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신문TV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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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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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갓댁에서 동서들과 '김장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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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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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영화역사, 김종원의 영화 인생을 만나다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 이하 ‘영상자료원’)은 10일(금)부터 시인이자 영화평론가, 영화사가인 김종원 선생이 수년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자료들로 구성된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을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누리집(KMDb)을 통해 공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위한 든든한 밑거름, 김종원 컬렉션 김종원(1937년~)은 1959년 월간 『사상계』를 통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같은 해 『자유공론』 11월호에 「한국 영화평론의 위기와 과제」를, 『씨나리오 문예』 4집(1959년 12월)에 「현실과 앙가즈망의 계곡: <10대의 반항>과 <금지된 장난>의 작품 세계」를 발표하며 영화평론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0년에는 평론가 이영일, 김정옥, 노만, 정우영, 허창 등과 함께 한국영화비평가협회(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전신)를 발족해 보다 적극적인 영화 비평 활동을 전개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 2 - ‘영평상’ 제정을 주도했고,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유수 영화 시상식의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한편 김종원은 평론 활동 외에도 태창흥업(1968년~1969년; 1979년~1980년 재직)과 한림영화사(1982년~1983년 재직) 등의 기획실장을 역임하며 <맨발의 영광>(김수용, 1968), <악몽>(유현목, 1968), <달려라 만석아>(김수용, 1979), <신궁>(임권택, 1979), <버려진 청춘>(김소영, 1982) 등의 작품을 기획한 바 있다. 영상자료원이 공개하는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에는 그가 처음으로 영화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고정 지면을 확보해 영화 평론을 게재했던 『씨나리오 문예』를 비롯해 당대 영화 비평 담론을 주도했던 『영화예술』과 『현대영화』, 『영화TV』, 『영화TV예술』 등 다수의 영화 잡지가 포함되어 있다. 한편 그가 태창흥업과 한림영화사 기획실장으로 일하던 시기, 그곳에서 제작한 영화 스틸들과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로서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을 장기간 역임하며 받았던 임명패 등도 컬렉션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컬렉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한국영화사 연구에 매진하며 수집한 자료인, 1926년 10월 1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아리랑>(나운규, 1926) 광고이다. 당시 <아리랑> 광고는 조선 민족의 한을 그린 민요 "아리랑”의 일부 가사 때문에 광고 발행 직후 조선총독부 검열 당국에 의해 삭제 조치 되었는데, 이번 컬렉션에 소장된 <아리랑> 광고는 검열 조치 이전의 내용을 ‘온전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이 광고가 게재된 『조선일보』 1926년 10월 1일자 신문은 현재 - 3 - 까지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아리랑>의 ‘검열 이전’ 광고를 확인할 수 있는 현존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평론가로서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평생을 매진한 그의 삶이 녹아 있는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은 한국영화에 뜻이 있는 젊은 후학들을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영상자료원이 공개하는 <영화평론가 & 영화사가 김종원 컬렉션>은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누리집(www.kmdb.or.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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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거장 박범훈 명인박범훈 동국대 석좌교수가 최근 조계종 불교음악원장을 위촉받았다. 25일 '박볌훈류 피리산조'연주회를 준비히고 있다. 중앙대학교 총장,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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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5도 무형문화재 '평안도 향두계놀이' 보유자 유지숙유지숙 명인은 공연을 통해 서도소리와 북녘의 민요를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고, 민속악 발전과 문화향유를 공유하기 위해 지속적 전승활동을 해오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승 교육사 유지숙 명창은 현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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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장편소설 '흙의소리'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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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조춤의 대가, 김진걸산조 춤의 명인 김진걸(金振傑, 1926-2008) 1926년 출생, 2008년 사망. 서울 출신의 무용가이다. 조택원의 뒤를 잇는 한국무용계의 맏형이자, 한국 신무용의 2세대를 대표한다. 1955년 동양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진 이래, 모두 11차례의 개인 발표회를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규모가 큰 무용극보다 '산조'(散調)등의 걸작을 만들었다. 아울러 김진걸무용연구소를 설립해 김영희, 조흥동, 이운철, 정명숙, 문일지 같은 재능 있는 무용 인재들을 배출했다. 그 밖의 주요 출연 작품으로 <영은 살아 있다>, <심청> 등이 있고 주요 안무 작품으로는 <배신>, <향토의 선율>, <초혼> 등이 있다. 제자로는 임미자, 조흥동, 민준기, 이운철, 정명숙, 김세일라, 문일지, 김숙자, 김경자, 심의식, 정금란, 조카딸 김수남, 정창영, 유정숙 등 우리 무용계를 빛내는 명인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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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하고 나하고 놀던 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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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명무의 도살풀이살煞을 푸는 민속무용의 일종으로 경기도도당굿의 영향을 받은 살풀이춤을 가리키는데 주로 김숙자金淑子류의 살풀이춤을 지칭한다. 도살풀이춤은 경기도도당굿에 대한 김숙자의 탁월한 해석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양식화된 무속계통의 전통무용이다. 김숙자는 자신만의 개성 있는 춤기법을 정리하여 무속계통의 전통무용 유파를 형성하였다. 경기도도당굿에서는 각 거리마다 연주되는 도살풀이장단에 맞추어 무녀가 소리를 하며 부채와 방울 등무구巫具를 들고 어정거리며 춤을 춘다. 특히 경기도도당굿 12거리의 마지막 의식에서도 춤을 추는데 이 춤을 도살풀이춤이라 부른다. 그러나 경기도도당굿에서 추는 도살풀이춤은 의식적儀式的인 성격이 강해 단순한 춤사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어서 이를 무용으로 양식화했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반해 김숙자류의 도살풀이춤은 경기도도당굿의 무속적 특성들이 전통무용의 내외적內外的 형식미로 양식화되어 있어 전통무용의 범주에서는 이를 ‘도살풀이춤’으로 인식하고 있다. 매헌 김숙자(梅軒 金淑子: 1926-1991)는 화성 재인청 출신인 부친 김덕순에게 무속에 담겨있는 가무악을, 모친 정귀성에게 무속전반을 배웠다. 세습무가 출신인 김숙자의 경기도당굿시나위춤에 특징적 요소는 경기도 지방에 전승되어 온 경기도당굿에서 화랭이와 무녀가 추던 의식무 성격의 춤을 발전시켜 전통무용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따라서 김숙자의 춤들은 원래 경기 도당굿 굿판에서 추던 무속춤이었지만 재창조와 전승과정에서 무대화되고 예능화된 대표적인 무속 계열의 춤이다. 부친 김덕순과 모친 정귀성으로부터 김숙자에게 전승되어진 경기도당굿시나위춤과 경기류 민속춤은 현재 그의 제자 이정희를 통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으며 이정희의 제자 한수문 등으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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