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봉국악상 수상자 추천, 30일 마감제12회 기산 박헌봉국악상 추천이 지난 13일부터 시작되어 30일 마감된다. 이 상은 (사)기산국악제전위원회(위원장 최종실)가 선생의 국악운동 업적을 기념하고 민족예술의 창조적 발전을 기하기 위해 제정, 금년 12회를 맞는다. 수상자는 1인으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수상자는 오는 9월 기산국악제 행사 개최 전 산청군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고, 시상은 기산국악제 기간, 상금은 500만원과 박헌봉 국악상 상패가 수여될 예정이다. 이 상은 2021년 제1회 수상자로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을, 작년 제11회는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을 선정, 시상했다. 문의는 기산국악제전위원회(02-564-0269)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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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제12회 박헌봉 국악상 추천·신청 접수경남 산청군과 기산국악제전위원회는 오는 30일까지 제12회 박헌봉 국악상 수상자 추천·신청서를 접수한다고 16일 밝혔다.제출서류는 국악계 저명인사 추천서, 이력서, 업적 증빙자료 등이며 자세한 내용은 기산국악제전위원회(02-564-0269)로 문의하면 된다.기산국악제전위원회는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 엄정한 심사를 진행한다. 오는 9월께 기산국악제 행사 개최 전 산청군 홈페이지를 통해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수상자에는 상금 500만원과 박헌봉 국악상 상패가 수여될 예정이다. 지난해 박헌봉 국악상에는 재단법인 국악방송 유영대 사장이 선정된 바 있다.박헌봉 국악상은 산청군과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지난 2011년부터 국악 창작과 연구, 예술 등 전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예술인을 발굴·시상하고 있다.군과 제전위는 국악운동의 선구자이자 대한민국 국악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국악계 큰 스승 기산 박헌봉 선생을 기리는 한편 전통문화 계승·발전에 앞장서온 국악인들의 업적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 상을 마련했다.한편 국악상 추천·접수기간은 오는 30일까지다. 우편접수 또는 이메일로 접수가능하다. 우편은 ‘서울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370길, 201호 기산국악제전위원회’로, 이메일은 ‘kugakfam@naver.com’으로 접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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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월미농악' 기산국악당에서 공연 등경남 산청군은 오는 14일 오후 3시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경기도 시흥시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시흥월미농악’ 공연이 펼쳐진다고 밝혔다.이번 공연은 산청군이 지난 2019년부터 진행해 온 기산국악당 토요상설공연 ‘해설이 있는 기산이야기-치유악 힐링콘서트’를 잇는 문화관광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된다.‘시흥월미농악’은 경기도 시흥시에서 전승돼 오는 민속놀이 중 하나다. 조선시대에는 ‘상직(上職)풍장’이라고 해 경기지방은 물론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진 농악이었다.시흥지방에 남아있는 풍물 가운데 가장 짜임새 있는 편제와 예술성을 지난 시흥월미농악은 시대적 흐름과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잊혀질 뻔 했으나 보존회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시흥월미농악은 쇠 놀음이 발달돼 현란하고 경쾌하다. 법구잽이(소고)의 상모놀림은 단정하면서도 빠른 것이 특징이다. 경남 산청군은 오는 14일 오후 3시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시흥월미농악' 공연이 펼쳐진다고 12일 밝혔다.군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산청군이 지난 2019년부터 진행해 온 기산국악당 토요상설공연 '해설이 있는 기산이야-치유악 힐링콘서트'를 잇는 문화관광프로그램 하나로 진행된다.공연에 나서는 시흥월미농악보존회는 시흥지역에 유일하게 남은 농악인 '시흥월미농악'을 전승·보존하는 한편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시흥 민속예술인 월미농악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시흥월미농악'은 경기도 시흥시에서 전승돼 오는 민속놀이 중 하나다. 조선시대에는 '상직(上職)풍장'이라고 해 경기지방은 물론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진 농악이었다.시흥지방에 남아있는 풍물 가운데 가장 짜임새 있는 편제와 예술성을 지난 시흥월미농악은 시대적 흐름과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잊혀질 뻔 했으나 보존회 노력으로 지금 모습을 갖췄다.시흥월미농악은 쇠 놀음이 발달돼 현란하고 경쾌하다. 법구잽이(소고) 상모놀림은 단정하면서도 빠른 것이 특징이다. 무동놀음은 화려한 면모를 자랑한다. 맞무동, 삼무동, 오무동 등 서로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행하는 동작과 춤사위가 기예에 가까워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더한다.한편 기산국악당 토요상설 국악공연은 오는 11월 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올해는 조선판스타와 풍류대장의 오디션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잔향, 박자희, 퀸, 도시, 해음, 경성구락부뿐만 아니라 국악계의 큰 스승이신 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지를 잇는 실력이 출중한 젊은 국악인들이 대거 출연할 예정이다. 기산국악당은 국악계 큰 스승인 기산 박헌봉 선생의 업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관을 비롯해 옥외 공연장 등으로 꾸며져 볼거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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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이 낳은 국악관현악 지휘자의 향연 ‘기산전’2021년 11월 7일 오후 3시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는 경상남도를 빛낸 인물프로젝트 국악관현악 지휘자의 향연 ‘기산전’이 펼쳐진다. 기산국악제전위원회(위원장:최종실)가 주최/주관하며 경상남도와 산청군 그리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총동문회가 후원한다. 예부터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경상남도! 경상남도의 유구한 인물들을 빛내기 위한 프로젝트. 국악운동의 선구자이자 국악 교육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故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업을 기리는 행사이다. 박헌봉 선생은 현재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세우고 전국의 무형문화재를 기록, 조사, 발굴하였다. 이 같은국악선양 정신을계승받은, 기산이 배출한 국가무형문화재 명인들과 지휘자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공연은 오프닝 <태평고를 울려라>를 시작으로 <기산찬가>, <대바람소리>, 가야금병창을 위한 협주곡 ‘사랑가’, 배띄워라, 약손,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및 병창,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신모듬’, <반갑습니다>, <미리뽕>, <우연히>, <길>, <사랑의 바보>, <예사> 등이 펼쳐진다. 참여하는 지휘자는 8명이다. 김광복(11기), 박상진(11기), 최상화(12기), 한상일(12기), 김재영(15기), 이용탁(23기), 임상규(28기), 진성수(29기)이다. 협연에는 김영재(5기), 정회천(15기), 이영신(22기), 우연이(25기), 전영랑(40기), 이미리(43기), 김보성(45기)이 참여한다. ‘기산전’은 기산 박헌봉 선생의 제자들을 비롯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국악인과 관현악단 등 예술인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품격 있는 공연이다. 진행은 국악공연 전문기획사인 정아트앤컴퍼니가 맡았다. 제12기 한상일 지휘자(현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단장)는 "이번 공연은 박헌봉 선생님의 제자들인 박범훈(전 이사장) 선배님 이하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출신들만으로 꾸미는 판이다. 이 판의 소속감과 결속력은 우리의 자부심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또한 본 국악신문에 ‘한류이야기’를 연재하는 제11기 박상진(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지휘자 역시 강한 자긍심을 보였다. "기산 선생의 그늘이 현재 우리 국악의 본류이다. 이번 공연은 우리 스스로가 이를 확인하고, 동시에 이 시대 국악계의 소임을 다지는 기회이다.”라고 했다. 공연이 개최되는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은 박헌봉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명소이다. 주인공인 박헌봉 선생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나 1934년 진주 음률연구회를 조직하고, 그 후 정악견습소, 조선성악연구회, 조선가무연구회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1960년 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을 역임하고 이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면서 ‘창악대강’을 후세에 남겼다. 오늘의 민속음악인 주류를 형성시킨 인물이다. 본 행사의 총괄은 2013년 기산국악당 건립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제10기 최종실 기산국악제전위원장이다. 기산국악당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된 남사예담촌과 함께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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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교육 선구자 기산 박헌봉 후학들, 산청 온다국악 부흥에 앞장선 기산(岐山) 박헌봉(1906~1977)의 후학들이 경남 산청군에서 공연한다.산청군과 기산국악제전위원회는 7일 오후 5시 산청군문화예술회관에서 ‘경남을 빛낸 인물 프로젝트-기산전’을 개최한다.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국악교육에 큰 업적을 남긴 박헌봉의 후학들이 무대를 꾸민다. 제자들을 비롯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국악인과 관현악단 등이 국악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대고각에서 ‘태평고를 울려라’를 시작으로 ‘기산찬가’와 ‘대바람소리’가 이어진다. 가야금병창을 위한 협주곡 ‘사랑가’, ‘배띄워라’와 ‘약손’,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및 병창’도 즐길 수 있다.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신모둠’을 비롯해 ‘반갑습니다’, ‘미리뽕’, ‘우연히’, ‘길’, ‘사랑의 바보’, ‘예사’ 등의 무대도 펼쳐진다.이번 공연은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주최·주관하고 경남도와 산청군,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총동문회가 후원한다. 국악공연 기획사인 정아트앤컴퍼니가 진행한다.산청군은 2013년 기산의 정신을 기리고 뜻을 이어가고자 고인의 고향인 남사예담촌에 기산국악당을 건립했다. 2019년부터는 ‘토요 상설 국악공연-해설이 있는 기산이야기 치유악 힐링 콘서트’를 열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코로나19 극복과 태평성대,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대형 북 태평고가 기산국악당에 설치됐다.올해는 기산이 평생에 걸쳐 집필한 ‘창악대강’ 초판과 동판 등 관련 유품 20여점이 기산국악당으로 돌아왔다.창악대강은 창악의 기원과 유래, 음조, 발성을 비롯해 오음과 십이율, 근세국악의 발자취 등 창악의 이론이 모두 담겨 ‘국악대사전’이라고도 불린다.기산은 유명을 달리하기 10여년 전인 1966년 이 책을 탈고, 67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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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기산국악제전 "국악대가들 국악한마당 한 자리에"평생을 국악 부흥을 위해 힘쓴 국악계 큰 스승 고(故) 기산 박헌봉(1906~1977) 선생을 기리는 국악제가 선생의 고향인 경남 산청에서 열린다.산청군과 기산국악제전위원회는 오는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 ‘제15회 기산국악제전’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이번 국악제전은 문체부 장관상이 걸린 전국국악경연대회와 우리소리 대가들의 신명을 한자리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국악한마당, 기산 추모제 등이 진행된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11일 하루 진행되는 ‘기산전국국악경연대회’는 동영상을 통한 온라인 비대면 심사 방식으로 진행한다.예선은 비대면 영상심사, 본선과 결선 경연은 온라인 비대면 생중계 심사로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경연 동영상을 제출해 심사를 받게 된다.국악예술학교 설립, ‘창악대강’ 출간 등 국악부흥에 정열을 쏟은 기산 선생의 국악정신과 뜻을 이어나갈 젊은 국악인을 양성·발굴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국악경연대회에는 일반부 종합대상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학생부문 종합대상은 교육부 장관상이 수여될 예정이다.12일 오전 11시 기산국악당에서 진행되는 ‘기산 박헌봉 선생 추모제’는 제전위원회와 후학들이 주축이 돼 현대 국악의 선구자이자 후학양성에 지대한 공을 세운 기산 선생을 기리는 행사다.지난 2011년부터 시작돼 올해 11회째를 맞는 올해 기산 박헌봉 국악상에는 유영대 재단법인 국악방송 사장이 선정됐다. 군과 제전위는 12일 오후 7시 기산국악당에서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다.유 사장은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면서 문학과 국악, 민속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제출했다.특히 기산 박헌봉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주목해 관련 연구를 진행, 지난 2008년에는 ‘창악대강’의 교감을 담당하고 2020년에는 ‘기산 박헌봉 총서’ 발간을 총괄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박헌봉 국악상 시상식 직후부터는 우리소리의 대가들이 참여하는 국악한마당 ‘기산을 노래하다’가 이어질 예정이다.중앙국악관현악단과 소리꾼 장사익, 국악인이자 마당놀이 대모 김성녀와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가 무대에 오른다.식전 공연인 ‘태평고를 울려라’를 시작으로 김성녀 국악인의 ‘기산찬가(초연)’와 ‘누구의 것이랄 것도 없는(작시 박목월)’ 공연이 이어진다. 이어 중앙대학교 국악교육원 교수 박혜리나의 가야금 협주곡 ‘경토리’ 무대도 진행된다.다음 무대는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 사물놀이팀이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신모듬’을 선보인다. 뒤이어 장사익이 ‘기산처럼 살라하네요(작사 김홍신)’과 ‘티끌 같은 세상 이슬 같은 세상’을 노래한다.마지막 무대는 모든 출연진이 함께 무대에 올라 ‘산청 아리랑’과 박헌봉 선생이 작사한 ‘국악의 노래’를 부르며 막을 내릴 예정이다.이재근 산청군수는 "기산 선생이 이루고자 하셨던 민족예술, 국악의 부흥과 계승에 군이 앞장서겠다”며 "우리 민족의 얼과 기개, 흥과 해학이 담긴 국악의 중심지가 우리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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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성 인물사] 국악발전의 어머니 박귀희국악발전에 모든 것 희사 2011년 11월 3일 인구 11만의 경북 칠곡에 우리나라 국악인들이 총출동하다시피 다 모여들었다. 2011 향사香史 박귀희朴貴姬(1921.2.6~1993.7.14) 명창 기념공연 「국모」에 출연하기 위해 선생의 후배, 제자, 국립전통예술학교 재학생, 동국대 관현악단 등이 천리길을 마다 하지않고 내려온 것이다. 20세기 국악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국악의 어머니를 기리는데 두 마음은 없었다. 국악계의 은인을 위해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한 창설자를 위해서, 바쁜 시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모두들 기꺼이 내려온 것이다. 향사 박귀희는 어떠한 남자들도 해내지 못했던 문화예술계의 크고 다양한 일들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양악에 밀리는 국악의 발전을 위하여 또 소외된 여성국악의 활성화를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기부한 여장부다. 가히 국악 발전의 어머니 역할을 다한 국모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적통이 아닌 서얼 출신에 무당의 딸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국악학교 설립이라는 소망을 세웠고, 그 원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희사한 참인간이다. 박귀희는 한국의 혼이 담긴 국악을 사랑하고 키운 우리나라 국악사의 빛나는 스승이다. 여성이지만 국악인으로서의 민족음악의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한 전무후무한 경북여성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공간과 6·25를 지나오면서도 민족정신을 되살릴 새로운 시작은 국악뿐이라는 것을 박귀희 명창은 이미 알았던 것일까? 박귀희 명창은 이화중선의 소리를 들으면서 넋을 잃었고, 그 가락을 잡으려고 소리판에 들어섰다. 단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는 선택이었고, 한 사람의 뛰어난 선택이 우리 국악계를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라났다.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려고 안달이 났던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이 되어도 국악인들에 대한 냉대와 멸시는 적지 않았다. 설상가상 신탁통치로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양악은 선풍적으로 확산되었고 국악은 고개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었다.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양악이 우리 민족과 함께 반만년을 흘러 온 국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낼 듯 확산되어도 국악인들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저 속만 태울 뿐이었다. 당시 국악인들은 해방 나흘만인 1945년 8월 19 일에 대동단결하여, 민속음악을 올바른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국악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해방을 맞이하여 국악인들은 희망에 부풀어 국악중흥운동을 펼쳤으나 냉대받고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수도경찰청장을 역임한 창랑 장택상은 달랐다. 장택상은 박귀희의 친아버지 장병관과 한 집안으로 국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악인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준 것으로 국립전통예술학교 초대 교장 기산 박헌봉은 『국악운동 반생기國樂運動 半生記』에 적고 있다. 여러 해 외국생활을 했던 장택상은 구수한 된장찌개나 깍두기만큼 맛있는 음식은 먹어보지 못했고, 우리 국악같이 흥겨운 음악은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국악을 사랑했다. 창랑의 도움으로 박귀희는 국악 발전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감상회를 열었다. 이때 박귀희, 김소희 명창의 판소리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하루 저녁 감 상회를 계기로 국악학교 설립기성회가 조직되었고, 본격적인 학교설립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초대 내각도 외면하고, 6·25도 터지면서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흘러갔다 국립전통예술학교를 세우다 국립전통예술학교 초대이사장 박귀희는 1955년 김소희와 함께 서울 돈암동 적산 가옥 7백평을 불하받아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했다. 무용과 기악, 창 악을 가르치기 시작한 한국민속예술학원이 사립 국악예술학교의 전신이다. 3 년동안 약 380명의 학생이 모여들자 국악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를 세워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전남방직 김용주 회장, 삼양 사 김연수, 경성방직 김용완 사장, 조선일보 방일영 회장, 윤병호 서울은행장, 코오롱그룹 이원만 회장 등 각계 인사들의 협조를 얻어 건평 5백평 규모의 신축 관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1960년 3월 5일에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개교한 사립 국악예술학교는 5천 년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악예술학교로 그 중요성을 지닌다. 1964년 4월 15일 윤태일 당시 서울시장의 호의로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는 남산으로 이전하였 다.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사무실로 쓰던 낡은 건물이었지만 위치나 규모가 한결 나았고, 주변 민원의 소지도 줄었다. 그해 7월 국악예술학교 부설 학생국 악관현악단을 창설하였다. 1968년에는 돈화문 앞으로 옮겼다가 1970년 9월 30일 서울 석관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84년 12월 17일에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2년 10월 29일에는 석관동에서 서울시 금천구 시흥3동 산 24-17번 지로 교사를 이전하였으며, 2002년 3월 2일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지정 자율 학교가 되었다. 전통예술학교는 박범훈, 김성녀, 김영임, 오정해 등 걸출한 졸 업생들을 배출한데다 국악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2008년 3 월 1일 사립에서 국립으로 전환되었다. 국악예술학교가 1970년에 서울 석관동으로 이사한 후 박귀희는 운동장이 없 는게 마음에 걸려 1989년 서울 운니동에 있던 자신 소유의 운당여관을 국악예 술고등학교 이전 비용으로 내놓았다. 석관동 교사 판매 대금 20억원에다 박귀 희 명창이 살던 사저 운당여관 그리고 명창의 대전 과수원까지 판 전 재산 38 억원으로 전통국악예술학교는 1992년 금천구 시흥2동의 넓은 땅으로 이주하 게 된 것이다. 전통예술학교가 넓은 교사로 옮긴 것은 더없이 축하할 일이나 서울의 전통 숙박시설 명소로 사랑받던 운당여관이 헐린 것은 너무 아쉬운 일 이다. 박귀희 명창의 고택이 된 운당은 척박하던 195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문화예술인들의 보금자리이자 국수전이 열리던 바둑 대국장이었다. 운 당이 박귀희 명창의 소유가 된 것은 1951년이다. 원래는 조선 순조 때 궁중 내 관이 왕으로부터 목재를 하사받아 지은 양반 가옥이었다. 여기에 구한말 세 도가였던 한상억이 한옥을 사들여 1958년부터 구름집을 뜻하는 운당雲堂으 로 이름지었다. 서울 경기지방 정통 사대부 가옥을 보여주는 운당은 종로의 명소로 알려져있고, 박귀희는 이 집을 여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운당여 관은 문화예술인들의 놀이터이자, 한국가옥의 곡선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 다. 1989년 자금난에 시달리던 국악예술학교에 기증된 후 헐렸던 운당여관은 1994년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서울종합촬영소 내에 복원되었다. 국모 박귀희 명창이 기산 박헌봉 등과 함께 민족정신을 보듬고 민족음악을 보존하기 위해 뿌린 씨앗은 이제 개교 반세기를 넘어 반만년 민족정서를 싣고 있는 우리 음악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첫 국악교육기관으로서 뚜렷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국립전통예술고에서는 향사 박귀희의 예술관이 실천되고 있다. 박귀희는 예 술을 공부하려면 먼저 인성을 닦고 예능을 공부해야하며, 예술인은 기예 뿐 아니라 학식도 겸비해야한다고 강조하였고 몸소 실천하였다. 박귀희 명창의 국악살리기는 완전히 자유의지로 시작되었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쓰러지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전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국악에 는 없던 가야금 병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낸 자유의지의 발로이자 전 인미답의 신개척지를 찾아나선 것이다. 소리로 풀어내야 할 출생스토리 박귀희 명창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하판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장영심으로 친아버지는 장병관, 인동 장씨 집안이다. 장병관은 기골이 장대하고 말도 잘하며 돈도 많았다고 한다. 알아주던 대농이었던 칠곡 갑부 장병관이 경영하던 술 도가는 6·25때 폭격으로 불타 없어졌다. 장병관은 아들을 얻지 못하자 아랫 마을 속칭 탑고개에 살던 큰 무당 박금영(박귀희의 친어머니)과 동거했다. 장병관은 박금영이 딸을 낳자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딸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무당으로 사는 삶의 지난함을 알고 있는 박금영은 처음에는 어린 박귀희 즉 장영심을 자신의 딸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장병관은 혼인 외 딸이라고 해서 외면하는 바람에 박귀희는 인동 장씨 호적에 오르지 못하였다. 이후 친모 박금영이 오씨 성을 가진 사람과 재혼하자 오씨 호적에 오계화라고 올렸으나 박귀희는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오씨 성을 따를 수 없다면서 어머니 성을 따랐다. 상당히 앞서서 주체적인 생각을 보인 셈이다. 이후 장영심 즉 오계화는 국악에 입문하면서 지은 귀희라는 예명에 어머니 박씨 성을 붙여서 박귀희가 되었다. 한국 국악계의 대들보 역할을 한 명창 박귀희의 이름 세 글자에 출생에 서린 애환과 신분 차별의 굴레 그리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한 사람의 뛰어난 인간승리의 의지가 서려있다.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 박귀희는 가야금과 무관하지 않은 배경을 안고 태어났다. 박귀희는 능력있는 아버지를 두었으나, 축복받는 출생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혼외 자식이라는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태어난 박귀희의 인생 고민과 고뇌는 일찍 싹텄을 것이며, 그것이 깊은 예술적인 공명으로 승화되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어찌보면 박귀희와 국악과의 인연은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닐곱살쯤 철이 들만하자 어머니는 박귀희를 대구 봉산동 외가로 보냈다. 대구공립보통학교 3학년 때 무성영화를 처음 접하였다. 이때부터 예술세계에 대한 동경의 씨앗이 뿌려졌는지도 모르겠다. 향토음악사를 정리한 손태룡은 박귀희가 대구에서 달성권번과 대구공립보통학교를 거치면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1931년 11세때 대구극장에서 열렸던 조선성악연구회 공연을 보면서 예술적 자질이 움트기 시작했다. 박귀희는 권번 담을 넘어 들려오는 소리를 귀동냥으로 들은 것을 따라하다가 손재광 앞에서 단가를 부르게 되었다. 손재광은 그래 쓰겄다. 너 소리 배워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 셈이다. 손재광이 어린 박귀희에게서 소질을 캐냈다면, 첫 스승은 박지홍이다. 박지홍으로부터 판소리와 「화초사거리」 등을 사사받았다. 박지홍은 나주 출신으로 명창 박기홍과 종형제간이었다. 이화중선의 소리에 홀린 듯 빠져들다 박귀희가 데뷔를 한 것은 보통학교 졸업을 앞둔 14세 때 달성권번 손광 재에게 판소리를 배우다가 이화중선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화중선 (1898~1943)은 김초향과 더불어 그 시절 여류 창악계의 쌍벽이었다. 열일곱살 때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홈실 박씨 문중으로 출가하였으나 협률사 공연을 보 고 홀리듯 집을 나가 장득주에게 판소리를 배운 이화중선은 천부적인 목소리와 재질을 지닌 여류명창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화중선은 대동가극단을 이끌고 지방 순회공연에 이어서 일본 순회공연을 다녔는데. 1943년 재일동포 위문 공연 도중 별세하였다. 이화중선의 대동가극단이 대구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손광재가 박 귀희를 이화중선에게 소개시켰다. 박귀희의 소리를 들어본 이화중선은 바로 입단을 허락하였다. 박귀희가 대동가극단에 입단한 것은 1934년이었다. 대구극장에서 「소상팔경가」로 공식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대동가극단과 일년여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은 쌓았지만 오태석의 가야금 병창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생겼다. 토막 판소리에 만족하지 말고 명창이 되려면 제대로 소리를 배워야한다고 결심하고 대구로 내려온 박 귀희는 한국 소리계의 대부들을 찾아서 가르침을 받았다. 박지홍에게 「춘향 가」와「화초사거리」,「보렴」,「편락」을 배웠다. 15세이던 1935년에는 강태홍에게 가야금과 가야금 병창을 공부하였고, 승무, 박전무, 검무, 살풀이 등을 김남수에게 일년간 배웠다. 16세 되던 1936년 여름에는 대구 화원 용연사에서 박기홍의 의발衣鉢을 받은 조학진에게 백일 공부를 하면서 「춘향가」와 「적벽가」를 배웠다. 백일공부는 불가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듯이 암자나 절에 스승을 모시고 들어가 성음의 경지를 터득하는 것을 말한다. 국악인들은 이렇게 절에 들어가서 소리공부 하는 것을 흔히 도야陶冶라고 하고 소리공부는 절에서 수도하는 스님들과 똑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세 차례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밤 11시에 잠드는 시간까지 마치 좌선하듯이 소리공부를 하는 것을 말한다. 박귀희 명인의 가장 큰 특징은 국악에는 없던 가야금 병창의 중요무형문화재가 됐다는 사실이다. 한때 불이익 가야금 병창 광범위한 사랑받아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야금 병창대회에 나가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가야금을 뜯으면서 노래를 하는 새로운 연주 방식인 가야금 병창에 대해서 기존 국악계가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최 근에는 이런 일들이 사라져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지만, 한 동안은 가야금 병창은 금지된 예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가야금 병창은 대중의 가슴 속에 파고 들었다. 창을 하며 가야금을 뜯는 병창은 마치 서양 아티스트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처럼 대중속으로 스며들었다. 박귀희의 열정과 헌신으로 이제 가야금 병창은 국악계의 대표적인 장르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18세에는 전남 담양에서 박동실 선생을 모시고 두 번째 백일공부에 들어가 「흥보가」,「심청가」를 배웠다. 박동실과 공부를 마친 다음해인 1939년 19 세 때는 유성준을 모시고 경북 하동군 쌍계사에서 세 번째 백일공부를 하면서 「수궁가」한바탕을 배웠다.3) 공부를 마친 박귀희는 대동가극단으로 다시 들 어가려 했으나 대동가극단이 일본 공연을 떠난 터라 종합예술단체인 한양창 극단에 입단하였다. 이때가 17세인 1937년이었다. 스승인 오태석과의 만남은 한양창극단에 입단하면서 시작되었고, 공부 장소는 봉익동 대각사 근처 익선 동이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3년을 가야금 병창을 공부하였다. 오태석은 목청이 좋고, 판소리 한바탕을 가야금 병창으로 노래할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후 박귀희는 한양창극단을 거쳐 임방울, 박초월 등과 함께 1943년 동일창 극단을 재창단하여 동일창극단 단장을 맡았다. 동일창극단은 창작창극 「일목장군」 등을 공연하였다. 창작창극은 신파조에 창을 혼합한 형식으로 아직 창극다운 창극을 접해보지 못했던 시민들은 새로운 형식의 창극에 큰 관심을 보였다. 동일창극단의 성공작인 「일목장군」에서 박귀희는 남자주인공을, 박초월은 여자주인공을 맡았다. 미모에 연기력까지 뛰어났던 박귀희가 남자 역으로 분장한 선화공주는 대히트를 쳤다. 창극에서 여자가 남자역으로 출연한 것은 박귀희가 시초이다. 동일창극단은 서울 공연이 끝나면 계속 지방 각 도시를 순회공연하였으나 광복되던 1945년 부산에서 해산되었다. 박귀희는 가야금 병창 무형문화재였지만 여창남역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30대에 국악학교 설립의 뜻을 품다 1945년에는 여성국극단의 효시인 여성국악동호회를 창설하고 상무이사로 피임되어 활동하였다. 창립공연으로 「옥중화」 이후 1949년 2월에 공연된 햇님과 달님의 성공으로 여성국극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아마도 단 하나의 작품으로 단 1년만에 전국을 뒤흔들어놓고 뚜렷한 대중예술장르로 자리를 굳힌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드물다. 적어도 1950년대는 여성 국극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국극의 대유행으로 종래의 창극단들은 거의 사라졌다. 여성국극단이 초기의 음악극으로서 공연적인 성취보다 남녀간의 사랑 등을 확대하며 인기를 좇아 변질되자 박귀희는 여성국극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다. 여성국극단은 1960년을 전후로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5·16 이후 민족적 민주주의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기존 국립극단 국립오페라단 국립무용단 외에 국립국극단을 더 두게 되었다. 박귀희는 국립국극단 창 단을 앞두고 자격있는 국극인을 양성하는 국극요원양성소 개설을 거론할 정도로 국극단 창단에 음양으로 기여를 하였다. 국립국극단은 1973년부터 국립 창극단으로 바뀌는데, 이때 박귀희는 단장(1980~1982)을 맡았다. 1960년대 들어 문화의 소용돌이가 거세지자 박귀희는 일본 교포 위문공연 으로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일본에서 고생하며 살던 교포들에게 우리 음악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한을 풀어내기에 안성마춤이었고 이런 심리적인 현 상을 박귀희는 잘 알아차렸다. 1961년 일본 거류민단장 박수정의 제의에 따라 동경에 무악원을 세웠다. 강사는 박귀희를 비롯하여 민요에 안비취, 가야금에 문경옥, 장고춤에 강문자, 민속무용에 이춘자 등 5명이었고 박귀희는 운영 대 표 겸 판소리를 가르쳤다. 동경 무악원은 무려 17년간이나 운영된 뒤 1979년에 문을 닫았다. 공연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서독, 베네수엘라 등 세계 각 국으로 확대시켰다. 국내에서도 가야금 병창활동을 62회나 펼쳤다. 전통예술에 대한 국가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박귀희는 제23호 가야금 병창 문화재로 지정받았다. 1968년의 일이다. 어릴때부터 명민하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박귀희는 시대 변화에 대 한 이해도 빨라 민족음악의 새 장을 여는 흐름에 항상 같이하고 있다. 1972년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 「효녀 심청」에 박귀희는 영화음악으로 참여하 여 「심청가」일부 대목을 불렀다. 향년 72세를 일기로 타계 할 때까지, 호남세가 주류인 국악계에서 드물게 영남맥을 이어내었다. 평생 소리를 하면서 번 돈을 국악계의 앞날을 위해 선뜻 내놓았던 박귀희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교육과 민요수집 작곡 악보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예는 도이다 박귀희의 소리는 1950년대에 취입한 유성기 음반부터 1993년 작고 직전에 녹음한 콤팩트 디스크까지 다양하게 남아있다. 박귀희의 자서전 『순풍에 돛 달아라 갈길 바빠 돌아간다』에 따르면 60년대말부터 민요 채집을 구상했고, 이를 국악예술학교 교장이던 박헌봉에게 알렸다. 두 사람이 먼저 뜻을 맞추고, 아시아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서 모은 전승민요를 문화재관리 국에 기증하였고, 박귀희는 1979년 『향사 가야금병창곡집』을 출판하게 되 었다. 50여곡이 실린 『향사 가야금병창곡집』은 지금까지도 가야금 병창을 배우는 이들에게 유용한 교본이다. 종전까지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구전심수口傳心授 방식에서 벗어나서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고 혼자서도 마음만 먹으면 따라할 수 있는 교본으로 만든 것이다. 흔히 민요가 수들이 부르는 「꽃타령」,「뽕따러 가세」,「옹헤야」 등은 박귀희에 의해 만들어져 불려지고 있다. 예藝에 산다는것은 험난하다. 예를 도道로 닦기에는 더 힘이 든다. 그런 예 도의 길을 박귀희는 걸어왔고 역사 속에 살아남았다. 소리꾼으로서는 동편제 의 법통을 이어받은 유성준의 제자로서 동편제에 속한다 할 수 있으며, 가야 금 병창으로는 고종 때 가야금 명인인 박팔괘의 정통 가야금 병창의 맥을 이 어온 오태석의 제자로서 법통을 이어받았다. 또한 판소리와 창극 그리고 여성국극 발전에도 큰 자취를 남긴 박귀희 명창은 평생을 국악살리기에 투신했 다.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향사 박귀희 추모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인 김덕수는 사람이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다수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걸 수 있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확인했다. 나는 박귀희 선생님을 통해 전통을 어떻게 후대에 전승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과 가능성을 보고 배웠다고 밝히고 있다. 박귀희 명인의 고향인 경북 칠곡군은 2021년 향사 박귀희 명창 뮤지컬(연희 창극)을 제작·발표하고, 전국가야금병창대회도 열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칠곡군에서 호국평화공원과 연계하여 향사 박귀희 명창 기념관을 건립하여 국립전통예술고 유품전시관으로부터 유품을 확보하여 전시할 계획이다. 평생을 국악발전에만 쏟은 국모 박귀희가 있었기에 우리 국악은 체계를 잡고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국악을 통해 우리 문화의 초석을 다진 향사 박귀희의 숭고한 예술정신은 날이 갈수록 그 향기가 더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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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39: 유어예(遊於藝)의 귀명창, 호암 이병철 선생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연주자와 청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하겠다. 연주자 없는 청중이 있을 수 없고, 청중 없는 연주자도 존재 의미가 없다. 전통음악계에서도 사정은 여일하다. 좋은 명인 명창 뒤에는 반드시 귀밝은 애호가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스스로 노래는 못하지만 듣고 즐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을 일러 귀명창이라고 한다. 여기 진실로 국악을 아끼고 애호하던 ‘귀명창’을 한 사람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고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 선생을 앞세울 것이다. 전공이 아닌 사람이 어떤 특정 분야의 예술을 관심 있게 알기만 해도 세간의 화제가 되기 일쑤다. 그런데 호암 선생은 국악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쳇말로 가히 마니아 수준이었대도 과언이 아니다. 늘 국악을 듣고 즐기며 생활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논어》에서 말하는 ‘지지知之’와 ‘호지好之’의 단계를 넘어 ‘낙지樂之’의 경기에 들어 ‘유어예遊於藝’의 세계를 소요逍遙했던 분임에 틀림없다. 호암 선생의 국악 애호 덕분에 나는 그분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수시로 나를 불러 국악 관련 심부름을 시켰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 일해 본 사람이면 잘 알 것이다. 조직 내에서 호암 선생의 위상이란 가히 소왕국의 황제격이었다. 사장단도 만나 뵙기 힘든 처지인데, 하물며 평사원이 호암 회장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행히도 나는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했다는 이력 때문에 그 ‘지엄한 회장님’을 때때로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TBC에 입사하기 전만 해도 호암 선생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세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선 그분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었으니 세평을 그대로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분에 대한 세간의 별칭은 ‘돈병철’이었다. 돈 많은 기업가라는 뜻의 속칭이었다. 나도 그 같은 평소의 인상을 지닌 채, 당시 중앙매스컴센터 공채 3기로 호암 선생 회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금도 그때 정황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해지는 민망스런 일이 하나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을 그대로 실천했구나 싶은 자괴감이 앞서기도 했던 장면이다. 사내 물정을 모르던 입사 초년생 때의 일이다. 이 회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당시 중앙일보 사옥이었던 서소문동 9층짜리 건물 3층에 호암 선생의 방이 따로 있었다. 물론 호암 선생의 집무실은 당시 소공동 반도호텔 맞은편 삼성 본사 건물에 있었지만, 갓 창설한 중앙매스컴센터에 애착이 많았던 호암 선생은 중앙일보사 회장실을 자주 사용했다. 아무튼 집무실 옆에 응접실이 있고, 거기에 여섯 사람이 서로 대좌해서 앉을 수 있는 낮은 탁자가 길게 놓여 있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여섯 자리에 다섯 분이 앉아 있었다. 호암 선생이 그곳에 들를 때마다 종종 배석하는 멤버들이었다. 중앙에는 이 회장이 앉아 있고, 그분 좌측에는 홍진기 중앙일보 사장, 우측에는 김덕보 동양방송 사장이 앉아 있었다. 호출된 나는 이 회장님 맞은편에 앉았고, 내 우측에는 당시 승계 수업을 받고 있던 이건희 씨가 있었으며, 좌측에는 비서실장이 있었다. 이어서 여비서가 차를 날라왔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였다. 무언가 지나치게 엄숙하다는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나는 용감하게(?) 차를 마셨다. 당시 이십 대 젊은 혈기에, 또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갔다는 내 나름의 우쭐함도 있던 터라 그랬는지, 아무튼 나는 속으로 ‘아니, 먹으라고 주는 차인데 왜 못 마셔’라는 객기와 함께 차를 마셨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자리에서 차를 마신 사람은 나를 제외하면 딱 두 사람밖에 없었다. 물론 이 회장과 홍진기 사장이었다. 아들 이건희 씨도 김덕보 방송 사장도 차를 그대로 보고만 있다가 물렸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나 역시 차를 마시지 못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알아채고 세상눈을 뜬 이후였다. 내가 겪어 본 이병철 회장은 실로 걸출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분만큼 우리 전통문화예술을 아끼고 귀히 여기는 명사를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전문가가 민망할 정도로 문화적 소양이 풍부하고, 좋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꿰뚫고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70년대 초였을 것이다. 당시 해군에서는 문명의 혜택을 못 누리는 섬 지방을 순회하며 의료봉사를 하곤 했다. 나는 해군본부와 협의해서 그 순회선을 타고 낙도를 돌며 민요 채집을 하기로 했다. 이 계획을 이 회장께 말씀드리니 아주 반색하며, "그 같은 일은 문공부 사람들이 해놔야 하는데 아직 꿈도 안 꾸니, 뉘 할 수 있으면 하그라. 그런데 돈은 운현궁 홍두표에게 얘기해라.” 아니, 국악을 우습게 알던 시절에 낙도의 민요까지 소중히 여겨 채록을 반기며 흔쾌히 허락을 하다니! 호암 선생의 전통문화 사랑은 이처럼 넓고도 깊었다. 며칠 후 나는 작업복에 배낭을 챙겨서 승선 준비를 하고 출근했다. 갑자기 이사실에서 호출이 왔다. 훗날 삼성그룹을 떠나 대원외국어학교를 창설한 이원희 이사의 호출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다짜고짜 험한 소리로 화를 부리며, 캐비넷을 열더니 서류철 하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뭐 당신만 민요 채집할 줄 알아? 나도 다 계획이 있어. 그리고 당신 라디오 소속이야 텔레비전 소속이야? 왜 텔레비전 쪽 사람하고 일해?” 그러고는 당장 운현궁에서 근무하던 텔레비전 파트 홍두표 국장을 부르더니 민망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같은 방에 나란히 책상을 하고 있던, 후일 삼성전자를 일으킨 강진구 이사와 최당 이사는 불편한 듯 말없이 외면하고 있었다. 아마 그날 이후 홍두표 국장은 내심 어금니를 물고 와신상담하며 훗날을 도모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소동의 속내는 뻔한 것이었다. 서로 눈치껏 이 회장에게 잘 보여 빨리 출세 좀 해 보려는 심산이었음은 불문가지였다. 호암 선생의 특출난 문화 안목 외에 또 다른 개성이라면 나는 그분의 명쾌하고도 단호한 성품을 손꼽고 싶다. 한 번은 민속악 계 원로였던 박헌봉 선생한테 가서 국악곡을 하나 복사해 오라는 분부였다. 정남희 산조를 구할 수 없느냐고 말씀했을 때도 그랬고, 그 후 백낙준 거문고 산조를 수소문해 보라는 지시에도 얼른 대안이 안 보여 막막했지만, 이번에도 악곡명이 내겐 익숙한 게 아니어서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당시의 곡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흔히 알려진 곡이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아무튼 나는 정릉의 박 선생 댁을 찾아가 회장님 뜻을 전했다. 그런데 박헌봉 선생도 연세가 높아 노망기가 있었는지, "아, 이건 내가 진주에서 얼마나 어렵게 채록해 온 건데…’라는 등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복사를 기피했다. 그 후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다. 호암 선생은 모든 것을 단칼에 결론낸다. 한 번의 지시로 결론이 나야 한다. 재고나 두 번 다시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 바로 저런 성품이 큰 기업을 일군 비결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쾌도난마의 명쾌한 과단성이 있었다. 키가 작고 가냘픈 체구에 목소리는 작고 조용했으며, 안경 너머 입가로는 늘 자애로운 미소가 잔잔히 흐르던 호암 선생이었지만, 이때만은 아주 단호한 어투로 내게 잘라 말했다. "니 다시 한번 그 집에 가면 내한테 혼난다!”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예다. 복사본을 받으면 그냥 있을 이 회장이 아니다. 더구나 그 이전부터 당시 8백여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남산에 국악예술학교를 지어 주는 등 갖가지 배려를 해 주던 상대가 아니던가. 그러니 호암 선생이 느꼈던 배신감은 여간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고, 사람의 평가는 사후에 제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데, 유명幽明을 달리한 호암 선생의 진면목이라면 역시 내게는 여일하게 국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꼈으며, 겪어 보지 않고는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전문가가 부끄러울 정도의 탁월한 ‘귀명창’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와 생각해도 아쉽기 짝이 없는 사연이 있다. 한 번은 이 회장님께 명인 명창들이 더 늙거나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들이 부를 수 있는 모든 곡들을 전부 녹음해서 후세에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호암 선생은 흔쾌히 공감했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 이은관 선생을 모셔다가 배뱅이굿을 필두로 그분의 노래를 수록했다. 그리고 박녹주, 박초월, 김연수, 신쾌동 같은 명인 명창들도 틈틈이 모셔서 녹음했다. 그 후 김소희 명창을 모셔서 그분이 부를 수 있는 민요와 단가들을 전부 녹음했다. 그런 다음 판소리 전 바탕을 녹음 기록할 차례였다. 그런데 국악사의 한 흐름은 거기서 끝났다. 언젠가는 따로 언급할 계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TBC와 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암 선생의 문예 사랑의 열정은 시정市井의 상식을 초월한다. 여기 그분의 다방면에 걸친 국악 사랑의 진정성을 방증할 몇 가지 좋은 사례를 소개한다. 앞서 정남희와 백낙준의 음악을 구해 보라는 호암 선생의 언급이 있었다는 얘기는 얼핏 했다. 글로 전하는 얘기들이니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누군지도 모르고 찾을 길도 없는 사람의 음악을 복사해 오라는 지엄한 회장님의 주문을 받은 당사자의 입장은 실로 당혹스럽고 막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상상이 되겠지만 차도 제대로 못 마시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정남희가 누구고 백낙준이 누구냐고 언감생심 반문해 볼 수도 없는 일이고, 일단은 "네, 알았습니다” 하고 무조건 복창하고 나오는 길밖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보니 정남희는 월북 음악가였다. 당시로서는 알 길이 없는 인물이었다. 월북자는 이름조차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시절이니 더더욱 안개 속의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의 가야고 산조를 구해 온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 정남희 명인의 얘기가 나온 김에 그가 월북하게 된 동기를 전해 두는 것도 좋을 성싶다. 어느 날 박동진 명창이 내게 직접 들려준 얘기다. 정남희의 월북은 한마디로 애정 관계 때문이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속담처럼 사귀던 애인을 빼앗긴 홧김에 월북을 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요정에 나오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 시절 서슬이 시퍼렇던 서울경찰청의 총책 장택상이 그녀를 채갔다고 한다. 찍소리도 못한 정남희는 분통을 참지 못하고 월북을 결행했다. 다시 국악 얘기로 돌아가서, 난감하던 백낙준의 거문고 산조는 어렵사리 수소문 끝에 유성기 녹음을 복사해다가 호암 선생께 진상했다. 그때 그 난제를 해결해 준 사람이 후일 민속음악계에 큰 업적을 남긴 이보형 선생이다. 이 선생은 당시 신촌에 살고 있었는데, 어렵게 집을 찾아가서 통성명을 하고 백낙준의 음반을 빌려다가 복사했다. 그 같은 인연으로 이보형 선생과는 그 후 꾸준하게 동학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사람의 관계란 참으로 묘하다는 느낌도 떨칠 수가 없다. 한 번은 당시 미술계 원로였던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선생을 모셔다가 시조음악을 녹음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물론 당시 나는 김은호 화백이 어떤 사람인지 알 턱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즐겨 듣던 민요나 판소리 같은 음악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립다며 외면하는 시조창을 녹음해 보라니, 내심 의아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호암 선생은 국악 전반에 달통해 있었고, 모든 분야를 두루 즐기며 감상했다. 한편 그분 덕분에 나는 ‘한국 언론의 사표’니 ‘민족 지성’이니 하는 호칭으로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청암靑巖 송건호宋建鎬 선생 댁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호암 선생이 직접 청암 댁 방문을 지시했는지, 아니면 호암 선생이 원하던 음악을 수소문하던 끝에 청암 선생 댁을 가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한 시대를 이끌던 최고의 지성이요 대언론사동아일보 편집국장의 집 치고는 상상외로 초라했다는 사실이다. 그분의 가옥은 동작동 국군묘지 산자락과 연결된 흑석동 왼쪽 능선 비탈배기에 있었다. 주변의 집들도 유사했지만 청암 선생의 거처도 영락없이 퇴락한 빈촌의 모습 그대로였다. 비가 오면 새는 비를 피하려고 방 안에서 삿갓을 쓰고 살았다는 황희 정승의 얘기처럼, 청암 역시 야와육척夜臥六尺의 허름한 집에서 오상고절의 선비정신을 궁행하며 간고한 시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음을 그분의 청빈한 삶 속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같은 한 시대의 사표를 뵐 수 있었던 연분 또한 호암 선생 덕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느 해 여름방학 때였다. 당시 국립국악원에서는 전국 중고교 음악 선생들에게 하계 국악 강습을 시키고 있었다. 교육기간이 끝나자 나는 국악원의 협조를 얻어 음악 교사들을 중앙일보사로 초청하여 사옥 9층 라운지에서 다과회를 열어 주었다. 호암 선생이 챙겨 보라는 소리음반의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그분들에게 한 가지 청을 했다. 각자의 지역 학교로 돌아간 후 혹시 국악 유성기 음반이 눈에 띄면 내게 연락 좀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후 전남 강진인가 어느 지방에서 SP판 몇 장을 보내왔다. 임방울의 쑥대머리가 수록된 유성기판이었다. 그 음반을 정성껏 스트레오로 재생했다. 당시 그 같은 일을 함께 한 엔지니어는 훗날 삼성 르노자동차 사장이 된 임경춘 텔레비전 기술국의 사우였다. 아무튼 재생된 노래는 지글지글하는 소음 소리만 요란했지, 임 명창의 소리는 저 뒤편 속에서 개미소리만 하게 들렸다. 웬만한 사람이면 두 번 다시 들으래도 고개를 저을 판이었다. 그러나 호암 선생은 그 잡음 투성이의 소리를 벤츠600 안에 장착해 두곤 수시로 즐기셨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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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이애주의 시국춤이애주 (1947-2021) 주요경력 - 1968. 신인예술상 수상(문화공보부 장관상) - 1971. 서울신문 문화대상 수상(서울신문사) - 1992.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승교육사 인정 - 1996.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인정 - 2003. 만해대상(예술부문) 수상 - 2013. 옥조근정훈장 - 2017. 박헌봉 국악상 수상 - 2019.~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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