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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33: 학덕과 인품을 겸비한 음악학의 태두, 이혜구 박사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속알 있는 글은 못될망정 어줍잖은 글줄은 가끔 써본 처지였는데도 막상 만당 선생에 관한 글을 써보려 하니 도무지 어떤 측면을 어떻게 언급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말할 나위 없이 종지만 한 식견으로 물동이만 한 그분을 거론하기에는 그분의 인품과 학문 세계가 너무도 크고 높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혜구 박사는 큰 학자요. 높은 선비다. 우선 학문적 세계로 눈길을 돌려 보면 한국음악학계 구석구석까지 그분의 학덕이 스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반세기 전인 1948년에 한국국악학회를 창립하여 전통음악의 학문적 묘포를 마련했는가 하면, 1959년에는 한국 최초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를 창설하여 국악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말이 쉬워 학회 창설이요 학과 개창이지, 당시 주객전도적 서구 문화 중심의 시대 상황 속에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멸시와 비아냥을 보내던 국악계를 위해 학회를 설립하고 학과를 개설하여 이끌어 왔다는 것은 여간한 선각적인 소신이요 용단이 아니다. 만당 선생의 올바른 역사 인식과 학문적 공적의 크기는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대변되고 실증되고 상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분이 난해한 《악학궤범》을 번역해 내고, 심혈을 기울인 논문집들을 끊임없이 발간해 왔으며, 수시로 훌륭한 글들을 해외 학계나 음악사전 등에 영문으로 발표해 온 사실 등 구체적인 학문적 결실들을 구구히 소개하는 것은 오히려 지엽말단의 사족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굳이 세세한 실적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이 만당 선생은 누구나가 승복하는 대석학이요 한국음악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해 낸 학계의 태두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이혜구 박사의 학문 세계를 운위하는 입장이라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실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그분의 학문적 성과가 아닌 내면의 학문적 정신을 짚어 보는 사려 깊은 통찰력이 곧 그것이다. 한마디로 평생을 한결같이 궁행해 오고 있는 그분의 호학 기질과 철두철미한 학자적 양심을 공감해 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만당 선생은 학문적 정진을 늦추지 않는다. 주먹만 한 자루 달린 돋보기로 자료를 독파해 가며 꾸준히 논문을 써내는가 하면, 기회 있을 때마다 후학들을 모아 놓고 미진한 분야에 대한 특강을 마다않는다. 쥐꼬리만 한 지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허세가 팽만한 세태 속에서, 귀납과 연역의 논리체계를 바탕으로 철두철미하게 한국음악학을 정립해 가는 그분의 학문 세계는 재삼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터다. 만당 선생의 진정한 학문적 크기는 바로 이 같은 호학 정신의 학자적 자세에 있는 것이다. 만당 선생을 만인이 우러러 마지않는 것은 비단 그분의 학문적 업적에서만이 아니다. 한 발 더 진실에 가까운 이유라면 오히려 그분의 높고 맑은 인품에서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 지식이 많은 석학들은 많다. 그러나 고매한 인격까지 겸비한 참다운 스승은 흔치 않다.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요즘 같은 세태 속에서는 눈을 씻고 보아야 있을까 말까 하다. 이혜구 박사는 우리가 등불을 밝히며 힘겹게 찾아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드문 인격자요, 청빈한 학자 중의 한 분이다. 한마디로 학문과 덕성을 겸비한 높은 선비요 사부다. 만당 선생이 어떠어떠한 점에서 높은 인격자요 청학 같은 선비인지를 나는 필설로 예시할 수 없다. 오직 마음과 오관으로 분명히 그렇게 느낄 뿐이다. 그분을 뵈올 때마다 엄습해 오는 무형의 덕기德氣는 딱히 논리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우리를 압도해 버린다. 그것은 마치 난초의 향기를 표현할 수 없으되 청순하고 그윽한 분위기에 속절없이 매료되고, 봄볕의 따사로움을 설명할 수는 없되 대지에 가득한 훈기에 만물이 화육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옛글에 일창이삼탄壹倡而三歎 해도 은은한 여운이 있고 대갱불화大羹不和 해도 은근한 맛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만당 선생의 학문과 일상 생활에서 우러나는 인격의 향취도 이와 같아서 후학들에 대한 감화력은 더없이 은은하고 온화하며 가없이 막중하다. 이혜구 박사에 대한 이 같은 언설은 결코 추호의 과장도 없는 진솔한 느낌의 일단이다. 비록 나만이 아니라 만당 선생을 아는 분들은 너나없이 그분의 학문적 업적과 인품을 칭송한다. 이 같은 중론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몇 년 전 그분은 서울대학교 동창회에서 주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상을 받기도 했다. 제1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이 곧 그것이다. 10만여 명의 서울대 졸업생 중에는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즐비하다. 권부에 군림하는 사람, 재계를 주름잡는 사람,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가는 사람,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석학과 재사들이 줄을 잇는다. 바로 이들 고명하고 현란한 이름 중에서 서울대 총동창회는 만당 선생을 엄지의 인물로 간택하여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제1회 수상자로 시상했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선생의 학문적 위상과 인격의 수위는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는 일이기에 그분에 대한 더 이상의 부연은 오히려 부질없는 짓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지악至樂은 무성無聲이고 대음大音은 희성希聲이라고 선현들은 일러 왔다. 진실로 지극한 음악은 청각적인 현실음의 저편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기 외형적으로 확인되는 만당 선생의 학문적 업적만 해도 범상함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분이 진실로 이 시대의 큰 학자요 높은 선비이자 우리 모두의 사표師表인 이유는 그 같은 외관적이며 일상적인 공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같은 즉물적인 지평을 뛰어넘는 고답적인 차원의 청징하고도 고매한 학자적인 정신과 선비적인 기풍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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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32: 소중한 문화지킴이 한국정가단, 이준아 가객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하고 갈등하며 융합의 길을 모색해 오던 20세기를 거치면서 나는 절실하게 터득한 진리 하나가 있다. 강남의 귤이 회수淮水를 지나면 탱자가 되듯 문화에도 예술에도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공리公理가 통한다는 사실이 곧 그것이다. 지구촌의 이웃들이 똑같은 조건과 유사한 생활양태로 살아가고 있지만, 각기 민족 간에는 서로 다른 DNA를 지니고 있듯이 각 민족이나 지역 간의 문화예술에도 각기 다른 고유성이 있다. 나는 그 같은 고유성을 일러 종종 ‘문화의 원형질이니’ 혹은 ‘문화적 DNA’니 하는 말로 불러보기도 한다. 한국 음악 속에는 한국적인 기후풍토나 한국인의 기질 등이 얼키고 설키며 배양시켜 온 한국 음악 고유의 유전질이 있다. 그 같은 한국 음악 특유의 유전질, 다시 말해서 한국 전통음악의 DNA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전통가곡, 즉 정가正歌를 내세우고 싶다. 그만큼 정가는 한국 음악의 특수성은 물론, 전통문화의 개성을 통합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장르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인 우리 정가임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와서는 극성하는 상업주의적 부박한 시류에 밀리면서 눈에 띄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국악계로 보나, 정부 당국의 문화정책 차원에서 보나,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나 문화는 어쩌면 소수의 선각자적 소신에 의해 이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판소리도 그랬고, 산조 음악도 그랬으며, 여기 정가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대중적 환호와는 거리가 먼 정가 분야는, 그야말로 고독한 예술적 소신이 남다르지 않고는 평생의 업으로 매진해 가기 힘든 장르다. 이 같은 조야한 여건 속에서도 정가의 맥을 오롯하게 이끌어 가고 있는 가객이나 단체가 있다면, 마땅히 우리는 그들에게 격려와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중견 가객 이준아가 이끄는 한국정가단은 그 같은 칭송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여창 가곡으로 명성을 굳힌 이준아의 탄탄한 내공이나 음악성도 범상치 않으려니와, 본인이 주역이 되어 창단한 한국정가단의 공연 경력 또한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가곡의 법통을 충실하게 재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가사에 가곡풍의 옷을 입혀서 참신한 경지를 펼쳐 내기도 하는 유연한 음악관은 가곡 음악의 맥을 통시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열린 예술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8회째 정기공연을 축하하며, 한국정가단의 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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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31: 가야고 음악의 경중미인 이재숙 교수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고색창연한 한국의 대표적인 현악기를 꼽는다면 어떤 악기가 될까? 두말할 나위 없이 거문고와 가야고일 것이다. 그만큼 이 두 악기는 역사도 깊으려니와 장구한 세월을 관통하며 늘 당시대인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애환을 공유해 왔다. 기실 거문고와 가야고는 한국 전통음악을 살찌워 낸 두 개의 큰 물줄기며, 뭇사람들의 감성이 조탁해 낸 아름다운 문양의 쌍벽임에 분명하다. 그뿐이랴. 거문고나 가야고에는 악기라고 하는 한낱 소리를 내는 도구 이상의 설화가 있고 환상이 있고 아우라가 있다. 한마디로 청각에 울리는 ‘음악’이상의 ‘문화’가 있다. 우선 두 악기의 연륜을 떠올려 보자. 거문고는 멀리 씩씩한 기상의 고구려까지, 가야고는 황금의 나라로 알려졌던 신라까지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줄잡아도 천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자. 파란만장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형형색색의 시대 감성이 명멸했다. 거문고와 가야고에는 바로 이 같은 천변만화의 감성과 사연과 희비가 켜켜이 이끼 되어 농축돼 있는 것이다. 거문고나 가야고 음악을 들을 때면 이내 우리 상념이 음악 자체의 미감을 벗어나 먼 역사의 뒤안길을 유영하며 깊은 정념情念에 잠기게 되는 소이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음악을 들으면 음악의 테두리 속에만 갇히지 않고 자유자재로 상념의 산책을 나설 수 있는 형이상의 역사공간이 있다는 사실, 어쩌면 그 점이 곧 전통이라는 개념 자체이자 전통음악의 특징이요 본령이며, 우리 미의식을 증폭시키는 기제機制라고 하겠다. 아무튼 전통악기의 연주를 들으면, 나는 그 음악과 더불어 악기의 발자취에 투영된 시대상과 시대 정서를 함께 그리며 듣는다. 말할 나위 없이 느낌이나 상상의 진폭이 무한대로 확충된다. 일반적인 통념처럼 가야고는 확실히 여성적인 악기다. 중후하고 둔탁한 거문고 소리가 남성적이라면, 청초하고도 낭창스런 소리의 가야고는 섬세하고도 온유한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술대로 대모玳瑁 판을 내려치는 웅혼함이 강건한 양陽의 세계에 흡사하다면, 섬섬옥수로 열두 줄을 넘나드는 우아함은 만물을 포용하는 온후溫厚한 음陰의 속성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조선시대만 해도 거문고는 주로 문방사우가 갖춰진 근엄한 선비방에서 탄주되었으며, 가야고는 이끼 낀 담장 너머 그윽한 고가의 경중미인鏡中美人의 규방에서 연주돼야 제격이었다. 가야고와 경중미인! 참으로 절묘한 궁합이 아닐 수 없다. 정갈한 가야고 음악의 진수를 한 폭의 영상으로 형상화해 낸다면 경중미인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 지금도 널리 불리는 여창 가곡 한 수를 떠올리며 음미해 보자. 춘매春梅의 암향을 타고 피어 오르는 임에 대한 그리움과, 만나지 못하는 고적한 애상哀傷이 엎치락뒤치락 뒤섞이며 금상첨화의 기다림의 미학을 직조해 내는 계면조 이삭대엽의 그 아릿한 서정의 가사말이다. 언약言約이 늦어지니 정매화庭梅花도 다 지거다 아침에 우던 까치 유신有信타 하랴마는 그러나 경중아미鏡中蛾眉를 다스려 볼까 하노라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아채게 된다.‘가야고와 경중미인’이라는 가야고 음악의 상징 어휘를 클릭하자, 내 뇌리의 망막에는 반사적으로 매은梅隱 이재숙 교수의 가야고 연주 모습이 선명하게 투영된다는 사실이 곧 그것이다. 음악과 천성과 교단의 이력 등을 감안해 볼 때, 확실히 이재숙 교수와 가야고는 혈통이 유사한 천생연분일시 분명하다. 그만큼 양자간에는 정서가 같고 뉘앙스가 같고 정체성이 상사相似하다. 사근사근 자상한 속삭임이 닮았다. 투명한 창가에 놓인 난초처럼 정갈하고 단정함이 닮았다. 상대의 희로애락을 살뜰히도 보듬어 주는 따듯함과 자애로움이 닮았다. ‘당’줄을 뜯으면 당으로 울리고 ‘징’줄을 튕기면 징으로 울어 주듯, 우여곡절 인생살이 굽이마다 늘 밝은 웃음과 진정어린 배려로 이웃 주변을 챙겨 주는 살뜰한 고마움이 또한 빼닮았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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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30: 고소한 해학이 일품인 鏡中藝人 이상규 교수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다른 이는 몰라도 이상규 교수가 회갑이라는 사실은 얼른 실감이 가지 않는다. 흔히 선배들의 나이 드심은 쉽게 눈에 띄어도, 후학들의 깊어지는 연륜은 의외란 듯 좀해서 믿겨지지 않는 인지상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의 회갑에 대한 나의 의외성은 이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는 팔팔한 장년 시절부터 머리는 은발이었다. 따라서 ‘안면은 청년에 머리는 은발’이라는 이미지가 곧 이 교수의 초상화처럼 나의 뇌리에 늘 각인되어 있었으니, 머리가 여전히 은발인 한 내 머릿속의 이 교수는 아직도 싱싱한 불혹의 연재年載쯤으로 감쪽같이 속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하간 이 교수의 은발은 적어도 은발을 선호하는 내게는 여간 인상적이질 않았다. 그와 관련된 내 머릿속 사진 중에는 우선 은발의 장면이 전면에 떠오른다. 하얀 두루마기에 은발을 휘날리며 멋지게 지휘를 하는 장면이 곧 그것이다. 은발에 부서지는 은은한 조명과 학창의 같은 흰 두루마기 자락에 단아하게 흐르는 지휘의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관중은 어느새 무대 배경으로 드리워진 산수화 속의 신선이라도 된 양, 마냥 그윽한 상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예사다. 그러고 보면 이 교수의 흰 두루마기 은발의 지휘 장면은 중생을 피안의 예술세계로 이끄는 통과의례적 마력魔力이자, 본인의 음악적 본령本領을 극명하게 압축하는 생생한 징표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한편 이 교수의 창작곡 중에는 잘 알려진 ‘대바람 소리’가 있다. 이 작품은 ‘대바람 소리/들리더니/소소한 대바람 소리/창을 흔들더니…’로 시작되는 시구를 모체로 하고 있지만, 나는 이 곡의 표제가 이 교수의 타고난 심성을 음악적으로 구현시킨 좋은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상규 교수의 총체적 인상은 예부터 상찬돼 오는 대죽을 닮은 데가 있다. 우선 야무진 듯 단정한 풍모가 그렇고, 깔끔하고 사리가 분명한 천성이 그러하다. 일찍이 서울지방 사람들의 품성을 일러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고 했는데, 포천이 본관인 이 교수 역시 경중미인적 정갈함과 명료함이 유난히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 재치있는 익살이 일품이다. 대나무 절조節操에 은은한 인간미를 조화시킨 성품이다. 그러고 보면 이 교수의 이미지나 작품 세계를 시각적으로 환치하면, 그것은 영락없이 엄동설한을 버텨 서 있는 고죽苦竹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남녘땅 초가 지붕 마당가에 올곧게 둘러쳐진 청순한 청죽靑竹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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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29: 실사구시의 학문을 궁행한 성실한 학자 이보형 선생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이보형 선생은 남이 양지의 학문을 탐할 때 음지의 학문을 택했다. 남이 유행의 분야를 쫓을 때 그분은 소외된 분야에 애정을 쏟았다. 남이 책상머리에서 안일하게 글을 쓸 때 그분은 누항陋巷의 궂은 곳을 뒤지며 발품으로 글을 썼다. 남은 입신양명도 누려가며 학자연할 때 그분은 초야의 한사寒士에 자족하며 범재연凡才然했다. 남이 겉시늉으로 공부할 때 그분은 참다운 호학好學으로 한 우물에 매진했다. 한국민속음악의 학문적 바탕이 놓이고, 한국민속음악의 위상이 제고되고, 한국민속음악의 개화기가 앞당겨진 배면에는 바로 이 같은 이보형 선생의 소신과 내공이 반석처럼 자리하고 있다. 나는 한국의 정신문화 중에서 선비정신과 풍류사상을 높이 산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지절志節을 앞세우는 선비정신은 물질만능의 부박한 세태를 치유하는 특효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요, 풍류사상은 인정이 메마른 각박한 현대 사회에 넉넉한 여유와 따듯한 훈풍을 불어넣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이보형 선생은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 명예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남을 폄훼하지도 않았다. 늘 초심과 평상심을 유지하며 학구의 길에만 매진했다. 그렇다고 그분은 결코 메마른 선비가 아니다. 멋과 흥취를 아는 풍류객이기도 하다. 물론 전공 분야 자체가 신명기를 전제로 하는, 판소리 같은 민속악인 점도 작용했을 테다. 하지만 딱히 그 점만이 아니다. 속멋이 든 북장단과 오랜 취미의 사군자의 내면을 접하게 되면 그분이 풍류의 속멋을 타고난 균형 잡힌 선비임을 이내 알아채게 된다. 이보형 선생은 한국문화의 훌륭한 덕목이자 21세기 인류사회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정신유산인 선비정신과 풍류사상을 겸비한 학자다. 그러고 보면 그분은 비단 전통음악만으로 문화의 맥을 잇고 있는 게 아니라, 전통음악을 잉태시킨 배면의 세계, 즉 선조들의 정신문화의 체질과 시대사상까지 온전히 계승해 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금과옥조로 마음에 새겨둘 고전 글귀가 있다.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예는 해서 뭘하며 악은 해서 뭣하느냐[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如樂何]’라는 명구와, ‘시를 통해서 감성을 풍부히 하고, 예를 통해서 처신의 준거를 삼으며, 악을 통해서 인격을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는 선현의 말씀이 곧 그것이다. 곰곰 음미할수록 수천 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유효한 진리요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잠시 우리네 주변을 돌아보자. 돼먹지 않은 인품으로도 예술을 하고 학문을 하고 정치를 하는 소위 재승박덕형의 향원鄕愿, 군자연하는 사이비들이 얼마나 득실대는가를! 우리 사회에 너그러운 똑똑이들이 적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영악한 똑똑이들이 많은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자초한 업보들이다. 압축성장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적 물질만능주의에 순치됐기 때문이요, 주입식 암기교육을 통한 무한경쟁의 승자정의勝者正義식 풍조를 조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래서 우리 주변에는 남을 이기는 데만 이골이 난 ‘헛똑똑이’들은 많은데,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진실로 존경할 만한 ‘속똑똑이’들은 의외로 적다. 이보형 선생은 주변 모두가 인정하듯 겸손한 선비요 학자다. 말하자면 학과 덕과 인품의 조화를 이룬 학인이다. 《논어》에서 이르는 ‘성어악成於樂’의 경지에 근접한 드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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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28: 소쇄원 광풍각의 죽림풍류 원장현 명인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한국의 대금! 참으로 신묘한 악기다. 사람이 만든 악기인데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순도 백프로의 자연의 소리요 천상의 소리다. 어디 이뿐이랴. 서너 뼘 남짓의 죽관에서 빚어지는 소리결은 또 얼마나 부드럽고 따듯한가. 파란 하늘 밑의 하얀 목화송이보다 부드럽고, 아지랑이 꽃피우는 봄날의 햇살보다 다스한 게 대금의 음색이요 천성이다. 대금은 결코 예사로운 악기가 아니다. 혈통부터가 남다르다. 속세의 인연만이 아닌 신의 계보와 핏줄이 닿아 있다. 신라시대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전설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신문왕神文王 때 동해바다에 섬이 하나 생겨나고 그 섬 위에 대나무가 하나 자라났는데, 낮에는 갈라져서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해져서 하나가 되었다. 기이하게 생각한 왕이 그 대나무를 베어 오게 해서 악기를 만들었다. 그러자 소리가 어찌나 영험한지, 이 악기를 불면 질병이 퇴치되고 적병이 물러갔다. 모든 어려움과 근심걱정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름을 거센 파도도 종식된다는 뜻의 만파식적이라 했다. 전후좌우의 맥락을 살피면, 이처럼 대금의 혈통은 신의 세계, 전설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천의무봉의 대금 소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속의 소리가 아닌 천상의 소리에 분명할 만큼 영묘하고 초월적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 같은 신비스런 사화史話가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금 음악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 수 있는 능력자여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한 연주자가 섣불리 대금을 입에 대봤자 한낱 세속의 감칠맛에만 맴돌 뿐, 젓대 소리 본연의 속멋이나 비경秘境을 담아낼 도리가 없음에 분명타고 하겠다. 조선조 말 대금의 달인 정약대丁若大의 일화는 지금도 깊게 울리는 여운이 있다. 그는 일 년 열두 달 눈만 뜨면 인왕산에 올라가 대금을 불었다. 7분 정도의 ‘밑도드리’ 한 곡만을 되풀이해 불며, 한 번씩 불 때마다 왕모래 한 톨씩을 신고 간 나막신에 넣었다. 해가 서산을 넘고 하산할 때는 나막신에 모래가 가득 쌓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기량과 물리가 일시에 확 트이며 저절로 접신의 경계를 넘나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그가 후세에 이름을 길게 남기게 된 필유곡절必有曲折이다. 여기 당대의 젓대 명인, 동려東呂 원장현元長賢의 경우는 어떨까. 우선 그의 음악을 접하면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구름 가듯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기교며 악상이 익을 대로 익어서, 틀과 형식은 뒤로 숨고 미풍에 나부끼는 비단결처럼 악상의 시심詩心만이 심금을 퉁기며 물 흐르듯 흘러간다. 결코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뛰어난 재주만으로 될 일도 아니다. 원장현의 음악은 누구보다도 씨앗이 튼실하고 토양이 비옥하다. 선친은 젓대의 명인이었고, 숙부나 고모도 거문고와 가야고의 대가들이었다. 젓대를 잡기 전부터 이미 동려의 혈관 속에는 탁월한 음악적 소인素因이 싹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동려의 고향이 어데던가. 죽림문화의 산실 담양이 아니던가. 조석으로 밀려드는 삽상한 대바람 소리는 천계天界의 음향을 일깨우며 동려의 감성을 살찌웠을 것이고, 소쇄원瀟灑園 광풍각을 스쳐가는 일진청풍은 말 그대로 제월광풍霽月光風의 풍류 기질을 배태시켰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환경이 동려 원장현 음악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후천적으로 음악에 뜻을 두고 열심히 기교를 익혀 무대에 서는 여느 음악인들의 음악과는 어딘가 맛이 다르고 멋과 운치가 다름을 느끼게 된다. 원장현의 대금가락은 영락없이 고향마을 대바람 소리의 분신일시 분명타고 하겠다. 바람결에 따라 대숲의 음향도 달라지듯, 취법과 감정에 따라서 동려의 가락도 천변만화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어떤 때는 옹달샘물처럼 해맑다가도, 어떤 때는 가을 하늘을 비상하는 외기러기처럼 애상적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소쇄원 제월당 풍류객들의 풍류판처럼 격조 있는 풍취를 뽐내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의 음악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옷을 입고 무애無碍의 춤을 추며 풍진세상을 주유하는 풍월주風月主의 선풍仙風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리귀선 운외적萬里歸仙 雲外笛’이라, 구름 밖 신선이 젓대 불며 돌아오듯, 동려 원장현 명인이 도포자락 휘날리며 남산 자락에 현신하니, 뭇사람이 기대하는 음악계의 경사가 아닐런가!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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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27: 경기민요의 외연을 넓혀 가는 열정 김혜란 명창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흔히 우리는 저만큼 어제의 삶을 한층 정겨웠다고 여긴다. 한층 미덥고 끈끈하고 신명났었다고 여긴다. 왜서일까. 단지 지난날에 대한 복고적 향수 때문일까? 분명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정서의 분신이랄 민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요가 그저 대수롭지 않은 노랫가락의 일부였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가슴이었고,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뭉뚱그려 발효시킨 삶의 앙금이요 진액이었다. 민요가 있어 가난은 여유로 환치되고 고난은 달관으로 승화되었으며, 설움도 낙이 되고 비탄도 흥이 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민요야말로 어제의 우리네 감정생활의 축도요 정화요 온갖 사연이 숨어 있는 삶의 퇴적층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소중한 우리 민요가 근래로 오면서 삶의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다. 물론 세상이 다기화되고 생활 양상이 급변한 탓도 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인류 역사 속에서도 민요는 늘 맥을 이어 애창돼 왔다. 그러고 보면 민요가 빛을 바래가는 이유는 딱히 시대의 변천 때문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민요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애정이라고 하겠다. 직업적 전문가인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 유난히 민요에 애정을 쏟고, 남달리 민요의 창달에 열과 성을 쏟고 있는 원로가 있다. 경기민요의 김혜란 명창이 곧 그분이다. 김 명창의 활동을 눈여겨보면, 그는 결코 노래하고 가르치고 공연하는 데 안주하지 않는다. 뜻있는 동료나 후학들과 함께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해 간다. 어쩌면 민요의 현대적 위상과 기능을 십분 꿰뚫고 있음에 틀림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민요가 지닌 어제의 장점만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의 취향도 크게 변했다. 김 명창은 바로 그 점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어제의 감성, 어제의 관행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어제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지향하려는 지혜를 앞세운다. 그 좋은 예가 경기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공연 양식의 모색이다. 김 명창은 수년 전부터 경기소리의 토리를 활용한 새로운 형식의 소리극을 무대에 올려오고 있다. 경기소리의 시대적 변신과 중흥을 겨냥한 속깊은 시도다. 소리극 ‘배따라기’ 공연이 곧 그 예다. 이 작품은 주변의 관심도 컸고, 민요의 상투적인 공연에 참신한 맛을 던져 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분들의 새로운 시도와 열정이 아름답다. 역경 속에서도 우리 음악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매운 의지가 아름답다. 좋은 작품을 위해 고생하는 대본가, 연출가, 출연자 모든 분의 헌신이 고맙다. 나도 경기소리의 참신한 변화와 창달을 고대하기 때문에.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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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26: 둥둥 북을 울리면 신명이 솟는다, 김청만 명인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둥둥 북을 울리면 만인의 심장이 뛴다. 둥둥 북을 울리면 죽은 고목에도 물이 흐른다. 그래서 북소리는 생명의 근원이요 환희의 원천이다. 덩덩 북을 울리면 산하가 울린다. 덩덩 북을 울리면 동토凍土의 대지에도 새싹이 돋는다. 그래서 북소리는 생명의 씨앗이자 삶의 묘포다. 우레와 번개로 지축을 울린다는 고지이뇌정鼓之以雷霆이란 말이 예부터 쓰여 온 이유는 그래서였을 것이다. 해와 달이 대지를 분기시키고, 천둥과 번개로 둥둥 북을 울려 대지를 일깨우면, 모든 삼라만상이 고르게 화육化育 되어 화평한 천지를 이루어 낸다는 언설이 곧 그것이다. 아무튼 음악의 원천이기도 한 리듬의 향연을 맛보게 할 ‘새울전통타악진흥회’의 세 번째 공연무대는 미리부터 우리 심장을 고동케 한다. 이번 공연이 가뭄에 단비처럼 간절히 기다려지는 이유는 두 가지 사연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저간의 우리네 주변이 너무도 무기력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온통 심란하기 그지없다. 의욕보다는 체념이, 전향적인 비전보다는 퇴영적인 좌절이 팽배한 세태다. 시들어가는 공동체에 열심히 펌프질을 하고, 무기력한 풍조를 분연히 일깨우기 위해서 혼신의 기력으로 북을 울려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시의時宜에 발맞춘 북들의 큰 잔치이기에 그 의의가 한결 선명해진다. 둘째는 현역 전통 타악계의 큰 봉우리인 일통一通 김청만金淸滿 명고가 이끄는 연주 그룹의 음악적 기량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그것이다. 김청만 명인은 방송으로 무대로 가장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쳐가는 현역 원로다. 뿐만 아니라 그의 타악 음악의 매력은 분명 남다른 데가 있다. 숙련된 기교와 농익은 정서가 용융되어 빚어내는 정교한 장단의 멋과 여운은 만인의 가슴에 진한 공명을 울리기에 족하다. 이 같은 뛰어난 명고의 예술적 감각으로 구성한 정기연주회이니 의당 큰 관심과 기대를 앞세우지 않을 수 없는 터다. 이번 무대에서는 창작곡 ‘점點’과 ‘진혼鎭魂’과 ‘운곡雲谷Ⅳ’와 같은 새로운 음악을 선보임으로써 음악회의 품격을 한층 고양시켰는데, 늘 정진하고 모색하는 예술인들의 깨어 있는 의식을 보는 듯싶어 더욱 신뢰가 가는 음악회라고 하겠다. 이번 공연이 청중들에게는 삶의 활력을 충전하는 기회로, 주최 단체에게는 한층 음악적 내실을 다지는 전기가 되기를 고대하며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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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25: 회심곡의 프리마돈나, 김영임 명창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뿌리 없는 나무 없듯이 조상 없는 자손도 있을 수 없다. 오늘 우리의 존재는 조상 덕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상의 은덕을 까맣게 잊고 살기 일쑤다. 전통적인 효도사상이 희미해지고 물질만능의 탐욕 사회가 도래하면서 부모님의 망극한 은혜를 너나 없이 잊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만 있는 찰나의 인생들이 아니기에 가끔은 내일도 생각해 보고, 인연의 인과율도 음미해 가며 부모님이라는 뿌리에 대한 막중한 연분도 재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에 틀림없다. 자식은 마음으로는 부모를 공경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삶의 일상 속에서는 본심과는 달리 적지 않은 괴리가 생긴다. 그러니 옛 선인들의 시조처럼 영별永別 후에 남는 후회만이 되풀이되기 십상이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전통음악 중에서 부모님의 은덕이나 효행에 관련한 악곡을 꼽으라면 단연 회심곡回心曲이 아닐 수 없다. 회심곡은 원래 불교 계통의 음악이었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사를 윤색하고 여기에 서도소리조 가락을 입혀서 노래하는 곡이다. 한때 조선일보사에서는 매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어김없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어버이들을 위한 국악대공연을 치루어 왔다. 이때 단골 메뉴로 편성되던 곡이 바로 회심곡이었으며, 그 회심곡은 으레 김영임 명창이 불렀다. 그만큼 경기민요의 김영임 명창은 회심곡의 대명사랄 만큼 회심곡의 절창이었으며 프리 마돈나였다. 지금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의 뇌리 속에는 붉은 띠를 두른 하얀 가사袈裟에 고깔을 쓰고 꽹과리를 치며 낭랑한 성음으로 숙연하게 회심곡 한 자락을 불러제끼는 김 명창의 인상적인 모습이 한 폭의 정물화처럼 선명히 박혀 있을 것이다. 회심곡의 가사에 스스로 감화가 되어서인지, 김영임 명창은 잘 알려진 효부다. 공연예술계에서 인기를 좀 얻으면 우쭐한 기분에 알게 모르게 자만심이 앞서며 주변을 얕보는 경향이 있는데, 김 명창은 그 같은 세태와는 아예 거리가 멀다. 그 바쁜 일정과 화려한 무대생활 속에서도 시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분들과 주위 사람들을 정성껏 보살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나와의 인연도 얕지 않아서 내가 치러 오는 현충일 추모음악회에 헌신적으로 출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며, 덕소 이미시문화서원에 내외분이 들러 담소를 나누며 그가 좋아하는 능이버섯탕을 함께 즐긴 적도 꽤 있다. 예부터 효도는 백행지본百行之本, 즉 모든 인간행위의 토대요 근본이라고 했다. 효심孝心 없이 성실한 사람 없고, 효도하는 데 남에게 지탄받는 사람 없다. 효도는 곧 일종의 수기修己다. 효를 통해서 사람 됨됨이를 닦았는데 지탄받을 일을 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고 보면 효도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긴요하기 짝이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여기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일부를 조용히 음미하며 생각의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일심一心으로 정념精念 아하아미로다 보호옹오… 억조창생億兆蒼生은 다 만민시주萬民施主님네 이내 말삼을 들어보소, 인간세상人間世上에 다 나온 은덕恩德을랑 남녀노소男女老少가 잊지를 마소, 건명전乾命前에 법화法華도 경經이로구나, 곤명전坤命前에도 은중경恩重經이로다. 우리 부모 날 비실 제 백일정성百日精誠이며 산천기도山川祈禱라 명산대찰名山大刹을 다니시며 온갖 정성精誠을 다 드리시니 힘든 남기 꺾어지며 공功든 탑塔이 무너지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부모님전의 복福을 빌고 칠성七星님전 명命을 빌어 열달배설한 후 이 세상에 생겨나니 우리 부모 날 기를제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라 천금千金 주어 만금萬金 주어 나를 곱게 길렀건만, 어려서는 철을 몰라 부모 은공을 갚을소냐, 다섯하니 열이로다. 열의 다섯 대장부라 인간칠십 고래희古來稀요 팔십 장년長年 구십 춘광春光 백살을 산다 해도 달로 더불어 논論하며는 일천一千하고 이백二百달에 날로 더불어 논論하며는 삼만육천일三萬六千日에 병든 날과 잠든 날이며 걱정근심 다 제除하면 단사십單四十을 못 사는 인생人生 어느 하가何暇 부모 은공 갚을소냐. 청춘靑春 가고 백발 오니 애닯고도 슬프도다, 인간공로人間空老 뉘가 능히 막아내며 춘초연년록春草年年綠이나 왕손王孫은 귀불귀歸不歸라 초로草露 같은 우리 인생 한번 아차 돌아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김영임은 아침 햇살처럼 밝고 가을하늘처럼 청아한 성색과, 춘설이 잦아진 냇가의 버들개지처럼 삽상颯爽하고 유연柔軟한 창법으로 만인의 심금을 공명시키는 대표적 스타 가객이다. 특히 그녀는 한국 전통문화의 좋은 덕목의 하나인 효도를 몸소 수범해 가는 자상하고 사려 깊은 여인으로 널리 칭송되기도 하는데, 효행을 주제로 한 ‘회심곡’이 바로 그녀의 대표적 인기곡이라는 사실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하겠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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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24: 가야고 병창으로 그린 비천상, 강정숙 명창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강정숙의 음악은 흐르는 물과 같다. 그만큼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기교가 없는 바 아니나 드러나지 않고, 장인적 내공이 없을 리 없으나 나타나질 않는다. 음악이 완전히 체화되어 하나로 흐르니 마음과 음악 간에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음악은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처럼 편안하게 다가오고 간이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현란한 재간을 앞세워 음악을 한다. 재간이 앞서가면 가슴속에 뿌리를 둔 감성의 끈이 끊어진다. 심금心琴이 끊어지니 드러나는 소리인들 오죽하겠는가. 우리가 통상 경험하듯 메마르기 짝이 없고, 공허하기 그지없다.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은 역시 고금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깨끗한 흰 바탕에 그림을 그려야 색깔이며 형상이 제대로 각인되지 않겠는가. 매사가 매한가지다. 음악 또한 바탕이 문제다. 바탕은 닦지 않고, 그 위에 재주로만 수繡를 놓으려 하는 세태다. 마음속 정서의 텃밭에 눈길 한 번 주어 보지도 않은 채, 의례적인 관행처럼 손가락 연습에 발성 훈련부터 서두른다. 강정숙 명인의 음악은 이 같은 세간의 풍조와는 격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신체 일부의 노련한 훈련으로 쌓아올린 음악이 아니다. 기교 훈련에 앞서 배양된 감성적 마음 바탕이 있다. 그 마음 바탕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질일 수도 있고,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공력의 덕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남도지방 특유의 지역적 서정이 배태시킨 필연적 인과因果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녀의 음악 속에는 여느 음악에서는 좀해서 감지되지 않는 세미한 악흥이 있다. 더없이 부드럽고 따듯하면서도, 그리움이 자욱한 보랏빛 연무煙霧 같은 미감이 있다. 그가 병창을 하건 가야고를 타건 판소리를 부르건 한결같이 저변에 맥맥이 흘러가는 그녀만의 예술적 태깔이다. 드디어 강정숙 명인이 자신의 음악적 색조 위에, ‘만경벌 두레살이 걸죽한 육담肉談 남도길 굽이굽이 서린 정한情恨들’까지 입혀서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 음반을 발간했다. 크게 경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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