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Pick리뷰] 찰나의 순간 자유로움, ‘즉흥음악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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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제주

[Pick리뷰] 찰나의 순간 자유로움, ‘즉흥음악축제’

전통음악, 재즈, 클래식, 즉흥음악
서울돈화문국악당과 남산국악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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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정수현 국악전문기자]=지난 2월, 서울돈화문국악당과 남산국악당은 전통음악,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음악적 협업을 통해 자유로운 즉흥음악을 선보이는 '한국즉흥음악축제'를 닷새간 선보였다. '한국즉흥음악축제'는 서울돈화문국악당 '프린지 콘서트'를 시작으로, 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 '메인 콘서트', '한옥 콘서트', '나이트 콘서트', '넥스트 페이지 콘서트'까지, 총 5개의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2023년 첫선을 보인 '한국즉흥음악축제'는 국악을 비롯하여 클래식, 재즈, 전자음악, 현대무용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선보이는 즉흥음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종합예술공연이다. 올해도 아담한 한옥에서 자연 음향으로 즐기는 '한옥 콘서트', 국악기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실험적인 무대를 만날 수 있는 '나이트 콘서트', 전년도 서울돈화문국악당 프린지 아티스트 중 선정된 신진 즉흥 음악가와 즉흥음악계 거장의 합동무대로 선보이는 '넥스트 페이지 콘서트'까지, 한층 다양해진 볼거리로 관객들을 찾았다. 예술감독은 전년도와 같이 대금 연주자 유홍이 맡았다. 그는 "한국 음악계 안에는 즉흥음악에 대한 공연, 수요, 관심이 꾸준하게 있었지만,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경향이 있었다”며, 다양한 현장을 아우르는, 함께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축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는 감흥’이라는 뜻으로, ‘즉흥연주’란 즉석에서 연주자가 직접 작곡과 동시에 자발적 연주를 병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즉흥연주는 특히 재즈 음악의 주요 요소로 부상하였고, 연주자의 자발적 창의성을 위한 필수요소로까지 확대되었다. 국악계에도 즉흥의 바람이 불어오며, 국악기나 국악 어법을 활용한 즉흥 음악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번에 축제에서 마주한 무대는 28일 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 메인 콘서트로, 한 세션당 30분 정도로 이루어진 즉흥 음악을 총 세 세션 관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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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세션에서는 자유 즉흥과 현대음악, 실험음악을 아우르는 피아노 기타 듀오 비헤디드와 대금 연주자 백다솜,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과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박재린이 함께 했다. 바람 소리와 트레몰로 등을 활용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며 시작한 이 무대에서 연주자들은, 선율에 집중하기보다 음색과 다이내믹에 더욱 집중하였다. 대금은 자연스러운 바람 소리와 혀치기 기법 등을 활용하였고, 바이올린은 활대를 빠르게 쳐 내거나 고음부에서 아슬아슬한 소리를 내며 기량을 맘껏 뽐냈다. 피아노는 라단조(Dminor)를 중심으로 저음부를 비롯한 음의 흐름을 풍성한 음색으로 다른 악기들의 연주를 뒷받침해 주었다.

 

피아노는 중간중간 빠르고 강렬한 짧은 주제를 쳤는데, 그걸 신호로 악기들은 조금씩 주제를 바꾸어 연주했다. 사운드 조합이 특히 잘 어울리던 이 세션은 화성 진행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동시에 카덴자(Cadenza)처럼 자유롭게 악기의 매력을 드러내고, 서로 공간을 내어주며 조화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또 프리재즈(Free Jazz) 같은 혼돈 감과 균형 잡힌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는 악기들을 받쳐주다가도 어느 순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처럼 강하고 휘몰아치는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때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연주를 하던 악기들과 어우러짐은 서로 다른 장르의 형태가 묘하게 조합된 느낌을 주어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두 번째로 세션은 세상을 좀 더 아릅답고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꿈꾸는 가야금 연주자 주보라와 다양한 예술가들과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만들어 활동하는 음악가 하림이 함께 했다. 이들은 연주하기 전 관객들과 길게, 그리고 깊게 대화하고 소통했다. 두 연주자는 서로 함께 ‘즉흥이란 무엇인지’ 많이 대화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편안한 새로운 결과물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기 위해, 숨을 멈추게 하는 음악이 아닌 숨을 쉴 수 있는 소리를 보여주는 데 치중하였다고 전했다. 호흡과 닮은, 계속해서 숨을 쉬는 악기 슈르티박스(SHRUTI BOX)가 연주되며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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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은 관객들에게 호흡하며 ‘아-’하고 함께 소리내도록 유도했다. 숨 쉬는 악기 선율 위로 관객석과 무대의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쌓여 갔다. 하림은 동양적 스케일의 민속음악 선율을 허밍으로 노래했고, 모두가 함께 소리를 쌓아 나갔다. 이후 하림의 다양한 세계 민속 악기 몇 대의 연주와 주보라의 따스한 음색이 만들어 내는 허밍, 영롱한 가야금 선율과 다양한 기법, 그리고 몸짓이 얹어졌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소리를 듣고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며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이들의 음악은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자유로운, 말 그대로 ‘숨을 쉴 수 있는 음악’을 선보였다. 짜이지 않은 틀 속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해 그들 내면의 소리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그 순간, 감흥이 일어났다.

 

마지막 세션은 네 명의 연주자가 함께했다. 정가의 전통적인 멋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전통가객 강권순 자유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실험적인 사운드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김은영, ‘동시대성’을 기반으로 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첼리스트 지박, 그리고 섬세함과 파격적인 에너지로 새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양금 연주자 최휘선이 함께 만들어 냈다. 첼로의 중후한 부드러움과 풍성한 피아노, 채를 활용한 다양한 기법으로 다양한 색채를 드러낸 양금과 기존 정가에서 탈피한 특색있는 목소리는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화성적이거나 대중적인 음악적 패턴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악기 고유의 음색을 집중도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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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들의 무대를 보며, 기본이 탄탄한 연주자들이기에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주자들은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화성적이고 선율적인 음악을 수없이 연습하고 체득하였기에 그 음악을 발판 삼아 그들 내면에 있는 소리를 즉흥적으로 표현할 수 있던 것이다. 특히 그 기본기의 발전이 도드라졌던 것은 가객 강권순의 소리였다. 분명 전통 정가의 음색으로 부르는 듯하나, 억지로 음을 끊어내거나 압박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 기존의 정가를 자유롭게 변형시켰다. 그의 소리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재즈 스캣(Scat)이 연상될 정도로 다양하고 경이로웠다. 연주자들은 강인하고 확고했으며, 소리에 힘이 있었다. 음악을 이해하고 당당히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 무대는, 안개 낀 숲속 오솔길 같은 서정적이고 오묘한 느낌 가운데 정가가 조용히 흘러나오며 마무리되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확고하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 무대를 본 관객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들려오는 지하철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효과음적 소리가 모두 음악으로 들리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즉흥’의 매력은 바로 그곳에 있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시간 예술 중, 가장 자유롭게 연주자의 음악과 악기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 작년 축제는 난해하고 어려워 온전히 그 음악을 받아들이기 다소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는 대중들과 소통하며 즉흥 음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노력하고, 연주자들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소리와 움직임을 더욱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겨내며 나만의 즉흥 음악을 발견하는 것. 예술을 통한 윤택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이 음악이 더욱 일조할 수 있도록, 현대의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함께 노력하며 그 즐거운 판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