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풍류방’ 동참, 영상작가 천승요
「국악신문」이 국악전문 매체로서 정립되는 시점은 제30호를 전후하면서 부터이다. 창간으로부터 2년 후이다. 이렇게 규정하는 근거는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편집진용을 갖추었다는 것을 주목한 것이다. 이는 고문과 편집국장과 편집위원이란 진용을 구성, 운용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정체성을 들어내는 편집 방향을 설정하여 사업화와 기사화 하였다는 점이다. 전자는 앞에서 고문 정범태, 편집국장 우실하, 그리고 편집위원 최치성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후자는 ‘국악인 자료의 수집, 정리와 이의 교육자료화’ 사업이다.
국악인 자료 수집과 정리, 그리고 이의 교육자료화 사업은 국악신문이 내세운 사업으로 이를 대외 서비스하는 부서, 기획 기사로 집중하였다. 그 일환이 ‘풍류방 운영’과 ‘명인명창 선생님들의 사진 구합니다’이다. 독자를 위한 서비스와 독자로부터 자료를 수집하는 양방향 사업이다. 이 두 가지 사업은 3년 정도 지속하였다. 이 사업은 민속음악 자료를 구축하여 국악 사료화 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국악사의 중심이 바로 민속음악임을 정립하려 한 것이다. 이 점은 국악신문의 창간이념의 실천인 것이다.
‘풍류방’은 초기 고문 사진작가 정범태 선생의 자료를 활용하는 코너(사업)이다. 그러다 제48호에서 부터는 ‘비디오 천승요’가 참여하는 코너로 확대 되었다. 전자는 스틸 사진이고 후자는 동영상이다. 이는 ‘풍류방’의 활성화를 입증하는 것으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풍류방은 전통예술과 문화의 자료가 있는 곳 입니다>라는 ‘풍류방’ 코너는 이렇다.
"음악 소리 춤 인물 등의 자료들은 우리 문화를 아끼는 슬기로운 이들에게 값있는 양식이 될 것입니다. 보고 싶은 자료나 찾고 있는 자료가 있으면 풍류방으로 연락 주십시오. 사진 정범태/비디오 천승요”(「국악신문」 제40호, 1996. 11. 27, 1면 하단 5단통 박스)
천승요 선생은 이 시기 프리랜서 비디오 작가로 시작하면서 국악신문에 동참한 것이다. 1976년 서울대 국악과 자료실에서 국악자료 수집을 시작한 선생은 1979년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 시청각 자료실에서 일하며 본격적인 국악인 기록작업에 들어갔다. 1996년 중반, 문예진흥원을 퇴직한 상태였다. 이때까지 선생이 기록한 공연은 모두 1만3000여 편, 테이프만 해도 4000여 개 분량이다. 여기에는 한영숙(무용) 김숙자(무용) 김월하(여창가곡) 씨 등 이미 작고한 명인들의 생애가 생생히 담겨 있다. 선생의 기록 방식은 일반 방송의 방식과는 다르게 객관적 시각에서 공연 현장을 기록하는 촬영 방식으로 민속학 자료와 예술계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었다.
2014년에는 <무용 토크 콘서트 30년, 순간을 영원히, 천승요>라는 토크 공연이 있었다. 30년간의 기록 작업에 대한 회고와 후진들에 대한 가이드까지 실제 자료를 통해 소통하는 기회였다. 이후 2018년 무용 기록에 대한 학술대회(서울문화재단,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비대위 주관으로 열린 '춤문화 유산, 저작권 타당한가 토론회) 등을 주도하며 영상기록의 활용 가치를 강조했다. 이상에서 제시된 천승요 선생의 영상기록 관련 어록을 통해 입문 동기와 그 가치를 확인 할 수 있다.
# "전생에 화가인 인연으로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는 전통예술의 기록 지식과 기록 영상자료의 현실을 그려가고 있다.”
# "1980년대 1세대 명인들은 본인들의 춤을 긍지 있게 공연했지만, 무형문화재 정책 때문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춤이 통일되면서 많은 춤꾼들의 춤들이 사라져 갔다.”
# "자료에서 그 예술인들의 예술혼이 보여야 진정한 자료다. 자료란 나무(매니아)를 키우는 거름이요 새(예술가)는 나무숲에서 살아야한다”
# "모든 영상물 가운데 예술성과 운동성을 함께 지닌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무용영상이다. 스포츠는 역동성과 속도감은 있지만 예술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음악이나 연극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아무래도 역동성이 떨어진다.”
# "통영에서 조각배를 타고 ‘통영 오구굿’을 찍다가 바다에 빠지는 바람에 화면이 끊겨 버린 웃지 못할 장면도 담겨 있다. 몸은 빠졌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카메라는 배 위로 던져 필름을 구했다”
# "지금 저는 30년 만에 외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료는 공개돼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동안 기록한 자료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천승요 선생은 공연자체는 물론, 무용인의 근접촬영과 공연 전후의 분위기 등도 수록하는 것이 특징으로 일반인뿐 아니라 전수받고 연구해야 하는 사람들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한 기록이다. 이런 작가 정신을 인정 받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2003년 ‘춤비평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전통 예술 촬영에 반평생 천승요 씨’ 등의 활동상이 국내외 방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는 인터넷 방송국(http://artskorea.tv)을 운영하고 있다. 선생은 「국악신문」 초기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 분이다. 지난 2020년 김호규 대표 1주기 추모공연 ‘씻김’에 귀한 영상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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