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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9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필자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을 인솔하고 터키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야외무대의 공연을 약 3,000명 정도가 관람을 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1부 공연을 50분 정도하고, 2부에는 우리 전통무용단이 약 50분 정도 공연을 했다. 그리고 3부에는 소녀시대와 같은 국악의 걸그룹이 국악기와 바이올린 등 서양악기가 혼합된 소위 퓨전음악을 연주했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이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가는 것을 보았다. 왜 가느냐고 물었더니 저런 퓨전은 우리가 더 잘하기 때문에 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한국의 전통음악 아름답고 최고다”였다. 이 상황을 통해서 나는 많은 시사점을 느꼈다. 국악 공연에서의 퓨전은 국내에서 국악을 대중화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일지 모르나, 특히 서양악기와 국악기가 혼합된 공연은 세계 무대에서는 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물론 실험적 공연은 제외하고 말이다). 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대중음악의 틀 안에 국악적 요소가 들어있다. 2013년 10월 23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조회수 18억뷰(현재는 44억뷰를 돌파하였지만)를 돌파했다. 지난 2013년 7월 15일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발매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2013년 4월 13일 발표된 '젠틀맨'도 그 때 5억6천만 건 이상이 조회되었다. 두 곡의 조회 수를 합하면 23억 건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다, 사실 그 무렵 유튜브 최다 조회수 1위였던 최고의 가수가 있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스틴 비버’이다.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가 8억뷰의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8억뷰의 조회수를 기록하기까지 무려 3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3개월이 부족한 3년이 걸린 셈이다. 저스틴 비버와 비교하면 싸이는 1년 3개월 만에 달성한 것이다. 거기다가 18억뷰 이상이니까, 그야말로 경이로운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세계적인 가수라는 표현도 좀 부족한 것 같고, 메가울트라 슈퍼스타라고 당당하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또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남미, 아프리카 대륙까지 '강남스타일'의 열풍이 거세게 불어 닥쳤었다. 싸이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튜브 뮤직 어워즈’에서 3개 부문인 ‘올해(2013년)의 뮤직비디오’, ‘올해의 아티스트’, ‘유튜브 트랜드’ 후보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시골 아저씨같이 생긴 사람이 말이다. 2012년에는 세계적으로 싸이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미국 최고의 팝스타인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든가, 케이티 페리가 말춤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CNN', '월스트리트 저널' 등 해외 언론들이 싸이와 관련한 기사를 연일 보도했다. 그러면, 예고한대로 '강남스타일'에서 ‘휘모리장단’이 어느 정도 사용되었는지 악보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악보 중 장단의 구음을 따라 해 보기 바란다. "덩 따따 쿵쿵 따따”. 상세한 분석은 ‘사물광대’의 리더 신찬선 박사(음악학, 동국대 겸임교수)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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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국악공화국과 달리는 기차’ 이야기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狂車/鑛車) 이야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충돌을 마주하고 달리는 기차”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변경 가능한 선로로 달려오는 기차에 의한 희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담론이다. 전자는 두 진영의 충돌 상황이거나 선의의 공동체 구성원을 희생물로 수장이 무책임한 대치국면을 야기할 때의 비유이다. 후자는 달려오는 기차의 선로 변경 여부를 통해 어떻게 희생을 줄일 것인가의 가설이다. 바로 이 두 기차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곳이 있다. 한 측이 4월 21일 대통령(자신들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위와 명예를 획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21일대통령’과 ‘23일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함)을 선출하고, 또 한 측이 이틀 후인 23일 대통령을 선출한 ‘국악공화국’이다. # "브레이크가 없는 두 기차가 마주 달려오고 있다. 어떻게 할래?” "뛰어 나간다” "왜?” "충돌하는 거 구경하려구!” 빨리 나가 기차를 멈추게 하여 충돌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국의 불꽃(피 튀기는 싸움)을 구경하러 나간다는 것이다. 방관을 넘어 냉소에다 저주까지 반영한 대답이다. 지난 '국악공화국'의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결코 농(弄)이거나 망언만이 아니라 실제 나왔던 이야기 이다. 그런데 분규로 갈라진 두 진영에서 대통령이 배출되고 나서 또 들려오는 이야기는 더 절망적이다. 지난 2년은 수비만 했는데, 이제는 21일 총회의 무효소송과 "두 건의 금품수수 확인서를 갖고 있다”고 ‘수습위원회’에서 발언한 것을 두고 명예훼손죄로 고발한다는 말이 돌기 때문이다. 2020년 초 당선무효 소송으로 극한 대립을 해오다 금년 3월 패소한 측이 소송전을 불사하겠다고 한 것이다. 홧김에 내뱉은 말이 아니라면 공수가 바뀐 2차 무효소송전이 전개될 것이 뻔하다. 아!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두 기차를 어떻게 하면 승객의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 #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狂車) ‘트롤리호’가 달려온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다섯 명이 작업을 하고 있는 선로와 변환기(變換機)를 작동하면 선로가 바뀌는 측선에서 한명이 작업을 하는 상황이다. 그대로 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전환기를 작동시켜 한명이 작업하는 측의 선로로 가게 할 것인가? "그대로 가면 5명이 죽고, 측선으로 가면 한명이 죽지?” "측선으로 돌려서 한 사람을 죽이고, 다섯 사람을 살려!” "전환기를 돌려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행동인가?”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챕터에 나와 유명해진 ‘트롤리 딜레마’(기차 논쟁)을 재구성한 것이다. 정치철학계의 문제적 논제로 사고(思考)실험의 한 케이스인데, 소수 인권 문제와 목숨의 수치 문제를 다룬 것이다. 다양한 조건하에서의 실험인지라 결론도 매우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데, 여기서는 단순화 시켰다. 다만 위의 경우라면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시키는 선로 변경을 선택한다고 답하는 유형의 예를 제시한 것이다. 이를 현실의 ‘국악공화국’에 적용하면 어떨까. 어렵지 않게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여기서는 도덕이나 정의(正義)의 문제는 논외하기로 한다. 21일과 23일 선출된 대통령 체제를 위의 두 선로에 처한 상황이라고 가정하기로 하자. 이에 누군가가 변환기를 작동시켜 희생을 줄이는 한 쪽을 택할 수 있다는 조건도 있다고 하자. 당연히 전환기 작동자와 각각의 조건이 주어져야 하는데, 다행히 비상대책위원회(박상진 현 학교법인 국악학원 이사장)가 존재함으로 작동자는 준비가 되어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문제는 선택 또는 희생(犧牲) 값인 양측의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조건을 더듬거려 채우면 이런 정도일 것이다. 첫째, 두 체제 정통성 여부이다. 그런데 모두 희박하다. 왜냐하면 서로 극열 부정하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제 시점에서 법적으로는 ‘21일대통령’ 체제가 약하게나마 우위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객관적 평가를 받을 만한 여지는 거의 없다. 매우 애처롭고 슬픈 현상이다. 제3자적 입장으로 이 나라는 ‘웃기는 짬뽕’ 신세인 것이다. 둘째, 각 집행부 구성원과 회원수도 따질 필요 없이 퉁 쳐야 한다. 임시총회 대의원 수와 참가인원 수로는 23일 대통령 체제가 월등하나 가장 중요한 일반 회원은 공통이기 때문이다. 물론 ‘21일대통령’ 체제의 ‘이핵관’들의 회비 납부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차후 법적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아직 법적 판단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셋째, ‘국악공화국’ 수장(首長) 자격문제다. 이는 중요한 대목이다. 해서 세분하여 따져 보기로 한다. 다만 전제하는 것은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기 보다는 세평에 기댄 것이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는 다른 필자에 의해서 버전을 달리해 객관화 할 필요가 있다. 자격의 기본은 국악분야의 전문성 문제이다. ‘국악공화국’ 역대 수장 중에는 예능 보유자들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명인명창들과 이론가들이 많았다. 이점에서 전문성은 제일의 조건이 된다. ‘21일대통령은 의상실 운영자(문예분과)이자에 ’전통예술진흥회 이사장이긴 하지만 장르적 전문성은 희박해 보인다. 반면 ‘23일대통령’은 농악분야 경기도 지정 보유자(농악분과)로 이미 20대 초반에 ‘전주대사습 농악부문 장원'을 획득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문성에서는 분명하고 확실한 우위에 있다. 둘은 예술인 공동체 수장이란 점에서 얼마나 감수성이 풍부한가도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공통으로 부족한 점이 확인된다. 인성(人性)과 포용력인데, ‘21일대통령’은 전자가 부족하고, ‘23일대통령’은 후자가 부족하다. 둘 다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격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셋은 예술가로서의 문해력(리터러시)이다. 이는 당선 취임사의 호소력 내지 표현력 같은 언변이나 저술 등을 통한 주관성 피력 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후자가 높은 편이다. 이 문제는 대외 협력관계, 관공서 접촉에서 중요한 강점이 된다. 넷은 현대의 지성인 척도라는 경청력(傾聽力)이다. ‘21일대통령’은 주변의 한 측근에 의하면 "5분 이상의 대화가 어려운 분”이라고 하는 평이 있었다. ‘23일대통령’은 필자와 수차의 통화와 SNS소통 경험으로는 맥락적 대화가 가능한, 나름의 자격을 갖췄음이 보인다. 다섯은 약속 이행의 신뢰성 문제이다. ‘21일대통령’은 SNS에 의한 약속에 대해 거의 지키지 않았다. 감성적인 국악인들에게, 팩트를 기다리는 기자와의 약속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되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기자에게 기사의 신뢰성을 언급하였다. 이에 비해 ‘23일대통령’은 즉각은 아니지만 최소한 담당자나 제3자를 통해 약속을 지키려는 자세를 취했다. 선거 기간에도 짜증이 담기긴 했지만 자료 송부에 대한 약속을 모두 지켰다. 이 신뢰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공연히 문제를 삼기 위해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즉, 지난 소송 '씨즌1'에서의 합의 불발에서 알 수 있듯이 상호불신이 원인이었다. 이번의 '씨즌2'에서도 이 신뢰성은 합의에 있어서 걸림돌이 된것으로 보인다. 여섯은 예의(禮儀)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사회상규상의 기본 예의 정도를 말한다. 이는 인성의 문제와도 직결되는데, 대면이나 통화에서 확인되는 것이기 보다는 sns에서 확인되었다. 예를 들면, ‘21일대통령’은 관련된 기사에 대한 즉시 반응에서 정정 요구나 반박문이 아닌, 냉소적인 비아냥과 막말의 문자로 표현한다. 기자로서는 모멸감을 느낄 정도이다. 이 부분은 다른 기자에게서도 수차례나 들었다. 반면에 ‘23일대통령’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뿐이지 무례함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무성의 하기는 해도 무례함은 아니다. 최소한의 예의는 차렸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이는 소송 사건과 갈등 해소에 대한 진정성 문제이다. 필자는 각각의 총회 선출이 있은 이튼날 SNS를 통해 갈등해소에 대한 나름의 안(案)을 제안했다. 간절한 마음에서 행한 것이다. 그런데 ‘21대통령’은 무반응이다. 반면 ‘23대통령’은 "반목을 해소하는데 노력하겠다”는 취지와 함께 중립적 중재에는 참여하겠다는 반가운 회신을 보내왔다. 2022년 4월 24일 일요일 10시 54분에. 이 회신에서 ‘국악공화국’ 회복 가능성과 치유력을 읽을 수 있었다. 반가워서 가슴이 뛰었다. 이런 자세는 전에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필자는 즉시 "예 좋은 자세! 화이팅”이란 문자로 화답했다. 이 태도가 부디 의지로 확장되어 실천력으로 발휘되길 바란다라는 마음에서다. 사실 기껏 3, 4차례 정도로 만나 본 인상기에다가 주변 인물들과의 뒷담화를 통해 축출한 결과이니 부족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필자 만용의 결과인 이런 평가는 그 동안 술자리 안주에 뒷담화로 뒤통수 까기에서 비로소 문자화 한 것이 처음일 듯하다. 지금까지의 소송 전말이나 정관 조항을 들먹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동굴에서 헤어나지 못한 분들은 이것을 작은 기준점으로 삼아 판단하셔도 될 듯하다. 뭐 소설로 가볍게 읽을 꺼리이기는 하지만~ . 그러면 이제 어설픈 결말을 내리기로 한다. 브레이크가 없어 멈출 수 없는 기차 앞에 불행하게도 21일과 ‘23일대통령’ 체제가 놓여있다. 두 체제는 머지않아 다시 소송으로 확대되어 충돌하고, 파국을 맞을 지도 모른다. 그 파국은 우선 문화체육관광부의 인가 취소 같은 문제로논의로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회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한 쪽을 희생시켜서라도 다른 쪽 체제를 통해 회원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방법 외에는 없을 듯하다. 파괴된 선로가 더 파괴되기 아예 못 쓰게 되기 전에.... 그래서 이상에서 살핀 조건들을 고려하고, 비교한다면 이제 전환기를 어느 선로로 작동시켜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현실의 문제이다. 희생을 줄이는 선로 선택을 할 수밖에! 가능한 한 빨리! #"21일대통령 체제 선로로 틀까?” 아니면 "23일대통령 체제 선로로 틀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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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8문화의 의미는 홍익인간 사상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강남스타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문화기본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다. 2014년 정기국회에서 2013년 7월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문화기본법' 등 9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처리한 모든 법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이었으나, 그중의 으뜸은 당연 문화기본법이다. 이 문화기본법이 최종 통과됨으로써 우리나라 문화정책 흐름 중 아주 큰 흐름을 맞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문화는 국가 경영에 주요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소극적 관리와 지원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다 1990년 문화부 설치를 기점으로 문화정책이 국가 경영의 주요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문화복지 개념의 탄생, 그리고 문화산업이 팽창되면서 문화정책의 영역은 대폭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문화정책의 대상은 예술 창작자에 대한 지원이거나 산업생산자에 대한 지원이었다. 그리고 문화에 대한 대상은 좁은 의미에서 예술 혹은 인접 분야에 국한되었다. 그리하여 문화의 수용자이며 당사자인 국민은 국가의 관심 영역 밖에 있었다. 그러나 문화기본법이 제정됨으로써 그 정책적 대상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다. 이 문화기본법은 문화에 대한 정의조차 "삶의 총체적인 양식이면서 인간의 고유한 정신적 ‧ 물질적 ‧ 지적 ‧ 정신적 산물”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개인과 집단의 감성을 표현하는 가치, 활동이나 제도”까지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과거 문화예술진흥법에 기록된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 즉 "문화예술이라 함은 문학, 미술, 음악..... 등을 말한다.”와 전적으로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예술의 창작자 지원이 아닌, 국민의 문화적 권리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정책방향을 추진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융성의 시대에 대비한 문화기본법이라고 여겨져 기대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한마디로 문화(文化)의 의미는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다”, "문화로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홍인인간의 사상이다. 그 사상이 문화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회에서 얘기했듯이 강남스타일은 국악의 ‘휘모리장단’으로 작곡되어졌다. ‘작곡되어졌다’라는 말은 작곡자가 의도하여 작곡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작곡하여 놓고 보니 ‘휘모리장단’으로 작곡되어졌다는 뜻이다. 휘모리장단은 4/4박자의 국악 장단 중 가장 빠른 장단이다. 흔히, 4/4박자로써 빠른 템포의 음악이면 ‘휘모리장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곡목으로써의 ‘휘모리장단’을 이야기할 때는 그 곡목을 구성하는 장단 중에 ‘휘모리장단’의 기본장단과 다양한 변형장단이 곡 전체에 골고루 나타나 있어야 한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와 같은 리듬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영어의 어법과 한글의 어법은 어순이 전혀 다르다. 작곡자는 그 어순의 어법에 따라 가사에 리듬을 붙인다. 그래서 영어의 가사에 리듬을 잘못 붙이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의 꼴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한글 가사에 한국 사람이 리듬을 붙이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로 국악의 장단이 성립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는 한 장단이고,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는 한 장단 안에 구성된 각각의 리듬에 해당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휘모리장단은 ‘휘몰아친다’라는 뜻으로 빠른 장단인데, 한마디에 4/4박자, 또는 두 마디에 2/2박자로 기보 한다. 한마디로, 리듬과 가사가 잘 조화된 음악으로서 음악어법에 부합된 음악이어야 한다. 다음 회에는 <강남스타일>에서 ‘휘모리장단’이 어느 정도 사용되었는지 악보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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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협회 선거 관련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서 발표(사)한국국악협회는 두 체제로 분규 중이다. 현 이호연 부이사장 체제는 임웅수씨를 단일 후보로 하여 23일 선거를 하게 되었고, 또 한 단체는 김학곤 부이사장 체제로 이용상 전 26대 부이사장을 단일 후보로 21일 선거를 하게 되었다. 며칠 후면 한 협회에 두 이사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사태를 막기 위해 국악계 중진 4인이 비상재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덕수, 박상진, 채치성, 한상일 4인은 10일과 16일 긴급 모임을 갖고 파국을 막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결성을 합의하였다고 밝혔다. 배경 설명 자료와 성명서에는 ‘두 체제의 선거를 하나로 통합하여 단일 체제에서 개최함으로써 정통성 있는 이사장을 선출하자’는 논지이다. 현실적으로 이것만이 협회의 안정적 운영 기반이라는 주장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연주, 학술, 공연 분야의 중진들의 목소리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국악협회는 2년에 걸친 소송으로 난맥상을 겪다, 다시 두 체제로 분리되어 각각의 이사장 선출로 격돌하게 되어 파국 사태를 맞게 되었다”고 하며, 그동안 2년 반 동안 방관자로서 ‘판결 결과를 보자’며 수습하기를 회피하였음을 자성하며" 이 결과로 60년 역사의 국악 단체가 극단의 갈등으로 파국의 사태를 목도하게 된 것”이라고 문제의식을 피력했다. 따라서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 단일 선거 체제를 마련하여 그 결과 선출된 이사장에게 정통성을 부여하여 이후 협회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비상대책위원회 당위성을 제시하였다. 박상진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선거 후에는 또다시 소송 등으로 이어져 파국으로 갈 것인데, 누구든 나서서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 이제 많은 국악인들에게 동의를 얻어 추진하려고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덕수 교수 역시 "지난 수습위원회 때 강력한 활동을 못 한 것이 결국 이런 사태까지 오게 한 것이다”라고 자책하였다. 한상일 교수는 "이번 통합 선거에 반대하는 측은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상황에서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너무 늦었고, 더 깊은 늪으로 빠진다는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여 사태 추이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채치성 위원은 "막다를 골목까지 오게 되었다.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명분 있는 일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네 위원의 통화에서 감지되는 것은 설령 이번 두 체제 간의 이사장 선출을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사태 진화를 할 수도 있다는 확신 내지는 책임감이었다. 이번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수습위원회’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절대적 중립성을 견지하여야 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 명분은 추진력의 원동력이다. ‘통합 단일 선거’, ‘정통성있는 이사장 선출’, ‘협회 안정 기반 구축’이라는 명분은 충분하고도 절실한 것이다. 다음은 비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문건이다. 비상대책위원회 결성 배경 (사)한국국악협회는 2020년 2월, 27대 이사장 선거(이용상 對 임웅수)를 개최하였습니다.(임웅수 당선) 이후 2개월 후 ‘당선무효소송’(원고 이용상)이 제기되어 2년 동안 항소심이 진행되어 2022년 초 국악협회(임웅수)가 패소하였습니다. 그리고 3월 18일 대법원 상고심 중 임웅수 이사장이 사표를 냈습니다. 이렇게 확정된 판결이었지만 원고와 피고의 양측에서 서로 불복하고 새 이사장을 다시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부이사장 대행 체제의 선거관리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이에 이호연 부이사장 체제의 집행부가 송선원을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출하여 27대 이사장 선출을 위한 선거일을 4월 23일로 공고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인 전 제26대 집행부 이사장 대행 김학곤 부이사장 체제도 복구하여 긴급 이사회를 개최했습니다. 여기에서 선거관리위원회를 결성하고 별도의 이사장 선출을 결의, 강주형 선거관리위원장 명의로 이사장 선거일을 4월 21일로 공고하였습니다. 이로서 한국국악협회는 2년에 걸친 소송으로 난맥상을 겪다, 다시 두 체제로 분리되어 각각의 이사장 선출로 격돌하게 되어 파국 사태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국악인들은 방관자로서 ‘판결 결과를 보자’며 수습하기를 회피하였습니다. 이 결과로 60년 역사의 국악 단체가 극단의 갈등으로 파국의 사태를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통합, 단일 선거 체제를 마련하여 그 결과 선출된 이사장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안정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김덕수 박상진 채치성 한상일(가나다 순) 4인이 4월 10일과 16일 긴급하게 모임을 갖고 한국국악협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본 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한 대안을 마련하여 양 체제 집행부와 선거관리위원회와의 논의를 거쳐 통합된 단일 선거체제를 마련하여 충돌을 방지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국악계 원로들과 전 국악인들의 깊은 관심을 담아 호응을 기대하며 보도를 의뢰하는 바입니다. 성 명 서 (사)한국국악협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현재의 ‘한 협회 두 체제’의 분규 결과로 21일과 23일 각각의 이사장 출현이란 파국을 막기 위해 국악계 원로들의 고견과 많은 회원들의 뜻에 따라 다음의 실천사항을 강력히 요구한다. 하나, 이호연 부이사장 체제 집행부/ 송선원 위원장 선거체제와 김학곤 부이사장 체제/강주형 위원장 선거 체제는 즉시 본 비상대책위원회와 머리를 맞대고 수습에 나설 것을 요구함. 하나, 긴급한 수습책을 마련하기 위해 본 비대위가 주체하는 원탁회의에 함께하여 통합 선거, 단일 이사장 선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함. 하나, 긴급 원탁회의는, 통합선거 당위성 그리고 방식과 비전을 주제로 한 내용을 토대로 김덕수 박상진 채치성 한상일(가나다 순), 이상 비상대책위원회 4인, 그리고 두 체제(부이사장),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와 함께 원탁회의를 통하여 수습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함. 하나, 이를 토대로 통합선거를 실시, 단일 이사장을 선출하여 정통성을 확보, 협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기틀을 잡는데 함께 노력할 것을 요구함. 하나, 21일과 23일 예정인 각 체제의 이사장 선거(총회) 일정을 중지, 공고하기 위하여 원탁회의는 가급적 빠른 시일(20일) 내 개최하여야 함. 장소는 일단, 인사동 태화빌딩(3.1독립선언서 선포장소)소회의실로 함. 하나, 양 체제의 투표권자 차이 등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권고한 중앙회, 지회, 지부 간의 권리와 의무를 함께 부여하는 수평적 관계 개선을 위한 정관 개정도 함께 처리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요구함. 하나, 합의를 통한 공동 선거관리 체제 마련(각 선거체계 인정)으로 새 이사장 선출⟶ 당선자(27대 이사장) 정통성 부여(법적 근거 마련)⟶ 이를 통한 안정 체제 기반 마련할 것을 요구함. 하나, 전국 지회, 지부의 이사장 선거 투표 참여로 기존의 투표권 회원 범위를 확대하여 기존의 편향적 선거 형태를 청산할 것을 요구함. 하나, 선거운동은 공개적인 후보자의 소신과 비전 발표를 통해 진영적인 투표 행위를 타파할 것을 요구함. 하나, 비대위는, 이상의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시 새로운 법적 소송전 등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짐은 물론, 국악협회의 혼돈과 국악인들의 명예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현재의 비상시국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전 국악인이 궐기하게 되고, 새로운 불신임 운동이 전개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로서 새로운 파국이 초래할 것을 크게 우려한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22.04.16. (사)한국국악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김덕수 ‧ 박상진 ‧ 채치성 ‧ 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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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산업 60년, 대한민국을 이끌다’ 특별전 관람객 1만명 돌파울산박물관은 지난 1월 27일 개막한 울산공업센터 지정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울산 산업 60년, 대한민국을 이끌다’ 관람객이 1만 명을 넘어섰다고 13일 밝혔다. 1만 번째 주인공은 울산 동구에 거주하는 백승애(41·여)씨다. 백승애 씨는 "강원도 춘천에서 울산으로 이사온 지 11년 차인데 이번 특별전을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시대의 변화를 알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울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울산박물관은 이날 백 씨에게 일만 번째 방문 기념 촬영 및 기념품(전시 도록 등)을 전달했다.이번 특별전에는 울산공업센터 지정 이후 60년간 이어진 울산 산업과 도시 발전상, 그 주인공인 울산 사람들의 생활상을 만날 수 있다. 공단과 댐 건설로 고향을 내어준 사람들 이야기를 비롯하여, 사택문화, 향우회, 광역시 승격, 노동운동, 울산공업축제 등 울산의 특성을 보여주는 키워드를 볼 수 있다.전시는 오는 6월 26일까지 열린다.신형석 울산박물관장은 "울산공업센터 지정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에 관심을 갖고 찾아 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면서 "울산 60년에는 현재 울산을 이해하거나, 미래 울산을 모색할 때 꼭 알아야 할 내용이 들어있어 중요하다. 더 많은 분들이 전시를 보며 공감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박물관은 울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선생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서훈 등급 상향을 위해, 지난달 28일~4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특별전을 개최해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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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옥중편지 문화재 된다일제강점기 무력을 통한 독립을 추진한 비밀단체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낸 박상진(1884∼1921) 의사 관련 유물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박상진 의사 옥중 편지 및 상덕태상회 청구서’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하고,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를 비롯한 옛 철도차량 4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고 7일 밝혔다.‘박상진 의사 옥중 편지’는 광복회 회원이 친일 부호 처단 사건 등으로 체포됐을 무렵 공주 감옥에 투옥된 박 의사가 동생들에게 쓴 가로 32.8㎝, 세로 14㎝의 편지다. 작성 시점은 2018년 4월로, 실력이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 달라는 부탁을 담았다.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 청구서’는 미쓰이(三井)물산 부산출장소가 1915년 2월 상덕태상회에 물품 대금을 요청한 서류다. 소재지는 울산박물관이다. 독립운동 재원을 마련하고 비밀 연락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된 상덕태상회의 실체와 규모, 존속 기간을 알려 주는 유물이다. 문화재청은 이들 편지와 청구서가 1910년대 군대 양성, 무력 투쟁, 군자금 모집 등을 추진한 광복회와 총사령 박 의사를 재조명하는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등록문화재가 된 철도차량은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 ‘터우5형 증기기관차 700호’ ‘협궤 디젤동차 163호’ ‘협궤 객차 18011호’다.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는 1969∼2001년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전임 대통령의 지역 순시 등에 이용됐다. 두 량으로 구성되며, 한 량의 길이는 25m이고 대통령 집무실, 침실, 수행원실 등을 갖췄다. ‘터우5형 증기기관차 700호’는 1914년 생산돼 1919∼1935년까지 운행됐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터우형 증기기관차다. 1965년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된 ‘협궤 디젤동차 163호’와 ‘협궤 객차 18011호’는 각각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인선’과 수원과 여주 사이에 놓인 ‘수여선’ 협궤철도를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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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7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한류를 형성하고 있는 요소는 보편성과 독창성이다.한국인의 장끼인 창의성과 끼가 한류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한류의 DNA라고 하는 한국인의 문화적‧예술적 역량은 어떤 근원에서 비롯되었을까? 동양미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의 내용 중 ‘화이부동(和而不同)과 위이불범(違而不犯)’에 대해 비교 설명을 함으로써 한국인의 문화적 성향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화이부동’은 ‘절제의 미(美)’라고 하며 예(禮)에 해당하고 국악에서는 정악(正樂)에 해당한다. ‘위이불범’은 ‘자유의 미’라고 하며 악(樂)에 해당하고 국악에서는 민속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화이부동’은 지나치지 않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화합형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양보하니 하모니가 잘 이루어진다. 그러니 메뉴얼을 만들고 잘 지킨다.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민족이라고 할까. 아마 일본이 여기에 해당되는 민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위이불범’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지나치지 않게, 그리고 창의적이고 끼가 많다. 그러니 돌출형들이 많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 그러니 메뉴얼보다는 순간 순간 창의성과 임기응변, 즉흥성에 능하다.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민족이라고 할까, 한국(한민족)이 여기에 해당이 되는 민족일 것이다. 여기서 ‘화이부동’은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고, ‘위이불범’은 독창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세계에서 일본문화가 동양의 문화대표 격으로 행세를 하였다. 동양에는 일본문화만 존재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일본 문화는 고급문화라는 등식으로 인식되었다. 한국문화는 중국과 일본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한국은 선진 일본문화를 따라 흉내내기에 급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20세기 중반 이후, 거대한 ‘한류’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민족의 원조인 동이(東夷)민족이 동양문화의 원형(原型)을 창조했듯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우리 문화가 넘실댔듯이 새로운 한류의 실크로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과 위이불범(違而不犯)' 중 한국인들에게는 이 두 가지 사상이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데 아마도 4 대 6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위이불범’에 가까운 민족으로서 창의적이고 끼가 많다. 일본인은 ‘위이불범’보다는 ‘화이부동’에 가까운 민족으로서 창의적이기 보다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모방하여 자기의 문화로 탈바꿈시키는데 능한, 소위 모방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은 관료주의가 발달하고 국가통치의 수단으로 모든 분야에 전자회로와 같은 매뉴얼을 만들어 국민들이 지킬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한다. 비상시국을 염려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일본국민 특유의 근면성으로 지금까지 잘 지켜져 왔다고 본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일련의 비상사태를 목격한 우리는 그들의 창의적이지 못한 메뉴얼 국가 이미지를 확인하게 된다. 한국은, 드라마 ‘대장금’ 등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것은 한류다”라는 용어가 중국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10여 년 전 중국 최고의 인민대회에서는 우리나라 드라마인 김수현, 전지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를 거론하면서 중국에서는 이런 드라마를 왜 못 만드느냐고 자탄을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K 드라마, K 팝 등이 세계를 요동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국민들도 놀라고 정부도 한류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같은 K 팝 등의 현상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으면서 황폐해진 환경 속에서도 우리 대중음악 문화는 꾸준히 발전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우리나라의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정립된 엔카는, 다시 60년대 7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트로트 음악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전통가요의 장르로 발전하였고, 80년대 90년대 서양의 팝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대중문화는 일렉트로닉 팝 문화의 장르까지 발전하여 왔다. 이러한 문화들을 섭렵하고 축적된 바탕에서 창의적 콘텐츠 개발의 산물이 바로 K-팝이다. 그러한 음악들이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등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정부의 지원금 받고 제작한 음악이 아니다. 제작해 놓고 보니까 세계 최고의 K-팝 음악이 된 것이다.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의 지원도 있었지만, 이 또한 민간 이벤트 업체의 역량 덕분이다. "하던 장난도 멍석 깔아주면 안한다”라는 한국의 속담이 있다. 예산 지원금 주면서 콘텐츠를 강요하고 간섭하게 되면 남의 작품 흉내만 내며 낭비만 초래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전통적 문화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와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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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6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는 문화와 문명사적 테두리 안에서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를 들여다보며, 한류 문화가 미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염원하는데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총 5회에 걸쳐 이야기 하고 있는 ‘한류와 4차 산업혁명’에서의 러시아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전략적 상대국으로서의 러시아이다. 그런데 세계는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서 세계질서의 새로운 개편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4강 간의 관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한국과 북한간의 미묘한 정세와 판세의 변화가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한류 문화가 미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창조적 ‘전략적 사고’를 통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야 황무지 같았던 문화의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움을 틔워서 문화의 네 기둥을 세우고 생명이 숨 쉬는 문화의 전당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이어령 글 참조) 한국인에게는 ‘궁즉통(窮則通)’, 즉 궁하면 통할 때가 많았다. 궁즉통은 몇 천 년간 강대국 사이에서 견뎌온 한국인의 창조력이자 돌파력이었다. 위기의식이 있어야 살길을 찾았다. 꼭 닥쳐야만 뭔가를 하였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도 1년, 2년, 한 달 전에 계획한 결과물이 대부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보통 작곡, 그리고 글쓰기도 마감이 닥쳐야만 써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창조는 천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리 대비하고 분석하다 보면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나온다. 한국인은 ‘위기는 기회다’를 진리처럼 삼고 위기의 고비마다 마치 위기가 닥쳐야 기회를 얻는 것처럼 늘 그렇게 극복해 왔다. ‘한국인은 위기에 강하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제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위기를 만들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한 명의 창조적인 사람을 따돌림 당하도록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창조적인 세력이 많이 만들어지고 서로 네트워크를 맺고 교류를 해서 결과물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정치 ‧ 사회문화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귤이 탱자가 되는 사회’라는 말이 있다. 창조적 예술가가 싹틀 수 없는 국내의 풍토를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예술가는 비록 국내에서 탱자 취급을 받는다 하드래도 외국에 나가면 귤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 스스로 탱자 취급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우리나라 고유의 뛰어난 문화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쯤 해서 한류 중 K-POP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시간에 예고한대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K-POP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013년 3월 26일에 필자가 KBS 9시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 당시 K-Pop으로 세계인들을 들썩이게 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국악 장단 중 ‘휘모리장단’으로 작곡되어진 곡이다”라고 주장했더니 뉴스에 보도가 된 것이다. 필자와 KBS와의 인터뷰 내용은, 강남스타일을 작곡한 싸이는 애초에 강남스타일을 작곡할 때 ‘휘모리 장단’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은 아니다. 작곡해 놓고 보니까, ‘휘모리장단’이 된 것이다. 아마, 작곡자 본인은 아직도 강남스타일이 국악 장단 중 ‘휘모리 장단’인지 모를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박상진의 논문 "한류콘텐츠를 위한 정책방향 연구" 참조) 그 후에 싸이도 필자가 출연한 국악방송의 한류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강남스타일이 휘모리장단으로 작곡되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악인들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한국인(한민족)들에게는 고유의 전통 문화적 DNA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강남스타일의 경우도 전통을 바탕으로 한 곡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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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5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하루 속히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상진 교수가 지난 두 달여 동안 총 5회에 걸쳐 이야기 하고 있는 러시아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전략적 상대국으로서의 러시아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당사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편집자 주)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곧 지식기반사회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런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행복과 영광은 한류를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속의 1류 국가로 우뚝 솟을 것이다. 그 첫걸음은 바로 한-중-일의 연횡과 한-미-러의 합종 간의 견제와 균형을 가능하게 할 전략적 대결단이다. 북극항로와 4차 산업혁명을 관통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한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가 바로 그것이다 다행히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러시아는 내심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을 선호한다. 게다가 북극항로를 통과하기 위한 쇄빙선 등 특수선박 건조 기술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진 한국과의 협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1차 북극 야말 가스전 개발을 위해 러시아는 대우조선해양에 특수 LNG 쇄빙선 15척을 주문한 바 있다. 나아가 우리의 조선 기술을 전수 받고 공동생산 체제를 갖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회에 한국은 소형원자로 선박, 무인자율주행선박, 북극항로 모니터링용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이대식 글 참조) 4차 산업혁명의 초기에 새로운 물류가 한국에 열리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 강대국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 즉 ‘물류’와 ‘기술’을 함께 개발할 기회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두 번째 물류인 ‘데이터 유통’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마윈은 제2의 석유가 데이터라고 했다. 데이터 물류를 장악하기 위한 최고의 원천 기술은 결국 수학이다. 러시아는 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러시아의 인재들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창의적인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며 AI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 부문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을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단골 M&A 대상이 되고 있다. 마치 이스라엘 창업단지에 설립된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들이 실상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위한 에이전시 역할을 하듯이, 모스크바에도 러시아 인재들과 스타트업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들이 증가하고 있다. 삼성 등 한국의 대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 부문에서도 빠르게 성장한 한국 기업의 노하우를 전수받기를 원하고 있다. 물류와 기술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러시아의 다민족성과 개방성,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한국에 대한 지경학(地境學)적 친화성에 의해 더욱 촉진될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물류와 기술의 허브가 되기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과 인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한다. 즉 새로운 물류 장악력과 함께 기술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제3의 상호 협력적인 개방형 플랫폼이 한러 양국에 마련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양국의 기업과 정부도 이를 원하고, 이를 위한 공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에 양국이 만든 한러혁신센터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물류와 새로운 기술을 양국의 상호 협력적 개방형 플랫폼을 통해 확보한다면 상호 윈윈함과 동시에 한국은 유사 이래로 처음으로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여기에 러시아가 제공하는 막강한 에너지원은 거절할 수 없는 덤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급증할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대규모 수력발전(연간 생산량은 2017년 기준 187TWh, 설비용량 100MW이상, 발전소 102개소 보유, 세계5위)와 천연가스라는 청정 발전원을 가스관과 선박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곳도 지척에 있는 러시아이다. 또한 미중 경쟁이 한국에 양자 선택의 문제로 치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있는 중간국 간의 협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는 미국에도 중국에도 필요한 중간 강국이다. 트럼프 집권 전후에 키신저가 미국과 러시아 간의 관계 개선을 시도한 것은 바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러시아였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경제적으로, 미국에는 안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도 중간국의 위상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때 가장 적합한 파트너가 바로 러시아이다.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이 북극항로와 4차 산업혁명이 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한국이 100% 활용할 수 있는 관건임에 틀림없다. 한반도에 들이닥치고 있는 미중 갈등의 대격변에서 한국이 수동적인 희생양이 아니라 판도를 이끌고 가는 능동적 중개자, 나아가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는 패권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관계를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외교, 물류, 에너지, 기술, 그리고 인적 교류 등 다양한 차원에서 훌륭한 동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는 문화와 문명사적 테두리 안에서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를 들여다보며, 한류 문화가 미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한류와 4차 산업혁명’의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한류와 4차 산업혁명’의 내용은 김태유 교수님과 이대식님의 저서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두 분께 감사드린다. ‘한류와 4차 산업혁명(5)’를 집필하는 동안에 푸틴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전쟁은 무조건 반대한다. 전쟁이 멈추고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6회”부터는 싸이 이야기, 소녀시대 이야기, BTS의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한류와 4차 산업혁명(5)’의 내용은 『한국의 선택-김태유‧이대식 엮음,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발행』 중 김태유 ‧ 이대식의 글을 인용 및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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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3주년기념 박상진과 동지들 특별전"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과 통일은 문화통일이어야 한다”를 표방하는 독립투쟁사기념관 추진위원 김명성 회장 자료를 중심으로 한 3.1절 103년 기념 특별 자료전이 주목을 끈다. 고헌 박상진(朴尙鎭)의사 순국 103주년 기념 자료전시회이다. 전시자료는 혁신유림의 사상토대인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부터 위정척사파와 계몽운동가, 그리고 이들 투쟁노선과 사상을 융합한 혁신유림, 대한광복회, 의열단, 무정부주의자 등 독립전쟁의 선봉에 선 인물, 무오독립혁명선언과 3.1독립혁명선언 주도자,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 등 103점이다. 고헌(固軒) 박상진(朴尙鎭, 1884~1921)의사 순국101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여 특별전으로 ‘리파블릭 오브 코리아 REPUBLIC OF KOREA’를 주제로 <박상진과 동지들 - 민주공화국을 향하여>가 2022년 2월 27일부터 3월 27일까지 개최된다. 그동안 박상진(박尙鎭, 1844~1921)의사는 공간적으로는 주로 울산지역에 한정하여 알려져 왔다. 시간적으로도 일제강점기 중 무단통치(武斷統治)기에 해당하는 1910년대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총사령으로서 국내에서 독립전쟁 자금마련을 위해 무장투쟁을 감행한 사실을 중심으로 단편적으로 조명해 왔다. 하지만 박상진의사는 혁신유림으로서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서 공화주의사상을 국내외 비밀결사의 독립전쟁으로 실천해냄으로서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을 건설에 앞장선 인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박상진의사의 이런 진면목을 전체적으로, 유기적으로 통찰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박상진의사의 사상과 실천의 깊이와 넓이의 재평가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독립전쟁의 비밀결사 조직망 총책 박상진의사를 중심으로 독립전쟁망은 거미줄과 같이 국내 해외로, 앞뒤 종횡 대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일강제병합(1910)이전 해외의병전쟁의 최정점인 하얼빈의거(1909)를 일으킨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의 독립전쟁을 1915년을 전후하여 국내외서 전개시킨 대한광복회 총사령이다. 대한광복회 부사령인 이진룡의 권총으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인물이 안중근이고 보면 당시 국외 독립전쟁 중심인 연해주의 십삼도의군 도총재인 유인석 안중근과 박상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역시 대한광복회 만주사령인 김좌진은 북만주 서일(중광단)과 국내의 조선국권회복단(대종교)연결되어 있고, 신흥무관학교 교장 이세영 또한 대한광복회의 경상 전라 충청3도 사령관 출신이었다. 또 만주 연해주 등 해외독립전쟁을 주도한 이상룡 김좌진 홍범도와 같은 인물역시 독립전쟁기지 구축과 전쟁자금 확보 등에 있어 박상진의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대한광복회 조직 중 단동의 ‘안동여관’ 총책 손회당은 무오독립선언 39인중 한사람인 손일민이다. 당연히 손일민은 무오독립선언 주역 39인 중 한사람으로 이상룡 김동삼 이세영 허혁 등과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1919)의 의열단장 김원봉이나 신채호와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의 독립전쟁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국내 국외 독립전쟁을 비밀결사로 전방위로 감행한 인물이 박상진 의사였다. 대한광복회 황해도 총책 이관구와 조소앙 신규식 등 ‘동제사’와 연결되어있고, 이들은 또 신채호(의열단)와 김창숙 이회영(아나키즘)과 연결된 고리이다. 의사는 공화주의(共和主義)사상을 독립전쟁(獨立戰爭)으로 실천해낸 문무(文武)겸비의 대장군(大將軍)이자 경세가(經世家)이다. 사상적으로도 의병전쟁을 주도한 위정척사계열의 군주제 복귀를 주창하는 복벽(復辟)주의자들까지 대한광복회로 통합해낸, 민주공화국 건설에 궁극적인 뜻을 둔 공화주의자다. 다시 말하면 500년 역사의 조선이 대한제국 → 한일강제병합 → 대한민국임시정부 → 대한민국으로 진화 발전해 오는데 있어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태동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지행합일(知行合一)로 이루어 낸 인물이 박상진의사이다. 주요 전시작품 1911년 10월 11일에 시생(侍生) 기강인(朞降人) 박상진(朴尙鎭, 1884~1921)이 보낸 서간이다. 안부를 교환하고, 오는 15일에 부친의 환갑(還甲)을 맞아 주연(酒筵)을 베풀려고 하니 왕림(枉臨)하셔서 자리를 빛내 달라고 부탁하는 사연을 담았다. 檄告各道列邑 각도 여러 고을에 격문으로 고한다. 아아, 슬프구나. 어찌 차마 말할 수 있으리오. 역적들이 나라를 멋대로 하여 몰래 내선(內禪)의 계책을 결정하고 흉악한 칼끝으로 협박하여 군부(君父)를 북원(北轅)의 치욕(恥辱)에 이르게 하였도다. 억지로 약조(約條)하여 우리나라를 이양(移讓)하고 사문(赦文)을 반포하여 우리에게 재갈을 물렸구나. 여우와 살쾡이가 끊임없이 백만 백성들을 침범하여 목숨이 물 새는 배와 같이 긴박하고, 깊은 골짜기 같은 욕심을 채우지 못하여 온나라 산천의 형세가 가을 낙엽처럼 가볍구나. 칠묘(七廟)가 크게 놀라고 삼내(三內)가 처량하구나. 산림과 천택(川澤)이 어두운 골짜기가 되었고 재부(財賦)와 민인(民人)을 자기 물건처럼 보는구나. 형체를 훼손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더 이상의 여지가 없고, 비(妃)를 죽이고 임금을 욕되게 한 을병(乙丙)의 원수와 아직도 같은 하늘을 지고 있구나. 만약 저 이민(移民)들이 바다를 건너는 흉악한 계책대로라면 이것은 바로 점한(粘罕)과 철목(鐵木)도 없던 바로다. 하늘이 이미 싫증을 내니 사람들을 죽이는구나. 한 번 죽기를 결심하고 설전을 벌이니 누가 서울에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밤에 우레가 치고 찢어지는 소리는 기특하게도 편오(編伍)가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도다. 저들이 참으로 자신을 돌이켜 스스로 반성하여 깨닫고 처지를 바꾸어 그렇게 하기를 바라노라. 도리어 갈수록 포악해져 하늘을 쏘았으니 끝내는 반드시 패해서 땅에 거꾸러질 것을 알겠도다. (하략) 명성왕후 〈효제충신(孝悌忠信)〉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나를 낳고 가르쳐주시니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길이 효성을 드려야 하네 형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윤리의 차례가 정해졌으니 공경하고 겸양해야만 공손하다고 일컬을 수 있네 거룩하신 임금은 모두가 그 공적을 우러르나니 도리와 예의로써 나의 정성을 다 바침을 충이라 일컫네 친구를 사귀는 방도는 단정한 사람을 신중히 골라야 하니 나를 돕는 사람이므로 신의가 없고서 될 수 있으랴 김근배 〈시고(時稿)〉 가을이 높아져 이슬에 젖으니 부용을 심고 시구를 얻어 가벼운 걸음으로 죽창에 이르네 오동나무가 천년을 묵어 굽은 것 펴지고 섬돌에는 사계절 시들지 않는 꽃이 있네 조심스럽기는 마치 깊은 못과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고 시원스럽기는 마치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같네 꽃 계단에서 유장경의 문집을 찬찬히 읊조리고 소나무 서재에서 한가로이 난정서를 임모하네 보재 이상설 〈육법전서초고 (六法全書草藁)〉 이상설의 법학 관련 일본어 번역서인 법학만초의 초고에 대한 소개서이다. 법학만초를 번역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함께 서술했다. <단장지가斷膓之歌> <독립전가獨立戰歌> 해제 김원봉의 <단장지가斷膓之歌> <독립전가獨立戰歌>는 두수다. <단장지가斷膓之歌>는 7언의 한시(漢詩)와 한글 시로 나란히 김원봉 스스로가 친필로 작시(作詩) 작서(作書)하고 있고, <독립전가獨立戰歌>는 한글시로 역시 김원봉 친필로 작시 작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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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도 국립극장장 인선 파행, “너무 의아스럽다”국립극장장 자리가 두 번의 공모에서 합격자를 내지 못해 다시 3차 공모를 하게 되었다. 1차 공모는 지난해 6월 공고, 11월에 서류심사와 면접심사 합격자 3인이 통과되어 역량평가시험에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S매체가 3인에 대해 "적임자 없다”고 보도한 후 인사혁신처가 "적격자 없음”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초 재공모에 들어갔다. 그런데 같은 과정으로 3인을 통과시킨 상태에서 1월 27일 C일보가 "A급이 없다”라는 부정적인 보도를 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2월 25일 문광부 내부 심사위원회는 3월 중 재재공모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결과적으로 본보가 2월 3일자 "언론이 자격 없다고 보도하면, 또 재공모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 바 그대로 되었다. 이에 대해 ‘1차 서류심사, 2차 대면면접 심사를 통과하고, 3차 역량평가시험을 준비하던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교수와 27일 오전 이메일 인터뷰를 보내고 오늘 28일 답변을 받았다. 이를 통해 국립극장장 인선 파행의 대강을 파악해 보기로 한다. 문광부 "3명 모두 부적격자로 판명”, 전화로 통보 국악신문: 이번 2차 공모, 최종 절차를 남긴 상태에서 적격자가 없어 재재공모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언제, 어떤 경로로 듣게 되었나 박상진(전 동국대 교수): 2월 25일 오후 4시 30분 경 문화체육관광부 OO과 직원 OO라고 하면서 휴대폰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Q. 재재공모 이유가 무엇이라고 들었나. 구체적으로 밝혀준다면? A.직원은 재재공모에 관한 특별한 이유(3명 모두 부적격자로 판명이 나서, 등) 나 설명 없이 3월 중에 재재공모를 하기로 했다고만 알려줬다. 그래서 내가 세 번 심사 중 두 번을 마쳤고 아직 역량평가 한 번이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심사위원회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했다. Q.그동안 1차와 같이 2차 공모 절차 중에 C일보 보도도 있었고, 종로 국악님들 사이에 불쾌한 소문도 돌았다. 이번 상황에 대해 문광부나 인사혁신처에 대한 응시자로서의 입장은 무엇인가? A. 인사혁신처에서 1차 시험인 서류심사에서 5명이 합격되고, 2차 면접심사에서 3명이 합격됐다. 그 심사과정은 공정하게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2차 면접심사 과정에서의 심사 내용은 심층면접으로 국립극장장의 역할에 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인재를 선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그 역할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과정과 내용이 무시된 결론이 나온 것 같아서 너무 의아스럽다. Q. 전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소동 이후, 개방형 공모제도가 보편화 한 듯한데, 응모 경험자로서 이번의 인사 방식에 대해서 장단점을 알게 되었으리라고 본다.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정부 기관장의 개방형 공모제도는 ‘과거 제도’와 같은 것이다. 특정지역, 특정인도 좋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묵묵히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인재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블라인드 면접을 하는 것이지 않나, 오랜 시간 동안 장단점을 보완해서 만들어진 현 제도의 취지에 맞게 오히려 정부에서 더욱 공정하고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잡음과 소문만 무성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Q.기관의 특수성과 위상을 고려한다면, 기본적으로 국립극장장이란 자리를 어떻게 보는가? A. 국립극장은 국내 유일의 제작 극장이다. 국립극장장의 당면 과제는 전통예술에 기반을 둔 공연작품을 개발하는 것이고, 타 장르와의 융복합을 통한 세계무대 진출이다. 극장장에 대해서는 전통예술을 전공하고, 그에 기반한 창작품을 제작한 경력의 소유자, 그리고 서양예술 등 기타 장르에 대한 이해도와 융복합을 통한 창작경험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한류의 원형자산은 전통예술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립극장에는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전통예술 3단체가 있는데, 적어도 이 세 단체의 성격이라도 알아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이 세 단체가 융복합하여 만들 수 있는 창극, 무용극, 음악극 등 총체극을 제작한 경험은 국립극장장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 소양이라고 본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예술감독과 단원들이 ‘창조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수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극장장의 다양한 리더십 즉, 행정적 역량도 갖춰져야 한다. 그래서 역량평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응모한 40여명, ‘부적격 블랙리스트’? Q. 제도상 다음 3차 공모에 응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다시 응할 의향이 있는가?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이미. 1차 공모, 2차 공모를 통해서 ‘적격자 없음’으로 탈락된 예술인들이 40여 명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에서 본의 아니게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기분이다. ‘적격자’로 모든 분들이 보완해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본인은 더 생각해 보겠다. Q.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의견이 있다면? A. 우리나라 유일의 제작 극장인 국립극장장의 자리는 최고의 전문성을 요구받는 자리이다. 세계 무대 진출로 한류문화 확산을 도모함으로써 국립극장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고, 세계 속에 국립극장의 위상을 제고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훌륭한 극장장이 선발되기를 기원한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박상진 교수께 감사를 표한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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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장 2차 공모도 무산국립극장장 2차 공모도 ‘적격자 없음’이란 이유로, 내년 3월 재재공모를 실시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응모자는 인사혁신처의 3차 역량평가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중에 25일 문광부로부터 전화로 통보를 받았다고 밝혀왔다. 이에 따라 국립극장장 인선은 3월 초 대선 이후 재재공모 공고를 통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재공모에는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시험을 통과한 응모자로는 박상진(철학박사/전 동국대교수) 외 2인이었다. 한편 2차에 걸친 공모 관련 경과에 대해서는 본보 02월 03일자 ‘국립극장장, 공모제/추천제 병행 국민 오디션까지?‘를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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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4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과거 한반도가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각축장이 되고 일제강점기,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북핵 위기까지도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1차 대분기(大分岐)라고 하는 산업혁명에 실패하여 부국도 강병도 하지 못한 결과가 초래됐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2차 대분기라고 하는 4차 산업혁명에 또다시 실패하게 된다면 우리 후손들이 또 어떤 치욕과 불행을 겪게 될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와 북핵위기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만 할 절제절명의 위기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대한민국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대한민국은 동북아에서 확실한 전략적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그 선택지란 "한-중-일의 연횡과 한-미-러의 합종(合從)의 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타깝게 중단된 한-중-일의 연횡을 되살려서 동북아가 인류문명의 중심에 우뚝 서는 방법은 한-미-러의 합종을 통하여 연횡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이들 4강의 관계는 한마디로 견제와 균형이다. 미중관계는 대표적인 견제와 균형관계이다. 미일관계는 겉보기에는 일본이 미국 쪽으로 쏠린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특유의 겉마음(다테마에: 建前)이다. 일본의 속마음(혼네: 本音)에는 원자폭탄과 1985년 9월 미국 플라자호텔에서 엔화 강세를 압박한 ‘플라자 합의’의 한(恨)이 서려 있다. 물론 미국도 이러한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러중 관계는 러시아의 자원과 군사력이 중국의 경제력과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대항해 당분간 힘을 합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14억 인구의 중국과 1억 4천만 인구의 러시아가 과거 중국의 영토가 포함된 광대한 극동러시아를 두고 다투게 될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관계도 복잡하다. 현재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쿠릴 열도 4개 섬에 대한 영토분쟁이 언제 사할린까지 번져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김태유 교수는 '한국의 선택'에서 "이상 4강 간의 피할 수 없는 팽팽한 구조적 긴장관계는, 오히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연횡과 합종의 균형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이것은 그동안 인류문명의 발전 원리와 패권의 비밀을 경제이론과 역사적 실증 작업을 통하여 도출된 결론이다”(김태유 글 발췌)라고 하였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실크로드로부터 지중해, 발트해,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 등 새로운 물류를 개척하고 장악한 국가가 세계 문명과 패권을 좌지우지했다. 중국이 명나라의 장수이며 탐험가인 정화((鄭和, 1371~1434)가 개발한 물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그 이후의 비극적인 운명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으로 기운 패권의 축이 반대로 기울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우리 앞에 새로운 물류가 열리고 있다. 바로 가시적으로 ‘북극항로’이며, 비가시적이지만 더 큰 의미가 있는 ‘데이터 유통’이다.(이대식 글 참조) 주목할 점은 이 두 가지 새로운 물류 부문에서 한국이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력한 조력자가 바로 러시아라는 사실이다. 우선 러시아는 북극해 연안의 60%를 차지한다. 북극항로를 통해 부산과 로테르담을 운행할 경우, 기존 수에즈운하를 통한 운항보다 거리는 32%(2만 2,000km⟶1만 5,000km), 운항 일수는 10일(40일⟶30일)을 줄일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극 및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천연 지하자원 ‧ 광물자원 등을 직송할 수 있는 루트가 새로 생긴다. 그런데 북극항로는 단순한 경제성 이상의 가치 외에 북극항로에 의해서 인류사상 처음으로 북방과 남방이 연결되는 새로운 본래적 의미의 글로벌 물류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잇는 매개가 바로 북극항로이다. 일본은 벌써 우리보다 이 점을 먼저 간파하여 북극-태평양-인도양을 잇는 가스 물류 벨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19년 러시아의 북극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인 북극(Arctic) LNG 2 사업에 10% 지분 투자를 결정했고, 북극항로가 본격화될 경우 환적항이 될 극동 아시아의 캄차카항과 유럽 북단의 무르만스크항에 투자를 시작했다. 또한 일본의 사이부가스와 규슈전력(Kyushu Electric Power Co.)은 2018년부터 노바텍사와 캄차카 환적항과 일본의 규슈 지역의 히비키 터미널(Hibiki Terminal)을 연계하는 논의를 해왔으며, 히비키 터미널에 LNG 벙커링 사업을 시범적으로 하는 방안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동시에 미국, 호주와 연대하여 인도 ‧ 태평양 에너지 물류 벨트를 구축하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11월에는 미국과 일본, 호주의 주요 정부 당국자들과 금융기관 대표들이 만나 동남아 국가들이 저장탱크, 항만 등 LNG 수입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자고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이 사업에 100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 도쿄 등에 LNG 거래소를 만들어 싱가포르를 대체하는 LNG 거래시장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일본은 북극-캄차카-히비키-필리핀-아세안-인도로 이어지는 거대한 글로벌 LNG 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새로운 물류를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에너지 부문에서부터 이미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또한 북극항로에 엄청난 투자를 진행하며 마치 북극항로를 자국의 내해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이 서두르지 않으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온 글로벌 물류를 선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한류와 4차 산업혁명(4)’의 내용은 '한국의 선택'(김태유‧이대식 엮음,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발행)중 김태유 ‧ 이대식의 글을 인용 및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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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3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선승독식(先勝獨食)의 시대에 대비하고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성공시키기 위한 준비로서 ‘새로운 길’을 선점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선도해야 할 4차 산업혁명은 곧 북극항로의 선점이고 북극항로의 선점은 그 주변국(한미동맹+러시아)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서울대 명예교수 김태유 글 참조) 그러나, 우리는 제2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초래된 일제강점기와 한반도 분단 등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재 새로운 산업혁명, 즉 제4차 산업혁명에 또다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북핵 위기, 사드(THAAD) 사태와 한중관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한일관계 악화 등 안보와 경제는 아직도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걱정꺼리는 이러한 갈등과 분쟁 속에 우리가 국력을 소진한 나머지 제4차 산업혁명 대열에서 낙오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북핵문제는 안보문제이고 제4차 산업혁명은 경제 문제라는 측면에서 이 둘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그런데 북핵문제의 대응에서 박근혜 정부는 강하게 부딪쳐서 성공하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는 부드럽게 감싸 안아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 중국, 일본의 북핵 관련 이해관계를 조정할 ‘선택지(選擇肢)’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린 북한조차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고 있다. 또한,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최근 2000년대 이후 10~20년 동안에 한국과 일본의 교역량은 3.7배 증가했고, 한국과 중국과의 교역량은 12배 가까이 증가했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 3국 간의 ‘경제적 연횡(連橫)’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동북아시아 3국 간 ‘동반성장’의 모범사례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드사태와 대한수출규제 등 일련의 갈등 상황은 한-중-일 동반성장의 길이 앞으로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경제적 갈등 상황 속에서 우리는 소외된 채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있다. 그 이유 또한 한반도 주변 3강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조정할 마땅한 선택지가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4차 산업혁명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핵위기 해결과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공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풀어낼 수 있는 비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먼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의 3강의 평면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문명사적 시각에서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입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한반도 주변 정세의 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략적(戰略的)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잠깐, 역사를 되돌아보자, 과거 동북아시아는 인류문명의 중심지였다. 인류문명의 4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 동북아에서 나왔고 한때 세계 총생산의 절반이 동북아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유럽 대륙의 두 배가 넘는 넓은 동북아 대륙에는 원래 수십 개의 국가와 민족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천하통일관(天下統一觀)’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동북아 대륙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오직 천하통일을 향해 끝없는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동북아국가들이 통일과 분열에 의한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복하는 동안 서유럽인들은 오대양을 접수하고 육대주의 정벌에 나서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조그마한 이베리아 반도에 이웃하는 나라이다. 그들은 반도 통일을 향해 안에서 싸우기보다는 1494년 토르데시아스 협정(Tordesillas)으로 새로운 식민지를 나누어 갖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밖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뒤이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도 앞다투어 넓은 세계로 진출해 갔다. 물론, 이들 국가 간에서도 전쟁이 끊이질 않았지만 유럽의 통일보다는 주로 해외 식민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었다. 유럽인은, 동북아의 역사적 갈등과 같이 서로 3국 간의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닌, 서로의 것을 뺏지 않고도 서로 협력하는 '포지티브 섬게임'(positive-sum game), 즉 동반성장과 동반번영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물론, 유럽의 식민정책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2000년대 초반의 한-중-일의 연횡에 의한 동반성장, 동반번영의 모습으로 보여졌던 그 때는 유럽의 '포지티브 섬게임'처럼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대한수출규제, 사드사태와 한한령의 상황에 부닥치자 3국의 지도자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국가 간 강경대치 국면을 조성하고 또 민족 감정을 자극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이렇게 악화된 한중, 한일 간의 불편한 정치적 관계는 일회성 사건으로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당사국 간의 이해와 절충으로 얼마든지 봉합해 나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더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동북아 3국의 현실이다. 동북아인의 천하가 동북아시아 대륙에 한정된 소천하(小天下)였다면, 유럽인이 꿈꾼 천하는 대천하(大天下)였던 것이다. 지금도 동북아의 미래를 결정할 힘이 있는 중국과 일본은 아직도 편협한 소천하의 통일관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선택, 그리고 언론 및 국민 대중의 여론 추이로 미루어볼 때, 동북아인의 문명사적 사고의 지평이 아직 유럽인의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안타깝지만, 미국의 세기(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패권)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류와 제4차 산업혁명’의 내용은 '한국의 선택-김태유‧이대식 엮음',(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발행)' 중 김태유의 글을 인용 및 참조하였습니다. ※ 위 내용은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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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박상진 교수 세계인명사전 2곳 동시 등재동국대학 경주캠퍼스(총장 김영종)는 8일 한국음악과 박상진 교수가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2곳에 등재됐다고 밝혔다.박상진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국제인명센터(ibc : 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의 21세기 탁월한 지식인 2000명(2000 outstanding intellectuals of the 21st century)’ 2011년판과 ‘abi(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의 21세기 탁월한 지성(great minds of the 21st century)’ 2011년판에 선정됐다.서울음대 국악과를 졸업한 박 교수는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전북도립국악단 지휘자, 대구시립국악단 지휘자,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지휘자를 거쳤다.박 교수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8년 9월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에서 민족악단 중 세계 최초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해외 민속악단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등재된 인명사전은 영국의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의 '21세기 탁월한 지식인 2000명'과 미국의 인명정보기관(ABI) '21세기 탁월한 지성'의 2011년 판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전공하는 국악도로서 그동안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 같다”며 "전통음악을 공부하는 분들께 격려가 되길 바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IBC와 ABI 인명사전은 '마르퀴스 후즈 후'와 함께 세계 3대 인명사전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동국대 예술문화진흥연구소 소장으로서 예술문화의 진흥 작업을 통한 한류의 다양한 바탕을 마련하는데 학술적 영향을 모으고 있으며, 중국의 조선족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등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학술대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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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2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중 ‘한류와 4차 산업혁명(2)’는 지난 회에 이어 문화와 문명사적 테두리 안에서 정치, 경제 등을 들여다보며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BBC는 "1990년대 한국의 자유화 분위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큰 투자를 만들어냈고, 아시아권에선 미국보다 한국이 만든 프로그램에 더 공감했으며, 중국 프로그램보다 정서적으로도 구미에 맞았다”라고 분석했다. 한국 드라마 팬인 영국 작가 테일러–디오르 럼블은 "세련되고 화려한 연출, 환상적인 내용으로 현실도피에 알맞았다.”라고 하면서 "특히 부채 ‧ 실업 등 경제적인 문제들은 팬데믹을 극복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세계인들의 인식 변화는 한국의 발전된 정치와 경제적 상황의 결과에 의한 것이라고 볼 때, 현재의 한류가 지속적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정치와 경제적 발전의 모색은 더 적극적으로 필요한 사항으로 여겨진다. 그 발전적 모색은 문명사적으로 ‘산업혁명’을 가져다준 ‘새로운 길’의 모색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어오다가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에 의해 학술용어로 정착되었다. 토인비는 기술적 혁신으로 인해 나타난 사회 ‧ 경제적인 큰 변화를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했다. 산업혁명의 주요 내용으로는 급격한 인구의 증가, 농촌 인구의 상대적인 감소, 기계의 발명과 공장에 의한 수공업의 대체, 부의 축적과 자본주의 출현, 공장 시스템 하에서의 노동자의 지위 약화 등을 언급했다.(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김태유 글 참조) 산업혁명을 1차와 2차로 구분한 것은 생물학자 패트릭 게데스(Patrick Gedds), 경제학자 데이비드 란데스(David Landes) 등에 의해서이다. 일반적으로 1차 산업혁명은 1780년 경 영국에서 일어난 석탄, 야금, 직물 혁명, 그리고 2차 산업혁명은 1870년 경 독일과 미국에서 시작된 전기, 화학, 강철 혁명으로 정의한다. 또한, 란데스는 2차 산업혁명을 화학과 전기과학의 극적인 발전 및 내연기관과 같은 에너지원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의 등장으로 정의한다. 3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논의는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의 저서 『탈 산업사회의 도래』에서 시작되었다. 벨은 사회발전 단계를 산업화 이전 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산업화 이후의 사회로 구분하고, 산업화 이후 세계를 정보와 지식이 주요 자산인 사회라고 규정한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보화 사회이다. 4차 산업혁명은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다보스포럼 회장이 주창한 개념으로서 인공지능(AI), 로봇기술, 사물인터넷(IoT), 바이오 등의 초지능(super intelligence) 기술이 인간과 사물 간에 초연결(hyper connectivity) 소통체계를 구축하여 생산과정이 최적화되는 산업혁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들이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공간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이것이 기존의 산업혁명과 구별되는 본질적인 차이점이라고 강조한다. 토마스 무어(Thmos Moor)는 하루 6시간 노동으로 삶을 풍족하게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유토피아(Utopia)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 산업사회는 이미 유토피아에 매우 근접한 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 AI와 로봇이 본격적으로 생산현장에 투입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하루 3시간 남짓 또는 주 3일 노동으로 모든 근로자가 풍족하게 삶을 영위한다고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현대인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토피아 세상이 도래하여 많은 여가 시간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은 결국, 여행, 체육, 취미, 오락 등의 활동으로 여가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런 활동의 상당 부분으로 인해 화물의 적채가 이루어지고 여객의 폭발적 증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최근 베니스, 암스테르담 등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관광객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관광객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주민들의 삶에 지장을 초래하는 바람에 취해지는 조치라고 한다. 이러한 화물과 여객의 폭발적 증가 추세는 기존의 길, 즉 동북아에서 믈라카 해협과 수에즈 운하, 지브랄타 해협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기존 항로의 수용 능력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그런 이유로 말레이반도를 관통하는 새 운하가 계획되고 있고, 수에즈 운하가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병목 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또 니카라과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운하도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항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화물과 여객을 더는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문명에 의해서, 전 세계의 모든 생산자가 전 세계의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확장되고 있고, 고도화된 새로운 시대의 삶에 필요한 모든 맞춤화된 상품을 서로 사고파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늘어나는 여가시간에 지구상의 모든 곳을 여행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고, 때문에 기존의 길은 모두 차고 넘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 ‘새로운 길’은 때마침, 온난화 현상으로 녹아가고 있는 북극에 있는 길로서 ‘북극항로’인 것이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세상이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과거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새로운 길이 기존의 길을 대체하는 길이었다면, 북극항로는 기존의 길이 차고 넘쳐서 새로 열릴 수밖에 없는 길이다. 과거의 새로운 길은 인류 문명이 기존의 길을 버리고 선택한 새로운 길이었다면, 지금 열리기 시작하는 북극항로는 기존의 길에 더하여 인류 문명이 선택의 여지도 없이 떠밀려서 갈 수 밖에 없는 단 하나의 새 길인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가야만 할 길이라면 우리가 먼저 가서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는 2차 산업혁명시대처럼 승자독식(勝者獨食)이 아닌 선승독식(先勝獨食)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먼저 가면 승리자이고 늦게 가면 패배자이다. 이것이야말로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되는 지식 기반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지식기반 사회라고 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성공시키기 위한 준비로서 ‘새로운 길’을 선점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선도해야 할 4차 산업혁명은 곧 북극항로의 선점이고 북극항로의 선점은 그 주변국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류와 4차 산업혁명’의 내용은 『한국의 선택-김태유‧이대식 엮음,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발행』 중 김태유의 글을 인용 및 참조하였습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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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2)김종욱 지난 19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연극동맹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상임위원을 선출한 다음 8. 15 행사건을 토의 가결하였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연극전람회 개최 1. 무대용어 제정 1. ‘주간동맹뉴스’와 희곡집 출판 1. 회비 징수(10원) 1. 연극인의 계몽강좌(과목, 조선역사, 한글) 준비위원: 채정근, 허집 1. 상임위원= 박창환, 박영호, 박춘명, 박고송, 한일송, 황철, 박민천, 이재현, 박학, 안영일, 김태진, 박상진, 장진, 이상백李象伯, 김득창金得昌, 김일영, 김이식金二植, 이서향, 윤세중, 심영, 서일성, 박로아, 채정근, 강호 1.부위원장= 박제행, 변기종, 조영출, 함세덕 1. 서기장= 이강복李康福 (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무대예연 시연회 8월 하순 공개 예정] : 무대예술연구회에서는 해방 1주년을 기념하여 8월 하순 경 제1회 시연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다음과 같은 ‘레파토리’로 방금 맹 연습중이라 한다. 1. 애란 ‘예이츠’ 작, 박재익朴載益 번안 1막. ‘혁명에의 각성(원명 ’카스팅니 후아링‘) 연출 유영탁柳英卓 2. 조선고전 전설 극화 송대령宋太嶺 각색 ‘원숭이와 궤’ 1막 3장 연출 김병수金炳秀 3. 미국 ‘마이클 골드’ 작 김종국金鍾國 번안, ‘돈’ 1막 연출 최규석(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혁명극장 성하 공연: 혁명극장에서는 차기 공연으로 현진건 원작 함세덕 각색, 박춘명 연출 김일영 장치 ‘무영탑’(5막)을 8월 6일부터 상연키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 극장 = 서울 시내극장 동원표(21일 현재) 극장 제명 입장인원 국제 자유극장 ‘율곡과 그 어머님’(재6일) 2017 국도 ‘나가자 용기병’ CMC악단(제2일) 2674 수도 영화 ‘거성 지그필드’ (제2일) 5419 중앙 ‘세 동무’ 혁명극장 (제2일) 1395 서울 ‘오페라 햇’ (제4일) 1957 장안 ‘그대와 하룻밤을’ (제2일) 1967 제일 ‘타잔의 복수’ (제2일) 2137 시내 극장 동원표(21일) 극장 제명 입장인원 국제 영화 ‘어느 날 밤의 살인사건’(제7일) 2227 국도 영화 ‘라인강의 감시’(제2일) 5300 수도 영화 ‘회의는 춤춘다’(제7일) 1808 중앙 박시춘樂團 (제6일) 919 서울 영화 ‘골든 보이’ (제1일) 2091 단성 영화 ‘비도比島 결전기’ (제3일) 3869 제일 극단 황금좌 (제5일) 3880 명동 영화 ‘로이드의 난투사’ (제1일) 833 장안 영화 ‘황금마도’ (제5일) 471(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입장시키고 주사 국도 신 전술: 현재 시내 각 극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호역 주사증 소지자에 한한 입장이 기대할만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데 비추어 국도에서는 지난 20일부터 극장 내에 호역虎疫주사시행소를 설치하고 아직 주사를 시행치 않은 관객들에게는 이것을 시행하여오던 바 매우 양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한다.(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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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1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는 문화와 문명사적 테두리 안에서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를 들여다보며, 한류 문화가 미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염원하는데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한류’는 K-POP의 BTS는 물론, 오징어 게임 ‧ 기생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도 놀랄 정도로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최근 몇 년간 서구 전역에 만들어진 ‘한국 쓰나미’의 가장 최근 물결”이라고 보도했다. BBC는 한국 등 아시아의 정치 경제적 흐름에 따른 사회 분위기의 변화라고 짚었다. BBC는 "1990년대 한국의 자유화 분위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큰 투자를 만들어냈고, 일본이 경기 침체로 고전하는 동안 중국이 부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 문화도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아시아권에선 미국보다 한국이 만든 프로그램이 더 공감을 이끌어냈고, 중국 프로그램보다 정서적으로도 구미에 맞았다”라고 분석했다. 한국 드라마 팬인 영국 작가 테일러–디오르 럼블은 "세련되고 화려한 연출, 환상적인 내용으로 현실도피에 알맞았다.”라고 하면서 "특히 부채 ‧ 실업 등 경제적인 문제들은 팬데믹을 극복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라고 봤다.(국민일보 기사 참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보도하기를, 전 세계 5억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외국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듀오 링고’에서 ‘오징어 게임’ 방영 직후 한국어 학습자가 영국에서 2주 만에 76%, 미국에서는 40%나 늘었다고 했다. 현재 전 세계 듀오 링고 한국어 학습자는 8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택하는 외국의 대학들도 늘어나고 있다. 듀오링고 측은 이렇게 치솟는 한국어 학습 수요의 동력을 ‘한류’의 영향이라고 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며 제기할 수 없는 폐허 속에서 세계 10위 경제권으로 우뚝 선 나라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것을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작금의 한류도 ‘한강의 기적’의 토대 위해 형성된 한국인의 창의적 상상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내외의 정치 상황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과연 한류는 꺾임 없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산업화는 늦었어도 정보화는 앞 당기자라는 국정철학은 우리나라를 현재의 정보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이를 성공시킴으로써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한류를 지속시켜야 할 텐데 우리는 그것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여러 정치 상황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문명사를 되돌아보면, 새로운 길이 열릴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김태유 글 참조) 인류 문명사의 ‘새로운 길’인 변곡점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겠다. 실크로드(Silk Road)가 처음 열린 것은 기원전 100년을 전후한 때이다. 동방의 비단, 도자기 같은 상품과 화약, 종이 등의 제조기술이 서역으로 갔고, 서역의 향신료인 후추와 호두, 깨 등과 유리제품 및 제조기술이 동방으로 들어왔다. 이때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이슬람, 훈, 몽골, 중국 등의 고대문명이 번영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북아시아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인류 문명의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신료길(Spice Route)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 8세기 경이다. 인도네시아의 말루크제도에서 생산된 후추, 정향, 육두구, 계피, 침향 등의 향신료가 중동지역을 거쳐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지중해로 넘겨졌다.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 등의 기독교와 무슬림 간의 천년을 이어온 숙적 관계는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기 위한 뺏고 빼앗기는 싸움이었다. 이때 전성기를 맞은 이슬람 문명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페르시아 인도 문화를 종합 발전시켜 르네상스 문화의 기반을 제공한다. 1488년 이후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선발 주자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제치고 새로운 항로인 희망봉을 통하여 향신료 무역을 독점함으로써 상업혁명(Commercial Revolution)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기존의 향신료 길에 의존하던 중동 무슬림과 지중해 기독교 문명이 동반 쇠퇴하고 본격적으로 서유럽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784년 네덜란드를 제압한 영국은 5대양 6대주에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다. 향신료와 차 무역에 이어 영국은 면직물 생산을 시작함으로써 제조업에 기반한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일으킨다. 8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기존의 농업문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시대의 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상업 제국으로 시작된 영국의 세기(Pax Britannica-영국의 지배에 의한 패권)는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사적 대변혁을 통하여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산업문명사회를 열어간다. 가난과 질병과 신분의 족쇄로 고통받던 농업사회의 대중에게 풍요와 건강과 자유민주 질서를 가능케 한 산업혁명은 한마디로 인류 문명 사상 가장 큰 축복의 서막이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더 빨리 더 크게 발전하여 현재는 미국의 세기(Pax Americana-미국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패권) 로 절정에 이른 현대산업 문명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야말로 인류문명은 인간의 경제활동에 의해 창출된 가치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업혁명으로 범선을 타고 5대양을 종횡으로 누비기 시작한 서유럽인들은 지구상의 모든 땅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당장 주인 없는 빈 땅은 필요하든 말든 사막과 동토를 가리지 않고 바다 멀리 외로운 돌섬에서 대륙붕에 이르기까지 모두 깃발을 꽂아 점령해 버렸다. 3차 산업혁명(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을 처음 언급한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의 출현과 마이크로그리드 등이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서 출현한 새로운 경제로의 발전과정이라고 3차 산업혁명을 언급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보화 사회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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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0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얼마 전 자동차 전용 도로를 운전하며 가는데 "길어깨 없음”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길어깨’?, 약 20여 년 전에 노견(路肩)을 우리말로 바로 쓴다고 ‘길어깨’로 잠깐 사용하다가 ‘갓길’로 개정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느닷없이 ‘길어깨’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이미 도로교통법이 1991년에 개정돼서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도로 공사에서 설치한 표지판일 텐데 아직도 20여 년 전 용어를 사용하다니,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것을 감각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길어깨(노견)라는 말은 영어의 ‘Road Shoulder’를 일본에서 영문자 그대로 ‘노견’으로 직역한 일본말을 다시 우리말로 그대로 바꾼 것이다. 만약 한자 단어 ‘노견’을 그대로 한글로 표기하여 계속 사용했다면 아마도 ‘길거리를 방황하는 개’의 뜻으로 읽혔을 것이다. 그래서 노견을 노변(路邊)의 개념으로써 갓길이라고 개정한 것이다. 갓길은 큰 도로 옆의 가장자리 길을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 토착어이다.(이어령 글 참조) 한자나 영어 같은 외래어들은 구두 신고 발을 긁는 것과 같다. 상처 위에 생긴 딱정이가 떨어지면 여린 새살이 난다. 한자와 외래어들은 한국인의 마음에 난 상처를 덮은 딱지 같은 것이다. 그 딱지가 떨어지면 새로 나온 새살의 감촉과 신경줄 같은 토착어가 살아난다. 이렇게 같은 뜻의 센서티브한 토속 문화가 있다. 좋은 말을 자꾸 쓰면 굳은살이 박힌다. 일상어는 발뒤꿈치처럼 굳은살이 박힌 언어이다. 창조력의 씨앗은 당연히 지극히 이 토착어 또는 토속문화 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것을 우리는 풍토(風土)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토(土) 즉 ‘흙’은 고정불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풍)’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는 변화의 상징이다. 일본인이 아무리 약탈을 해가도 흙은 약탈할 수 없었다. 땅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혼이 묻혀 있다. 그러나 바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동쪽에서도 불고 서쪽에서도 불어온다. 서양에서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불어 들어온다. 결국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운명이 있고, 과거와 오늘이 있고 또한, 미래가 있는 것이다. 토착어를 우리는 보통 모국어라고 부른다, 그러나 토착어는 모국어보다도 더 원천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어령 선생에 의하면, "토착어란 세 살 때 어머니의 품에서 옹알이를 할 때부터 몸에 익힌 모국어이다. 내 인생의 첫 책은 어머니의 모습이고, 어머니의 말,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그 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길렀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모국어로 생각하는 것이 왜 창조력과 영감의 원천인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미(美)를 말할 때 ‘여백(餘白)의 미’라고 한다. 여백의 미란, 종이 전체에서 그림이나 글씨 따위의 내용이 없이 비어 있는 부분을 말한다. 한국화 중 ‘산수화, ’풍속화‘ 등에서 주로 나타나 있다. 한국음악 중 국악도 ’여백의 미‘를 표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양음악은 화성 음악으로써 음악을 꽉 채운 듯이 느껴지지만, 국악은 선율음악으로써 서양음악에 비교해서 웅장함이 덜 느껴지면서 서양음악에 비해서 단출함도 느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여백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보고 느끼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는 거다. 그 여백 안에 무엇을 넣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 여백은 상상하는 이를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정확하게 여백이 없이는 상상하는 이를 끌어들이는 힘을 갖지 못한다. 그 여백은 한국 음식도 그렇다. 한국 음식 하나하나는 완성품이 아니다. 밥은 싱겁고 반찬은 짜다. 싱거운 밥이 맵고 짠 김치와 입속에서 어우러질 때 진정한 맛이 난다. 먹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한국 음식이다. ‘흙’은 고정불변의 상징이라면, ‘바람’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는 변화의 상징이다. 그 흙 속에서 5000년보다 훨씬 많은 세월의 굴곡의 역사를 딛고 아름답고 귀중한 우리의 토속문화 즉, 전통문화가 피어난 것이다. 그 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전통문화 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혼이 서려 있다. 우리 선조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있다. 일제 강점기가 말살하려 했던 그 전통문화는 은근과 끈기의 엄청난 창조적 힘으로써 그 모진 ‘바람’을 받아치고 극복하고 끌어안으면서 오늘의 ‘한류(韓流)’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류’는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한류의 열풍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세계로 확산되었다. 또한 TV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 등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김치, 고추장, 라면 등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모든 현상까지도 한류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그중에 특히 K-POP의 역할이 독보적이다. "싸이 때문에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싸이는 한국의 영웅이다.”라고 2012년 한국을 방문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말하였다. 2012년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발표하면서 불기 시작한 싸이 열풍은 2013년도에 UN 미래포럼(the Millennium Project)에서 ‘싸이 현상’으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싸이 현상’을 미래학자들은 대표적인 ‘미래 현상’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21회”부터는 싸이의 이야기, 소녀시대 이야기, 방탄소년단의 이야기 등, 이들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K-POP 한류 가수가 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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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19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고가 마사오는 감수성이 민감한 유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고가 마사오는 고가 마사오 예술대관『古賀政男藝術大觀』의 회고기에서 "큰 형의 가게에 60여명의 조선인이 있었는데, 나는 이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고 1년 전인 1977년 <저 꽃 이 꽃>이란 노래에 대해 ”만일 내가 유소년 시절을 조선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이러한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한국의 정서와 전통음악이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었음을 시인하였다.(김열규 글 참조) 그리고 한 때는 ‘아리랑’도 본인이 작곡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내 취소하고 사과한 사건도 있었다. 고가 마사오는 약 11년의 기나긴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면서 음악가로서의 소질과 재능을 키워나갔다. 한국 전통의 민요나 판소리, 풍물 장단과 대중가요 등이 그의 음악적 형성에 큰 밑바탕이 되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가 마사오의 음악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도 마치 예전에 즐겨듣던 곡으로 착각할 정도로 멜로디가 친근한 곡이 많다. 그것은 당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가 마사오의 처지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어려운 생활의 연속으로서, 마치 식민지 조선의 백성과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조선의 음악에 더욱 호감을 갖게 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은, 후일 고가 마사오의 음악에 한국의 정서나 가락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소리바위 글 참조) 전수린과 고가 마사오는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교를 다져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친교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으며 양국을 오가며 만날 때는 서로 포옹까지 하였다고 하니 꽤 친교가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계가 어쩌면 서로에게 음악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가 마사오의 작곡이 먼저 작곡한 전수린의 곡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일본의 유행가와 한국의 유행가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태동하고 성장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18회에서는 후지야마 이치로에 의해 도입된 크루너 창법과 소위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로 불리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창법들이 가미되어 엔카의 창법이 갖춰지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 떤다)는 악보에서는 표기할 수 없는 미묘한 억양이나 장단 같은 국악의 시김새를 의미하는데, 한국의 전통성악이나 트로트에서 표현하는 ‘꺾기’ ‘뒤집기’ ‘흔들기’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창법을 잘 표현한 가수들이 미소라 히바리 등 한국계 일본인 가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성악에는 어떤 독창적인 특징적 요소가 있는 것일까?. 최근에 트로트 경연 방송에서 심사위원인 마스터들의 심사평에서 ‘꺾기’, ‘흔들기’, ‘떨기’, ‘뒤집기’ 등의 용어가 나온다. 이러한 용어는 발라드 음악이나 록음악, 혹은 재즈와 팝음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장르의 대중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트로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용어들이다. 이러한 트로트 창법의 기교(국악에서는 시김새라고 표현)는 민요나 판소리에서의 대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꺾기’는 반음 위의 음에서 그 음으로 빠르게 흐느끼듯 내려오는 기교를 말하는데, 판소리와 민요 등 어느 장르에서나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슬픈 음악인 계면조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뒤집기’는 방울목, 치는목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사람들은 요들송 표현 같다고 하여 요들목이라고도 부른다. 요들송의 기교처럼 긴 한음 소리에 살짝 힘을 빼고 요들목을 소리에 얹으면서 소리를 뒤집는 기교를 말한다. 노래를 할 때 이러한 뒤집는 시김새를 적절히 사용하면 화사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무 대목에서나 분별없이 사용하면 음악에 대한 격도 떨어지고 듣기 역겨운 음악이 된다.(서도명창 유지숙 글 참조) 트로트를 부룰 때 국악의 성악을 전공한 사람은 일반가수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기교들을 자유자재로 더 깊이 표현할 수 있지만, 오히려 트로트를 부를 때는 국악적 요소를 빼느라고 힘들어 한다. 자칫 트로트가 민요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악의 성악 전공자가 트로트를 부르게 되면 맛깔스러움을 느끼게 하는데 그 이유는 가창력, 바로 복식호흡을 통한 호흡법 등 소위 공력을 통한 수련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해 본다. 노래할 때의 좋은 호흡은 고음, 중음, 저음은 물론 강약, 그리고 굵게 떠는음, 가늘게 떠는음 등 노래의 다이내믹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트로트는, 트로트라는 용어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독창적으로 개발된 세계에서 유일한 대중가요 스타일의 현대 민요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중 트로트와 관련한 이야기는 19회로 마무리를 하고 20회부터는 K-POP과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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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국악신문 대표이사 이취임식주식회사 국악신문 대표이사 이취임식이 9일 정오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주요 필진과 자문위원단과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간략하게 개최된 이날 이취임식에서 주간 지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의 이원화와 주식회사로의 전환에 따라 구조 조정을 하였다. 이에 의해 객원기자로 함께 하던 기미양 기자가 대표이사로, 김지연 전 대표가 상임이사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김지연 전 대표는 이임사에서 "30년 국악신문 역사를 빛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하고 있는 봉사단체의 중책을 맡게 되어 부득이 자리를 옮기고자 합니다. 저는 측면에서 돕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기미양 대표이사는 취임사에서 "전통문화예술 전문 언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였고, 기업화를 위해 주식회사로 전환했다”라고 밝혔다. 본지에 ‘춤새’를 연재하는 이무성 화백은 신년 세화歲畵를 연재 필자들에게 선물하였고, ‘흙의 소리’를 집필하는 이동희 작가는 "국악계의 활로를 모색하는 기사들과 전통문화 전반을 다루는 국악신문은 독자성을 갖는 언론으로 확장하리라는 기대를 갖게한다”고 격려했다. 이날 참석자는 연재 필자 이동희, 이무성, 이종선, 정창관, 박상진 교수가, 자문단에는 정문교, 정승만, 신동립 3인, 대기자 이동식, 안상윤, 김연갑과 편집부 김동국, 정현조, 김한나 기자가 함께했다. 한편 이날 막내 김한나 기자의 깔금한 진행이 돋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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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18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17회에서, 일본에서 표절 시비가 일었던 1931년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와 1926년 전수린 작곡의 <고요한 장안>의 악보를 비교분석한 결과, 두 곡의 화성 체계가 거의 유사하고, 리듬 패턴이 8개의 마디가 비슷하거나 같으며, 리듬은 어김없이 두 곡 모두 한국의 동살풀이 장단을 차용한 뽕짝리듬이라는 것으로 분석하면서 고가 마사오가 전수린을 표절했다고 결론지었다. 추가로, 한국의 동살풀이 장단과 엔카 리듬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악보 비교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겠다. 엔카 리듬과 동살풀이 장단의 악보 비교 분석(김덕수 글 참조) * 위의 <동살풀이 장단> 중 4번이 대표적인 뽕짝 리듬이다. "뽕 짝 뽕 짝, 뽕 짜작 뽕 짝, 뽕 짝 뽕 짝, 뽕 짜작 뽕 짝” 위와 같이 <엔카 리듬>과 국악의 <동살풀이 장단>을 비교 분석하면, (1) <엔카 리듬>과 국악의 <동살풀이 장단>의 리듬 패턴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 4/4박자로서 템포도 거의 똑같다. (3) <엔카 리듬>과 <동살풀이 장단>은 2분박으로 동종의 리듬이다. 또한, <동살풀이 장단>은 위의 4가지보다도 훨씬 많은 변형장단을 보유하고 있다. 4/4박자로서 2분박 계통으로 템포도 같아 같은 종류의 리듬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엔카가 미야코부시 음계와 같이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음악이라고 주장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엔카의 창법도 일본만이 가지고 있고 일본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일본 특유의 창법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과연 그럴까?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작사자는 다카하시 쿠키타로인데 홋카이도의 지방신문 기자였다. 1931년 여름에 다카하시 쿠키타로가 일본 콜롬비아 문예부에 시를 투고하면서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문예부에서 작곡을 의뢰받은 고가 마사오는 매일 기타를 치면서 고심하며 작곡을 하게 된다. 고가 마사오는 완성된 악보를 후지야마 이치로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는데, 후지야마 이치로는 그 당시 도쿄음악학교(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의 전신)에 재학 중인 장래가 촉망되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음역이 너무 낮아 쉽게 부르지 못하였다고 한다.(지난 회 악보 참조) 이 때, 후지야마는 당시 미국에 머물던 누나로부터 마이크로폰에 속삭이듯 부르는 크루너 창법에 대해서 전해 듣게 되었다. 후지야마는 일본에서 아직 보급이 안 되었던 이 크루너 창법을 채택하여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클래식을 전공한 후지야마는 크루너 창법에 정통 성악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발성으로 엔카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본 엔카의 시작곡인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탄생되었는데, 이 노래는 1931년 9월에 일본 콜롬비아에서 후지야마 이치로의 노래로 음반이 발매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크루너 창법이란, ‘크루너’는 ‘나직하게 노래하다, 조그맣게 속삭이다’의 ‘croon’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부드러운 콧소리가 가미된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를 지칭한다. 정식표현으로는 ‘crooning’이며 1920년부터 미국 대중음악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가라앉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중얼거리듯 부른다는 창법이다. 1940년대에 이 창법은 사라지면서 로큰롤이 등장하게 된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후지야마 이치로에 의해 불려지면서 엔카의 창법이 확립되기 시작하는데, 이후에 일본에서는 소위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로 불리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창법들이 등장하게 된다. 고부시는 작은 마디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민요나 가곡 등에서 악보에서는 표기할 수 없는 미묘한 억양이나 장단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전통성악이나 트로트에서 표현하는 ‘꺾기’를 말하는데 전통음악의 시김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엔카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한 가수는 아버지가 한국인인 미소라 히바리이다. 미소라 히바리는 잔잔하게 부르기만 했던 일본 엔카를 인간의 온갖 감성을 담아서 다이내믹하게 표현함으로써 일본 엔카를 반석 위에 올려 놓게 한 장본인이다. 미소라 히바리가 부른 엔카는 대부분 히트할 정도로 역동성을 갖춘 한국인의 특성을 잘 반영하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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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17)김종욱 우리 작품발표회를 듣고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작품으로 된 음악회란 점에서 그 작품가치를 운운을 말할 여유조차 없이 악조건으로 우리를 흥분시키며 감격을 준다. 결국 내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감정이 너무나 크게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 그러나 전애轉愛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정당한 비평이 활발히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문외한으로서의 소속으로 말초적 문제 몇 가지를 들어보면 먼저 이흥렬 작품(독습곡)과 김순애작품(바이올린 소나타)이 무슨 사정인지 연주 안된 것과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나 교향곡은 그만 두더라도 피아노 곡이 하나도 없었던 것, 그리고 너무 성악곡(10곡 중 7곡)이 믾은 것은 유감이었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만일 누구의 작품이란 인명이 씌어지지 않았다면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여도 좋을만치 특징이 없는 똑같은 인상을 주며 모두가 ‘센티’한 음조뿐이었다. 우리 작품이 모두 이러한가. 그런 것만 골랐는가는 모르나 프로 전체의 활기가 없이 들린다. 혹은 성악곡에 있어 성악가의 일률적인 습법習法의 소치인지 모르나 그 화려(?)한 ‘몸짓’, ‘눈짓’이 청중을 매료하려고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곡과 곡으로 떨어진 ‘제스튜어’와 ‘에스프레시브’에 침울을 일층 더하게 해온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작곡발표음악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발표회가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길래 그 후 주시해보니 전부가 다라고 할만치 모두 발 박자에 분주한데 이것은 음악의 미를 상쇄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된다. (藝術通信 227호 1946. 7. 1) = 무용 = [조선 최초의 군무대회 동원 무용가 연 2백명] : 조선무용가협회에서는 래 8월 7일부터 9일까지의 3일 간 시내 국도극장에서 전 조선남녀무용가를 동원하여 ‘솔로’와 군무대회를 개최하기로 되었는데 이는 조선에서 처음 보는 무용대회로 무용가의 연 인원은 2백명에 달한다고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 [똘똘이의 모험‘ 금월 말 완성 예정]: 남일영화사에서 방금 제작 중인 ’똘똘이의 모험‘ 은 요즈음의 일후日候관계로 다소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는데 앞으로 날만 좋으면 금월 말에 제작을 완성하여 래 8월 제1주로 시내 극장에서 봉절되게 할 예정이라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 연극= [‘연동演同 수재구제공연 준비]: 연극동맹에서는 이번 수재동포들을 위하여 불원 수재동포 구제흥행을 하기로 되었는데 동 공연의 準備委員은 다음과 같다.’ 김태진, 조영출, 박상진, 박학, 이재현, 황영일黃英一, 이동호李東胡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 [학병동맹 ‘피흘린 기록’을 영화화] : 학병동맹에서는 이번에 희곡 ‘피흘린 기록’을 임연수林連壽씨 윤색으로 16미리로 영화화할 계획을 가지고 방금 준비 중에 있는데 근간 모 영화사에 제작의촉이 결정됨으로 곧 본격적으로 제적을 개시하여 今月 이내로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배협’ 총회]: 조선영화배우협단에서는 작 1일 폐사 회의실에서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금후에 있어서의 공연기획에 대한 건을 토의한 바 동건은 동단 간사회에 일임하기로 결의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음악= [‘연협’ 수해구제연주회- 6, 7 양일 배재강당] : 대한연주가협회에서도 이번 수해이재민의 구제사업으로 래 7월 6, 7 양일 밤 시내 배재강당에서 동협회 회원을 동원하여 구제금모금 연주회를 하기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 무용 = [9월에 무용콩쿨대회] 조선무용예술협회에서는 9월 초순에 전 조선무용 콩쿨대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동 하순에는 동협회 교육무용부 주최로 아동무용콩쿨대회를 열 계획이라 한다.(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남방 조선영화인의 기빨 , ‘바리’도島에서 활약하는 허씨 소식] : 남방에서 활약하는 조선영화 건아의 소식! 즉 얼마 전에 학병으로 출병 중 ‘자바’ 지역에서 소위 영화선무행정宣撫行政에 관계하다가 귀환한 모씨의 담에 의하면 수년 전 조선에서 활약하다가 남방으로 건너갔던 감독 허영許英씨가 그 뒤 ‘자바’에서 조선해방의 기쁨을 안고 즉시 ‘자바’ 조선인연맹을 결성하고 노력하는 한 편 조선인을 중심한 몇 영화 유지와 제휴하여 극영화 제작에 착수하였다 한다. 그런데 현재 모씨의 귀환선이 출범할 때까지는 ‘바리’도에서 ‘크랑크 인’ 중이었다는 바 완성 되는대로 고국판도 제작하여 보내오리라고 전한다. 특히 씨는 해지該地에서 ‘오란다’의 금발여성과 국제결혼까지 하였다니 멀리 다복을 빌건가.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문화영화의 승리!- ‘유황도’ 5일 간 35.000명 돌파-]: 미국무성 제작 태평양전사 영화 제2편 ‘유황도 결전’ 그 서울 공개에 28일부터 작 2일까지 5일 간 35.000명 돌파! 물론 총천연색이라는 전람회적 인기에 가까운 매력도 있을지 모르나 어쨌든 장안 팬의 열광은 문자 그대로 고조되어 드디어 조선극장 흥행 사상의 단 기록短記錄을 돌파하였다. 이로써 미루어 앞으로 보건대 앞으로의 5일 간을 예상컨대 6만명은 넉넉히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같은 기록은 과거 왜정시대 4관 동시상영으로 강제동원한 ‘병대는 앞으로’의 누계 52, 367면을 통쾌하게 깨뜨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로는 극영화의 여하한 작품에서도 이같은 기록을 일찍이 흥행계는 갖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문화영화의 승리라고 할 것으로 영화인의 재고를 촉하는 활동 경고라 하여 ‘센세이션’ 되고 있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남선영화사 이전] : 남선영화사에서는 이번 시내 합동영화사 내 사무소를 이전하였다 한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 [이동영사회사 창립 ]: 상설관의 설비가 구비되지 못한 농촌 벽지를 중심으로 농민들의 정신계몽대를 강화하고 계몽운동의 균형을 도모하여 이번에 김용택金容澤 씨는 이동영사회사를 창설하였다는 바 창립사무소는 청엽정 2정목에다 두고 첫 사업으로 조영뉴스 1, 2, 3 외 수편을 가지고 오는 6일 부터 16일 까지 10일 간 남선일대를 순회공연하기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해방뉴스‘ 제7보 내용]: 1. 농악전국대회, 2. 경기도 그네대회, 3. ’굿벨스‘ 씨 송별회, 4. 연평도 고기잡이 광경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 [월례학술영화회 개촤, 중앙통신사 주최로] : 중앙통신사 사업부에서는 시내 남녀중등학교 생도의 영화정조교육映畵情操敎育을 위한 학우영화회學友映畵會를 도 학무과의 후원을 얻어 매삭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되었다는 바 제1회로는 오는 8알부터 11일까지 3일 간 서울극장에서 매일 오전 중에 시행한다고 한다. 그 상영 영화는 유사 뉴스 3편과 ‘교과敎科의 자유’, ‘작은 악마’ 등이라 한다. (藝術通信 231호 1946.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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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17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1926년, 한국의 전수린 작곡의 <고요한 장안>은 가수 이애리수에 의해 막간극의 노래로 불리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 <고요한 장안(일본명, "원정”)>은 1932년도에 일본에서 발표하게 되는데, 이때 일본 박문관(博文館)에서 출판하는 잡지 『신청년』에서 1931년도에 발표된 ‘고가 마사오’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酒は 淚か溜息か)>가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원정)>을 표절했다는 기사가 보도된다. 만약에 일본의 음악 평론가들이 말한 것처럼 고가 마사오가 전수린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한국의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라는 사실은 성립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필자는 <고요한 장안>과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악보를 비교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16회’의 악보를 옆에 놓고 필자와 함께 두 곡을 비교해 보면 좋겠다. 두 곡의 악보를 비교할 때 음악적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음악 전공자가 아니면 다소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에 대한 음악적 연관성, 그리고 한국의 트로트가 음악적으로 왜곡되어 오늘에 이른 점 등을 생각하면 두 곡과 관련한 악보의 비교는 마지막으로 반드시 겪어야 하는 부득이한 과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애독자의 양해를 바란다. 악보의 1은 <고요한 장안>이고, 2는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이다. 위의 악보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고요한 장안>은 Motive가 정확히 2마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4마디 구조를 취하고 있다. (2) <고요한 장안>은 V 화음이 자연단음계로 되어 있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화성단음계를 사용하고 있다. 즉, 속 7화음을 사용하고 있다. (3) 코드의 사용과 진행이 대체로 두 곡 모두 비슷하다. (4) 1번 마디, 3번 마디, 15번 마디는 악보의 리듬 패턴이 비슷하다. 그러나 20번 마디, 21번 마디는 리듬 패턴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으며 화성 또한 동일하다. (5) 1 <고요한 장안>의 24번 마디 셋째 박부터 25번 끝마디와 2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23, 24, 25번 끝마디의 선율과 리듬이 모두 같다. (6) 리듬은 어김없이 두 곡 모두 ‘뽕짝 리듬’이다 위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전수린은 자연단음계를 사용하여 국악적 즉, 민족음악적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작곡하였다. 고가 마사오는 코드 사용과 진행에 있어서 전수린과 흡사하다. 다만, 속 7화음(화성단음계)을 사용함으로써 서양음악적 느낌이 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리듬 패턴이 8개의 마디가 비슷하거나 같은 것으로 보아 표절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화성의 진행으로 보아 듣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비슷한 음악으로도 들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고요한 장안>의 24번 마디 셋째 박부터 25번 끝마디와 2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23, 24, 25번 끝마디의 선율과 리듬이 모두 같은 것으로 보아 고가 마사오가 전수린을 표절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o 리듬은 어김없이 두 곡 모두 ‘뽕짝 리듬’이다. 분석에 대한 결론은, ① 일부분에서의 멜로디가 같다는 것을 보면 고가 마사오가 전수린을 표절했다고 볼 수 있다. ② 화성 체계가 거의 유사한데, 이 또한, 일본에서 표절 시비가 일어난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③ 리듬은 어김없이 두 곡 모두 ‘뽕짝 리듬’이다. 즉, 국악의 동살풀이 장단 중 ‘동살풀이 리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④ 그리고, 일본에서의 표절시비 중 가장 결정적인 부분 중 하나는 ‘동살풀이 리듬’을 차용한 ‘뽕짝 리듬’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 시절의 일본은 ‘뽕짝 리듬’과 같은 리듬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소위 ‘뽕짝 리듬’인 일본 ‘엔카의 리듬’은 한국 전통 장단의 ‘동살풀이 장단’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전수린 작곡의 <고요한 장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표절이라고 판단된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엔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엔카를 토착적 문화라고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본에서 엔카의 원류(源流)가 한국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그 이유는, 많은 엔카 가수가 한국계(재일 한국인)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엔카의 거장 고가 마사오도 한국계일지 모른다는 설이 나돌았던 것이다. 또 고가 마사오의 경우 한국계 혈통과는 대체적으로 무관하다고 보고 있지만 한국에 오랜 기간 체류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한국 문화의 영향’과 밀접한 관계에 있지 않느냐라고 논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신현준 글 참조) 또한, 음계이론(미야꼬부시-都節)을 잘못 적용하여 트로트를 왜색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사람은 많아도 트로트나 엔카를 일본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민경찬 글 참조) 그러한 이유를, ① 엔카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고가 마사오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 ② ‘미소라 히바리’ 등 엔카 가수들의 상당수가 한국계라는 점, ③ 엔카 속에 한국 전통적 음악 요소가 많이 내포돼 있다는 점, ④ 호소력을 요구하는 창법이 일본 가수보다는 한국 가수들에게 더 어울린다는 점 등의 이유로 엔카의 원류가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따라서 트로트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역수출됐다는 것이 일본 가요계의 정설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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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이 낳은 국악관현악 지휘자의 향연 ‘기산전’2021년 11월 7일 오후 3시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는 경상남도를 빛낸 인물프로젝트 국악관현악 지휘자의 향연 ‘기산전’이 펼쳐진다. 기산국악제전위원회(위원장:최종실)가 주최/주관하며 경상남도와 산청군 그리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총동문회가 후원한다. 예부터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경상남도! 경상남도의 유구한 인물들을 빛내기 위한 프로젝트. 국악운동의 선구자이자 국악 교육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故기산 박헌봉 선생의 유업을 기리는 행사이다. 박헌봉 선생은 현재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세우고 전국의 무형문화재를 기록, 조사, 발굴하였다. 이 같은국악선양 정신을계승받은, 기산이 배출한 국가무형문화재 명인들과 지휘자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공연은 오프닝 <태평고를 울려라>를 시작으로 <기산찬가>, <대바람소리>, 가야금병창을 위한 협주곡 ‘사랑가’, 배띄워라, 약손,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및 병창,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신모듬’, <반갑습니다>, <미리뽕>, <우연히>, <길>, <사랑의 바보>, <예사> 등이 펼쳐진다. 참여하는 지휘자는 8명이다. 김광복(11기), 박상진(11기), 최상화(12기), 한상일(12기), 김재영(15기), 이용탁(23기), 임상규(28기), 진성수(29기)이다. 협연에는 김영재(5기), 정회천(15기), 이영신(22기), 우연이(25기), 전영랑(40기), 이미리(43기), 김보성(45기)이 참여한다. ‘기산전’은 기산 박헌봉 선생의 제자들을 비롯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국악인과 관현악단 등 예술인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품격 있는 공연이다. 진행은 국악공연 전문기획사인 정아트앤컴퍼니가 맡았다. 제12기 한상일 지휘자(현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단장)는 "이번 공연은 박헌봉 선생님의 제자들인 박범훈(전 이사장) 선배님 이하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출신들만으로 꾸미는 판이다. 이 판의 소속감과 결속력은 우리의 자부심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또한 본 국악신문에 ‘한류이야기’를 연재하는 제11기 박상진(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지휘자 역시 강한 자긍심을 보였다. "기산 선생의 그늘이 현재 우리 국악의 본류이다. 이번 공연은 우리 스스로가 이를 확인하고, 동시에 이 시대 국악계의 소임을 다지는 기회이다.”라고 했다. 공연이 개최되는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은 박헌봉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명소이다. 주인공인 박헌봉 선생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나 1934년 진주 음률연구회를 조직하고, 그 후 정악견습소, 조선성악연구회, 조선가무연구회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1960년 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을 역임하고 이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면서 ‘창악대강’을 후세에 남겼다. 오늘의 민속음악인 주류를 형성시킨 인물이다. 본 행사의 총괄은 2013년 기산국악당 건립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제10기 최종실 기산국악제전위원장이다. 기산국악당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된 남사예담촌과 함께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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