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1 (화)
최근 ‘법조인’이란 말은 생활어 수준의 일상어가 된 듯하다. 그만큼 판사, 검사, 변호사가 빈번하게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소위 뒷담화의 소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판사, 검사, 변호사라는 법조인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명성을 얻은 이들을 존경의 대상으로서 언급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그 시절, 그 권위의 이름으로 거론 되었던 판사 다섯 명 생애를 소설로, 서사화한 작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세기 후반 불의에 저항하여 정의의 용단을 내린 판사들, 장편소설 ‘다섯 판사 이야기’에 담겨있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자신을 3인칭으로 소재화한 판사 경력 25년, 변호사 경력 23년의 법조인에서 작가로 변신한 양삼승의 첫 작품이다. 표재 옆에는 "판사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라는 카피로 주제를 암시했는데, 작가의 시각에서 비극적 사법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것으로, 적어도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판사는 불의에 대해 저항한 갈등의 역정을 그려냈다. 이 기법으로 등장 시킨 판사들의 삶 전체를 서사화 하였다. 그리고 그 갈등의 극적 시대(時代) 배경을 넌픽션 ‘우리나라에서 법원과 검찰 청사는 왜 나란히 있는가?’라는 논쟁적 논제(論題)를 제시했고, 미주(尾註)까지 단 것. 논증적 다큐드라마 문체로 ‘시대의 울분’과 ‘정의 시대의 안도(安堵)’를 오가게 하는 작품이다.
자신을 포함한 네 판사는 실명으로, 한 명은 이니셜로 등장시켰다. 첫 번째 주인공은 1971년 군인의 희생으로 국고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가 비자발적으로 퇴임한 양회경 대법원 판사이다. 두 번째는 1976년 고등학교 교사의 긴급조치 위반 무죄 판결을 내렸다가 좌천인사를 당하고 사임한 이영구 부장판사이다. 세 번째는 양병호 대법원 판사이다. 1980년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내란목적의 폭동이 아니라 단순 살인죄라고 소수의견을 밝혔다가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갔던 사연이다.
네 번째 판사 이야기는 저자의 사(私)소설이다. 대법관이던 부친이 ‘판결의 내용을 이유로’ 판사직에서 물러나는 법치 후진적 비극을 생생히 목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우리나라 사법부와 검찰의 개혁 필요성을 통감하며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대법원장 비서실장, 청와대, 검찰, 언론 등 사법 인접권력과의 역학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은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하며 검찰의 오만을 질타하는 글을 발표하고 용기와 소신을 담은 획기적인 판결을 내리는 용단, 결국 집요한 소수 반대파의 프레임에 휘말려 1999년 52세의 나이에 비자발적으로 사법부를 떠나는 대목으로 이야기를 전개 했다. 다섯 번째 판사 이야기는 'X. Z. Yang' 판사의 이야기로 절반 정도는 픽션화 하였다. 모두 70년 우리나라 법조사의 실재 인물들이니 실록소설이다.
작품의 행간에는 작가의 판사관(觀)이 스며있다. 그것은 사법부 구성원인 판사들은 나약한 지식인으로 생각만 있고 행동이 없었다. 연구만 있고 실천이 없었다. 지식만 있고 전략이 없었다. 소박한 현실에 안주하였고, 과감한 도전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용단을 내린 판사가 분명히 있었음을 담아 낸 것이다.
저자는 작가의 변(辯)에서, "50년의 터울을 두고 태어난 다섯 세대의 판사를 통해서 우리나라 사법부 70년의 역사를 그려보려고 했다"며 "소설로 탈고한 이유는 논문에는 감동이 없지만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고 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1999년 52세 때, 비자발적으로 사법부를 떠났다. 후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영산대 부총장을 지냈다. 법조인으로서의 소신을 담은 책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 ‘권력, 정의, 판사’, ‘멋진 세상, 스키로 활강하다’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는 ‘영산법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번 장편소설 ‘다섯 판사 이야기’ 발표는 2021년 제3의 인생, 작가로의 출발을 선언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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