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8월 5일 금요일 밤을 기억한다. 8월의 열기로 가득한 예술공간 ‘혜화’였다. "갈바니 전기로 통하였소”의 팀은 연습 막바지 단계였다. 8월 12, 13, 14일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이 작품은 ‘김나영판소리연구소’의 김나영 감독, 장혜리 기획, 이빛나 연출, 김진성이 제작을 맡았다. 음악 감독인 김나영이 직접 작창하고, 출연 신형식과 윤효원이다.
판소리꾼인 신형식은 ‘갈바니’역, 연극배우 윤효원은 미래에서 온 여행자 역을 맡았다. 당시에는 칭송 받지 못하였으나 오늘날 심장 제세동기(심실 부정맥을 치료하기 위해 심장에 삽입하는 전자 장치)의 근원이 된 갈바니의 업적을 통해서 청년들과 과학 발전을 도모하는 과학자들에게 응원과 존경의 목소리를 보내기 위한 기획이다.
소리꾼 신형식이 연기한 루이지 갈바니(Galvani, Luigi 1737~1798)는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생리학자로 1780년 개구리의 뒷다리가 방전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갈바니의 물리학자 친구인 볼타(Volta, Alessandro)가 그의 이론을 반박했고, 연구는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
작품은 이와 같은 갈바니의 안타까운 평가를 배경으로 한다. 볼타와의 논쟁에서 패배한 후 인정받지 못했던 그가 어느 날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시간여행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시간여행을 하면서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과학자의 회상을 들으며 자기가 누구인지 왜 시간여행을 하게 됐는지 서서히 기억하게 된다. 시간여행자는 피뢰침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데, 발명의 근원을 알아보다 갈바니를 알게 되어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시간여행자는 갈바니의 업적이 미래에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갈바니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게 된다.
출연진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무더위 속에서 노력하였다. 이 공연을 위해 작곡된 노래는 판소리와 건반 반주가 섞인 퓨전국악의 형태였다. 건반이 중심을 잡아줘서 고수가 없이도 진행이 가능했으며, 소리꾼의 역량으로 북 장단 없이도 박자를 탈 수 있었다. 작창가이자 음악감독인 김나영은 연기자들의 멘토가 되어 연습을 도왔다. 연습이 끝나고 공연 팀을 만났다. 다음은 김나영과의 일문일답이다.
Q. 이 소리극의 주제가 무척 창조적이에요. 어떻게 이런 주제로 소리극을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A.'빨간 머리 앤'을 봤는데 거기서 감자 3개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서 장혜리 기획자에게 물어봤어요.(감자와 고구마 등의 일부 작물은 미약하지만 전류가 흐르는 성질 때문에 소금물 등의 전해질이 있다면 전력을 생성해낼 수 있다.)이야기가 오가다가 전기를 주제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 생각했어요.
Q. 왜 루이지 갈바니에 대한 소리극을 쓰셨나요?
A.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한’의 정서가 있잖아요. 분노, 체념, 원망, 슬픔 등을 느꼈을 만한 과학자를 찾아봤어요. 갈바니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때 당시 연구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 과학자이기 때문이에요,
Q. 이 소리극은 무슨 장르인가요?
A. 포스터에 ‘과학 소리극’이라고 적혀있지만 정확한 장르는 ‘창작 판소리’라고 하면 되겠네요.
Q. 소리극에 나오는음악을 작곡하면서 전통 판소리 다섯 마당을 참고했나요?
A. 봤죠. 전통 판소리 책을 다 꺼내 놓고 봤어요. 안 그러면 발라드처럼 돼버려요.
이빛나: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Q.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 기간이 얼마나 됐나요?
A.1월에 회의를 하고 2월에 만나서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한 다음 실질적으로 3월부터 준비를 시작했어요.
Q. 이 중 가장 독특한 곡은 무엇인가요?
A.작품의 타이틀곡인 ‘개구리 뒷다리’라는 곡이에요. 이 곡은 갈바니의 감정의 절정을 보여줘요. 갈바니의 인생을 정리한 ‘틀리지 않았소’ 라는 곡도 마음에 들어요. 이 곡은 한국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한’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8월 12일, 작품을 보았다. 노래와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뮤지컬의 공연 양식과 비슷했다. 음악들은 건반 반주에 창작 판소리가 얹어진 형식이었다. 무대 장치에도 공을 들였다. 바닥에 갈바니의 통과하지 못한 연구 자료들이 떨어져 있었다. 신형식 소리꾼이 노래할 때 공연 장치로 쓰인 흰색 커튼에 가사가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강렬한 빛을 벽에 쏨으로써 공연의 키워드 중 하나인 전기를 연상케 하는 레이저 쇼도 있었다.
러닝타임은 1시간으로 짧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형식의 소리와 윤효원의 연기는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청년들, 실패를 동기부여로 삼아 계속해서 실험하여 과학 발전을 도모하는 과학자들에게 응원과 존경의 목소리를 보낸다’라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음을 관객의 환호로써 알 수 있었다.
현대음악이 국악보다 더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퓨전국악은 전통국악보다 공감을 얻기 쉬울 수 있다. 요즘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국악 관현악, 실내악 곡에서도 퓨전이 사용된다. 우리 음악을 계승하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악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 작품과 같이 퓨전국악을 바탕으로 하는 공연들은 우리 국악계에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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