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특별기고] 사할린 한인 2세가 부르는 서러운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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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사할린 한인 2세가 부르는 서러운 아리랑

이병일(전 사할린한국교육원장)

  • 특집부
  • 등록 2024.04.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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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전 사할린한국교육원장)

 

사할린한국교육원장 3년간 업무를 마치고 귀임한지 1년이 지났지만, 사할린 동포들의 서러운 처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코로나 시절 함께 불렀던 아리랑 선율에 따라서 부른 개사한 노래를 불러본다. 교육일지와 사진 속에 있는 사할린 동포 2세들의 얼굴들을 떠 올려본다.

 

 사할린 한인 2세의 간절한 소망


사할린한국교육원 한국문화 수업을 함께하면서 이분들의 간절한 소망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동포들의 뼈져린 한은 영주귀국으로 조국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다. 한국으로 가신지 30년이 지나고 이미 영주귀국 후 연로하신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2세대 자녀 한명과 그 배우자를 영주귀국 대상으로 확대되었다.(2021) 그 이전까지는 풀릴 기미가 없이 가슴 아프게 지속되었다.

  

1세대 부모가 사망한 2세대 자녀들에 대해서는 현재 법적으로 영주귀국이나 귀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국적 취득에 관한 속지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그러나 이분들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말하고 쓰고 배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부모님이 술김에 흥얼거리는 아리랑이나 민요 가락을 들으며 자랐고한국의 전통 풍습과 명절을 쇠었으며조선에서 가져 오거나 사할린에서 만들어 쓴 조선의 생활물품을 늘 보고 쓰며 아버지어머니 따라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어린시절청소년 시절냉전의 시기를 살아 왔다.

 

해방 후 냉전 시기에 사할린 한인들은 억류되어 감시 당하며 사회주의 소련땅 사할린의 노동력을 보충하는 신분이었다이동과 취업인간으로서의 권리적 측면에서 차별과 멸시는 다반사였다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대한민국의 발전상이 보도되면서 급격히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지만어린 시절 당했던 차별과 수모에 대해서는 늘 대화의 끝에 "정말 숱하게 멸시를 받았어." 하시며 푸념하듯 말씀하시곤 했다.

 

오죽했으면 한인 2세대인 사할린태권도협회 안수학 회장은어린 시절 차별과 수모에 반대하여 싸움을 자주 했고김치 냄새난다고 놀리는 러시아 아이들 혼내주고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가라테를 배웠으며, 한러수교 후 태권도를 다시 익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그럼에도 부모들은 국적을 러시아로 바꾸지 않고 평생 무국적으로 살다가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대하고 있었고 2세대 자녀들은 귀환을 믿으며 굳건히 당당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냉전과 사회주의 시절을 살다가한국의 발전상이 사할린에 알려지고 사할린 한인의 존재와 귀환의 문제가 공영방송을 타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사실 한-러 수교 이전에도 KBS사회교육방송(현재 한민족방송)에서는 사할린 한인동포들이 고국의 친지에 전하는 사연들이일본으로 이중징용 되어 재일동포가 된 지인을 통해 전달되어 방송이 되곤 했다그러나 첨예한 냉전 시기에 관심도 지원도 교류도 불가능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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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1세가 1942년 산판(벌목장)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남긴 귀한 사진.

 

1990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고국방문이 이루어질 때 한국에 다녀오신 1세대 부모들이 많았다. 그러나 영주귀국 희망 신청이 이루지던 결정적 시기를 맞이하기 전에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 시기에 생존해 계신 1세대분들은 영주귀국을 희망하고 신청하여 고국에 오셨지만, 사망하신 1세대분들은 영영 통한의 그리움 안고 타국 땅에서 숨을 거두고 그 섬에 묻히셨다.

 

사할린에 징용되었다가 일본으로 다시 이중 징용된 1세대 부모를 둔 2세대 자녀들은, 알음알음 정보를 얻어 일본의 한 공동묘지에서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기도 하였다. 이 얽히고 설킨 일제 강제징용과 식민시대의 압제와 희생, 그리고 조국으로부터 외면 당한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분들에겐 실로 삶 전체가 버겁고 서러운 현실이다.

 

나는 어떤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영주귀국 확정 전에 부모를 잃은 2세대 분들의 원한을 내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보고 가슴에 간직하게 되었다.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에 "사망 등 다양한 사유로 영주귀국 신청을 하지 못한 1세대 동포들의 자녀들에게도 희망에 따라 영주귀국의 기회와 모국인 대한민국의 국적 취득이나 경제적 지원의 혜택을 드릴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범위의 2세대 분들 중에는 현 러시아 정부의 연금을 수령하는 분도 있고홀로 사업을 일으킨 분도 있으며이미 사할린 사회에 인정을 받은 문화 예술 공로자도 많다.

대한민국으로 영주귀국한다면 자녀들과의 이별을 두려워하는 분들도 많다따라서 그런 범위의 모든 2세대 분들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조국이 풀어주지 못한 부모의 원한을 보며 겪으며 성장하고 기억하는 자녀들의 소망을인도적인 차원에서 조국에서 살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할린 한인 2세의 고통과 설움은 곳곳에서 나타난다사할린한국교육원과 유치원에서 25년간 한국어를 가르치시다가 2021년 영주귀국 신청으로 한국에 오신 2세 전영희 선생님은어머니가 2004년 병환 중에 영주귀국을 하셨지만 대한민국 국적이 나오기 전에 병원에서 사망하셔서 한국 국적도 받지 못하였다그러니 전영희 선생님은 영주귀국 대상이 될 방법이 없었다할 수 없이 영주귀국 하시는 1세분과 재혼을 하여 배우자 자격으로 2021년 11월에 영주귀국을 하셨다그러나 배우자께서 역시 국적 취득 전에 별세하셔서 국적이 나오지 않아 애태우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이게 무슨 일인가 화가 난다영주귀국 하신 분이 돌아가시면 사후에라도 국적을 드려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그래야 자녀에게도 법적으로 고국에서 살아 볼 기회가 생길 것 아닌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에 오셨는데 남편이 국적을 받기 전에 별세하여 배우자의 국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내는 다시 돌아가라는 것인가너무나 법 적용이 허술하고 냉혹하다유독 사할린 한인사할린 동포들에게 더 냉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1세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영주귀국 허용된 2세 분들 중에는 한국어에 서툰 분들이 많고 일상 생활행정적 처리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고국 정착 과정에 난제와 장벽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그래서 사할린한국교육원의 한국어 교재를 다시 가져와 드린 적이 있다정착 지원 체계가 아직 자리 잡히지 않아 각자도생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

 

KBS한민족방송이 주관하는 한민족체험수기대회에서, 2021(사할린아리랑무용단 박영자 단장), 2022(유즈노사할린스크 김경순성인 부문 대상을 모두 사할린 2세대 한인 어르신이 수상하셨다. 2021년 수상자 박영자님은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다시 이중징용 되셨다가 끝내 일본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던 기막힌 디아스포라가 담긴 가족사를 글로 남겼다.

 

수상 인터뷰에서 "KBS가 주는 이 대상은 우리 가문의 영광이기 전에 사할린 한인 전체에 주는 상"이라며 "사할린에서 다시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서 타국에 묻히신 외할아버지께 이 상을 바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하셨다.

 

2022년 수상자인 김경순님은 아버지에 대한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90년대 중반 병든 노부모가 한달 간의 모국방문에50년 만에 아들과 상봉 후 다시 이별하여 사할린에 돌아와 몇 개월 만에 돌아가시는 바람에끝내 영주귀국 신청을 해보지 못한 서러움에 관한 처절한 가족사의 이야기를 쓰셨다.

 

특히 김경순님은 한국교육원 한국문화 수업시간에 배운 가수 조용필의 노래(그 겨울의 찻)와 주병선의 노래(칠갑산가사를 바꿔 부모에 대한 기억조국 귀환에 대한 부모의 열망부모님과 10살 아들(김경순님의 오빠)과의 이별 장면 등을 가사에 담아 내게 보내셨다그 노래를 노래방 반주에 맞추어 불러 보았는데부르다가 여러 번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터져 한참 후에나 완전히 부를 수 있었다그 노래 영상들을 김경순님께 내가 보냈고 김경순님은 한국의 조카들(큰 오빠의 자녀)에게 보내 드렸다고 한다그러면 조카들로부터 아버지 어린 시절을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고 한다.

 

박영자님의 외할아버지 이야기와 김경순님의 부모님과 오빠에 대한 사연은국악신문과 새고려신문과 우리말방송에도 게재되고 방영되었다김경순님 사연은 KBS한민족방송에서도 사할린과 전화로 연결하여 소개되기도 하였다나도 방송에 출연하여 사연과 노래 가사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사할린 동포사할린 한인

 

1992년부터 시작된 사할린 동포 1세대의 영주귀국 사업으로 현재까지 4,700여 분이 홀로 또는 배우자와 함께그리고 2021년부터는 '이미 한국에 사시는 부모님'의 2세대 자녀 1인과 배우자가 한국에 영주귀국하여 사신다.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되었거나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인들을 사할린동포라고 정의한다이분들이 영주귀국이 허용된 사할린 동포 1세대이다따라서 사할린에서 한 집안이나 동네에서 자란 언니동생친구라도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영주귀국 지원 혹은 희망과 신청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제외되기도 하였다게다가 영주귀국 사업 개시 당시 생존하는 1세대 한인에 한하여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신청 및 허용 대상이 되었다.

 

이 글은 영주귀국 사업과 신청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망하거나 기타 사정으로 영주귀국 신청을 할 수 없었던 부모를 둔, 2세대 사할린 한인 자녀들의 간절한 소망에 관한 것이.

이분들은 2024년 현재 연령상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에 이르신 분들이다조국 귀환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 불쌍한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통절한 한을 품은 채 살고 계시다어떻게든그렇게도 부모가 돌아가고 싶던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계시다영주귀국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 취득을 하고 싶어 하신다그런데 절차가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이런 점을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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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년에서 부터 3년간 한국문화교류가 단절되는 시기 필자는 임시 탈춤강습과 탈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20년에서 부터 3년간 한국문화교류가 단절되는 시기 필자는 임시 탈춤강습과 탈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국립사할린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사할린아리랑무용단 단원들에게 탈춤 기본 춤사위를 지도했다. 

 

우리 민족은 어디를 가나 노래방이 있듯이 러시아는 춤을 즐기는 민족이다. 사교댄스나 스포츠댄스 모임이 많다. 아마도 죽을 때가지 춤을 추다가 간다고나할까. 동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실버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함께 춤을 배우기도 했다. 그들에게 탈춤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렇게 동포들과 가까이 만나게 되면서 사할린 한인들의 이산에 대해 4대 가족사를 접하게 되었다. 

 

특히 댄스 클럽에서 만난 오석만씨가 KBS한민족방송에서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2023년 우수상을 수상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한국어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할린 한인들의 가족사는 바로 잊혀진 한국사이고 동아시아 전쟁사라는 나의 설득에 용기를 내서 슬픈 가족사를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책으로 묶여 나와서 보내드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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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 한인협회(회장:임종환)에서 운영하는 '경로당'에서 탈춤을 선보이고 있는 필자.

 

한국교육원 수업에서 한국어 수업이나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인들이 과제물로 내 놓은 체험수기 중 우수한 작품이 KBS한민족체험수기에서 매년 대상과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경순님은 한국교육원 수업에서 그 겨울의 찻집’ 노래를 배우신 후 눈물의 섬사할으로 가사를 정셨는데 내용은 이러하다가사 중에 특히 "사무친 한을 풀어 주세요."는 대한민국에 외치는 절규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서러운 아리랑

사할린으로 끌려 왔어요조선 땅에서 그 옛날

일본 놈들의 시달림 받고늘 괴로움에 떨었죠

가고픈 고향 한국 땅으로부모형제 사는 마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한숨만 저절로 나네

웃고 있어도눈물이 난다그리워라 내 고향

 

사모친 한을 풀어 주세요하루 속히 날아 가고파

그늘진 세월고향 그리며철천지 한이 되었네

웃고 있어도눈물이 난다꿈에서 본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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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아리랑무용단 박영자 단장과 회원들

 

그리고 칠갑산’ 노래의 곡조를 생각하면서 부모와 이별하는 어린 10살의 오빠의 심정을 감정이입하여 지은 ’ 가사는 이러하다.

 

이별의 부두

부모 잃은 어린 마음을, 그 누가 알아 주리요

외로웁고 서럽던 아픔, 누구에게 원망 주리요

 

어머니는 내게 같이 떠나자, 애닯게 속삭였지만

할아버지 무서워 끝내, 따라간다는 말을 못했소

 

어머니가 나를 두고 떠난 날, 배 떠난 부두에 나가

하염없이 목 놓아 울었다오.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또 김경순님은 아리랑민족의 후예로서, 부모님과 큰오빠의 오십년 이별과 한번의 만남, 또 이별과 사별의 한, 전체 사할린 한인동포들의 고통의 역사를 담아 아리랑 가사로 쓰셔서 내게 보내셨다. 적절한 아리랑 곡을 찾아 보았는데, BTS의 아리랑이 긴 가사를 모두 담을 수 있었기에 노래로 불러서 보내 드렸다. 도중에 여러 번 목이 메었다. '한맺힌 사할린 아리랑'을 정리한 가사는 이러하다.

 

한맺힌 사할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일제에 끌려 사할린 왔소. 모질던 징용살이 누가 아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간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믿음에 살아 낸 세월

 

[랩 버젼]

한달만 있다가 돌아간단 그말, 어찌나 기다렸는지.

밤이면 라디오 틀어 놓고서 혹시나 우리를 찾을까 봐.

애타게 기다린 자식 형제들 오십년 넘어서 만나보네.

수십년 세월을 참아 왔는데 언제 또 고향 땅을 밟아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기다리다 지쳐 세상 뜨신, 우리네 부모님들 불쌍하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넘어간다.

부모들 사모친 한 생각하면, 애타던 자식들도 가여워라.

너나없이 서럽고 아파 어이하오.

 

이 가사의 핵심은 부모와 어린 오빠가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 그런 가엾은 부모를 보는 자식들 모두 차마 맨 정신으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가엾다는 점이다.

영주귀국의 기회가 오기 전에 돌아가신 불쌍한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진다. 부모님의 나라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도무지 소식도 없고 희망을 찾을 수도 없다.

이 아리랑의 마지막 가사들은, 그렇게 부모를 잃고 조국과 단절된 채 희망을 잃은 사할린 한인 2세대 자녀들의 심정을 그대로 외치는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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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에서 만난 사할린동포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러본다. 사진은 하바롭스크아리랑보존회와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이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경연대회를 마치고 '아리랑한민족간센터(대표 백규성)' 건물 1층에서 아리랑 수업이후 기념촬영.

 

"(조국 귀환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 뜨신

우리네 부모님들 불쌍하오

부모들 사모친 한 생각하면

애타던 자식들도 가여워라 

너나없이 서럽고 아파 어이하오

 

20239월에는 국악신문사(대표이사 기미양)를 통하여, 아리랑 무용단장 박영자님(갈리나 박)의 아리랑 가사를 받았다. 박 단장님 역시 일찍 부모를 잃고 영주귀국의 희망이 사라진 심정과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마음 속의 조국에 대한 이미지와 당신의 현실에 대하여 "사할린 2세 아리랑"라는 재목을 달고 가사를 지으셨다. 아리랑 반주를 확장하여 가사를 붙여 서울의 사무실에서 불러 보았다.

 

사할린 2세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는 사할린 2세 한인 할머니, 하지만 부모 조국은 한국이라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 어릴 때 저 산 너머엔, 내 조국 있다고 믿었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팔십 년 세월 부모 잃고 서럽구나, 나도 이제 주름진 할머니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말문 터진 손주들 자주 묻는 말, 할머니와 조국에서 살 수는 없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발전되어 잘 사는 우리 조국 한국, 우리에겐 자랑스런 마음만 크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언젠가 이 생명 끝나기 전에, 조국 품이 우리 2세들 안아 줄까

  

      한인 2, 우리는 누구인가요

 

어릴 적부터 조국의 존재를 믿고 한국어, 한국문화로 정체성을 지켜 왔지만, 영주귀국 신청 시기 이전에 부모를 빨리 여의신 사할린 한인 2세 어르신들의 심정은 한결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한국을 조국으로 선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당신들께도 주어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설령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사할린 사회에 뿌리박은 삶의 터전을 옮기는 문제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자녀들과의 이산, 다른 친지, 친구들과의 이산을 의미하며 기존의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는 연금의 상실과 영주귀국 후 생활보호대상자 신분으로서의 생활 등 수많은 심적 갈등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국이 부모의 한을 풀어 준다는 기본적인 정책의 도리와 그로부터 받는 부수적 혜택이면 충분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들의 국적 취득이나 자녀의 유학이나 체류 등에 있어서 유연함 같은 혜택일 수 있다. 엄연히 식민지 시기 타국으로 강제동원된 국민들의 자손이 아닌가 말이다.

 

202110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 정권에 항복하여 붕괴되던 시기, 그간 한국 정부에 기여한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가족들을 우리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목숨을 걸고 안하게 데려온 미라클(기적)의 작전이 있었다. 그러한 쾌거는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과 한국 정부의 도덕성과 형제애 및 인류애를 상기시킨다.

 

그런 인류애와 형제애를 지닌, 정의로운 나라가, 강제로 희생된 일제침략기의 혈육과 자손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또한 지나치게 엄격한 법률의 적용으로 인해, 명백한 국적 회복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상황(영주귀국 후 국적 취득 전 사망하신 경우)에서 비인륜적으로 국적을 부여하지 않아 그 자녀들의 기회가 방기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법의 취지를 저버리는 일이다. 법의 사각지대는 극단적으로 냉혹하게 2세대분들의 가슴을 갈라 놓는다. 법이 어째 그리 촘촘하지 못하여 법 구실을 다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일본 정부나 러시아 정부와 얽힌 외교적, 법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런 문제 해결의 전제없이도 우리 정부의 결단이면 어느 정도 가능한 일 아닐까 생각한다. 하물며 인구도 수십년 간 하염없이 감소하고 있어 국가 소멸의 길로 가는 절체절명의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체 무엇을 망설이는가 묻고 싶다.

나는 2세분들의 사무치고 뼈저린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한다.

 

"왜 한국은 그렇게 발전했으면서 우리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죠? 옛날엔 가난했다, 전쟁으로 힘들었다, 다 이해해요. 그런데 지금은요?"

 

"부모들은 우리에게 한국어와 한자를 가르쳤어요. 조국에 돌아갈 때까지 잊으면 안된다고. 저 산 넘어가면, 바다 건너가면 조국 조선땅이 있다고 했어요. 고향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소련 시절에, 영주귀국 전에, 병으로, 이중징용으로 다 돌아 가셔서 우리들은 갈 기회가 없어졌어요. 우린 뭐에요?"

 

"부모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 고향에, 왜 사할린에서 태어난 2세들은 못 살아 보는 거죠? 한국말도 말하고 생활방식도 한국식으로 잊지 않고 지켜왔는데?"

 

한국 교육부에서 파견 나온 교육공무원은 이에 대해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만 제가 그런 것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미칠 만한 능력이 없어서 죄송해요.’ 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의 애환을 담은 가사에 노래를 불렀고, 교실과 공원에서 한국의 인기 가요를 불렀으며 탈춤을 소개하고 민속춤을 같이 추었으며 한국문화 수업을 했다. 그리고 한국어말하기대회에서 발표하실 내용을 컴퓨터로 옮겨 드리고 약간 교정하는 역할만을 했다.

 

나는 한국에 복귀 이후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의 행사에는 가능한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 23일 파주사할린동포회 영주귀국 15주년 행사에서 전국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님을 비롯한 사할린동포들과 함께 사할린아리랑이 대합창으로 불려졌다. 사할린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믈을 흘리신다. 우리는 그분들이 흘리신 디아스포라의 눈물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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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사할린동포회가 주관한 사할린동포 파주정착 15주년 기념 '파주아리랑콘서트'에서. 2024.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