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4 (일)
그랬다지요 김용택(金龍澤/1948~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추천인:김연광(민족음악연구원 이사) "이맘때쯤이면 기억나는 시. 누군가가 그립다. 만나고 싶다. 또 꽃이 지기 전에!”
개세가(慨世歌) 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1396)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추천인: 이한구(시조연구회 회원) 며칠 전 해질녘 폭설로 갈길 몰라 했다. 문득 포근한 눈, 매화를 티우는 살폿한 눈이 그리워졌다. 선조의 시조 한 수가 입김과 함께 흘러나왔다.
[국악신문] 사진:기세택 새해 첫 기적 반칠환(1964~ )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뱅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 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채로 도착해 있었다. 추천인:김삼목(국악신문 자문위원) 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어떻게 왔는지. 기특하게도 우리는 한날한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선에서 한날한시에 출발한다. 이것은 분명 기적이다. 2012년 교보문고 ...
새해의 기도 이성선(李聖善/1941~2001)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 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추천인:박승찬(...
다시 겨울 아침에 이해인(李海仁/1945~ )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소리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12월 눈오는 겨울아침, (사진: 러시아 동포 3세 스텝핀 블라디미르(Степин Владимир/한국명:이미르)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바라보는 산 2020.01.30.(사진:기찬숙) 눈 윤동주(1917~1945)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추천인:황정수(세종시 한누리국악원 원장) "그제 어딘가에 첫눈이 왔단다. 아마 그 곳은 추웠나 보다. 이제 내 사는 곳도 추워지겠네. 그러면 나는 포근하겠지?”
초겨울 편지 김용택(金龍澤/1948~ ) 앞 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추천인 김도형 교수(다큐 ‘다시 부르는 아리랑’ 감독) "눈은 모든 것을 가린다. 그리고 그 위에 기억을 새긴다. 눈 위에 그릴 그 첫 기억은 아마도 보고 싶은 이일 것이다. 매년 첫 눈을 기다리며 몸살을 앓는 이유일 것이다.”
첫 눈 이정하(李禎夏/1962~)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서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작가: 우정훈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색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 ...
다 못 쓴 시 유재영 (1948∼) 지상의 벌레 소리 씨앗처럼 여무는 밤 다 못 쓴 나의 시 비워 둔 행간 속을 금 긋고 가는 별똥별 이 가을의 저 은입사(銀入絲)! 추천 정현조(남북아리랑협의회 회원) "시를 써오는 사람으로서 남의 시를 읽다 환호하기도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얼마 전 읽은 윤재영 선생의 ‘다 못 쓴 시’를 읽고 절망했다. 나는 이 시처럼 일물일어(一物一...
가을의 기도 김현승(金顯承/1913~1975)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추천인:이창구(남북국악교류추진위 간사) 晩秋! 어린 시절...
가을은 김월준 (1937∼) 가을은 홍시처럼 빨갛게 익어 가고 가을은 하늘처럼 파랗게 깊어 가고 가을은 가랑잎처럼 한잎 두잎 져가고······ 추천인:송옥자(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회장) "문경의 가을은 사과 색으로 온다. 겨울은 사과나무 사이에서 부는 휘파람으로 온다. 한겨울은 낮은 다듬이 소리로 온다. 그리고 나의 나이도 그렇게 온다.”
섬 정현종(1941~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추천인황효숙(울등도아리랑보존회 회장) ‘섬’을 시로 만난 것은 국어시간. 유치환선생의 ‘울릉도’이다.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鬱陵島)로 갈거나~" 학창시절로부터 멀고 먼 후, 다시 만난 시. 정현종 선생의 ‘섬’이다. 이 시를 알고서 나는 깨우쳤다. 내가 사는 울릉도는 ‘섬’이 아니라 ‘나라’라는 사실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1961~ )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추천: 남은혜(공주아리랑보존회 회장) "한 때는 겨울이 오면 연탄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정겨운 시절이기도 하다. 이 시는 내가 체험으로 기억하는 작품. 군밤타령과 함께 떠오르는 나의 애송시이다.”
그 꽃 고은(1933~ ) 노란 민들레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추천: 정은하(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단 석줄 15자 시 그 꽃이다. 문학 수업을 받을 때 인용된 시이다. 지금도 팔공산 자락을 오를 때면 떠올리는 시이다. 사람이든 꽃이든 우리는 곧잘 내려오면서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미련함을 깨...
강강술래 이동주(李東柱/1920~1979)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 레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白薔薇) 밭에 공작(孔雀)이 취(醉)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旗幅)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