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국악신문(www.kukak21.com)은 1994년 5월 26일 ‘국악의 해’에 창간한 30년 역사의 전통문화 신문이다. "전통예술 보급에 앞서가는 신문”을 사시로, 설장고의 명인 김병섭의 차남 호규 명의로 창간하였다. 성악·기악·무용·연희 분야 및 한복·한식 등 분야를 대상으로 민족음악·민속학·한국학·문화학 범주에서 다루고 있다. 2020년 6월 21일 김지연을 발행인, 기미양을 편집인으로 ‘인터넷 국악신문’으로 재창간, 편집부·광고부·사업부 체제로 운영하였다. 2021년 8월 30일 기미양을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변...
세시풍속과 지역축제 분야 이론가 김명자교수 ‘국악신문’의 창간으로부터 100호를 맞는 기간은 가히 ‘한국은 축제의 나라’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전후하여 시작된 지역축제 붐은 1994년 ‘국악의 해’를 정점으로 관심을 고조시켰고, 새 세기를 맞는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국을 축제의 공간으로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1958년 시작되어 서울에서만 개최하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가 20주년을 맞아 전국 중소도시 순회 개최로 확대되면서 지역축제의 열풍을 가속시켰고, 1996년 이의 실상을 기록한 ‘...
전통춤, 이론과 실기 정통한 이병옥 교수 2000년12월10일,국악신문은100번째기념호를 발행했다.이를 맞이하며 편집위원회 위원을 확대 개편했다.총12인으로 구성한 것이다.이 편집위원 대폭 확충은 기존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 것인데,그것은 인물 중심에서 분야 또는 종목 중심의 이동이다.이는 새 세기 들어 국악 개념의 확대에 따른 것이다.기존의 국악은‘전통음악’중심이었다면 전통음악과 함께 연행되는 공연 분야와 복식 분야는 물론 관련 학술 분야까지를 포괄하게 된 것이다.이에 따라 국악신문도 이 경향을 수용하여야만 했고,그래서 전문...
‘신국문학운동’의 개척자 설성경 교수 특집부 기자 ‘국악신문’은100호를 기념하여 특별호를 발행했다. 2000년12월10일자 발행이다.이특별호에서 눈에 띄는 기사는‘국악신문의 새로운 지평 열기’라는 제하의 시론이다.정주기 체계에 따른다면100호는 의미가 매우 큰 계기이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경과에 대한 회고와 새로운 길에 대한 각오를 표명하게 된다.이에 따라 ‘국악신문’으로서는 당연히 전문적인 소견을 피력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취지에서 쓰여진 것이 이 시론이다....
국악문화 정책전문가김승국이사장 [국악신문] 노원문화재단 김승국 이사장 당시로서는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국악예고의 관계에 대해 우리나라 국악교육과 인재 양성의 양축으로 인정하지만 그 생태적 긴장관계에 대해서는 드러내 놓고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 글은 "국악교육의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하여 시정하고 국악예술교육의 방향을 합리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요지를 제시하였다. 두 학교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아악과 정악 대(對) 민속악의 전승 발전을 위해 설립 된...
무속음악 기층성 강조, 양종승 박사(下) ‘국악신문’ 100호 기념 기획물 국악시론의 첫 필자인 양종승 박사는 ‘국악은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야 한다’는 제하로 신앙과 국악의 관계를 제시했다.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국악신문 고정칼럼 '국악시론' 첫 칼럼(양종승 박사) 2000년 10월 10일 제97호 "춤은 장단 속에서 추어지고 가락의 음률이 발림 속에서 맺어지는 국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그 속에는 상징적 행위를 동반한 놀이성과 의례성이 대단히 강조되어 ...
국악신문지면 전문화 안착에 기여, 양종승 박사(中) 특집부 기자 제100호를 맞으며 부문별 전문가 12인의 편집위원 선임은 지면 전문화를 위한 것이다. 이들은 전문성과 나름의 명성으로 기획과 아이템(Item) 선정에 참여하고, 칼럼 및 기획기사 집필과 교열 업무는 물론, 광고 수주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국악신문의 정체성 제고에 힘을 더했다. 양종승 박사는 무속분야 전문가로서 칼럼 집필 등을 통해 무속의 역사, 기능, 무속음악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지난 회에서는 국악신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면 전문화 안착에 기여, 양종승 박사(上) 양종승:샤머니즘박물관장 신문과 방송은 소위 계기특집(契機特輯)을 중시한다.역사적이거나 국가적인 기념일에 대비하는 특별 취재나 편성물이거나,자사 창립 또는 창립자 관련 기념일 특집이 대표적이다.대개는5내지10년 또는 회차(回次)단위의 정주년(整週年,꺾어지는 해)에 하는 경우가 많다.「국악신문」도100호를 기념하여 지면 전문화를 단행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당연히100호를 맞는 감회와 더불어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기념사는 물론 편집...
문화재청 이소라 위원 참여 민족음악연구소(민음연) 이소라 소장, 우리나라 최고 농요 연구가라는 칭호가 따른다. 70여권의 저서와 2017년 문화재청에서 문화훈장(농요 연구)을 수여받았다. . 2000년대 들어 「국악신문」 편집(자문) 위원의 수가 늘었다. 기존 4명 내외에서 6명 내외로 확대된 것이다. 이는 「국악신문」의 편집 방향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컨대 2003년 1월 20일 자 제126호 판권에는 이소라 김명자 양종승 김연갑 김승국 김종철 6인이 표기된다. 이 중에 이...
‘풍류방’동참,영상작가 천승요 「국악신문」이 국악전문 매체로서 정립되는 시점은 제30호를 전후하면서 부터이다. 창간으로부터 2년 후이다. 이렇게 규정하는 근거는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편집진용을 갖추었다는 것을 주목한 것이다. 이는 고문과 편집국장과 편집위원이란 진용을 구성, 운용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정체성을 들어내는 편집 방향을 설정하여 사업화와 기사화 하였다는 점이다. 전자는 앞에서 고문 정범태, 편집국장 우실하, 그리고 편집위원 최치성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후자는 ‘국악인 자료의 수집, 정리와 이의 교육자료화’ 사업이...
국악신문편집위원 구성 국악신문 특집부 전 국악신문 편집위원 채치성 (2013-2017. 제2대 국악방송 사장) 신문사 기자들의 기본 업무는 기획, 취재, 편집, 고정 코너 집필 등이다. 그리고 이를 지원 또는 자문하는 팀이 고문이나 각종 위원회이다. 이는 상임이 대부분이나 비상임일 경우도 있다. 「국악신문」의 고문과 편집(자문)위원은 비상임으로 운영되었다. 이 기구의 존치는 「국악신문」의 운영상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즉, 광고 수주...
정범태론 3회에 걸친 국악신문 편집고문 및 풍류방 운영자, 사진작가, 국악인 전문 사진가로서의 정범태를 조명했다. 이번에는 인간으로서의 ‘정범태론’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정범태론’은 언론인이며 문화인류학자인 박정진교수가 1998년 ‘발가벗고 춤추는 기자’(화담출판)에 수록한 글이다. 세계일보 문화부장 재직시 정범태 선생과 함께 한 인연으로 한 인간의 인물론을 쓴 것이다. 1996년 세계일보 사진기자를 끝으로 퇴직한 시점에서 일본 대판 상선전문학교를 다니다 해방이 되어 귀국한 이야기로부터 전개되었다. ...
정범태가 밝힌 사진 설명 1930년대 초 경남 진주 남강 촉석루를 배경으로 조상선(창극), 송만갑(명창), 한성준(고수), 김창룡(명창), 이동백(명창), 오태석(가야금), 정정렬(명창) 등이 함께 찍었다는 사실을 정범태 선생이 밝혀냈다. ①조상선(창극), ②송만갑(명창), ③한성준(고수), ④한산월(소리) ⑤김창룡(명창), ⑥이동백(명창), ⑦김세준(김창룡 아들), ⑧한남종(한성준 아들), ⑨오태석(가야금), ⑩정원섭(고수) ⑪김봉길, ⑫ 서홍구(서도...
정범태가 남긴 국악계 에피소드 1970년대만 해도 판소리와 초기 명창들의 더늠이나 사승관계나 공력 정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은 1940년에 발간된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와 1966년 발간된 박헌봉의 「창악대강」(昌樂大綱) 정도이다. 이런 정황에서 70년대 명인명창들의 선대와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순전히 발품으로 남도지역을 다니며 ‘째비’와 ‘비갑이’의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얽키고 설킨 관계를 알기는 쉽지 않다. 이 시기 이 부분...
국악신문 특집부 최초의 국악 평론가 정범태 정범태 선생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평론가라고 하면 의아해 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70년대 활동한 원로 국악인들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이미 70년대 우리가 꺼내지 못할 말을 대놓고 했던 인물이다. 바로 "권번은 음악천재들이 다니는 줄리아드 음대이고, 당골은 대대로 예능인을 배출하는 예능 패밀리다”라는 말을 당연시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 말에 동의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를 자신있게 전거를 들어 입증 해낼 사람은 없었던 ...
세계적 사진가 정범태 지난 회 ‘편집고문 사진작가 정범태(鄭範泰)’는 국악신문의 편집진용이 갖춰지는 상황과 그 기여 인물의 한 분으로서 정범태 고문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한 독자로부터 "고문으로서도 기억될 분이지만 사진작가로서의 정선생은 세계적인 분이시다. 사진작가 정범태 선생에 대해 너무 소홀한 듯하다”라는 아쉬움을 전해왔다. 이에 국악신문과 인연을 맺는 1990년대 이전의 초기 ‘세계적인 사진가 정범태’와 현장 에피소드를 통해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기로 한다. 작품으로서의 사진이 있다면, 기록으로서의 사진도 있다...
편집고문 사진작가 정범태(鄭範泰) 편집진용의 확립은 신문사 사세의 안정과 방향성의 확정을 보여준다. 지난 회에서 살폈듯이 편집국장 직제를 두고 지면 혁신을 하는 등의 변화는 40호 발행을 전후로부터 이뤄졌다고 하였다. 이를 입증하는 하나의 아이템(Item)이 제40호부터 역대 국악인들의 활동상을 담은 명인연재이다. 제100호 까지 연재하고, 이어 정범태의 사진으로 보는 명인명창 이야기로 개재한 장기 기획물이다. 이의 집필은 편집고문 정범태(1928~2019) 사진작가이다. 정범태 (1928.9.2...
[국악신문] 우실하의 우리 문화 다시읽기(3). 1997-04-05 편집국장 우실하 기업이든 언론사든 운영체계의 확립은 내적 조직의 강화와 외적 사세의 확장으로 시작된다. 모두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 수립 결과로, 전자는 적정 능력에 따른 직제의 수립이고, 후자는 모기업을 지원하는 자회사의 운영이다. 「국악신문」의 운영체계 수립은 창간 2주년을 전후한 제40호 발간 이후로부터다. 편집국 진용이 갖춰지고 전국에 지사를 설립한 시기가 바로 이 때부터이기 때문이다. 내부...
국악신문 특집부 「국악신문」의 박헌봉 선생 회고록 ‘國樂運動 半生記’는 제98호부터 6회에 걸쳐 수록했다. 원래는 「신동아(新東亞)」 1966년 7월호부터 9회에 걸쳐 발표한 글이다. 결국 작고하기 11년 전에 쓴 것이니 이후 10여년의 생애는 진술하지 못한 것이 된다. 본 회에서는 10여년의 생애 중 중요한 업적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박헌봉 선생의 민속악 발전에 기여한 실상이 제시 될 것이다. 기산 박헌봉 선생 #해방 직후 혼란기 국악을...
국악신문 특집부 박헌봉 선생의 國樂運動 半生記는 해방전후 국악의 위상 정립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자전적인 글이다. 이를 「국악신문」은 제98호 2000년 10월 25일자부터 재수록 하였다. 취지는 당연히 국악의 중심이 민속악에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제6회는 ‘초대 내각마저 국악을 외면’하여 설득하고 이해시켜 지원하게 하는 상황을 회고한 대목이다. 국악학교설립기성회는 이승만 초대 내각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래서 요리집 청향각(淸香閣)에서 주...
국악신문 특집부 「국악신문」이 국악의 위상정립 사업에서 박헌봉 선생의 업적을 소중하게 기리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선생의 國樂運動 半生記를 정리, 조명하는 두 번째 글이다. 기산 박헌봉 [朴憲鳳] 1907년 ~ 1977년 박헌봉 선생은 해방전후 민속음악 학자로는 거의 유일한 분이다.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역임하며 민속음악가들을 배출시키고 세상에 국악의 맛과 멋을 되찾아 주기에 열성을 다했다.그래서 이 분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민속음악의 길을 찾는 것이라...
국악신문 특집부 지난 회에서 살핀 정범태 선생의 사진과 해설로 연재된 명인은 이후 정범태의 사진으로 보는 명인명창 이야기로 100호에서 이어졌다. 이를 전후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연재물이 기획, 연재가 시작되었다. 이 역시 ‘국악의 위상정립과 대중화 방안 수립’이란 취지에 맞는 기획물이다. 바로 기산 박헌봉(岐山 朴憲鳳/1906~1977)의 國樂運動 半生記이다. 제98호 2000년 10월 25일자부터 분재(分載) 되었다. 이 글은 원래 신동아(新東亞) 1968년 7월호부터 9회에 걸쳐 연재된 것이다. 42년 전의 기록임으...
국악신문 특집부 제13회에서 밝힌대로‘국악의 위상정립과 대중화 방안 수립’은 국악신문의 대표적인 사업이다. 1996년 신년호1월23일자 제33호에 발표한‘96국악신문 기회사업’에 의하면 제1사업이‘예능보유자 인물사진 및 전통문화사진 자료 학교 보급’이다.사업 반향이 교육에 방점을 둔 것임을 알 수 있다.물론 공식화 한 것은96년 들어 시작된 사업이지만 사실은 국악신문의 기조이기도 했다.이 사업의 기본은 역대 국악인들,그 중에서도 민속음악 대가들의 업적을 국악사에 정위(正位)시키는 일과 그 위상을 현장의...
국악신문 특집부 국악신문의 사시와 창간이념을 바탕으로 한 언론사로서의 지향성은 기사와 사업과 발행인의 발언 등을 통해 실현된다. 지난 회에서는 사시를 확인한 바 있는데, 이번 회에는 3년간의 신년사를 통해 국악신문의 지향정신을 살피기로 한다. 모든 기관 단체나 기업은 구성원을 대상으로 새해의 설계를 제시한다. 신문은 지면을 통해 축시나 저명인사를 통해 구성원과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국악신문 역시 매년 1, 2면을 통해 유관 단체장과 발행인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이 중에 창간 3년까지의 신년사를 대상으로 살펴...
국악의 위상정립 사업(1) 국악신문 특집부 국악신문 사시(社是)는 다음의 4개 항이다. 첫째 ‘삶의 풍요를 인도하는 정보로 공동체 결속에 기여함’이고, 둘째,‘놀이문화를 중심으로 한 국악 중흥’이다. 셋째.‘민속음악 생활화에 기여’이고, 넷째,‘국악 전승 공동체 지원’이다. 일반적으로 사시는 사주나 창간 동인들에 의해 제정되어 창간사와 함께 공시된다. 곧 그 신문사의 이념으로 창간 이후의 신문사 구성원의 지향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사시의 실천은 사측의 사업과 기자들의 구체적인 기사로 ...
국악신문 특집부 신문사의 사시는 창간이념이다. 신문사 사주의 경영철학이나 경영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신문사의 경영방침이나 사원들의 행동지침으로 구체화된 것이기도 하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언론사임으로 대개는 진실, 공정, 정의 등 언론의 역할과 관련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일반 회사 사훈(社訓)과는 다르다. 예컨대 인화(人和)라든지 단결, 사랑 등의 키워드로 이익창출을 독려한다. 신문사 사시는 대개 단문형(슬로건형)과 문장형으로 이뤄진다. 전자는 1면 제호 위나 밑에 매일 싣고 있으나 설명체...
「국악신문」 시대(1) 국악신문 특집부 제8호부터 ‘신문’으로 총 11편의 ‘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에서는 주간 전문신문 《놀이문화》의 창간배경으로부터 수익구조까지를 살폈다. 그 기간은 1994년 9월 07일 창간호 발간으로부터 동년 12월 21일 3개월간의 제7호 발간까지이다. 이 기간은 국악신문의 도약기로 수익구조상 주간신문 운영 구조로는 열악하였다. 매우 심한 산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서 새로운 개혁을 모색해야 할 상황으로 개혁을 단행했다. 그 개혁의 일단이 제호 변경이다. 바로 ‘놀이문화’에서 ‘국악신문’으로...
《놀이문화》시대(7) 국악신문 특집부 《놀이문화》의 수익구조 《놀이문화》는 제호 옆에 ‘주간’으로 표기했고, 상단에는 ‘국악종합신문’ 또는 ‘주간생활신문’으로 표기하여 놀이문화(국악레포츠) 전문 신문임을 밝혔다. 포맷상 타블로이드판(380 mm × 300 mm/5 × 11¾ 인치)의 반 컬러형이다. 신문(新聞/Newspaper)은 소식과 사건을 전달해주는 정기 간행물의 하나이다. 뉴스를 신문 기사와 사진 등의 형태로 값이 싼 신문지에 인쇄하여...
《놀이문화》 시대(6) 국악신문 특집부 《놀이문화》, 민속악을 대변하다 《놀이문화》 총 7호의 발행 시기(9월~12월)는 ‘94 국악의 해’ 정점에 있었다.창간의 시대적 배경과 그 영향권에서 발행되었다. 지난 호에서도총 7호까지의 기사 방향은 ‘국악의 해’ 주요 프로그램 소개 중심이라고 밝혔다.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창간호-10면 94 국악의 해 소식(세종국악관현악단 중국 공연, 표어 3종 소개,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 -15면 국악의 해 기념 민속예술 대공연(국악...
《놀이문화》시대(5) 국악신문 특집부 《놀이문화》의 주요기사 전 회에서는 《놀이문화》창간호에서 7호까지의 지면 분석을 통해 사시나 편집방향 등을 수립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했다. 이번 회에서는 이의 연장선상에서 주요기사를 살펴 현 단계의 상황을 구체화 하고자 한다. 우선 전체 7호까지의 주요 기사를 일별(一瞥)한다. 대상은 고정 지면으로 일종의 섹션화를 이룬 기사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창간호-농악이란 무엇인가?(2면), 소리/춤(11면...
원주아리랑을 쓰다. 한얼이종선 (2024, 한지에 먹, 40× 63cm) 아침에 만나면 오라버니요 밤중에 만나면 정든 님 일세...
같은 백자가마터 출토품이라는 것도 이규진(편고재 주인) 편병은 병을 만든 후 앞과 뒤를 누르거나 두드려 면을 만든 그릇이다.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만든 기...
윤하림 해금풍류 II 산조 윤하림 해금풍류 II 산조. (2024년 Sound Press 음반번호없음) 2023년 윤하림 ...
일본 니포노폰 취입 조선민요 ‘경성란란타령’, 1913년 Nipponophone 6170 SP음반.(국악신문 소장자료) ...
30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국립정동극장예술단 정기공연 '모던정동' 프레스콜에서 출연진이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2024.4.30 ...
국립정동극장이 4월 한달간 진행하는 '세실풍류 :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에서 23일 박병천의 '구음시나위'에 허튼춤 추는 안덕기 (사진=국립정...
국립정동극장이 4월 한달간 진행하는 '세실풍류 :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 에서 조재혁의 '현~' 공연 모습. (사진=국립정동극장). 2024....
#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공연이 지난 4월 26일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렸다. 20대에서 60대까지의 제자들 20명과 5명의 반주자와 함께 경기잡가, 경기민요, 강원도...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로 손꼽히는 남원춘향대전(남원춘향제)이 오는 5월 10일(금)부터 5월 16일(목)까지 7일간 남원시 광한루원 일대에서 열...
4월 18일부터 20일, 남산국악당에서 아트플랫폼 동화의 모던연희극 ‘新칠우쟁론기’가 펼쳐졌다.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는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된 채치성 예술감독님을 만났다. 그는 국악방송 사장, KBS 국악관현...
2024 쿼드초이스_틂 (사진=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나승열)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학로극장 쿼드의 ‘쿼드초이스’...
지난 4일, 국립국악원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118명으로 구성된 연합 관현악단 무대 ‘하나되어’를 국...
칠순을 넘어서는 길목에서 중견작가 김경혜(영남이공대 명예교수) 작가의 열번째 작품전이 오는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대구시 중구 슈바빙 갤러리에서 열린다.전시되는총 50여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