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기찬숙/아리랑학회 이사
우리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국책 토목공사는 경복궁 중수 7년(1865~1872) 공사이다. 이 공사에는 조선 최대의 규모만큼이나 최대의 연인원이 강제동원되었다. 조대비(효명세자비)와 대원위(대원군)의 명에 의해 부역민(負役民), 모집된 잡역인, 여러 분야의 공장(工匠)들이 전국에서 올라 왔다. 부역민과 이들을 관리하는 중앙 및 지방의 관리(官吏) 구조는 지배자의 억압에 맞서는 피지배자의 갈등과 저항을 야기했다. 그리고 공사장 인근의 여숙, 식당, 주막에는 전국에서 몰려 온 장사치와 전문예인집단이 모이고 흩어지는 경복궁 중수 공간은 문화가 교류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경복궁 중수기간 7년은 아리랑 연구에서 중요한 국면으로 거론된다. 소위 ‘아리랑 발생설(發生說)’이나 ‘아라리/아리랑 전이설(轉移說)’이나 ‘아리랑 확산설(擴散說)’이 모두 이 공사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발생설은 중수 공사 기간에 아리랑이 형성 또는 발생했다는 주장이고, 변이설은 기존의 토속민요 ‘아라리’가 비로소 후렴구가 붙은 통속민요 ‘아리랑’으로 전이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확산설은 이미 지역에서 불러 온 토속민요 아리랑이 공사장에서 불렸고, 이를 부역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확산시키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어떤 설이든 아리랑 역사에서는 중요한 상황의 국면인 것이 분명하다.
박태원의 단편소설 '太平聖代'(京鄕新聞/1946)에서 경복궁 중수 기간 어느 오후 무렵, 노역이 고된만큼이나 공사장 밖의 저녁은 소리와 춤의 난장판이다. 광화문통 사정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둥! 둥! 둥! 두리 둥둥! 북소리 장고 소리 호적은 니나니 나팔은 뛰- 뛰-....황토마루(黃土峴) 넓으디 넓은 길에 놀이가 사뭇 짱하다. 쫓아가 보니 다른 게 아니라 신시(申時)가 지났으며 오늘 하루 역사가 파하고 지금 부역군들이 떼를 지어 대궐에서 물러 나온 것이었다. 물러 나온 부역군, 모여든 구경꾼으로 넓으디 넓은 황토 마루 큰 길이 송곳 하나 꽂을 틈 없이 빽빽한데 청 황 적 백 흑 오 색채 기(旗)는 바람에 나붓기고 호적과 나팔은 유량히 울이며 무동은 춤추고 여령(女伶)은 소리한다.”
19세기 중반 이런 난장판 7년 상황은 필연적으로 노래가 형성되거나, 전이가 되어 확산될 수 있었다. 장정들이 공사장에서 힘을 썼으니 고됨을 덜기 위해, 고향에 두고온 가족을 그리는 향수를 달래기 위해서 노래는 필연적 조건에서 창출되었을 것이다.
타 지역 부역인이 부르는 노래를 모두가 함께 부르고 향유하는 과정에서 지역적 변이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귀향 부역인들에 의해 다시 전 지역으로 전파 및 확산되었을 것이다. 이 정황에서 세 가지 아리랑 상황(창출-변이-전파)은 영락없이 들어맞는다. 결국 아리랑은 경복궁 중수 공사기간 7년의 시간적/공간적 상황이 만들어 낸 필연적 문화변용(Acculturation)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가설을 할 수 있다. 경복궁 중수 시기가 35년 정도 앞당겨져 1830년 이전에 시작되었다면 아리랑 상황도 그만큼 앞당겨졌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기록도 존재할 수 있다는 기대다. 이런 상상은 이 시기 문예군주 효명세자(孝明世子/1809~1830)의 존재 때문이다. 조선의 제23대 국왕 순조의 하나 뿐인 아들(세자)이자, 제24대 국왕 헌종의 아버지이며, 대한제국 고종 황제 때 1대조인 양아버지로서 묘호가 조(祖)로 격상되어 황제로 추존 된 인물 효명세자는 지난해 6월 고궁박물관에서 ‘문예군주를 꿈 꾼 왕세자 효명세자 특별전’으로 부활했다. 특히 금년 11월 12일 국립국악원에서 192년 전 ‘춘앵전’과 ‘무산향’이란 무용작품 창제자로 현현(顯現)한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代理廳政) 3년을 맞는 1830년에 실권을 잡고 대대적인 경복궁 중건을 계획하였다. 뿐만 아니라 400여제의 시를 지어 열성어제(列聖御製) 최다 작품을 수록했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東闕圖) 제작을 주도했고, 칼춤(劒武)용 무용칼을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26편의 궁중정제(宮中呈才)를 창제하여 무용사의 주목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대리청정 3년 3개월, 짧은 22년의 생애에 남긴 문예(文藝) 업적이다.
이런 효명세자가 경복궁을 중건했다면, 아리랑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아리랑 국면이 35년이나 앞서 전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당대에 아리랑 상황이 기록되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아리랑을 주제로 한 정제도 창제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오는 12일, 192년 만에 정재무용 ‘아리랑’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에, 효명세자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아리랑 국면은 더욱 역사적이고, 더욱 풍모가 있는 노래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으로 12일, ‘철학을 담은 효명세자의 궁중무용’을 보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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