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지난 21일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린 국악인 故김호규 1주기 추모 「씻김」에서 (사)한국국악협회 임웅수 이사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적게나마 김호규 선생을 기억하는 분들이 모였는데, 정작 김호규 선생은 이 자리에 안 계시다는 게 참 서글픕니다. 선생과 알고 지낸지도 어느새 40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형동생처럼, 친구처럼 함께했던 분인데 그 분의 추모사를 제가 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분과의 첫 만남을 기억합니다. 86년 저는 ‘마당 풍물놀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지도하고 활동했는데 어느날 낯선 젊은 분이 분장실로 들어오더니 농악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김호규 선생이었습니다.당시 선생은 인천의 어느 쇠 가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 차가운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손가락 마디가 절단됐지만, 반쪽 밖에 안남은 손가락으로 열채를 잡고 힘겹게 당신의 아버지가 치셨던 가락을 하나씩 기억해가며 따라했던 그 분의 열정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언젠가 김호규 선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국악신문을 만들겠다고…. 그때만 해도 국악인들에게 국악을 전문으로 하는 신문이란 굉장히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국악인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쓴 소리 하고, ‘국악인들이 다 굶어죽겠다. 나라도 나서서 지지하고 위로해서 국악인들의 치어리더가 돼야겠다.’ 했던 그 뜨거운 열정에 저는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국악인들에게 신문을 제대로 돈 주고 팔 수나 있었겠습니까. 추운 겨울,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국악인들에게 건네러 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종로에서 김호규는 불나방 같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국악사, 의상실, 연구소 등등 이곳저곳 다니면서 소식을 전하는 그는 뜨거운 불나방이면서 국악인들을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였습니다. 그가 없는 종로는 이제 텅 빈 듯합니다. 저는 이분이 이렇게 허탈하게 갈 줄은 몰랐습니다. 항상 소탈하게 웃는 분이었고, 얼렁뚱땅해보여도 가슴이 뜨겁고 따뜻했던 분이었습니다.
지금 국악협회가 많이 어렵습니다. 만약 김호규 선생이 지금 계셨더라면 국악협회의 난관도 함께 극복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분의 빈자리가 몹시 크게 느껴집니다. 제가 27대 이사장 선거에 나왔을 때, 뇌경색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서 응원의 말을 건네줬던 호규 형…. 그가 보고 싶습니다.
제가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국악인들이 주변부에 머물 게 아니라 종로, 명동, 강남 등 사대문 안으로 들어와 중심에 서야 한다셨습니다. 그 분의 의지를 저와 국악협회와 국악인들이 함께 이어가겠습니다. 차가운 공장에서 쇠를 깎다가 국악계로 와서 국악인들을 단합시키고 융합시키고 긍지를 갖게 했던 그 분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좋은 곳에서 부디 편안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공연은 오는 12월 28일 오후7시, 한국문화재재단 유튜브와 네이버tv 채널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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