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함께 하는 기사] 다시 한류 드라마 앞에 모이는 일본 사람들
2020-06-19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 어학부 교수
‘반드시 봐야 할 한류 드라마 베스트.’ 일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이런 드라마 소개가 눈에 띈다. 지금 일본에서는 성별과 연령을 뛰어넘어 한류 드라마의 두 번째 커다란 파도가 도래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화제에 오른 드라마는 연령별로 다양하다. 그중에는 최근 드라마뿐만 아니라 십수 년 전 작품들도 있다.
최근 인기의 계기가 된 것은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다. 이 드라마는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돌풍과 함께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려다 사랑하게 되는 북한 장교 리정혁(현빈)의 사랑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올 2월 16일 방영된 마지막 16회가 21.7%의 높은 시청률을 나타냈다. 일본에서는 그 일주일 후인 2월 23일 넷플릭스에서 모든 회가 동시에 공개됐다. 드라마는 공개 직후부터 ‘오늘의 종합 톱10(일본)’에 들어갔고, 그 후 계속 상위권을 유지했다. SNS에는 ‘한국 드라마 사상 최고’ ‘폭풍 오열을 불러일으켰다’ 등 절찬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고,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 ‘∼앓이를 시작했다’ ‘∼늪에 빠져 버렸다’는 사람들이 쏟아졌다. 반복 시청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를 일절 보지 않았다’는 사람들도 한류 드라마를 보고 찾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 팬은 중년이나 노년 여성과 노년 남성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코로나19로 재택 근무하는 사람이나 젊은 남성, 중년 남성 등이 새로운 팬층으로 더해졌다.
이 드라마의 매력을 분석한 기사나 특집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일본인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다. 드라마의 인기 요인은 완성도 높은 각본, 한국과 북한 그리고 스위스라는 커다란 스케일, 주연 배우는 물론이고 조연들까지 돋보인 연기력, 남녀의 새로운 관계, 주옥같은 대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두 주인공의 관계는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벗어나 서로가 ‘윈윈’하며 젠더의 스테레오 타입을 뒤집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널리스트 하루베 렌게 씨는 북한 장교 리정혁의 남성상을 ‘포스트 미투 시대의 히어로’라고 평가했다.
NHK 후쿠오카 방송국에서는 6월 11일 오후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사랑의 불시착’의 매력을 분석하고 소개했다. 그중 한 매력은 새로운 남녀 관계다. 주인공 리정혁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내지만 지배하지 않는 남자로 그려졌다. 그런 그가 자립된 세리와 서로 대등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런 모습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멋지게 다가왔다.
아울러 코로나19 탓에 힘든 시기여서 드라마가 더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를 한 많은 시청자는 일상을 빼앗긴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는 힘을 이 드라마에서 얻었다고 했다. 일본의 여러 시청자는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란 대사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여성 회사원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 불시착한 세리와 코로나라는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생활하는 우리가 겹친다”고 말했다. 어려움 속에서 성장해 가는 세리와 정혁의 모습은 코로나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사랑, 배려, 믿음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올해 초 일본에서 한국 영화 ‘기생충’이 큰 인기를 끈 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도 확실하게 일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갔고 감동을 일으켰다. 적잖은 일본 사람들이 ‘반드시 봐야 할 한국 드라마 베스트’의 순위를 매기며 다음으로 볼 한류 드라마를 찾고 있다. 그 관심은 단순히 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감하고, 다시금 한국인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애정은 한국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겨울연가’가 시작된 2003년에서 2012년경까지 커다란 한류 붐이 일었다. 그때부터 약 10년 후 다시금 한류 붐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SNS에서는 코로나가 종식되면 한국에 여행 가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그런 날이 머지않았을 것이다. 한국 독자 여러분이 거리에서 이런 일본 사람을 만난다면 부디 따뜻하게 맞아줬으면 좋겠다.
(동아일보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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