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17회에서, 일본에서 표절 시비가 일었던 1931년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와 1926년 전수린 작곡의 <고요한 장안>의 악보를 비교분석한 결과, 두 곡의 화성 체계가 거의 유사하고, 리듬 패턴이 8개의 마디가 비슷하거나 같으며, 리듬은 어김없이 두 곡 모두 한국의 동살풀이 장단을 차용한 뽕짝리듬이라는 것으로 분석하면서 고가 마사오가 전수린을 표절했다고 결론지었다.
추가로, 한국의 동살풀이 장단과 엔카 리듬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악보 비교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겠다.
엔카 리듬과 동살풀이 장단의 악보 비교 분석(김덕수 글 참조)
* 위의 <동살풀이 장단> 중 4번이 대표적인 뽕짝 리듬이다. "뽕 짝 뽕 짝, 뽕 짜작 뽕 짝, 뽕 짝 뽕 짝, 뽕 짜작 뽕 짝”
위와 같이 <엔카 리듬>과 국악의 <동살풀이 장단>을 비교 분석하면, (1) <엔카 리듬>과 국악의 <동살풀이 장단>의 리듬 패턴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 4/4박자로서 템포도 거의 똑같다. (3) <엔카 리듬>과 <동살풀이 장단>은 2분박으로 동종의 리듬이다. 또한, <동살풀이 장단>은 위의 4가지보다도 훨씬 많은 변형장단을 보유하고 있다. 4/4박자로서 2분박 계통으로 템포도 같아 같은 종류의 리듬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엔카가 미야코부시 음계와 같이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음악이라고 주장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엔카의 창법도 일본만이 가지고 있고 일본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일본 특유의 창법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과연 그럴까?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작사자는 다카하시 쿠키타로인데 홋카이도의 지방신문 기자였다. 1931년 여름에 다카하시 쿠키타로가 일본 콜롬비아 문예부에 시를 투고하면서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문예부에서 작곡을 의뢰받은 고가 마사오는 매일 기타를 치면서 고심하며 작곡을 하게 된다. 고가 마사오는 완성된 악보를 후지야마 이치로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는데, 후지야마 이치로는 그 당시 도쿄음악학교(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의 전신)에 재학 중인 장래가 촉망되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음역이 너무 낮아 쉽게 부르지 못하였다고 한다.(지난 회 악보 참조)
이 때, 후지야마는 당시 미국에 머물던 누나로부터 마이크로폰에 속삭이듯 부르는 크루너 창법에 대해서 전해 듣게 되었다. 후지야마는 일본에서 아직 보급이 안 되었던 이 크루너 창법을 채택하여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클래식을 전공한 후지야마는 크루너 창법에 정통 성악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발성으로 엔카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본 엔카의 시작곡인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탄생되었는데, 이 노래는 1931년 9월에 일본 콜롬비아에서 후지야마 이치로의 노래로 음반이 발매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크루너 창법이란, ‘크루너’는 ‘나직하게 노래하다, 조그맣게 속삭이다’의 ‘croon’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부드러운 콧소리가 가미된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를 지칭한다. 정식표현으로는 ‘crooning’이며 1920년부터 미국 대중음악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가라앉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중얼거리듯 부른다는 창법이다. 1940년대에 이 창법은 사라지면서 로큰롤이 등장하게 된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후지야마 이치로에 의해 불려지면서 엔카의 창법이 확립되기 시작하는데, 이후에 일본에서는 소위 고부시(小節)와 우나리(으르렁거린다)로 불리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창법들이 등장하게 된다. 고부시는 작은 마디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민요나 가곡 등에서 악보에서는 표기할 수 없는 미묘한 억양이나 장단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전통성악이나 트로트에서 표현하는 ‘꺾기’를 말하는데 전통음악의 시김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엔카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한 가수는 아버지가 한국인인 미소라 히바리이다. 미소라 히바리는 잔잔하게 부르기만 했던 일본 엔카를 인간의 온갖 감성을 담아서 다이내믹하게 표현함으로써 일본 엔카를 반석 위에 올려 놓게 한 장본인이다. 미소라 히바리가 부른 엔카는 대부분 히트할 정도로 역동성을 갖춘 한국인의 특성을 잘 반영하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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