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금)

[연재소설] 흙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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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71>

  • 특집부
  • 등록 2022.01.13 07:30
  • 조회수 803


흙의 소리

 

이 동 희

 

말을 멈추고 <1>

 

앞만 보고 달렸다. 그동안 한시도 쉬지 않았다. 생각도 없이 달리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숨을 고를 때가 되었다.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이 일, 음악 업무에 종사한 것은 아니다. 박연이 세종조에 처음 맡아 본 일도 음악과 무관한 것이었다. 약재 관리에 관한 일이었다. 그후 세자 시강원 문학으로 있으면서 음률에 밝음을 인정 받았던 것이고 맹사성 유시눌 같은 예악에 조예가 깊은 고관들의 인정으로 세종의 새 예악정책과 함께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종 7년 박연의 나이 47세에 악학별좌에 임명되고, 음악에 대한 서적을 편찬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 일 이 때를 기점으로 음악 정리의 길, 악성의 큰 걸음을 걷게 된 것이다.

부모의 시묘살이를 하며 산 속에서 피리를 불어 조수鳥獸들을 불러모으고 지프내 강가에서 퉁소를 불며 강촌 사람들의 시선을 끌던 자연 속의 박연朴然은 이때부터 음악의 이론을 바로 세우고 악기를 제작하고 악보를 만들고 예악의 모든 분야 개혁의 선두에 서서 아악雅樂을 완성하는 음악사적 족적으로의 박연朴堧의 생애가 다시 시작되었다.

세종조 초기는 고려의 제도를 새로운 조선 왕조에 맞추기 위한 개혁의 시기였다. 중국 고대로부터 이어진 예악의 원리를 어떻게 조선에 맞게 옮기고 조선의 것으로 정리하느냐 하는 문제로 군신들이 크게 고심하였던 것이고 그것이 새 시대의 과제였다. 그 때 그 문제의 요체를 전적典籍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풀어 적용을 하였으며 그의 열의와 능력을 인정 받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혼신을 다 바쳤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주의 거서秬黍와 남양의 경석磬石으로 악기 제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율관律管을 제작하여 편종編鍾 편경編磬을 제작하는 등 음악 실무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다. 박연은 세종 8년부터 2년 동안 편종 528매를 제작하였다. 악기 조율에 절실히 필요했던 편종을 제작함에 따라 이전의 악기 제작보다 더욱 조율된 악기를 제작하게 되었고 제례 회례 조회, 국가의식에 필요한 악기가 정비되었다. 대쟁大箏 봉소鳳簫 .

박연은 많은 의식음악儀式音樂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많은 상소上疏를 하였다. 고치고 바꾸고 바로잡고, 개혁 정비를 청원하는 것이었다. 끈질기고 줄기차고 거침이 없었다.

그것들을 하나 하나 기록해 본다. 위에서도 부분 부분 이야기 하였다.

 

난계-흙의소리71회.JPG
[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70

  

먼저 제례음악에 대한 상소이다. 너무 많아 개조식으로 제목만 적어본다. 시간적 순서이다.

종묘와 조회에 울바른 음악을 정하자는 상소

사향祀享의 아악을 바로잡자는 상소

제향祭享의 악을 완성하고 아악을 두어 집례자에게 고하게 하자는 상소

사향의 아악을 바로잡자는 상소

제사 때 입는 악공의 복식을 개정하자는 상소

뇌고雷鼓와 영고靈鼓를 바꾸자는 상소

종묘악에 육구六句 황종을 고쳐 사용하자는 상소

묘악에 사성四成을 사용하자는 상소

뇌고 영고 노고路鼓의 제도를 바로잡자는 상소

세종 8년에서 23년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 동안 상언한 것이다. 이것들은 물론 제례음악에 대한 것이고 계속 얘기하려는 예악 전반에 걸친 상소는 실로 방대하였다. 한 선비 생애 절정기의 정열을 다 바친 것이었다.

여기서 왜 종묘악을 정비하여야 하는가, 그 당위성을 말하고 조선 초기 제향악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하였다. 박연은 주례周禮춘관春官의 수정修訂 사례를 제시함으로 설득력을 가졌다. 모든 주장에 그는 전적典籍에 의거해 주장하였고 그것이 너무도 적확하고 해박하였다.

위에 열거한 제목들의 청원한 내용을 적어본다.

예악의 중요성과 악의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종묘악을 제정하자는 내용

종묘악과 사직社稷 석전釋奠 원단圜壇 적전籍田 선잠先蠶 산천山川 풍운風雲 뇌우雷雨 등의 제악을 구분하고 제사 절차에 따른 등가登歌 헌가軒架의 악을 음양합성陰陽合聲으로 사용하자는 내용

제향 때 예절에 맞는 악의 조리調理를 절도 있게 분별하자는 내용

제사 때 입는 악공의 복식을 개정하자는 내용

종묘 강신악降神樂에 사성을 사용하자는 것과 종묘 제향시 전하의 승강 출입시 육구 황종을 사용하자는 내용

제향 때 사용하는 뇌고 영고 노고를 바로잡자는 내용

그렇게 여섯 자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상의 문맥 그리고 이하 몇 대목 기술 등에 역주譯註 난계선생유고蘭溪先生遺藁(권오성 김세종 공역, 국립국악원 1993)의 내용을 인용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