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영호남 대표 전통예인 산청에 모인다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전통예인들이 산청군에 모여 신명나는 한바탕 놀음을 펼친다. 산청군은 오는 4∼5일 오후 2시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 '영호남 명무·명창전'을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공연에서는 담백하고 담대한 맛이 있는 영남의 소리와 춤, 구성지고 꿋꿋한 맛이 넘치는 호남의 소리와 춤을 선보인다. 특히 제1호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인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공연이 펼쳐져 빛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은 최종실류 소고춤의 최종실(사단법인 기산국악제전위원회 이사장), 김동언(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 보유자), 박경랑(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보존협회 이사장), 이윤석(국가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 스타 국악인 강태관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구성했다. 영호남 명무·명창전은 지난 2021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최고의 기량과 정통성을 바탕으로 대표적인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출연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지역과 장르가 다른 무형문화재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사단법인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주최·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후원, 국악 전문 기획사인 정아트앤컴퍼니가 진행한다. 기산국악제전위원회 관계자는 "영호남 예술의 특징과 특색을 녹여내어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펼침으로 지역적 분류를 넘어 하나의 예술을 펼칠 예정이다"고 말했다.
-
(22) 타고난 안무가 전황의 춤인생과 예술세계국악계로 지평 넓힌 정통파 무용가 이매방(1927-2015.8.7, 국가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27호 승무보유자), 강선영(1925-2016.1.21., 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보유자), 김덕명(1924-2015.10.24, 경남무형문화제 제3호 한량무보유자) 전황(1927-2015,5,16,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국립창극단장)등 원로무용가들과 중견무용가 정재만(1948~2014), 임이조(1950~2013), 지희영(1949~2015) 등의 작고는 격동기 근대무용사의 산증인들이자 역사적인 인물들, 과거사를 증언해주고 알려줄 대영박물관과 같은 역사자료가 소실된 것 같은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전황선생님은 80대에도 청년같은 외모와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현장에서 유일한 원로관객으로 뵙던 분으로 가장 장수하실 것 같았는데 지난해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간 전황선생님을 뵐 때마다 늘 말쑥한 양복차림, 반듯한 자세로 빼어나게 멋진 노신사의 모습에 부러움과 존경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불가사이한 점도 많은 분이라는 데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80대 고령임에도 청년같이 건강하고 멋지고 미남인 신사로 사셨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둘째, 세계적인 근대무용가 최승희의 정통파 제자이면서 몇 안 되는 남성 한국무용가인데 어찌하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국립창극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악인들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는가? 타고난 공연예술의 스타집안과 성장배경 전황(全璜, 본명 전두황)은 1927년 3월8일 함경남도 함흥시 남문리에서 전영술과 신명이의 5남3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부친 전영술은 함흥시 재판소 앞에서 사법서사를 하며 유복한 가정을 꾸렸다. 부친은 해방 직후에 작고하였고, 모친은 6·25전쟁 직전에 작고하여 어려움도 겪었지만 형제자매들이 대중스타로 우뚝 솟아 있었기에 전황은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맏형 전두옥은 역시 함흥출신 무용가 조택원과 고향친구였고,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와 절친으로 영화배우 겸 권투선수였으며, 중국에서 배운 18기 무예를 이 땅에 처음 들여왔고, 승용차를 팔로 끄는 차력도 자랑했다. 누나 전옥(全玉, 배우, 본명 전덕례, 1911~1968)은 ‘눈물의 여왕’으로 무대와 스크린의 톱스타인 그녀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셋째형 전두철은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사촌형 전운봉은 남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였고 북쪽에서도 인민배우로 대접을 받았다. 누나 전옥과 매형 강홍식(姜弘植, 1902~1971, 이시이 바꾸의 제자, 해방공간 당시 북조선영화촬영소 부소장, ‘봄타령’을 처음 부르고 유성기음반 취입한 가수)의 딸 강효실(姜孝實, 1932~1992)도 다 아는 영화배우이며, 강효실의 아들 최민수도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어 전황의 가계가 한국 근현대공연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황의 딸 전미례는 본래 한국무용을 전공하였지만 아버지처럼 분야를 바꾸어 ‘재즈계 여왕’이라 불리는 재즈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다. 전황의 어린 시절 누나 전옥이 함흥 진사관에 공연하러 고향이 오면 집 앞에는 스타 전옥을 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때 열서너 살 된 전황은 자랑스런 누나의 연극을 보기위해 친구들과 공짜손님으로 극장을 드나들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황은 1941년 함흥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함흥상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인의 삶 속에 젖어들어 갔으며, 맏형 전두옥의 영향을 받아 1946년(19세)까지 권투선수생활을 하면서 강인한 체력과 민첩한 몸동작을 단련하였다. 이러한 가계내력과 성장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국가적인 스타가 될 만큼 수려한 외모를 선대로부터 물려받았으며, 형제들과 친척들이 예술가들이 많다 보니 전황도 자연스럽게 그런 무용, 국악 등 전통문화를 익힐 수 있는 가정환경이었다. 또 새로운 문물, 스포츠,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문물과 예술에서도 적응력이 강하여 뛰어난 연기력, 체력의 유전적 DNA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황선생님의 인물치레가 범상치 않은 점은 이러한 천부적인 집안내력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유명 연기자들과 예술스타들이 타고난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후천적인 환경과 노력이 가미될 때만이 보석의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말년까지 정정하고 강건한 자태와 인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맏형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권투선수의 기초훈련에서 익힌 날렵한 잽 동작과 발 스텝과 빠른 호흡과 민첩성 등으로 무용가로서의 유연성과 리듬감, 손놀림과 발놀림 등의 신체적 바탕을 갖추게 된 것임도 알 수 있다. 최승희 제자로의 입문배경과 공연활동 전황의 춤인생은 당시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에도 잘 알려진 무용가 최승희와의 조우에서 비롯하였다. 1947년 3월 최승희가 전황의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마침 남녀무용수 단원을 한명씩 뽑는다는 소식에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응시하였다. 전황은 젊은 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하여 오디션을 받았는데 뜻밖에 최승희의 눈에 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남자로는 유일하게 합격통지를 받고 평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으로 무용경력도 없었던 전황은 1등 합격으로 운명적인 춤인생이 시작되었다. 권투선수로 다져져 손발이 빨랐고 눈썰미가 좋아 최승희의 춤시범을 센스있고 날렵하게 잘 따라 추어 무용수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평양의 최승희무용연구소(1946년 8월 개소) 3기 연구생으로 입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하고많은 거 놔두고, 남자 놈이 춤을 추냐’고 반대했었다. 전황은 집에 있는 공기총과 아코디언을 팔아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로 갈 여비를 만들었다.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받는 국비 400원과 전옥누나에게 받은 용돈 50~100원, 어머니가 보내주는 100원으로 생활비를 삼아 알뜰하게 살면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얼마 되지 않아 30여명의 연구생이 묵는 기숙사생 중에서 최승희의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배우는 수제자로 발탁됐으며 이로 인해 국비를 300원씩 더 받게 되었다. 당시 북측 정부에서 최승희에게 국비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최승희와 안막선생님께 면회를 요청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전하니 국비 중에서 추가로 200원씩 더 지급해 주었다. 이곳에서 전황이 신흥(新興)무용(지금의 현대무용), 조선춤, 남방춤, 러시아춤, 발레 등을 배울 때 바로 위 선배로 김백봉도 있었다. ‘딴 딴 따따딴, 딴 딴 딴딴딴’ 최승희선생이 북을 치면 그대로 발맞춰 따라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배웠다. 반주악사가 없을 땐 리듬감각이 탁월하다며 북과 장구를 치게 했던 것이 국악을 섭렵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이렇게 국악에 눈떠 훗날 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낸 바탕이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그 후 전황은 국비 외에 800원의 월급도 받았는데, 그에겐 금전적인 수입보다 4년 동안 허실없이 배운 최승희 안무법과 음악선택법이 소중할 뿐이었다. 최승희 안무의 ‘초립동’은 안성희에게 배워 1947년(20세)에 추었다. "최승희 선생은 히스테리가 많았어요. 1948년 평양예술극장에서 제가 안성희·김백봉과 3인무 ‘옥중투사’를 추는데, 객석에 앉아 계신 어머님과 사람들이 ‘황아! 황아!’ 부르며 야단이셨죠. 그 소리에 저는 춤순서를 잊어버렸죠. 결국 최선생께 혼나고 긴 손톱으로 꼬집혀 살이 뭉개졌죠.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셨고, 기억력, 창작력,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셨구요” 전황은 1948년 고된 훈련 중에도 단원들 누구보다 동작과 자세, 그리고 순서익히기에서 남다른 끼와 천부적인 표현력을 인정받아 최승희무용단원으로 중국순회공연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중국순회공연을 하던 중 매란방의 〈손오공〉을 보게 되었는데 분장실의 매란방은 남성인데도 춤출 때는 여자같이 곱게 추었다고 하였다. 당시 최승희는 안무작업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마다 두 달 동안 몰래 숨어 ‘노사공’ 안무를 보던 전황이 결국 최승희에 발각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승은 ‘재주있는 놈’이라며 악사 옆에 앉아서 보라고 승낙하였다. 이렇게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4년 동안 최승희의 작업, 공연, 생활 등 모든 것을 전황과 김백봉만이 가장 소상히 알고 있는 산증인이 되었다. 1950년 6월 7일에는 100명 규모의 방소예술단원으로 출국하여 9일 걸려 러시아 모스코바에 도착했었다. "하루 종일 달려야 역 하나가 나와요. 치타에 도착하니 거지 떼들이 몰려들어 돈 달라, 빵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우리도 기차 안에서 빵과 과자를 배급받아 먹었을 뿐인데...” 이런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당시 소련) 모스크바 공연 중에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정숙 단장이 ‘조국전쟁이 일어났다. 남한이 쳐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방소예술단은 정치적 색채를 띤 단체였어요. 러시아 공연도 이미 약속된 공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허정숙은 전쟁 중에도 예술단을 이끌고 공연을 감행하였지요. 러시아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공연장이었어요. 러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는데, 무대에서 탱크가 돌고 10마리의 말이 거니는 규모였습니다.” 그 후로 예술단은 밤마다 이동해 귀국길에 올랐다. 평양으로 돌아온 후에 전황을 비롯하여 최승희무용단원들은 춤연습을 하다가도 폭격이 오면 최승희연구소의 지하실에 피하곤 하였다. 전쟁의 와중에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 구민관에서 ‘해방의 노래’를 공연했다. 어수선하고 자유롭게 나다니지도 못했는데 장추화, 송범 등이 구경을 왔었다. 전황은 군인으로 위장하고 동양극장에 출연하는 전옥의 충정로 집으로 갔는데, 누나는 없고 그 집은 민청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전황은 이산의 고통을 억누르며 ‘초립동’과 ‘목동과 처녀’를 추었다. 춤출 때는 이산의 고통을 잊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평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날 꿈만 꾸었다. 1950년 8월 예술단은 광주. 목포(여기서 이매방이 안성희와 전황의 춤을 봤다는 생전 증언을 들었다), 군산을 순회공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인 조치원에서 북한 군표와 남한 돈을 한 뭉치씩 받았다. 전황은 남한 순회공연을 하다 철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되돌아가던 중 최승희의 딸 안성희 일행과 헤어졌다. 중도에 안성희는 인민군에 붙잡히지만 최승희의 딸이어서 평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가을 전황은 최승희딸 안성희와 헤어져 빨치산 잔류들과 산을 타고 군화 소리 난무하는 평양에 겨우 도착하였다. "최승희 무용연구소로 가니 러시아에서 공연할 때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나 가족은 없었다. 양복과 구두 등을 챙겨 스승 최승희가 있는 자강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 전황의 운명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평안도 석암에서 과일을 사러 가다 예술단 악사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최승희도 여기 있다. 자강도로 가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누나가 있는 남한으로 가라”하였다. 그때 안성희와 김백봉도 만났다. 그리하여 전황은 석암의 악사네 집 지하에 숨어버렸다. 순수예술가로 살 길은 남한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가는 산길에서 사흘을 굶고 허기져 살길이 막막해 허리띠를 나무에 걸었다. 목을 매 자살하려는 순간에 드라마같은 일이 생겼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주자 최옥삼(가야금산조 명인, 최승희 반주자)이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며 말렸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 숨어 있다가 숨은 사람들 대표로 전황이 미국 제일기갑사단 대적선전대를 찾아가 "최승희 제자지만 전옥의 동생”이라 하여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1951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때 조카 강효실(당시 20세)은 작가 이서구(백조가극단 작품 집필)가 지프차에 태워 서울로 보냈다. "충정로 누님댁에 가니 누님과 재혼한 매형 최일이 있더군요. 후에 누님댁은 트럭을 빌려 부산으로 피란가고 저는 국민제일 군위병으로 뽑혔으나 늑막염으로 군면제를 받고 뒤늦게 부산으로 갔죠.” 전옥은 백조가극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대스타인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고복수, 황금심 등 백조가극단장 전옥의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작고 전에 현재 육군사관학교 뒤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배밭을 소유했는데 남편 최일이 훗날 그 땅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전쟁은 함흥부자인 전황의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고, 북한에 생활기반을 둔 채 남한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중부터 안무가로 인정받은 남한생활 1951년 부산피난시절 전황은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개소하여 전옥누님이 단장으로 있는 백조가극단과 무관하게 활동했다. 정인방이 전황을 찾아와 부산극장에서 공연할 무용극 〈처용랑〉의 마귀역할을 이인범(발레)이 사정으로 출연하지 못한다고 대신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대본도 없이 음악을 맡은 나운영의 집에 가 피아노곡을 듣고 안무하여 마귀옷을 입고 현대무용같은 발레를 추었는데, 안무를 잘했다는 평을 받았다. 1953년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임춘앵 등이 주축인 여성국악동호회(여성국극의 효시, 1948년 창단)에서 활동하는 최승희 반주악사였던 박성옥을 따라 동래온천장에서 창극연습에 참가하여 유치진 작 창극〈가야금〉 초연 때 아쟁(박성옥으로부터 이미 배웠음)을 연주하였다. 그때 전황은 박성옥의 연주를 돕다가 한영숙의 춤 〈가야금의 노래〉를 보는데 안무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춤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햇님창극단장 김주전이 한영숙에게 전황이 최승희 제자니 한번 시켜보라는 귀뜸을 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한영숙이 전황에게 안무해보라고 부탁해 인정받은 것이 오늘날까지 안무가로 자신감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성군무인 만큼 춤은 추지않고 안무에만 열중하여 여성국악동호회의 후신인 햇님창극단은 잘 나가게 되었고 전황은 안무가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작품 〈햇님달님〉에서 라이벌인 박귀희(햇님)·김소희(달님)가 노래하고 안무는 전황의 몫이었다. 국악을 듣는 귀가 있으니 다른 이가 일주일 걸릴 안무를 하루나 이틀에 완성했다. 동래온천장 공연은 자금이 넉넉해 신선놀음이었지만, 여성국극단이 예닐곱 개씩 생기다보니 서로 제살깎기식 경쟁을 했고 결국 해체를 거듭하다 국립창극단이 태동하게 되었다. 당시 출연료는 명창이 1만원, 악사는 9천원, 안무가는 6천원 정도 받았다. 돈을 벌게 된 23세 전황은 1951년 11월 이조판서를 지낸 집안의 딸 다섯 살 연하의 김봉선과 금정사에서 결혼하였다. 여성국극에 반한 동래여고 출신 김봉선이 햇님창극단 오디션에 뽑혀 무용수로 투입되면서 사귀다가 눈이 맞았었다. 처형이 예기 김강남월로 7세에 레코드를 취입한 천재소녀 명창이었다. 그가 소리한 뒤 순서에는 서로 무대에 나가길 꺼릴 정도였다고 하였다. 당시 누님 전옥은 예술가가 일찍 결혼하면 신세망친다고 반대했었지만 결혼 후에는 처가살이를 했다. 첫아이는 출생 직후 죽었고 5년 후 태어난 전미례(52·서울전미례 재즈무용단대표), 죽은 딸의 이름 ‘미례’를 다시 붙였다. 전황의 2남2녀 중 맏딸 전미례만 춤을 물려받았다. 펄펄 나는 힘과 예술적 열정을 미국 재즈유학에 쏟았고 국내 재즈무용계 무용학 박사 1호를 기록했다. 6·25 전쟁 후 부산에서 북한 출신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 때 최승희 제자인 전황은 전옥의 신원보증으로 안무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이인범, 송범은 활동하지 않았고, 김백봉도 북한출신의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조용했었다.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터전이 국극판이었다. 김백봉, 강선영 등도 여성국극단에서 안무했었다. 국극에는 오프닝춤, 상징춤, 경사춤, 피날래춤 등 적어도 너댓 가지 춤이 필요했다. 전황은 국극을 안무하며 창을 계속 들었기에 귀명창이 되었다.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창을 들으며 누구보다 빨리 안무했다. 50여년 이상 국악을 들으며 입으로는 안 되지만 손하고 가슴 속으로는 연주가 가능했다. 〈벌에 쏘인 꽃〉 등 수많은 국극과 창극을 안무했다. 대표작은 첫 작품인 〈가야금〉.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우륵을 따라간 가실왕과 그를 사모한 배꽃아기의 사랑이야기 자체가 건전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무용작품도 전황류 〈부채춤〉, 〈장구춤〉, 〈소고춤〉, 〈장검무〉, 무용극〈황우와 우미인〉, 〈시집가는 날〉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명창 박귀희와 김소희는 형님아우 하면서 잘 지냈지만 서로 최고이고 싶어 했고, 서로 전황에게 하소연했었다. 박귀희의 명성이 더 앞섰기에 김소희는 늘 불만이었다. "내가 나이도 위고 소리도 잘 하는데 왜 밤낮 박귀희 다음에 김소희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박귀희는 스스로 김소희만큼 소리가 못하다는 걸 깨닫고 가야금병창으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고, 김소희는 판소리로 지정받았다. 북한출신이고 최승희의 제자라는 이유로 소외시켰지만 실력으로 춤을 인정 전황은 최승희 선생에게 배운 춤을 바탕으로 창작했으니 내 몸에서는 항시 최선생님의 춤냄새만 난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자 무용만으론 생활비가 되지 않자 영화사 일도 하고 백조가극단도 봐주고 돈이 되는 일이면 창극단 안무도 하는 등 최승희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춤실력과 안무력을 바탕으로 바쁘게 살았다. 또한 늘 북한콤플렉스가 있었다. 예를 들어 흰 의상과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 빨간색이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보자고 하여 누가 안무했느냐? 왜 빨강색 의상이 가운데로 몰리느냐? 꼬치꼬치 따져 마음대로 창작할 수 없었다. 또 남한 무용가들은 '이북에서 온 주제에 어디를 넘봐' 하는 식으로 질투하기도 했다. 부산피난시절 여성국극단 안무를 할 때 "전황이가 누구냐” 고 하더니 무조건 쇠고랑을 채운 적도 있었다.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간 그에게 "왜 남한으로 넘어왔느냐”면서 간첩취급을 했다. 물론 매번 누나 전옥이 보증을 서서 풀려났지만 그 후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북한출신임을 숨겼지만 전황은 스스로 떳떳하게 밝히곤 하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당시 김백봉과 남편 안제승도 종로경찰서에 불려갔으며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받았다. 올림픽 때 안무를 맡고 싶었는데, '전황이는 이북에서 왔다'며 그를 추천하지 않아 참여를 못한 적도 있었다. 초기의 무용가들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행사안무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얻었다. 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는 실력 있다고 알아주었다. 한국민속예술단원 및 안무자로서의 왕성한 해외활동 1958년 국극의 전성기까지 안무가로 활동한 전황은 결혼 후 서울로 이주하여, 1963년 광화문에 신흥무용학원을 내었고, 체계적인 춤교육 덕분에 조교를 두 명이나 두고 지도하였다. 1963년 서울민속무용단 활동과 더불어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등 300명의 단원들은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해체와 재창단을 거듭하며 예그린도 10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말기 멤버로 동참한 전황은 권려성의 후임으로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 및 안무·연출을 맡았으며, 1964년에는 명동국립극장에서 이틀 동안 제1회 춤 발표회를 가졌다. 이틀 공연은 대박이었다. 흥행사가 붙은 공연은 대전에도 초청됐다. 당시 김백봉은 필동에 연구소를 차렸고, 장추화의 제자 송범은 현대무용을 추었다. 그 후에도 1967년까지 매년 전황 민속무용 발표회를 가졌다. 1967년 정일권 국무총리 때도 계속 민속예술단에서 활동했다. 1968년 한국민속예술단 지도위원 및 출연자로 멕시코 올림픽·일본 공연을 하였다. 송범, 김백봉, 김문숙, 전황 등과 함께 조택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들은 세계 각국을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 때 전황은 〈부채춤〉 〈농악〉 〈장고춤〉 〈무당춤〉 등 동적인 춤을 안무하고 추었다. 1970년 정부문화사절단 지도위원으로 일본 및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였고, 1971년 정부문화사절단으로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레바논 일본 등 순회공연, 1972년 정부문화사절단 무용총감독으로 유럽·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 24개국 순회공연, 1973년 문공부 파견 일본 신주쿠 고마극장에서 〈춘향전〉 안무와 국립창극단 〈배비장〉 안무를 하였다. 1976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으로 문공부 파견으로 일본 도쿄국제극장 쇼치구가무단의 〈심청전〉을 안무하였다. 1977년 정부문화사절단 유럽 11개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1978년 하와이이민 75주년 기념 한국민속예술단 연출·안무를 맡았으며, 1981년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공연 및 대예술제에 연출·안무로 농악을 올렸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가적 행사와 해외공연의 안무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무용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흩어진 〈농악〉을 무대화한 주인공이 바로 전황이다. 한두 시간씩 치는 농악을 15분 정도로 압축해 많은 가락과 춤사위를 정리했다. 김덕수와 최종실 등 사물놀이패가 구성되기 전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좋은 점을 뽑아 50~60명이 오르는 무대농악으로 구성했다. 처음 선보인 건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공연에서다. 교방춤과 마당춤을 극장예술로 다듬으면서 극장양식의 변화를 주도했다. 한국국악협회 이사장과 국립창극단 단장을 역임한 전황 최승희 제자로 안무가와 무용가로 활동한 전황이 어찌하여 무용협회 활동을 하지 않고 국악협회로 발을 돌렸을까 의문이 든다. 1964년 한국국악협회 무용분과위원장을 맡고 14년 동안 국악협회 활동을 하다가 1988부터 1991까지 한국국악협회부이사장으로 활동한 배경도 무용계에서는 북한출신이라는 배타성, 남성이 남성춤을 추지 않고 여성춤에만 치중하는 모습, 성정체성의 문제를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이 된 그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하는 대한민국국악제를 협회 주최로 이끌어 오는 등 40여 년 동안 한국국악협회에서 역동적인 남성춤을 안무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타악과 현악과 성악을 터득하여 국악계에서 활동한 것이다.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은 1973년 〈배비장〉 안무를 맡으면서부터였다. 물론 여성국악창극단이 활동한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창극에서의 역할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이어서 1999년 중국 베이징 국극공연 〈황진이〉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그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고법(鼓法) 이수자가 되었다. 고법은 창극단 시절 한일섭과 정철호로부터 조금씩 배워 연주에 참여했던 것을 인정받아 이수증을 받게 된 것이다. 2000년 창작민요극〈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있었네〉와 창무극〈해상왕 장보고〉를 안무했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도 땄다. 일본공연을 자주 가고 일본작품 〈제비〉도 번역할 정도였다. 2002년 문화재청 파견 한·일문화교류의 해 〈천년의 소리〉 일본순회공연 예술총감독도 맡았다. 그리고 2004년 국립창극단 자문위원을 위촉받아 자문하였고,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겸임교수로 10년을 출강하여 마지막까지 춤열정을 후학들에게 쏟았다. 그리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의 대상으로 춤과 국악 생애를 증언하였다. 다만 장년 이후 춤을 많이 추지 않고 안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제자가 많지만 어려서부터 춤을 배워온 윤성주와 딸 전미례 등이 있고 말년의 제자로는 김지원, 백선희 등이 있을 뿐이다. 전황의 예술세계 전황은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문하에서 사사했고, 1951년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64년 일본 동경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과 안무연출을 맡는 등 정부 문화사절단으로 각국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한국민속예술단원과 안무자로 유럽 3회, 동남아시아 2회,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 일본 등 당시엔 한 번 나가기도 힘들다는 외국 공연을 수십 차례 다녔다. 덕분에 국민훈장인 동백장도 받았다. 1988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199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1996~97년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무용계뿐만 아니라 국악계에서도 널리 업적을 남겼다. 전황이 남긴 예술혼과 예술철학은 몇 가지 굵직한 교훈과 한국공연예술사에 족적을 남겼다. 첫째, 최승희의 가르침에서 터득한 창작력과 뛰어난 안무력을 바탕으로 민간예술을 민족적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점이다. "저, 최승희 제자예요. 최승희! 최승희 무혼(舞魂)의 흐름이 제 춤에 들어 있다고요. 그 자부심 하나로 이 땅에서 타협하지 않고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살았습니다.”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던 최승희가 전통악기를 개량한 악기반주에 맞춰 민족무용과 국극을 안무하고 창작하던 것을 이어받은 전황은 안무력과 창작력을 발휘하여 ‘마당농악’을 ‘무대농악’, ‘민간춤’을 ‘무대춤’ 등으로 민족무대예술을 발전시켰다. 둘째, 북한출신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서 이념갈등 속에서도 남한예술가로 자리매김하며 본인만의 순수공연예술작품을 창작하였다. "북한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저를 보자고 하여 마음대로 창작할 수도 없었죠.” 때로는 쇠고랑도 채웠고,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간첩취급도 당하는 등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많이 받았으며, 북으로 넘어간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편견이 상존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운 고향마저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을 펼칠 수 있는 남한을 택했고, 굴하지 않은 신념으로 자신만의 예술혼을 살려보고자 각종 공연예술에 전념하였다. 셋째, 여성편향적 경향과 비중에 편향된 사조에 맞서 외롭게 역동적인 남성예술의 복원과 추구에 앞장서 남녀예술의 균형발전과 공존사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최승희 선생께 남성춤, 여성춤을 확연히 구분해 배웠는데, 왜 남성들이 그리 여성스럽게 추는지‥‥‥‥” 여성춤은 곱고 이쁘지만 남자는 남자다운 춤을 추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살풀이춤, 입춤같은 춤을 춘 적도 없고 장검무, 소고춤, 장고춤, 농악춤 등 남성성이 강한 춤을 추고 가르쳤다. 혼자의 힘으로 대세를 역전시키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는 남성은 치마(여성)춤만 추지 말고 바지춤을 추어야한다며 남성예술과 여성예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일념으로 살았다. 하지만 전황은 이매방이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했다. 60여년 친구이지만 전황은 남자가 여자처럼 춤추는 게 싫었다. 최승희 문하에서 수년 동안 남성춤과 여성춤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상이 골수에 박힌 그는 춤추는 남성들의 대부분이 여성화된 춤을 추는 게 못마땅했다. 그때부터 그는 무대가 좋지만 무대에 가급적 서지 않았다. 여성적인 춤을 추는 이들과 동일시되는 게 싫었다. 게다가 딸 전미례가 아버지의 성정체성과 취향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해 그때부터는 가끔 서던 무대마저 무대화장을 전혀 하지 않다가 전두환 대통령취임식 때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넷째, 한민족예술의 본질인 가무악(歌舞樂) 일체사상과 악무극(樂舞劇) 합체사상을 표방하고 심어주었다. "국악을 알아야 무용을 창작할 수 있어! 특히 장단의 귀가 뚫려야 산조를 들을 줄 알아야 춤을 만들 수 있지!” 우리 민족은 원래 국악따로 무용따로가 없이 악가무 일체의 예술적 특성을 지닌 민족이다. 전황은 이러한 민족예술과 춤의 본질적 특성을 올곧게 지닌 예술가였다. 서구예술의 전공분화시대에서 소외됨을 무릅쓰고 총체예술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였다. 전황이 한국예술계에 남긴 것 한국 신무용의 핵심이 최승희에서 비롯됐기에 스승 최승희에 대한 기억을 소상히 간직한 전황의 자부심은 귀하고도 올곧았다. 최근까지 남한에 생존해있는 최승희의 대표제자로는 김백봉과 전황뿐이었는데, 유일한 남자제자인 전황선생님의 작고는 신무용시대의 대표적인 적통자이며 전승자의 인맥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평생 최승희의 춤사상을 실천하고 끊임없이 남성춤을 추구해온 근대무용의 산증인이었으며, 무대농악의 창시자이고 국극과 창극에서도 영원한 안무자로 자리매김하여 국악계의 수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등 한국 근대예술사의 한 획을 긋고 떠났다. 끝으로 전황은 예술계의 간디라는 생각이 든다.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 무저항, 평화주의자이였듯이, 전황은 빼어난 외모와 타고난 스타집안의 피를 이어받았고 당시 세계적인 한국무용가 최승희의 남성제자였기에 한국무용계에서 스타반열과 직책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여러 정체성 문제로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도 묵묵히 세태에 복종하지 않았고, 이념전쟁의 희생양이었지만 본인만의 색깔과 예술혼을 불사르며 국가, 사회, 문화계에 무언의 항거를 보여주었다. 국악계로 발을 돌려 커다란 족적을 남기면서 끝까지 무용계를 탓하지 않았다. "전황류 소고춤, 전황류 검무, 전황류 쌍검무, 전황류 농악을 만들었지만 최승희 선생의 혼이 들어가 있다는 거죠. 남자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 그래서 저는 절대로 무대에 오를 때 화장하지 않았습니다. 미례가 나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품을 때부터 완전히 화장을 그만두었죠.”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아쉬움도 남는 법이어서 전황선생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 떠오른다. "피리 등 관악기만 못해보고 타악과 현악은 웬만큼 해봤지! 그런데 아쉬움이라면 거문고 산조를 못해본 것이 가장 한이 맺혀! 술대로 현을 드르렁 긁는 소리가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멋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수상〉국무총리표창(68년), 문화공보부장관 표창(69·70·71·72년), 국민훈장 동백장(73년), 문화공보부장관 감사장(81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공로패(82년),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98년), 문화재청 공로 감사장(2002년)
-
산청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처용무 전수자’ 이은솔
-
산청군, 처용무 전수자 이은솔 공연…대바람 춤 선사3일 경남 산청군은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 토요상설공연으로 전통무용가 이은솔 공연을 마련했다고 밝혔다.오는 6일 오후 3시 기산국악당 대밭극장에서 펼쳐지는 ‘이은솔의 대바람 춤’ 공연에서는 춘앵전, 최종실류 소고춤, 한영숙류 살풀이춤, 그리고 대바람 춤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특히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대바람 춤은 시인 김태근의 낭송과 소리꾼 김보성의 노래와 함께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은솔의 춤으로 아름답게 표현했다.대바람 춤은 소설가 김홍신이 작사하고 작곡가 박범훈이 작곡한 대바람 소리를 작품화했다.또 사물놀이(한창현, 이영주, 박서준, 김수헌)와 김보성의 경기민요, 이영주의 채상소고놀음도 공연과 함께 어우러질 예정이다.한편 전통무용의 맥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젊은 무용가 이은솔은 서울예술단 정단원으로 전북대학교 무용과에 출강한다.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처용무’ 전수자로 선화예술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를 졸업했다.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 석사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글로벌언어문화학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제4회 온나라 궁중무용 경연대회 청소년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제9회 온나라 전통춤 경연대회 일반부 대상(대통령상) 등을 받았다. 제47회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한국무용 전통 여자 동상, 제11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민족무용부분 전통 시니어 여자 3등 등 주요 무용콩쿠르에서 수상하는 등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무용수다.
-
계묘년, 국악계 명사들의 계획과 신년인사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아온다. 코로나의 영향권에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요즘, 국악계 역시 일상을 되찾아 가고 묵혀 두었던 계획을 실현하고자 분주하다. 국악계 주요 명사들의 신년 계획을 들어보았다. 이춘희님, 명인·명창 함께하는 공연 준비 코로나 등으로 지금까지 국악인들이 큰 공연을 못했는데, 신년 3월 11일(토) 국립극장에서 명인·명창들 함께 공연을 계획하고 준비 중입니다. 지금은 이 공연에 매진해서 연습 중입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공연으로 관객 분들을 만나 뵐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코로나로 인해서 국악계와 국악인들이 너무 침체되었기 때문에 올해는 모두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악신문도 2022년도에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 비를 세우는데 일년 동안 큰 일조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종목 22개 중 처음으로 세운 '유네스코 등재 아리랑 기념비'라는 큰 일을 해냈기 때문에, 그만큼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고요. 저도 그날 건립식에 함께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국악 발전에 국악신문도 함께 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임웅수님,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의 뚝심을 흥과 신명으로 특별한 계획보다는 해야만 하는 것을 열심히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백만 국악의 중심인 ‘한국국악협회’가 정상화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고, 정상화시켜서 국악인들에게 복리를 증진시키고, 국악인들이 화합해서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이 가장 큰 소망입니다. 사업적으로는 ‘대한민국 농악연합회’가 있어요. 민속음악의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농악의 뚝심을 좀 더 흥과 신명으로 풀어내는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광명농악’이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광명보존회는 신년에 좀 더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고요, 2023년에 15번째 ‘광명농악축제’는 더욱 전국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바람이 더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단체종목이 와해되거나 상당히 약화되어 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축이 되어 활동하는 농악을 비롯해서, 탈춤, 굿, 줄타기, 줄다리기 같은 민속놀이의 단체종목, 이러한 연희와 관련된 학생들 동아리 등이 위축되어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이 속한 단체에서 취미·전문 동아리 활성화가 되었을 때, 농악 발전의 근간이고 샘물이 되는데..... 이것이 막혔다는 거죠. 3년간 위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복원하는데 정부나 지자체 기관이나 국악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랑스런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의 대가 끊이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천년 만년 이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덕수님, 시대와 호흡하며 전통의 멋을 즐기는 신명나는 무대 준비 신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전통예술로 관객 분들을 만나려고 준비 중입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형태로 전통을 즐기는 새로운 무대를 마련하고자 해요. 현재 사람들이 열광하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의 문화적 근본은 전통에 있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작품을 두 가지 형태로 선보이려고 합니다. 하나는, 마당놀이 형식을 새롭게 하는 것인데요, 80년대 초에 전통공연(마당극)을 바탕으로 연극계와 접목해서 시작했던 ‘마당놀이’라는 형태가 있습니다. 이것을 새롭게 부활시킨 작품을 2023년 가을쯤에 올리려고 합니다. ‘마당놀이의 재창조’죠. 전통공연 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면서 관객 분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시대성(근현대사)을 갖춘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조국을 지켜주셨던 분들의 이야기로 찾아가려고 합니다. 공연을 통해 민족의 얼과 선인들의 불굴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로 전통공연예술을 통해 공감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물놀이를 바탕으로 한 음반(음원)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내년(2023년)이 사물놀이 45주년이에요(1978년 시작). 전통음악 자체도 미래에 중요한 근본이니까요. 현재 지도하는 학생들과 준비 중인 공연도 있습니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과 함께 봄에 서울에서, ‘경기 도담굿’을 소재로 전통을 재창조 하는 형식의 공연을 준비 중이고 학생들도 열심히 연습 중입니다. 민속문화·예술은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담아 온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판소리, 민요 등이 있지만, 그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장단’이에요. 꽹가리, 징, 장구가 가지는 울림이고, 신명입니다. 그 울림과 장단이 많은 분야에서 재창조되고 기운과 신명을 대중과 나눔으로써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만의 신명이고, 한류의 뿌리이고 정신입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죠. 그것을 우리가 아껴주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이광수님, 민족음악원 캠프와 '사물놀이' 경연대회 여기 ‘민족음악원’(원장 이광수, 충남 예산)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1박2일 진행되는 ‘월말 캠프’가 2-3월부터 시작 예정입니다. 해마다 여름·겨울 캠프가 있고요. 고향에서 우리 음악을 배우고 즐거워하는 분들을 만나고 흥을 함께 하는 나누는 것이 큰 행복인데요, 올해도 더 다양하고 많은 분들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9-11월 사이에 ‘예산전국사물놀이 경연대회’가 있습니다. 새해에는 23회를 맞는데요, 그것도 중비 중입니다. 해외 공연을 하면, 외국인들로부터 갈채를 받고 큰 호응을 얻는데,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주시고 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풍류천하 세계평화’입니다. 비나리를 할 때 쓰는 표현이기도 한데요, 우리 소리와 함께 모든 인류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문희님, 인류무형문화유산 ‘동초제 판소리’ 중심으로 미국 공연 준비 작년 연말에 했던 작업(‘사백연가 섣달그믐’, 동초제 심청가 전승발표·완창무대)을 올해는 미국에서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대략 8월 초 정도 예상하고 있고요. 동초제 소리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한국적인 장르로 구성해서 선보이려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판소리 관계자들과 준비 중에 있고요, 한국 제자 4명 정도와 함께 공연을 구상중입니다. 하루는 전통 판소리를 주 무대로, 다음날에는 젊은 소리 완창 판소리의 맥과 이야기를 담은 입제창,그리고 남도민요(흥타령,육자백이)가락 등 같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저의 레파토리인 ‘춘향가’ 음반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음반작업 준비를 하고 있고요. 이것을 위해 공부하고, 녹음하면서 준비 중입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진행할 예정입니다. 올해도 후진양성 하면서 많은 전국경연대회에 참가하도록 했는데요, 더 많은 제자들이 다양한 대회에서 제자들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그만큼 저 역시 정진할 계획입니다. 또 이런 계획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건강도 잘 챙기려고 합니다. 국악신문 독자들은 이미 소리를 많이 아끼시는 분들이니까 지금처럼 꾸준히, 그리고 더 다양하게 국악을 사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건강 먼저 유지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요. 장사익님, ‘사람이 사람을 만나’ 해외공연과 사진전 준비 올해는(2023년) 작년에 시작된 ‘사람이 사람을 만나’ 공연이 전국순회 공연을 해요. 이어서 외국 공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공연하니까, 내년(2024년) 공연을 위한 곡도 더 준비할 예정이고요. 음악은 물론이고, 건강을 위해서도 내실을 다지려고 합니다. 그 동안 국악계가 많이 힘들고 침체되었는데요, 올해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서 다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공연과는 별도로, 올해는 부산 쪽에서 6월쯤 사진전을 계획하고 있어요. 제 노래 외로, 즐거움으로 하루하루 해 온 일인데요, 작년에(2022년) ‘장사익의 눈’ 사진전을 3월에 했는데 러브콜을 받았어요. 핸드폰 사진으로 찍은 사진들로요. 올해는 부산에서 6월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제가 올해 75살이에요. 음악을 시작한 지 29년이고, 내년이면 30년이 돼요. 남들 50-60년 되는데 부끄럽기는 하지만, 올해부터 음악도, 건강도 내실을 다져서 내년(2024년) 30년 공연을 멋지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악계 선생님들, 동료 분들, 제자들 모두 다함께 좋은 일 가득하고,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원장현님, ‘한음회’ 공연준비와 독주회 구상, 제자들의 활동 기회 확장 소망 가까운 계획은 1월 11일 세종문화화회관 대극장에서 ‘크라운해태제과’에서 후원하는 ‘한음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계속해서 제자들 가르치고 있고요. 바라는 것은 올해 가을 쯤, 간단하게라도 개인 독주회를 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좀 있지만, 아직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줄 수 있고, 후배들에게도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서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해요. 그 동안 침체되었던 문화계 모든 활동, 공연들이 침체되었고, 국악인들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코로나 빨리 씻어지고, 국악인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젊은 국악인, 제자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제자들도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자식들이 힘들어 하고, 기죽어 있으면 어떻게 마음 편하겠어요? 저도 같은 마음이죠. 젊은 국악인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이나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조순자님, ‘목요풍류’와 ‘인문학강좌’로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의 가곡 전파 모색 1월 12일 가곡전수관 정음연주단 신년연주회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3월부터 ‘가곡전수관’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요,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매달 1회씩 열리는 ‘목요풍류’ 공연이에요. 늘 해왔지만, 가곡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즐기게 하려고 좀 더 새롭게 꾸미려고 해요. 코로나 때도 중단하지 않고 유튜브로 생중계해서 이어왔고, 지금까지도 현장 공연과 유튜브 생중계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 공연 때마다 다른 주제로 찾아가는데, 이 주제에 대해서도 연주단원들과 함께 의견 나누고 반영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할 예정입니다. 또 ‘가곡전수관’에서 진행하는 강좌도 새롭게 준비 중입니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하는 강좌가 다른 포맷으로 나갈 예정이에요. 작년에 ‘인문학 강좌’를 통해서 국악과 연결된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어요. 수강생들과 대화하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올해는 이것을 준비 중입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워도 어린이와 청소년들 대상으로 하는 ‘토요풍류학교’는 그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배운 아이들이 국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국악을 통해서 역사를 알게 되요. 그런 것들을 옆에서 보면서 긍지를 느낍니다. 모든 일반인, 어린이 대상 강좌들은 모두 무료로 진행합니다. 저와 같은 예능보유자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해요. 재정적으로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이 책무를 다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우수이수자 전수활동 지원사업(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선정)’에서, 저희 이수자(신용호, 명인의 아들)가 가곡 총보(통합악보, 6개 악기의 반주와 노래 악보가 함께 있는 악보)를 발표해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46페이지 정도 되는 양이고, ‘우조, 이삭대엽 버들은’, ‘계면조, 이삭대엽 언약이’ 두 곡의 악보입니다. 당시 관계자분들께서 ‘논문 수준’이라고 학술지에 올려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이 총보 작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가곡계의 발전이나 가곡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종실님, ‘산청국악축제’와 ‘기산국악제전’ 준비 사단법인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 ‘산청국악축제 토요상설공연’, 봄·가을 공연을 예정입니다. 젊은 국악인들이 무용, 소리, 기악 등 다양하게 선보이는 토요상설공연을 기산 국악당에서 계획하고 있고요. 9월 예정인 제17회 기산국악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 박헌봉국악상, 국악한마당 공연. 기산추모제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헌봉국악상'은 상금 500만원이 수여될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기산국악당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힐링국악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예정입니다. 그 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했는데, 제3회 기산배(杯) 국악인골프대회를 내년 5월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골프와 국악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국악인들 중에서도 골프 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제전위원회에서 기산선생님의 정신을 기리고, 국악인들이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산 박헌봉(岐山 朴憲鳳) 선생님께서는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1960,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시고, ‘국악협회’라는 조직을 만드시는 등 국악계를 위해 평생 헌신하신 분입니다. 기산 선생님의 존함 아래 국악인들 모두 서로 교류하고 힘을 모아 발전할 수 있도록. 뜻을 기리는 자리로 마련하려고 합니다. 한국국악협회가 국악인들의 중심 단체인데,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서 많은 국악인들이 마음 아파하고 실망스러워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내년 계묘년(癸卯年에)는 국악인들이 단합하고 화합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행복한 국악계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욱님, 창단 35주년 기념공연, 8월 독일·프랑스 공연 예정 올해 ‘이병욱과 어울림’이 창단 35주년, 예술단이 10주년이에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 6월 15일 서울남산국악당(서울시 중구)에서 공연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해가 ‘한-독 수교 140주년, 파독(1960-1970년대 대한민국 광부, 간호사 등이 서독에 파견 근무) 60주년’입니다. 8·15 광복절을 함께 기념해서, 재독한인총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문화행사에 초청되어 공연할 예정입니다.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글을 공모해서 선정된 글을 제게 전해주시면, 저는 현지 교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그 작품들을 토대로 곡을 만들어서, 독일에서 공연될 예정입니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독일 청소년 합창단(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이 있다고 해요. 그 합창단이 부를 예정입니다. 공연은 8월 17일 예정이고요. 그 이전 8월 15일, 프랑스에서, 프랑스 한인회 중심으로 개최되는 ‘광복절 기념 행사’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독일의 경우, 제가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1984-1988년) 애착이 가기도 하고, 특별한 기억도 있는데요, 당시에 윤이상 선생님 사진을 품고 다니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프라이부르크 역) 선생님을 뵈었어요. 처음으로. 그 이후로 추천서(독일학교 입학을 위해)를 써주시기도 했어요. 제 나이 33세에 갔는데, 당시 선생님께서 제게 당부하신 말씀이 ‘한국적인 곡을 써라.’ 그 말씀 한마디에 제가 국악을 접목하는 음악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마리소리골(마리소리음악연구원)에서 수업도 계속 진행합니다. 문화강습, 무용, 기타강습, 그리고 화·수·목요일에 여기 홍천(강원도)에서, 토·일·월은 인덕원(경기도)에서 수업하고 있어요. 우리 음악이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꾸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서, 국악에 대한,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갖춰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음악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에요. 누구나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일반인들도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경험했으니까요. 독일에 있을 때, 경험한 것이, 누구나 악기 하나씩 가지고 있고 즐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역 문화센터 등을 통해서 음악적인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도 지금 대부분의 강좌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소라님, 경상도 ‘상부(喪夫)소리’ 연구 출판 준비 책을 준비 중이에요. 작년에 ‘경기도 논매기소리 음원집’이 나왔고요, ‘청양의 옛 노래집’이 음원하고 합쳐서 나왔습니다. ‘강원도 논매기 소리 총서’ 부록에 서울, 인천, 북한, 제주도 논매기 소리까지 함께 있는데요, 경기도 ‘논매기소리’ 책 내용이 많아서, 강원도 총서에 부록으로 넣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논매기소리를’ 완성했습니다. 내년에는 ‘상부(喪夫)소리’(장례요) 관련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경상도 지역을 다룰 예정입니다. 또 올해는 개인 책 발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자 분들께 새해에는 ‘늘 자기 나름대로의 꽃을 피워라.’라고 전하고 싶어요. 식물을 보면 다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상진님, 지속가능한 한류문화를 위한 정책 수립에 일조하고파 현재 ‘국악신문’에 ‘박상진의 한류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3회 정도면 50회가 돼요. 그 정도 분량을 단행본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국악신문’에서도 함께 도움 주신다고 해서, 힘을 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류가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의 전통 음악적 요소들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이 한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함께 발전되어 세계 속에서 한류문화가 지속가능했으면 좋겠다. 그런 취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책 한권으로 집약적으로 묶어져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다 넓은 시야에서 한류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저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그 동안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류문화 확산을 위해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트로트, 케이팝(K-Pop) 등에 전통 음악적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것은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만들어 내고, 문화예술인들이 시행해야 해요. 저와 같은 전문가들이 현상을 분석해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한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전통문화’가 한류를 만드는 ‘영양소’라는 것을 모르고, 이야기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팥 없는 찐빵’이거든요. 그 풍부한 ‘영양소’를 바탕으로 한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그 역할에 구체적인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정리하면, 우리는 서로 줄 세우고 비교해요. ‘금수저’, ‘흙수저’ 라고도 하잖아요. 하지만, 지구촌 안에서 보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우리 국민성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아요. 다른 민족이 따라올 수 없는 특유의 유전자와 기질, 역동적인 국민성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발휘해라. 하고 싶은 것을 발휘하며. 해라(You can do it.).’ 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남의 것 흉내 내지 않고, 우리만의 것을 만들면 세계 최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동국대 학생들)에게도 강조합니다. ‘나라 안에서는 줄 세워져 있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국민이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그러면 세계 최고가 된다.’고 말해요.’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이런 민족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그런 본질적 바탕에서 출발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더 크게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
사물놀이 창시자,김용배, 이광수, 김덕수, 최종실
-
선생님, “여름 산공부 가시나요?”[류기자의 시선]올여름은 무더위와 더불어 벌써 3년이 되어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위축되고 있다. 국악계 역시 크고 작은 공연이나 행사가 영향을 받으면서,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악계 선생님들은 이 여름을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들어보았다.(류정은 기자/ 인터뷰 순) 안숙선님 "도심 속 조용한 곳에서” "여름은 물론, 봄, 가을에도 산공부 떠나서 몸 수련, 기술 연마하기도 하고, 동네 분들과 어울리기도 하는데요, 올해는 너무 더워서 아직 가지 못하고, 시간 나면 10월 정도에 갈 생각 중입니다. 지금 사는 곳이 도시지만, 공기 좋은 곳이라 작은 연습실 마련해서 제자들 가르치기도 하고, 혼자 연습하기도 합니다. 시간 내서 제자들과 못다 한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많은 프로그램들 찾아서, 가을에 어떤 음악들로 여러분들 만날까 생각 중입니다. 여름에는 지치지 않도록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다른 음악도 받아들이고, 정신건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춘희님, 열린 대화로 마음 다스려 "한참 더울 때, 복날은 3대 명절이죠. 좋은 사람들 만나서 공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저는 특히, 제자들과 한 번씩 들놀이처럼 갑니다. 좋은 얘기도 나누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해요. 제자들과 격이 없이 지내요. 제자들을 큰, 중간, 어린 제자들, 세 부류로 나눠서 따로 만나요. 그러면, 저도 제자들도 대화하기도 좀 더 편하죠. 마음이 굉장히 중요해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마음이 편하게. 그래야 더위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운 것은 어쩔 수 없잖아요. 여름에 쉽게 지칠 수 있지만, 자신의 건강도 돌보면서, 사람들과 관계도 더 돈독하게 하는 지혜가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광수님, 칠순공연 준비와 ‘비나리’ 음반작업 "작년에 계획했던 칠순 기념 공연을 올해 가을에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 시기에 맞춰서 음반(비나리)도 준비 중입니다. 음반 작업 마무리 단계예요. 지금은 가을 공연을 위해 내 스스로 건강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건강해야 옆 사람들이 안전하니까. 또 운동도 하고 공부하면서 일상생활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 꾸준히 건강관리하면서, 지금까지 코로나 안 걸리고 잘 지내왔습니다. 국악인들 모두, 이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사익님, 메시지 담은 정기공연 준비 "저는 늘 아침 일찍 5시 전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30분 정도 운동합니다. 목 풀기도 하구요. 아령을 30년 이상 했어요. 그것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10월에 2년마다 하는 정기적인 공연, 메시지를 가지는 공연이 있는데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하다, 오랜만에 다시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올여름은 이것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계절을 인생으로 본다면, 여름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예요. 하지만, 삶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죠. 자연도 여름에 영글고, 가을에 열매 맺잖아요. 여름에는 덥고 힘들지만, 만물은 이때 성장합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도 여름에 힘들고 어려워도 건강 잘 유지하셔서 이루고자 하는 것에 매진하신다면, 가을, 겨울, 그 이후에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덕수님, 이열치열, 풍물정신 살리는 신나는 배움터 "전북 임실군, 필봉문화촌에서(필봉농악,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김동원, 김철기, 양진성 교수 등 분들과 함께 여름 특강 중입니다. 지금 전통무용, 경기민요, 농악, 사물놀이 등을 지도하고 있고, 2주일 정도 진행합니다. 다음 주쯤에 마무리되겠네요. 재학생, 졸업생도 수강 가능하고.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여기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에요. 이런 자연 속에서 전통예술 교육과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교육자로서, 국악인으로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곳은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80년대부터 사용했고 전국 대학 풍물동아리들도 많이 공부해온 곳입니다. 풍물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예요. 이곳의 정체성이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죠. 요즘 퓨전국악처럼, 전통 외의 것도 한 번씩은 도전해보고 싶은 열정도 있을 텐데요, 그럴수록 전통 알려고 노력하고, 그런 과정을 경험할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더운 날, 이열치열, 시원하게 설장구 한 판 치면, 그것만큼 더 좋은 것 없고, 시원한 술 한 잔이면, 천하가 내 것이죠. 이 시간을 우리 전통과 정신으로 즐깁시다.” 유지숙님, 마음과 정 나누며 소리 연마 "늘 여름에는 산공부 하러 제자들과 떠나잖아요. 공부도 공부지만, 서로 못 다한 얘기도 나누고, 한 노래나 분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도 하고요. 산공부 마치고 오늘(8/1) 올라왔어요. 충북 쪽에서 했고요, 20명 조금 안 되는 인원이 다녀왔습니다. 제자들끼리도 큰 제자들, 작은 제자들은 평소 서로 만날 시간이 없어서, 처음에는 서먹서먹 하다가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나이 상관없이 서로 담소도 나누고, 모르는 것은 언니에게 물어서 하기도 하구요. 서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제자들에게 1대1로 발성 지도 같은 평소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것들에 집중했습니다. 또 바빠서, 어려워서 얘기 못했던 것들, 고민들 얘기 나누기도 했어요. 어린 제자들이 의젓하게 규칙적인 생활 하는 모습도 너무 예뻤어요. 여름에는 힘나는 시간이 제자 보는 시간이죠. 삶의 활력소에요. 못 봤던 제자들 내면의 모습도 보게 되요. 특히 한 제자가 후배들 인성교육하려고, 타로 점을 보면서 대화했는데, 서로의 마음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산공부가 자기 수련기간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마음과 정을 나누는 시간인 것 같아요. 제 모든 삶이 제자와 연결되니까, 제자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죠. 그러니 서로를 다지게 하는 시간은 큰 의미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많은 제자들 한 명 한 명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제가 처지면, 제자들도 처질 수 있으니까 1-2일 잠깐 쉬었다, 이 좋은 분위기를 모아서 다시 수업 하려고 합니다. 선생의 숙명이지만, 제자들 커가는 보람에 행복합니다. 제자들에게도 늘 노력해야 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유영대님, 산공부 찾아 국악인들 응원 "국악인들이면 산공부는 기본적으로 하시는데요, 도회지 떠나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잠자는 시간 빼고, 공부에 매진하는 기간이죠. 제 취미가 산공부하시는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2-3일 정도 함께 있기도 하면서, 애쓰시는 국악인 분들 격려도 합니다. 앞으로 몇 분의 선생님들 산공부에 찾아 뵐 예정입니다. 예술가에게 여름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9월에 그 결과가 바로 나옵니다. 기악, 성악, 모든 분야 관계없이, 충실하게 보내야 좋은 결실이 나기 때문이죠. 모든 우리 국악인들이 올여름, 의미 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원장현님, 제자들 지도와 가을 공연 준비 "집, 연구실에서 연습하고, 제자들 가르치고, 때때로 공연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적당한 운동 하면서, 제 때 식사하고, 걷기 운동이나 산책하면서,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올 10월에 공연 계획이 잡혀 있고, 8·9월에도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 준비 중입니다. 모든 국악인 분들, 코로나 잘 이겨내셔 가을까지 건강 잘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병욱님, 마리소리골에서 세대 넘나드는 국악교육 "제가 있는 마리소리골에서 소리 체험 프로그램 진행 중입니다. 어르신들에서 학생들까지 참가 연령도 다양합니다. 오늘은 학생들 수업이었는데, 기타를 통해서 국악을 배웁니다. 제가 국내 최초로(1988) 기타 연주로 전통음악을 작곡했거든요. 기타가 다른 나라에서는 민속 악기라서, 나름의 전통과 민족혼이 있다는 면에서 우리 국악과 통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기타를 통해서 국악을 접하고, 어떻게 굿거리장단을 표현할 수 있는지 같은 것도 배우게 됩니다. 여기는 한국음악의 산실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곡을 만들었고. 국내 최초 국악기박물관이기도 하죠. 여기 있는 악기들은 우리 자신이고, 독창적인 것들이니까, 아이들에게 우리의 얼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교육적으로 정말 의미 있는 곳이에요.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왜 소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민요 한가락은 부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민요가 독창적이라 해외에서 인정받고, 외국인들 관심도 상당히 높습니다. 또 외국에서 인정받는 대표적인 한국문화가 한, 아, 비(한글, 아리랑, 비빔밥)라고 합니다. 한글이 그 우수성으로 과거 세계문자올림픽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외국에서는 아리랑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멜로디라고도 하고, 비빔밥은 재료들이 어우러져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내는 것으로 ‘융합’, ‘단결’ 같은 가치와 연관되기도 합니다.” 이소라님, ‘논매기소리’ 포함한 서적 출간 "올해 책을 3권이 나올 예정인데, 한 권은 이미 나왔고, 8월에 한 권, 나머지는 연말에 나올 예정이에요. 지금 정신없이 바쁩니다. 그래도 먹는 것은 세 끼 시간 맞춰서, 저녁은 가볍게 먹고, 제시간에 먹으려고 합니다. 20-30분 걷기도 하구요. 이렇게 더울 때, 일하는 것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올해 나오는 책들은, 100년 후에 후손들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작업해 놓은 것 중에는, 후손들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아요. 1980년대에, 1900년대 생분들 음원 녹음한 것들도 있고요. 올해 총 결산 한 것이죠. 음원과 함께 나올 예정이에요. 2000년대 초반 녹음했다면, 찾기 어려운 자료들도 있어요. 책이 1000페이지가 넘습니다. 두꺼워서 그런지. 지금 연구자들은 잘 안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에 있으니, 구입하지 않더라도 관련 연구하시는 후배들은 꼭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이 중에, '논매기소리'가 제일 중요한데. 삼한시대 부족국가와 연결되는 노래거든요. 70이 넘은 선배가 1년에 책 3권 쓰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후배님들도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종실님, 9월, 경남 산청 기산국악제전 준비 "저는 경남 산청, 기산 박헌봉 선생을 기리는 ‘기산국악당’에 있습니다. 토요 상설공연(연 20회)을 기획, 준비하고 있는데요, 3년째 우리 국악계 젊은 명인, 명창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날씨 때문에 한 달 쉬고, 가을에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지방이지만, 작년에 이생강 선생님도 공연하셨고. 대나무 숲 야외공연장도 갖추고 있어요. 산청군에서 예산 지원받아서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재작년에는 국악인들이 코로나19로 어려운데도, 비대면으로 지속적으로 공연(토요상설 공연) 해왔어요. 기악, 성악, 등 다양한 분야로요. 비대면이라도 꾸준히 공연할 수 있던 것은 국악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죠. 9월에 기산국악제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국악한마당 공연, 전국 국악경연대회, 박헌봉 국악상 시상 등을 준비 중입니다. 기산 선생님의 국악 운동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시대에 국악 발전을 위해 애쓰신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국악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을 어렵게 하지만, 국악인들은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명감 가지고, 어려울수록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위기를 극복하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명곤님. 적절한 재충전이 창조력·영감의 원동력 "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9, 10, 11월 예정된 공연 준비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자연이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휴가 잡아서 자연 가까이에서 쉬기도 하면서. 작품 구상하고, 집필한다던가, 대본 쓰고, 연출 준비하고, 그런 작업들 하면서 조용히 지냅니다. 도심에서 체력 소모하기보다는, 여름이니까 자연을 더 가깝게 느끼면서, 휴식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체력 보충하고 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집중해서 쓰잖아요. 공연, 창작 등은 계절에 관계없이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가끔씩은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습니다. 에너지 너무 소진하지 말고 충전해라. 다음 작업 위해서. 에너지 생기니까. 그래야만 창조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쉬어야 할 기간에는 쉬어라.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임웅수님, 광명농악, 경기도무형문화제 대축제 준비 "가을에 광명농악대축제, 경기도 무형문화재 대축제가 예정되어 있어서 전국 국악인들은 모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국악협회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장기간 끌고 오고 있기 때문에, 지정된 사업을 원활하게 할 수 없어서, 국악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빨리 국악협회가 재정비되고 국악인이 주체가 되어, 전통문화의 기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어렵게 생활하는 국악인들이 건강관리 잘하셔서 이중고 삼중고가 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초복, 중복, 말복을 넘기는 절기는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전해주신 옛 어른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풍습이 아닌가 싶어요. 보양식뿐만 아니라 심신을 다스리는 여러 방법으로 더위를 잘 견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국악인들, 정갈한 곳에서 산공부도 하시면서, 전통문화가 가진 신명으로 혼을 깨워서, 곧 다가올 가을에 지역 문화예술 축제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장문희님, 배우며 쉴 수 있는 지혜 "저는 어제 광주MBC 국악 프로그램 촬영을 제자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또 얼마 전에, 제자가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서 기쁜 일이 있었고요. (제가) 작년에 (전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 지정을 받게 돼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동초소리(동초제 판소리) 발판을 넓히려 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국립극장에서 심청가 5시간 완창을 준비하고 있고, 7월 30일부터 특별 하계 연수를 계획하고 있어요. 몇몇 학생들만 데리고, 이달 30일부터 2주 정도, 이모님(이일주 국창) 전수관에 들어가서, 소리의 본질이나 깊이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려고 합니다. 저는 공연하는 사람이고 주어진 일만으로도 바쁘지만, 늘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3년 정도 전에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소리 공부를 하면서 온몸을 긴장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허리가 안 좋아지기 시작해서, 혼자 조용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요가를 시작하게 됐어요. 다도에도 관심을 가져서 보이차 마신 지도 오래 됐구요.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온몸으로 순환이 되면서, 조용히 자신과 대화를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점이 좋습니다. 그냥 무조건 쉰다고 잘 쉬는 건 아니고, 결과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면서, 한 가지씩 배워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책도 읽으면서, 조용히 자기 성찰하면서. 그렇게 보내는 것이 의미 있게 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펼쳐 놓은 그 마디마디에는 지난 세월 담아온 국악에 대한 열정과 자신만의 소신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늘 그렇듯, 자신의 자리에서 열정을 쏟아 내고 있었으며, 국악을 진정 사랑하고, 동료들을 보듬어 주고,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도 묻어났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국악이라는 완전체의 큰 울타리를 지켜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올여름은 3년이 넘는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지만,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명장들의 열정은 여름날보다 더 뜨거웠다. 국악계, 그리고 선후배와 제자들에게 다가올 가을, 의미 있는 결실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사물놀이 명장, 이광수의 신명195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광수는 전문연희패(남사당)를 이끌던 부친 이점식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풍물과 함께 생활, 남사당패 행중으로 활동하며 타고난 예술적 천재성을 발휘했다. 남운용, 최성구 등 대가들로부터 꽹과리를 사사 받았다. (사)민족음악원을 창단한 이광수(북)는 김덕수(장고), 최종실(징), 생전에 상쇠를 맡았던 고 김용배 명인(꽹과리)과 더불어 1978년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사물놀이를 창시한 주역들이다. 사물놀이로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 전통문화의 전령사 역할도 하고 있다. 사물놀이는 사물(四物) 즉, 꽹과리 · 장구 · 북 · 징 등 네 가지 악기 놀이(연주)라는 의미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구성의 풍물놀이를 1978년 무대예술로 각색한 것이 사물놀이다. 이광수 명장은 1957년 남사당패에 입문했고 10살때인 1962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후 꾸준한 공연활동을 펼치다 1993년 민족음악원을 창단해 지속적으로 활동해 왔다.
-
박헌봉국악상 수상자 추천, 30일 마감제12회 기산 박헌봉국악상 추천이 지난 13일부터 시작되어 30일 마감된다. 이 상은 (사)기산국악제전위원회(위원장 최종실)가 선생의 국악운동 업적을 기념하고 민족예술의 창조적 발전을 기하기 위해 제정, 금년 12회를 맞는다. 수상자는 1인으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수상자는 오는 9월 기산국악제 행사 개최 전 산청군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고, 시상은 기산국악제 기간, 상금은 500만원과 박헌봉 국악상 상패가 수여될 예정이다. 이 상은 2021년 제1회 수상자로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을, 작년 제11회는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을 선정, 시상했다. 문의는 기산국악제전위원회(02-564-0269)로 하면 된다.
-
기산이 낳은 국악관현악 지휘자의 향연 ‘기산전’2021년 11월 7일 오후 3시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는 경상남도를 빛낸 인물프로젝트 국악관현악 지휘자의 향연 ‘기산전’이 펼쳐진다. 기산국악제전위원회(위원장:최종실)가 주최/주관하며 경상남도와 산청군 그리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총동문회가 후원한다. 예부터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경상남도! 경상남도의 유구한 인물들을 빛내기 위한 프로젝트. 국악운동의 선구자이자 국악 교육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故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업을 기리는 행사이다. 박헌봉 선생은 현재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세우고 전국의 무형문화재를 기록, 조사, 발굴하였다. 이 같은국악선양 정신을계승받은, 기산이 배출한 국가무형문화재 명인들과 지휘자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공연은 오프닝 <태평고를 울려라>를 시작으로 <기산찬가>, <대바람소리>, 가야금병창을 위한 협주곡 ‘사랑가’, 배띄워라, 약손,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및 병창,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신모듬’, <반갑습니다>, <미리뽕>, <우연히>, <길>, <사랑의 바보>, <예사> 등이 펼쳐진다. 참여하는 지휘자는 8명이다. 김광복(11기), 박상진(11기), 최상화(12기), 한상일(12기), 김재영(15기), 이용탁(23기), 임상규(28기), 진성수(29기)이다. 협연에는 김영재(5기), 정회천(15기), 이영신(22기), 우연이(25기), 전영랑(40기), 이미리(43기), 김보성(45기)이 참여한다. ‘기산전’은 기산 박헌봉 선생의 제자들을 비롯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국악인과 관현악단 등 예술인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품격 있는 공연이다. 진행은 국악공연 전문기획사인 정아트앤컴퍼니가 맡았다. 제12기 한상일 지휘자(현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단장)는 "이번 공연은 박헌봉 선생님의 제자들인 박범훈(전 이사장) 선배님 이하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출신들만으로 꾸미는 판이다. 이 판의 소속감과 결속력은 우리의 자부심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또한 본 국악신문에 ‘한류이야기’를 연재하는 제11기 박상진(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지휘자 역시 강한 자긍심을 보였다. "기산 선생의 그늘이 현재 우리 국악의 본류이다. 이번 공연은 우리 스스로가 이를 확인하고, 동시에 이 시대 국악계의 소임을 다지는 기회이다.”라고 했다. 공연이 개최되는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은 박헌봉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명소이다. 주인공인 박헌봉 선생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나 1934년 진주 음률연구회를 조직하고, 그 후 정악견습소, 조선성악연구회, 조선가무연구회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1960년 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을 역임하고 이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면서 ‘창악대강’을 후세에 남겼다. 오늘의 민속음악인 주류를 형성시킨 인물이다. 본 행사의 총괄은 2013년 기산국악당 건립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제10기 최종실 기산국악제전위원장이다. 기산국악당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된 남사예담촌과 함께하는 곳이다.
-
국립국악원 무용단 기획공연 ‘본(本) 그리고 상(象)’ 우리 춤의 원형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우리 춤의 무형문화재 지정 종목과 대표 명작무로 구성한 기획공연을 선보인다.국립국악원은 오는 8~9일 오후 7시30분 양일간 무용단의 기획공연 '본(本) 그리고 상(象)'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무대에 올린다. 우리 춤의 원형을 간직한 6종의 무형문화재 지정 종목을 '본(本)'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명무들이 안무한 8종의 명작무를 상(象)'으로 상징해 각각 이틀에 걸쳐 선보인다.국립국악원 무용단은 전통춤을 품격 있는 문화재로, 멋을 담은 공연 예술작품으로 서로 비교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공연을 마련했다.본(本)을 상징하는 무형문화재 지정 종목들은 8일 무대에서 선보인다. 경기수건춤(의정부 향토문화재 제22호), 한량무(서울시무형문화재 제45호), 교방굿거리(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호남산조춤(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7호), 진주검무(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동래학춤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호)등 국가무형문화재부터 향토문화재까지 6작품을 선정해 다양한 색의 우리 춤을 선보인다. 상(象)을 상장하는 무대에서는 대신무(진유림), 진쇠춤(조흥동), 장한가(국수호), 산조춤(황무봉), 소고춤(최종실), 설장구(김병섭), 진도북춤(박병천), 양산사찰학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명무들이 안무한 명작무가 무대에 오른다. 큰 스승이 만들어낸 춤사위에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들의 땀과 열정을 더하여 그들만의 새로운 무대를 관객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
태평고 입정 고유제’
-
[2020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2020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판소리A> 위 기간 중 매주 토요일 10:00~12:00 전통예술을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 국내 유수의 강사진 통해. - 수업기간 : 2020.6.1.(월) ~ 2020.11.7.(토) /총 17주차 과정 (1회 120분) - 수업장소 : 국립극장 뜰아래연습장 - 접수기간 : 2020.4.13.(목) 10:00 ~ 5.8.(금) 17:00 (선착순 모집) ※수강료 결제는 온라인·전화 접수를 통한 카드결제/무통장입금만 가능. - 문 의 : 02-2280-5823/5821 ■ 2020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1. <일반과정: 입춤> (강사: 윤성철) ▷ 일시: 2020년 5월 11일-11월7일/매주 화요일 5-7pm (총 20주차 과정) 2. <고급과정: 태평무> (강사: 고선아) ▷ 일시: 2020년 5월 11일-11월7일/매주 월요일 1-3pm (총 20주차 과정) 3. <고급과정: 소고춤> (강사: 최종실) ▷ 일시: 2020년 5월 11일-11월7일/매주 월요일 3-5pm (총 20주차 과정) 4. <고급과정: 진쇠춤> (강사: 조흥동) ▷ 일시: 2020년 5월 11일-11월7일/매주 월요일 5-7pm (총 20주차 과정) 2. <고급과정: 승무> (강사: 채상묵) ▷ 일시: 2020년 5월 11일-11월7일/매주 수요일 3-5pm (총 20주차 과정) ▷ 장소: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추이에 따라 교육 연기 및 취소될 수 있음 [출처]국립극장- 2020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
제11회 전국국악대전 대통령상 이미화씨 (수상자명단)*수정무제 문서 제 11회 전국국악대전 대통령상 이미화씨 (수상자명단) 지난 25~26일,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주최·주관으로 제11회 전국국악대전이 종로구민회관에서 열렸다.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하는 ‘전국국악대전’은 국악의 올바른 전승과 체계적 계승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우수 국악인의 선발 및 등용문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종합대상에게는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특장대회로 참가부문으로는 가야금병창, 고법, 기악, 농악, 전통무용, 판소리가 있다. 종합대상에게는 대통령상과 함께 300만원의 상금, 대상은 각 부문별로 1명이 선발되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과 함께 50만원이 주어진다. 부문별 대상은 무용부문 이미화 씨, 기악부문 김미량 씨, 고법부문 권은경 씨, 판소리부문 송길화씨, 가야금병창부문 김미림 씨, 농악부문 신우근 씨가 각각 받았다. 이날 종합부문 대상으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미화 씨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먼저 우리 국악인의 대표 기관에서 주최하는 제 11회 전국 국악 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공정한 심사를 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에게 소고춤을 전수해 주신 남편 최종실 교수께 감사드립니다.”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최종실 류 소고춤으로 수상하게 된 것은 이미화 씨에게 큰 의미가 있다. 한민족의 영혼과 사상을 담고 있는 미학의 춤으로써 오늘날 수 많은 춤꾼들이 그 맥을 이어 전승하고 있는 최종실 류 소고춤은 그의 시아버님이신 최재명(1905~1978)으로부터 남편인 최종실 교수가 전수받아 자신에게까지 전수된 춤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종실 교수는 의 제3회 대상수상자로써 부부가 같은 대회에서 영예로운 수상을 하게 되어 뜻깊은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화 씨는 1954년 서울 혜화동에서 출생하여 혜화 초등학교, 금란여중, 금란여고, 한양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하였으며, 1961년 충무로에 있는 새들 아동극단에 입단 하여 6년간 안성기, 전영선, 전상철 등 아역 배우들과 활동하며 예술세계에 입문했다. 한국무용 입문은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삼선교에 있는 김진걸 무용학원에 입학하여 김진걸 선생께 한국무용을 사사받으면서 춤꾼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초.중.고 시절, 수많은 전국경연대회에서 입상하였으며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 각종 그림대회에도 수상 경력이 있다. 그 뒤, 한양대학교 무용과에 입학하여 김옥진, 김복희, 김화숙 교수께 사사 받았다. 이 후 1977년,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하여 수많은 공연과 국가행사에 출연했으며, 미국 프랑스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등 많은 해외 공연을 하였다. 1982년에는 사물놀이 창시자 중 한명인 최종실 교수와 결혼하였고, 1988년에는 박동진 명창과 사물놀이 원년 멤버들과 미국 5개 도시 순회 공연을 하였다. 그 후 1990년, 한민족예술단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무용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여성타악단 쟁이 단장, 최종실 류 소고춤 보존회 지도위원,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외례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요즘 우리 전통무용이 침체기를 걷고 있을 때 받은 뜻 깊은 상이므로 앞으로 더욱 더 우리의 전통춤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앞장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종실 류 소고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삼천포농악의 명인 이셨던 최종실 교수의 아버지 최재명 소고놀이를 최종실 교수가 독특한 춤사위와 가락으로 짜임새 있게 재 구성하여 무대화시킨 춤으로 경쾌하고 절도있게 몰아치는 춤사위와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휘모리 등 다양한 가락에 맞추어 소고를 두드리면서 활동적인 발디딤과 대삼, 소삼 몸짓으로 어우러져 신명을 풀어내는 춤이다. 채상소고이지만 고깔소고만큼이나 춤사위가 뛰어나며 특히 오금이 특징이다. 김다슬 기자 제11회 전국국악대전 수상자 명단 부 문 구 분 수 상 내 용 수상자 무용부문 종합대상 대통령상 이 미 화 기악부문 대 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김 미 량 고법부문 대 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권 은 경 판소리부문 대 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송 길 화 가야금병창부문 대 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김 미 림 농악부문 대 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신 우 근 (사)한국국악협회
-
제13회 한밭국악 전국대회 영예의 대통령상 / 황보영 씨한밭국악회(이사장 최윤희)가 주최하는 제13회 한밭국악전국대회가 31일 ~ 9월 1일에 대전 연정 국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한밭국악전국대회는 무용부문 대상에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특장 대회로 무용과 판소리, 기악, 풍물개인 등의 종목으로 나뉘어 개최된다. 참가 부문은 명무부와 일반부, 학생부 등이 개최됐다. 이날 영예의 대상은 황보영(우리춤 예술원 이사장)씨가 최종실 류 소고춤으로 수상했으며, 명무최우수상은 박덕상 씨가 일반부 종합대상은 손연주 씨(도살풀이)가 대상은 김도현 최경선 이명모에게 돌아갔다. 전국대회 중 유일하게 외국인부를 개최하는 등 우리 국악의 세계화와 전통춤 발굴을 위해 열리는 대전한밭전국대회는 무용인에게 최고의 영예와 또한 경연 후 인간국보 축하 공연을 주최하여 대전시민들에게는 최고의 무대을 선사한다. 이번 무대에도 이옥천 명창의 판소리와 정철호 명인의 고법, 최종실 명무의 소고춤, 최윤희 명무의 도살풀이 춤과 김문숙, 박연진, 안춘자 명무의 대궐무, 한정자 명무의 승전무 등이 펼쳐졌다. 이번 대회에도 200여개 팀, 370여명이 참가하여 지난해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이번 영예의 대통령상에 국가문화재 지정 종목인 승무, 살풀이, 태평무가 아닌 시도지정 종목인 달구벌 북춤이 수상해 화제를 낳고 있다. 달구벌 북춤으로 영예를 차지한 황보영(54·대구시 중구 남산동·사진)씨에게 수상 소감을 묻자. “감사합니다. 30여년 동안 취미로 춤을 췄지만 오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 참여하고 싶은 꿈이 생겨 공식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프로필이 저에게는 없기 때문에 남들이 인정하는 프로필을 만들고 있는 거죠.” 황보 씨는 정식 국악이나 무용을 전공하지 않는 아마추어 국악인으로 현재 출판·인쇄업을 하고 있다. 그는 전통춤이 좋아 30여년전 국악계에 입문, 그동안은 불우아동 및 지체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 공연 등과 같은 봉사활동으로 춤을 추다가 지난해부터 전국대회에 참가해 쟁쟁한 전문 국악인을 제치고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황보 씨는 지난해 9월 ‘진해 전국 국악대전`과 지난 6월 ‘대구 국악제`에서 전체 대상(문화체육관광부상)과 국무총리상을 각각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큰상을 받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고 했다. 한량무에 북장단을 조화시킨 북춤 독무를 선보여 심사위원들로부터 `색다르고 활력이 넘치며 한국적 흥과 혼이 담겨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황보 씨는 “북춤 독무의 경우 진도북춤을 제외하고 창작품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독창적인 북춤 독무 개발에 보다 많은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명무부 = ▲명무우수상= 서보경 ▲최우수상= 천춘자 이애숙 김인옥외 9 ▲우수상 손희경 강순자 황귀자 ◇일반부 = ▲최우수상 송윤아 김혜림 임지혜 이창현 ▲우수상 강윤지 김옥 마유라 최보근 ◇학생부 판소리 부문 ▲대상=문하람 송희아 박수연 최하늘 김건 ▲최우수상 =박현주 서예지 박지혜 박세연 임동식
-
제11회 한밭국악 전국대회 영예의 대통령상 / 이경화 씨한밭에서 최고 춤꾼 잔치. 한밭국악회(이사장 최윤희)가 주최하는 제11회 한밭국악전국대회가 11일 ~ 12일에 대전 연정 국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한밭국악전국대회는 무용부문 대상에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특장 대회로 무용과 판소리, 기악, 풍물개인 등의 종목으로 나뉘어 개최된다. 참가 부문은 명무부와 일반부, 학생부 등이 있으며, 지난해부터 외국인부가 전국대회로 개최됐다. 이날 영예의 대상은 이경화(우리춤 예술원 이사장)씨가 최종실 류 소고춤으로 수상했으며 일반부 종합대상은 정경희 씨(도살풀이)가 외국인부는 최려령 씨(중국·판소리)에게 돌아갔다. 지난해부터 외국인부를 개최하는 등 우리 국악의 세계화와 전통춤 발굴을 위해 열린 한밭전국대회는 무용인에게 최고의 영예와 대전시민들에게는 최고의 공연을 선사한다. 이번 인간국보 축하 공연에도 조통달 명창의 판소리와 김무길 명인의 거문고 산조, 최윤희 명무의 도살풀이 춤과 박순금 명창의 경기민요, 대전시지정 웃다리농악 등이 펼쳐졌다. 또한 이번 대회에도 200여개 팀, 270여명이 참가하여 지난해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이번 영예의 대통령상에 국가문화재 지정 종목인 승무, 살풀이, 태평무가 아닌 비지정 종목인 소고춤이 수상해 국악계에 화제를 낳고 있다. 최종실 류 소고춤으로 영예를 차지한 이경화(우리춤 예술원 이사장) 씨에게 승무, 살풀이 춤이 아닌 소고춤을 가지고 경연에 출전하게 된 동기와 수상 소감을 묻자. “우선 기쁘고,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과 제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춤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한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게 많습니다. 특히 자유롭고, 밝은 정서를 담고 있는 춤이 많은 만큼 이번 저의 춤을 계기로 다양한 우리 춤이 무대에 올랐으면 합니다.” 이경화 씨는 계원예고 무용부장으로 25여년간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해 왔으며, 현재 중국 베이징(北京) 중앙민족대와 주중 한국문화홍보원 등에서 한국의 전통춤을 가르치고 있다. 어떤 계기로 중국에서 우리 춤을 가르치고 초빙교수로 가게 된 이유를 묻자. “한류 붐을 타고 중국인도 한국 전통춤에 대해 관심이 대단합니다. 북한에서는 매년 인민배우를 중국에 파견해 대학 무용과에서 북한 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북한 춤이 한국 춤의 전부로 아는데 비록 제 개인 자격이지만 중국에 우리 전통춤을 알리는 데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공연할 때 마지막 작품을 ‘대장금’의 주제가에 맞춰 했는데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더군요. 한국 춤 특강에는 중국의 초, 중, 고교 교사들이 우리 춤을 배우려는 열정이 매우 대단합니다.” 이 교수는 요즘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내년 한중 수교 15주년을 앞두고 한중 무용가가 합동 공연을 펼치는 ‘한중무용인의 밤’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과 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이며,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행사에서 최연소 안무가로 참가했으며 폐막식에서 열린 공연 ‘등불의 안녕’을 안무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행사에서는 ‘누리북’의 안무와 지도를 맡았다.
-
제22회 한혜경의 장고춤·소고춤 하계연수무제 문서 제22회(김취홍류) 한혜경의 장고춤 · 소고춤 하계연수회 김취홍류 12체교방 장고춤을 원류로 하는 장고춤 연수회를 22회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무용인드링 본 연수회를 통해 12 체교방장고춤가 이정범 선생님의 설장고 가락을 익히고 배워왔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보급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소고춤은 최종실류 소고춤을 원류로 하여, 춤적 요소를 더 많이 접목시켰습니다. 회를 거듭할 수록, 소고춤 또한 장고춤 못지 않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입니다. 연수회 참여하셔서 그 진수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16년 7월 23일(토)~24(일) 2일간 장소 :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 진선홀 주최 : 한혜경 12체장고춤 보존회 시간 연수시간 23(토) 24(일) 장고춤 09:00~13:00 09:00~13:00 점심시간 13:00~14:00 13:00~14:00 소고춤 14:00~18:00 14:00~18:00 연수비 : 각각 25만원(음악CD.점심 및 간식제공. 점심은 장고춤 신청자에 한함) 2과목 신청시 45만원(2회 이후 신청자는 40만원) 3회이상 수료증 소지자는 1과목 신청시 15만원.2과목 신청시 25만원 준비물 : 장고, 장고채, 소고, 소고채, 연습복, 버선 입금계좌 : 국민은행 649701-01-178708(한혜경) 문의 : 010-5305-1960 Daum cafe : 한혜경 우리춤의 향기 강사 : 한혜경, 박은하, 임미례, 김영운, 이지은, 박명옥
-
제21회 (김취홍류) 한혜경의 장고춤 ·소고춤 연수회제21회 (김취홍류) 한혜경의 장고춤 ·소고춤 연수회 김취홍류 12체교방 장고춤을 원류로 하는 장고춤 연수회를 21회 맞이하게 되었습니다.그동안 많은 무용인들이 본 연수회를 통해 12체교방장고춤과 이정범 선생님의 설장고 가락을 익히고 배워왔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보급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소고춤은 최종실류 소고춤을 원류로하여 춤적 요소를 더 많이 접목시켰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소고춤 또한 장고춤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입니다. 연수회 참여하셔서 그 진수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16년 1월 30(토) ~31(일) 2일간 장소 :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 진선홀
-
2010학년도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신입생 모집2010학년도 국악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신입생 모집 □ 모집전공 : 국악유아교육전공, 국악초등교육전공, 국악중등교육전공, 국악전문교육전공 □ 전형방법 : 서류전형 및 심층면접 □ 모집인원 : 40명 □ 지원자격 1. 학사학위 취득(예정)자 또는 법령에 의하여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 2. 학사과정의 출신학과, 전공에 관계없이 지원 가능함 3. 외국의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자 4. 국악전문교육전공지원자는 교사자격증 소지자에 한함. □ 전형일정 1. 원서접수 : 2009년 12월 14일(월) - 12월 18일(금) 인터넷접수만 가능. 2. 전형(면접)일 : 2010년 1월 16일(토) 10:00 3. 합격자 발표 : 2010년 1월 22일(금) 10:00예정 * 본교 홈페이지(http://www.cau.ac.kr) 및 국악교육대학원 홈페이지 (http://caugugak.com) 에 게재 5. 전형료 : 85,000원 □ 수업연한 : 2년제(4학기제)로서 하계, 동계 방학을 이용한 12일간(총48일)의 계절제 수업 □ 기 타 1. 본원을 졸업한자는“교육학석사”와 더불어 “국악교육자격인정증”수여 및 본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과정 지원자격을 부여함 2. 4차 학기만으로 졸업(논문학기 포함), 한 학기 등록금 절감효과(타 특수대학원은 5차 학기임) 3. 재학생 전원에게 소정의 장학금 지급 4. 방학을 이용한 12일간의 계절제 수업 5. 국내최고 교수진 (박범훈, 최태현, 김성녀, 최상화. 이형환, 전인평, 노동은, 최종실, 김재영, 사진실, 김일륜, 정호붕, 김성국, 이춘희, 등 그 외 다수) 6. 교수와 원생(현직교사)들이 함께 연구, 운영하는 국악교육 연구소 연구원 자격부여. □ 접수처 인터넷접수((http://www.uway.com/중앙대학교) □ 문의사항 : 국악교육대학원 홈페이지(http://caugugak.com), 행정실(031-670-4813, E-mail : yskim@cau.ac.kr )
-
‘2008 안성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안성, 축제 6일 동안 100여만명 찾아 대성황 ‘바람결에 스치는 바우덕이의 미소’란 주제로 열린 2008 안성 남사당바우덕이축제에 100여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축제장을 찾아 대성황을 이뤘다. 지난달 30일부터 5일까지 6일동안 안성천변 공원 일대에서 열린 바우덕이 축제는 첫날 30일 15여만여명의 관람객을 시작으로 연휴 시작인 3일에는 25여만명이 축제장을 찾아 즐거운 하루를 즐겼다. 올해 8회째를 맞는 바우덕이 축제는 9월 29일 오후 7시 “곰뱅이 트기”로 문을 열었다. 곰뱅이 트기는 축제를 열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남사당패의 전통의식, 이어 9월 30일은 오후 6시 안성시내 남사당패와 해외 공연단, 관객이 한데 어울리는 “바우덕이 길놀이”가 흥을 돋구었다. 축제가 열린는 6일동안 안성강변공원 메인 무대에서는 남사당 여섯마당이 상시적으로 펼쳐졌다. 이 중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당연 줄타기였다. 한강줄타기대회 우숭자인 권원태와 국내 유일한 여자줄타기 박지나, 서주향과 신예 김민중이 펼치는 화려한 줄타기 묘기는 축제의 꽃이였다. 신명나는 공연에 어께를 들썩이고 난 뒤, 강변공원 곳곳에서 펼쳐진 축제 따라잡기 체험으로 흥을 돋울 수 있었다. 특히 전통문화전수자에게 직접 배우는 남사당놀이 여섯마당은 가족끼리 참석하기에 좋았다. 남사당놀이 여섯마당을 기본으로 개발한 남사당 체험마당은 “몸으로 배우는 풍물놀이, 어름산이 되어보기(줄타기체험), 덩더궁이 악기강습, 뒹구르 방방살판, 덜미인형과 친구되기, 뱅뱅돌이 버나놀이, 얼쑤 탈놀이 등 8개 프로그램은 축제의 신명과 참여의 묘미를 주였다. 이런 남사당놀이 체험마당은 교과서에서 보기만 하는 딱딱한 전통문화교육에서 벗어나 흙을 밟으며 신나게 웃고 떠들며 오감을 통해 즐겁게 배우는 우리문화체험을 통해 창의력이 쑥쑥 자라나는 살아있는 체험교육이었다. 이동희 안성시장은 지역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 확산시켜 우리나라 대표 국민문화로 정착시키고 다가오는 2012년에 세계민속축제에 걸 맞게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 잡겠다고 했다. 축제를 담당한 최종실(중앙대 교수)씨은 “세계적인 민속축제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준비를 열심히 했다”며 “100여만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바우덕이 축제장을 찾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바우덕이 축제기간인 지난 2일 ‘축제 업그레드 방안’을 주제로 해외 축제 전문가들을 초청한 강연회가 시보건소 3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국제적인 축제들의 사례를 통해 8년째 진행되고 있는 바우덕이 축제의 변화와 성과를 짚어보고 발전전략을 고민하기 위한 자리였다. 국제축제 전문가들은 바우덕이 축제가 강변에서 열리는 것에 대해 깊은 인상을 표시했다. 10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브라질의 바히아 카니발 등 국제적인 축제가 특성화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발전해왔듯, 바우덕이 축제 역시 짧은 역사이긴 하지만 조직 운영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일 뿐더러 구성요소 또한 좋아 잠재적 가능성 또한 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바우덕이 축제는 2006년부터 유네스코 공식단체인 CIOFF의 공식축제로 지정 우리 전통을 소재로 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고 있으며, 2012년에 세계민속축제로 지정되어 있다.
-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2009학년도 국악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신입생 모집'□ 모집전공 : 석사과정 : 국악유아교육전공, 국악초등교육전공, 국악중등교육전공, 국악포괄교육전공 □ 전형방법 : 1.서류전형 2.심층면접 □ 모집인원 : 40명 □ 지원자격 1. 석사학위과정 가. 학사학위 취득(예정)자 또는 법령에 의하여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 나. 학사과정의 출신학과, 전공에 관계없이 지원 가능함 다. 외국의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자 라. 국악포괄교육전공 교사자격증 소지자에 한함. □ 전형일정 1. 원서교부 : 2008년 12월 8일(월) - 12월 19일(금) 2. 원서접수 : 2008년 12월 15일(월) - 12월 19일(금) 가. 입학원서 및 모집요강은 우리대학원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하여 사용 나.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입학원서에 사진1매를 부착하고, 접수 시 사진3매를 지참하여 접수 3. 전형(면접)일 : 2009년 1월 10일(토) 4. 합격자 발표 : 2009년 1월 16일(금) * 본교 홈페이지(http://www.cau.ac.kr) 및 국악교육대학원 홈페이지 (http://caugugak.com) 에 게재 5. 전형료 : 70,000원 □ 수업연한 : 2년제(4학기제)로서 방학을 이용한 12일간(총48일)의 계절제 수업 □ 기 타 1. 본원을 졸업한자는 교육학석사와 더불어 “국악교육자격인정증”수여 및 본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과정 지원자격을 부여함 2. 4차 학기로 졸업(논문학기 포함), 한 학기 등록금 절감효과(전문대학원은 5차 학기임) 3. 재학생 전원에게 소정의 장학금 지급 4. 방학을 이용한 12일간의 계절제 수업 5. 국내최고 교수진 (박범훈, 최태현, 김성녀, 최상화. 이형환, 전인평, 노동은, 채향순, 최종실, 김재영, 사진실, 김일륜, 정호붕, 김성국, 이춘희등 그 외 다수) 6. 교수와 원생(현직교사)들이 함께 연구, 운영하는 국악교육 연구소 연구원 자격부여. □ 접수처 국악교육대학원 행정실 (안성캠퍼스 국악대학 2층) 및 우편접수, 인터넷접수((http://www.uway.com/중앙대학교) □ 문의사항 : 국악교육대학원 홈페이지(http://caugugak.com), 행정실(031-670-4813~4)
-
사물놀이 2세대 ‘사물광대’의 신명나는 스무살이 광대굿 한판!1978년 서울 원서동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탄생한 사물놀이가 3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2008년 3월 6~7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다시 한번 관객을 사로잡았다. 공연에서는 먼저 사물놀이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물이 방영된 뒤 뒤쪽 출입문에서 갑자기 북 소리가 힘차게 ‘둥둥’ 울려퍼지더니 곧이어 익숙한 사물놀이 가락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물놀이 원년 멤버인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그리고 1986년 작고한 김용배를 대신한 남기문이 각각 장구와 꽹과리, 징, 북을 울리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어 원년 멤버들은 안녕을 비는 ‘비나리’, ‘삼도설장고 가락’, ‘삼도 농악가락’을 들려줬고, 관객들은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를 치며 사물놀이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물놀이 1세대들이 창조한 한국 고유의 독창적 공연 장르인 사물놀이의 열풍이 이번에는 그들의 첫 공식제자인 20년 ‘잽이‘ 사물광대들에게 계승되어 오는 3월 21일(금요일, 오후 8시)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사물광대의 20주년 기념공연이 펼쳐진다. 세계 최초인 그들 스승의 펄펄뛰는 전성기 시절을 뛰어넘어 이십년 사물놀이 외길을 걸어온 21세기 최고의 사물놀이 ‘잽이들’의 월등하고 원숙한 기량을 종합적으로 맛볼 수 있는 이번 공연의 가치는 사물놀이의 끊임없는 진보와 존재의미를 깨닫게 하는 ‘혼을 울리는 소리‘와 감동을 관객에게 선사할 것이다. 김덕수(장고), 이광수(북), 최종실(징), 김용배(쇠)의 사물놀이 1세대의 첫 공식제자인 2세대 사물광대 단원들은 김한복(징), 박안지(꽹과리), 신찬선(장구), 장현진(북)등 으로 그들은 오랜 음악적 동지이자 지기들이다. 각자 어려서부터 동네 풍물판과 예인집안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사물놀이를 접하며 예인의 운명을 타고난 네 사람은 금산중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만나 이후 금산농고에 진학하면서부터 한솥밥을 먹기 시작했다. 전국 고교풍물판과 국내 주요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떨치던 이들은 1988년 금산농고를 졸업하자마자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입단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고 1993년 개편된 한울림예술단의 원년멤버이자 가장 맏형으로서 팀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며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주자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개성이 강해 각자의 개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예술계에서 20년 동안 한결같이 네 명이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춰가며 한 팀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20년 세월동안 네 사람이 한 몸이 되어 네 개의 자연을 닮은 악기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합주는 사물놀이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다. 공연은 그간 사물놀이와 접목되어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지속해온 동, 서양예술장르 중 성공적인 공연들을 종합하고 있으며 이들 잽이처럼 국내 다양한 전퉁예술장르의 차세대 주자들인 음악친구들과 함께 풍성하고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임과 동시에 국내 사물놀이 1세대가 현역에서 선보이기 힘들어 원판 공연을 좀처럼 보기 힘든 삼도설장구가락을 원판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 문의 : 사물광대 031)916-2323 ▶ http://cafe.daum.net/GwangDae
-
최종실 무용반 강좌소개일 시 : 2004년 9월 3일부터~11월 말까지 수강료 : 30만원 (마감이 예상되는 강좌이므로 등록을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문 의 : 02) 2277-3431, 2279-1900 주 관 : 국립극장 문화학교 www.artedu21.or.kr 제목 : 최종실무용반_ 최종실류 소고춤(단기, 장단, 춤 초급이상, 금 오후 4시 ~ 오후 6시)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에 대표적 성공사례인 사물놀이 원조멤버이자 현재 중앙대 타악연희과 교수인 최종실. 최근 무용계에서는 타고난 가락과 판굿 현장에서 보고 배운 춤사위를 가지고 재구성한 최종실류 소고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서울에는 유일하게 국립극장 문화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최종실 교수 직강. 강사소개 現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타악연희과 교수 안성남사당시립풍물단 예술총감독 세계타악연구소 소장 중앙타악연희단 예술감독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작곡전공 리틀엔젤스 단원, 국립무용단 단원, 서울시립무용단 수석역임 원조사물놀이 (김덕수, 이광수, 최용배) 멤버 강좌내용 - 소고춤은 농악에서 소고잡이들이 추는 춤, 역동적인 동작과 개인기로 신명의 판을 만들어 내는 풍물판의 백미이다. 최종실류 소고춤은 최종실 특유의 소고놀음으로 그만의 독특한 춤사위와 가락으로 짜임새 있게 재구성하여 무대화한 작품이다.
-
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제100회 한국의 명인명무전3월 26일(화)~ 27일(수)오후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제100회 공연의 금자탑을 세우다오늘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1독립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동국예술기획과 한국명인원이 주최 주관하는 제100회 ‘한국의 명인명무전’이 3월 26일(화) ~ 27일(수)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해설과 이색적인 콜라보의 독립선언문 낭송과 영상, 춤이 음악으로 변주되는 입체적인 춤 사위 ‘한국의 명인명무전’ 으로 서울시민들을 찾아간다. 전통의 원형 보존과 전승이라는 핵심가치를 기반으로 전통춤의 뿌리를 지켜가면서 전통춤과 소리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들을 내재화시켜, 무대 위에서 승화시켜온 ‘한국의 명인명무전’ 은 한(恨)과 설움을 영상과 춤으로서 전통의 곰삭은 맛과 향기와 멋이 前無後舞(전무후무)한 공연으로 펼쳐지게 될 것이다. 한국의 명인명무전의 기록 그동안 한국의 명인명무전 제100회를 이어오는 동안 조선시대의 마지막 무동 명무 故 김천홍 선생을 비롯하여 한 시대의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판소리 명창 故 박동진선생, 명무 故 김계화선생, 일인창무극 故 공옥진선생, 명무 故 이매방선생, 배뱅이굿 故 이은관선생, 여창가곡 故 김월하선생, 가야금병창 故 박귀희선생등 전통예술분야의 명인들이 무대 위에서 명멸했다. 이 외에도 3,000여 명의 전통예술인들이 예술혼을 불살랐으며 150여 개의 전통춤과 소리가 깊은 인간의 정서를 녹여낸 춤사위와 소리의 향연을 선사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중․소․대도시를 비롯해 해외(일본, 중국, 몽골, 미국, 하와이)무대 등 70여 곳에서 공연된 ‘명인명무전’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는데 일조했습니다. ‘명인명무전’ 공연의 역사 속에 함께 했던 예술인들만 연(連) 3,000여 명에 달하며 공연장만 해도 국내외 60여 개 극장에 이르고 있다. 제100회 한국의 “명인명무전” 개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들의 원형보존과 계승으로 말할 수 있는 한국의 “명인명무전”은 이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의 공연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이번 공연은 전통예술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보기 드문 보석과 같은 이매방류살풀이춤 준인간문화재 정명숙 선생, 통영살풀이춤 인간문화재 엄옥자 선생, 안중근 의사가 인간문화재 정순임 선생, 피리독주(상령산) 인간문화재 정재국 선생, 승무 인간문화재 송법우스님, 평양검무 인간문화재 임영순 선생, 대금독주(팔도아리랑)인간문화재 이생강,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 강정숙 선생, 고깔소고춤 인간문화재 정인삼 선생, 입춤 인간문화재 최윤희 선생 등, 원로와 중견무용가 120여 명이 출연하며, 독립선언문 낭송으로 백시향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의 낭송과 박동국 동국예술기획 대표, 명예 예술경영학 박사의 예술총감독, 청운대학교 장선애 겸임교수의 해설과 영상으로 진행되는 아름다운 미학의 명품공연이 서울시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의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26일 (화요일) 첫째날 名人名舞(명인명무)※ 독립선언문 낭송 / 백시향(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1. 벽사정재만류승무/ 정용진(벽사 정재만 춤 보존회 회장) 2. 호남검무 / 김자연(사,한국무용연합회 회장)외7명 3. 부채춤 / 정현숙(정형숙 무용단 단장) 4. 조흥동류진쇠춤 / 이순림(심양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외4명 5. 강선영류태평무 / 조성란(태평무 이수자) 6. 살풀이춤 / 김지원 (단국대학교 교수) 7. 한량춤 / 이윤제, 이명순(맹사성 전국 국악경연대회 대상) 8. 최종실류소고춤 / 이봉주 (거리점령단 대표) 9. 한양교방춤 / 김원화(김원화﹠춤 예술단 대표) 10. 진도북춤 / 김영옥 (화개 김영옥무용단 단장)외10명27일(수요일) 둘째날 前無後舞(전무후무) ※ 독립선언문 낭송 / 백시향(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1. 입 춤 / 최윤희 (인간문화재)외15명2. 평양검무 / 임영순 (인간문화재)외11명3. 피리독주(상령산) / 정재국 (인간문화재)
-
제12회 기산국악제전 오는 9월 28~29일 경남 산청에서 열린다 !기산 박헌봉 추모비 제막식 X 박헌봉 국악상 시상식 X 전국국악경연대회 X 기산국악제전 국악한마당 제12회 기산국악제전 오는 9월 28~29일 경남 산청에서 열린다. /기산 박헌봉 추모비 제막식/ - 기산 박헌봉 작사, 향사 박귀희 작곡의 국악의 노래 새겨진 추모비 건립 기산국악제전위원회는 산청군의 전통예술 저변 확대와 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해 2013년 기산 박헌봉선생 생가 복원과 기산 국악당을 완공하여 국악부흥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기산 선생의 유지를 계승·발전 시켜 나가고 있다. 올해는 기산 박헌봉선생이 남긴 업적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100여명의 제자들이 함께 뜻을 모아 영원히 기념 할 수 있는 기산 추모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기산 박헌봉선생이 작사하고 향사 박귀희 선생이 작곡한 국악의 노래비는 산청군이 국악의 성지로 자리 배김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제12회 기산국악제전은 기산추모비 제막식을 시작으로 전통문화예술 창달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는 제8회 박헌봉국악상시상식과 국악인재 발굴을 위한 전국국악경연대회 수준 높은 국악콘텐츠 프로그램인 ‘국악한마당’이 개최된다. 기산국악제전 국악한마당은 29일 산청한방약초축제장 특설무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국악한마당 무대에서는 배우 김성녀 명창의 배띄어라, 어머니의노래 메들리, 봄날은 간다, 산청아리랑 다양한 국악가요와 왕기철 명창의 사철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출신 가수 유지나등, 신명나는 우리음악이 준비되어있으며, 풍물 남사당패의 연희 춤에 뿌리를 둔 최종실류 소고춤보존회의 전통무와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성에 맞게 재해석한 전통창작타악그룹 ‘유소’의 연희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이번 제12회 기산국악제전은 산청군이 주최하고 기산국악제전위원회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상남도, 경상남도 교육부, 산청군의회, (사)한국국악협회가 후원한다. 진행에는 국악공연 전문기획사인 정아트엔터테인먼트(주)가 맡고 있으며, 9월 28일 오후 3시부터 박헌봉선생의 추모비 제막식과 제8회 박헌봉국악상 시상식이 동시에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또한 29일 오전9시부터는 제12회 기산국악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가 산청문예회관 및 산청군체육관에서 진행되며, 기산국악제전 국악한마당은 산청군에 위치한 산청한방약초축제장 특설무대에서 오후 6시 30분부터 열린다. 행사개요 ○ 행 사 명 : 제12회 기산국악제전 ○ 일 시 : 2018년 9월28일(금) 추모비 제막식 오후3시 / 제8회 박헌봉 국악상 시상식 오후4시 2018년 9월29일(토) 전국국악경연대회 오전9시 / 기산국악제전 국악한마당 오후6시30분 ○ 장 소 : 산청군 기산국악당, 산청군 문화예술회관, 산청군 체육관, 산청한방약초축제장 특설무대 ○ 주 최 : 산청군 ○ 주 관 : 기산국악제전위원회 ○ 후 원 :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상남도, 경상남도 교육청, 산청군의회, (사)한국국악협회 ○ 문 의 : 기산국악제전위원회 070-4848-0216, fax 02-564-0267 ○ 진 행 : 정아트엔터테인먼트(주)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3)<br>강원도아리랑
- 2제6회 시흥갯골국악대제전(06/22)
- 3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대상에 이소영씨
- 4제3회 대구풍물큰잔치 ,19일 디아크문화관광장
- 5유튜브 아리랑 채널 운영자 정창관 선생 따님 시집 보내는 날
- 6이무성 화백의 춤새(91)<br> 춤꾼 한지윤의 '전통굿거리춤' 춤사위
- 7국립극장 마당놀이 10주년…“새로운 얼굴 찾아요”
- 8무세중과 전위예술(12) <BR> 극단 민족 제2회 공연 '목소리' (1971년)
- 9(43) 조선민요합창곡집 제1집
- 10유인촌 장관 ‘연극배우 고 김동원 흉상 제막식’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