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1 (일)
『서양인이 본 조선』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고서를 수집하여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수집가에 따라 다르다. 이는 고서 수집을 하기 전에 이미 그 목적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어떻든 간에, 고서를 수집하다 보면 자연히 그 방면에서는 저절로 많은 지식이 쌓여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저술가 중에는 유명한 고서 수집가가 많다. 나는 고서를 수집하면서 『서양인이 본 조선』(호산방, 1996)과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열화당, 2008), 『한국 북디자인 100년』...
도서목록에서 인터넷까지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사진 80] 호산방도서목록 제15호(1994) 호산방에서는1988년1월부터『호산방도서목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이것은 이를테면 판매가격을 문서화하여 공개한 것이다.나는 그 첫 호에서, "고서의 공정한 평가를 꾀함은 물론,고서가격을 공개 전시하여 고서의 유통을 활성화하고 학자 및 수집가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도서목록을 간행하게 됐음을 밝혔다.이 목록은 멀리 보아서는 훌륭한 학문적 자료가 ...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에누리 없는 고서점 ‘엿장수 마음대로’란 말이 있다. 엿장수가 엿을 늘이듯 무슨 일을 제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못마땅한 투로 이르는 것으로, 고서점 주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고서 가격은 고서점 주인 마음대로란 말인가. 사실 그렇다. 고서점 주인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고서 가격을 정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러다 보니 수요자인 수집가가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처럼 사려는 사람과 ...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책의 길을 걸으며 조선시대에 서점은 서사(書肆)·책사(冊肆)라 불렸고,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서포(書僩)·책포(冊僩)·서점(書店)이라고도 불렸다. 해방 이후 서점이라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는 책방(冊房)은, 조선시대에는 지방 관아의 기구였으며, 특히 세종 때는 궁중의 인쇄를 맡아보던 출판기관의 명칭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점은 1908년 고유상(高裕相)이 설립한 회동 서관(匯東書館)이다. 회동 서관은 1897년에 세워진 고제홍 서사(高...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완주 책박물관장 끝나지 않은 소동 [사진 73] 난고문학관 소장 김병연 가짜 글씨, 「선생부지하」 시문 지금까지 난고문학관 소장 김병연 친필 관련 자료 넉 점의 진위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들 중 「선생부지하」 「금강산」 「반휴서가」는 김병연의 친필이 아닌, 최근에 만들어진 가짜 글씨로 결론 내릴 수 있다. 또 김병연의 ...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내우혜서(內友惠書)」 간찰과 「반휴서가(半虧書架)」 시문 먼저 「내우혜서」 간찰을 살펴보자.(*사진 71) 난고문학관의 설명문에는 "김병연이 강릉 김 석사(碩士)에게 보낸 편지로, 1857년 3월 19일에 쓴 편지다(영인)”라고 씌어 있다. 이 간찰에는 ‘김병연(金炳淵)’이란 이름이 씌어 있는데,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 난고 김병연의 간찰이라고 주장함은 억측에 불과하다. ‘병연(炳淵)’이란 이름자는 아주 희귀한 이름이 아니다. 따라서 난고 김병연이 살던 시대에 ...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금강산(金剛山)」 시문 「금강산」 시문의 경우, 난고문학관의 설명문에는 "1850년(1851년의 잘못─저자) 화순 동복에서 금강산 시회(詩會)의 일부를 써 놓은 친필”이라고 씌어 있다. 시문의 말미에는 "道光三十一年金炳淵書于於也同福”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金炳淵書于於也同福”은 "김병연이 동복에서 쓰다”라는 뜻으로 쓴 문구로, 어법상 맞지 않는다. 여기서 ‘於也’ 두...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소동의 시작 고서화를 보는 눈에는 터럭만큼의 착오도, 한 점의 용서도 있을 수 없다 해서 선인들은 ‘금강안혹리수(金剛眼酷吏手)’라는 말을 썼다. 즉 ‘금강야차(金剛夜叉) 같은 눈매와 혹독한 관리의 솜씨’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안목이란 고서화의 진위를 가리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 작품 하나하나가 예술로서 얼마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을 판단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즉 고서화를 감식해내고 그 참맛을 느끼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추어야 하는지...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사진 64] 박인환의 『선시집』(산호장, 1955). 오리지널 판본으로, 반인환이 그의 출판기념회 때 시인 장호강에게 기증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 삼십 년쯤 됐을까.호산방 손님 중에 젊은 화가H씨가 있었다.하루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 가운데 한 권을 들고 와 자랑했다. 1955년10월 산호장(珊湖莊)에서 발행된 박인환(朴寅煥)의『선시집(選詩集)』이었다.(*사진64)원래 그 책은1955년10월에...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완주 책박물관장 [국악신문] [사진 61] 신석정이 1940년 6월 8일 아우 석우(錫雨)에게 보낸 엽서.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은 전북 부안 출신의 시인으로 석지영(石志永)은 필명이다. 석우는 당시 서울 중앙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1987년3월,어느 고서 경매전에서의 일이다.『매창시집(梅窓詩集)』이 출품됐다.매창은 조선 중기의 여성 시인으로,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난 부안(扶安)기생이다.경매전에 출품된『매창시집』은 매창의 한시...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사진 52]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보스톤, 1886) 표지.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는 한말의 서양 외교관과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거의 이들이 남긴 것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1883년 고종(高宗)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내한한 미국의 외교관이자 천문학자인 로웰(P. Lowell, 1855-1916)과, 1900년 내한한 미국의 여행가 홈스(B. Hol...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송광용(宋光庸)은1934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그가 만화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일학년 때인1952년,학생잡지『학원』이 창간되던 해였다.현실은 전쟁통이었지만,삭막한 와중에서도 산골 소년의 꿈은 피어났다.송광용은 친구에게 빌려 본 잡지『학원』에서 김용환의 인기 연재물「코주부 삼국지」와 김성환의「빅토리 조절구」 「꺼꾸리군 장다리군」을 보고 흠뻑 빠지게 된다. [사진46]'국부적' 만화가들의 모습을 그린 1956년 7월 3일자 일기. ...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 완주 책박물관장 못 잊도록 생각이 나거든 이십오여 년 전 언론인 L씨로부터 시인 안서(岸曙) 김억(金億, 1896-?)이 쓴 엽서와 편지 이십여 통을 얻었다. 이 편지는, 평북 철산(鐵山) 출신으로 중국 상해와 봉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6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주필·부사장을 지낸 유봉영(劉鳳榮, 1897-1985)에게 보낸 것들이다. 안서는 고향 정주(定州)에서, 철산과 경성, 중국 봉천으로 옮겨 다닌 친구 유봉영에게 편지와 엽서를 보냈는데, 1919년 편지에는 ‘안서용고(岸...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완주 책박물관장 (1) 눈감 땡감 [사진 38] 『추사서첩(秋史書帖)』(김정희 친필본, 1800년대). "이게 무슨 책이오?” "잘 모르겠소.” "얼마면 되겠소?” "십만 원만 주시오.” "눈감 땡감,오만 원만 합시다.” "좋소,눈감 땡감.가져가시오.”고서나 골동의 세계에는 ‘눈감 땡감’이란 말이 있다. 가치를 잘 모르는 물건을 사고팔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아주 묘한 뉘앙스를 갖고 있다. 사고파는 사람 모두가...
박대헌고서점 호산방 주인,완주 책박물관장 옛날에 준마를 팔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흘 내내 그 말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준마임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에 말 주인은 백락(伯樂)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내게 준마가 있어 팔려고 하는데, 사흘 동안이나 시장에 내놓았는데도 알아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선생께서 제 말을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그리고 자리를 떠나시다가 아까운 듯한 표정으로 한번 뒤돌아봐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 하루 벌이를 그 대가로 드리겠습니다.” 이에 백락이 말을 살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