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새책] 관동대지진 100년, "백년 동안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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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관동대지진 100년, "백년 동안의 증언"

‘간토 대학살’ 지우려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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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증언(사진=책읽는고양이) 2023.08.27.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아 '백년 동안의 증언'(책읽는고양이)이 출간됐다.

 2023년 9월 1일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다.

'백년 동안의 증언'은 1923년 간토대지진 이후 일본의 혐오사회와 국가폭력에 맞서온 한·일 작가와 일반 시민들의 기록이다. 


이 책은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지낸 김응교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간토대지진 관련 장소를 답사하고 여러 증인을 만나며 문헌을 연구 정리한 책으로, 반일(反日)을 넘어 집단폭력에 맞서는 두 나라 시민의 연대를 제안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백년 동안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간토대지진을 끊임없이 삭제하려 했지만, '백년 동안의 증언'은 의도적인 ‘삭제의 죄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을 말한다. 이것만이 같은 비극을 막는 길이며, 한일 양국의 새로운 백년을 위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사진=책읽는고양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사건’에서는 지진이 어떻게 인재로 전개되는지를 정리하여 보여준다. 2장 ‘15엔 50전’은 쓰보이 시게지의 장시 '15엔 50전'을 국내 초역으로 수록했다. 3장 ‘증언’에서는 이기영, 김동환, 구로사와 아키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드라마 ‘파친코’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간토대진재를 다룬 작가와 감독의 증언을 전한다. 4장 ‘진실’에서는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책임을 촉구하는 일본의 개인과 모임을 소개한다. 5장 ‘치유’에서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삭제와 왜곡으로 시달리는 가해자 모두의 치유를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관동대지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속에 결국 중요한 건 '치유'다. 일본 정부는 지난 백년 동안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간토대지진을 끊임없이 삭제하려 했지만 저자는 "의도적인 ‘삭제의 죄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을 말한다. 그는 이것만이 같은 비극을 막는 길이며, 한일 양국의 새로운 백년을 위한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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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토 대지진 당시 거리 모습을 담은 엽서 (사진=독립기념관)

 

김 교수가 2005년 학술지를 통해 번역 발표했던 이 시는 100년 전 역사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불이 꺼지지 않는 중에 / 벌써 유언비어가 시중에 문란하게 떠다녔다 / 요코하마(橫浜) 방면에서 센징(鮮人·조선인에 대한 차별어)이 떼를 지어 밀려오고 있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소문이 퍼져갔고, 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은 1923년 12월 5일 자 신문에서 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로 인한 피해자가 6천661명이라고 보도했다.

1923년 12월 5일자 독립신문
1923년 12월 5일자 독립신문 당시 조선인 학살로 인한 사망자를 6천661명으로 보도했다. (사진=책읽는고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반일은 위험하다  백년의 갈등, 그 해법은 무엇인가

2008년 호주 노동당 총리 케빈 러드는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들을 모시고 ‘도둑맞은 세대’에 사과했다. 호주는 매년 5월 26일을 ‘국립 사과의 날’로 지키며 혐오 문제를 극복하려 애쓴다. 1970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백년 이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흑인 차별은 1994년 넬슨 만델라에 의해 멈추었다. 이들은 진실을 밝히고 보복 대신 사면하고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나갔다.


 '십오엔 오십전(十五円 五十錢)이라고 해봐!'

15와 50이 앞뒤로 있는 간단한 문구. 누군가는 말장난 아니냐고 하겠지만, 100년 전 일본에서는 생사를 가를 정도로 무서운 말이었다.

자신 있게 '쥬우고엔 고쥬센'라고 발음하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츄우코엔 코츄센'이라고 발음하거나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무자비한 창칼이 날아들었다. 저자는 발음 하나를 듣고 사람의 목숨을 따진다는 것은 광기라고 폭로한다.

일본 시인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1898∼1975)는 '그저 그것 때문에' 1923년 9월 일본 간토(關東) 지방에서 조선인들이 무참히 살해됐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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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간토대지진 당시 자경단의 흉기(사진=책읽는고양이)

 

일본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본에도 아시아에 저지른 백년의 과거를 괴로워하는 일본 시민, 작가, 학생 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이 어느 정도 사죄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은 큰 범죄를 한국에 범했다. 게다가 아직 한국인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 라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 라고 했다. 소수이긴 해도 일본 내에도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지식인들이 있기에 단순한 반일은 위험하다.

우리는 집단적 광기라는 것이 망상(妄想)에 불과하다는 뚜렷한 기억(記憶)을 새겨야 한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군인 위안부 문제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시정하려는 일본 시민 단체와 연대하고, 한국과 일본의 양심 세력·연구자·작가들이 ‘우리’가 될 때, 장시 '15엔 50전'의 숙제는 그 만남의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저자는 일본 정부가 변할 수 있을까 묻는다. 그 가능성이 0%라고 해도 일본 정치인들의 변화를 기대하고 모든 매체를 통해 바른 말을 하는 정치인을 격려하고, 잘못된 판단을 세뇌시키려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멈추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