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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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40여명 어깨 맞댄 '위 아 더 월드'는 어떻게 탄생했나"자존심은 문 앞에 두고 오세요."(Check your ego at the door) 1985년 1월 28일 밤. 석 줄짜리 문구를 휘갈긴 흰 종이가 로스앤젤레스 A&M 스튜디오 대문에 붙었다. 그리고 하나둘 도착하는 전설의 스타들. 스티비 원더, 브루스 스프링스틴, 다이애나 로스, 밥 딜런, 신디 로퍼, 빌리 조엘, 레이 찰스…. 부랴부랴 모여든 40여명의 팝스타는 어깨를 맞대고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자존심을 내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룻밤, 팝 역사상 다시 없을 꿈만 같은 밤이다. 자선 곡 '위 아 더 월드'의 탄생 배경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이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감독 바오 응우옌은 프로젝트를 기획한 주역들의 음성을 통해 흥분과 긴장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감독의 의도가 통했는지 이 다큐는 역사적인 녹음 현장을 담아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로도 통한다. 영화는 글로벌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98%(만점 100%)를 기록하고 있으며, 넷플릭스 공개 이후 곡 '위 아 더 월드'가 빌보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21위에 오르는 진기록도 나왔다. 작품은 1984년 12월 라이오넬 리치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 매니저 켄 크레이건은 라이오넬에게 인권운동의 선봉 해리 벨라폰테와 함께 아프리카 기아들을 구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백인은 흑인을 돕는데, 흑인은 흑인을 돕지 않는다"는 게 해리의 불평이었다. 켄의 구상은 이랬다. 밥 겔도프가 결성한 영국 자선 밴드 에이드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되, 미국의 슈퍼스타를 끌어들이자는 것. 가요계 마당발인 라이오넬이 나서자 섭외는 일사천리. 마이클 잭슨이 선뜻 라이오넬과 작곡에 나서고,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스티비 원더, 밥 딜런, 케니 로긴스 등이 잇따라 합류한다. 녹음일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시상식 당일로 정해진다. 팝스타 수십명을 한데 모으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이유에서다. 마감이 갑작스럽게 앞당겨지면서 발등에 불이 붙은 라이오넬과 마이클은 정신없이 곡을 써낸다. 이 모든 일이 고작 한 달 사이에 벌어진다. 작품의 백미는 거사 당일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A&M 스튜디오에 모여든 스타들의 면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현장에 있던 폴 사이먼의 한 마디로 짐작할 수 있다. "여기 폭탄이 떨어지면 존 덴버(70년대를 풍미한 포크 가수)가 다시 정상을 차지하겠네요." 그러나 들뜬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콧대 높은 스타들을 욱여넣은 좁은 스튜디오에는 탐색과 견제, 그리고 서로에 대한 동경이 뒤얽혀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카메라에 차례차례 나타나는 스타들의 어색한 표정은 작품의 또 다른 볼거리다. 라이오넬 리치는 그들의 첫 만남이 "유치원에 처음 간 날" 같았고, "퀸시 존스가 이 유치원생들을 통제해야 했다"고 회상한다. 그중에서도 잔뜩 움츠린 채 입술을 달싹이는 거장 밥 딜런의 갈 곳 잃은 눈동자는 그야말로 진귀한 광경이다. 이어지는 녹음 과정도 눈을 떼기 힘들다. 5천와트짜리 조명의 뜨거운 열기에 찜통이 돼버린 스튜디오에는 점차 짜증 섞인 불만들과 하품 소리가 늘어간다. 그 와중에 곡에 스와힐리어를 집어넣자는 스티비 원더의 제안에 스타들은 당황하고, 웨일런 제닝스는 '스와힐리어는 쥐뿔도 모른다'며 자리를 떠버리기까지 한다. 이후에도 혼란과 고비는 반복되지만, 그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팬이었다. 다이애나 로스가 대릴 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악보에 사인을 요청하자 녹음실은 순식간에 공동 사인회 현장으로 변모한다. 어찌어찌 녹음이 끝난 뒤, 로스는 끝내 울먹이고 만다. "이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면서. 그해 3월 발매된 '위 아 더 월드'는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4주간 1위에 올랐고,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다. 어쩌면 다시 없을 위대한 밤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기록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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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듯 다른 나라’ 헝가리- 駐 한국문화원한류 문화가 전 세계적 호응을 얻고 있는 지금, 한국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때, 각국의 한국문화원은 현지에서 다양한 기획과 활동 등 다각도로 그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국악신문에서는 각 국의 한국문화원장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문화원의 활동과 현지에서 한류가 지속 가능한 전 세계적 문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명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헝가리(Republic of Hungary, 헝가리공화국)는 ‘우리와 닮은 듯, 다른 나라’로 압축하여 말할 수 있다. 중유럽에 위치하고, 크기는 한반도 남한 면적과 비슷하다. 인구의 대부분이 ‘마자르족’(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며, ‘마자르어’라는 민족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우선, 언어학적 분류에서 ‘우랄·알타이어’ 어족(語族)에 함께 속하여 비슷한 언어적 특성을 가지며, 역사적으로 주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영토를 지켜온 민족이라는 점이다. 북한과는 1948년 11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교류를 이어왔으며, 남한과는 1989년 2월 수교 이래, 올해 수교 34주년을 맞는다. 헝가리에는 약 4,500명의(외교부 재외동포현황, 2021)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2012년 수도 부다페스트에 한국문화원이 설립되었으며, 2019년 11월, 현재의 부다페스트 프랑켈레오 거리로 확장, 이전하여 지상 5층 지하3층, 총면적 약 8000㎡로 유럽 최대 규모의 한국문화원 시설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획으로 문화사절 및 한류의 구심점으로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중심에 있는 인숙진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장으로부터 현지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원장님, 올해 주 헝가리 한국문화원에서 기획하시는 주요 행사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공연, 전시, 영화, 한식, 한국문화 강좌, 한국문화제, 찾아가는 한국문화원, 어린이 미술교실, 인문학 프로그램, 케이팝(K-pop) 아카데미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업이 있습니다. 주재국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한국문화의 매력을 소개하기 위해서인데요, 우선 올해 계획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연 몇 가지를 말씀 드리면, 9월 한국문화제 기간에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한국의 퓨전 국악인들을 초청 민요, 거문고 등 K-국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또한 헝가리 시어터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4월에는 죄르(Győr, 헝가리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오마이라이프 무용단이, 6월에는 MUT Dance(한국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창작무용의 한 종류)가 초청되어 죄르와 부다페스트에서 공연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때 한국 공연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체험할 수 있는 행사도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시로는 3월 부다페스트 포토 페스티벌에 ‘한국 특별 섹션(K-section)’으로 참여해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12명의 사진작품을 소개하고, 10월엔 아트 마켓 부다페스트에 한국 특별 부스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부다페스트 아트마켓은 중유럽 최대 아트마켓인데요, 이를 통해 국내 시각 예술 작가들이 국제 무대 진출할 수 있는 기반과 힘이 되길 기대합니다. 8월엔 한국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작가주의 만화) 전시를 통해 만화와 그래픽 노블 등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헝가리 현지에서도 한국 웹툰, 한국 만화 소설 등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굉장히 높은데요, 이번 전시를 통해 웹툰과 만화는 물론 일반 만화보다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한국 그래픽 노블의 매력도 현지인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영화제도 우리 문화원의 중요한 사업입니다. 최신 한국영화부터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약 30여 편의 영화를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감독초청 GV(Guest Visit) 등 부대행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올해로 영화제가 16회를 맞이하는데 극장이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영화들도 상영하다 보니 현지 관객들의 호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헝가리 유일 국제영화제인 미슈콜치 국제영화제와 협력해 영화제 기간에 한국영화 특별상영 행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다수의 사업이 헝가리 내 대표 문화예술축제 및 현지 문화예술기관 함께하는 사업인데요, 문화원은 현지 기관과의 지속적인 협력 및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고자 합니다. Q. 헝가리 도시에서 우리의 종묘제례악이 울려 퍼지는 일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하지만, 헝가리 현지인들이 우리의 전통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9월에 개최될 한국문화제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헝가리는 전통·민속 음악의 중요성을 알고, 타국 전통 음악에 대해 존중과 관심을 보이는 문화적 특징이 있습니다. 헝가리의 대표적인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헝가리 민속 고유의 음을 작곡 기법에 도입하기도 했고, 헝가리 고유 민속 음악의 기원 연구를 위해 리스트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문화적 배경과 특징을 고려해 작년 경기시나위 오케스트라, 이날치 등 K-국악을 현지에 소개했는데요, 두 공연 모두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올해 한국문화제의 주제를 K-국악으로 선정했습니다. ‘K-국악 : 정악에서 민속악까지’라는 주제로 국악의 여러 면모를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는 공연과 함께 국악 속에 깃든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여러 행사를 집중적으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국립국악원, 남도국립국악원, 젊은 국악인을 초청해 종묘제례악부터 민요, 거문고, 판소리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통 공연을 선보이고, 국악을 소재로 한 영화상영, 악기 체험행사, 한·헝 민속 음악 관련 전문가 심포지엄, 종묘대제 관련 교육 프로그램 등 부대행사도 풍성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통 음악 워크숍과 체험 프로그램의 경우 현지 대학 등 교육 기관과 협업해 진행할 계획인데요, 이를 통해 각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한국 음악과 문화를 소개하고 배울 수 있는 정례 프로그램으로 정착되길 희망합니다. Q. 1년 동안 펼쳐질 행사들 하나하나가 모두 기대됩니다. 준비를 위해 많이 바쁘실 것 같은데 진행 중이거나 앞둔 계획은 어떤 것인가요? A.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자연과 사람, 12인의 시선으로 노정한 한국현대사진’전 준비가 한창입니다. 작품 설치를 위한 공간 디자인부터 도록 등 홍보물 제작 및 감수, 작가와의 대화 등 부대행사 준비까지 많은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름 시즌인 7월과 8월에 개최 될 ‘KoreaON : 한국의 날’, ‘헝가리 국가민속유산 축제’참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KoreaON : 한국의 날’ 축제는 헝가리 한유(Han-You)문화재단(현지인 한국문화동호회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및 현지 한국문화 동아리 등 헝가리 내 한류커뮤니티와 협업하여 열리는 한국문화페스티벌입니다. 작년에는 헝가리 중심 야외 공원에서 개최했는데 1만 명이 넘는 분들이 축제를 찾아주실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문화원에서 행사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유럽에 있는 한국문화원 중 제일 큰 문화원이라는 우리 문화원만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도서관, 한식체험관, 전통문화체험관 등 문화원의 다양한 공간을 한국문화 테마파크로 꾸밀 예정입니다. 축제기간동안 문화원이 헝가리 속 작은 한국이 되어 관람객들에게 한국에 놀러온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헝가리 국가민속유산 축제는 8월 20일 헝가리 건국일을 기념해 '부다 왕궁'에서 개최하는 매년 7만명이 넘는 예술가와 관람객이 방문하는 대규모 축제입니다. 작년에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되어 낙화장, 단청, 민화, 한글서예, 지승공예, 생활 도자기 등 체험 부스와 함께 사물놀이, 전통 무용, 대형 탈춤 공연 등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헝가리 대통령 노바크 커털린(Novák Katalin)이 직접 방문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국가민속유산축제에 참가할 예정으로, 어떤 프로그램으로 참가할지 축제 조직위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Q. 헝가리 한국문화원이 가지는, 타국의 문화원과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요? A. 헝가리는 한류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고, 장르, 연령대, 지역 등에 편중됨 없이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케이팝, 한국 드라마 등 대중문화 동호회도 많지만, 서예, 조각보, 가야금, 전통무용 등 전통분야 동아리도 많고요. 활동만 활발한 것이 아니라 실력도 우수합니다. 가야금 동아리 ‘민들레’의 경우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주관하는 K-커뮤니티 페스티벌 민요 부문에서 1위를 수상했고(2022년), 전통무용동아리 ‘무궁화’는 한국에 초청되어 국립국악원 공연장에서 공연도(2015. 07.)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우수한 동아리들과 협력하고 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우리 문화원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문화 연합 동아리인 한유문화재단의 ‘KoreaON:한국문화페스티벌’, 부다페스트, 페치 등 지역 영화 동아리들이 주최하는 ‘Korean Movie Road’, 데브레첸 한류 동아리들이 개최하는 ‘한국문화의 날’ 등 많은 동아리 행사를 문화원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명장과 명인들을 모셔와 동아리를 위한 특별 강좌를 열기도 하고 서예, 전통무용 등 일부 동아리의 경우 실력이 우수한 분은 문화원 문화강좌 선생님으로 활동 할 수 있도록 기회도 드리고 있습니다. Q.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국에 있는 국민(동포)들에게 혹은 국악신문 독자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다면~. A. 현재 한국과 헝가리 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기업의 헝가리 투자 증가로 현지인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고, 문화원의 문화강좌 수강신청 인원이 배로 증가하는 등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현지의 관심도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역시 양국의 문화교류가 중요합니다. 문화적 교류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호감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헝가리 한국문화원이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활동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헝가리인들은 1948년 북한과의 수교 이래, 한국문화와 역사를 접하기 시작했다. 이후, 남한과의 수교를 통해, 어쩌면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심은 교육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전 주한 헝가리대사 초머 모세(2018-2022 재직) 교수에 의해 헝가리 최초로 대학교(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에 ‘한국학과’가 설립되기도 했다. 이것은 헝가리 내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고찰을 위한 의지를 반영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된 ‘한-유 문화재단’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한-유’는 ‘한국(han)과 당신(you)’를 잇는다는 의미와, 헝가리어로 ‘한류’로 발음되는 특징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2017년, 19개 동호회(한국영화, 태권도, 서예, K-pop, 가야금, 수공예 등), 현지인 200여명으로 구성된 단체가 정부에 사단법인 설립신고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이며, 현지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반영하는 증거이다. 앞서 인숙진 문화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것은 물론, 타 문화와 전통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헝가리 인들의 문화적 포용력 역시 현지 한류문화 성행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음을 추측케 한다. 이러한 문화적 성장 동력과 함께, 앞으로 헝가리 인들과의 문화적 소통을 바탕으로, 보다 폭넓은 분야에서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과정에 주 헝가리 한국문화원이 더욱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독자들의 관심과 응원 역시 이에 힘을 보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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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에서 개최되는 KBS한민족체험수기 시상식에 부쳐...오늘 'KBS한민족체험수기' 담당 프로그램 팀 10여 명이 시상식을 위해 카자흐스탄 알마티시로 출발했다. 시상식과 축하공연이 알마티한국교육원에서 10일 개최된다. 올해 영예의 대상은 사할린한국교육원에서 수년간 계속 한글을 공부하고 있는 사할린 2세 김경순(71세)씨가 수상된다. 일제강점기 1940년 전후부터 8만에서 10만으로 추정되는 조선인들이 사할린으로 강제동원이 되어 끌려왔다. 1945년 외세가 일으킨 전쟁은 끝났지만 동서양 냉전으로 국교가 닫혀 있어서 뱃길과 하늘길이 막혀서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남사할린 전 지역에 탄광지역이나 임업지역으로 배정을 받고 100여 가구에서 150여 가구가 이주하여 남사할린 전역에서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생존했다. 잔치날에는 절구방아를 찧어서 떡을 빚고, 부침개를 부치고, 국수를 뽑아서 상을 차리고 한복을 입고 소리패들이 나가서 민요를 부르고 장구를 쳤다. 이렇게 사할린 1세들은 자신들은 언젠가 돌아갈 조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국적도 없이 살다가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가 일부는 2000년부터 국내 영주귀국이 이루어져서 국내 인천, 안산, 부산, 김포, 파주, 양주 등 25개 지역에서 현재 25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병일 원장이 2021년 7월 한국에서 비자연장을 마치고 사할린으로 떠나기 전날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국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과 사할린 현지 한인들의 소식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주고 받았다. 비자연장을 위해 3개월마다 입국시 국내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사회 답사를 함께 동행했다. 김포, 인천에 영주귀국한 최정순 회장과 공노원 선생을 만나서 사할린 소식을 주고 받았다. 이원장은 사할린 한인사회에서 필요한 한복을 기증 받아서 가지고 가고, 2021년 제2차 영주귀국한 동포들이 요청한 한글학습 교재(러시아어 판)를 전달하기 위해 국내 영주 사할린 동포사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3월 KBS한민족방송 주최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50년' 공개방송에도 전 김주한 사할린교육원장님도 함께 참가해 주셨다. 2022년 9월까지 한국에 입국할 때마다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메신저를 통해 현지에서의 영상통화를 요청하여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KBS한민족체험수기 수상자 발표 소식을 듣고 바로 사할린으로 전화를 드렸다. Q. 원장님, 여기 한국입니다. 방금 이번 KBS한민족체험수기 대상 작품과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대상을 수상한 분이 바로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생 김경순님입니다. 이산의 가족사가 담긴 '눈물의 섬,사할린' 수기가 대상을 타게 되셨습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자에게 수상소감 준비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A. 정말인가요. 꿈인가요. 믿기지 않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의 경사입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밖에 생각안나네요. 이원장이 지난달 비자 연장으로 잠시 한국에 들어 왔는데, 몇달 전 미리 보낸 사할린 동포들의 '한글ㆍ한복ㆍ태권도ㆍ국악ㆍ아리랑 향유에 대한 인터뷰를 해주셨다. 이번에 대상을 수상한 김경순씨 체험수기 과정을 살피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1993년부터 20년간 한글 교육을 맡아 온 사할린한국교육원의 역할과 이병일 원장의 교육활동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한다. 아울러 이원장의 교육이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Q. 원장님, 안녕하세요. 3개월 전 뵙고 오늘 뵙네요. 사할린 동포들은 잘 지내시는지요. 코로나가 심한데......먼저 사할린한국교육원에 대해 소개 해주세요. A. 내년이면 사할린한국교육원 개관이 30년이 되네요. 1993년 12월 10일에 러시아내에서는 가장 먼저 설립된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기관입니다. 2016년에 러시아 사할린 교육부에 추가(보충)교육기관으로 등록되었고, 법률적인 조건을 유지하며 운영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재외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어 있으며, 기관의 설립 또한 한-러 수교 이후 생겨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육원은 전 세계적으로 43개 원이 있으며 러시아와 CIS지역(3개)을 포함하면, 우리나라 교육원 설립은 일본 다음으로 많은 한국교육원이 개원되어 있는 국가입니다. 한국어입문, 초급, 중급, 한국어 회화반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문화 초급, 고급반 및 민속춤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특별수업으로 한지공예, 전통매듭 등을 운영합니다. 전체적으로 학기당 200명이 입학을 합니다. 연 400여 명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한인동포 및 자녀, 현지인 절반 정도씩이고, 한글학교 등록 및 운영비 전달, 수업장학, 한국어 채택학교 지원사업, 한국어 능력시험 운영 등을 담당합니다. 다음해에는 30주년이 되는데...... 예산 확보와 30주년 행사 등의 대략적인 구상을 해놓고 이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극동 러시아에서 사할린 다음으로 개원한 교육원은 어디인가요? 조선인이 많이 사는 곳인가요. 하바, 블라디 중? A. 교육원은 한국정부나 교육부가 원해서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 동포들의 수차례의 요청에 의해서 그 국가 혹은 지역에 설립을 검토하여 개원합니다. 사할린과 연해주는 한인, 고려인 동포들이 많기 때문에, 또는 현지인들과도 사이가 좋기 때문에 국가, 지역 정부의 인정을 받아 설립, 개원하였습니다. 한러수교 후 가장 요구가 많았던 곳이 사할린이었습니다. 그래서 수교 후에 가장 먼저 1993년 12월 사할린에 개원하였고, 하바로브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로스토프나도누 순으로 교육원이 설립되었습니다. Q. 러시아에서 가장 한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이 사할린인데. 그만큼 한국어 습득 능력과 교육 실적이 높은가요? A. 교육실적은 교육원 건물 규모와 K-POP 열기와 관계가 많습니다. 법률적으로 많이 수용 가능한 면적이라면 실적이 많겠지요. 그런데 사할린은 작은 교실 3개와 공동사용 1개 교실이 있습니다. 물론 500명 수용 가능한 대강당은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사할린에는 한국어를 배우신 분, 한국말 잘하시는 분, 이미 한국에 영주귀국하신 친척들이 많은 동포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K-POP 열기는 매우 조용합니다. 마치 한국 국내에서 K-POP을 잘 모르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한국어 학습 열기로 보자면 현지인(러시아 민족)이 더하고 동포들은 적당히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참여률은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한국어 능력시험 수요는 사할린이 가장 낮습니다. 사할린교육원은 1년에 1번만 시험을 치루는데, 블라디보스톡, 하바로브스크, 로스토프나도누 교육원에서는 매년 2번씩 시험을 보며, 참가자들이 많아서 넓은 학교 강당을 빌려서 시험을 치룹니다. 물론 사할린에서 'K-POP경연대회' 등에서 한류 열기는 모두 대단합니다. 그러나 한국어, 한국문화 교육 실적에서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과의 연대감이 높고 주위에 한국말 잘하는 한인들이 많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는 여유가 있어서...그런가 봅니다. Q. 한국어 교육은 교육원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선생님들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요. 누구나 입학이 가능한가요. 입학시험이 있나요? 전에 가보니 엄마와 10대 후반 아들이 함께 배우더라고요. A. 한국어 교육은 입문반 3개반, 초급반 2개반, 중급 1개반, 회화 1개반으로 구성되고, 선생님들은 경력 1,2년차부터 정규 교육을 받으신 한국어학과 교수님까지 다양합니다. 현직 한국어 채택학교에서 재직하셨던 선생님들이시며, 실력은 정상급입니다. 다만 경력이 낮은 선생님들은 원어민과의 교류가 적어서인지 한국에서 파견된 저(원어민 사용자)와의 대화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처음에는 놀라웠습니다.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해당 언어를 하루도 빠짐없이 연구하고 접해야 하는데.... 그러나 학생들은 매우 만족해 하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교육 관련 대학에서도 교육과정에서 실제 1대 1로 대화하는 '회화'나 '듣기', '말하기'의 비중을 늘려야 하는 것이 우선적 학습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사할린한국교육원의 장수 수강생인 김경순님이 대상을 받으셨는데. 어떻게 체험수기를 쓰시게 되었는지요? A. 사할린한국교육원이 주최하는 '2022년 제24회 한민족 수기대회'에서 사할린한국교육원의 장수 수강생인 김경순님이 지난 4월에 자작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가수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곡의 가사에 맞추어 지으신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 가사인데, 일반적인 고국의 외면 속에 사시는 사할린동포 2세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 가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 담긴 가족사를 자세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을 하신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서 글로 써보시라고 권했습니다. Q. 가사 내용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가요? A. 가사에는 사할린 1세와 2세들의 디아스포라가 서린 가족사에는 뼈아픈 그리움이 절절했습니다. 그리고 7월 경에 또 한 편의 가사를 보내셨습니다. ‘칠갑산’ 노래에 맞춘 가사였는데, 한맺힌 눈물이 총총히 박힌 이별의 가족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이 가사에 부쳐서 노래를 부르려고 연습하려고 했다가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경순님의 큰오빠는 1940년 10살 때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으로 떠나신 부모님과 헤어져서 배 떠난 부두에서 당시 어린 큰오빠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적나라하게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5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려서, 어머니는 병드신 채, 아버지는 연로하신 채... 휠체어를 타고 한국을 방문해서 꿈에도 그리던 장남을 상봉하시고 나서 사할린으로 돌아오셔서 몇달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런 기막힌 이별과 짧은 재회, 그리고 생이별한 비극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12살에 부모곁을 떠나 서울 숙부댁으로 유학을 가던 장면이 겹쳐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녹화를 하는 내내 목메임을 추스릴 수 없었습니다. 한국어 자막이 달린 10분 정도의 다큐 영상을 열어보고 나서 가슴이 한참 동안 울컥했다. 남의 나라 전쟁 때문에 사할린에 끌려와서 반세기 동안 겪어야 하는 한 가족사의 디아스포라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그래서 제목이 '눈물의 섬, 사할린, 이별의 항구'이었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가 담긴 이 가족의 사연은 사할린 동포들에게는 누구나 겪어야 하는 가족사이다. 사할린에 사는 동포들에게 이러한 뼈아픈 사연이 없는 가족은 없다는 것이다. Q. 이번에 교육원생이 수상한 대상,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큰 성과를 얻으셨습니다. 개인적 소감은? A. 사할린에서 태어난 김경순님이 겪었던..... 부모님이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셨던 기억, 한국에 남겨진 큰오빠에게서 들은 이산에 대한 고통,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고향에 묻히지 못하고 타국에 묻히신 분들을 위로하고, 다시 내세에서 만나기를 기원하면서 글짓기를 해보시라고 했는데, 이 글이 조국에서 대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수상 소식은 사할린 동포들을 위로하는 치유가 되어서, 제 마음도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세계를 멈추게 하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해서, 이 상은 2022년 들어서 사할린 동포들이 맞이하는 조국과의 첫 교류이기도 합니다. 내년에도 사할린 동포들과 교육원생들이 많이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2020년부터 대상을 수상하신 사할린 동포들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다고 봅니다. 전 한국어 교사로서 한글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소임을 공감하셨다고 봅니다. 많은 사할린 동포들도 기뻐하였습니다. 교육원의 한글 수업에도 큰 힘이 됩니다. Q. 2년 동안 교육원에서 한글교육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은 ? A. 수많은 학생이 기억나지만, '안냐 나른스카야' 학생이 생각납니다. 교육원에서 5년간 한국어 공부를 했고, 한국에 나가서 장학생으로 유학하고 싶었지만 한국어 능력시험 3급으로는 자격이 안된다고 하여 탈락되었어요. 이후 사할린국립대 한국어학과 들어가고, 계속 교육원에 나오고 하다가 부산외대 교환학생이 되어 6개월 동안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의지의 사할린 여성이랄까요? Q. 사할린한국교육원에서 펼친 원장님의 교육이념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A. 사할린 동포들에게 있어서 한글과 한국어는 정체성의 구현입니다. 한국어를 모르면 한국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는 한민족의 얼이고 혼입니다. 다음 사할린 한인 4세 세대와 한국인 세대가 만나서 김치, 김치찌게, 삼겹살을 먹으며 먹으며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국문화에 친해지도록 탈춤도 보여 드리고 달고나(오징어게임)도 만들어 보여 드리고 제기차기, 팽이돌리기 등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Q. 원장님, 사할린 동포들의 한글교육과 사랑에 대한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다시 사할린교육원장직을 연장하시고 싶으시나요? 공식적 연장은 가능한가요. A. 네, 6개월 단위로 연장 가능합니다. 저는 코로나 시기와 함께 교육원 임기가 시작되어...처음 몇 개월동안 문을 닫고 해서 아쉬움이 커서. 6개월 연장 신청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떠날 때는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쩌면 다시 오기 위하여 지금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첫 개원이나 교육원 이전 등 정말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연장이 안됩니다. Q. 현재 한글교육을 하는 사할린 세종학교(교장:임종환) 역활과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유즈노사할린스크 세종학교는 재외동포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의 이름입니다. 세종학당재단에서 운영하는 세종학당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교육원에서는 매년 재외동포재단의 한글학교 운영비를 지원하고 정산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교육원에서 보유한 교과서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세종학교의 문화행사에 가끔 참여하기도 하고, 민속춤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글학교 수업 장학은 우리 교육원의 업무입니다. Q. 코로나로 인해서 한국에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팬데믹 기간 동안 교육원과 사할린한인협회는 연례 행사를 어떻게 치루셨는지요. A. 교육원은 문화행사로 주최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으로부터 교류가 없으니까요. 2021년 한국어말하기 K-POP 경연대회는 국립대학이 주최, 사할린한국교육원이 주관하였습니다. 김치축제에는 우리가 강사님만 초청했고, 막걸리와 전통놀이 도구만 지원했습니다. 사할린한인협회(회장:박순옥)가 주관했습니다. 2021년의 말하기 대회와 K-POP경연대회는 사할린국립대학에서 예산을 세워서 개최했으며, 설날 행사 등에는 사할린한국교육원 민속춤 클래스에서 ‘밀양아리랑 댄스’을 더했지만, 실제적 주최는 사할린한인협회입니다. 이제는 사할린에서 문화행사는 대부분 사할린한인협회가 주관하게 되었고, 저는 사할린동포 단체가 주체가 되어 주최되는 문화행사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13일 인터뷰를 마치고 2일후 이원장은 탈춤을 가르치기 위한 한삼 20벌과 한복 10벌, 무용 슈즈 10컬레를 트렁크에 추려 넣고 뱃길로 가는 사할린 길을 나섰다. 이원장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동해안 뱃길을 타고 블라디보스톡에 당도한 후 다음날 오전 사할린 가는 비행기를 타고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사할린에 가는 직항로가 폐쇄 되어서 2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돌고 돌아서 2박 3일을 걸려서 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은 3년째 가족이 기다리는 사할린 땅을 밞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 봄에만 해도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모스크바에서 사할린 행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했다. 올 가을부터 연해주로 가는 뱃길이라도 열려서 다행이다. 그러나 극동 러시아 바이칼 부근 지역에 사는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몽골을 경유해서 2일간 육로로 가야하는 형편이다. 우리 모두는 어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사할린 한인들의 정체성을 살피기 위해 이병일 원장에게서 사할린 동포들의 '김치'와 '국악'의 향유에 대한 인터뷰를 싣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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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운, 미주 최초 판소리 '심청가' 완창22일 미주 최초 판소리 심청가' 완창발표회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에 위치한 반스달 극장(Barnsdall Theater, 4800 Hollywood Boulevard, Los Angeles, California 90027)에서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공연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제1부는 곽씨부인 어진행실-부친하직, 제2부는 범피중류-추월만정, 제3부는 탄식-눈뜨는 대목으로 구성되었다. 각 막에서 특별공연으로 제2부에서 김향란의 가야금 연주 '수성반주', 제3부 특별공연으로 춤꾼 이지호의 '살풀이' 망사대 무대가 선사되었다. 고수는 국립창극단 기악부 조용수 악장이 맡았다. 소리꾼 서연운(1972년생, 전주)은 10살부터 판소리 공부를 시작하였고 전북 무형문화재 ‘심청가’ 명예보유자 이일주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춘향가를 사사받고 최근에는 장문희 명창으로부터 심청가를 사사받아 이 자리에 섰다. 소리와 인연을 맺은지 40년이나 흘렀지만 오늘까지 미국 동포사회에서 판소리를 계속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소리 인생을 살아야하는 운명을 짊어진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장문희 스승을 모시고 이번 완창발표회를 준비했다. 이일주 명인은 "2000년 초 미국 유학을 떠난 제자가 오늘날 미주에서 판소리를 알리고 있다. 동초제에서 인정받는 전공자가 보유자 입석하에 진행되는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정식 완창 발표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며 "이번 발표회가 미국에서 완창의 신호탄이길 간절히 바라고 이번 공연이 우리 판소리를 더욱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라고 강조했다. 미주 동포사회에서 국악을 향유하는 관계자는 "이번 공연은 전통 판소리의 뿌리를 계승하는 서연운의 첫 번째 완창발표회로, 동초제 판소리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귀한 무대로 기억된다"고 전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연운 소리꾼은 "특히 이번 발표회 준비를 위해서 멀리 서울에서 장문희 선생이 와 주셨습니다. 어린시절 이일주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심청가 전바탕을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이라는 곳에서 가르침 받을 스승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저에게 다시 한번 동초제 심청가를 올바르게 다듬어 주고 잡아주신 장문희 명창, 언제나 소리 북장단으로 제 소리에 힘을 실어주시는 국내 최고의 조용수 명고수, 그리고 누구보다도 동초제 판소리 거목 이일주 선생님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말씀드린다."라고 전했다. 미주예술원 '다루' 박창규 이사장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판소리 심청가 완창 발표회 축하드립니다. 진정한 판소리를 감상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오늘이 바로, 심청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날임을 자부합니다. 2003년, 미국에 건너와 현재까지 미주에 판소리를 전파하고자 하는 서연운 선생님의 노력과 헌신으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고 큰 성과를 이루었으며 오늘 드디어 개인의 완창발표회를 하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쁜 날입니다."라고 전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장문희 선생은 "문화가 다른 미주에서 우리 소리를 널리 알리고자 힘쓰시는 많은 국악 동호인과 관계자 분들의 노고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오늘 미주 최초 판소리 완창무대를 준비하는....소리, 성음, 너름새 그 자체 만으로 소리꾼의 예술적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줘야 하는 이 무대... 용감하게 도전한 그녀의 땀과 눈물이 얼마나 많이 녹아있을지 또한 귀추가 주목될 대목입니다. 오늘 이 무대는 동초제 판소리를 통해 우리 전통음악의 예술성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동초제'는 동초(東超) 김연수(1907~1974)명창이 1930년 초 당시 5명창 송만갑, 유성준, 정정렬 선생 등에게 배운 소리를 다시 이면에 맞게 사설과 소리를 재구성하여 '동초'라는 자신의 호를 붙임으로서 ‘동초제’라는 새로운 소릿제가 탄생한 것이다. 전승력이 강한 판소리로 자리매김한 동초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의 예능보유자 고 김연수 선생이 창시한 유파이다. 특히 동초제 예술적 특성은 동편제의 우람함과 서편제의 아련함을 조화한 소리에 있다.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여 사설과 가사 전달이 정확하고 너름새(발림)가 정교하여, 부침새(장단)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동초 김연수는 판소리 노랫말 정리에도 힘써 ‘창극 판소리’라는 창법으로 판소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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