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소설] ‘국악공화국과 달리는 기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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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국악공화국과 달리는 기차’ 이야기

“두 체제 갈등 해소 가능성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 승인 취소 논의 진화 가능성
화해와 포용의 손 내미는 체제가 승자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狂車/鑛車) 이야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충돌을 마주하고 달리는 기차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변경 가능한 선로로 달려오는 기차에 의한 희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담론이다.


전자는 두 진영의 충돌 상황이거나 선의의 공동체 구성원을 희생물로 수장이 무책임한 대치국면을 야기할 때의 비유이다. 후자는 달려오는 기차의 선로 변경 여부를 통해 어떻게 희생을 줄일 것인가의 가설이다.


바로 이 두 기차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곳이 있다. 한 측이 421일 대통령(자신들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위와 명예를 획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21일대통령‘23일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함)을 선출하고, 또 한 측이 이틀 후인 23일 대통령을 선출한 국악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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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이크가 없는 두 기차가 마주 달려오고 있다. 어떻게 할래?”

"뛰어 나간다

"?”

"충돌하는 거 구경하려구!”


빨리 나가 기차를 멈추게 하여 충돌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국의 불꽃(피 튀기는 싸움)을 구경하러 나간다는 것이다. 방관을 넘어 냉소에다 저주까지 반영한 대답이다. 지난 '국악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결코 농()이거나 망언만이 아니라 실제 나왔던 이야기 이다.


그런데 분규로 갈라진 두 진영에서 대통령이 배출되고 나서 또 들려오는 이야기는 더 절망적이다. 지난 2년은 수비만 했는데, 이제는 21일 총회의 무효소송과 "두 건의 금품수수 확인서를 갖고 있다수습위원회에서 발언한 것을 두고 명예훼손죄로 고발한다는 말이 돌기 때문이다. 2020년 초 당선무효 소송으로 극한 대립을 해오다 금년 3월 패소한 측이 소송전을 불사하겠다고 한 것이다. 홧김에 내뱉은 말이 아니라면 공수가 바뀐 2차 무효소송전이 전개될 것이 뻔하다.

아!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두 기차를 어떻게 하면 승객의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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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狂車) ‘트롤리호가 달려온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다섯 명이 작업을 하고 있는 선로와 변환기(變換機)를 작동하면 선로가 바뀌는 측선에서 한명이 작업을 하는 상황이다. 그대로 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전환기를 작동시켜 한명이 작업하는 측의 선로로 가게 할 것인가?


"그대로 가면 5명이 죽고, 측선으로 가면 한명이 죽지?”

"측선으로 돌려서 한 사람을 죽이고, 다섯 사람을 살려!”

"전환기를 돌려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행동인가?”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챕터에 나와 유명해진 트롤리 딜레마’(기차 논쟁)을 재구성한 것이다. 정치철학계의 문제적 논제로 사고(思考)실험의 한 케이스인데, 소수 인권 문제와 목숨의 수치 문제를 다룬 것이다. 다양한 조건하에서의 실험인지라 결론도 매우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데, 여기서는 단순화 시켰다. 다만 위의 경우라면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시키는 선로 변경을 선택한다고 답하는 유형의 예를 제시한 것이다. 이를 현실의 국악공화국에 적용하면 어떨까. 어렵지 않게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여기서는 도덕이나 정의(正義)의 문제는 논외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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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과 23일 선출된 대통령 체제를 위의 두 선로에 처한 상황이라고 가정하기로 하자. 이에 누군가가 변환기를 작동시켜 희생을 줄이는 한 쪽을 택할 수 있다는 조건도 있다고 하자. 당연히 전환기 작동자와 각각의 조건이 주어져야 하는데, 다행히 비상대책위원회(박상진 현 학교법인 국악학원 이사장)가 존재함으로 작동자는 준비가 되어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문제는 선택 또는 희생(犧牲) 값인 양측의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조건을 더듬거려 채우면 이런 정도일 것이다.


첫째, 두 체제 정통성 여부이다. 그런데 모두 희박하다. 왜냐하면 서로 극열 부정하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제 시점에서 법적으로는 ‘21일대통령체제가 약하게나마 우위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객관적 평가를 받을 만한 여지는 거의 없다. 매우 애처롭고 슬픈 현상이다. 3자적 입장으로 이 나라는 웃기는 짬뽕신세인 것이다.


둘째, 각 집행부 구성원과 회원수도 따질 필요 없이 퉁 쳐야 한다. 임시총회 대의원 수와 참가인원 수로는 23일 대통령 체제가 월등하나 가장 중요한 일반 회원은 공통이기 때문이다. 물론 ‘21일대통령체제의 이핵관들의 회비 납부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차후 법적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아직 법적 판단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셋째, ‘국악공화국수장(首長) 자격문제다. 이는 중요한 대목이다. 해서 세분하여 따져 보기로 한다. 다만 전제하는 것은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기 보다는 세평에 기댄 것이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는 다른 필자에 의해서 버전을 달리해 객관화 할 필요가 있다.


자격의 기본은 국악분야의 전문성 문제이다. ‘국악공화국역대 수장 중에는 예능 보유자들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명인명창들과 이론가들이 많았다. 이점에서 전문성은 제일의 조건이 된다. ‘21일대통령은 의상실 운영자(문예분과)이자에 전통예술진흥회 이사장이긴 하지만 장르적 전문성은 희박해 보인다. 반면 ‘23일대통령은 농악분야 경기도 지정 보유자(농악분과)로 이미 20대 초반에 전주대사습 농악부문 장원'을 획득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문성에서는 분명하고 확실한 우위에 있다.


둘은 예술인 공동체 수장이란 점에서 얼마나 감수성이 풍부한가도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공통으로 부족한 점이 확인된다. 인성(人性)과 포용력인데, ‘21일대통령은 전자가 부족하고, ‘23일대통령은 후자가 부족하다. 둘 다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격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셋은 예술가로서의 문해력(리터러시)이다. 이는 당선 취임사의 호소력 내지 표현력 같은 언변이나 저술 등을 통한 주관성 피력 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후자가 높은 편이다. 이 문제는 대외 협력관계, 관공서 접촉에서 중요한 강점이 된다.


넷은 현대의 지성인 척도라는 경청력(傾聽力)이다. ‘21일대통령은 주변의 한 측근에 의하면 "5분 이상의 대화가 어려운 분이라고 하는 평이 있었다. ‘23일대통령은 필자와 수차의 통화와 SNS소통 경험으로는 맥락적 대화가 가능한, 나름의 자격을 갖췄음이 보인다.


다섯은 약속 이행의 신뢰성 문제이다. ‘21일대통령SNS에 의한 약속에 대해 거의 지키지 않았다. 감성적인 국악인들에게, 팩트를 기다리는 기자와의 약속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되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기자에게 기사의 신뢰성을 언급하였다. 이에 비해 ‘23일대통령은 즉각은 아니지만 최소한 담당자나 제3자를 통해 약속을 지키려는 자세를 취했다. 선거 기간에도 짜증이 담기긴 했지만 자료 송부에 대한 약속을 모두 지켰다.

 

이 신뢰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공연히 문제를 삼기 위해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즉, 지난 소송 '씨즌1'에서의 합의 불발에서 알 수 있듯이 상호불신이 원인이었다. 이번의 '씨즌2'에서도 이 신뢰성은 합의에 있어서 걸림돌이 된것으로 보인다.  

 

여섯은 예의(禮儀)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사회상규상의 기본 예의 정도를 말한다. 이는 인성의 문제와도 직결되는데, 대면이나 통화에서 확인되는 것이기 보다는 sns에서 확인되었다. 예를 들면, ‘21일대통령은 관련된 기사에 대한 즉시 반응에서 정정 요구나 반박문이 아닌, 냉소적인 비아냥과 막말의 문자로 표현한다. 기자로서는 모멸감을 느낄 정도이다이 부분은 다른 기자에게서도 수차례나 들었다. 반면에 ‘23일대통령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뿐이지 무례함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무성의 하기는 해도 무례함은 아니다. 최소한의 예의는 차렸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이는 소송 사건과 갈등 해소에 대한 진정성 문제이다. 필자는 각각의 총회 선출이 있은 이튼날 SNS를 통해 갈등해소에 대한 나름의 안()을 제안했다. 간절한 마음에서 행한 것이다. 그런데 ‘21대통령은 무반응이다. 반면 ‘23대통령"반목을 해소하는데 노력하겠다는 취지와 함께 중립적 중재에는 참여하겠다는 반가운 회신을 보내왔다. 2022424일 일요일 1054분에. 이 회신에서 국악공화국회복 가능성과 치유력을 읽을 수 있었다. 반가워서 가슴이 뛰었다. 이런 자세는 전에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필자는 즉시 "예 좋은 자세! 화이팅이란 문자로 화답했다. 이 태도가 부디 의지로 확장되어 실천력으로 발휘되길 바란다라는 마음에서다.


사실 기껏 3, 4차례 정도로 만나 본 인상기에다가 주변 인물들과의 뒷담화를 통해 축출한 결과이니 부족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필자 만용의 결과인 이런 평가는 그 동안 술자리 안주에 뒷담화로 뒤통수 까기에서 비로소 문자화 한 것이 처음일 듯하다. 지금까지의 소송 전말이나 정관 조항을 들먹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동굴에서 헤어나지 못한 분들은 이것을 작은 기준점으로 삼아 판단하셔도 될 듯하다.


뭐 소설로 가볍게 읽을 꺼리이기는 하지만~ . 그러면 이제 어설픈 결말을 내리기로 한다.


브레이크가 없어 멈출 수 없는 기차 앞에 불행하게도 21일과 ‘23일대통령체제가 놓여있다. 두 체제는 머지않아 다시 소송으로 확대되어 충돌하고, 파국을 맞을 지도 모른다. 그 파국은 우선 문화체육관광부의 인가 취소 같은 문제로논의로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회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한 쪽을 희생시켜서라도 다른 쪽 체제를 통해 회원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방법 외에는 없을 듯하파괴된 선로가 더 파괴되기 아예 못 쓰게 되기 전에....

 

그래서 이상에서 살핀 조건들을 고려하고, 비교한다면 이제 전환기를 어느 선로로 작동시켜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현실의 문제이다. 희생을 줄이는 선로 선택을 할 수밖에! 가능한 한 빨리!


#"21일대통령 체제 선로로 틀까?”


아니면


"23일대통령 체제 선로로 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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