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이 책을 말한다] 이동식의 음악사랑 이야기 "우리 음악 어디 있나"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책을 말한다] 이동식의 음악사랑 이야기 "우리 음악 어디 있나"

문화전문 이동식 기자의 K-팝의 뿌리 찾기
2011년 관훈클럽 신영언론기금 저술지원 선정 도서 ​
2011년 문화관광부 출판지원 우수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 특집부
  • 등록 2024.02.19 07:03
  • 조회수 16,711
smartmockups_lss2dcft.jpg
이동식, 우리 음악 어디 있나, 북성재 출판, 2011. (사진=북성재 출판)

 

문화 전문기자 이동식의 음악사랑 이야기 '우리 음악 어디 있나'. 
 
2011년에 발행 된 이 책은  당시 한류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팝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우리 음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 우리 고유의 가락에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적 문법을 더해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처럼 우리 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 유산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뻔하다고 말하면서, 이제 서양인이 펼쳐놓은 판에서 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판을 만들어 우리의 심성과 예술혼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화전문 이동식 기자의 K-팝의 뿌리 찾기
우리나라 최초로 방송에서 백남준을 소개했고, 이우환, 이응로, 윤이상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문화전문 기자의 음악사랑 이야기다. 저자는 동양의 고전과 서양 철학 속에서 음악의 역할과 본질을 깊숙이 걸터듬어 내려온다. 런던과 북경에서의 기자생활은 저자에게 우리 문화, 그중에서도 우리 음악에 대해 한발 비껴나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사유의 시간을 제공했으며 그것이 "우리 음악 어디에 있는가”라는 자문으로 이어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적 문법을 자신만의 해석 위에 우리 음악 사랑을 더하여 보여준다.

공자의 음악에 대한 조예, 그리고 세종대왕이 발견한 기보법 ‘정간보’ 이야기에서 성인들의 통치철학에서의 음악의 역할을 잘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일례로, 기장이라는 곡식이 음가를 정하는 기본이 되는데, 풍년이 들었을 때에는 기장을 세로로 세우고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기장을 가로로 눕혀 음의 높낮이는 물론 도량형의 단위로 조절했다고 한다. 풍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우쭐하고 들떠있기 쉬우니 음을 낮추어 평안하게 하고, 흉년에는 음을 높이어 사람들의 가라앉은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파리나 런던, 뉴욕에서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에프엑스(f(x) 등의 연장공연을 요구하는 플래시몹이 열렸다는 뉴스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류열풍의 발아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새싹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한국음악이 세계에 튼튼히 뿌리 내릴 수도 있고 일년생 풀로 그냥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처럼 우리 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 유산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뻔하다. 이제 서양인이 펼쳐놓은 판에서 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판을 만들고 우리의 심성과 예술혼을 보여주는 그런 음악판을 펼쳐야 한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의 우리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읽어낸 대한민국예술원 황병기 부회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 석좌교수는 일독을 추천한다.

저자는 "우리 민족사에서 20세기만큼 변화가 많았던 세기는 없었던 것 같다. 20세기에 일어난 한 세기의 변화는 몇천 년에 걸친 변화보다도 크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부분에 걸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이 격랑과 소용돌이를 헤쳐오면서도 20세기 말에는 컴퓨터, 철강산업, 토목건설, 조선업 등에서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보면 민족의 우수성이 돋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문화면, 특히 음악에서는 20세기를 실패의 역사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암울한 세기였다는 백대웅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해서 말하면 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이 묻었는지, 거울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생존에 급급한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음악에서 우리의 얼굴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그려내고 우리의 느낌을 노래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처음부터, 근본부터 새로 시작하자! 그렇게 해야 우리들은 일찍이 김구 선생이 그토록 염원하던 대로, 우리의 문화로 세계에 이바지하는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이동식)


황병기(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이화여대 명예교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음악은 공기 중에 파동으로 일어나는 순간 동시에 사라져버리기에 철저하게 덧없는 예술이지만, 음악만큼 사람들을 순수한 시간 속으로 인도하며 몸과 마음을 붙들고 풀어주는 예술은 없다.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위로해 주기도 하고 우리를 이끌어올려 완성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는 위대한 힘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은 너무 적다. 도처에 음악은 넘치지만 진정으로 한국인의 심성과 예술혼을 보여주며, 세계인들도 사랑하는 그런 음악은 많지 않다. 외제 가구에다 값비싼 외제 술과 음식, 그릇도 외제, 생각도 외제, 거기에다 외국 음악을 들어야 잘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양 사람이 펴놓은 음악적 멍석 위에서 언제까지나 우리가 춤을 추고 있어야 하는가? 왜 자동차다, 반도체다 하면서 세계 일류로 발전했으면서 음악은 우리 것이 아직도 없는가?
우리의 음악전통은 아득히 높고 찬란했다. 그런 그것을 덮어버리고 과거의 유산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한 우리 음악은 나오지 않는다. 벌써 반세기 전에 내가 가야금으로 첫 창작곡을 만들어 세계의 절찬을 받았지만 우리 음악을 되찾는 일은 몇몇 음악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옛날의 음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시대를 넘어서서 영원으로 연결되는 우리 음악을 만들려면 우선 전통의 틀과 정신을 알고 이것을 현대라는 시간의 축 위에서 재해석해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 내야 한다. 그것은 음악에서 우리가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되어야 막 세계에 퍼져나가는 한류를 계속 확산시켜 나갈 수 있다.

중진 방송인이자 언론인인 이동식 기자가 그러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온 데 대해 무척 놀랐다. 이 책이야말로 전통문화의 단절현상 속에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있는 현대의 한국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찍이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많은 보도와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한 유명한 문화전문가인 이동식 기자의 목소리는 바로 수십 년 동안 우리 문화계가 추구해 온 목표이기도 하다. 음악은 가장 대중들에게 가깝고 직접적이어서 사회 각계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효과도 크다. 요즈음 ‘음악을 통한 스타 되기’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우리 음악이 태동하려면, 또한 우리 음악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아래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할 때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공명을 받을 것이라 믿는다.

이강숙(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함량 미달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이런 저자가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나를 놀라게 한 책이 있다. 내가 새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 책이다. 이동식의 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어설픈 전문가의 뺨을 치고 있다. 음악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음악에 대한 사고의 넓이와 깊이가 참으로 대단하다. 책의 말미에서 우리는 지금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의 마음에 옹기를 줄뿐만 아니라 그 말 자체가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동식은 이 책에서 음악적 혁명을 세 번이나 암시한다. 우리 음악을 찾는 일은 그냥 절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이 암시를 통해서 심도 있게 설파한다. 동서고금의 철학과 예술음악 대중음악을 포괄하는, 음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 그리고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자기의 주장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의 설득력 역시 나를 놀랍게 한다. 한마디로 음악애호가와 음악전문가는 물론이고 한국을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번만이라도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황종음을 찾는 것은 단순히 음의 높이를 찾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기본음을 내는 율관(대나무 관악기 튜브)의 길이가 일상생활에서 길이를 재는 자〔尺〕의 기준이 되고, 그 대나무관의 빈 공간에 가득히 채워지는 기장의 양은 부피를 재는 양(量)의 척도가 되며, 그 기장의 무게는 곧 모든 물건을 다는 무게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황종’이라는 기본음을 만들어내는 죽관(竹管)은 소리를 내는 기능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좌지우지하는 도량형(度量衡)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황종음을 내는 기본율관의 길이를 얼마로 정하느냐의 문제는 단지 음악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의 차원에서도 더없이 막중한 일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처럼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문제이기에 세종은 심혈을 기울여 이를 정리했다.

‘아악’에 사용되는 여덟 가지의 악기 중에는 쇠로 만드는 편종(編鐘)과 돌로 만드는 편경(編磬) 같은 악기가 있는데, 특히 편경을 만드는 재료인 돌은 보통의 것은 안 되고 특수한 돌이어야 하기 때문에 편경악기는 만들고 싶어도 마음대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세종대왕 때 서울 근교의 한 지방에서 편경을 만드는 돌이 발견되어 결국 세종이 편경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를 두고 당시의 기록들은 세종 같은 훌륭한 왕이 음악을 정비하고 발전시키려고 뜻을 세우니 하늘도 감복하여 기꺼이 도와준 결과라고 적고 있다.

편경은 돌을 일정한 모양과 크기로 깎고 단지 두께만을 달리해서 여러 가지 높이의 음들을 내게 하는 타악기(percussion Instrument)다. 한 번은 신하가 이 편경 한 틀(set)을 만들어 세종 앞에서 연주를 했는데, 세종은 그중의 어느 음이 높이가 아주 조금 높다고 지적했다. 신하가 그 음을 내는 돌을 자세히 살피니 석공이 돌을 덜 깎아내어 돌에 깎아내도록 지정해 준 먹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먹줄을 다시 깎아낸 후에 연주를 하니 음높이가 정확히 들어맞았다. 세종의 음악적인 귀가 그만큼 밝았음을 짐작케 하는 일화다. (본문 127쪽)

옥중에 있으면서 겪은 쓰라린 체험은 그를 〈장자〉 ‘제물론’편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고사에 나오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도록 했다. 수감중이던 1967년 10월, 옥중에서도 작곡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오페라 〈나비부인〉을 1968년 12월에 완성한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성과였다. 그리고 해가 바뀐 1969년 하랄드 쿤츠, 조르지 리케티, 한스 베르너 헨체,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지그프리드 팔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오토 클렘페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161명에 달하는 세계적 예술가 및 그의 동료 그리고 독일정부의 항의로 윤이상은 석방되고, 2월 말에 베를린으로 돌아가게 된다. 2월 23일에는 그의 2부작 오페라 〈류퉁의 꿈(1965)〉, 〈나비부인(1967/68)〉이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초연된다. 그 음악이 초연될 때의 반향은 정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4년 후인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열린다. 윤이상은 오페라 곡을 위촉받아 오페라 〈심청〉을 작곡했고, 무대에서 초연된 후 다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비로소 우리의 전래설화가 음악을 통해 세계로 부상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동양이자 한국이다. 그렇기에 그가 성공했을 것이다. 어설픈 독일의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우리 이야기를 음악으로 형상화했으며, 그것은 전후 갈 길을 잃고 고민하던 서양음악계에 한 줄기 서광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의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다. 〈나모〉, 〈요정의 사랑〉, 소관현악을 위한 2중협주곡 〈견우와 직녀 이야기〉, 대관현악을 위한 무용적 환상 〈무악〉, 하프와 현악 합주를 위한 〈공후〉 등 우리가 다 아는 소재를 음악으로 올려놓았다. 그가 한국에서 자라며 듣고 배운 모든 것이 다 그의 음악의 자산이 되고 원료가 되고 재료가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미신이라고 치부되던 무당굿까지도 말이다.(본문 2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