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 (목)
영동역 앞으로 흐르는 영동천을 따라가다 보면 금강 줄기와 만나게 된다. 물길은 곧 힘껏 휘감았다가 뻗어나간다. 금강으로 둘러싸인 곳. 이곳에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자취가 남아 있다.
박연 선생은 조선 세종때, 음악가로 위대한 업적을 남겨 거문고의 왕산악(王山岳), 가야금의 우륵(于勒)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으로 꼽힌다.
난계공은 고려 우왕 4년(1378) 충북 영동군에서 태어났다. 여기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사료를 바탕으로 생가(生家)가 복원되었다.(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하고당1길 14-17)
어귀에 서서 보는 생가는 가슴 높이의 돌담에 둘러싸여 있었다. 돌계단을 올라 조그마한 팔작지붕의 대문으로 들어가면 본채와 부속채가 보인다.
본채는 전후퇴가 있는 기와지붕의 겹집으로 2칸에 걸쳐 마루가 놓여있고 나머지 칸에는 부엌과 곡식창고가 자리하고 있다. 부속채는 외양간과 광, 방 1칸으로 초가지붕이 놓여 있어 본채와는 다른 정겨움을 보였다. 박연 선생은 어려서부터 피리, 거문고, 비파 등 여러 악기를 능히 연주할 정도로 음악적 자질이 뛰어났다. 솜씨가 좋아 연주할 때면 주변에 새와 짐승들이 모여 춤을 췄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난계공은 1405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1411년 문과에 장원으로 등과하였다. 집현전 교리(敎理), 지평(持平), 문학(文學)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는데, 세종이 대군이던 시절에는 직접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세종이 즉위한 뒤에는 악학별좌에 임명돼 악사를 맡아 당시 불완전했던 악기를 개량하고 악서를 편찬하였다.
이후로도 세종을 도와 국악 발전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1428년에 세종으로부터 "세상일에 통달한 학자이다.(可謂通儒, 세종실록 10/02/20)”라는 평을 받았으며 1445년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1453년 계유정난에 막내아들 박계우(朴季愚)가 처형되면서 연좌로 화를 입을 뻔 했으나, 3조에 걸쳐 봉직한 공으로 파직에 그쳤다. 그 뒤로 선생은 고향인 영동에 내려와 지내다가 1458년 3월 23일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장되었으며 영동 초강서원(草江書院)에서 제향하였다.
묘소는 현재 영동 국악체험촌 안에 위치하고 있다.(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국악로1길 33) 체험촌에 들어와 우리소리관 앞으로 놓인 오솔길을 100m 정도 따라가다 보면 돌계단이 보이는데, 계단을 마저 오르면 마침내 넓게 트인 터가 나온다.
박연 선생의 묘소는 1987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었다. 능선에 쌓아올린 축대 위로 두 개의 봉분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안쪽에는 난계공의 묘가 있고 그 앞에는 선생의 부인 묘가 놓여있다. 아마도 터가 좁은 탓에 나란히 두지 못한 듯하다. 묘역은 잘 정돈돼 있고 묘비와 망주석, 상석이 함께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3대 악성의 묘소라기에는 무언가 조금 아쉽고 소박해보였다.
묘소 앞에는 호랑이 석상과 조그마한 가묘가 있는데, 여기에는 뭉클한 설화가 전해져 온다. 난계공은 18세 때 아버지를 여의게 되었는데, 2년 뒤에 어머니도 돌아가시는 큰 불운을 겪게 되었다. 평소에 효심이 깊었던 선생은 6년에 걸쳐 시묘살이를 했는데, 이에 감동한 짐승들이 찾아와 자리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묘살이를 함께했던 호랑이가 나중에 함정에 빠져 죽자 박연 선생이 직접 거두어 묻어주고 제사도 지내주었다는 것이다.
묘소에서 나와 금강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영동과 옥천에 걸친 달이산 남쪽 끝에서 옥계폭포를 찾을 수 있다.(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75-1) 옥계폭포는 박연 선생이 자주 찾아왔다고 하여 ‘박연폭포’라고도 불린다. 어찌나 자주 찾았던지 폭포 주변에 피는 난초의 ‘난’과 옥계폭포의 ‘계’를 합하여 자호를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이다. 선생은 이곳에 오면 꼭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폭포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겨울에 들어 수량이 줄어들고 나무가 앙상해졌지만, 깎아내린 듯한 절벽 사이로 들어오는 하늘과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난계공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피리 솜씨를 갈고닦았을 것이다. 절경에 빠져 폭포를 보고 있자니 박연 선생이 바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부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재생되었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조화로운 피리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영동군은 1973년 난계사를 세워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오고 있으며, 매해 9월 말과 10월 초 사이에 난계국악축제를 개최해 박연 선생의 정신을 기리면서 국악의 발전과 대중화에 공헌해오고 있다. 3대 악성 난계공의 유산과 업적은 오늘날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난계공의 자취를 느껴보고 싶다면 영동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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