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Pick리뷰] 줄이 없는 거문고로 울리는 심금(心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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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줄이 없는 거문고로 울리는 심금(心琴)

대전시립연정국악단 ‘새해진연:조선의 빛’
국내 최초 ‘LED트론댄스’ 제작
“줄이 없는 거문고 마음의 소리 들을 수 있다”

지난 19일, 대전시립연정국악단은 신년음악회 ‘새해진연:조선의 빛’을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에서 선보였다. 

 

이 무대는 대전시립연정국악단의 제190회 정기공연이자 올해 첫 번째 공연으로, 전통음악에 현대적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미디어아트를 통해 감동을 더 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천재현 연출가가 연출 및 극본을 맡고, 국내 최초로 ‘LED트론댄스’를 제작하여 주목받은 생동감크루가 영상연출·제작을 맡아 미디어 아트에 라이브 연주가 더해진 황홀한 무대를 선사했다.

 

공연장은 하우스 오픈 전부터 기대로 가득 찬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공연은 각각의 서로 다른 장르의 무대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출되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연출과 극본을 맡은 천재현 연출의 글을 통해 이번 무대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세밀하게, 그리고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음악의 빛을 배설하다’는 제목의 글에는, 각자의 마음을 다스리고 국가의 조화를 꾀했던 옛 음악, 즉 조선으로부터 전하는 음악의 뜻을 살피고 나누며 심금(心琴)을 울릴 것이라는 확신을 두고 무대를 연출했다고 적혀 있어 어떤 식으로 무대가 진행될지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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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창작무용 ‘한밭의 여명’으로 시작되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 여명의 빛이 스며들듯 대전의 문화, 경제, 사회가 활짝 꽃피우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이 작품은, 박범훈 작곡의 국악관현악 ‘여명의 빛’에 대전시립연정국악단 박영애 안무자가 새롭게 안무를 짜 선보였다. 무대가 열리며 전통 궁중 무용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꽃을 들고나와 한 몸을 이루며 아름다운 춤을 추었다. 꽃술은 작은 LED 조명으로 되어 밝게 비추는 빛으로 무대를 더 환하게 수놓았으며, 소박하지만 화려하고 힘 있는 한국적인 몸짓이 조선의 찬란했던 때를 기리며 공연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어 두 명의 광대가 등장해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며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두 광대는 조선 말기인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무렵부터 불린 민요이자 경복궁 및 경복궁 중건 과정을 내용으로 하는 ‘경복궁 타령’을 소개하며 시대적 배경을 비롯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 다음 무대인 ‘지경다짐, 경복궁타령, 태평가,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게끔 해 주었다. 

 

세 소리꾼의 노래에 두 광대가 노래와 재담을 얹어 더욱 즐거운 신명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무대 뒤 배경에는 각양각색 크기의 가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글자로 이루어진 경복궁 모양을 한 영상을 만들어 내 매우 흥미로웠다.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에 관객들은 모두 감탄했고, 민요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에 이르러서는 광대들이 마이크를 가지고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노래하며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무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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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광대들은 이경윤의 ‘월하탄금도’와 거문고 악기를 실제 보여주고 설명하며 무대를 끌어 나갔다. 그들은 거문고의 명칭부터 그림에 숨어있는 뜻, 그리고 비밀까지 재미있게 알려주며 공연의 주제인 ‘심금(心琴)’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금(心琴)’이란 마음속 거문고라는 뜻으로, 줄이 없는 거문고를 통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곧이어 하늘의 음악으로 일컬어지던 ‘도드리’가 연주되었다. 거문고 한 대의 연주로 시작된 ‘도드리’는 점점 하나둘 악기가 들어오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나갔다. 연주자들의 호흡과 합이 잘 맞았을뿐더러, 깔끔하고 단아하며 힘 있는 현악기의 울림은 소박하며 감격스러웠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나타낸 영상과 자연 친화적인 미디어 아트의 변화가 더해져 무대는 더욱 신비로웠고,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던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평온한 분위기에 잔뜩 빠져들 수 있었다. 특히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그 울림은 마치 바흐(Bach)의 ‘골든베르크 변주곡(Goldenberg Variation)’을 감상하는 것처럼 평온한 집중을 선사해 주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따뜻하고 편안하며, 아름다운 연주. 말 그대로 심금(心琴)을 울리는 무대였다.

 

이어서 광대들은 춤을 추어 역신을 물러가게 한 처용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해 주었고, ‘수제천’과 ‘처용무’가 무대에 올렸다. 쉽고 유쾌하게 설명해 준 처용 이야기는 어린이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듣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효과적이었다. 어두운 가운데 밝은 조명이 비치며 시작한 ‘수제천’은 일월오봉도의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와 배경, 그리고 물결이 이는듯한 조명 효과와 함께 웅장하고 아름답게 연주되었다. 홍주의를 입은 연주자들의 전통 음악 연주와 현대적인 미디어 아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무대는 마치 전시를 보는 듯했고, 이에 다섯 명의 처용이 등장하여 위엄 어린 춤 ‘처용무’를 추어내니 옛 조선과 현대가 이어진, 미지의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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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은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주제로 하였다. 이 무대는 심청의 ‘효’가 아닌 ‘눈 뜸’에 초점이 맞추어져 인상적이었다. 심봉사와 심청 두 사람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마음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한다는, 마음을 개안한다는 의미로 꾸려진 이 무대에서, 두 명의 광대는 한 명의 소리꾼 옆에서 함께 노래했다. 두 광대는 심봉사 역을 맡고, 나머지 한 명의 소리꾼은 심청과 나머지 부분을 맡아 처연하게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불렀다. 

 

이들은 아주 어두운 배경 가운데, 사각형의 환하게 빛나는 조명 바로 앞에서 노래했는데, 이는 마치 어두운 세계에서 눈을 뜨는 빛, 즉 ‘광명’을 상징한 것 같았다. 소리가 절정에 이를수록 조명이 더욱 푸르게 변하며 방울과 징, 타악기가 연주되어 음산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곧이어 북청사자놀음에 등장하는 두 마리의 사자가 나와 자유롭게 춤을 추며 뛰놀았고, 심봉사는 눈을 떴다. 특이했던 건, 보통 공연에서는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사, ‘(눈을)떴구나’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무대는 모든 맹인이 눈 뜨는 장면을 그린 대목에 더욱 집중하였다는 것이다. 소리는 현대적으로 개사되어 관객들에게 복을 빌어주었고, ‘광명천지가 되었구나’라는 외침과 함께 풍물패가 등장해 마지막 무대 ‘빛의 향연’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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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향연’에서는 ‘판굿’과 ‘장구춤’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농악에서 무대예술로 발전된 연희의 ‘판굿’에서는 몽환적인 조명과 미디어 아트와 더불어 화려한 상모돌리기, 태평소 연주, 유쾌하고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사자춤까지 나와 신명 나는 무대를 선보였다. 바로 이어 무용수들이 선사한 ‘장구춤’은 아름답고 화려한 몸짓으로 강인하고 한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장구춤이 공연되는 동안 무대 뒤에서도 연희패의 타악기가 같이 연주되어 더욱 풍성한 음악을 만들어 주었고, 무대는 점점 발전되어 연희패와 무용수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춤추며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판’을 이루어 냈다. 신명 나는 한판 대동춤을 통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전통 예술로 하나 되어 화합한 이 무대를 통해, 올 한해의 액운을 모두 물리치고 안녕을 기원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이 땅을 울린 찬란한 우리 음악 유산, 그리고 그 음악 속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화려한 미디어 영상과 함께 선명하게 만나볼 수 있던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의 신년음악회가 막을 내리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저마다 즐거운 무대였다며 기분 좋게 퇴장하였고, 밝은 얼굴로 서로의 덕담을 빌어주었다. 천재현 연출은 연출의 글에서, ‘여러분의 귀한 거문고 심금(心琴)과 충분히 공명하기를 바란다’며 본인의 거문고를 조율한다고 전했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마음속 거문고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로 마음을 다스리며 즐거이 살아갈 수 있게끔 힘써준 공연 관계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대전시립국악원이 앞으로 보여줄 이 시대의 가장 전통답고 현대적인 무대를 더욱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