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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가을이 오면/김용택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송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에요 가을이 오면 추천인:임준희(작곡가) 나는 음악가이에요. 세상의 소리를 음악에 담아냅니다. 바람 소리, 물 소리, 나무 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주고 받는 사랑의 소리를 .....10월에는 가을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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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국내춤기행, 동해안 별신굿〈울산 신암편⓶〉어촌마을을 뜨겁고 풍성하게 달군 풍어축제 -신암별신굿 어촌마을이라 민박이 딱 하나가 있는데 주인마저 별신굿 식당에서 봉사하는 관계로 숙소를 사용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멀리 나가 숙소를 잡았다. 난방이 시원찮아 썰렁한 밤을 지새우고 나와 다시 굿판 이튿날을 맞이했다. 10시가 되어 시작하는데 팥죽 새참을 주어 맛있게 먹으며 굿 촬영을 시작했다. 둘째 날 일정표의 첫거리가 어제 저녁에 연행하여 오늘도 다소 변경이 생겨 <부인거리>, <천왕거리>, <손님거리>, <대왕거리>, <대신거리>, <황제거리>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셋째 날은 <군웅거리>, <심청거리>, <천왕거리>, <심청거리>, 넷째날은 <걸립거리>, <용왕거리>, <장수거리>, <월래거리>, <꽃・등・뱃노래>, <거리굿>으로 신암별신굿의 끝을 맺는다. 동해안별신굿의 각 굿거리마다 연행구조는 기본구조와 변형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후에 펼쳐진 굿거리에서도 변형구조인 <손님거리>, <심청거리>, <걸립거리>, <용왕거리>, <장수거리>, <거리굿> 외에는 기본구조로 연행한다. 그러므로 기본구조의 춤은 무녀들의 개인차는 있지만 춤 형식은 대동소이하여 종합적으로 춤형식과 춤사위를 정리하면서 살펴보았다. 9시 40분(110분간)에 되자 양중들이 모여 하루의 굿을 시작하는 드렁갱이로 굿판의 신명을 북돋았다. 10시가 되자 <부인거리>에 김정숙 무녀와 김정희 양중이 굿을 연행하였다. <부인거리>는 각 가정에 효부와 열녀가 나오기를 기원하는 굿거리로, 연행구조는 동해안별신굿의 대표적인 기본구조 6단계로 진행하였다. 즉 ①푸너리장단의 푸너리춤(부채와 수건춤), ②청보장단에 청보무가와 청보춤, ③"우여차! 00님네 놀고 씨고 가잔다!”로 거무장단에 거무춤3장(‘느진거무춤’(중모리형), ‘거무춤’(굿거리형), ‘당거무춤’(자진모리형)), ④어포(명태포)를 들고 모름채 장단에 토구름춤과 어포춤, ⑤축원무가와 팔도민요, 가요, ⑥사자풀이채(장단)에 술잔과 신칼을 들고 수부사자무가로 끝을 맺는다. 11시 30분(103분간) 손영만 남무(경북 빗내농악 보유자)와 김용택 양중(동해안별신굿 보유자)이 <천왕거리>를 연행하였다. <천왕거리>는 골매기 천왕신(성황신, 서낭신)을 모시는 굿거리로 동해안별신굿의 연행구조에서 변형구조라고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무극(巫劇) 때문이다. 이 무극을 <원님놀이>, <천왕곤반>, <도리강관원놀이> 등으로 불리지만 이 거리를 생략하는 경우는 기본구조와 다름없다. 동해한별신굿에서도 지역에 따라 생략하는 마을이 있고 사정상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신암마을에서는 두 번에 <천왕거리>를 연행하였는데, 다음날인 23일에도 <천왕거리>를 김동연무녀와 김종희 양중이 연행하였다. 이것은 손영만 무당이 굿당 밖의 천왕대를 들고 굿을 연행하지 않아 김동연 무녀가 천왕신을 모시는 거리를 포함하여 <천왕거리>를 다시 연행한 것이다. <손님거리>의 손님대춤 <손님거리>는 손님신, 즉 천연두신(天然痘神)을 위한 거리이다. 손님신을 높여서 마마손님 혹은 마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두법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천연두가 가장 무서운 전염병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무속의 신은 인간에게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해서 신으로 모셔진 것도 있지만, 인간에게 너무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화를 면하기 위해 인간들이 두려워하면서 신으로 모시기도 하는데, 손님신이 그 경우이다. 13시 13분(150분간) 김영희 무녀(1941년생, 보유자)와 김정희 양증이 <손님거리>를 하였다. 김영희 무녀는 동해안별신굿 보유자이며 현재 보존회장으로 고령에다 척추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번 별신굿판에서 오로지 한 석(席, 거리)을 연행하는 유일한 굿거리이기에 좀 더 소상히 정리해 보았다. 대체로 무녀들은 맡은 굿거리를 시작할 때 이미 머리장식과 치마저고리를 갖춰 입고 굿판에 등장한다. 김영희 무녀 역시 단정하게 달비(덧 씌운 가발), 빨간 댕기, 흰 머리띠로 머리장식을 하고 치마저고리에 보자기를 들고 등장하였다. 그리고 보자기를 풀어 남색 쾌자와 연두색 가슴 띠를 꺼내 주민들 앞에서 쾌자와 가슴 띠를 착용한다. 젊은 무녀들은 본인이 직접 가슴 앞에서 한가닥 매듭으로 늘어뜨린 다음 뒤로 돌려 등 뒤에서 매듭이 쾌자 끝까지 길게 늘어지게 한다. 김영희 무녀의 가슴 띠는 조무들이 착용시켜드렸다. 김영희 무녀가 등장하여 "젊은 새댁이 굿 한석 하러 나왔습니다.”라고 반어법으로 말문을 트니 굿당 안은 웃음바다가 되면서 굿판분위기를 일시에 압도하였다. 이어서 동해안별신굿을 하는 조상내력과 신안별신굿의 그간 경력 등을 이야기하고 손님굿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손님네 한번 모셔봅시다” 하고 청신으로 푸너리장단에 손님대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①양중들이 푸너리장단을 연주하자 김영희무녀는 굿당을 향해 뒤로 돌아 먼저 오른손의 부채를 펴 들었다가 허리 뒤로 여미고 이어서 왼손에 잡은 손님대를 쳐들어 앞쪽으로 올렸다. ②부채와 손님대를 함께 쳐들고 마을 이장보고 굿당을 향해 절을 하라고 지시하니 절을 한다. ③손님대와 부채를 좌우로 흔든 다음 손님대를 어깨에 얹고 부채는 편 채 옆구리에 낀다. ④ 손님대와 부채를 들고 좌우로 흔든다. ⑤손님대와 부채를 들고 왼쪽으로 한 바퀴 돈다. ⑥돌면서 주민을 향할 때는 부채를 허리 뒤에 여미고 굿당을 향할 때는 부채를 쳐든다. ⑦ 손님상차림 앞에서 좌우로 흔들고 ⑧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돈다. ⑨ 손님대를 들고 흔들면서 부채는 허리 뒤에 여미고 왼쪽으로 돈다. ⑩ 부채를 들고 흔들면 손님대는 어깨에 얹는다. ⑪ 굿당을 향해 좌우로 흔들다가 손님대를 들고 흔들 때는 부채는 뒤로 여미고 부채를 들고 흔들 때는 손님대는 어개에 얹는다. ⑫ 부채를 접어 손님대 위에 X자로 걸치고 왼쪽으로 한 바퀴 돈다. ⑬굿당을 향해 손님대를 오른손에 옮겨 부채와 함께 오른손에 겹쳐든다. ⑭ 굿당을 향해 부채와 손님대를 부르르 떤다. ⑮굿당을 향해 몸통을 떤 다음 다시 손님대와 부채를 떨면서 좌우로 흔든다. ⑯다시 손님대를 왼손에 옮겨 어개에 얹고 부채를 펴들고 왼쪽으로 돈다. ⑰ 한바퀴 더 돌아 주민들을 향해 절을 한다. ⑱ 다시 굿당을 향해 돌아 절을 하고 푸너리춤을 마친다. 간략하게 춘 푸너리 손님대춤이지만 불편한 몸으로도 춤의 격식을 갖추었다. 이어서 손님을 모시는 내력을 이야기와 무가로 손님굿 서사무가를 제마수장단에 맞춰 92분 동안을 불렀다. 손님거리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축원무가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동해안별신굿에서 불리는 손님거리 무가는 서사무가이다. 김영희 무녀가 구연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중국에 있던 손님신 쉰 세 분이 조선이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는 들어오다가 쉰 분은 되돌아가고 세 분만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러나 사공은 각시손님이 하룻밤 자신의 수청을 들어준다면 건네주겠다고 하였다. 이 말에 화가 난 손님네들은 사공을 죽이고 그의 집으로 가서 아들들도 하나씩 차례대로 천연두에 걸려 죽게 만들었다. 마지막 아들 하나가 남았을 때에 사공의 어머니가 손님네에게 애원했기 때문에 손님네는 사공의 마지막 아들 하나는 목숨을 보존하게 하여 주었다. 조선으로 들어와 떠돌던 손님네는 가난한 할미의 집으로 찾아간다. 할미는 손님네가 온 것을 알고는 정성껏 대접한다. 할미의 정성에 감동한 손님네는 할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고, 할미는 김장자집의 삼대독자인 철현이가 쉽게 손님을 마치도록 하여 달라고 청한다. 손님네는 김장자의 집을 찾아가 그에게 천연두를 앓게 한다. 그러나 김장자는 손님을 대접하여 아들을 낫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만 억지를 부리면서 손님네에게 대항한다. 화가 난 손님네는 철현이를 죽여 자신들의 마부로 삼고 말았다. 동해안별신굿 손님굿의 끝에는 손님노정기(路程記)가 이어지고, 그 뒤에는 손님네 말놀이라는 무극(巫劇)이 있다. 이 무극은 본래는 손님배송굿 혹은 마마배송굿이라고 불리는 굿에 들어 있었던 것인데 익살스러운 재담이 재미있다. 옛날에는 천연두가 치사율이 매우 높은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이 병에 걸렀다가 요행히 죽지 않으면 발병된 지 열사흘 만에 천연두신을 돌려보내는 마마배송굿을 크게 했다고 하는데, 그 마지막 대목인 손님네를 말에 태워 돌려보내는 대목이 이 극에 해당한다. 그러나 오늘날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게 되자 손님배송굿도 중요성이 없어지고 말을 만드는 일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시대나 문화의 변화를 동해안별신굿이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하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희 무녀가 서사무가를 연행하는 동안 조무들이 나서서 손님대를 들고 주민들에게 가자 주민들이 돈을 손님대에 꽂아 주령주렁 매단다. 손님대를 손님상 옆에 쌀을 담은 말과 어포에 꽂아두니 김영희 무녀가 다시 어깨에 얹고 연행하였다. 서사무가를 마친 다음 손님대를 흔들며 마을의 안녕을 월별로 공수내리듯이 축원하고 지역민들의 사주를 기록한 용지를 보며 한사람씩 축원해주었다. 조무들을 나오게 하여 민요를 부르게 하였다. 그사이 새참으로 팥죽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계속 진행하였다.이어서 15시 43분부터 서한나 무녀와 김진환 양중이 <대왕거리>를 92분간 연행하였고, 17시 15분부터 김영숙 무녀와 김용택 양중이 <대신거리>를 115분간 연행하였으며, 19시 20분 김동연 무녀와 김정희 양중이 <황제거리>를 83분간 연행하여 밤10시 가까이 되어 22일 일정을 마쳤다. 23일과 24일에 걸쳐 나흘동안 오전 10시부터 <군웅거리>, <천왕거리>를 비롯하여 <황제거리>, <걸림거리>, <용왕거리>, <장수거리>를 하고 24일에는 <월래거리>, <꽃,등, 뱃노래>, <거리굿>으로 마무리하였다. 기본구조의 굿에 나타난 ‘푸너리춤’의 춤 구성과 특징 신암별신굿의 22거리 연행내용 중에 기본구조를 지닌 굿거리는 가망거리, 제석거리, 성주거리, 부인거리, 천왕거리, 대왕거리, 대신거리, 황제거리, 군웅거리, 용왕거리 등 9거리였다. 이러한 기본구조의 굿거리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6단계의 연행구조로 진행되는데 좀 더 구체적인 내용과 춤을 살펴보기로 한다.<가망거리>는 김동연 무녀(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와 김정희 양중(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이 굿을 연행하였는데 ‘푸너리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먼저 양중들이 장고, 징, 꽹과리로 푸너리 1장단(굿거리형, 2소박4박 2장단 첫박에 징1번)을 치면 춤을 추기 시작한다. ①무녀가 부채와 수건을 들고 주민들을 등지고 굿당을 향해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전진하며 좌우세로 손을 흔들고 ②후진하면서 팔을 내려 앞뒤로 흔들고 제자리에서 좌우세로 흔든 다음 ③다시 천천히 전진하고 왼쪽으로 돌아 앞(주민)을 보고 계속 돌아 뒤(굿당)를 보면서 부채를 펴고 위 아래로 들고 내린다. ④수건을 든 왼손은 반대로 아래위로 흔든다. ⑤반대로(오른쪽) 한 바퀴 돌며 팔을 흔들고 앞을 향할 때 부채를 접고 좌우로 흔든다. ⑥앞을 향한 채 전진후진하고 부채를 어깨에 얹고 수건을 옆을 들고 제자리에서 흔든다. ⑦다시 앞으로 양팔을 흔들며 전진하여 ⑧오른쪽으로 돌며 굿당을 향할 때 다시 부채를 펴고 흔들며 세 바퀴를 연속을 돈 다음 ⑨다시 왼쪽으로 세 바퀴 돌아 굿당을 향해 양팔을 펴든다. ⑩푸너리 2장단(1장단 첫박에 징1번)에 절을 하고 다시 뒤로 물러나 절을 하여 삼배하고 반배를 더하고 마친다(1분30초). 그 외 굿거리에서 다른 무녀들이 춘 푸너리춤은 <제석거리>의 홍효진(2분), <성주거리>의 김동언(2분), <부인거리>의 김정숙(1분50초), <천왕거리>의 손영만(1분30초), <대왕거리>의 서한나(1분50초), <대신거리>의 김영숙(1분50초), <황제거리>의 김동연(1분40초) 등이 있었다<필자 영상촬영>. 이들이 연행한 것을 비교해보면 첫째, 춤에 소요된 시간과 장단은 각자의 성향과 즉흥성, 현장성으로 각기 달라 고정되지는 않았지만, 기본원칙과 기본구조는 유사했다. 둘째, 대체로 연령별 즉 60대 이상의 고령층 무녀와 그 이하 젊은 층에서 춤의 성향이 달랐다. 즉 고령층은 동작이 작지만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보이고, 젊은 층은 활기 있고 춤사위가 확실하고 조금 길게 추었다. 그리하여 고령층은 어르는 사위, 좌우새, 여미는 사위, 얹는 사위로 춤집이 작았고, 젊은 층은 어르는 사위보다는 좌우새와 어깨에 얹고 겨드랑에 끼는 사위로 춤집이 컸다. 셋째, 고령층일수록 춤구조가 일정하고 공통점이 많으나 젊은 층은 규칙에 얽매지 않고 자유롭게 추는 경향이 있다. 푸너리춤의 공통적인 춤구조와 특징은 첫째, 처음 양중들이 푸너리장단을 치면 무녀는 바로 춤을 추지 않고 무복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을 정비하고 나서 주민을 등지고 굿당을 향하여 춤추기로 시작한다. 둘째, 전진후진 걸음과 좌우회전걸음, 제자리걸음 등 3가지 걸음법이 주로 쓰인다. 셋째, 손팔동작은 양팔을 평사위에서 좌우로 흔드는 좌우세가 주를 이루고, 팔을 상하로 크게 들고 내리는 큰 좌우새, 한 손은 어깨 얹고 다른 손은 반대편 겨드랑이에 끼었다가 펴서 반대로 얹고 끼는 사위, 부채는 펴서 뒤편에 여미고 수건은 앞에 들고 도는 사위, 넷째, 부채는 도는 사위에서 굿당을 향할 때 펴고 앞을 향할 때 접으며 신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구분하여 펴고 접는다. 다섯째, 도는 사위는 신을 모신 신의 세계인 굿당과 주민들을 향한 인간세계를 넘나드는 의미로 양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춤으로 보였다. 그리고 도는 방향의 손은 위로 들고 따르는 쪽의 손은 허리 뒤로 붙여 도는데, 계속 돌 때는 양손을 모두 위로 쳐들고 돈다. 여섯째, 굿당을 향해 돌 때는 부채를 펴고 돌고, 주민을 향해 돌 때는 부채를 접는데, 여러 바퀴 돌 때는 부채를 펴 양손을 모두 들고 돈다. 일곱째, 마지막 춤을 마칠 때는 굿당을 향해 삼배하면 장단은 조금 빨라지는 푸너리 2장단을 치고 마친 다음 청보장단으로 바뀐다. 일곱째, 장단은 강하지만 춤은 굿거리형의 부드러운 춤을 춘다. 이처럼 굿문서나 춤은 분명히 선대 무녀들로 부터 전승한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연행자(무녀)에 따라서, 또 현장성, 즉흥성이 가미됨에 따라서 연행내용은 개인차를 보인다. 게다가 전승의 연륜과 연령층에 따라서도 세대차도 나타나고 있었다. 동해안별신굿의 무복과 무구 동해안별신굿의 무복은 한마디로 조촐하다고 할 수 있다. 무당들은 굿을 하는 동안에 굿의 종류나 춤의 종류에 따라 간단한 무복을 착용한다. 치마저고리만을 무복으로 착용하거나 그 위에 남색의 전복을 덧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별한 굿거리나 춤에 따라 표의(表衣)로서 포를 착용하거나 머리에 고깔 또는 화려하게 장식한 화관을 쓰는 정도이며 무복으로서의 특별한 양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단순함 속에서도 두루마기, 몽두리, 쾌자, 활옷, 원삼, 철릭 등 의례용 겉옷에서 보이고 있는 복식 대부분은 색동소매와 한삼이라 할 수 있다. 동해안세습무 무복의 형태적 특성으로 볼 수 있다. 동해안별신굿의 머리장식 동해안별신굿의 머리장식으로는 흰색 띠, 달비, 화관, 비녀, 꽂이, 갓, 고깔 등을 볼 수 있다. 머리띠는 얇은 흰 천을 가늘게 감아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여분으로 꽃을 만들어 장식한다. 달비는 길이가 일정치 않으며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어 연결한 것으로 여자의 긴 생머리카락이며 어른 손 한 웅큼 정도의 굵기로 만든다. 굿을 할 때 머리를 감싸며 머리를 단정하게 만들어 주고, 가발처럼 쓴 후 굿 동작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단단하게 고정한다. 굿거리 이후 땀범벅이 된 달비는 세탁하지 않고 뜨거운 방바닥에 놓아 습기를 말려 다시 사용한다고 한다. 달비는 굿판에서 구경하는 할머니들이 잘라준 머리채도 있고, 세습무에서 무녀들에게 중요한 상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절대 태우지 않고 소중히 관리하는 중요한 장신구이다. 명주수건은 무녀들이 가체한 머리 전체를 가릴 때 사용하며, 머리 전체를 감싸는 형태이다. 화관은 문굿에서 밝이춤을 출 때 머리에 쓰며,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다. 붉은 댕기는 갑사로 만들며 홍색이고 흰 머리띠와 함께 달비를 고정하고 머리모양을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갓은 성주굿이나 심청굿 권위가 높은 굿거리에서 주로 사용한다. 고깔은 명주천이나 종이로 접어 쓰기도 한다. 세존굿에서 추는 중춤, 중도둑잡이굿, 양중이 염불을 구송할 때 등에 주로 흰 천이나 흰 종이를 사용한다. 군웅거리와 천왕거리까지만 촬영을 마치고 다음날 춤비평가회 회의 관계로 굿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부분은 대보름날부터 연행하는 부산 기장 칠암면에서의 동해안별신굿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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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국내춤기행,동해안 별신굿 〈울산 신암편⓵〉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5년 주기의 어촌축제 - 신암별신굿 이번 국내 춤기행은 동해안별신굿을 중심으로 한반도 동남 해안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의례춤의 현황을 파악하고 춤사위를 분석하여 한국 전통춤의 지역적 특성을 규명하는 일환으로 민속현장조사 기행을 떠났다. 동해안지역 별신굿은 남쪽 끝 부산지역에서 울산, 경북, 강원도에 이르는 동해안 어촌을 중심으로 풍어제와 마을굿이다. 어촌마을마다 제각기 열리는 별신굿은 격년, 3년, 5년 등 마을의 형편상 정기적(사정상 비정기도 있음)으로 풍어제 또는 별신굿 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성한 마을 공동기금으로 운영한다. 이때 큰무당(*)들을 모셔 큰 굿판을 벌이고 마을 축제를 열어 풍어를 빌고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재제초복을 비는 정기적인 큰굿이다, 2015년 2월21일(음1월3일)부터 4일 동안 행하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면 부둣가에 5년마다 열리는 풍어를 기원하는 신암별신굿을 현장조사하려고 촬영장비와 며칠을 지내려는 생활용품까지 큰 배낭과 가방까지 들쳐 메고 설 다음날(2월20일)에 일찍 용인에서 부산행 버스를 탔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 도착한 부산버스터미널(노포동)에 부산의 한국무용가 신은주선생(부산춤공간 Shin 대표)이 마중을 나왔다. 점심을 같이 들고 부산에 온 김에 김덕명선생님(양산학춤 전승자, 92세)을 뵙고 가려고 댁으로 찾아 갔다. 일전((2월9일)에 ‘부산춤공간 Shin 기획토론회’ 때는 신장 투석한 날이라서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시던 분이 이날은 줄곧 두 시간에 걸쳐 지성승무의 유래와 전승에 대해 증언해주셨다. 더 이상 면담하기가 미안해서 다음에 증언을 더 듣기로 하고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마을로 떠났다. 마침 서생면 신암마을 근처가 신은주선생의 고향이라 어린 시절 이야기와 지역생활사까지 들으며 바다 경치를 만끽하면서 신암부둣가 신암제당에 도착하였다. 내일 열릴 굿판 상황을 상황과 시작 시간과 일정을 물어보고 촬영 위치까지 점지한 다음 저녁식사를 하러 나왔다. 어둑어둑해진 바닷가에는 흔히 생각하는 어촌의 풍경이 아니었다. 현대화된 해안도시의 밤풍경과 네온사인 등이 현란하고 음식점들과 별장, 펜션 등이 즐비했다. 찾다보니 부산 기장까지 와서 바닷물 가에 바짝 붙여 지은 수십 개의 방갈로 별채로만 지어진 독특한 음식점(고스락)이 맘에 들어 울산밤바다를 만끽하며 식사를 하고 숙소를 잡아 여독을 풀었다. *큰무당- 큰무당, 선무당과 점쟁이, 비래쟁이(막음쟁이)의 명칭은 기예능의 한계, 조직규모, 단골판 등에 의해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큰무당’은 우선 대대로 가계 전승된 세습무로 기예능이 뛰어나며, 많은 인원(20~30명)의 집례자의 조직력을 갖춘 친척들로 3일에서 7일 내외로 20~30거리의 대규모의 별신굿이나 오구굿을 연행할 수 있는 무계집단을 일컫는다. 이에 비해 ‘선무당’은 ‘설익은 무당’이란 뜻으로 개인적인 강신무들로 기예능은 약하지만 신과의 소통력으로 공수내림을 잘 하여 12거리 이내로 하루나 이틀 정도의 굿을 집례자 2~5명이내로 소집단을 형성하여 앉은거리와 선거리를 연행하는 중규모의 무계집단이다. ‘비래쟁이’와 ‘막음쟁이’는 강신적 또는 학습적으로 터득한 능력으로 1~2명(무녀와 악사)의 집례자가 한나절 정도로 개인이나 가정의 우환을 퇴치하는 앉은거리, 비손, 막음질을 행하는 유형이다.*허개등- 굿청 밖에 높이 허공에 매단 허괘등(虛卦燈), 불교 지화장엄에 유래된 화개등(花蓋燈)으로 흑애등, 호개등, 허계등, 후개등으로 불리는 대내무살 뼈대로 엮어 오색화지를 붙여 만든 등이다. 동해안 별신굿과 오구굿에서 굿이 열리는 곳을 신과 인간에 알리는 기능, 풍농풍어를 기원할 때 신(망자)이 머물고 이동(저승)하는 수단의 무구이다. <당맞이굿>에서 마을 수호신을 굿당으로 모시는 ‘골매기 청신춤’ 신암별신굿이 열리는 첫날(음력 정월 초산날) 신암마을 바닷가 제당에 10시부터 한다기에 30분 미리 도착하여 촬영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굿의 첫거리인 <제주집 안굿>은 전날 저녁에 했다는 것이며, 오늘시작은 둘째거리인 <당맞이굿>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어서 아쉬웠다. 참관했던 굿연구학자(김신효, 이균옥)들에게 물어보니 제주(祭主, 김정례)집과 이장(이동우)집에서 두 번 집안굿으로 간단한 굿상차림에 부정거리와 청좌거리에 어어 소지(燒紙)올리는 등의 비손처럼 청신(請神)을 하였다고 한다. 별신굿 전체를 ‘청신(請神), 오신(娛神), 송신(送神)’과정으로 구분할 때, 청신 부분에 해당하는 굿거리는 <부정거리>, <청좌거리>, <당맞이굿>, <문굿(문당굿)>까지이다. 별신굿에서 마을 전체의 안녕을 위한 본격적인 시작은 마을의 수호신인 골매기신(*)을 모시는 <당맞이굿>이 청신(請神)과정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당맞이굿>은 골매기가 있는 당나무나 당집 등지로 가서 골매기신을 내림대에 내려서 굿당으로 모시고 오는 굿거리이다. 골매기를 굿당에 모셔 놓은 후부터 굿거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별신굿이 벌어지는 굿당에 모셔진 골매기는 별신굿이 끝나는 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신암별신굿이 열리는 첫날 바닷가 제당 앞에 천막으로 마련한 굿판에 들어가기 전에 10시 10분(80분간) <당맞이굿>을 하러 가기 위해 앞마당에서 무녀들과 양중(악사)들이 풍물을 한바탕 치며 춤을 추며 돌다가 마을 주민대표가 대잡이로 골매기대(*)를 앞세우고 골매기 서낭당으로 향하였다. 골매기대에 이어 양중(남무악사)들의 풍물가락에 맞추어 무녀들이 춤을 추며 따르고 주민들이 함께 뒤를 따랐다. 유씨 골매기 할배 서낭당에 도착하여 상당굿으로 간단한 굿상을 진설한다. ①김동연 무녀(동해안 별신굿 전수조교)가 부정바가지에 부정물과 신칼을 들고 온갖 부정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고 굿당주변을 깨끗이 정화하기 위해 장구장단에 부정무가를 한다. ②부정무가를 마치면 꽹과리가 합세하여 빠른 장단으로 바뀌며 신칼로 부정물을 찍어 뿌리며 부정을 물리친다. ③주민대표들이 굿상 앞에 절을 한다, ④부채와 수건을 들고 골매기 유씨할배신을 모시는 청보무가를 부르고 양중은 "모시자 에시자!”소리로 바라지를 한다. ⑤당을 향해 절을 하고, 이어서 신칼과 명태포를 들고 휘돌리며 빠른 거무장단에 다양한 손동작으로 손신무관을 잠깐 추다가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 장단이 느려진다. ⑥모름채 장단에 양손을 모으고 앞으로 굿상을 향해 허리를 숙여 살짝 엎어지듯이 토구름을 하고 강신무들이 접신하듯이 몸을 잠시 떨듯이 토구름(*)을 한 다음 왼쪽으로 돌아 절을 한다. ⑦"의허여- 하염없어!”하면서 귀곡성(鬼哭聲)을 잠깐 소리 지르고 "신암대동 안에 우리별신 내별신...유씨 골매기 할배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축원사설을 한다. ⑧수부채장단에 술을 술잔에 부어 잡신들을 보내고 마을주민과 제관들에게도 음복주를 내리고 별비(*)를 받고 계속 굿상 밖으로 잡신과 사자(死者)들에게도 술을 뿌린다. ⑨ 굿상의 제물을 모아 한지를 받쳐 사자밥으로 당산나무 아래에 모아둔다. ⑩"에루 지신아! 지지신 지신을 울리자!” 지신밟기 무가를 양중들과 함께 소리쳐 부르고 길군악 풍물을 치며 다음 골매기당으로 길놀이를 하며 행진한다. 골목길 주택가에 납작 바위 앞에 가볍게 굿상을 진설하고 이번에는 김동언 무녀(부산시 기장 오구굿 보유자)가 주관하여 염씨 할매신을 모시는 중당굿을 연행하였다. ①부정물과 신칼을 들고 부정무가와 부정물림, ②부채와 신칼 들고 청배무가(양중들은 "아시자 모시자!”)와 주민들 굿상 청배, ③굿상에 절한 다음 명태와 부채를 들고 모름채장단에 토구름춤(굿상 보며 양손 앞으로 상하 흔들기, 오른쪽으로 방향 바꿔가며 사방에 양손 앞을 상하 흔들기, 왼쪽으로 돌며 양손 펴 어르며 돌기, 반대로 돌며 양손 펴 어르기, 굿상 앞을 향해 양손 앞으로 들고 잠시 멈추기, 몸을 잠시 떨며 앞으로 자빠지듯 토구름하기, 양손을 앞으로 펴 좌우 흔들기, 왼쪽돌기, 굿상에 절하기), ④명잔 복잔 돌리기(꽹과리를 접시삼아 술잔을 주민 대표에 주고 별비받기), ⑤소지종이를 태워 올리며 축원하기, ⑥사자밥주기(술을 뿌리고 과일과 떡을 한지로 싸 내려놓기), ⑦신명나게 "에루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하며 지신밟기무가와 풍물을 치고 다시 길놀이로 용왕당으로 행진한다. 부두 가까이 바닷물 앞에 굿상을 차리고 양중들이 원으로 풍물을 치며 신명나게 치며 돈다. 김영숙 무녀(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와 김용택 양중(동해안 별신굿 보유자)이 장구를 치며 용왕님을 모시는 하당굿을 진행하였다. 먼저 무녀가 부정무가를 하면 양중은 "에헤 영정아!”하고 바라지소리를 한다. ①부정물 바가지를 들고 신칼을 좌우로 흔들며 사방을 돌며 부정을 물린다. ②무가를 마치면 멈췄던 꽹과리들이 빠른 장단을 치며 무녀는 신칼로 부정물을 찍어 사방에 뿌린다. ③신칼을 들고 한 바퀴를 돌아 굿상에 절을 하고 부정물을 밖에 버린다. ④부채와 수건을 들고 한 바퀴 돌고 왼쪽으로 한 바퀴 돌아 굿상에 절을 두 번 한다. ⑤청보무가를 하면 양중들은 "애시자 모시자!”로 받는다. ⑥무가를 마치면 양손을 들었다 내리며 절을 두 번한다. ⑦모름채장단에 굿상을 향해 명태 한 마리와 신칼을 들고 양손을 좌우 흔들며 춤춘다. ⑧전진후진에 이어 오른쪽으로 돈다. ⑨양중들을 향해 전진후진과 왼쪽으로 세 바퀴 돌며 점차 느려져 굿 앞에 향해 멈춘다. ⑩눈을 감고 있다가 앞으로 졸듯이 꾸벅 거리며 토구름을 한다. ⑪다시 흔들다 굿상 비껴 옆으로 오른발로 땅을 콱 밟으며 양손을 쫓는 시늉을 두 번 하고 토구름을 한다. ⑫돌아와 양중 앞으로 신칼을 휘돌리고 내리면서 제자리에 서면 장단이 멎는다. ⑬사설로 "오년마다 와서 용왕님네 오셔서... 선주들 여기서 절도 하고 하시지요” 하니 선주들이 와서 절을 한다. ⑭조무들에게 선주들 명잔 복잔을 주라고 하고 무녀는 소지를 한다. ⑮수부채장단에 수부무가를 하고 제물을 바다에 던져 뿌린다. ⑯양중들이"에루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 하면 풍물을 치며 굿당으로 돌아와 신명나게 풍물을 치며 미지기, 오방진 등의 풍물진풀이를 하고 <당맞이거리>를 모두 마치고 골매기대를 앞세우고 제당으로 돌아와 마친다. <당맞이굿>에 나타난 춤은 내당굿에서 본격적으로 굿을 할 때와 달리 야외 마을굿터에서 연행하는 것으로 간략하게 굿내용이 축약되어 연행하므로 춤 역시 맛보기식으로 추었다. 내용상으로 부정춤, 청보춤, 거무춤, 토구름춤 등이 있었지만 간단하게 추었기 때문에 다음 연행되는 굿거리(*)에서 소상히 밝히기로 한다. *부정굿- 굿청의 잡귀잡신을 물리치고 부정한 것들을 정화시키는 굿거리이다. 앉은거리와 선거리가 있는 경북지역은 부정굿이 독립된 굿거리로 연행하나 경남지역은 독립적으로 굿거리로 하지 않고 <제주집안굿>이나 <당맞이굿>에서 선거리로 간단히 연행한다. *비손- 무당이나 개인이 혼자서 치성(致誠)을 드리는 행위로 '손을 모아 빈다'는 뜻에서 ‘손빔’이라고도 한다. 비손에서 비는 행위인 축원덕담(祝願德談)은 ' 비나리'라고 한다. 노래와 춤·공수, 여타 복잡한 형식이 뒤따르고 장구·북·징·피리 등의 잡이들이 수반되는 의례를 <굿>이라 한다면, <비손>은 가무없이 간단히 정성만을 올린다. 정초의 안택(安宅)과 10월 상달고사, 그리고 집안에 환자가 생겼을 때 등에서 비손을 많이 하며, 소박하게 청수를 떠놓고 빌거나 시루떡을 준비하기도 한다. *골매기(골맥이)- ‘골(谷)’과 ‘액운을 막다’, ‘마을을 수호하다’라는 뜻으로, ‘골맥이 서낭’, ‘골맥이 할배’라고도 하며, 주로 경상도의 마을굿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지만 동해안 지방에서는 각 마을의 신으로서 동제의 대상신이 되고 있다. 그래서 김씨 할배, 이씨 할매 등으로 성이 붙어 인격신의 형태를 띠며, 할배나 할매는 조부(祖父)나 조모(祖母)라는 뜻이 아니라 조상(祖上)이라는 의미로 나무, 바위, 당집 등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모시고 있으며 웃당(상당)과 아랫당(하당) 또는 중당이 있는 마을도 있다. 별신굿에서는 언제나 굿당을 깨끗하게 하는 ‘부정굿’을 한 다음에 ‘청좌굿’을 진행한다. 청좌굿을 무당들은 ‘골맥이 청좌굿’이라고도 부른다. 청좌굿은 마을 당신(堂神)인 골맥이를 굿당에 맞이하는 굿거리이다. *골매기대- 별신굿에 쓰이는 신대는 각종 신이 대를 타고 내린다는 내림대로, 굿청 문 앞에 댓잎이 달린 긴 장대에 희 지전을 매달은 것으로 신대(너름대는 작은 것), 골매기대, 천왕대(제관두루마기를 함께 매달음) 등으로 모양은 같으나 굿의 쓰임에 따라 기능과 명칭은 다르다. *토구름- 무속은어로는 ‘신이 노하다’라는 뜻이지만, 동해안별신굿에서는 세습무인 무녀가 거무춤을 춘 다음 굿당을 향해 어포와 수건을 들고 허리를 굽혀 움찔하거나 구르는 듯한 모습이나 발을 콱 밟아 구르는 시늉으로 강신무들이 접신하는 것처럼 몸짓을 하고 난 후 어포춤을 추고 축원하는 과정을 말한다. *별비– 제가집이나 주민들이 굿을 연행하는 무녀에게 복채로 직접 주는 돈(화폐)을 말한다. *굿거리-‘굿거리’라고 하면 흔히 ‘굿거리장단’을 생각하게 되지만 굿판에서는 굿의 진행과정에 신을 불러 축원하고 오고 오신하는 독립단위의 굿으로 ‘거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즉 신암별신굿에서의 ‘굿’은 ‘상위개념의 굿’이고 연행내용에서 말하는 ‘부정굿’, ‘청좌굿’, ‘문굿’, ‘세존굿’ 하는 것들은 ‘하위개념의 굿’으로 ‘부정거리’, ‘청좌거리’ 등으로 해석하면 된다. <문굿>으로 굿청을 열기 위해 서막을 알리는 ‘진풀이춤’, ‘밟이춤’, ‘놀이칼춤’, ‘짝춤’ <문굿(문당굿)>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문을 열어서 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문굿을 연행하며 문을 활짝 여는 것은 신들을 인간 세계로 영접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무당들의 예능실력 과시와 마을사람들이 무당들의 실력을 엿보는 거리라고도 할 정도로 무당들의 군무와 함께 모든 악기의 연주로 인해서 굿을 여는 신명의 분위기를 창출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진행상 <문굿>은 마을의 수호신(골매기)을 있는 서낭당, 용왕당 등을 길놀이를 하면서 찾아가 당맞이굿을 모두 마치고 풍물을 치면서 제당 앞에 당도하여 굿청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문 앞에서 굿을 시작하는 의미의 굿거리이다.양중과 무당이 짝을 지어 짝춤을 추며 각각의 신들을 모시기 위해 문 앞에서 신명의 굿춤판을 벌이고 주민대표들이 문을 열어주면 굿청으로 들어가 내당굿(*)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문굿>은 내당굿을 하기 전에 모든 무당들이 함께 문밖에서 ‘밟이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양중들은 모두 농악기를 들고 풍물을 연주하고 무녀들은 놀이칼을 들고 춤을 춘다.11시 30분(85분간) 원양중(주바리지)(*)이 장삼(활옷과 유사한 색동옷)에 갓을 쓰고 장고를 메고 앞장서면 양중들이 쌍호적에 길굿장단을 치면서 원으로 돌 때 무녀들도 뒤를 따라 모두 흰 수술을 댄 놀이칼을 양손에 들고 좌우치기, 뿌리고 어깨얹기 등으로 ‘놀이칼춤’을 추며 돈다. 풍물의 ‘진풀이춤’으로 8자진, 오방진 등으로 돌면서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하면서 신명나게 푸너리장단에 춤을 추다가 다시 원으로 서면 행진을 멈추고 ‘밟이춤’ 대무(對舞)가 시작된다. 원 안으로 들어간 원양중 김종희가 장구를 높이 쳐들고 김동연 무녀가 짝이 되어 조너리장단(*)에 짝춤을 춘다. 조너리장단은 장구보다 징이 잔가락을 많이 치며 박자를 주도하는 것으로 징가락에 춤은 춘다고 봐야한다. ①조너리장단에 원무녀는 놀이칼을 높이 들고 흔들면서 양중이 높이 처든 장고와 마주하면 서로 미지기(마주보고 전진후진)를 한다. ②장고를 얼굴 앞에 세워 들고 자리를 바꿔 각자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장고를 머리 위로 높이 들고 미지기로 함께 제자리로 물러난다. 즉 회전할 때는 장고를 세위 들고 전진후진할 때는 장고를 눕혀 하늘 높이 들고 춘다. ③이어서 그동안 구음소리만 하던 김동언 무녀가 문굿 무가를 부르면 다른 무녀들이 제자리에서 손만 흔든 다음 모두 원을 따라 흔들며 걸어 돌아간다. ④김영숙 무녀가 무가를 받아 소리를 하면 다시 원양중은 원 안으로 들어가 장단을 치고 원무녀는 놀이칼로 흔들며 마주보고 대무한다. 이때 밖에 있던 무녀들이 짝을 지어 등지고 좌우치기로 대무를 한다. ⑤장단이 빨라지면 원 안의 원양중은 장고를 밖에 내려놓고 들어와 원무녀와 서로 양팔을 펴들고 등지고 돈 다음 등지고 서서 같은 방향의 팔을 함께 들어 꺾고 반대 팔을 꺾어 들고 천천히 반복하다가 점차 빠르게 들고 점차 좌우치기로 흔든 다음 마주보며 잔걸음으로 돌면서 흔든다. 이때 원밖의 무녀들도 빠른 손신무관으로 춘다. ⑥술래잡기처럼 양중이 쫒고 무녀는 피하면서 춘 다음 무녀의 놀이칼을 양손으로 붙잡고 서로 돌고 반대로 돌고나서 멈춰서 양손을 늘어뜨려 좌우로 흔들다가 잡은 채로 서로 뒤집어 돈다. ⑦한 번 더 뒤집어 돌고 반대로 흔든 다음 뒤집기를 두 번 세 번 돈 다음 수술을 놓으면 무녀들 모두가 원으로 들어가 아주 빠른 손신무관을 추고 나간다. ⑧양중도 놀이칼을 들고 무녀가 한조씩 들어가 추고 나오면 다음 짝이 들어가 신명의 밟이춤을 한 번씩 춘다. 이때 추는 무관(舞冠, 춤사위)은 갈매무관, 돌머리무관, 겨드랑무관, 자치무관, 양사위치기무관, 도리깨무관, 까불무관, 비빔무관, 나비무관, 혼합한 손신무관 등을 춘다. 모두 한 번씩 추고나면 제당 문 앞으로 몰려간다. 문 안에 있던 마을 제관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한다. 1분 더 신명의 춤을 추면 열어주겠다고 대답한다. 신명나게 추니 문을 열어주어 제당으로 들어간다. 제당 앞에 굿청에 서서 무가를 하고 절하기를 세 번 한 다음 부정물 가시기를 하고 버린다. 굿청 안 입구에 강신무인 손영만 남무가 신대를 잡고(원래는 마을의 강신무가 대받기를 하나 없어서) 김동언 무녀가 바라를 들고 작은 고사상을 차려놓고 대받이 고사를 지낸다. 마을의 제관들이 고사상에 절을 하고 무녀는 청보무가를 부른다. 점차 신이 오르면 대잡이가 신대를 바르르 떨면 신이 강림한 것이다. 신대를 들고 떨면서 마을 주민들을 머리 위를 스치고 양중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 제당 밖에서 안으로 신대를 넣고 흔들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절을 하면 마친다. 이렇게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 후에 굿을 이어간다고 알리며 마을에서 차린 식당으로 가서 납세미조림(가제미), 톳무침, 미역무침에 전분을 푼 시래기콩나물국 등 토속음식이 짜지 않고 맵지 않고 싱싱하여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내당굿과 외당굿: 동해안 남부지역에 주로 구성된 연행구조로 내당굿은 굿의 전반부에 해당하며, 굿당을 정화하고 신들을 좌정시키고 신과 인간과의 만남과정을 풀어낸다. 조상과 집안의 여러 신들에게 자신과 자손의 번창 풍요, 안녕을 기원하고 무당자신을 위한 굿도 연행된다. 외당굿은 굿의 후반부에 해당하며, 굿이 진행되는 마을 전체의 번창과 풍요, 안녕을 기원하는 성격 위주로 진행되며, 극적 성격도 강화되어. 바다, 산, 땅, 나라전체와 관련된 신위들을 중심으로 연행하여 굿 참석자들에게 흥미를 제공하기도 한다.*밟이춤- 문굿에서 무당과 양중이 짝을 지어 ‘진풀이춤’, ‘짝춤’, 또는 ‘집단춤’으로 마당밟이하는 춤.*양중(바라지)- 동해안별신굿의 악사를 말하며, 무녀의 굿을 반주하고 가의 선율을 받아서 응답하는 일(지역에 따라 만수받이, 살대답이라고도 함)를 ‘바라지’라고도 한다. 대개는 무녀와 양중이 부부로 같은 굿거리를 거행하고 반주한다. 이 때 중심 양중을 ‘원양중’, ‘주(원)바라지’라 하며 장구를 잡고 나머지는 ‘옆(약)바라지’로 징, 꽹과리, 바라를 잡는다.*조너리장단과 대너리장단- 문당굿과 장수굿에서만 사용되는 장단으로, 3소박 4장단인데 문굿의 밟이춤 대무에 연주하며 징의 뒤를 막지 않고 장고처럼 잔가락을 많이 처서 춤가락을 맞춘다. 대너리장단은 조너리장단과 박자는 같으나 큰 박만 징 뒤를 막아 치는 것이 특징이다. 신암별신굿의 굿거리 순서와 내용 별신굿 전야에 1.제주집 안굿, 첫날에 2.당맞이굿, 3.문굿, 4.가망굿, 5.세존굿, 6.도둑잡이, 7.제석굿, 둘째날 8.성주굿, 9.부인굿, 10.손님굿, 11.천왕굿, 12.대왕굿, 셋째날 13.대신굿, 14.심청굿, 15.황제굿, 16.군웅굿, 넷째날 17.걸립굿, 18.용왕굿, 19.장수굿, 20.월래굿, 21. 꽃・등・뱃노래, 22.거리굿으로 프로그램에는 기록되어 있었으나 실제 굿판에서는 무녀들의 사정에 따라 변동이 있었다.(프로그램에는 각 굿거리를 ‘굿’으로 표기하였으나 청신(請神)과 송신(送神)과정은 주로 굿당 밖에서 별도로 연행함으로 ‘굿’으로 표기하며, 굿당 안에서 연행하는 오신(娛神)과정은 내당굿과 외당굿의 하위개념으로 보아 ‘거리’로 바꿔 표기하기로 한다)1. 제주집안굿: 굿의 집사를 맡은 제주집의 가신(家神) 성주, 군웅, 세존, 조상님을 위한 굿거리2. 당맞이굿: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제당을 돌며 신을 청해 오는 굿거리3. 문굿: 굿청 문을 열고 굿을 시작하는 굿거리4. 가망거리: 신령들의 근원(根源)을 관장하여 굿문을 열고 자손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굿거리5. 세존거리: 아이의 출산, 명복, 재복을 관장하는 세존을 위한 굿거리,6. 도둑잡이: 마을의 재물을 보호하고 손재를 막기 위한 남무들의 놀음 굿거리7. 제석거리: 바람과 기후를 관장하는 제석을 위한 굿거리8. 성주거리: 집안의 수호신인 성주신을 모시고 가정의 평안을 비는 굿거리9. 부인거리: 각 가정에 효부와 열녀가 나오기를 기원하는 굿거리10. 손님거리: 천연두신인 마마신을 위한 굿으로 질병과 재액을 막기 위한 굿거리11. 천왕거리: 천왕신에게 마을 안가태평을 기원하는 굿거리12. 대왕거리: 각 대왕들을 위하고 청하는 굿거리13. 대신거리: 무당의 조상신인 대신을 위한 굿거리14. 심청거리: 심청설화를 서사무가로 구연하는 거리로 마을 주민들의 안질방지와 눈을 밝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굿거리15. 황제거리: 환훤 황제에게 가축의 무병과 집안의 재복을 기원하는 굿거리16. 군웅거리: 군웅신에게 농사발복을 기원하는 굿거리17. 걸립거리: 무당의 무조신인 제면할머니를 위한 굿거리18. 용왕거리: 용왕신에게 해상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거리19. 장수거리: 여러 장수들의 위엄과 힘을 빌려 마을 액과 살을 막는 굿거리(놋동이를 입에 물고 장군신의 위엄을 보인다)20. 월래거리: 각 가정의 돌아가신 선대 조상을 위한 굿거리21. 꽃・등・뱃노래: 무구로 쓰인 꽃, 등, 배의 유래를 설명하고 송신의 의미를 담은 굿거리22. 거리굿: 남무의 일인극으로 잡귀 잡신들을 풀어먹여 보내는 굿거리 동해안 별신굿의 각 굿거리 연행의 기본구조와 변형구조 동해안별신굿의 각 굿거리는 대부분 연행의 6단계 기본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①푸너리장단의 푸너리춤으로 시작하여 부채와 수건춤을 추고 제당에 절을 하면 나면, ②청보장단에 청보무가를 부르면서 간간히 발림으로 청보춤을 춘다. ③무가를 마치면 무녀가 "우여차! 가망님네 놀고 씨고 가잔다!”라고 하면 양중들이 뒤를 받아서 괴성을 지르듯이 소리를 받으며 거무장단에 거무춤을 3장으로 ‘느진거무춤’(중모리형), ‘거무춤’(굿거리형), ‘당거무춤’(자진모리형)을 추고나면, ④어포(명태포)을 들고 모름채 장단에 토구름춤과 어포춤을 춘다. ⑤축원무가와 팔도민요, 가요 등을 부르고, ⑥사자풀이채(장단)에 술잔과 신칼을 들고 수부사자무가를 부르고 마친다. 그러나 변형구조는 첫째, 청보장단 대신 제마수장단으로 무가를 하는 <심청거리>, <세존거리>, <걸립거리>, <손님거리> 등 4가지는 긴 서사무가를 부르는 굿거리이다. 둘째, <조상월래거리>는 별신굿이 아니라 오구굿의 내용을 차용한 것으로 엇청보장단을 쓴다. 엇청보 1장은 푸너리를 친 다음에 시작하여 양중이 "이여어~얼씨구나!”라고 구음바라지를 하면, 이를 받아 무녀가 무가를 시작하며, 장구와 징 반주에서 징은 뒷면을 막고 나직이 친다. 셋째, 푸너리장단을 사용하지 않는 <도가집굿(제주집안굿)>, <꽃노래>, <뱃노래>, <등노래>, <대거리>가 있다. 넷째, 조너리장단과 대너리장단은 <문굿(문당굿)>, <장수거리>에서 쓰인다. <문굿>에서 무녀와 양중의 밟이춤의 반주장단이다. 오신(娛神)과정의 본격적인 굿거리의 시작 <가망거리>, <제석거리>, <세존거리> 청신과정을 마치면 이제 본격적인 오신과정의 굿거리가 연행된다. 오신의 첫 거리는 <가망거리>이다. 가망신은 무속에서 가장 근원이 되는 신령의 이름이다. <가망거리>는 신령들의 근원(根源)을 관장하여 굿문을 열고 신령과 인간이 만날 수 있게 하는 굿거리로 항상 큰 굿의 초반에 행하여진다. 굿당 밖에 가설한 식당에서 주민들(신암마을부녀회)이 마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니 13시 30분(90분간)에 <가망거리>가 시작되었다. 김동연 무녀(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와 김정희 양중(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이 굿을 연행하였다. 다음은 프로그램의 순서를 바꾸어 <제석거리>를 연행하게 되었는데 15시 7분(90분간)부터 홍효진 무녀(전수생)와 정연락 양중(전수조교)이 연행하였다. 제석신은 재복을 관장하는 신이며, 세존신은 아이의 잉태, 출산, 성장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시고 있다. 흔히 제석과 세존은 같은 신으로 혼용하기도 하지만 동해안별신굿에서는 굿거리가 나누어져 있다. <제석거리>는 앞서 밝힌 6단계의 기본구조로 푸너리춤, 청보무가와 춤, 거무춤, 토구름춤, 어포춤, 축원민요, 수부물림 등으로 연행하였다. 이어서 <세존거리>와 <도둑잡이거리>는 16시 37분(165분간)부터 김영숙무녀(전수조교)와 김용택 양중(보유자)과 모든 양중들이 연행하였다. 오신과정에 나타난 굿거리에서 축원하는 신과 무가와 사설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연행구조를 보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기본구조와 변형구조로 구분되어 있다. 특히 춤 관련에서는 굿거리마다의 유사성이 많아 각 굿거리마다의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기본구조의 공통성과 연행자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다음호에 종합적으로 정립하기로 한다. 또한 변형구조로 되어있는 <세존거리>는 그다음 호에 칠암별신굿에서 연행되는 내용과 통합 분석하여 춤의 형식을 제시하기로 한다. <성주거리>는 성주신을 모시고 해학적으로 풀어나간 다양한 ‘흉내춤’이 일품 <성주거리>는 집안의 수호신인 성주신을 모시고 가정의 평안을 비는 굿거리로, 성주는 집안의 대주를 지키는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19시 22분 김동언 무녀와 김동열 양중이 주도한 성주거리는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거나 복을 빌 때 부르던 성주풀이 내력을 굿판에 해학적으로 전개하였다. 먼저 푸너리춤으로 굿을 시작하여 청보무가로 이어지는 기본구조로지만, 내용면에서는 독특한 연행으로 굿판의 첫날 일정의 클라이맥스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성주내력의 무가내용은 "이 동네 자손들 명을 주고 복을 주고 안가태평 부귀공명 시화연풍 국태민안 시킬 때 어느 가정에 성주가 없을까요? 집에 계시는 성주님네 대들보 대성주 천년성주 만년성주요 일도본당에 당상에 자리 잡고 계시는 대들보 대성주. 오늘은 성주를 고치고 성주를 자리 좌정시켜 붙이고 모시고 성주님을 모실 때 본이 어디고?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이 본일레라. 제비원에서 솔씨를 받아 산천에 던졌더니 낮에는 볕은 받고 밤이면 이슬 받아 산신님네 북부도고 용왕님네 도움 받아 낙낙장송이 되었구나!...”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대목장의 톱질 흉내, 풀무질하는 소리와 동작, 입술을 데어 놀란 입과 눈 연기, 톱니벼르기와 물에 당금질 소리와 흉내, 톱질노래와 다양한 톱질소리 흉내 등으로 웃고 즐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렇게 가꾸어 큰 재목으로 키워서 통나무 잘라 대들보 만들고 집을 지은 뒤 세간을 들여놓은 뒤 성주님을 모시고 풍요롭고 다복한 살림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그리고 "우여차 성주님네 모시고 놀고 씨고 가자 으아!” 하며 거무춤을 추고 굿당 안으로 들어가 소지하고 합장 재배한 다음 명태포 뭉치를 들고 나와 모름채(휘모리형에서 단모리로 끝남)장단에 신칼과 어포춤을 춘다. 다시 굿당 안으로 들어가 어포를 내려놓고 한지로 된 성주신위를 막대 끝에 얹어 제관에게 대들보에 붙이게 하며 양손을 비비며 축원한다. 다시 시도하여 천장 벽에 붙자 성주님이 집안에 잘 붙었다고 양손을 흔들며 허튼춤을 춘다. 이어서 풍농을 기원하는 농부가를 부르면서 무녀들이 모두 나와 모내기 김매기 농사 흉내를 낸다. 또한 농악을 모방하는 춤으로 꽹과리로 버꾸춤 흉내(농악기를 굿판에 사용할 수 없어 반주악기인 쇠로 대신함), 신칼을 머리에 대고 신칼의 지전을 흔들면서 상쇠 부포춤 흉내, 부채에 수건을 매어 흔들면서 상모춤 흉내를 내며 농악의 흥겨움과 풍년을 기원한다. 주민들 앞으로 나와 이제 성주님의 덕으로 집안이 평안하니 다음은 풍년들기를 기원한다면서 농부가를 부르면 다른 조무들이 나와 함께 돌아가며 부른다. 꽹과리로 소고춤 군무로 흉내(농악기를 굿판에 사용할 수 없어 반주악기인 쇠로 대신함)로 소고 기본치기로 돌기, 소고 발찍고 제자리돌기, 안쪽보고 앉아 땅 찍고 치기, 원으로 돌며 앉자 땅 찍고 발차며 돌기 등으로 소고춤을 춘다. 다음에 독무로 홍효진 무녀가 부채 끝에 수건을 두 개를 이어 매달아 손으로 들고 채상 상모춤 흉내로 수평 휘돌리며 돌기, 제자리에서 좌우로 뛰며 좌우∞자 돌리기, 앞뒤로 뛰어나갔다 물러나며 휘돌리며 앞으로 꺾기, 앉았다 뛰며 휘돌리기, 제자리에 빠르게 앉았다 일어서며 휘돌리기로 마무리 한 다음 휘돌리며 원으로 돌다가 맴돌이춤을 뱅글뱅글 돈다. 이어서 다시 12발 상모 흉내춤으로 천천히 긴 12발 상모를 천천히 돌리며 원을 크게 돈 다음 제자리에서 크게 흔들다가 앉으며 돌린다. 앉아서 돌리기, 좌우로 ∞자 돌리기, 옆쪽으로 누어돌리기와 반대쪽으로 바꿔 돌리기, 박수치기 유도하기, 귀 뒤에 손을 대고 박수소리 크게 나는지 확인하기, 일어나서 좌우치기, 맴돌이로 빨리 돌리기, 다시 ∞자 돌리기, 인사하기로 마무리 짓는다. 김동언 무녀가 꽹과리를 들고 나와 다양한 상쇠가락을 친 다음 상쇠잡이들의 춤을 흉내 낸다. 이어서 축원민요로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로 창부타령 등 여러 민요를 부르고 가요도 부른다, 마지막 축원무가를 부르고 빠른 수부채가락으로 술잔을 들고 수부물림으로 마친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신암별신굿이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첫날 굿 7거리를 마쳤다. 인구 1000명이 산다는 아담한 어촌마을에 5년마다 열리는 풍어제에 온 마을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물론 굿판에 동참하는 이들이 마을의 할머니와 주부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찬조금을 내어 줄에 걸려있는 찬조자들은 거의 남자들이고 마을의 이장과 제관, 노인회장 등 직책으로 참여한 이들도 대부분 남자들이다. 부녀회에서 가설식당을 차려 온종일 무당들과 주민들과 각지에서 연구차 찾아온 학자와 연구자들이다. 겨울의 끝자락이지만 아직 추위와 바닷바람을 견디며 굿당 앞에서 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굿판과 구경판을 조립식으로 천막과 단열바닥판과 난방시설과 음향시설 등 닷새 동안의 축제를 불편 없이 연행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놀라운 것은 굿거리마다 주민들이 무녀의 가슴 띠에 꽂아주는 별비가 생각보다 많았는데 만원권들로 띠가 미어질 정도였다. 할머니들, 주민대표, 주부들이 수시로 동참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축원해주는 감사의 뜻으로 별비를 내는 마음들이었다. 풍어제의 의미를 가진 별신굿이며 가정의 평안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음들이 모여서 신명의 굿판이었고 행복한 놀이판이었다. 다음 호에는 둘째날과 셋째날의 굿거리 내용을 살피고 기본구조의 ‘푸너리춤’과 ‘거무춤’에 대한 집중분석으로 춤의 연행구성을 최초로 정리하며, 변형구조의 굿거리의 특수한 춤들도 고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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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국내춤기행, 동해안 별신굿, <세존굿> ‘중춤’은 전통춤 ‘승무’와 연관성이 있을까?'세존거리'의 중춤 한국의 굿에서 불교적인 연관성을 지닌 굿거리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진도씻김굿의 <제석거리>, 서울·경기도당굿에서 <불사거리>, <제석거리>, 황해도굿의 <제석거리>, <칠성거리> 등이 고깔을 쓰고 불교적인 의식을 연행한다. 동해안별신굿에서는 <제석거리>와 <세존거리>가 있다. 제석신은 재복을 관장하는 신이며, 세존굿은 고깔을 쓰고 ‘중춤’을 추고 ‘바라춤’을 추지만, 아이의 잉태, 출산, 성장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시고 있어 명칭과는 달리 많이 변이된 내용으로 전개된다. 또한 흔히 제석과 세존은 같은 신으로 혼용하기도 하지만 동해안별신굿에서는 굿거리가 나누어져 있다. 제석거리의 연행구조는 6단계의 기본구조로 푸너리춤, 청보무가와 춤, 거무춤, 토구름춤, 어포춤, 축원민요, 수부물림 등으로 연행하였다. 세존거리의 연행은 변형구조로 되어 있어 연행이 조금 다르다. 푸너리춤에 이어 제마수장단의 당금애기 서사무가와 춤(1시간30분), 드렁갱이와 삼오동(삼오장)장단에 중춤, 바라춤을 추고 마쳤다. 세존거리는 변형구조로 되어 있어 연행이 조금 다르다. 부채와 고깔을 들고 푸너리춤에 이어 제마수장단의 당금애기 서사무가와 춤(1시간30분), 드렁갱이와 삼오동(삼오장)장단에 중춤, 바라춤을 마친다. 이어서 무악이 계속되는 동안 무언극을 한다. 노승이 부채를 쥐고 자다가 긴 하품을 하고 이를 잡아먹는 시늉, 양치질과 세수하고 화장하기, 거울보기 허리띠 풀어 짚신 엮기를 한다. 무언극이 끝나면 무녀는 일어나서 다시 빠른 춤을 추다가 바라(제금)을 들고 춘다. 특히 ‘중춤’은 <세존거리>에서만 추는 춤이다. 이번 신암별신굿에서 세존거리는 원로 무녀 김영숙 무녀와 김용택 양중이 연행하였는데 연행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무녀가 당금애기 무가를 마치고 활옷과 고깔을 쓰면 양중들이 드렁갱이장단으로 빠른 분위기를 바꾼다. ①무녀는 활옷장삼자락을 좌우로 뿌리면서 왼쪽으로 한 바뀌, 오른쪽으로 한 바뀌 돈다. ②앞을 향해 엎드려 한동안 꿈쩍하지 않고 마치 승무의 복무(伏舞)처럼 움직임이 없이 부동자세이다. ③ 양중이 삼오동 1장단(♩×5×3박 -첫박 1징)에 "중아 중아 너 어디~”하고 사설무가를 하면 무녀는 몸을 꿈틀이며 고개를 조금씩 흔든다. ④ 엎드린 채 장삼을 한 팔씩 돌려 머리 위로 올렸다 내리고 좌우로 흔든다. ⑤ 다시 좌우로 장삼을 흔들어 머리 위로 한 팔씩 얹어 모은다. ⑥ 삼오동 2장단(8박중 1,2,3,5박-불규칙적 징)에 고개를 약간 들고 다시 한 팔씩 휘감아 모리에 얹었다 내리고 양팔을 좌우로 ∞자로 흔든다. ⑦ 고개를 들고 다시 한 팔씩 돌려 머리 뒤로 얹었다 내리고 반대 팔로 반복한 다음 양팔을 동시에 휘저어 머리에 얹었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⑧ 일어서서 장삼을 휘저으며 왼쪽으로 450도 돌아 우측방향을 향해 앉아 한 팔씩 흔들어 얹었다 내리고 양팔 동시에 흔들어 얹고 뿌린다. ⑨ 일어서서 양팔을 흔들며 오른쪽으로 540도 돌아 좌측을 향에 앉아 반복해서 한 팔씩 흔들고 얹고 양팔을 흔들 뿌린다. ⑩ 다시 일어서서 오른쪽으로 돌며 오른팔을 들어 뿌리고 왼쪽으로 돌며 왼손 뿌린다. ⑪ 장삼을 좌우로 크고 빠르게 흔들며 앞을 향해 전진후진 하면 삼오동3장단(빠르고 규칙적 징)에 좌우치기, 상하치기, 감아치기로 빠르게 흔든다. ⑫ 뒤로 돌아 굿당을 향해 좌우치기, 감아치기, 몰아치기, 비빔무관, 도리깨무관 등 손신무관으로 빠르게 뛰며 다양한 손춤을 춘 다음 천천히 왼쪽으로 돌아 장삼을 서서히 흔들고 앉는다. ⑬ 두나백이장단(징을 2번씩)에 앉아서 하품을 하며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가만히 있다가 머리를 끄덕끄덕 흔든 다음, 부채를 내리고 있다가 다시 머리를 끄덕끄덕 흔들며 존다. ⑭ 양치질 시늉과 물을 손으로 떠 입에 넣고 입 헹구기와 품기 두 번 시늉. ⑮ 세수하고 비듬 털고 머리 다듬기 ⑯ 부채거울 보며 얼굴 매무새 하고 좋다고 끄덕이기 ⑰ 가슴 띠를 앞으로 돌려 낸 다음 발가락에 끼고 엮어 짚신삼기 시늉 ⑱ 장단을 멈추게 하고 제주를 불러 발에 맞춰 보이고 짚신값을 부채에 받는다. ⑲ 두나백이2장단에 굿당을 향해 장삼을 흔들며 두 바퀴 돌아 굿당을 향해 절을 하고 마친다. ⑳ 장단이 멎으면 활옷을 벗는다. 이어서 양중이 장고만 치면서 "나무아미타불 원왕생 왕생~어떤 스님 꽝새들고 어떤 스님 죽비들고 어떤 스님 바라들고~” 하면서 염불소리를 하면 활옷을 벗고 고깔을 쓴 채 쾌자와 가슴띠 매무새를 다듬는다. 다시 굿거리장단으로 꽹과리, 징, 장고, 태평소가 합주하면 무녀가 손춤을 춘다. 왼손 들고 오른손 뒷짐지고 제자리에서 지숫고 반대로 지숫고 전진하였다가 왼쪽으로 돌아 굿당을 향하여 양손을 천천히 흔들며 허튼춤을 춘다. 다시 천천히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 양손을 들어 흔들다가 내려 앞뒤로 여미고 제자리에서 어른다. 다시 좌우세로 천천히 흔들고 전진하였다가 왼쪽으로 돈다. 덩덕궁이장단으로 빨라지면 팔을 들고 자진 허튼춤을 추며 돌고 제자리에서 어르고 좌우세를 한 다음 바라 앞에 엎드려 좌우로 팔을 흔든다. 바라를 쥐고 앉은 자세에서 고개를 들고 양팔을 벌려들고 바라만 휘돌리고 한쪽씩 바라를 휘돌린다. 바라를 친다. <세존거리>와 연행하는 <도둑잡이거리>의 희극적인 재담과 ‘병신춤’ 마을 제관을 불러 ‘상제’라고 칭하며 뒤에 앉힌다. "명밥도 먹이고 복밥도 먹입시다. 우리 상제 명과 복을 받게 해주어야 하는데 일어나 먼저 춤을 추어야 복 받으니 춤을 추세요.” 자진모리를 치나 제관이 허튼춤을 덩실덩실 춘다. 무녀가 쓰고 있던 고깔을 벗어 씌워주며 고깔값을 받는다. 이어서 활옷도 입히고 중바랑도 어깨에 걸치고 꽹과리를 주고는 마을에 가서 시주해 가지고 오라고 주민들에게 보내고 중염불을 부른다. 꽹과리에 시주돈을 모아오면 염불축원을 마친다. 양중이 "시주 해왔다! 거기 앉으소!” 해놓고 "이 동네 도둑났다!” 하면 양중대표가 나와 <도둑잡이>를 진행한다. 이처럼 양중들이 굿거리 중간에 희극적인 놀이로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곤반’이라고 한다. <도둑잡이거리>는 마을의 재물을 보호하고 손재를 막기 위한 남무들의 놀음거리로 세존굿에 이어 연행하기에 <세존곤반>이라고도 한다. 도둑잡이에 나오는 반주는 기악합주로 굿거리, 휘모리, 단오리이며, ‘병신춤’에는 타령장단을 연주한다. 18시 50분 먼저 양중대표가 등장하여 "났다 났다. 신암리 대동에 중도둑이 났다. 우리 얼사촌부터 불러보자. 부산의 칠암리에 사촌아! 서울에 사촌아!.....”하면 반주하던 양중이 하나 둘씩 앞으로 나오고 장고와 징 반주자만 남는다. 다함께 창부타령을 돌아가며 노래한다. "자! 도둑 잡으러 가자! 중아!”하고 주민들이 구경하는 장내로 모두 퍼져나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양중 하나가 징채를 들고 앉아 있는 중 앞에 절하듯이 물구나무 서다가 털썩 엎드린다. 일어나 병신춤을 춘다. "도둑잡다가 병신됐다!” 양발 ‘안짱다리춤’, 징채를 흔들며 ‘곰배팔이춤’을 춘다. 다른 양중이 징채로 중의 고깔을 쳐 벗겨버린 다음 엎드려 절을 하다가 일어나 안짱다리와 ‘뻗정다리춤’을 춘다. "풍 맞았다. 한방에 가서 침 맞아야 된다!” 또 다른 양중이 중 앞에 물구나무서기로 절을 하다가 일어나 ‘얼굴병신춤’으로 ‘할개눈춤’과 ‘합죽볼춤’로 표정연기를 하면서 ‘어깨삐뚤춤’을 곁드린다. 또 다른 양중이 징채를 받아 주민들 앞으로 뛰어가 넙죽 엎드려 물구나무서기로 절을 한 다음 ‘곱추춤’을 추며 시주돈을 달라고 한다. 계속해서 양중들이 차례로 시줏돈을 받아오면 중한테서 바랑을 받아 들고 나와 도둑맞은 물건을 하나씩 꺼내며 "아이고! 큰일 났다!” 하면서 쌀 헹구는 조리를 꺼낸다. "이건 절의 은저다!” 조리를 중의 고깔을 벗기고 어깨에 얹힌다. 이번엔 "길다!” 하면서 밥주걱을 꺼내들고 "절간 똥간에서 밑 닦은 것이다.” "아니다. 은박주 놋박주다” 다시 중의 어깨에 얹는다. 이번엔 바랑에서 물바가지를 꺼내 머리에 씌운다. 사과를 꺼내어 천도복숭아라고 하며 노인회회장 주라고 전한다. 귤을 꺼내 이건 알이다. 홍두깨를 가까스로 꺼내들고 갖은 재담들을 늘어놓으면서 굿판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다시 바랑에 주어 담아놓으면 무녀가 나와 술비소리를 하면서 중을 춤추게 하고 활옷을 벗게 하고 굿당에 재배하게 하고 마친다. 무녀가 수부잔을 굿상에서 들고 나와 사자풀이채에 맞춰 수부물림소리를 하고 술잔을 굿당 밖에 뿌리고 마친다. <세존거리>의 ‘중춤’과 전통춤 ‘승무’, 탈춤 ‘노장춤’의 근원성이나 연관성 이번 동해안별신굿 기행에서 필자가 주목한 굿은 <제석거리>와 <세존거리>였다. 그것은 우리 전통춤의 백미(白眉)라고 일컫는 ‘승무’와의 연관성이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승무는 춤사위의 멋과 춤가락의 흥을 고루 갖춘 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무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입증자료나 변천과정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실정이다. 승무의 유래에 대하여는 불교의식무 기원설과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황진이의 무용설, 파계승의 번뇌에서 기원한다는 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 설, 그리고 가면극의 노장 과정에서 유래한다는 설 등 그 기원설이 구구하나 어느 것이 확실하다고는 단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승무와 불교의식무의 법고춤은 그 기법이 같고, 승무의 춤사위 구성이 불교의식무의 춤사위들과 관련 있다는 점, 반주음악이 염불로 시작되는 점, 몸과 발의 놀림, 장삼을 사용하는 법 등으로 승무가 불교와 법고춤에서 그 기원을 이루었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숭유억불 정책에 영향을 받아 종교예술에서 민간예술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민간예술로 자리잡아가며 점차, 승무는 변천과정을 거쳐 조선조 말에 이르러 하나의 예인춤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갖가지 형태로 발생되어지는 것이 전통예술의 특질이기 때문에 어느 것으로부터 기원되었으며, 그 최초의 형태는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가를 단정짓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식무 기원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지만, 어떻게 하여 기원과는 전혀 다른 예인춤의 대표작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의 전이과정을 밝혀야 할 과제가 남는다. 굿은 아주 오랜 한국역사 속에서 한국인들의 삶 속에 전승해온 춤으로 승무의 전승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이나 연관성이 있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특히 승무의 시작에서 보이는 복무(伏舞)와 같은 중춤의 시작, 고개들고 장삼춤, 일어서서 추는 장삼춤 등의 춤사위의 유사성, 제석거리와 세존거리라는 불교관련 명칭, 고깔을 쓰고 장삼을 입은 무복과 무구 등에서 승무와의 유사성도 보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 탈춤에 나타난 파계승들의 노장춤의 춤사위 구조와도 유사성이 많았다. 노장춤에서도 복무와 고개 들고 장삼춤, 일어서서 소무들 향한 장삼춤들과 세면하는 무언동작까지도 세존굿의 중춤과 무언춤이 상호간 유사성이 많은 것은 단순한 우연을 뛰어넘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동해안별신굿 춤기행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1976년 10월17일, 제7회 동해안 무속무용발표회, 서울예술고등학교 강당에서의 굿판이었다. 그러니까 40년 전으로 돌아가 고 정병호(중앙대, 춤평론가)교수가 조직한 한국전통춤연구회가 전국의 전통춤 명인과 민속단체를 초청하여 서울무대에 소개 시키던 작업에 함께 참여하면서 봤던 당시 김석출 일가가 보여줬던 동해안별신굿의 면모와 전승을 다시 재현하는 굿판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고 김석출과 그 가족들 중에 큰 따님인 김영희 보존회장이 이제는 고령의 보유자가 되었고, 둘째와 셋째 딸과 손자 내외 세대가 굿의 주역을 맡고 있는 것도 새로웠지만, 특히 오래 전일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굿거리는 역시 세존거리였다. 당시에도 전통춤 ‘승무’와 탈춤의 ‘노장춤’의 춤사위와 마임춤들의 유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번 굿판에서도 똑같은 감흥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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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사암리어린이농악단을 꿈꾼다지난달 춘천사암리농악회에서 주관한 '제4회 사암리공지어샘굿'이 지역 주민의 참여와 성원으로 성공적으로 마치었다. 공지어 전설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와 마을 곳곳에 공지어를 줄에 걸어두는 설치미술이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국악신문에서 '춘천 사암리 샘굿' 행사 기사를 내보내고 나서 이 행사를 주관한 춘천사암리농악단 오선주 단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되었다. 왜냐하면 잊혀져 가는 마을제의 복원과 샘굿의 주제를 전설의 물고기 '공지어'라는 신성한 대상을 구현해 내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을 담보한 공지어는 샘에서 사는 주인장이고, 물의 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공지어에게 소원도 빌어본다. 특히 샘굿에서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가 공지어를 표상하는 퍼포먼스까지 더한 콜라보는 마치 한장의 그림처럼 각인이 되어버렸다. 마을제 샘굿의 전승주체는 마을사람들과 사암리농악보존회이다. 특히 여성이 상쇠라는 농악단이라서 더욱 오선주 단장을 만나보고 싶었다. Q. 안녕하세요. 오선주 단장님, 서울 출생이신 분이 어떤 계기로 전통을 만나서 '농악'을 택하고 오늘까지 춘천사암리농악보존회를 이끌어 오셨는지요. A.광화문에 있던 경기여자고등학교 학예회 무대에서 '소고춤'을 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때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봉산탈춤 김선봉선생님께 탈춤을 배우면서 즐겁고 낭만에 젖었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고, 1996년 대학로에서 풍물 동아리 '굿누리'를 결성해 활동하다보니, 서울에서 소도예술단 상쇠로 활동하고, 2006년 정철기 선생의 '부포놀음' 장르까지 욕심이 나서 찾아가서 부포 돌리기까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2000년부터 마임이스트인 유진규씨와 함께 해마다 프랑스 미모스축제.영국 런던마임축제.독일 하노버엑스포,벨기에 하멜축제 등에 참가하여 상술놀이반주와 상포판굿 공연을 하면서 문화교류 민간외교사절단의 역할도 톡톡히 했습니다. 이후 남편을 따라서 춘천에 정착하게 되면서, 2005년부터는 춘천문화원에서 사물놀이와 농악을 지도하게 되었으며, 2009년 중국에서, 우리 한반도에서 발생한 농악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것을 보고 크게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후 2011년 문화원에서 사암리농악학술조사를 위해 사암리에 파견되면서, 나중에는 사암리에 이주하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고, '사암리 농악'과 반평생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Q. 본업인 농악보다도 '남사당놀이'를 먼저 배우게된 계기는, 남사당놀이 전수는 누구에게 받으셨나요? A. 풍물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있던 차에 이화여대 다니던 20대 초 시절,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님이 기획하신 '발탈' 공연을 너무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생생해서 가슴에 담고 있다가....풍물과 인형극이 어우러지는 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남사당놀이' 보유자이신 고 박용태(1944년) 선생님을 찾아가 '꼭두각시놀음'에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남사당놀이를 배우려다가 욕심이 나서 다른 장르의 농악도 함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Q. '꼭뚜각시놀음'은 누구에게 전수받으셨나요. A. 고 박용택 선생님께 '꼭뚜각시놀음'을 전수받았습니다 아쉽게도 인형극 연습은 많이 못하고 풍물 반주에 관심이 더 있어서, 남사당놀이 중 농악 풍물공부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Q. '대전웃다리농악'도 사사했는데 스승의 계보를 밝히신다면? A.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대전웃다리농악'을 인간문화재이신 송덕수'선생님을 찾아가 공부하여 전수자가 되었습니다. 전수조교 김은빈 선생님과 김경수 사무장님께서 보조 강사로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해마다 '농악전수 여름캠프'에 참여해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Q. '사물놀이'를 언제부터 배웠는지요. A.사물놀이 공연은 1978년 공간사랑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매료되었으며, 직접 배우게 된건 1992년 춘천 사회문화연구회 강습을 통해서이고, 1993년에는 ‘우리소리' 풍물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96년 여성풍물패 '굿누리'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공연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소리에서 활동하던 분들과의 인연은 사암리농악단까지 어어지고 있습니다. 오단장은 여고시절 소고춤을 접하고 대학시절 발탈을 보고 영감을 받고나서, 고 김용택 선생님을 찾아가 '꼭두각시놀음'에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남사당놀이를 배우려다가 농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Q. 농악을 하시는 분들이 탈춤. 회심곡, 비나리 같은 장르도 배우시는데. 오단장님은 민속문화, 즉 전통예술 장르 중 더 배우고 싶은 장르는 무엇인가요? A. 저희 동네에 강원도 도청 신청사가 신축되는데, 전통방식으로 부르는 토속소리 '지경다지기'를 배워서 농악단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 마을 공동체사업중 하나인 '농요배우기' 시간에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지경다지기소리'를 전수받을 계획입니다. 마을제 '샘굿'과 사암리농악보존회 Q. 사암리농악보존회를 결성하게된 계기 A. 2013년 춘천문화원학술대회에서 중국에서 2009년 유네스코에 등재돼 중국 조선 동포들이 향유하는 '농악무'의 뿌리가 "1927년 춘천 사암리 주민들이 가난을 피해 중국으로 이주해 영벽에 자리잡게 되었고, 낮선 이국땅에서 배고품과 추위를 달래기 위해 영벽바위 밑에서 풍물을 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랬다"는 길림신문에 난 기사를 바탕으로 자료 수집을 위해 사암리농악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게 되었고 그 당시 생존해 계시던 97세 상쇠 최정하 옹을 만나 많은 고증을 통해 최상쇠님이 중국으로 이주해 간 선조들이 춘천에서 농악할 때, 무등을 타셨다는 사실, 또한 송봉규, 송학규, 김봉렬, 신현수님, 등 1950년대에 농악을 하셨던 어르신들의 고증도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파도파도 끝이 없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물지도가 사임리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인류문화유산을 발굴해 가는 체계적인 과정을 이어 나가고자 2015년 보존회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Q. 농악대를 이끄는 여성 상쇠로서의 자부심이 어떤가요? A. 딱히 괭과리 소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1992년 취미생활로 참가한 '춘천사회문화연구회'에서 그나마 빨리 장단의 구조를 이해하다 보니 상쇠를 맡게된 후로는 계속 제 역할이 꽹과리를 맡게 되어 자연스럽게 꽹과리 인생이 풍물인생이 된듯 합니다. Q. 1999년 제1회 강원도 사물놀이 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하신 감동? A. 대상을 타기는 했는데 1회로 끝난 의미없는 대회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제 이력에서 삭제하겠습니다. 수상해서 기뻤던 것은 2010년 강원도 문화원 사물놀이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으로 그 당시만해도 일반인이 상모돌리면서 연주하는팀이 거의 없었던 시기인데. 제가 지도하는 춘주농악팀 전원이 상모를 돌리며 연주하여 관객들이 깜짝 놀라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2017년 전국웃다리경연대회에서도 제가 지도하는 춘주농악팀이 차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Q. 2010년 전국농어민 풍물경연대회 강원도 대표 참가하셨는데, A. 춘천문화원에서 농악을 지도하다보니 전국대회에 까지 자연스럽게 참가하게 되었고 하도 긴장을 해서 우리가 어떻게 했냐보다는 전국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보며 흥미로웠고 남산한옥마을 구경하며 즐거워 했던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Q. 평창올림픽 때 어찌해서 참가하게 되었는지요? A. 평창문화올림픽 연출하시는 백형민 선생님과의 인연이 있어 문화버스킹 공연 총3회 참가하는, 저에게는 너무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Q. 작년 예술의 전당 유진규 마임 50주년 기념 헌정공연으로 농악을 선보였는데, 궁금합니다. A. 유진규씨와는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을 맡았던 2002년부터 프랑스 페리그 미모스마임축제, 영국 런던마임축제, 독일하노버엑스포, 네덜란드 하멜축제, 벨기에 마임축제,일본 도야마 마임축제, 홍콩 프린지 초청공연, 중국 상하이국제연극제 등에 참가했던 작품 "빈손”의 사물놀이 반주자로 오랜기간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임인생 50주년기념 헌정공연을 서울 예술의 전당과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기획하여 초청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런 뜻깊은 공연을 마치고 커텐콜을 할 때, 남편이 뜬금없이 관객을 향해 그동안 내조를 해 준 저를 언급해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한평생 예술가라는 외길 인생을 걸어온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난관들이 이상하게도 한번에 다 보상받는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Q. 2007년 풍물부 장원을 받으셨는데, 사진이 있나요? A.아쉽게도 그 당시 찍은 사진은 없고, 그 다음해 포스터에는 전해년도 장원 수상하는 사진이 들어가는 관습이 있어서, 제가 들어간 팜플렛 사진을 찾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Q. 해외공연 중 기억에 남는 장소는 A. 해외공연중에는 그저 비행기 타고 가서 공연장 주변에 숙소를 구하고 공연장 리허설, 그리고 공연후 귀국 등 바쁜 여행일정이었는데, 딱 한번 프랑스미모스축제 참가 후에는 공연을 마친 후 거의 한달간 벨기에,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등 주변,국가를 자유롭게 여행 다닌 기억이 제일 추억에 남습니다. 마침 축제기간과 겹쳐서 민속공연도 볼 수 있었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국적불문하고 모두 통한다는 거죠. 외국어를 서로 몰라서 말이 안 통해도 예술은 통한다는거죠.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국민들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Q. 존경하는 국악인은 누구신가요? A. 농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안성바우덕이' 상쇠입니다. 19세기 대원군이 경복궁 중수시 전국에서 강제동원된 젊은이들이 고향이 그리워서 밤마다 궁에 불을 지르자. 대원군이 이들을 위로하게 위해 전국 소리패 광대패들을 서울로 올려서 전국 단위 콘서트를 벌렸죠. 거기서 최고상으로 옥관자를 받은 바우덕이입니다. A. 전통이란 무게를 30여 년 동안 가지고 오시면서 가볍지는 않은 시절을 보내셨는데.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은 언제이셨는지요. Q. 의무기록을 보니 2010년에 뇌수막종 수술 받았네요. 너무 어지러워서 하던 농악 전수 공부를 더 이상 못한 게 가장 아쉽습니다. 이후에 이 전통놀이 농악대가 저를 살려낸 거지요. 우울하다가도 벽에 걸린 상모를 보면 농악이 생각나고. 그러면 몸을 추수려서 밖에 나가게 되지요. 그래서 지금은 완치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어요. 전환점이 된거지요. 다행인건 그 덕분에 우리 마을에 더 애정을 갖고 집중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살아야 인간이 산다" Q.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과 이번 공지어축제를 같이 해보시고, 유진규 선생과 앞으로 '농악+퍼포먼스' 콜라보 작품 구상을 하시는지요. A.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동내면 '대룡산 공지어놀이'에서 유진규씨가 총연출, 제가 기획을 맡았습니다. 사암리 대룡산과 공지천 공지어를 잇는 스토리텔링으로 첫번째는 사암리 약물샘에서 샘굿으로 제의적 축제를 벌였고, 두번째는 동내면민이 함께하는 마을축제와 소리꾼을 찾는 경연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몸짓으로 제의적 행위를 할 때에 원초적 소리도 있어야지요. 반주가 곁드려져야 더욱 효과적이기에 마임과 풍물은 계속 함께 공동작업을 할겁니다. Q. 내년 제5회 샘굿에는 올해와는 좀 더 확장된 새로운 장르를 기대해도 될까요. A. 내년에는 퇴계선생이 공지천에 볏짚을 뿌리자 물고기로 변했다는 전설을 근간으로 공지어 제작에 좀 더 신비한 비주얼을 가미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공지어 설화'를 소재로 한 마술도 축제 마당에 끌어오려 합니다. Q. 올해 샘굿은 언제 개최되었나요. 공지어 샘굿할 때 부르던 노래 가사는 기억나시나요 A. 첫번째 놀이 대보름맞이 ‘대룡산 샘굿’은 지난달 4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사암리 약물샘 (원창고개길 96-1)과 사암2리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신비한 물고기 ’공지어‘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공지천 곰짓내는 사암리 대룡산에서 발원합니다. 가사는 뚫으세 뚫으세 뻥뻥 뚫으세 수정같이 맑은 샘물 뻥뻥 뚫으세 대룡산 하늘기운 맑은물로 콸콸 솟아 곰짓내로 흘러흘러 공지어가 춤을 추니 올해도 풍년이요 내년에도 대풍일세 Q. 올해 제3회 샘굿에서 택한 주제는 '전설의 물고기 공지어'인데 어떤 역사적/지역적 배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신건가요. A. 춘천엔 퇴계 이황선생의 공지어 설화가 있고, 공지어가 살고 있는 곳이 공지천이며 공지천의 원류중 한곳으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암리 약물샘에서 깨끗한 물과 대기순환을 기원하는 '생명굿'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Q. 내년 사암리 샘굿의 주제나 슬로건에 대해, 기획의도에 대해 구상해 놓으신 것이 있나요. A.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살아야 인간도 산다" 즉,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석유보다도 물이 더 비싼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평소 늘 생각한 이 말이 사암리 공지어전설과 맞아지고, 실제 전해지는 전설의 장소가 있습니다. 사암리 주민들이 지켜나갈 책임이고 과제라고 봅니다. Q. 이번 제3회 샘굿 개최에서 성과는 A.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마을사람들과 하루종일 얼굴 맞대고 볏집으로 공지어를 999마리 만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겨운 시간들을 공유했습니다. 이쁜 공지어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면서 마을 곳곳에 매달면서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Q. 언제나 마을제 샘굿을 함께 하시는 남편, 동반자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예술가 유진규 소개하신다면? A. 1981년 국악 관련 행사에서 만나 결혼을 해서 40년이 넘게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누구에게나 두절 두절 말이 없는 편이시고, 공부를 많이 하십니다. 시사, 철학, 다큐 등...늘 그냥 지나치는 것이 없습니다. 하늘 땅, 물... 등 발밑에 있는 개미까지.....최근에는 청개구리 집을 만들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말한 것(작품)은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믿고 따르는 국내외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진규 하면 '신뢰' 그 자체입니다. 춘천마임축제가 런던 마임축제, 프랑스 미모스축제와 함께 세계 3대 마임축제 중 하나로 정착하는 데는 유진규 선생의 신뢰가 모든 사람들을 집결하게 했습니다. Q. 단장님, 춘천사암리농악보존회의 미래를 위한 계획은 A. 사암리 마을에 다시 사람들이 살러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귀촌을 하고, 어린이들이 태어나고, 학교종이 울리는 것입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사암리농악보존회입니다. 그러면 힘이 나서 더 북을 치고, 어린 계승자들도 이어질거고, 욕심을 낸다면 향토문화재가 되어서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는 지속가능성을 확고히 하는 겁니다. Q. 단장님, 사암리농악보존회 리더로서 꿈이 있으시다면? A. 어린이농악단을 결성하여 사암리농악을 전승하려는게 제 목표입니다 올해부터 어린이농악단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춘천을 대표하는 어린이농악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전통을 계승하는 꿈나무들을 육성하는 것이 꿈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제가 할 일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조선족의 농악무'를 전승하고 있는 '왕청현농악단'과의 교류를 계속 진행할 겁니다. 3년간 코로나로 서로 오고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김명춘 단장과 오늘도 통화해서 서로 교류하길 원한다고 확인했습니다. 올해 9.9절 조선자치족 행사에도 참가할 계획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는 두 부부 중 한 분은 안정된 직장이나 사업장을 운영할법도 한데, 모두 예술가의 길을 가신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오선주 단장이 자식들을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는 20년 동안만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평생 예술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그냥 웃음뿐이다. 내년 제5회 사암리 공지어 샘굿이 기대된다. 전설 속의 공지어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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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참 좋은 당신/ 김용택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 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추천인: 이무성(화가) 당신은 환한 빛. 당신은 들꽃. 당신은 봄. 나는 당신의 ‘당신’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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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430명·112개 예술단체, 서울문화재단 조직 개편 비판예술인 430명과 112개 예술단체가 최근 단행된 서울문화재단의 조직개편을 비판하고 사과를 촉구했다.'주권자 예술인 연대'로 6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지난달 18일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신임대표는 운영의 효율성을 내세워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을 감행했고, 예술청은 '단'에서 서울문화재단 내 '팀'으로 격하됐다"고 밝혔다.'예술청'은 2016년 서울시의 '서울예술인플랜'이라는 서울시와 민간의 사회적 논의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4월 공모를 통해 선출된 민간위원들로 1기 운영단을 발족하며 서울문화재단과 예술인의 협치형 예술공유 플랫폼인 '예술청'이 세워졌다.주권자 예술인 연대는 "이번 예술청에 대한 서울문화재단의 직제개편은 현재의 예술청이 있기까지 주권자 시민으로서 예술인들이 힘겹게 쌓아온 예술 행정체계의 민주적 전환에 대한 기대와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이며, 협치를 절차상의 목적으로 이용하고 왜곡했던 기관들의 전형적 태도라 볼 수 있다"며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그리고 이창기 대표에게 그 책임을 물으며, 예술청 본연의 위상과 민관협의체로서의 회복을 위한 대책 수립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들은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민관협치를 무시한 조직개편에 대해 해명하고 참여 예술인들에게 책임지고 사과할 것 ▲서울문화재단이 예술청을 무력화하는 조직개편을 즉각 철회하고 민관협치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운영 발전 방안을 마련할 것 ▲서울시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과 함께 민관협치 조례를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성명서에 참여한 개인 430명강동배, 강리, 강민경, 강보람, 강보름, 강량원, 강성원, 강정아, 강제욱, 강지윤, 강진주, 고윤정, 공보현, 공연화, 공영선, 곽경안, 곽혜은, 구구, 구창영, 권기원, 권이은정, 김경진, 김경희, 김고양, 김고운, 김관, 김관지, 김규원, 김남수, 김리안, 김미도, 김미리, 김미선, 김미소, 김미영, 김민경, 김민솔, 김민수, 김민영, 김민우, 김민정, 김민정, 김보연, 김보경, 김봉석, 김상두, 김상훈, 김석정, 김선순, 김세환, 김소연, 김소영, 김수연, 김수열, 김수정, 김수희, 김슬지, 김신록, 김영등, 김영수, 김영원, 김용관, 김용택, 김유진, 김윤규, 김윤미, 김은영, 김은진, 김재상, 김재정, 김재현, 김재훈, 김재희, 김정엽, 김정윤, 김정은, 김정현, 김정혜, 김정훈, 김종석, 김주섭, 김주영, 김지수, 김지연, 김진수, 김진이, 김진주, 김찬우, 김태일, 김투이, 김하람, 김하은, 김한별, 김해원, 김헌기, 김현아, 김형관, 김형군, 김혜연, 김호연, 김홍국, 김홍진, 김효상, 나경민, 나희경, 남선희, 남예헌, 남하나, 노이정, 노익환, 도유, 류동연, 류승각, 류진욱, 마민지, 모호, 목소, 목정윤, 문병미, 문효원, 문재선, 문지원, 문진오, 미어캣, 민성치, 민시원, 박도빈, 박도현, 박래헌, 박병성, 박상욱, 박상조, 박석주, 박선영, 박설아, 박성권, 박성혜, 박세은, 박수진, 박순호, 박슬기, 박용휘, 박인혜, 박정용, 박정의, 박정호, 박종성, 박종윤, 박주현, 박지선, 박진서, 박진영, 박찬국, 박하늘, 박현진, 박혜선, 박휘민, 방혜영, 배요섭, 백경우, 백석현, 백소망, 백진주, 변영권, 변정섭, 보코, 삐삐, 서경선, 서민균, 서상원, 서민성, 서수복, 서정민갑, 서지혜, 석수정, 설동준, 성지은, 손나예, 손병윤, 송기연, 송김경화, 송미선, 송은미, 송주원, 송진호, 신동엽, 신민준, 신샛별, 신성환, 신수지, 신원정, 신윤지, 신재, 신재명, 신재훈, 신주희 신창열, 신혜원, 심소라, 심재욱, 안경모, 안병호, 안보영, 안지민, 안지형, 양미숙, 양은영, 양정현, 양주안, 양혜경, 엔틸드, 여다함, 연리목, 염신규, 영용, 오경미, 오선아, 오성화, 오승원, 오연진, 오윤지, 오헌주, 우희서, 윤푸름, 원나경, 유경민, 유병진, 유소연, 유승진, 유영소, 유진희, 유한나, 윤가현, 윤단우, 윤성진, 윤소진, 윤수종, 윤정현, 윤찬묵, 윤태선, 윤혜자, 이가은, 이강호, 이경은, 이근선, 이근요, 이금구, 이기훈, 이대한, 이동근, 이동민, 이동연, 이두찬, 이려짘, 이록현, 이미경, 이미지, 이보현, 이산, 이상길, 이상덕, 이선경, 이선아, 이성미, 이성직, 이수림, 이수정, 이승구, 이승욱, 이승혁, 이씬정석, 이아람, 이양구, 이예슬, 이우영, 이원재, 이윤신, 이윤정, 이은, 이은경, 이은아, 이장한, 이정은, 이종승, 이주희, 이중덕, 이진엽, 이창훈, 이청, 이충열, 이택윤, 이한주, 이해성, 이현준, 이혜령, 이혜림, 이호, 이희진, 임상원, 임성연, 임영호, 임은선, 임인자, 임정서, 임정자, 임진호, 임현진, 임형택, 자림, 자청, 장도국, 장비치, 장석구, 장은정, 장재석, 장혜림, 장혜진, 장화신, 장효경, 적야, 전령수, 전소현, 전영진, 전인철, 전창호, 전진모, 정가윤, 정기진, 정로빈, 정문식, 정민아, 정서림, 정선혜, 정성호, 정슬기, 정승진, 조아네스, 정안나, 정운교, 정원, 정윤희, 정인, 정재은, 정종임, 정주연, 정진세, 정혜리, 정혜미, 정혜진, 조경아, 조성욱, 조영호, 조은하, 조은후, 조이희, 조장은, 조재헌, 조정근, 조현상, 주미영, 지경민, 지연호, 지우영, 채민, 천샘, 천성대, 최기섭, 최김지정, 최동준, 최민규, 최봉민, 최샘이, 최소연, 최순화 최윤석, 최윤영, 최은선, 최은정, 최인기, 최인화 최정봉, 최종희, 최지원, 최철욱, 최하영, 장효경, 주유선, 주일범, 탁수정, 하소정, 하연화, 하장호, 한경자, 한덕균, 한민규, 한연호, 한정화 한지은, 허나영, 허호, 현석란, 현소영, 현은희, 혜영, 홍보라, 홍봉기, 홍성민, 홍영선, 홍예원, 홍이룡, 홍태림, 홍태화, 홍혜전, 황민왕, 황성탁, 황윤정, 황준형, 황지원, 황호규, 황호근, 효진. 훈창, Ryo Tamura, 희음.◆성명서에 참여한 단체 112개 감성스터디살롱오후의예술공방, 관객행동, 권리장전, 개죠니, 공공운수노조서울지부, 공연예술인노동조합, 공연한오후, 99아트컴퍼니, 그림, 극단경험과상상, 극단고래, 극단돌파구, 극단동, 극단몸꼴, 극단미인, 극단송곳, 극단사개탐사, 극단서울공장, 극단신세계, 극단어느날, 극단창세, 극단초인, 극단행, 극단해반드르, NA_MU, 나우판코리아, 낭만유랑단, 낯선사람, 노뉴워크, 노동당문화예술위원회, 아이애나밴드, 다크서클컨템포러리댄스, 더무브, 더블데크웍스, 더텔테일하트, 댄스씨어터틱, 댄스프로젝트뽑기, 독립예술웹진인디언밥, 리마이더스, 마네트, 매일연구소, 몿진, 무브먼트당당, 문래마을예술인회의, 문화다방이상한앨리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문화연대, 문화예술기획이오공감, 문화예술계성평등/탈위계문화조성플랫폼NONE민간운영기획단, 바이윤슬, 밴드변화무쌍, 비주얼씨어터꽃, 뾰족한상상뿔, 서교예술실험센터10기공동운영단, 서울문화시민포럼,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노동조합, 세종문화회관무대기술지회, 쉬는시간, IMSTUDIO, 아마씨, 아시아춤극연구소, 아트스트로우, 아트앤마트, 아프리칸댄스컴퍼니따그, 어반아트,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얼라이브아츠코모, LPSTORY, 연극집단공외, 연극집단반, 연희집단The광대, 연희컴퍼니유희, 영도문화도시센터, 영화인신문고, 엠제이플래닛, 예삶극단, 예술대학생네트워크, 오복, 온앤오프무용단, 유방랜드, 유희스카, 윤푸름프로젝트그룹, 음악당달다, 인권기획프로젝트로그, 인아크, 잠비나이, 전시공간, 제너럴쿤스트, 좋아서하는기획, 코끼리들이웃는다, 코르코르디움, 탄츠위드, 터울림, 툭댄스, 판소리아지트놀애박스, 페미드로잉, 표현의자유포럼, 프로젝트레디메이드, 프로젝트여기에서저기로, 프로젝트이인, 필름앤포토렉아트, 행복한예술재단, 호와호,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히스테리안독립출판사, 창작그룹노니, 창작중심단디, 창작집단우주도깨비, 창작집단움스, 창작집단작당, 창작하는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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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립국악단 '그린국악시즌2' 개막전남도립국악단은 시즌1(5월 21일~7월 9일)을 마무리하고, 오는 16일부터 토요 상설공연인 가무악희 ‘그린국악 시즌2'를 시작한다고 10일 밝혔다. 15년 간 상설공연을 펼치고 있는 전남도립국악단은 올해부터 시즌제 도입과 신규 프로그램 구성 등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관객층을 넓히고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국악으로 21세기 감수성을 담아낸 ‘그린국악’은 시즌2를 맞아 한층 더 힙해졌다. 도립국악단은 ‘가무악희(노래·춤·연주·연희)’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장르 한계를 두지 않고 수준 높고 세련된 공연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달 16일부터 9월10일까지 열리는 시즌2의 프로그램은 시즌1에 비해 정교해졌다. 노래와 춤 등으로 이어지는 시즌1의 프로그램을 탈피하고, 가무악희 중 어느 한 장르가 매주 공연의 주인공이 되는 구성 방식을 택했다. 네 가지 요소의 작품을 골고루 만나볼 수 있는 재미와 달리 보다 깊이 있고 다이내믹한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도립국악단은 가족 관객들이 늘면서 류형선 예술감독이 작곡한 국악동요 ‘모두 다 꽃이야’, ‘더불어 숲을 이루자’, ‘내 똥꼬는 힘이 좋아’ 등 어린이 작품들도 선보인다.또 ‘어름사니(줄꾼)와 줄타기’, ‘호남 판굿’ 이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연희(놀이) 프로그램도 선보일 계획이다. 그린국악시즌이 종료되면 국악으로 인문학하기 시즌2 ‘별 일 없는 하루, 특별한 시간(별특시)’도 문을 연다. 지난 2020년에 첫 선을 보인 ‘별특시’는 국악이라는 예술을 매개로 인간의 언어부터 문학·역사·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강연과 공연을 펼치는 장기 프로젝트다. 올해엔 9월 17일부터 한 달간 방송인 김제동과 시인 김용택, 물리학자 김상욱, 역사학자 심용환이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총연출가 류형선 감독은 "토요 가무악희는 보다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국악을 지향하며 무엇보다 세련미를 갖춘 ‘예술적 시김새’로 수준 높은 공연을 도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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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콘서트 ‘시歌, 노래歌되어’ 개최서울 중랑구청 대강당에서 7월 5일 오후 7시 국악콘서트 ‘시歌, 노래歌되어’가 열린다. 중랑구민을 위해 펼쳐지는 이번 공연은 월명사, 효명세자 등의 고전 시와 김용택, 유재영 시인 등의 현대 시까지 다양한 소재로 구성됐다. 특히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한 시인 박인환의 시를 소재로 한 신곡도 선보일 예정으로 구민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중랑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중랑구가 후원하는 이번 공연은 총 2부로 진행되며, 싱어송라이터 안정아와 음악그룹 오롯이 무대에 오른다. 1부 공연은 ‘그 계절, 노래하는 시’라는 소제목으로 싱어송라이터 안정아가 막을 올린다.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와 한용운 시인의 ‘꽃이 먼저 알아’에 아름다운 노랫말을 더해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2부에는 ‘목이 긴 메아리’라는 소제목으로 무대를 이어간다. 피리, 생황 연주자인 김한길과 해금, 양금 연주자인 유선경으로 이뤄진 음악그룹 ‘오롯’이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공연을 펼친다. 박인환, 유재영, 기형도 시인 등의 작품을 주제로 시가 가지는 표현과 분위기를 오롯만의 감성으로 해석해 영상과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시가 있는 국악콘서트 ‘시歌, 노래歌 되어’는 무료 공연으로, 전 좌석을 선착순 사전예약제로 운영한다. 류경기 구청장은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될 시의 새로운 변신과 특히 박인환 시인의 시가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된다”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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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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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17)김종욱 우리 작품발표회를 듣고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작품으로 된 음악회란 점에서 그 작품가치를 운운을 말할 여유조차 없이 악조건으로 우리를 흥분시키며 감격을 준다. 결국 내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감정이 너무나 크게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 그러나 전애轉愛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정당한 비평이 활발히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문외한으로서의 소속으로 말초적 문제 몇 가지를 들어보면 먼저 이흥렬 작품(독습곡)과 김순애작품(바이올린 소나타)이 무슨 사정인지 연주 안된 것과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나 교향곡은 그만 두더라도 피아노 곡이 하나도 없었던 것, 그리고 너무 성악곡(10곡 중 7곡)이 믾은 것은 유감이었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만일 누구의 작품이란 인명이 씌어지지 않았다면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여도 좋을만치 특징이 없는 똑같은 인상을 주며 모두가 ‘센티’한 음조뿐이었다. 우리 작품이 모두 이러한가. 그런 것만 골랐는가는 모르나 프로 전체의 활기가 없이 들린다. 혹은 성악곡에 있어 성악가의 일률적인 습법習法의 소치인지 모르나 그 화려(?)한 ‘몸짓’, ‘눈짓’이 청중을 매료하려고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곡과 곡으로 떨어진 ‘제스튜어’와 ‘에스프레시브’에 침울을 일층 더하게 해온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작곡발표음악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발표회가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길래 그 후 주시해보니 전부가 다라고 할만치 모두 발 박자에 분주한데 이것은 음악의 미를 상쇄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된다. (藝術通信 227호 1946. 7. 1) = 무용 = [조선 최초의 군무대회 동원 무용가 연 2백명] : 조선무용가협회에서는 래 8월 7일부터 9일까지의 3일 간 시내 국도극장에서 전 조선남녀무용가를 동원하여 ‘솔로’와 군무대회를 개최하기로 되었는데 이는 조선에서 처음 보는 무용대회로 무용가의 연 인원은 2백명에 달한다고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 [똘똘이의 모험‘ 금월 말 완성 예정]: 남일영화사에서 방금 제작 중인 ’똘똘이의 모험‘ 은 요즈음의 일후日候관계로 다소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는데 앞으로 날만 좋으면 금월 말에 제작을 완성하여 래 8월 제1주로 시내 극장에서 봉절되게 할 예정이라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 연극= [‘연동演同 수재구제공연 준비]: 연극동맹에서는 이번 수재동포들을 위하여 불원 수재동포 구제흥행을 하기로 되었는데 동 공연의 準備委員은 다음과 같다.’ 김태진, 조영출, 박상진, 박학, 이재현, 황영일黃英一, 이동호李東胡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 [학병동맹 ‘피흘린 기록’을 영화화] : 학병동맹에서는 이번에 희곡 ‘피흘린 기록’을 임연수林連壽씨 윤색으로 16미리로 영화화할 계획을 가지고 방금 준비 중에 있는데 근간 모 영화사에 제작의촉이 결정됨으로 곧 본격적으로 제적을 개시하여 今月 이내로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배협’ 총회]: 조선영화배우협단에서는 작 1일 폐사 회의실에서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금후에 있어서의 공연기획에 대한 건을 토의한 바 동건은 동단 간사회에 일임하기로 결의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음악= [‘연협’ 수해구제연주회- 6, 7 양일 배재강당] : 대한연주가협회에서도 이번 수해이재민의 구제사업으로 래 7월 6, 7 양일 밤 시내 배재강당에서 동협회 회원을 동원하여 구제금모금 연주회를 하기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 무용 = [9월에 무용콩쿨대회] 조선무용예술협회에서는 9월 초순에 전 조선무용 콩쿨대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동 하순에는 동협회 교육무용부 주최로 아동무용콩쿨대회를 열 계획이라 한다.(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남방 조선영화인의 기빨 , ‘바리’도島에서 활약하는 허씨 소식] : 남방에서 활약하는 조선영화 건아의 소식! 즉 얼마 전에 학병으로 출병 중 ‘자바’ 지역에서 소위 영화선무행정宣撫行政에 관계하다가 귀환한 모씨의 담에 의하면 수년 전 조선에서 활약하다가 남방으로 건너갔던 감독 허영許英씨가 그 뒤 ‘자바’에서 조선해방의 기쁨을 안고 즉시 ‘자바’ 조선인연맹을 결성하고 노력하는 한 편 조선인을 중심한 몇 영화 유지와 제휴하여 극영화 제작에 착수하였다 한다. 그런데 현재 모씨의 귀환선이 출범할 때까지는 ‘바리’도에서 ‘크랑크 인’ 중이었다는 바 완성 되는대로 고국판도 제작하여 보내오리라고 전한다. 특히 씨는 해지該地에서 ‘오란다’의 금발여성과 국제결혼까지 하였다니 멀리 다복을 빌건가.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문화영화의 승리!- ‘유황도’ 5일 간 35.000명 돌파-]: 미국무성 제작 태평양전사 영화 제2편 ‘유황도 결전’ 그 서울 공개에 28일부터 작 2일까지 5일 간 35.000명 돌파! 물론 총천연색이라는 전람회적 인기에 가까운 매력도 있을지 모르나 어쨌든 장안 팬의 열광은 문자 그대로 고조되어 드디어 조선극장 흥행 사상의 단 기록短記錄을 돌파하였다. 이로써 미루어 앞으로 보건대 앞으로의 5일 간을 예상컨대 6만명은 넉넉히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같은 기록은 과거 왜정시대 4관 동시상영으로 강제동원한 ‘병대는 앞으로’의 누계 52, 367면을 통쾌하게 깨뜨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로는 극영화의 여하한 작품에서도 이같은 기록을 일찍이 흥행계는 갖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문화영화의 승리라고 할 것으로 영화인의 재고를 촉하는 활동 경고라 하여 ‘센세이션’ 되고 있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남선영화사 이전] : 남선영화사에서는 이번 시내 합동영화사 내 사무소를 이전하였다 한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 [이동영사회사 창립 ]: 상설관의 설비가 구비되지 못한 농촌 벽지를 중심으로 농민들의 정신계몽대를 강화하고 계몽운동의 균형을 도모하여 이번에 김용택金容澤 씨는 이동영사회사를 창설하였다는 바 창립사무소는 청엽정 2정목에다 두고 첫 사업으로 조영뉴스 1, 2, 3 외 수편을 가지고 오는 6일 부터 16일 까지 10일 간 남선일대를 순회공연하기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해방뉴스‘ 제7보 내용]: 1. 농악전국대회, 2. 경기도 그네대회, 3. ’굿벨스‘ 씨 송별회, 4. 연평도 고기잡이 광경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 [월례학술영화회 개촤, 중앙통신사 주최로] : 중앙통신사 사업부에서는 시내 남녀중등학교 생도의 영화정조교육映畵情操敎育을 위한 학우영화회學友映畵會를 도 학무과의 후원을 얻어 매삭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되었다는 바 제1회로는 오는 8알부터 11일까지 3일 간 서울극장에서 매일 오전 중에 시행한다고 한다. 그 상영 영화는 유사 뉴스 3편과 ‘교과敎科의 자유’, ‘작은 악마’ 등이라 한다. (藝術通信 231호 1946.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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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립국악단 북앨범 '골디락스'…전통가락·글·그림 구성전남도립국악단이 창립 35년을 기념해 책과 전통 가락이 어우러진 '북앨범'을 제작했다.전남도립국악단은 음악과 글·그림으로 구성된 북앨범 '골디락스(Goldilocks) 간격'을 출간했다고 21일 밝혔다.북앨범의 제목 '골디락스'는 영국의 전래동화 '곰 세 마리'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로 '적당한 온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최적의 간격'이라는 뜻이다.북앨범은 9명의 예술가가 창작한 글·그림과 전남도립국악단이 연주한 15곡이 해설과 함께 담겨있다.김용택·정호승 시인의 시를 비롯해 도종환 시인과 방현석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건용 작곡가, 김해숙 가야금 연주가, 최일도 목사의 산문, 박재동 화가의 '적정 거리'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구성됐다.음악은 미얀마의 슬픔이 담겨있는 '구음 살풀이'(Peace in Myanmar)와 구전으로 전해지는 노래에 가사를 붙여 만든 '점아 점아 콩점아', 김소월의 시를 모티프로 한 찰현악기 합주곡 '접동새' 등이 실렸다.전남도립국악단 관계자는 "이번 북앨범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국악 선율과 인문학이 융합돼 이색적인 '듣기, 읽기'가 동시에 가능하다"며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한편 전남도립국악단은 남도의 전통 가·무·악(歌·舞·樂)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86년 8월9일 창단됐다. 어린이국악단을 포함해 창악·무용·기악·사물 등 140여명의 단원들로 구성됐으며 3100회 이상 무대에 섰다.시대창극 '흐엉의 희망일기' '당신의 의미', 창극 '나비야 청산도 가자' '목민심서-백성이 근본이다', 춤극 '심청', 오라토리오 집체극 '봄날' 등을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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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이 추천하는 휴일의 시 16: 그랬다지요 (김용택)그랬다지요 김용택(金龍澤/1948~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추천인:김연광(민족음악연구원 이사) "이맘때쯤이면 기억나는 시. 누군가가 그립다. 만나고 싶다. 또 꽃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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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이 추천하는 휴일의 시 10 : 초겨울 편지 (김용택)초겨울 편지 김용택(金龍澤/1948~ ) 앞 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추천인 김도형 교수(다큐 ‘다시 부르는 아리랑’ 감독) "눈은 모든 것을 가린다. 그리고 그 위에 기억을 새긴다. 눈 위에 그릴 그 첫 기억은 아마도 보고 싶은 이일 것이다. 매년 첫 눈을 기다리며 몸살을 앓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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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휴식시간, 책마루 인문학 강연 개최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은 오는 8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마다 국립무형유산원 어울마루 국제회의장에서 「책마루 인문학 강연」을 개최한다.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8년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복합문화공간이자 도서관인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열리고 있는 「책마루 인문학 강연」이 올해는 강연과 연계한 체험프로그램을 강화해 참석자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앞서 진행한 6~7월 프로그램에서도 참여자들에게 높은 만족도와 호응을 얻었다. 코로나19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이번 행사는 ‘라키비움 책마루’보다 공간적 여유가 있는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다. 또한, 참여자 발열 확인, 마스크 착용 의무화, 거리 두고 앉기 등 철저한 안전수칙 아래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8~10월「책마루 인문학 강연」의 세부 일정은 ▲ ‘누들로드-국수는 어떻게 인류를 매혹시켰을까?’(8.13. 이욱정/PD), ▲ ‘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8.20. 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나를 찾아가는 사진’(8.27. 김진석/사진작가), ▲ ‘당신이 알던 속담의 배신’(9.3. 엄윤숙/작가), ▲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세상’(10.8. 김범준/성균관대학교 교수), ▲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다’(10.15. 김용택/시인) 순으로 진행된다. 강연은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교육비는 무료다. 강의당 선착순 50명씩 모집하며, 책마루 누리집(http://library.nihc.go.kr) 또는 전화(☎070-4227-9243)로 신청하면 된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이번 강연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여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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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휴식시간, 책마루 인문학 강연 개최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은 오는 8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마다 국립무형유산원 어울마루 국제회의장에서 「책마루 인문학 강연」을 개최한다.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8년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복합문화공간이자 도서관인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열리고 있는 「책마루 인문학 강연」이 올해는 강연과 연계한 체험프로그램을 강화해 참석자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앞서 진행한 6~7월 프로그램에서도 참여자들에게 높은 만족도와 호응을 얻었다. 코로나19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이번 행사는 ‘라키비움 책마루’보다 공간적 여유가 있는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다. 또한, 참여자 발열 확인, 마스크 착용 의무화, 거리 두고 앉기 등 철저한 안전수칙 아래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8~10월「책마루 인문학 강연」의 세부 일정은 ▲ ‘누들로드-국수는 어떻게 인류를 매혹시켰을까?’(8.13. 이욱정/PD), ▲ ‘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8.20. 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나를 찾아가는 사진’(8.27. 김진석/사진작가), ▲ ‘당신이 알던 속담의 배신’(9.3. 엄윤숙/작가), ▲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세상’(10.8. 김범준/성균관대학교 교수), ▲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다’(10.15. 김용택/시인) 순으로 진행된다. 강연은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교육비는 무료다. 강의당 선착순 50명씩 모집하며, 전화(☎070-4227-9243)로 신청하면 된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이번 강연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여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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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ахалинец Сергей Ким – единственный композитор корейского происхождения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В 2020 году отмечается 30-летие установления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их 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но в связи с распространением эпидемии COVID-19 массовые праздничные и культурные мероприятия были отменены. Тем не менее наша газета запускает серию интервью, приуроченных к памятной дате и связанных с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ими связями в сфере культуры. 1-ый выпуск – Музыкальная сфера (Композитор) Сахалинец Сергей Ким – единственный композитор корейского происхождения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Я российский музыкант, но в моей музыке присутствуют корейские традиционные мотивы» Из-за отмены запланированного на 15 августа фестиваля Ариран в Хабаровске, 12 июля к северу от столицы, в городе Ыйджонбу в «HRestaurant», по инициативе генерального секретаря Ассоциации Ариран Ки Ми Янг прошла дружественная встреча с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ими соотечественниками из Сахалина, проживающими в Корее. Среди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вернувшихся на историческую Родину – российский композитор корейского происхождения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Ким. Редакции газеты удалось пообщаться с Сергеем Сергеевичем и узнать подробности его музыкального и жизненного пути. МУЗЫКАЛЬНАЯ СЕМЬЯ ИЗ ТРЕХ ПОКОЛЕНИЙ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родился в 1943 году в городе Макаров на Сахалине в семье эмигрантов из Южной Кореи, переехавших на Сахалин в 1939 году по работе, но не сумевших вернуться на Родину с началом войны и японской оккупации. Семьи матери и отца были родом из провинции Кёнсан-Пукдо, из города Кимчхон. При рождении мальчик получил корейское имя – Ким Санг Хо. Он был самым младшим ребенком в семье, где было четверо детей. Любовь к музыке Сергею Сергеевичу и старшим детям привили с детства родители. Старший брат хорошо играл на аккордеоне, а сестры хорошо пели. До переезда в Россию отец Сергея Кима, Ким Ён Тхэк, так же как и дедушка по материнской линии, играл на традиционных буддистских музыкальных инструментах в храме. Дети и внуки узнали об этом только после смерти главы семьи, который из боязни подставить детей под удар, скрывал свои религиозные взгляды в советское время. Мать Сергея Сергеевича Пак Тхэ Сун с самого детства всегда пела сыну 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песни – «Ариран», «Торади», которые по звучанию напоминали звон колокольчика. Воспитание в музыкальной семье предопределило дальнейший творческий путь Сергея Кима. По словам Сергея Сергеевича самое большое влияние на выбор его будущей профессии оказало радио: американский джаз, который транслировался 24 часа в сутки с американской базы на острове Окинава, и музыка радио «Маяк», которое транслировало различные жанры – от классики до фольклора. Любимыми исполнителями Сергея Кима были Луи Армстронг и Гленн Миллер, и мальчик во что бы то ни стало хотел научиться играть как его кумиры. ПРОФЕССИОНАЛЬНОЕ ОБУЧЕНИЕ МУЗЫКЕ У переселенцев из Кореи на Сахалине в то время не было советского гражданства и без паспортов они не могли покинуть остров, чтобы поехать на учебу. Поэтому Сергей Ким был вынужден остаться на Сахалине после окончания школы и поступил в южно-сахалинское музыкальное училище. В училище преподавалась классическая музыка, а из инструментов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выбрал кларнет и саксофон. Джаз в то время был под запретом, поэтому молодые музыканты собирались и играли его подпольно. Многие молодые люди, родившиеся на Сахалине, получив, наконец-то, советские паспорта, отправились на учебу в Москву. Преследуя свою мечту об американском джазе, после окончания училища и получения гражданства Сергей Ким решил поехать в Калининград, так как в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и в Прибалтике джаз был более распространен и обучение было доступнее. «Это был совершенно другой уровень джаза, фестивали, концерты - вспоминает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 но все равно я так и не научился играть американский джаз. Для этого нужно было родиться афро-американцем!» МУЗЫКАЛЬНОЕ ТВОРЧЕСТВО В ХАБАРОВСКЕ На Сахалине в то время не было высших музыкальных учебных заведений, поэтому Сергей Ким с семьей решил переехать в Хабаровск. В Хабаровске Сергей Ким играл на саксофоне в Национальном оркестре и выступал в дальневосточном песенно-танцевальном ансамбле. Почти 40 лет музыкальной деятельности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посвятил работе в Хабаровской филармонии, где он начал писать песни. «Чтобы научиться писать музыку для песен, у меня ушло 7 лет, но зато все получилось. Тогда я выпустил свой диск», - говорит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В этот период композитор заинтересовался корейским фольклором и написал песню «Корейский Ариран» на стихи северо-корейского автора Мён Дон Ука. Музыканта очень впечатлила корейская национальная мелодия «Ариран» и, с согласия автора стихов,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написал музыку к песне «Корейский Ариран». Историю создания этой песни можно прочитать в нашей отдельной статье. Сергей Ким – лауреат фестивалей джазовой музыки в городах Вильнюс, Донецк, Рига и Калининград с 1968 по 1970 годы. Вспоминая свой творческий путь,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признается: «Только в 60 лет я наконец-то понял, что такое музыка. Именно поэтому в джазе все старше 70, в 60 лет ты еще новичок.» ПЕРЕЕЗД НА ПОСТОЯННОЕ МЕСТО ЖИТЕЛЬСТВА В КОРЕЮ И КУЛЬТУРНЫЙ ОБМЕН МЕЖДУ РОССИЕЙ И КОРЕЕЙ Пять лет назад композитор с супругой Натальей Васильевной Цой навсегда переехали в Корею и проживают в деревне Юльчжонг возле города Янчжу провинции Кёнгидо. Обе сестры и брат Сергея Сергеевича также вернулись на историческую родину в 2000 году в города Ансан и Инчхон, сейчас осталась одна сестра в городе Инчхон. Братья отца уже умерли, но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хочет встретиться со своими племянниками, как только закончится эпидемия коронавируса. Сейчас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активно продолжает музыкальную деятельность – в течение года получил звание профессора по игре на саксофоне, является солистом оркестра «Дондучхон» (саксальт) и пишет музыку. Одно из недавних его произведений – «Ариран репатриированных корейцев» - о судьбе корейцев, репрессированных в Среднюю Азию в 1937 году. Во встрече с сахалинскими соотечественниками также приняли участие: генеральный секретарь Ассоциации Ариран Ки Ми Янг, председатель Ассоциации Ариран Ким Ён Гап, генеральный директор Общества по сохранению наследия Ариран сеульского района Ванщимни Ли Хэ Соль, председатель культурного центра диаспоры профессор Пак Сынг И, супруга Сергея Кима Наталья Цой, которая является главой сахалинского хора «Ариран», лидер группы по изучению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сахалинскими корейцами Конг Но Вон и Хо Нам Хун. Во время встречи генеральный директор Общества по сохранению наследия Ариран сеульского района Ванщимни, преподаватель корейско-сахалинского хора «Ариран» Ли Хэ Соль презентовала супруге Сергея Ким Наталье Цой праздничный ханбок – корейский традиционный наряд - к ее юбилею. 70-летняя Наталья Васильевная вместе с 76-летним Сергеем Сергеевичем принимают активное участие в укреплении культурных связей Хабаровск-Сахалин-Корея, и, в частности, в организации Хабаровского фестиваля Ариран. Супружеская пара, как и многие другие соотечественники, проживающие в Корее, выступают в качестве культурных посредников, связывающих Корею и Россию. На 11 фестивале Мунгён Сэчже Ариран, где была впервые представлена песня «Корейский Ариран» Сергея Кима, Сергей Ким также представил корейской публике российских музыкантов: вокалиста Геннадия Кима, российского корейца во втором поколении, а также Виктора Бондаренко, исполнителя традиционной музыки из Хабаровска. На Сеульском фестивале Ариран Сергей Ким принимал участие в параде Ариран как член творческой группы сахалинской диаспоры. Музыкальная идентичность Сергея Кима воспринимается как настроение сахалинской корейской диаспоры. «Странная вещь, даже когда я пишу исключительно русские мелодии, друзья, которые их слушают в первый раз, сразу отмечают, что там присутствуют мотивы корейской традиционной музыки. Я думаю, корейские традиционные песни, которые в детстве пела мне мама, живут во мне и в каждой моей песне», - признается Сергей Сергеевич. Интервью провела Динара Шосаидова Ссылки: "Ариран” на русском языке, связавший Северную Корею, Россию и Китай. 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0924 Ключевые слова: корейская традиционная музыка [한러수교30주년 특집 시리즈] 2020년 러시아-외교 관계 수립 30주년을 맞이했지만 COVID-19 전염병의 확산과 관련하여 대규모 행사 및 문화 행사가 취소되었다. 국악신문은 러시아-한국 문화교류를 위해 노력한 러시아 동포들 인물을 다루는 특집 시리즈 인터뷰를 준비한다. 제1편 음악부분(작곡) 김상호 (세르게이 김, Sergey Kim)-극동 러시아 사할린 출신 유일한 작곡가 -러시아 음악가이지만 내 음악에는 한국 전통음악 모티브가 - 7 월 12 일, 사할린아리랑합창단 김 나탈리아 단장(전 하바롭스크한인협회 부회장)이 하바롭스크한인협회(회장:백규성)와 연결해 준 러시아 수도 북쪽 북쪽의 하바로프스크에서 8 월 15 일 예정된 아리 란 축제가 취소되어 한국 경기도 의정부(Uijeongbu Gyeonggi-do Province KOREA )시 H레스토랑에서 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총장(Ariran Association Ki, MeeYang)의 주최로 사할린 (Sakhalin)의 러시아-한국 동포들과 우호적인 회의를 주최했다. 자문위원으로 김연갑(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 참석했다, 역사적 고향으로 돌아온 사할린 동포 중에는 러시아 사할린 출신 작곡가 세르게이 세르게 비치 김 (Sergey Sergeyevich Kim)이 있다. 신문 편집위원들은 Sergey Sergeyevich와 사전 의사 소통을 하고 그의 생애사를 통해 음악가로서 음악관과 정체성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삼대로 이어지는 음악가족 세르게이 세르게이비치(김상호)는 1943년 사카린의 마카로프시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9년 아버지(김인택)와 어머니(박태순)는 경상북도 김천에서 사할린으로 이주하였다. 태평양 전쟁후 고국으로 돌아려고 했지만 돌아 갈 수 없었다. 고향이 그리운 어머니는 조선에서 즐겨부르는 아리랑, 도라지타령 옹헤야 같은 한국 민요를 불러주셨다.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Sergey Sergeyevich와 더 형제들을 위해 음악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다. 그 덕에 형은 아코디언을 잘 연주했고 자매들은 노래를 잘 불렀다. 사실 세르게이 김의 아버지 김용택과 외할아버지는 러시아로 이주하기 전에 사찰 행사에서 전통 불교 악기를 연주했다. 그러나 당시 사할린은 전쟁이 끝난후 일본이 물러난 소련 사회주의 시대라서 우리는 가족의 종교적 배경을 숨겼다. 그러나 이미 내재 된 음악가족 교육은 세르게이 김의 창조적 음악가의 길로 미리 결정되었다. Sergey Sergeyevich에 따르면 그의 미래 직업 선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라디오, 즉 오키나와의 미국 기지에서 하루 24시간 방송되는 아메리칸 재즈와 클래식에서 민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방송하는 Mayak 라디오의 음악이었습니다. Sergey Kim의 가장 좋아 하는 음악가는 Louis Armstrong과 Glenn Miller였으며, 그 소년은 자신의 우상처럼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하바롭스크에서 음악활동 당시 사할린에는 더 높은 음악 교육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Sergey Kim은 하바롭스크로 유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한국에서 사할린으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는 소비에트 시민권이 없었으며 여권이 없으면 섬을 떠나 공부를 하러 갈 수 없었다. 따라서 Sergey Kim은 10학년 학교졸업 후 사할린에 남아서 남부 사할린 음악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클래식 음악을 가르치고 Sergey Sergeevich는 악기에서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선택했다. 그 당시 재즈는 금지곡이어서 젊은 음악가들이 모여 지하에서 연주했다. 당시 사할린에서 태어난 많은 젊은이들이 마침내 소련 여권을 받았으며,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민권을 취득한 후 미국 재즈에 대한 꿈을 꾸고 Sergey Kim은 소련의 유럽 지역과 발트 해 연안 칼리닌그라드로 가기로 결정했다. 재즈가 널리 향유되고 연습이 더 쉬워졌다. Sergey Sergeyevich는 이렇게 회상한다."아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재즈, 축제, 콘서트였지만 여전히 미국 재즈 연주를 직접 배우지 못했다. 이를 위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태어나야 했지만!” 이후 하바롭스크에 이주하여 극동하바롭스크밴드 섹스폰 연주자 활동하고, 국립관현악단 섹스폰 연주자 직업을 가지고 활동했다. -Sergey Sergeyevich는 하바롭스크 필 하모닉에서 40 년 동안 음악 활동을 하면서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위한 음악을 창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7년이 걸렸지만 이후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만족한다. 이후 12곡을 담은 음반을 세상에 내놓았다. "Sergey Sergeevich는 말합니다. 이 기간 동안 작곡가는 한국 민속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북한 망명작가 명동욱의 시 아리랑에 감동을 받아 시인의 동의를 구하고 이 시에 아리랑의 선율을 입혀서 ‘카레이스아리랑’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이 노래의 이야기는 별도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바롭스크에서 Sergei Kim은 노래와 춤 앙상블에서 연주하고 색소폰을 연주했습니다. Sergey Kim은 1968 년부터 1970년까지 빌니우스, 도네츠크, 리가 및 칼리닌그라드에서 재즈 페스티벌 수상자이다. Sergey Sergeyevich는 그의 경력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인정한다. "60세가 넘어서 음악이 무엇인지 마침내 이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즈에서는 모든 것이 70세 이상이며 60세는 여전히 초보자입니다.” "이상한 것은 내가 러시아 멜로디만 쓸 때도 처음으로 듣는 사람들이 한국 전통 음악의 모티브가 있다는 것을 즉시 느끼고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노래한 한국 전통 노래가 나와 내 모든 노래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러시아에서 음악을 공부했지만 나의 음악적 모티브는 한국 전통음악이라는 것을 60살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최근 그의 작품은 고려인아리랑이다.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교수인 이혜솔 명창에게 감상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Sergey Kim의 음악적 정체성은 사할린 동포가 겪은 디아스포라(이산)의 모티브로 인식된다. 한국 영구귀국과 한러문화교류 김 작곡가는 5년전 부인과 함께 하바롭스크에서 경기도 양주시 율정마을에 영구귀국하였다. 2남 2녀 중 막내/형제들 모두 2000년부터 한국 영구 귀국해서 안산과 인천에 영구귀국하고 이제는 인천 누나 한분만 남아있다. 고향 김천에서 아버지 형제들은 다 돌아가셨지만 조카들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한번 가보고 싶다. 이제 Sergey Sergeyevich는 5 년 동안 아내 Natalya Vasilyevna Tsoy와 함께 한국에 살면서 음악 활동을 계속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작년에 색소폰 연주 교수라는 제목을 받았으며 Donduchon 오케스트라 (Saxalt)의 독주자이며 음악을 씁니다. 그의 최근 작품 중 하나인"송환된 한국인의 아리랑”은 1937년 중앙아시아에 억압된 한국인의 운명에 관한 것입니다. 자매와 세르게이비치의 형제도 2000년 안산시와 인천시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국 경상북도 김천에 사는 아버지의 형제들은 이미 죽었지만, Sergey Sergeyevich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이 끝나게 되면 조카들을 만나러 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 70세의 Natalya Vasilievna는 76세의 Sergey Sergeyevich와 함께 하바롭스크-사할린-한국의 문화적 유대 강화, 특히 하바롭스크아리란축제를 조직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영구귀국한 러시아 동포들과 국외 러시아동포들은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문화적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 Sergey Kim이"Korean Ariran”이라는 노래를 처음으로 발표 한 11 차 문경 Sejje Ariran 축제에서 Sergey Kim은 러시아 음악가들을 한국 대중에게 소개했습니다. 지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에서 김 세르게이는 사할린 디아스포라 크리에이티브 그룹의 구성원으로 국내외 동포가 함께 한 아리랑퍼레이드에 사할린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참가했다. 한편 논의를 마치고 하바롭스크아리랑제 초청단체인 서울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은 김 나탈리아단장에게 70회 생일기념으로 새로 지은 한복 (한국 전통 의상)을 선물했다. Dinara Shosaidova의 인터뷰 참고 문헌 : <북한, 러시아, 중국을 연결하는 러시아어"Ariran”>. 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0924 키워드 : #한러문화교류 #한국 전통음악 #디아스포라 #고려인 #사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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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국악 부문에 김정순 씨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이하 문체부)는 ‘2019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 수상자를 선정하고, 5월 8일(수) 오후 2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지하 1층)에서 시상식을 개최했다.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은 매년 어버이날을 계기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녀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운 어버이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상으로서, 1991년에 제정되어 올해로 29회째를 맞이했다. 올해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삶과 자연을 품어 안는 진솔한 시어와 빼어난 감각을 지닌 시인이 ‘내 모든 시는 어머니에게서 나왔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시인의 시세계에 원형적인 영향을 끼치신, ‘섬진강 시인’ 김용택 씨의 어머니 박덕성 여사, ▲ 가난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능력을 믿고 아들이 시집을 출간할 수 있도록 쌀 열 가마니값을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아들을 전통적 서정성을 지닌 ‘풀꽃 시인’으로 키우신, 나태주 씨의 아버지 나승복 옹, ▲ 작은 가게 한 편에 연습실을 따로 지을 만큼, 열정과 무한한 사랑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쳐 자녀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육자로 키우신 이경선 씨의 어머니 최석순 여사가 선정되었다. ▲ 불의의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아들이 중앙대 음악대학 관현악과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 3대 명문 음악학교인 피바디 음대 최초의 시각장애인 음악박사가 되기까지 헌신적으로 지원하신, 클라리네스트이자 나사렛대 음악학부 교수인 이상재 씨의 어머니 조묘자 여사, ▲ 국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희망으로 자녀 3명 모두를 국악계의 재목으로 키우시고 어머니 자신도 국악인의 길을 시작하신, 서춘영·서은영·서진희 씨의 어머니 김정순 여사, ▲ 어려운 형편에도 발레와 사랑에 빠진 어린 딸을 위해 남대문 새벽시장도 마다하지 않고 뒷바라지를 하여, 자녀가 유니버설 발레단,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할 수 있도록 도우신, 발레리나 김세연 씨의 어머니 조명상 여사도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받는다. 이번 수상자는 예술가,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후보자를 대상으로,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 심사위원회 및 문체부 자체 공적심사위원회를 진행해 선정했다. 수상자들에게는 문체부 장관 명의의 감사패와 16돈 상당의 순금이 부상으로 수여된다. 수상자, 심사위원, 문화예술계 인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는 이번 시상식에서는 축하 무대로 자녀예술인인 이상재 씨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국악자매가 합동으로 국악공연을 펼친다. 수상자인 어버이들은 자녀 예술가를 어떻게 키웠는지 생생한 인터뷰를 들려줄 예정이다. 김정순씨는 슬하에 딸 셋을 두었는데, 첫 째 서춘영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한국음악과 교사로 재직하며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둘 째 서은영씨는 한양대학교 국악학과 박사학위를 졸업하고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가야금 주자로 활동 중이며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셋 째 서진희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졸업하고 현재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에서 황진이・춘향・심청 등 주연을 도맡아 하며 국악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에 있다. 또한 셋 째 서진희의 남편인 김도현씨는 전북도립국악원의 창극단 단원으로,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에서 장원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김도현은 국악계의 명인 명창인 김일구 ・ 김영자 부부의 자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한 김정순씨 역시 국악인인데,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본인의 공부도 놓치지 않아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017년 제35회 전국국악대제전에 출전하여 가야금병창 부문으로 국회의장상을 받은 바 있다. 2018년에는 전주 한벽문화관에서 독주회를 열어 세 딸의 귀감이 되었다. 김정순씨는 현재 둘 째 딸 서은영과 함께 국가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강정열 선생의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 김정순씨는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펼치게 해주기 위해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온갖 노력을 다 했다고 한다. 한 때는 세 딸이 모두 서울에서 학업에 정진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힘든 일이 많아 셋 째를 그만두게 하려고도 했었다고 한다.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오늘날 세 자녀가 모두 국악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그 때를 잘 넘긴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했다. 수상을 앞두고 어머니 김정순은 가슴을 벅차하며 벽상에 걸려있는 세 자녀의 상장들과 상패를 보며 그 순간 순간들을 모두 기억해내고 있다. 김정순씨는 “이 상을 받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어머니 뜻하는 대로 열심히 잘 따라준 세 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라고 생각하며, 서울에서 세 자녀가 지하 단칸방에서 함께 살게 한 것이 지금까지도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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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국립부산국악원 새해 첫 기획공연 무술년 새해맞이 굿시리즈 <굿! GOOD! 이로구나!>신명나는 새해굿 보러 오세요~ 새해 첫 굿판, 바다의 꿈과 아픔을 담은‘동해안별신굿’ 2018년 1월 6일(토) / 13일(토) / 20일(토) / 27일(토) 오후 3시 예지당에서 무속에서 예술로~ 오래전부터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해 온 소중한 문화! 함께 웃고 울며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굿보러 오세요~ □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서인화)은 새해 첫 기획공연 새해굿 시리즈 를 1월 6일(토)부터 4주간 매주 토요일 3시 예지당에서 개최한다. 지역향토예술로서 예술적 가치가 높은 ‘별신굿’ 의 원형을 무대에서 만나본다! □ 새해맞이 굿시리즈 는 한국전통문화예술의 원형이 담긴 굿판의 상생과 치유의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기획된 공연이다. 국악원에서는 지난해부터 다채롭고 품격 높은 굿 공연으로 일반 애호가 관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고유한 멋을 전달하고자 새해 신명난 굿판을 마련하고 있다. 굿판 一, 동해안별신굿보존회 김영희 회장이 연행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 □ 의 첫 공연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이다. 이 굿은 부산 동래로부터 강원도 고성군에 이르는 남부 동해안지역일대에서 정기적으로 행하는 마을굿으로 마을사람들의 안녕과 어민들의 풍어를 기원하는 축제이다.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나오는 축원 사설의 풍부함이 돋보이는 동해안별신굿은 명예보유자 김영희, 보유자 김용택 선생을 비롯해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회원이 함께한다. 굿판은 관객의 이해를 도와줄 박정경(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의 사회로 진행된다. 굿의 의미와 함께 영문으로 좋은 것을 보러가자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는 굿(good)이로구나! □ 의 다음 시리즈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염원과 위로가 담긴 굿으로 13일(토)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정영만 보유자), 20일(토)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박병원 보유자), 27일(토)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배연신굿(김금화 보유자)으로 출연자는 모두 굿의 보유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특별이벤트! 2017년 12월 31일까지 사전예약자 50% 할인! 개띠 출생자 무료관람! □ 공연관람은 취학아동이상으로 A석 10,000원, B석 8,000원이며 국립부산국악원 누리집(http://busan.gugak.go.kr)이나 인터파크에서 온라인예약 및 전화예약이 가능하다. 할인이벤트로 2017년 12월 31일까지 사전예약하면 50% 할인받을 수 있으며, 개띠 출생자는 무료(사전예약필수)로 관람가능하다. 국립부산국악원, 2018년부터 만18세 이하는 모든공연 무료관람! □ 그리고 만 18세 이하는 무료관람, 24세 이하 청소년 또는 대학 학생증 소지자, 장애인(동반1인), 경로우대자(동반1인), 국가유공자(동반1인), 병역이행명문자(동반1인), 사회취약계층 및 다자녀가정 등은 50%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20인 이상 단체관람은 20%할인 혜택이 적용된다. 문의)051-8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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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소리판 꽃구경 02월 19일일시 : 2010년 02월 19일 오후 7시30분 장소 :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주최.주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문의: 1544-6711 출연 : 장사익 .. 삶 죽음 관조 - 어머니, 꽃구경 가요~ “어머니 꽃구경 가요 따뜻한 봄 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듯이 겨울의 문턱에서 장사익은 늘 노래를 불러왔다. 작년 11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대전, 광주에서 장사익 소리판 ‘꽃구경’이라는 타이틀로 판을 벌려왔다. 그동안 장사익은 5개의 음반을 출반했는데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 장사익의 관조적 태도는 산자와 죽은 자의 교감과 대화로 이어진다. (1집-하늘 가는 길, 3집-허허바다, 낙화, 사랑 굿, 4집-아버지, 5집-황혼길, 무덤) 아버지를 묻고 돌아서던 날 아버지의 환청을 들으며 ‘아버지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라며 고백하고(아버지 中) 노년의 모습을 따듯하게 그린 ‘황혼길’, 산자와 죽은자가 만나 교감하는 광경을 ‘무덤’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작년 10월에 출반된 6집 음반의 타이틀 곡 ‘꽃구경’(김형용님의 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1부 공연에서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노래(만가)들을 모아서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고 2부 공연에서는 6집에 새로 발표되는 ‘이게 아닌데’(김용택님의 시) ‘바보천사’(김원석님의 시)를 비롯, 그동안 불렀던 장사익의 대표곡 ‘찔레꽃, 국밥집에서, 아버지, 자동차, 삼식이’ 등을 노래한다. 3부공연에서는 주옥같은 대중음악 ‘돌아가는 삼각지, 달맞이꽃, 눈동자, 장돌뱅이, 봄날은간다’등을 장사익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부른다. 많은 이들이 장사익의 노래를 통해 위안을 느끼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많이 아파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흔다섯에 데뷔한 늦깎이 가수의 신산한 삶이 녹아있는 그의 노래에서 우리들 삶의 희노애락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의 얼굴과 닮은꼴을 찾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장사익은 태풍이 지나간 자리, 그 ‘허허바다’에서도 겨자씨 한 톨 같은 희망을 건져 올려 ‘하늘가는 길’에서조차 신나게 한판 놀 수 있는 낙관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의 소리가 새벽에 길어 올린 샘물처럼 청신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고,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네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쉰아홉 해 그의 생애가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더불 어 사는 이들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 담긴 장사익의 노래는, 그러므로 우리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위한 뜨거운 응원가이다. 올 4월 성공적인 미국공연과 수많은 국내외의 공연에서 열광적인 호평으로 우리 대중음악의 신선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장사익소리판 ‘꽃구경’. 무거운 상념의 짐들을 훨훨 벗어버리고 한바탕 울고 웃으며 얼씨구 추임새를 넣는 행복한 마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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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正歌(정가) 발표회 '전통과 창작의 조화' 9 월 3 일일 시 : 2008 년 9 월 3 일 (수) 19 시 30 분 장 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문 의 : 011- 405-8705 ▶ 공연내용 1부 - 가곡 우조우락(羽樂) 계면조 편수대엽(編數大葉) 계면조 태평가(太平歌) - 가사 상사별곡(相思別曲) 황계사(黃鷄詞) - 시조 평시조(平時調) 2부 - 창작곡 나비는 청산가네 (초연곡) / 고은영 작곡(김용택 시) 산유화 / 박문규 작곡 (김소월 시) 청산은 / 김지형 작곡(나옹선사 선시) 추천사 / 황병기 작곡(서정주 시) '추천사' - 춘향의 말 ▶ 박주영 프로필 -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수료 -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이수자 - 서울가악회 회원 - 강원국악예술단 단원 ▶ 출연 사회 하주화(서울예술대학 국악과장) 작곡 고은영(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한국음악과 재학) 남창 김희성(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재학) 반주자 피리 : 이 영(국립국악원 정악단 악장) 거문고 : 임완혁(국립국악원 정악단원) 해금 : 황애자(국립국악원 정악단 해금수석) 대금 : 김상준(국립국악원 정악단원) 가야금 : 고연정(국립국악원 정악단원) 장구 : 조일하(국립국악원 정악단원) 신디 : 고은영(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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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시, 노래가 된 국악일 시 : 2005년 12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장 소 :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문 의 : 서울시국악관현악단 ☎ (02) 399-1188 ㅁ공연개요 을유년(乙酉年)의 다사다난(多事多難)을 보내는 송년의 자리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아무도 보낸 사람 없건만, 세월은 그렇게 등 떠밀리듯 분주히 떠날 채비를 차립니다. 세상에 나올 때,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듯, 그렇게 세상을 뒤로 두고 가야할 우리네 삶이지만, 그래도 또 한 해를 여미는 자리에는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쓰고, 그 시를 좀 더 진하게 선율에 담아 목청껏 부르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 제법 익숙해졌을법한 해를 보내고 맞이함을 좀 더 초연하게 대처해 보면 어떨까요? 응축된 시와, 선율..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한 해를 열심히 살았노라 외치는 삶의 절규를 서로에게 들려주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특별한 송년 이벤트를 꿈꾸시는 분, 조용한 되새김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은 분.. 그리고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어(詩語)들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자리매김하고 싶은 모든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ㅁ프로그램 정보 [ 1부 ]우리 소리가 된 詩 꿈속에서(김만석 作曲) 흥 타 령 -----------------------------------------노래:유미리 저녁노을 관산융마(신광수 詩) --------------------------------소리:김광숙 나 비(김병준 詩) -------------------------------노래:이영신 야월삼경(박귀희 詩,曲) 찔레꽃 주제에 의한 25현 가야금 변주곡 -----------------가야금: 이주은 귀 천(천상병 詩)--------------------------------노래:강권순 모란은 꽃 중 왕이요(時調詩, 임준희 曲) 청산리 벽계수야(황진이 詩) [ 2부 ]나팔꽃과 함께 하는 시노래 세상 대금산조와 춤 --------------------------- 대금:김방현, 춤:김삼진 십자가(윤동주 詩, 채일손 曲)-------------------------- 노래:홍순관 귀천(천상병 詩, 한경수 曲) 힘내라 맑은 물(류형선 詩, 曲) 우리 뒷집 할머니(김용택 詩,, 김현성 曲) ------------------ 노래:김현성 이 바쁜 때(김용택 詩, 김현성 曲) 이등병의 편지(김현성 詩, 曲) 바위섬(배창희 詩,曲) --------------------------------- 노래:김원중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詩,유종화 曲) 직녀에게(문병란 詩, 박문옥 曲) 쿰바야 ·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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