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Pick리뷰] 인류무형문화유산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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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리뷰

[Pick리뷰] 인류무형문화유산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공감!

9월 9-25일 총 17개 공연 성황리 종료
김천금릉빗내농악, 강릉단오제 단오굿 등
강강술래, 처용무, 바라춤, 태평무 정수 무대
아리랑의 현대적 재해석, ‘아리랑 리커넥티드’

지난 924() 서울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열린마당. 공연장 세트 뒤로 넓게 펼쳐진 가을하늘은 세트와 어우러져 마치 하늘 가까이에 있는 듯하다. 스치는 바람은 이 시간 예술과 자연을 함께 느끼고 있음에 황홀함마저 느끼게 한다. 예매한 관객들은 제공받은 종이팩 포장의 물과 친환경 재료(나무)로 만든 칫솔을 제공받았다. 현장 관람 관객들도 합류하면서 객석은 모두 채워졌고, 딱딱한 돌계단 객석이 불편하지 않도록 폭신한 방석도 제공받았다. 924-25(-)의 주요 공연을 돌아본다. 매 공연마다 사회자는 공연에 대해 쉽고도 재미있는 해설을 해주어, 공연의 문턱을 한결 더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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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의 공연 장면. (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22.09.24.

 

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 ()김천금릉빗내농악보존회

 

인류무형문화재 농악. 그 중에서도 김천금릉빗내농악은 군사훈련에서 유래한 진굿(, :군사훈련 때 사용되는 줄 또는 열)이라는 특색을 가지며 국가무형문화재로(11-7, 2019) 지정되기도 했다. 공연에 앞서 등장한 사회자(소리꾼 이상화)김천금릉빗내농악에 대한 설명과 함께, 농악대 중에 실제 농사일을 하시는 분도 계시다는 말도 덧붙인다. ‘진짜 농부의 농악을 2022년 서울 하늘에서 보다니.’ 농악대의 힘찬 꽹가리 소리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역시 군사훈련에서 유래한 농악답게 가락이 빠르고 역동적이다.

유난히 강한 북소리는 가슴을 울릴 정도다. 북잽이(대북 치는 사람)를 가만히 보니, 북채를 한 손이 아니라 양손에 쥐고 치고 있었다. 온몸의 힘을 양팔과 손에 집중하여 북채로 내리쳤기에, 그 소리가 듣는 이의 가슴까지 내리쳤던 것이다. 모든 잽이(농악대)들은 대열에 변화를 주거나, 상쇠의 힘찬 소리(노래), 그리고 역동적인 개인기로 관객들은 눈을 뗄 수가 없게 한다. 특히, 소고패가 채상소고춤 중 자반뛰기(높이 뛰어 도는 동작)를 선보일 때, 관객의 함성은 최고조에 달하며 분위기가 고조됐다. 농악의 최고의 순간이다. 삶을 예술로, 그리고 다시 공동체의 결집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농악의 힘인 듯하다. 지칠 법도 하지만, 시종일관 웃는 표정을 보여주는 그들은(농악대) 과연 프로였다. 각시(흰 저고리, 검은 치마), 포수(사냥꾼 복장, 꿩과 총대 장착) 역할의 잡색(농악대의 흥을 돋우기 위해 가장한 사람) 또한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공연 당일 새벽, 농악대와 함께 경북 김천에서 출발한 손영만 명인(김천금릉빗내농악 8대 상쇠)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서울 분들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서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이렇게 관객 분들 크게 호응해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졌던 그 역동적이고 신났던 공연이 우리의 것임을 알기에 더한 감격을 느꼈을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만난 한 가족(경기도 오산)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엄마 "정말 신나고 감동적이었어요.”

아이 "완전 재미있었어요. 발로 돌 때.”(채상소고춤 중 자반뒤집기)

아빠 "우리 문화유산 잘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부모는 농악을 실제로 처음 접한 아이가 농악대의 역동적인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에 놀라워하면서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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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古風)'의 공연 장면.(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22.09.24.

 

고풍(古風)/ 한누리무용단/ 극장 용


인류무형문화재 강강술래(2009), 처용무(2009)는 물론, 염불바라춤, 부채입춤, 진도북춤,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제92) 등 전통무용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공연 전,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객석은 고요해진다.


커다란 달 아래 강강술래가 시작된다. 색색의 치마를 입은 무용수들은 버선발로 깃털 같은 춤사위로 빠르게 대열에 변화를 주며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 , 다리의 움직임은 물결 같이 흐르며, 춤이란 과연 몸으로 말하는 예술임을 깨닫는다.


바라춤은 흰 장삼의 길게 늘어진 소매에서 흐르는 선의 아름다움과 느린 호흡으로 정교하게 박자를 맞춰가는 춤사위를 보여준다. 이후 빠르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바라를 치는 순간, 듣는 이는 바라 고유의 강렬한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궁중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 처용무. 처용탈을 쓴 5명의 무용수는 화려한 5방색의 복장을 갖추고, 절도 있고 절제된 동작을 보인다. 한삼 끝자락을 반대편 옆구리에 낀 채로 손을 앞으로 뿌리는 모습의 동작은 귀신을 몰아내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느린 동작이기에, 인상적인 탈의 모습과 강렬한 동작이 분산되지 않고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비교적 빠른 박자의 진도북춤에서는 ··힘을 겸비한 여성 무용수들에게서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강렬한 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군무 형태로 선보인 태평무는 궁중의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발동작과 역동적인 춤사위가 인상적이다.


공연이 끝난 후, 그 아름다운 춤을 해낸 그들의 정중한 인사는 춤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겸양에 또 한 번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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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 단오굿'의 공연 장면. (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22.09.24.

 

강릉단오제 단오굿/ ()강릉단오제보존회


9. 25(), 단오굿은 한 판 놀이에 가까웠다. 무녀(빈순애 명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 기능 보유자)의 걸쭉한 입담은 만담을 방불케 할 정도로, 눈을 뗄 수 없이 집중하게 했다. 생산(출생)을 관장하는 신()인 세존과 당금애기의 결합과정을 그린 무속신화를 구연하는 무녀는 춤, 노래, 입담, 연기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무녀인지 예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무녀와 악사들의 주고받는 능숙한 재담과 악사들의 익살스런 춤과 입담 역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들이기도 하고, 이들이 관객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자들은 신에게 관객들의 행복을 기원을 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한껏 즐긴 관객들의 박수에는 감동과 감사를 담았을 것이다. 과거 무속과 불교문화의 관련을 보여주는 바라춤(악사 김운석)까지 볼 수 있는 귀한 공연이었다.


경북 경주에서 올라와 서울에 거주하는 딸과 국립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공연을 관람했다는 한 70대 여성 관객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좋았어요, 너무. 다음에 또 보러 강릉에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렸을 적, 굿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어린 마음에 강하고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오늘은 굿이라기보다는 사물놀이 같기도 하고, 문화공연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이가 드니까 이런 것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국악도 좋고, 한국무용도 배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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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리커넥티드'의 공연 장면. (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22.09.24.

 

아리랑 리커넥티드/ 허윤정, 조스 미에니엘 외/ 극장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인류무형문화유산, 2012)과는 다른 색다른 아리랑을 경험하는 무대였다. 선보인 곡들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현대적 감성을 담은 아리랑을 대중과 공유하고자, 발표해 온 음반 <The Name of Korean> 시리즈의 8집 수록 곡들이다. 이날 공연은 아리랑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곡들은 외국 음악인들과 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프랑스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이 공연에 함께 했다.

 

우리 악기와 외국 악기의 협연이 빚어내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아리랑 고유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곡에서부터, 코로나19 시기 힘든 시대의 우리를 위로하는 다소 실험적인 곡까지 아리랑의 다양한 음악적 변신을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모든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살리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협연은 음악이 박자를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곡이 인상적이었다.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꾼의 노래로 그 절정을 이루며 관객의 감동을 자아냈다.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을 이뤄내던 아리랑이, 국경을 초월하는 음악적인 포용으로 그 창조성까지 발휘하는 무대였다.


이번 공연을 준비해온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심재흥 대외협력팀장은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코로나로 인해서 오랜만에 관객 분들 모시고 하는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는데요, 첫 날 첫 공연 시작 전에, 관객 분들의 환호를 들었을 때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공연은 역시 관객과 같이 해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또 다른 힘을 만들어 내는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요. 저희도 이를 발판으로 삼아 내년에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우리 전통문화, 더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실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양팔로 감싸 안고 부축하며, 자리를 나서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나서는 가족도, 모처럼 외출한 듯한 중년 여성들도, 그리고 두 손을 맞잡은 젊은 연인들도 보였다. 이 공연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다른 공연이 아닌 우리의 뿌리이자 삶을 아우르는 전통예술이기에 우리 모두를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 오늘 그들이 경험한 전통은 누구에게는 향수가, 교육이, 추억이 되어 자신의 삶 속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파고들어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전통예술을 다시 만나게 될는지 기대해본다.

 

이번 공연은 11월 경,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유튜브, 네이버TV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