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8 (화)

도자의 여로 (69) 청자투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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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69)
청자투각편

  • 특집부
  • 등록 2022.11.11 07:30
  • 조회수 59,934

현대적인 맛과 멋을                   

    이규진(편고재 주인)

  

기물의 표면을 안과 밖이 통하도록 뚫어 장식한 것을 청자투각이라고 한다이 기법은 반건조 상태의 태토를 조각칼로 뚫어 조각을 해야 함으로 상당히 노련한 솜씨를 필요로 한다뚫린 문양이 작고 섬세할 경우 유약에 의해 투각이 메꾸어 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이와 같은 청자투각은 고려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시도된 것으로 보이지만 제작이 까다롭다보니 전하는 유물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근래 청자투각편을 한 점 구했다크기가 작아 기형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 망설이다가 구입을 한 것은 색감 때문이었다말하자면 비색이라고 할 수 있는 녹청색인데 안쪽으로만 빙렬이 있고 바깥쪽으로는 균열이 없이 말끔하다거기에다 파이고 깍인 홈에 따라 유색이 짙어지고 엷어지는 등 농담의 효과도 있어 더 아름다운 색감을 느끼게 한다그렇다고 하면 이 청자투각편의 기종은 무엇이며 나타내고자 한 문양은 무슨 꽃이었을까.


청자투각에서 보이는 꽃은 대개가 연당초문 아니면 모란당초문이다그런데 청자투각편에서 보이는 꽃은 연꽃이나 모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꽃잎은 12장으로 되어 있으며 꽃잎과 씨방에는 음각으로 선을 그어 입체감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연꽃이나 모란이 아니라면 청자투각편의 꽃은 아무래도 국화문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청자투각에서 국화문을 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고 보면 이 청자투각편의 꽃이 국화라면 여간 흥미로운 문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그렇다고 하면 청자투각편의 기종은 무엇이었을까청자투각의 기종으로는 돈()이 가장 많이 보이고 화분받침 필가 베개 향로 등도 더러 실견할 수 있다하지만 청자투각편은 필가나 베개 향로 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콕 집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돈이나 화분받침 쪽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KakaoTalk_20221110_164110927.jpg
[국악신문] 청자투각편(편고재 소장) 가로x세로 8.5x6Cm

 

청자투각편에서 보이는 국화문은 흔치 않은 것이지만 사실 여타의 청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꽃은 흑백상감의 국화문이다왜 고려인들은 그처럼 국화를 좋아했던 것일까. <양화소록>을 보면 국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 충숙왕 때라고 한다이때 국화에 대한 중국의 문화적 인식과 관념도 함께 전해진 것으로 보여 진다특히 황국은 신비한 영약으로 달여 마시면 장수를 한다고 믿어 왔으며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환갑잔치 같은 때 헌화로도 사용하고는 했다유교 쪽에서 보면 국화는 의()를 상징하기도 한다뜻을 지켜 꺽이지 않는 선비정신과 일치하는 은일화(隱逸花)라 하여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은자에 비유되기도 했다이 모두가 꽃 치고는 고아한 습성을 지닌 뜻으로 풀이해서 의미를 부여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사군자 중의 하나인 국화는 조선시대에도 꽤 귀하고 비쌌던 모양이다다산 정약용이 유배 중 자식에게 보낸 편지에는 국화 한 이랑만 팔아도 한 달치 식량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이로 보아 과거에는 국화가 지금처럼 흔한 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사실 국화가 장례식 때 고인의 영전에서 많이 보이는 것도 서양처럼 동양에서는 장미가 흔치 않아 대용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보면 귀한 꽃으로 흔치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현재 남아 있는 청자투각편을 보면 꽃과 줄기 모두 사실적이지는 않다도안화 되어 장식적인 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여타의 청자에서 보이는 흑백상감의 국화절지문이 그나마 사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청자투각편의 국화문은 군더더기를 지우고 거의 알몸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는 한다따라서 아름다운 색감의 비색과 더불어 작지만 도안화 되어 현대적인 맛과 멋을 풍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