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이규진(편고재 주인)
분청을 장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청자의 여운을 짙게 느끼게 하는 상감을 비롯해 문양을 찍어내는 인화, 문양 주변의 분을 긁어내는 박지, 선으로 문양을 만드는 조화, 풀비 비슷한 것을 이용해 분을 바르는 귀얄, 그릇 전체를 분에 담그는 분장(덤벙) 등이 그 것이다. 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예외적으로 철화도 있다. 이들 중 이번에는 분청귀얄접시편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기로 하자.
분청귀얄은 귀얄에 백토를 뭍혀 그릇의 표면에 바르는 장식기법의 하나다. 귀얄은 풀을 질할 때 쓰는 도구의 일종, 돼지털과 같은 뻣뻣한 털 등을 묶어 넓고 평평하게 만든 붓을 말하며 이 붓으로 그릇의 표면에 백토를 칠해 장식하는 기법을 분청귀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기법의 특징은 빠르게 돌아가는 물레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귀얄로 백토를 칠할 때 나타나는 붓자국과 속도감, 그리고 바탕의 암회색과 백토의 흰색이 빚어내는 선명한 색의 대비 등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걸쳐 주로 호남 지방에서 많이 제작이 되었다.
분청귀얄접시편은 작은 굽에 다섯 개의 내화토 받침이 있다. 외면은 암회색의 유태를 드러낸 채 가장자리는 돌아가며 귀얄을 하고 있는데 일정치가 않고 백토가 흘러내린 부분도 있다. 내면에는 전체적으로 귀얄 분장을 하고 있는데 이 분청귀얄접시편의 매력은 아무래도 입술 부위가 휘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마에서 소성 중 요똥에 부딪치며 휘어진 듯 싶은데 일부는 깨어져 손상을 입은 부분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휘어진 부분을 손잡이 삼아 표주박처럼 사용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여하튼 손상을 입어 원형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변형된 모습에서 보이는 의외성과 귀얄 맛을 느낄 수 있는 도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분청귀얄은 흔한 것 같지만 귀얄이 제대로 들어간 것은 흔치 않다. 속도감과 색의 대비 등을 통해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되는데 그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분청귀얄은 각종 기명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가장 잘 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접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접시는 어느 정도 평면을 유지하고 있다 보니 귀얄의 속도감과 색의 대비 등을 통해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가장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분청귀얄접시편 또한 그런 장점에 어느 정도 호응하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분청귀얄이라고 하면 분청 중에서도 무작위와 의외성이 가장 높다보니 대범함과 활달함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다. 힘차게 돌아가는 귀얄 자국은 흡사 소용돌이치는 거센 물살을 보는듯한 박진감 넘치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 보이는 저 유명한 구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의 자유스러움이 연상되기도 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분청의 끝물이다 보니 분청귀얄접시편을 보고 있노라면 백자로 가기 이전의 저 마지막 고별의 인사 같은 생각도 들어 한편으로는 아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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