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7 (화)

[김연갑의 애국가 연구] (22) Ⅲ 찬미가 ‘Patriotic Hymn(뎨十) 작사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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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의 애국가 연구] (22) Ⅲ 찬미가 ‘Patriotic Hymn(뎨十) 작사 배경

  • 특집부
  • 등록 2023.10.1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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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찬미가’ 소재 애국가류 3편 중 제10장은 주목되는 노래이다. 작사 배경이 문헌으로 입증이 되고, 이 때문에 제1장과 제14장의 작사자가 동일인 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하고, 작사자 문제에 대한 20여년 간의 논란을 종식 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번 회에서는 제10장의 작사 배경과 작사자를 확정하고자 한다.

 

1897년 8월 17일자 독립신문 잡보란 ‘대조선 개국 오백오회 기원절 축사’ 기사이다. 이는 4일전 서대문 독립관에서 개최한 조선국 개국 505회 기원절의 기념행사를 다룬 기사이다. 행사장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연설자와 그 주제 그리고 기념식 노래 3편을 언급하였다.

 

"대죠션 국 오백 오회 긔원졀 츅사를 팔월 십삼일 오후 셰시에 독립관에셔 국긔를 놉히 달고 그 아래 화쵸로 단쟝 하엿서 졍부 대쇼 관인과 여러 학도와 인민이 만히 모혓시며 각국 공령사와 신사와 부인들이 각기 례복을 가쵸 입고 뎨뎨히 안졋는지라. 그 츅수가 일졀를 보니 쳐음에 학당 학원들이 츅슈가를 불너 오천 여년 우리 왕실 만셰 무궁 도으쇼셔 찬송 하니 외국부인이 악긔로 률에 쫒아 병챵하더라.

둘 째 회쟝 안경슈씨가 연셜 하고 셋 째 한셩 판윤 리채연씨가 학부 대신 리완용씨를 대신 하야 국민의 당연히 할 직무를 연셜 하고, 넷 째 배재학당 학원들이 무궁화노래를 불으니, 우리 나라 우리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백셩이 한 가지로 만만셰를 길거야 태평 독립하여 보셰 하니 외국 부인이 악긔로 률에 병챵 하더라다.

다섯 째 미국 교사 아편셜라씨가 영어로 죠션에 거류 외국 인사들을 대하 야 각기 당연히 할 직무를 연셜 하며, 여셧 째 졔손씨가 죠션 관민들을 대하야 진보 할 것을 연셜 하고, 일곱 째 배재학당 학원들이 ‘나라 사랑하는 노래’를 불으니 외국 부인이 악긔로 률에 쫒아 병챵 하더라. 여섯 째 젼 협판 윤치호씨가 긔원졀일 문졔를 연셜 한 후에 탁지 대신 심샹훈씨가 졔손씨와 외국 교사 아편셜라씨의 연셜 한 것을 감샤 하다고 말 하더라. 그 다음에 다과례를 하고 이 날이 져믄고로 다 헤여져 도라 가더라."

 

전체적으로 기원절(紀元節) 행사의 전반을 다뤘다. 축사와 연설자가 확인 된다. 주목되는 인물은 윤치호이다. 마지막 연설자로 ‘기원절 문제’를 연설했다. 또한 당시 피아노 반주를 담당한 아펜젤라 부인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념가 세 곡이 제시 되었다. ‘축수가’, ‘무궁화 노래’ 그리고 ‘나라 사랑하는 노래’이다. 이 중 ‘무궁화 노래’에 대해서는 "배재학당 학원들이 무궁화노래를 불으니, 우리나라 우리 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백셩이 한 가지로 만만셰를 길거야 태평 독립 하여 보셰”라고 가사 일절을 적시하였다. 이 가사를 배제학당이 부른 ‘무궁화노래’라고 하였는데, 이후 확인되는 전 가사 중 제4절이다. 다만 후렴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곡명을 ‘무궁화노래’라고 함으로써 그 후렴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사/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기사는 안창호 작사설이나 공동작사설을 주장하는 측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혼란을 야기 시킨 바가 있다. 필자가 지적하여 지금은 바로잡힌 문제의 대목인데, 바로 "배재학당 학원들이 무궁화노래를 불으니~”를 "배재학당 학원들이 무궁화 노래를 지어 부르니~”로 ‘지어’를 넣어 사실이다. 분명히 불렀을 뿐이지 지었다는 표기는 없는 것이다.

 

이상의 행사를 부연하기 위해 윤치호의 일기를 확인 해 보았다. 다행히 행사 당일 13일자 일기에 영문으로 기념식 식순을 기록하였음을 확인했다.

 

<13th. Friday. Cloudy>

1. Song Praise By the students of Pachai.

2. Address By President, An Kyongsu.

3. Address Duties as Citizens of the Commonwealth.By Yi Chai Yon.

4. Song National Flower-Paichai Students.

5. Address Obligations of Foreign Residents By Reverend Appenzeller.

6. Address Korean Advancement By Dr. Jaisohn.

7. Song Korea By Paichai Students.

8. Address The Day We Celebrate by T.H.Y.

9. Refreshments.

 

 

앞에서 살핀 독립신문 잡보란 기사 내용과 순서가 일치한다. 또한 세 가지 노래가 영문으로 표기되어 구체적으로 파악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즉, 노래의 영문 표기는 Song ‘Praise’, Song ‘National Flower’, Song ‘Korea’이다.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무궁화’에 대한 표기인데, ‘音譯’이나 ‘意譯’을 하지 않고 ‘나라 꽃’, 즉 ‘국화’로 썼다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히 당시 작사자는 국가상징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한편 위의 두 자료에는 작사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런데 문제가 풀렸다. 필자가 아펜젤러 추모문집 ‘THE APPENZELLERS: WHO THEY PREACHED’ 제1권에서 서재필이 영문판 독립신문(The Independent) 8월 17일자 편집자주(Editorial Notes) 기사에서다. 이 기사에서 의미 있는 두 가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하나는 윤치호의 연설 내용으로 ‘우리가 기념하는 날’(The Day We Celebratr)이란 제목의 연설이다.

 

"그의 연설은 애국심에 차 있었고, 그의 설명은 매우 학자적이었다. 그는 한국이 민족주의에 대한 교육을 경시한 것에 대하여 후회했다. 사람들이 자기 나라보다 외국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배우려 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한 자랑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정서가 진정한 애국심과 부푼 동기로 바뀌는 날이 멀지 않아 온다고 했다.”

 

서재필이 윤치호 연설 내용을 제시한 부분이다. 청국의 역사는 잘 알면서 우리 역사는 모르는 것이 현실이며,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과거(科擧)에 응시하는 제도를 비판하고,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한 것이다. 당시의 독립이 일본이나 러시아로 부터가 아니라 청국임을 알게 한다. 다음은 ‘무궁화 노래’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시한 것이다.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 선교사의 부인 엘라 닷지 아펜젤러

 

 "배재 청년들이 ‘무궁화가’를 불렀다. 한국의 계관시인 윤치호가 이날 행사를 위해 작시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 시를 스크랜턴 여사가 오르간으로 연주한 ‘올드 랭 사인’ 곡에 맞춰 불렀다. (The Paichai boys sang a song ‘National Flower’ which was composed by the poet lauriate of Korea, Mr. T. H. Yun, for the occasion. They sang it to the tune of ‘Auld Lang Syne’ accompanied by Mrs. M.F. Scranton on the organ)

‘National Flower’(무궁화 노래)를 계관시인(桂冠詩人·poet lauriate of Korea) 윤치호(Mr. T. H. Yun)가 행사를 위해 작사했다고 밝혔다. 이를 기록한 서재필(Dr. Jaisohn)은 독립협회 회장으로 강연자로 "죠션 관민들을 대하야 진보 할 것”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리고 독립신문 발행인으로서 ‘편집자 노트’란에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획기적이다. 무궁화 노래의 작사자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작사자를 윤치호로, 작사 배경을 개국 505주년을 기념하여, 윤치호를 계관시인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동안 이 ‘무궁화 노래’의 작사자가 밝혀져야 동일 후렴의 제14장인 현 애국가의 작사자도 규명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이 노래는 문제작이었다. 그런데 당대의 서재필 기록에 의해 작사자가 밝혀진 것이다.

 

"무궁화 노래(찬미가 제 10장)는 1897년 8월 13일 대조선 개국 505회 기념식을 위해 윤치호가 작사한 것이다. 이 사실은 1907년 현 애국가인 찬미가 제 14장에도 연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