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지난 11월 10일(목) 서울시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제41회 대한민국 국악제 ‘국악, 사랑에 물들다’ 공연이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사)한국국악협회(이사장: 이용상)가 주최·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특별시, (재)국악방송, (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1981년 첫 회를 시작으로 올해 41회를 맞으며, 대한민국 전통음악악인들의 최대 축제이자, 국악의 맥을 잇는 민족적 자부심의 장으로 자리매김 해오고 있다. 또한 전통음악 활동을 장려하고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올해는 전 국악방송 사장이자 작곡가인 채치성 감독의 총 지휘 하에, 국악인 박애리 명창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한상일 지휘자가 이끄는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이춘희, 이생강, 이영애, 김수연, 김광숙, 최영숙, 김영임, 원장현, 최경만, 김경배, 김혜란, 임정란, 유창, 신운희, 임경주, 정명숙 명인 등 국악 각 분야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인들이 참가하여 전통음악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피리, 대금 등의 연주, 판소리, 잡가, 민요, 서도소리, 배뱅이굿, 무용 등 전통문화의 정수를 한 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였다.
이용상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의 환영사와 개막선언으로 시작된 무대는 크게 3부로 나뉘어졌다.
1부는 국악관현악(광주국악관현악단)과 대금(원장현 명인), 태평소(최경만 명인), 민요(김영임 명인)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2부는 전남(육자백이 외), 제주(제주허벅놀이), 강원도(정선아라리)의 지역색을 담은 무대와 판소리(김수연 명창), 경기잡가(이춘희 명창), 서도소리(김광숙, 이춘목, 한명순 명창), 경기민요(임정란 명창), 배뱅이굿(김경배 명창), 경기소리(김혜란 명창 외), 가야금병창(이영애 명창)으로 이루어졌다.
3부에서는 송서·율창(유창 명인 외), 시조(신운희 명인 외), 대금 산조(이생강 명인), 가야금 산조(임경주 명인 외), 살풀이춤(정명숙 명인 외), 선소리타령(방영기 명창), 녹악((사)한국국악협회 농악분과) 공연이 선보였다.
1부 첫 무대는 한상일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의 ‘서곡 북이라동동’으로 막을 올렸다. 6명의 타악기 연주자들의 웅장하고도 강렬한 시작은 ‘대한민국 국악제’의 위엄을 알렸으며, 관악기, 현악기와의 협주로 국악관현악 특유의 음악적 화합과 그 매력까지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타악기들의 주고받는 듯한 개인기 연주는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만드는 동시에 공연장의 뜨거운 열기까지 만들어냈다.
이후, 관현악단과 원장현 명인의 대금(대금산조 협주곡, 편곡 김백찬) 협연이, 이어서 최경만 명인의 태평소(호적풍류 협주곡) 협연이 이어졌다. 대금 협주는 세상을 부드러움으로 품으면서도 구슬프고도 맑은 대금 소리와 명인의 섬세한 연주, 그리고 대금 연주를 받쳐주면서도 리듬감을 주는 관현악은 특유의 화합을 만들어냈다. 힘차고도 흥겨운 농악을 떠올리게 하는 태평소와 관현악의 화합은 태평소의 힘차고 곧은 음색이 더욱 빛을 발하도록 했다.
김영임 명창과 함께 하는 민요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오백년’을 시작으로 ‘신천안삼거리’, ‘창부타령’, ‘신고산타령’, ‘궁초댕기’등의 노래에 관현악이 함께하며 신명과 웅장함을 더했다. 공연 이후, 객석에서는 환호와 ‘앵콜’을 요청하는 소리도 들렸다.
2부에서는 한국국악협회 전남지회의 ‘육자백이’, ‘자진육자백이’, ‘삼산반락’, ‘개구리타령’(고현미, 주소연, 현미, 정승희 명창) 흥겨운 무대로 문을 열었으며, 이어진 제주도지회(고춘식 안무 외)의 ‘제주허벅놀이’는 제주만의 생활·민속적 특색을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또한 ‘정선아리랑보존회(김길자 명인 외)’의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일대 지역성과 특유의 신명을 느낄 수 있는 토속민요의 맛을 보여준 무대였다. 객석에서는 추임새와 박수는 물론,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함께 따라 부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후, 김수연 명창의 미산제 수궁가 중, '범 내려온다’(고수:정화영)는 깊은 성량과 능숙하게 넘나드는 음대역은 물론, 정확한 가사 전달과 노련한 퍼포먼스로 관객의 웃음과 흥을 한껏 끌어 올렸다.
이어진 이춘희 명인과 제자들의 ‘소춘향가’(경기잡가)는 쉽지 않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춘향과 이도령이 마음을 주고 받는 정겨움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김광숙, 이춘목, 한명순 명인의 ‘긴아리’, ‘자진아리’(서도소리)는 길고도 깊은 호흡이 느껴질만큼 연륜의 세월들이 함께하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무심한 듯 ‘이~’, 강하게 ‘으~’하는 추임새는 느린 곡의 가락을 불어 넣는 듯, 무대를 달구었다. 임정란 명창 등의 ‘노랫가락’, ‘창부타령’, ‘경복궁타령’(경기민요)이 흥겨운 가락으로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뒤를 이었다.
김경배 명창의 ‘배뱅이굿’은 무대를 즐기는 열정과 노련함으로 관객을 웃음바다로 만들거나 따라올 수 없는 배뱅이굿 특유의 익살과 흥을 만들어내며, 관객과 가장 많은 호흡을 자랑했다. 명창은 ‘배뱅이굿’의 명인 이은관 명창의 ‘연평도사공’으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김혜란 명창과 제자들의 ‘고사덕담’(경기소리, 구히서 작사, 김혜란 작창)은 풍물과 무속의 형태로 흥과 기원을 담아 관객과 교감했다.
이영애 명창의 ‘판소리 심청가 중, 방아타령’(가야금 병창)은 관객과 최고의 음악적 교감을 보여주었다. 명창은 집중과 기술이 요구되는 가야금 연주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은 물론, 소리의 농현은 진하고도 안정적이고, 가사 전달 또한 명확하여 '가야금병창'의 진수를 최대한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명창의 겸허하고도 빈틈없는 연주에 관객은 숨죽여 감상하거나 추임새로 힘을 보탰으며, 마지막에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3부는 유창 명인과 제자들의 ‘촉석루’, ‘적벽부’(송서·율창)는 선비문화의 음악적 유산인 ‘송서·율창’(한문 시나 산문에 음률을 넣어 노래조로 읊조리는 것)의 정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신운희 명인 등의 우시조 ‘나비야 청산가자’, 엮음 지름시조 ‘학타고 저불고’ 역시 시에 가락을 얹힌 장르의 특성상 긴 호흡으로 쉽지 않은 진행을 요구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운율과 성량으로 시조만이 주는 여유로운 감상을 경험하게 했다.
이생강 명인의 대금산조 ‘이생강류 대금산조’(이성준 고수)는 대금 특유의 음색과 기법으로 새 울음 소리를 절묘하게 구현해내는 것은 물론, 명인의 노련하고도 깊은 호흡에서 오는 음력이 감상에 더욱 집중하게 했으며, 대금 연주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임경주 명인과 제자들의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는 13인의 가야금 연주자와 1인의 고수의 무대로, 마치 가야금 군무를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가야금 고유의 부드러운 음색과 힘차고 절도 있는 연주는 관객의 몰입도를 올리면서, 큰 박수를 이끌었다.
정명숙 명무와 제자들의 ‘살풀이춤’은 이매방 명인의 살풀이춤을 계승·발전한 춤이며, 군무로 이루어진 공연에서는 약 15명의 무용가가 살풀이춤의 진수인 정중동의 고혹미를 선사했다. ‘한푸리민속악단’의 연주·구음과 함께했다.
무심한듯 섬세하게 흐르는 손과 발 그리고 몸동작들은 우리 삶을 아우르는 깊은 한과 신명까지도 담아내는 고도의 예술적 표현을 소화해내며 객석의 공감을 이끌었다. 또한 대금의 짙은 농현과 구슬픈 구음은 감상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방영기 명인과 제자들의 ‘경기뒷산타령’, ‘자진산타령’(선소리산타령)은 소고를 잡은 여성들의 소리가 힘차면서도 부드럽다. 후반부 장단이 빨라지며, 관객의 흥도 고조되었다.
마지막 무대는 한국국악협회 농악분과의 신명나는 공연이었다. 신명나는 가락과 흥의 한 가운데, 힘찬 상모 돌리기는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흔들어 놓았다.
총연출을 맡은 채치성 감독은 이번 공연을 통해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그 동안 ‘대한민국 국악제’를 주로 국악로(서울시 종로구 율곡로96~돈화문로 46)에서 공연을 많이 했는데요,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악제’라는 이름과 위상에 맞게 국립극장이라는 큰 무대에서 명인 분들 모시고 무대를 만들게 되어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번에 많은 분야의 국악을 선보이려고 노력했는데요, 제한된 시간에 많은 공연을 준비하다보니,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후에는 며칠 축제기간으로 두고, 더 많은 분야의 명인 분들 모셔서, 국악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한국국악협회 이용상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국악이 'K-팝'의 뿌리임에 자긍심을 가지고, 선배 국악인들의 투철한 예술혼이 깃든 국악의 발전을 위해 나아갈 것이며, 오늘 준비한 무대를 통해 국악의 진수와 흥을 느끼면서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관객과 모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이번 공연은 국악방송을 통해 추후에 방영될 예정이다.
대부분 관객은 모든 무대를 함께 즐기고 추임새와 박수를 아끼지 않으며, 진정으로 국악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전통 음악의 맥이 굳건하게 이어오고 있는 현장임을 확인하게 했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중장년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국악의 대중화와 미래에 대한 과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 젊은 대중들이 국악을 이해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행사의 의미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국악은 K팝의 원형자산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대중에게 더 다가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라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전통문화 계승·발전의 측면에서, 국악의 위상과 과제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악, 사랑으로 물들다’ 라는 이 날의 주제처럼, 전통문화에 내재한 ‘사랑’의 의미가 국악계 내면으로부터 발현되어, 국악의 대중화가 반영되기를, 그리고 내년 대한민국 국악제는 대중과 한층 더 가까워져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더욱 굳건하게 다지는 기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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