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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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민요연구회, 25일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선보인다대구에서 대구 근대인물 이재욱의 업적을 기리는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행사가 25일 개최된다. 영남민요연구회(회장 배경숙)은 2005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의 18번째 행사이다. 25일(일) 오후 4시 ‘2.28 기념공원’에서 개최한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는 이재욱의 일대기를 5막으로 보여준다. 유년기 시절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함께 보낸 시인 이상화와 문학적 관계를 보여주고, 청년기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영남민요를 전공하고 중앙도서관 근무하는 시절을,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 장년기는 해방 직전 대구로 귀향하여 도청에서 근무하는 시기의 활동상을 조명한다. 마지막 대목은 짧은 생애 동안에 그가 남긴 영남민요 자료조사의 소중함을 함께하는 무대로 전래민요를 오늘날의 버전으로 현대화한 작품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재욱이 남긴 1930년 기록 속의 영남의 토속민요를 남성 노동요, 여성 연정요로 부각시켜 '생활 속의 민요'로 향유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지게목발소리’를 정종철 외 회원들이, ‘화전노래’를 정종화 외 회원들이 함께 한다. 특히 세 가지 아리랑도 무대에 올려지는데, ‘구미의병아리랑’을 임규익 외 회원들이, ‘팔공산아리랑’을 전체 합창으로, ‘경산아리랑’을 배경숙 외 회원들이 꾸민다. 이외 10여 종의 영남 지역 전래민요가 다양한 전통 절구같은 농기구, 삼베 잣는 물레같은 소도구와 함께 30여 명의 회원들에 의해 펼쳐진다. 행사를 주관하는 영남민요연구회는 17회의 공연을 통해 영남지역 전래민요를 현대적인 무대화 작품으로 선보이며 나름 성과를 이룩했고, 회장 배경숙은 이재욱의 영남전래민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요 공연 기획자이다. 이번 행사에 대해 배 회장은 "이재욱은 어린시절 대구의 대표적인 시인 이상화와 삼촌간이라는 것에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영남민요를 연구하였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재욱의 학문과 민요 연구 성과를 더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영남민요연구회는 2016년 이재욱(1905~1950)을 대구근대문화인물로 선정하는데 기여하고, 그의 주요 업적인 ‘영남전래민요집’을 발굴, 연구를 주도하였다. 이번 공연은 이재욱의 생애와 업적을 타 지역에 알리는 목적으로 그가 조사 기록한 영남지역 아리랑과 민요를 재현하고 보존하기 위한 무대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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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아리랑경창대회, 아리랑/민요경창대회로 확대문화 매력도시를 지향하며, 충청도 아리랑 중심지역 기반 확충을 위한 (사)공주아리랑보존회가 8회를 맞는 금년 경창대회를 아리랑과 민요 종목으로 확대하여 개최한다. 한강권의 메나리조 아라리와 남한강권의 육자백이조 산아지타령의 영향으로 형성된 공주지역 아리랑은 긴, 잦은, 그리고 엮음아리랑 형이 전승된다. 남은혜 명창이 보존회를 결성하여 전승해 오고 있다. 2012년에 유네스코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에 서명한 대표적인 아리랑 전승단체이다. 매년 3월 1일 ‘공주아리랑제’와 ‘공주아리랑경창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9월 29일(토) 공주문화원에서 개최하는 제8회 공주아리랑민요경창대회는 더 많은 국악인들의 참여를 위해 아리랑만이 아닌 민요 종목으로 확대, 개최한다. 충청권 아리랑과 민요 거점 지역으로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참가 대상은 명창부 일반부 단체부 신인부 학생부로, 대학생은 일반부에 포함하고 학생부는 초중고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최고 대상은 국회의장상이다. 필수 지정곡은 공주아리랑 긴, 엮음, 잦은아리랑 중 택일할 수 있다. 공주아리랑보존회 남은혜 이사장은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었던 국악인들의 활동이 제자리를 찾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또한 공주아리랑의 진가를 더 많은 국악인들이 불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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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국악의 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지난 9월 15일, 국악방송이 주최하는 ‘제16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본선 경연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되었다. 저녁 7시 생방송을 앞둔 시간, 객석은 채워졌고, 무대는 첫 출연팀의 악기들이 준비되어 있다. 기자 눈에 들어온 카메라만 8대. 무대 위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것이다. 이 날 참가자들의 무대는 경연이기 이전에 객석을 흥분시키기도, 감동을 자아내기를 반복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O(오) ‘0(영)’ 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팀과 곡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들의 음악에 제한과 전형성을 거부하는 음악적 주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악은 몽환적인 피아노 선율을 시작으로 하얀 화선지에, 점을 찍듯이 시작한다. 사운드가 더해지면서 묵직한 붓으로 채워가는 수묵화가 그려지는 듯하다. 장구, 대금, 피리, 꽹가리, 징 그리고 전자기타까지 선율을 타고 리듬과 어우러진다. 듣는 이는 곡의 기승전결을 따라 숨죽이며 따라갈 뿐이다. 절정에서는, 웅장한 북소리, 보컬과 어우러지는 전체 합주는 무속의례를 연상케 한다. 듣는 이의 가슴을 치듯 강렬하고도 부드럽다. 과연 그들의 곡은 가슴을 울리는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줬고, 그들의 서사와 드라마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대회 첫 주자로서 ‘이 대회가 이 정도입니다.’라고 말하는 듯, 관객들의 기대를 한껏 올려줬다. 오프로드 ‘듄’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 광활하고 메마른 사막을 헤쳐 가며 반복되는 여정과 모험을 표현한 곡. 빠른 비트의 가야금, 그리고 장구도 함께 속도감을 준다. 여기서 합류하는 양금의 고음은 신비감과 함께 황량한 대지를 연상케 한다. 절정에서 장구의 빠른 비트와 함께 저음과 고음 각 자리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는 양금, 가야금과 베이스기타의 향연은 가슴을 울린다. 아마도 정상에 오른 감격의 표현일 듯. 그리고 다시 속도를 되찾는 곡은 공허함과 새로운 여정을 의미할 것이다. 한 참가자의 거문고와 베이스기타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연주에 놀라웠고, 가야금의 울림과 피아노의 음색을 동시에 가진 양금의 매력에 한껏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이러리-저고리 ‘풀어라!’ 팀 이름은 ‘색동저고리’의 제주방언이다. 곡 ‘풀어라!’는 비나리 형식을 빌리지만, 경쾌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청춘들의 고민을 풀고자 한다. 한 외국인 참가자가 눈에 띄는데, 그는 아프리카 전통악기 발라폰(울림통 이용한 목재 실로폰)과 고니(나무와 조롱박으로 된 기타와 유사한 현악기)의 연주로 함께하며, 곡의 음색은 더욱 풍부해진다. 발라폰의 경쾌함과 태평소의 힘찬 울림이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청춘의 고달픔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픈 청춘들의 당찬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통악기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음악적 경험이다. 구이임 ‘나븨’ ‘나븨’의 ‘븨’는 ‘때’를 뜻하는 옛말. 고장 난 시계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쇳조각이 나비가 되지만, 결국 시간에 젖어 녹슬고, 아늑한 기억 한 때에 머물며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서사를 표현한다. 정가 특유의 긴 호흡의 신비로운 음색과 고음의 가야금은 쇳조각이 나비가 되는 판타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피아노와 가야금이 함께 곡을 받쳐주며, 남녀보컬은 고음과 저음 각 자리에서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야금은 때로는 타악기로 변신하거나 줄로 끄는 듯한 방법으로 고음과 저음을 구현하며, 보컬과 함께 곡 전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반쯤 핀 꽃 ‘반쯤 핀 꽃’ 경기민요 ‘매화타령’을 모티브로 만든 곡. 팀 이름과 같은 ‘반쯤 핀 꽃’이라는 곡은 활짝 핀 꽃보다 그 과정에서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국악 여성 보컬의 느린 박자에서 남성 보컬의 빠르고 힘찬 타령의 합류, 이후 모든 보컬의 합창은 강렬한 시작을 알렸다. 양악 보컬이 독특한 음색으로 합류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오른다. 드럼은 비트를 더하고, 첼로는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경쾌함을 돕는다. 매화타령이 리듬과 비트를 타고, 드럼, 첼로, 기타, 피아노 등과 힘을 얻는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듣는 이의 다리는 어느새 리듬을 타고 있다. 시련과 고민을 안고 가는 청춘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듯한 곡이다. 줄헤르츠(JUL Hz) ‘블루(Blue)’ 현악기의 줄(Jul)과 주파수를 뜻하는 헤르츠(Hz)를 조합하여 만든 팀 이름. 거문고, 가야금, 아쟁 3명의 현악기 연주자들은 연주의 진동까지 느껴지는 섬세한 연주로 대중과 주파수를 맞추고자 한다. 그들의 곡 ‘블루(Blue)'는 평화를 상징하는 색이다. 세상의 모든 갈등과 전쟁에 상처 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를 갖는다. 빠르고 반복되는 듯한 리듬은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이 갖는 특유의 음색을 보여주면서도, 현악기가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음악적 언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활을 타고 흐르는 거문고의 굵직한 고음은 상처받은 이의 슬픔 같기도, 그들을 향한 위로 같기도 했고, 가야금과 아쟁은 고음과 저음을 오가며, 서로 대화하는 듯한 음악적 화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완x케빈 ‘달에게’ 정가 보컬리스트와 재즈피아니스트의 만남. 드뷔시의 ‘달빛’을 오마주 한 곡. 정가 보컬의 고음이지만 속삭이는 듯한 음색이 동화적 곡에 녹아 내린다.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자리하던 동심을 떠올린다. 마치 어린이가 되어 노래로부터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순간, 나로 모르는 울컥함이 차오른다. 달에게 속삭이듯 노래하던 ‘달아, 달아~’ 가사는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피아노 반주를 타며, 동화적 감성으로 정가를 노래하는 그녀는 분명 신이 만든 악기임이 틀림없다. 이동하며 연주가 가능한 관악기의 특성을 살려 역동적이고 유쾌한 퍼포먼스가 객석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드럼과 기타의 경쾌한 박자를 타고 흐르는 태평소와 향피리 등 관악기들의 힘있고 경쾌한 음색을 즐길 수 있었다. 시종일관 역동적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7명의 관악기 연주자들은 독주로, 때로는 협주로 익살과 재미를 더해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꽹가리는 그 절정에서 놀이의 흥을 돋우며,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어릴 적 골목놀이를 연상케 하는 그들의 곡명은 바로 ‘가위바위보!’. 매간당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 매간당(魅衎黨:매혹할 매, 즐길 간, 무리 당)은 그들만의 새로운 멋과 소리를 담은 국악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자 한다. 그들의 곡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는 악기를 처음 만났을 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악기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통해 실험적 연주기법을 만나게 된다. 비트는 빠르고 곡은 빈틈이 없다. 거문고는 아쟁의 활과 만나고, 아쟁은 해금의 활대와 만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색까지 만들어내는 그들의 음악은 과연 매력 그 자체였다. 강렬한 독주이자 협주를 듣는 느낌이다. 자신의 악기에 몰두하면서도 서로의 퍼즐을 맞추듯 곡을 완성해가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강렬하면서도, 듣는 이가 소리에 더욱 집중하도록 이끈다. 소리꽃가객단 ‘제be노정기’ ‘소리로 꽃피우자!’는 좌우명을 갖고 있는 팀. ‘제be’는 새 ‘제비’를 뜻하지만, 박씨를 물고 날아와 ‘복이 되다(be)’의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강도근제 홍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사용했다. 5인 여성 소리꾼들은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질펀하고도 힘찬 판소리다. 곡의 시작은 그루브 리듬을 연상시키는 드럼과 베이스기타의 비트, 그리고 피리의 고음이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준다. 후반부에서는 마치 락을 듣는 듯한 리듬마저 느낄 수 있다. 5인의 여성 소리꾼들은 서서 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판소리를 댄스와 함께 소화해냈고, 관객들은 새로운 음악적 경험에 열광했다. 그들은 대중에게 판소리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선사한 것이다. 창작국악을 들으면서 경험하는 새로움 중 하나가, 익숙한 소리나 가락을 들으면서, 현대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옛 것도 즐길 수 있구나, 가슴을 울릴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민족적 자부심과 희열은 창작국악이 주는 묘한 감동이다. 그 새로움과 자부심을 함께 느끼게 되는 그 순간, 시대의 옷을 입은 국악은 대중을 끌어들이게 되고, 이것이 창작국악의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본선 경연일 한 심사위원(이슬기 가야금연주자)의 심사평에 의하면, "연주자들의 창작 역량이 강해졌고, 그 음악적 기반이 단단해졌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들의 음악은 자신의 고유 영역을 충분히 분석한 후에 얻은 것이며, 음악적 깊이를 갖춘 노력과 땀의 결과라는 평가를 의미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즐기면서 자신만의 음악적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은 진정 또 다른 우리 국악의 모습이다. 전통음악이 지난 시대의 삶의 거울이라면, 창작국악은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또 다른 국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 음악인이 국악을 계승하는 하나의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창작국악은 일제시대 식민 지배를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시작했다는 아픈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받아들여야 할 우리의 냉정한 현실이다. 다만 시작은 그러했을지언정, 지금의 창작음악은 조금 더 주체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전통음악을 품고,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는 참신함, 삶의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곡의 메시지, 경계를 넘나드는 악기의 구성 등에서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음악적 상상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아마도 국악이라는 세계가 주는 음악적 매력이 더해졌기에 우리의 감성을 더 자극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장에서 기자가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은 이들은 음악을 진정 즐기고 있었다. 아니, 가지고 놀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에너지가 없다면, 이토록 놀라운 창작품들이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가진 음악적 에너지와 감수성, 그리고 열정이 대중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년에는 어떤 음악이 우리를 들뜨게 할지, 성급한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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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매간당’, 대상![류기자의 현장]국내 최대 창작국악 경연대회인 ‘제16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영예의 대상은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라는 곡으로 출전한 ‘매간당’팀이 차지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국무총리상과 상금 1500만원이 수여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국악방송이 주관, 국립국악원이 후원하는 ‘2022 국악 창작곡 개발 -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올해로 16회를 맞으며, 본선 경연을 지난 9월 15일(목) 저녁 7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됐다. 경연은 국악방송 TV, 라디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대상 수상팀인 ‘매간당’은 황재인(작곡), 유예진(거문고), 이다현(가야금), 김서연(대금), 이혜리(아쟁, 징), 김솔림(해금, 정주)으로 구성되었으며, 魅衎黨(매혹할매, 즐길간, 무리당)의 뜻을 갖는다. 한자어 그대로 음악과 퍼포먼스, 현대음악적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멋과 소리를 가진 다채로운 매력의 국악을 선보여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자 한다. 수상곡인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는 악기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악기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탐색을 전통악기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로 구현해냈다. 이전에 없던 그들만의 연주방식과 곡의 흐름은 강렬한 독주 같기도, 때로는 조화로운 협주를 듣는 듯, 독특한 음악적 각인을 경험하게 했다. 이들은 수상소감에서 "예상치 못했던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라고 감격과 기쁨을 표현했다. 수상 훈격과 수상팀은 다음과 같다. 대상(국무총리상) : 매간당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 소리꽃가객단 ‘제be노정기’ 은상(국립국악원장상) : 구이임 ‘나븨’ 은상((재)국악방송사장상) : 피리밴드 저클(JC Crew) ‘가위바위보!’ 동상((재)국악방송사장상) : O(오) ‘0(영)’, 반쯤 핀 꽃 ‘반쯤 핀 꽃’ 장려상((재)국악방송사장상) : 오프로드 ‘듄’, 여완x케빈 ‘달에게’, 이러리-저고리 ‘풀어라!’, 줄헤르츠(JUL Hz) ‘블루(Blue)' 2차에 걸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총 10팀은 작곡·연주·문화예술기획 분야의 전문가 멘토링을 거쳐 본선 경연에서 한층 더 다져진 실력으로 풍성한 무대를 선보였다. 각 팀들은 음악적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연주구성과 깊이 있는 음악적 통찰력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작년 대상 수상팀인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축하공연으로 경연의 열기는 한껏 더해졌다.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지난 15년간 총 130곡의 창작곡, 16장의 앨범을 발표해오며, 신진음악인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마다 전통음악에 현대적 감성을 담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국악창작곡을 선보이며, 전통음악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국내외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류 열풍에 힘을 보태고 있기도 하다. 대회의 주요 앨범으로는 ‘난감하네’, ‘풍류도시’,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등이 있고, 배출한 작곡가는 심영섭, 최덕렬, 홍정의 등이 있으며, 에스닉팝스룹 락(2007), 불세출(2007), 앙상블 시나위(2008), 숨(2009), 고래야(2010), 헤이스트링(2017), 서도밴드(2018), 경로이탈(2019) 등의 그룹들 또한 이 대회 출신이다. 또한 이번 대회는 류형선(작곡가,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초대 예술감독), 김영대(문화연구자, 음악평론가), 방수미(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지도단원), 설현주((주)국설당 대표), 신대철(밴드 시나위 리더), 심상욱(전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 이슬기(가야금 연주자) 등 총 7인의 각 분야 전문가에 의해 공정하게 평가되었다. 류형선(전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 심사위원장은 "오늘 이 무대에서 대중성,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치, 그 예술적인 가치, 독창성, 이런 것들을 다 관통해내는 어떤 천재 하나를 만난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국악은 이래야 된다’ 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 무한대의 자유로움 같은 것을 선사해주신 것 같아서 무척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라고 심사의 소회를 밝혔다. 본선에 진출한 10팀은 아티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프로필 사진 및 영상 촬영과 음원 녹음을 마쳤으며, 이후 CD앨범 제작 및 국내·외 주요 음원사이트 내 수상곡 음원 유통으로 대중과 음악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국내·외 공연 출연 연계 등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적 상상력과 통찰력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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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절신 충혼 달랜 한글 악장(樂章) 발굴제47회 정선아리랑제가 15일부터 3년 만에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다.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정선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로 진행된다. 축제는 남면 거칠현동 七賢祠(칠현사)에서 고유제를 지내면서 시작된다. 정선출신 고려유신 전오륜을 비롯한 신안·김충한·이수생·변귀수·김위·고천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들이 율창(律唱) 한 7편의 시가 정선 지역인들에게 전해지면서 정선아리랑 대표사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와 같은 우국 사설이 지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 시원설과 7인의 인물과 7편의 시가 언급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제는 이들의 위패를 배향한 정선 남면 거칠현동 ‘7현사’에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금년 행사에는 특별한 수서가 들어갔다. 고려 충렬신들을 기리는 ‘악장’ 일편이 낭송되기 때문이다. 이 (사)아리랑연합회 소장자료인 1936년 간행 景賢祠誌(경현사지) 제5권에 수록된 것을 이번에 발굴,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악장은 조선시대 들어 궁중에서 국가행사나 잔치 등에서 행해진 장르이다. 이 번 발굴 작품은 기존의 한문 또는 현토(懸吐) 형이 아닌 국문 중심의 악장이면서 민간에서 행해진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를 계기로 발굴 악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고려 충절신은 이른 바 ‘杜門洞72현’으로 통칭된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세워진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성계에 불복하여 두문동 만수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문신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의 존재와 충절 정신이 세상에 드러나기로는 조선조 후기에 와서다. 1740년 영조 임금이 개성을 행차할 때 만수산 인근 두문동 유래를 듣고 비석을 세워주게 되고, 이을 계기로 자손들이 가승(家乘)에 수록하자 다시 정조 임금이 감탄하여 1783년 개성 성균관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추모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후 ‘두문동72賢’, ‘3隱’, ‘9貞忠’, ‘7賢’ 등의 인물 규정이 생기고, 기리는 문중의 사당 건립과 실기(實記)나 문집 등의 간행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기록이 1809년 ‘두문동선생실기’(3권1책 목판본), 1860년 ‘화해사전’(1931년 재간), 1866년 ‘채미헌실기’(서산서원 발행), 1904년 ‘전씨관면록’9전사자본), 1934년 ‘두문동서원지, 1936년 '경현사지'(목활자본), 1956年 '전씨관면록'(鉛活字本) 등이다. 이 중에 ‘채미헌실기’와 ‘전씨관면록’은 전오륜 등 ‘정선7현’ 관련 시편이 수록되어 주목되고, ‘경현사지’는 고려 충절신을 기리는 한글 악장(樂章)이 수록되어 주목된다. 전자는 정선아리랑의 시원설과 관련 있는 시편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후자는 민간의 한글 악장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문헌들이다. 그런데 후자 즉, ‘경현사지’에 수록된 악장 작품은 기존에 국가 행사에서 불러진 악장과는 다르게 민간 향사에서, 그것도 한글로 지어진 악장이란 점에서 큰 가치로 평가한다. 특히 실제 불려진 작품이란 점에서 음악적 논의도 필요한 작품이다. 樂章 享祀 時 擧用 麗季忠賢貞忠大節 죽어죽어 一百番 다시죽어 白骨이 塵土되고 魂魄이 잇든지엄든지 人君ᄉᆡᆼ각ᄒᆞ난 一片丹心이야 엇지끈칠쇼냐 天命이 도라가이 國事가 이미 글넛도다 王氏의 鬼神이 차라리 될지언정 李氏의 臣下난 되지 안컨네 杜門ᄒᆞ기을 甘心하여 죽은 뒤에 말지로다 深山에 드러가면 耕者를 누가 알고 陶河世上머럿시니 슬푸고 슬푸도다 潘溪水에 끄든낙수 周文王을 낙는 ᄯᅳᆺ은 무삼일고 伯夷ᄂᆞᆫ 엇드한 사람이며 나은 엇더한 사람이뇨 齊王蠋의 忠臣不事二君 말은 나도 敬服하난바라 松嶽山을 도라보니 우리 故國이 아니요 首陽山을 바ᄅᆡ보니 차마 한마음을 이질쇼냐 五柳先生淵明은 千古에 同志로다 新朝에 北面마소 二心人이 붓그럽게 高麗山이 어ᄃᆡ잇나 차자가기 願이로다 田橫島가 어ᄃᆡ잇나 차질길이 茫然하다 國破君亡아엿시니 나난어ᄃᆡ로 갈고 時代가 이미 글너시니 안이가고 무어설 求할소야 정몽주의 ‘丹心歌’를 수구(首句)로 충절을 주제로 했음을 제시하고 ‘충신불사이군’ 등의 술어로 출절의 고고함을 찬하였다. ‘新朝’, ‘高麗山’, ‘國破君亡’ 등으로 왕조의 개변이 있었음을 분명이 하고, 충절신들을 천고의 동지로 삼아 살지어라고 한탄하였다. 새로운 우국 악장인 것이다. 악장 전공인 숭실대 조규익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작품을 듣고,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로 상징되는 왕조 악장의 전통에서는 그 반대의 고려조 충신을 기리는 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조 교수는 "享祀時 擧行”이란 기록으로 실제 사용된 사실에 대해 음악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하였다. " 그 곡조가 고려시대 또는 조선 초 민간음악과 관련을 갖고 있다면 메나리조의 중심인 정선아리랑과도 관련지어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국가에서 사용하기 위한 악장이나 현토(한문에 토만 단 형태)악장과 다르게 한글 악장이다. 특히 "享祀 時 擧用”이란 표기와 홀기(笏記)이어 수록한 것으로 볼 때 1783년 개성 성균관 표절사(表節祠) 제향이나 1936년 경현사 제향에서 실제 불린 것으로 볼 수 있다. 15일 제47회 정선아리랑제에 맞춰 ‘7현사’에서 축제 고유제가 있다고 한다. 이 뜻깊은 행사에 충절신 향사 전통을 이어, 이 번에 곡조를 얹어 부르지는 못 하더라도 낭송으로라도 올린다면 의미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일곱 충신들의 위패 앞에서 제를 지내는 것은 충절 정신을 계승하고, 정선아리랑을 가시화 한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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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의 재현과 특성본지 8월 13일자 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의 기고문 "동두천 이담농악, 경기북부에서 '국악의 메카'로 도약" 이라는 주제의 지면이 나간 후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담농악'은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기 북부지방의 양주시 문화권에 본류를 둔 농악으로, 이담풍물놀이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경기도 향토 지적 재산으로 선정되었다. '이담'은 1963년까지 양주에 속해 있는 동두천의 옛 고을 이름이다. 양주지역은 예부터 수많은 뜬쇄들이 배출된 농악의 고장이었으며 마을마다 농악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1945년 8·15광복 전후에 양주지역에서 개최한 각종 농악경진대회에서 이담농악은 많은 상을 차지하였다. 1960년대까지는 이담농악에 속하는 송내농악·안흥농악·광암농악·행단농악·하봉암농악 등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송내농악의 상쇠잡이 조임득, 행단농악의 이창인 등이 이담농악을 이끌었다. 근래에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었다. 1997년 문화원에서 ‘우리소리 한마당’이라는 제명으로 이담농악이 재현되었다. 2년후 1999년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동두천 지역민의 응원에 2007년에는 '동두천시립이담풍물단'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지 8년 후, 2017년 이담농악이 문화재 등록이 되고, 보유자가 지정된다. 김경수 단장은 전승이 희박해져 가는 동두천 '이담농악'을 재현하기 위해 힘쓴 공로와 타고난 예능을 인정받아서 동두천 무형문화재 3호 '이담농악' 보유자가 된다. 그런데 필자는 왜 타지에서 온 김경수 단장이 보유자가 되었을까라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동두천 '이담농악'이 무형문화유산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본다. 김단장의 이력을 살펴보니 일찌기 '국악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40여 년 동안 올곧이 '농악'에 몸 담고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1982년 '농악의 육군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민속촌농악단의 입단제의를 받아 그곳에서부터 전승활동을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 농악의 맥과 계보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김단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로 출발하여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 (사)대한명인회 선정 사물놀이 '채상설장구' 명인,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국악협회 경기도 지회 이사,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동두천지회 부지회장 등을 맡으면서 동두천 국악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악교육'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농악보존회를 조사하기 위해 매주 현지 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한달 간 인터뷰를 통해서 일제강점기는 물론 1945년 해방 전후 전국 각 지역 고을마다 마을마다 존재했던 전국 농악보존회 단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담농악의 시원과 역사성 Q. 안녕하세요. 지난 달 본지에 실린 김경수 단장님 기고문을 통해서 '농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집니다. 이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동두천 지역 농악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A. 때는 1994년, 지인을 통해서 동두천 지역 학교에서 풍물반 지도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이 예전에는 양주 지역이어서 양주농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히 수락을 하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왔습니다. 동두천여자상업고등학교 풍물반 지도를 하면서, 동두천 지역 농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지역 농악의 존재와 전승상황은 어떤지요 A. 당시만해도 동두천 지역은 북한계를 따라서 흐르는 내천과 농사짓는 땅이 풍부한 지역이라서, 논두렁 밭두렁 지나가면 농부님들이 흥얼거리면서 '논매기소리' 같은 민요가 생생히 살아있는 고장이었습니다. 즉, 수량이 풍부한 내천을 끼고 사는 고을이라서 집약적 농사를 짓는 마을이 많고 당연히 마을마다 농악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왕지사 동두천에 사는지라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농사를 짓는 마을을 중심으로 '농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여상 고적대는 전국에서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도하시는 풍물반은 어땠나요. A. 당시 동두천여상의 고적대와 풍물반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이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이담농악의 존재에 대해서 언제 알게 되어서 조사를 시작하셨나요? A.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풍물반 학생들이 동네 어르신에게서 지역 마을공동체가 주관하는 놀이(풍물)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동두천여상 풍물 담당 김흥래 선생님의 자문과 천재원 동장님의 고증에 따라 동두천 지역 농악의 발자취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Q. 인생 최고 청년기에 동두천에 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시는 것 같아요. A. 제가 동두천여상 풍물반을 지도하러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담농악을 만났고... 1999년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국악계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이담농악이 오늘의 저의 존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Q. '이담농악'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듣고 싶습니다. A. 동두천의 옛고을 지명이 이담입니다. 마을조사에서 농악의 존재와 꼭두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구심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1995년 '이담농악동호회'도 창립되자마자, 저는 문서와 흔적을 찾기 시작했죠. 당시 발족회 주축 인물은 송내농악을 이끌었던 상쇠 조임득, 이창인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주셨습니다. 동두천 지역 농악을 양주에서 최고의 민속놀이로 끌어올린 연희자들이셨습니다. Q.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이담농악은 1980년대에 들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부터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단체가 구성되었죠. 이때 30살을 갓 넘긴 어린 저에게 시작을 함께 한다는 명분을 주셨습니다. Q. 마을조사와 학계의 고증을 통해 이담농악의 재현작업이 시작되어 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역활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A. 재현 과정은 이론과 연희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죠. 저는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장병우(송내동)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뒷놀음을 구성하고, 전해지는 광복가락과 법고놀이를 체득하고 전래되어 오는 '농사풀이' 소리를 재현하여 이담농악의 몸집을 만들어 만들어 갔습니다. Q. 조사과정에서 특별하게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A. 故 장병우 선생님이십니다. 이담농악의 전신인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이십니다. 2016년 10월 12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소고놀이를 통해서 농사풀이 과정을 고증 받아서 정리를 했습니다. 전 과장의 재현과 무대화를 위해 각별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Q. 당시 일정 기간 단절된 이담농악의 재현을 위해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A.동두천 출신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지역 농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저를 처음엔 그 누구도 탐탁치 않게 바라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조사와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일이지요. 제가 묵묵히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시간나는 대로 지속적으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선 마을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당목 은행나무 밑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하고 기원을 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의 진심이 통했던지...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면서 지난 마을의 역사와 함께 마을굿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Q. 긴 세월 동안 힘든 고증과정을 거쳐서 언제 이담농악이 세상(동두천시)에 나왔나요? 즉 언제 어느 무대에서 첫 '재현'(Repretation)을 하셨나요? A. 드디어 10여 년에 걸친 고증작업 끝에 2017년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 첫번째 정기공연, 즉 무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모두 이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모두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Q. 그 마을이 바로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마을인가요? A. 네, 사당골(현 이담로 161) 마을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마을굿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지켜내려고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마을굿이 있는 곳에는 농악대가 존재합니다. Q. 사당골 마을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출발을 하나요? 특정 장소가 있나요. A. 마을 입구에 마을 수호신 당목이 우뚝 서 있습니다. 특히 이를 알리는 사당골 수호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마을 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마을제를 지냅니다. 행단제라고 합니다. 1,000년이나 된 당목 은행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하는 고유제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형식으로 구성된 놀이로 시작됩니다. Q.그렇다면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사당골에서 이루어지는 마을굿 행단제에서는 섬기는 대상이 있나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을 상징하는 설화나 전해오는 민담이 있지 않을까요? A.사당골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목과 함께 어유소 장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Q. 흥미롭습니다. 사당골을 지키는 은행나무가 기적이나 예시를 보여준 전설이 있나요. A. 조선 초기 어유소 장군이 어린시절부터 이 은행나무 밑에 단을 쌓고 학문과 무예를 익혔으며 은행나무와 대화를 주고받듯 은행나무를 모시면서 가까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한달 동안 은행나무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 조선 말기 고종 인산일 바로 직전에는 날씨가 맑고 화창한데 갑자기 마른 벼락이 치면서 한양 방면을 향해 자라고 있던 큰 가지가 저절로 꺾여 부러졌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어유소 장군과 은행나무을 기리는 ‘행단제’라는 마을굿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Q. 사당골 마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1150년대에는 온양 방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였으며 고려 의종시 상서령 벼슬을 한 방휘진이 1177년에 이 마을에 묻히고 이후에 사당이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1420년에는 평해 황씨, 1430년에는 충주 어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사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사당골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사당은 양지마을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는 사당골을 행단부락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부터는 양주군 동두천읍 지행 2리였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동두천시 내행동 5통이고, 현재는 불현동 23통으로 46세대 외에 아파트 단지가 구성되었고, 이후 마을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Q. 사당골 마을회 구성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고문에는 박양희, 회장에는 황석만,부회장은 이경훈,총무는 이창수,감사는 박현희, 운영위원으로 박은희, 박찬희, 박정호, 송요섭, 이상재, 이명애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면 황석만 회장님이 반겨주십니다. 이담농악보존회 후원회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마을제를 지내도 앞장서서 주축이 되는 마을 유지분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추세입니다. 아! 마을이 살아야 나라도 삽니다. Q. 지금도 사당골에는 마을제를 지내나요. A. 인터뷰 당일날에도 우연치 않게 은행나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박은희 어르신께서 은행나무 주변에 제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고 계신 것을 보고 다행이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구가 줄어서 매년 음력 10월1일에 마을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삼색 과일과 술을 올리며 간소하게 마을제를 지낸다고 박은희 어르신께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 활동이 번창하였으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연세가 고령화되면서 박은희 운영위원님 외 몇몇 어르신들만이 관심을 가지시는 실정이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주변 마을에서 농악이 성행했는 마을은? A. 이담농악의 전신인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 등이 조선후기부터 연행되었으며, 주변 지역 송내농악과 안흥농악 등 농악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특히 행단농악의 지행동, 송내농악의 송내동, 안흥농악의 동안동, 이 3개의 지역에서도 마을굿과 농악대 활동이 가장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도 마을굿이 내려오고 있었죠. 그러나 산업화가 급속히 발전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농사보다는 보산동 상가와 주변 골목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문화가 조성되어 전국에서 외지 사람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었죠. 최근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동두천역 근처 상권이 발달하면서 점점 전통 민속문화같은 농악이 자취를 감추고 명맥 마저 희미해져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Q. 마을조사를 하시면서 이담농악 재현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A. 송내동에 사시는 장병우라는 분이십니다. 소고잽이이십니다. Q. 송내농악의 소고잽이셨던 故 장병우 선생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사당골 마을회 운영위원이신 박은희 어르신에 의하면, 송내동에 장병우라는 소고잽이가 있었고, 송내농악이 행단제를 지내고 나면 넓는 공터에서 난장을 틀고 농악놀이 등 다양한 풍장놀이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고 합니다. 그 중에 장병우 소고잽이가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계셨는데 안타깝게 금년 6월 18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12월 12일(토) 2시에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주관으로 무형문화재 연합회 공연에서 이담농악단원들과 장병우 선생님께 ’소고놀이‘ 농사풀이를 지도받고 선생님과 저와 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Q. 저도 작년에 이광수 선생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12일 참석했습니다. 장병우 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서 풍물을 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분의 유품 중 상모같은 거라도 보존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혹 남겨주신 거라도 있나요. A. 네, 다행히 상모와 의상을 저에게 주시고 가셨습니다. 몇 장의 사진이 남겨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곤합니다. 가신지 얼마 안되어선지 실감이 안납니다. 생각만 하면 그리워집니다. Q. 이담농악보존회는 언제 창단이 되었나요? A. 1990년 초반 이담농악을 연구하며 1995년에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단체가 구성되어 이담농악보존회를 창단하였습니다. 이담농악의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서 성신여대 지회와 을지로 지회 및 구미 지회, 동두천 관내에도 상패동, 송내동,걸산마을, 동두천시 평생학습관. 동두천문화원에서 이담농악 강좌, 등..... 활성화를 위해서 회원님들을 모시고 있으며 이담농악후원회 이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동두천 시민들에게 이담농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이담농악 각 과장의 구성은? A. 이담농악을 이끌어 가면서 재구성한 것은 광복가락을 입장과 퇴장할 때 치고있습니다. 고깔소고 농사풀이 과정을 故 장병우 선생님과 작년에 함께 공연하면서 보완하였습니다. 1)길놀이(광복가락) ⟶ 2)인사굿 ⟶ 3)원진 ⟶ 4) 벅구마당놀이 ⟶ 5)당산벌림 ⟶ 6) 멍석말이 ⟶ 7) 원진 ⟶ 8) 벅구놀이 ⟶ 9) 한줄벅구 ⟶ 10) 두줄벅구 ⟶ 11) 벅구 농사풀이(가래질,논가는 동작, 모판대기, 씨앗 뿌리기, 써래질, 모 짜고 심는동작, 애눈파기, 두벌논메기, 퇴비주기, 벼베기, 타작)로 전과장이 11과장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동작과 춤사위도 보여 주어야 하니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Q. 당시 문화재 지정 신청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2016년에 시 문화재 신청서를 넣을 당시에는 절차와 방식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막했습니다. 장구잽이로 학교에 출강하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던 실연자이라서 행정적인 문서화 작업이 저에게는 엄청 부담이 많았고 벅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지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신청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정도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담농악'의 광복장단과 태극상모.그리고 제금 편성 Q. 이담농악만이 갖고 있는 지역성을 상징하는 특징이 있나요? A. 하나는 '광복장단'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태극상모'입니다. ‘광복장단’은 이담농악에서만 쓰이는 가장 특색 있는 장단으로써 1945년 광복 전후 동두천 지역에서 길놀이를 할 때에 쓰이던 장단입니다. 말 그대로 ‘광복’ 이라는 의미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해방을 표현하는 장단이라고 봅니다. 외세에 의한 억압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흥을 더하고 신명을 표출할 때 쓰이던 장단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큰 경사스러운 날에는 반드시 ‘광복장단’을 썼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담농악 판제에 가장 특색 있는 장단이 되었습니다. 더한다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불교적 성향이 보입니다. 불교식 제례에서 스님들의 춤사위인 바라춤에서 쓰는 '바라'(제금)를 사용하여 편성이 이루어집니다. Q.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이 타 지역과 대비해서 이담만의 것인가요. 그렇다면 동두천 지역 농악대에서만 전해진다는 '광복가락'에 대해 궁금합니다. A. 동두천 송내동, 지행동, 동안동, 등 여러 지역에서 치던 가락입니다. 일제강점기 1940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가로 불린 광복군아리랑이 떠 오릅니다. 농민들이 광복을 기원하면서 '광복+농악'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복후에 광복군아리랑을 만들리가 없거든요. 이 용어의 발생을 194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담농악의 판제가 완성됩니다. Q. 다른 지역 가락의 용어는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A. 삼채장단, 덩덕쿵이, 자진모리장단 등등 다양합니다. Q. 광복가락을 듣고 싶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다른 지역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광복가락’의 기본 장단은 쇠가락 구음으로 ‘갱 무개갱 갱 무개갱 갱 갱 갱 무개갱’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장단은 '덩덕궁' 장단이라 볼 수 있죠. 광복장단은 긴 삼채굿 혹은 자진삼채굿과 비슷하나, 다른 점은 긴 삼채굿, 자진삼채굿의 경우에는 기본형과 반주형을 교대로 치지만 덩덕궁이의 경우에는 기본형에 구애됨이 없이 다채롭게 변주하여 리듬이 매우 생동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광복장단’ 역시 길놀이 때의 걸음걸이에 따라 장단의 속도와 장단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 이담농악대가 쓰는 태극상모도 독특합니다. 연유가 있나요. A. 이담은 다른 농악대와는 달리 농기(만장기, 깃발)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상모에도 태극문양을 그려넣습니다. 예전에 동두천에는 태극기와 태극문양이 아주 흔했습니다. ’동두천‘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남과 북이 갈리는 최전방 길로 통하는 교통의 도시 동두천, 전통과 달러가 공생하는 동두천(당시 세간에서 지나가는 개도 파란 달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했죠.)....거리에는 주한 미군 제7사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군들이 많았죠. 미군들을 상대하는 크럽이나 레스토랑 건물 입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흔하게 보입니다. 미군들이 주로 외출복으로 걸치는 카키색 항공점퍼나 모자에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수 놓아서 입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죠. 점퍼 뒤에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수놓아서 입을 정도입니다. 당시 중고등 학생들도 그런 미군들이 입던 군복을 구입해서 멋스럽게 걸치는 미리터리룩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도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게 되고, 태극상모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동두천 이담농악만이 태극 문양이 그려진 태극상모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담농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동두천, 광복장단, 태극상모를 연결해보니 동두천 백년사 중 민중사 일부가 고스란히 '이담농악'으로 직결된다. 일제강점기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광복장단(1940년초), 1950년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7사단이 주둔한 동두천은 외부 집단으로부터 정체성을 찾고자 해서 나온 태극문양(1960년 이후)은 지역성을 구현시키고자 나온 태극상모(2017년)로 연결된다. 김단장은 아직까지 타 지역에서 태극상모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통문화의 시대성이 발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제금을 쓰는 모습에서 불교적 성향이 엿보인다. 이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을 통해서 동두천 역사의 일부분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Q. 이담농악보존회 농악단 자랑을 하신다면? A.동두천 이담농악의 자랑은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라고 자부합니다. 전공자나 동호인분들이 구분없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동하고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역 유지이신 차유철 보존회장님을 중심으로 이담농악 후원 이사회가 구성되어서, 정신적으로 든든합니다. 동두천 관내에서 저명한 훌륭한 분들로서, 우리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앞서가는 '농악의 컨텐츠' 개발 연구 절실하다" Q.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으로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국악‘과 '이담농악'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십니까? A. 첫째, 가까운 의정부에는 회룡문화제가 있다. 공주의 백제문화제 등..... 동두천예술제를 더 키워서, 전통을 복원하고 'K-국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이 실린 ’이담문화제‘가 개최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져서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국악‘을 알려야 합니다. 특히 동두천은 일찌기 숭늉보다도 커피를 더 좋아하고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낯선 국악을 감상하기 위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죠. 둘째, 세계적 한류 바람을 타고 한류의 근간을 전통 민속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K-국악‘이나 ’K-뮤직’ 시대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에 동두천의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셋째,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국악협회가 주관하는 ‘동두천 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를 타악 부문, 민요 부문, 연희 부문 이렇게 3개 부문 학생부와 일반부, 명인부로 나누어서 개최를 하여 경기북부를 시작으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악대제전을 통해 동두천을 알리고 싶습니다. Q. 해외 공연은 언제부터 나가셨나요? 다녀 오신 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A. 1987년 남사당 사물놀이 예맥 활동을 시작으로 김덕수 명인 밑에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호주 등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동포사회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인도. 말레이 시아. 폴란드. 파라과이. 베네쥬엘라.멕시코. 보스니아. 칠레. 홍콩. 이라크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 민족음악을 알리는 기회가 주어졌죠.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다양한 컨텐츠가 열립니다.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수 있습니다. 많은 영감을 얻고 왔습니다. 특히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동포사회 청소년들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포들과 휘날레를 할때는 모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우리 공연에 대해서 아리랑으로 답해주는...그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동포들에게 농악을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 '농악' 을 주제로 한 전국 단위 행사는? A. 2018년 10월 전국 50여 개 지역 농악보존회가 총집합해서 난장을 틀고 광화문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조직위원장:윤영달) 판놀이길놀이(거리퍼레이드)를 할 때입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농악대들이 하늘 높이 만장기를 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난장을 틀때는 신명이 올라서 하늘로 용솓음쳤습니다. 전국 농악대를 이끄는 리더를 맡은 임웅수(경기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에 형제들(?)과 주고 받은 에너지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 행사를 열어주신 해태크라운제과 윤영달 회장님의 국악에 대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전 고인이 되신 주재연 예술감독님의 열정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악대 길놀이야말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컨텐츠라고 봅니다. 동두천예술제에도 시도하고 싶습니다. 길놀이는 길닦이를 통해 정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필자는 제1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부터 학술자문위원 소속 단체라서 매년 3일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농악대가 보여준 거리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 Q. 20여년 동안 동두천에서 이담농악단을 맡으시면서 제자 중 특별한 제자가 있는지요. A. 파란눈의 이담농악 전수자,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Basile Peuvion)입니다. 우리가 2015년 9월 프랑스 낭트페스티발에 초청 공연을 받고서,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사물놀이 교습을 열었는데, 그때 농악을 공부하러 온 재즈 드러머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음악교사로 활동하는데 2018년 여름 휴가를 받고 한국에 와서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서 동두천까지 와서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한달 동안 농악을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담농악단 하계, 동계 수련회 및 김경수 장구 두드림캠프에서 농악을 전수한 이래로, 해마다 2회에 걸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하계수련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농악과 재즈가 협연하는 실험적 무대도 만들었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섞이니까 상대는 물론 우리 농악도 빛을 발하더군요. Q. 외국에서 동두천까지 농악을 배우러 온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 소개해주세요. A. 재즈음악가인 그는 12세때 재즈드러머로 입문. 2012년 여수 국제 엑스포에서 공연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음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사물놀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장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추최한 ‘K-Vox voix coréenne 2015’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만큼 신명과 끼가 있는 친구입니다. 프랑스주문화원에서 이담농악을 배운후, 칠곡 세계사물놀이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악 타악곡 웃다리를 드럼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비나리, 진도아리랑, 사랑가를 연곡으로 부르고, 장구 솔로 연주를 선보였죠. 외국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과 재즈음악을 배합한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국내 국악대전에서 외국인 부문 최우수 수상하는가 하면, 자라섬 재즈패스티벌 참여하여 농악을 가미한 재즈 드럼 공연 등을 펼치는 등 활발한 국악 전도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에 빠져서 이광수 명인을 찾아가서 '비나리'도 배워서 무대에서도 불렀습니다. 휘날레에서는 늘 아리랑도 잘부릅니다. 현재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이담농악 및 한국 음악을 알리며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두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제자입니다. 벌써 보고 싶어지네요. Q. 단장님이 연구하시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A. 저는 지금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 6학기 논문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장은주 교수님의 논문지도하에 "대한민국 농악 용어 연구”란 제목으로 열심히 인터뷰를 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어 속에서 예인들의 생각과 시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전국에 있는 농악인들을 찾아가서, 국가문화재, 광역시문화재, 도문화재로 분류하여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농악에 대한 데이터가 국가기록 빅데이터 자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특히 아직 저에게는 벅찬 서양예술사, 예술기획과 행정. 한국예술사, ’예술과 사회‘같은 학문이 농악을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3년이나 된 코로나라는 비대면 시기에 주어진 시간을 다행히 공부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Q.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 예능보유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이 민족유산 '농악'을 물려주기 위해 지향해야 할 과제는? A.농악은 마을굿에서 출발한만큼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민족유산입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2009년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중국식 표현)이 향유하고 있는 농악을 ’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우리는 2014년에,,,안타까운 일이죠. 첫째, 180개국에 살고 있는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농악의 세계화‘를 펼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실험적 무대가 필요합니다. 일찌기 김덕수 선생님을 따라서 국외 공연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국내 무대와 국외 무대는 다릅니다. 청중의 시선에 맞추어야 합니다. 당시는 공연에만 집중하는지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공연 무대에서 연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국외에서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농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확장될 수 있도록 문화와 문화를 연결을 시켜주는 문화매개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사물놀이'(김덕수 명인)와 '판소리'(안숙선 명인)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고 주재연이라는 문화기획자에 의해 'K-국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둘째,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작업입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풍류대장, K-팦 등과 같은 대중문화가 넘쳐나면서 국악을 전공했던 세대들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경제적인 가치와 시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악도 이런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무대가 생긴다면 무한한 컨텐츠가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셋째,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농악이 '지속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계승발전이 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승환경 개선과 행정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농악은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야만 하는 지속가능성 있는 민족유산입니다. 다음세대에도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이라고 봅니다. 저의 연구는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악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구술작업을 통해 이담농악의 특성을 찾게 되었다. 광복장단과 태극상모, 그리고 '제금' 편성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을조사를 통해서 광복장단에 대한 민속학 및 음악적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아리랑연구자로서 광복가락을 듣고서 '광복군아리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940년을 전후해서 '광복'이라고 명명했던 가락을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서만 치던 장단이 아니고 양주농악을 계승해 온 이담농악 권역에서 많은 마을이 전승해 오고 있다. 시대성을 도입한 민중예술의 전승주체들이야말로 '창조적 계승'의 실체인 것이다. 태극상모의 출현과 이를 계승하는 이담농악은 자발적으로 지역성을 구현하려는 주체들의 성과라고 본다. 대내적으로는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과 태극기를 연결시켜볼 수 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무형문화유산 종목 중 지역명(지역+종목+보존회)을 달고 있는 전국단위 민속예술 종목 중 하나가 '농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만큼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대동놀이' 종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광화문 무대에서 전국 단위로 집합할 수 있었던 종목이 농악(2018년)과 아리랑(2019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지속가능성' 종목 중에서 아리랑, 농악이 2012년 2014년에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이때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부분이 바로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기능을 가진 종목'이라는 것이다. 즉 대동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담농악보존회는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3호 전승단체로써 위상을 확립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회 회원들과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목표로 원형을 복원하고 재현하여 이담농악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보호조례를 보면, "제53조의5(도무형문화재의 보호 및 육성)의 제1항에 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지정된 도 무형문화재의 전승·보전을 위해 전수교육비·장학금 등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승자들은 경제적 문제와 열악한 전승 환경에 내몰린 채 힘겹게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일수록 명맥 잇기를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무형문화 전승자들의 실상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전통연희축제 첫날은 김덕수 명인이 ‘신동 김덕수의 초연’ 둘째 날에는 연희풍류’, 고창농악보존회의 ‘고창농악 판굿’, 삼도농악’이 이어진다. 셋째 날에는 줄타기 공연인 ‘동두천 이담농악X여류줄꾼 서주향’ 공연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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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되살아난 추석공연.....신명나게 즐겨보자3년 만의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명절이다. 가족 모임과 방문에 제한이 없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연계의 일상 회복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명절 분위기를 북돋우는 전통 공연부터 볼거리가 풍성한 명품 국악공연이 국립국악원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국립국악원의 추석 대표 야외 공연이 삼년만에 관객을 맞이한다. 코로나19로 2020년은 취소됐고 지난해는 실내 공연으로 대체됐다. 국립국악원은 추석 당일인 10일 저녁 8시, 국악원 연희마당에서 공연 ‘휘영청 둥근 달’을 선보인다. 소리꾼 김나니의 사회로 민속악단과 무용단, 전통연희단 꼭두쇠, 줄타기 명인 권원태연희단이 출연한다. 사자놀음 길놀이와 민요 연곡, 줄타기와 강강술래, 판굿 등 오감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공연으로 한가위를 풍성하게 밝힌다. 본 공연에 앞서 오후 2시부터 8시까지는 민속 놀이터 '우면랜드'가 운영된다. 버나놀이, 굴렁쇠 놀이 등 8종의 민속놀이와 페이스 페인팅, 비눗방울 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공연과 체험 모두 무료다. 국립민속박물관은 9일과 11~12일 ‘추석 한마당 한가위 보름달 걸렸네’를 공연한다. 송편 나누기, 길쌈놀이, 한가위 탐험대, 올개심니(올벼신미) 체험, 청사초롱 만들기 등 관객 참여형 체험 공연 31종을 즐길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함께 박물관 곳곳에서 전통 공연을 선보이는 '2022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를 연다. 9일은 안성시립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의 '바우덕이 서울나들이'가, 12일에는 방수미, 강길원의 '판소리 다섯바탕 눈대목전'이 각각 열린마당에서 공연된다. 국립정동극장 대표 레퍼토리 '적벽'은 판소리 ‘적벽가’를 바탕으로 소리꾼들이 판소리 합창과 춤을 역동적으로 소화해 내는 판소리 뮤지컬이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29일까지 공연되며 추석 연휴 중에는 10, 11일에 공연이 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29일까지 공연되며 추석 연휴 중에는 10, 11일에 공연이 있다. 다음 달 23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서편제'는 이번이 2010년 처음 선보인 공연의 마지막 시즌이다. 주인공 송화를 이자람·차지연·유리아·홍자·양지은·홍지윤 등 역대 최다인 6명의 배우가 나눠 맡았다. 다양한 현장 증정 이벤트도 진행한다.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추석 연휴 기간 무료로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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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방송..... 흥보전, 국악동요, 판소리 명창로드매일 보는 TV프로그램, 명절이라고 다른 것이 있을까?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프로그램일지라도,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고자 보다 제작진의 특별한 노력이 집약된 것이 바로 특집 프로그램들이다. 올 한가위 역시 이러한 특집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형태로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악방송과 KBS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9월 9일(금) KBS 1TV 낮 12:10, ‘추석 특집 제11회 국악동요 부르기 한마당’ 국악의 멋과 동심이 어우러진 국악 동요를 소개하고 보급하기 위한 프로그램. 1·2차 예선을 통과한 12팀 어린들의 국악동요부르기 경연이 펼쳐진다. 강승화 아나운서와 가수 겸 국악인 양지은, ‘누가 누가 잘하나’의 캠벨 에이시아가 MC를 맡고, 남경주(뮤지컬 배우), 난장앤판, 조수황의 흥겨운 국악 특별 공연도 선보인다. KBS 1TV ‘2022 추석장사 씨름대회(4회)’ 9일(금) 오후 2:10, 10일(토) 오후 2:00, 11일(일) 오후 3:10, 12일(월) 오후 2:10 한가위를 맞아, 태백·금강·한라·백두장사를 가려내는 모래판 위의 대전이 경남 고성국민체육센터에서 펼쳐진다. 천하장사 출신 ‘모래판의 황제’ 이태현 교수가 해설을 맡고, 한상헌, 김종현 아나운서가 중계한다. KBS 1TV 저녁 7:10, ‘추석특집다큐 쇠제비갈매기의 귀향’ 2005년 방송된 ‘안동호 쇠제비갈매기의 비밀’ 이후, 안동시에서 조성한 세계 최초 쇠제비갈매기 인공서식지에 정착한 쇠제비갈매기 가족과 안동호 주민들의 아름다운 공존 이야기를 다룬다.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생명의 소중함과 감동을 선사한다. 9월 10일(토) 국악방송 국악방송 라디오 저녁 7:30, ‘2022 추석특집 라디오 창극 <흥보전>’ 민속 대명절 추석을 맞아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판소리 흥보가를 라디오 창극으로 재탄생시켜 신명 나고 흥겨운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김학용, 이광복, 이소연, 최용석, 서정금 등의 목소리 출연으로 창극 흥보전의 맛과 흥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악방송 TV 오전 11:00, ‘동편제 길을 걷다 <명창로드>' (IPTV채널 : KT올레tv 251, SK브로드밴드tv 288, LG유플러스 189)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신정일 인문학자, 소리꾼 김준수 등이 출연하여, 동편제 판소리의 역사가 담긴 명창의 옛길을 찾아 탐색하며, 우리 소리의 역사를 살펴보고, 현재 대중들에게 판소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국악방송 TV 오후 5:00 국악무대 ‘여성국극 삼거리연가 : 능수버들’(서라벌국악예술단 주관) 국악방송 TV 저녁 7:00, ‘국악콘서트 판, <우리들의 국악>’ 우리음악의 매력에 빠져 한국으로 건너 온 국악 외국인들의 무대와 국악의 미래를 이어갈 어린이들의 유쾌하고 발랄한 무대 등 다양한 출연진과 풍성한 음악 선물로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방송인 한석준의 진행, 난시 카스트로(멕시코, 경기소리꾼), 쉬윤페(대만, 해금연주자), 빅토린 블라보(프랑스, 소리꾼), 예움전통연희단(어린이, 강령탈춤극), 박성진(탈북민, 소해금연주자) 등이 출연한다. 국악방송 TV 밤 9:00 추석특집 ‘시대창극 당신의 의미’(도립국악단 주관) KBS 1TV 10일(토)-11일(일) 밤 9:40, ‘추석 특집 4부작 한식 연대기’ 세계를 매혹시킨 근·현대 우리 한식의 위대함을 재발견하고,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한식 100년의 기억록을 펼친다. 1부 ‘정치의 맛’, 2부 ‘여인, 백년의 밥상’이 추석 연휴에, 3부 ‘한식 주식회사’, 4부 ‘K-푸드 익스프레스’는 추석 이후 목요일에 방영된다. 배우 주상욱이 1-3부, 김규리가 2부 프리젠터를 맡는다. KBS 1TV 10일(토)-11일(일) 밤 12:20 ‘추석 특집 제주어 드라마-저승차사 강림 2부작’ 2018년 이후 꾸준히 제작된 제주어 드라마 시리즈의 일환으로, 영화 ‘신과 함께’의 모티프가 된 제주신화 ‘차사본풀이’를 각색한 드라마. 인간의 몸으로 이승과 저승을 오가게 된 저승 차사 ‘강림’의 이야기로, 제주민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과 장례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9월 11일(일) 국악방송 TV 오후 5:00 추석특집 ‘국립부산국악원 천생연분 시리즈 시즌 2 ‘붉은머리 학 이야기’’ 국악방송 TV 밤 9:00 추석특집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정선아리랑문화재단 주관) 9월 12일(월) 국악방송 TV 오후 5:00 추석특집 ‘마당을 나온 암탉’(국립민속국악원 주관) 추석특집 영화 모음 * 국악방송 TV 9일(금) 밤11시 ‘디아스포라의 노래: 아리랑 로드’ 10일(토) 밤11시 ‘매미소리’ 11일(일) 밤11시 ‘왕의남자’ KBS 한국방송 2TV 9일(금) 오후 11:50 ‘신의 한 수: 귀수 편’ 2TV 10일(토) 오전 10:45 ‘도굴’ 1TV 10일(토) 오후 3:15 ‘광대들: 풍문조작단’ 2TV 10일(토) 오후 9:20 ‘발신제한’ 1TV 11일(일) 오후 1:20 ‘말임씨를 부탁해’ 2TV 11일(일) 오후 10:45 ‘뜨거운 피’ 웃고 즐기는 오락 프로그램도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와 뿌리를 탐색하는 프로그램들 역시 다른 방식으로 삶의 활력소를 제공할 수 있다. 더 깊이, 오래 갈 수 있는 감동을 느끼는 것 또한 연휴를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길어지는 코로나 시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현명한 문화생활이 함께 하는 연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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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에 박현영 명창 인터뷰국악분야 최고 등용문인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박현영씨(만 33세·전북 전주시)가 영예의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차지했다. 박 씨는 이날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불러 심사위원 점수 94.8점, 청중평가단 점수 4.4점을 받아 장원을 차지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주시는 5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린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경연에서 판소리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열창한 박현영 씨가 장원을 차지해 대통령상과 함께 국악계 최고 상금인 70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5일 열린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판소리 명창부 장원에 등극한 박현영(33세)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 판소리에 입문한지 20년이 되는 해에 이렇게 큰상을 받게 되어 두 분(김일구, 김영자)의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 판소리는 서사성이 뛰어납니다. 희노애락이 담겨 있는 이야기를 소리에 담아서 전해주고 싶습니다. "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책을 들려주는 소리꾼이 되겠습니다." 친가나 외가에 소리를 하는 예인들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박명창은 13살부터 처음 들어 본 판소리가 좋아서 줄 곧 20년을 판소리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고 한다. 판소리 다섯마당 속에 나오는 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등의 판소리를 이야기 하듯이, 내용을 이해하고 관중들에게 전달해 주는 무대가 좋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판소리 속에서 놀았다고 한다. 순수한 노력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판소리명창부 장원에게 주어진 상금은 국악계 최고 대회의 위상에 맞춰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60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 늘어났다. 이날 본선대회는 전주MBC로 생중계 될 예정이었으나, 기상특보 방영으로 인해 '전주MBC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었으며, 판소리명창부 대상인 박현영 씨를 포함해 각 부문별 장원자가 배출됐다. 부문별 장원자는 △무용명인부 한진희(국회의장상) △농악부 오산외미걸립농악보존회(국무총리상) △민요부 이소정(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가야금병창부 이정아(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궁도부 이형춘(전라북도지사상) △무용 일반부 박현준(전주시장상) △판소리 일반부 정진성(전주시장상) △기악부 김소리(문화방송사장상) △시조부 임환(문화방송사장상) △고법부 김영주(전주시장상) 등이다. 지난 4일 진행된 학생대회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판소리부 정새하, 관악부 박혜솔, 현악부 최세론, 무용부 김재원 △전라북도지사상 민요부 강산, 가야금병창부 신수린 △대상문화재단이사장상 농악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가 장원으로 선정됐다.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와 제39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는 지난달 21일 궁도부 대회를 시작으로 이날 본선대회까지 총 16일간 국립무형유산원을 비롯해 전주대사습청, 전주향교, 천양정, 전주시청 강당 등에서 분산 개최됐다. 전국대회에서는 △외국인 공연자들의 국악 축하공연 △젊은 장원자들과 국악계 명인·명창, 그리고 전주대사습놀이 역대 장원들의 축하공연 등 다채로운 무대가 선을 보였다. 서배원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올해는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다소 위축되었던 전통공연 부흥의 시작을 알리고자 풍부하고 다채로운 축하공연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앞으로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국악계의 큰 기둥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발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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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 성료지난 9월 2일 저녁 7시,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1971년 창설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창설50주년 동문음악회가 개최되었다. 50년을 이어 온 한양대학교 국악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축제의 장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문화의 가치를 중시하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하는 환경에서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출신들의 활동이 활발함을 입증 하고 내일에도 는 전통음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한양대학교 국악과에 대해서는 설립자이신 김연준 박사의 예술교육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석사과정, 박사과정으로 이어지는 완성된 교육체계를 확립했고, 이론과 연주 능력을 겸비한 국악인들을 배출하여 국악 발전과 중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음악회는 동문 상호간 소통을 통해 새로운 국악 미래 50년을 향하는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큰 뜻에 의한 행사다. 제1부는 이인수(73) 동문의 집박으로 ‘수제천’, 문정일(81) 동문의 등채로 ‘대취타 천년만세’로 시작하여 위촉작과 개작 초연의 4작품이 연주되었다. 합주곡 4번 주제에 의한 ‘추흥팔경화책(秋興八景畵冊)’ 개작초연(작곡 김용진 편곡/지휘 선중규), 16개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 개작초연(작곡 이상규 편곡/지휘 이경은), 관현악과 소리를 위한 ‘수궁환영(幻影)’ 개작초연(작곡 서순정 지휘 이상준), 소리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빛을 더하리’ 위촉초연(작곡 박경훈 지휘 이희복)작이 연주되었다. 총 90여명이 연주에 참여하였다. 현재 국악과는 전임 5명, 강사 74명이 재직하고, 학부생 123명, 석사 44명, 박사 43명이 수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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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문화유산에 빠져들어도 좋습니다”종묘제례악, 남사당놀이, 판소리, 강강술래, 아리랑, 처용무, 농악, 줄타기, 가곡(전통 성악곡 중 한 종류), 강릉단오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나라 문화유산이다. 이들을 오는 9월 9-25일 국립중앙박물관(서울시 용산구) 내 시설(열린마당, 거울못, 극장 용)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 [류기자의 객석]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최로 진행되는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시리즈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형문화유산을 활용한 전통·창작 공연을 통해,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대중과 공유하고 전통예술의 현대화, 일상화를 지향하고자, 지난 2018년도부터 시작된 기획이다. 올해는 총 17개 공연이 선보이게 되며, 각 문화유산의 전통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전승자의 무대는 물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무대까지 다양한 형태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공연은 무료관람이며, 8월 18일부터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전통문화 원형 중심의 공연 중, 지역의 문화와 생활이 묻어 있는 귀한 공연도 눈에 띈다. 바다의 평온과 풍작, 풍어를 기원하는 제주의 대표의식 중 일부인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초감제’((사)제주칠머리당 영등굿 보존회), 풍물놀이와 무당 굿놀이 등이 혼합된 경북 김천만의 독특한 빗내 농악 12마당을 공연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진굿의 중심, 김천금릉빗내농악’((사)김천금릉빗내농악보존회), 단오제의 무속의례 중 하나로 민중신앙의 핵심을 경험할 수 있는 ‘강릉단오제 단오굿’((사)강릉단오제보존회) 등이다. 그 외에도, 줄타기, 소고놀이, 버나놀이 등의 남사당놀이를 선보이는 ‘바우덕이 서울나들이’(안성시립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 판소리 다섯 바탕의 백미를 경험할 수 있는 ‘판소리 다섯 바탕 눈대목 전’(방수미 명창, 강길원 명창, 김태영 고수), 지역별 특징을 담은 아리랑과 민요를 즐길 수 있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강효주 명창, 차세대 경서도 가객, 두레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이아미 명창의 시조와 가곡을 감상할 수 있는 ‘풍류방의 노래들’, 종묘제례악, 처용무, 자진한잎과 결합한 가곡, 그리고 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정악가무’(아우프윈드), 강강술래, 처용무, 태평무 등의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고풍(古風)’(한누리 무용단), 서울대 국악과 노은아 교수의 해금연주와 처용무를 감상할 수 있는 ‘2022 위대한 유산, 해금과 만나다’ 등의 공연이 선보일 예정이다. 국악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창작공연을 경험하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줄 타는 듯 불안한 현대인의 삶을 현악, 타악, 인형, 전통춤으로 구현하는 창작연희극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광대생각)은 어린이의 취향까지 저격할만한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형극과 산대, 그림자극으로 구성된 ‘꼭두각시 산대 WALL&MOON’(남사당놀이 관악지부 예토), 강강술래를 춤이라는 메시지로 재해석한 ‘CODE-강강:술래’(판댄스컴퍼니) 등은 전통문화가 우리 삶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그 밖에, ‘다올소리와 함께 떠나는 제주음악여행’(다올소리), ‘느닷X난장앤판 '관객모리’'(사물놀이 느닷,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바로크 판소리 심청’((주)목성) 역시 각자의 색깔로 재해석한 전통을 관객과 공유할 예정이다. 올해 시리즈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행사를 축소 진행해오다, 2년 만에 전면 대면공연으로 돌아왔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전통문화공연의 경우, 각 문화유산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압축하여 밀도 있게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했고, 다수의 창작공연이 포함된 실내공연이 8회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무대 효과와 구성으로 실내공연만의 색다른 매력을 제공할 것이다. 올해 5년째 이 기획을 이어오고 있는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대외협력팀 심재흥 팀장은 이 기획에 대한 자부심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올해 공연은 누가 봐도 즐겁게 볼 수 있을만한 공연으로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이 시리즈 첫 회 시작할 때,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목들을 일반 관객 분들이 좋아하실까 걱정했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호응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종묘제례악 공연에 일반 관객 분들이 최소 3-4천분 오셨는데, 잠깐 보다 가시지 않고, 끝까지 다 보고 가시는 것을 보고 저희도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만큼 이런 종류의 공연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고 믿어요. 평상시에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비로운 경험일 수도 있고, 또 이런 훌륭한 문화가 우리 것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고정 팬 같은 분들도 생겨서, 연락 주시고 관심 보이는 분들 보면, 보람도 느낍니다. 전통공연도 이런 형태로 대중 속으로 파고 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또한 심팀장은 5년째, 공연의 장으로 함께 주관을 맡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박물관 관람 오셨다가 우연히 저희 공연을 보시고, 관심을 갖게 되시는 경우도 많은데요, 전통문화와 직접적인 연이 없는 분들이거든요, 이런 과정이 공연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전통문화 공연의 관객층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요.”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리랑 리커넥티드’는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2009년부터 아리랑의 의미와 가치를 현재의 방식으로 수용하여 제작해 온 음반 중, 가장 최근 음반인 <The Name of Korean vol.8>의 수록곡을 선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진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아리랑이란 정서와 함께 담아냈으며, 국내 및 해외 음악인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음반이기도 하다. 2020년 음반 공개 후, 처음으로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공연이며, 제작 당시,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했던 해외 음악인 중, 프랑스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과 함께, 월드 뮤직 그룹 ‘블랙스트링’의 허윤정 서울대 교수, 이아람, 황민왕, 박경소, 김율희 등의 연주로 전통음악의 최신 흐름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올해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친환경 행사를 진행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기 및 종이팩 생수를 사용하고, 생분해성 기념품 배포 및 플라스틱 물품을 수거하여 업사이클링한 물품으로 교환해주는 이벤트 등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환경의 중요성 또한 함께 공유하는 장이 될 것이다. 전통문화예술 자체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압축된 형태임을 생각한다면, 공연들 그 자체로 자연친화적이며, 관객들의 친환경 실천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공연은 사회자의 프로그램 설명과 함께 이루어지고, 관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안내책자가 배부될 예정이므로, 사전 지식이 없어도, 남녀노소 누구든 부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심재흥 팀장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한 곳에서 다양한 전통행사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행사는 드물거든요. 공연들 보시면서, 진짜 우리의 새로운 전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께서 전통은 고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와서 보시면, 그렇지 않다는 것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음악, 특히 판소리의 경우도 음악 자체에 서사가 있어서 주는 감동이 있고, 그것을 실제 음악인이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들을 때 느끼는 감동은 서양음악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심팀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행사로서, 이후에 여건이 허락된다면, 각 종목의 원형을 가감 없이 대중에게 보여드릴 수 있 기회를 기약하기도 했다. 원활환 행사 진행을 위해 예약 관람을 장려하고 있다. 예약자에 한해서 소정의 친환경 기념품을 제공 받을 수 있고, 야외공연의 경우, 예약자는 보다 나은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된다. 행사 현장 관계자는 특히, 예약 후 관람하지 않는 ‘노쇼(No Show)’는 다른 관객의 관람 기회 가져가는 것이므로, 성숙한 관람문화 정착을 위해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장소별 공연시간대를 살펴보면, 열린마당 공연은 오후 2시, 극장 용 공연은 오후 5시 혹은 저녁 7시 30분, 거울못 공연은 오후 6시이다. 또한 실내공연(극장 용)은 36개월 이상, 그 외 공연은 전체연령이 관람 가능하므로, 가족,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시간대에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에 따르면, 무형문화유산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인간과 주변 환경, 자연의 교류 및 역사 변천 과정에서 공동체와 집단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공동체 및 집단에 정체성과 지속성을 부여하며, 문화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 증진시키고, 공동체간 상호 존중 및 지속가능발전에 부합한다.” ‘2022 위대한 유산, 오늘을 만나다’를 통해, 이런 훌륭한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민족적 동질감은 물론, 세계 문화강국으로서의 뿌리를 확인하고, 역사를 초월한 문화적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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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4년 동안 공주에서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는 공주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는 제24회 공주아리랑제가 지난달 27일 공주하숙마을에서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주제는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이다 제1부는 공주의 전래민요와 토속아리랑, 2부는 창작아리랑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 은개골아리랑, 3부는 의병아리랑인 우금티아리랑, 휘날레로 진행되었다. 오프닝 공연으로 '다듬이 연주+공주아리랑'(김계화)이 막을 열었다. 이어서 공주에서 전래되는 토속민요 '산아지타령', 토속아리랑인 공주아리랑(남은혜 외 15인)이 공주의 정취와 공주민의 심상을 전해주었다. 도라지타령과 공주군밤타령 (서민호,박고운,박세아,장다은,김나림,지유리,안수지)으로 신명을 높였다. 2부에서는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남은혜), 태평가,밀양아리랑(전수경 외 15인), 김죽파류'가야금산조' (안은정), 3부에서는 공주아리랑,은개골아리랑 (서민호 외 9인),우금티아리랑(공주의병아리랑),해주아리랑(전수경,박순복,허경자)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남은혜,김계화), 휘날레로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어 아리랑 대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반주에는 피리(조성환), 장구(김영덕),가야금(안은정)이 함께 했다. 공주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공주민요와 공주아리랑을 면면히 계승 발전시켜 온 공주아리랑보존회는 매년 3월 1일 삼일절에 공주아리랑제가 정례화 되어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줄확산으로 8월에서야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남은혜 회장은 "올해 벌써 24돐이나 되는 아리랑제와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10월에 개최되는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통해 전국 아리랑 소리꾼과 국악인들에게는 공주아리랑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공주아리랑이 공주 시민들에게 애창하는 고향의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남은혜 명창은 2011년부터 우즈벡에서 개최된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기념 세계아리랑실크로드축제(단장:권오성 교수)에서부터 사할린아리랑제에서 '공주아리랑'과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치르치크아리랑'을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오고 있다. 2011년부터 매년 중앙아시아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을 알려오다가 키르키르탄 동포사회에서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축제에서 초청공연을 매년 정기적으로 정례화 해오고 있다. 남명창은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 중 충청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2003년 공주아리랑보존회를 창립하였고, 충남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특히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북간도아리랑'과 '치르치크아리랑'은 중국과 러시아 동포들이 애창하고 있는 아리랑이다. 그동안 회원들과 갈고 닦은 토속아리랑과 창작아리랑을 배합하여 소리극으로 발표한 2019년 '유관순아리랑'에서 불린 의병아리랑, 우금치아리랑, 유관순의사아리랑이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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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공연[류기자의 객석] 서울시 노원구에 중심을 두고 국악의 생활화를 실천하고 있는 노원문화원 국악예술단 공연이 8월 20일 오후 5시,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성황리에 종료됐다. 주요 공연 장면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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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ef Reporter Interview] Chair professor Park Beom-hun, ‘Finding New Terrain in Korean Music’In March of next year, the Department of Korean Music will begin their courses In the middle of August, a man located in his professor’s office is thinking hard about something and thus unable to pay attention to the changing weather outside his window. This man is a musicia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But also a composer, a music conductor, a Korean traditional music scholar, a university president, an educational and cultural policymaker, and once again returning as a Korean traditional music scholar while looking after his professor’s office, chair professor Park Beom-hun. Recently, Park Beom-hun has been busy with the preparations for the opening of the ‘Department of Korean Music’ at Dongguk University Seoul Campus, deciding on the full-time professors and chair professors, an administration, and so forth. Chief reporter Lee Dong-sik looked for Park Beom-hun, someone he regards as a close acquaintance since the time that Lee was a reporter at KBS. During the 80-minute interview, it became clear that the topic of conversation was the promotion of Buddhist music as new terrain in Korean music by the religious university. From this point onwards, let us listen to his thoughts. This article was translated by Linda Pauw (intern reporter) Q. Chief reporter Lee Dong-sik – Instead of going on vacation what are you doing in this hot weather? A. Chair professor Park Beom-hun – A pleasure to see you. This fall semester we are checking various matters, such as whether the received applications of students for the opening of the college of arts Korean Music Department are going according to plan. Opening a new department is a lot of work. Our department will accept all new students via rolling admissions and there is exactly one month left for this. Creating the content and means of education of the subjects that fit the new department’s vision and purpose of establishment, the confirmation of professors, but also deciding the factors of the screening process, and becoming acquainted with the defined evaluation criteria et cetera are all tasks that need to be confirmed and examined one by one. Q. Lee – Dongkuk University originally hosted their Korean Music Department on their Gyeongju Campus but the news that a new department is being created in Seoul is unexpected. A. It is a bit embarrassing to admit but if art-related departments are not operated in places where associated artists come together, inevitably, problems such as the securing of a faculty or students’ classes will arise. Also, our university is a religious university established by the Jogye Order of Buddhism but when the department was still located in Gyeongju, there was an inadequacy regarding the element of promotion of Buddhist music. Therefore, the university authorities should research and teach the foundations of Buddhist music more in-depth for a new terrain of Korean music to open, this can be achieved by suggesting the establishment of a Department of Korean Music in the middle of Seoul as a way for outstanding artists to be more involved as teachers. As you are well aware, the number of universities in the metropolitan area cannot be increased. Thus, by developing the then slightly lacking research and cultivation of Buddhist music in an era in which the world welcomes Hallyu, our university, as a religious university, thought hard about the viewpoint in which we have to bring up the talents of Korean music that our country is demanding, and decided to create a Korean music department in Seoul by turning around the existing capacity of employees. Q. Earlier, you mentioned that we can cultivate our music through Buddhist music, but the Buddhist music that we know is charged with a specific religious undertone, for instance, Buddhist hymns and chants, Buddhist prayers, and the song ‘Hoesimgok’ that became famous through the singing of Kim Yeong-im and so on. Would it not be difficult to look at this as mainstream traditional music? A. The foundation of Korean music is Buddhism. As it entered the Three Kingdoms period, it has been Buddhism that has lived with our people for more than 1500 years. The remaining melodies, the stories told in the middle of songs, the beats, and such that were made engraved the three elements of traditional music, song, dance, and appreciation, inside of us before we knew it and are manifesting this without us realizing even in modern times. It is a situation of which we are not aware. It was through Buddhist scriptures that we learned about the concept of music, not only Buddhist prayers or chants but also Yeongsan Hoesang, Hoesimgok, Binari, Tapdori, Sanyeombul, and more folk songs among Korean traditional music that is performed are all considered to be Buddhist music. So in fact, it has already deeply penetrated our music. I propose that it is important to precisely know these things, to research what we can take and disregard, and to then rekindle this with our artistic talents of this era. As there are 15 applications to our department we cannot say that this suffices, but our goal is to produce the best talent through the direct training of excellent professors, if at all possible. Q. Then, has it been confirmed who will be part of the teaching faculty? A. We can boast that all musicians representing this era are included in the faculty. Kim Deok-su and An Suk-seon who you know are involved, as well as Kim Yeong-jae, Kim Seong-nyeo, Park Ae-ri, Lee Chun-hui, Kim Hae-suk, and more. We gathered the most outstanding experts in the fields of vocal music, instrumental music, dance, and composition. This September, students can enroll and in March next year, we will open the doors of our new department. Q. I think there might be concerns about whether the world of traditional Korean music’s demand for manpower is not saturated as there are traditional music departments or Korean music departments at the top universities of our country. A. Recently, our country is trying to develop the fields of semiconductors and nuclear energy, there is absolutely no manpower discharge structure so would there not be a situation in which you cannot handle the manpower? The current state of our music is filled with anticipation due to the phenomenon of Hallyu, to keep up with this trend more new manpower, and more new talent needs to emerge. These talents, while performing that of the past, have to create new music that surpasses the level of imitation. If you look closely, our traditional music has always been creative music. That is what has been passed down to the next generation. In this era, we are already making and delivering music that appeals to people over the world beyond our own country, to do this it is absolutely essential to find the strength in our traditional music and reinvent this. Recently, a research that stated that Psy’s song ‘Gangnam Style’ worked well for people around the world because the music was based on a hwimori-rhythm can be regarded as an example of this. To establish this, performing is of course important, but education in composition that maximizes the ability to create new music in each field is absolutely necessary. Our school makes sure that the faculty members can provide personalized one-on-one education to our students. Because the National Theater is nearby, by always seeing, hearing, and learning on site we focus on developing the capability for traditional music to be reborn as the music of this era. Q. Some are concerned that this era will not last long, as in some areas the current popularity of our idols or the Korean Wave has not been universally recognized. A. The thing that we are overlooking is that Western music has also derived from religious music. Because Christianity (Catholicism) gave birth to Western music culture, we can say that Western music’s roots are Christianity. Likewise, the roots of East Asian music can be found in Buddhism. Western music incorporated ethnic and regional music from this background. Ethnic music from Hungary, Finland, Russia, Spain, and other Western countries has risen to the mainstream of Western music since the mid-19th century and is currently dominating the world. Asia’s music is based on Buddhist music, and I think it is time for Asian ethnic music to rise as world music. These elements should now be raised as modern music and world music. Q. However, the question that always torments us is to what extent is this still our music… A. Ah, right. Whether we are talking about culture or music, anything new is essentially bibimbap. Think about our bibimbap. As garnish we throw in various vegetables, we add sesame oil, and lastly, we add red pepper paste and mix it all in, this is essential to bibimbap. There might be a difference in the amount of red pepper paste added, but once that red pepper paste goes into our music it really becomes our music. Then we can ask what that red pepper paste represents exactly. Element-wise, for example, it could represent the form of a beat or song, the problem of music intervals, the method of vocal usage, movement, and other different elements like these. The problem is how do we blend these elements? And if we do this correctly, would that not result in the best version of our music? We have to identify these factors and share them. Q. I think we talked a lot about the new department. As you know too, professor, our gugak industry and our traditional music industry have suffered a lot under the corona pandemic and dealt with problems such as the cancelation of performances and a decrease in its audience although it is slightly getting better lately. How should we look at this? Is there any solution to this? A. Haha. Us Koreans who see through music or folklore are truly wise people. Don’t we have the wisdom to define objects that bring harm or annoy us as byeolsin or evil spirits, and send them away through a gut (exorcism)? Corona does make our lives difficult, but should even our spirits have a hard time because of this? Just as we overcome our saddest times by singing, we should banish this crisis by holding a byeolsingut (exorcising ritual). This is our humor and positive mind. Q. A concern that we have is that Western instruments’ expressiveness is powerful by nature whereas there is an aspect to our instruments that makes this expressiveness difficult to follow. How do you look at this problem? A. Isn’t distinguishing Western instruments from our instruments defining the limits of our music in advance? Previously, I held a North and South Korean concert in Pyongyang, at this concert the cello players who performed wore hanbok, and Western instruments and traditional Korean instruments were able to coexist. A conductor named Seiji Ozawa is a world-famous conductor of Western music. After that yangban came to China, he fell in love with the charm of the erhu and after inviting a Chinese performer to Boston to open a concert together with the Boston Orchestra, the erhu gained worldwide recognition. Now, we need to have the wisdom to exceed the distinction between instruments and styles and open a world of music. In foreign countries, the world of music is already expanding in that direction. I think this starts with us not being bound by instruments or a certain music form but us ‘submitting’ to our music. To be honest, this is a North Korean way of talking though… Even in our own three Asian countries, each presents its specific national characteristics. I think it is important that we draw from this source when needed and discard it when there is an excess to make a more universal style of music. Q. However, we still have nationalistic feelings toward Japan and lately, some voices are proposing that the roots of Japanese enka music are Korean. A. It seems true that, historically, our music moved to Japan during the Three Kingdom period. And that is how it became their music, but are we also not creating music in our own style by adopting Chinese and Western music? Regarding the origin of Japanese enka, there are records of Koga Masao, who is referred to as the founder of enka, having lived in Incheon and lately, a theory has come out that he is Korean, but because the basic vocal register for enka music does not exist in our country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y have copied what is ours. This is something for researchers to reveal, but it would be sensible to think about how we can embrace this or that element as our own instead of sinking into nationalist sentiments about who is the original or where did someone copy something. In the past, there was a project in which musicians from Korea, Japan, and China worked together. If they looked at the sheet music, they could not express the meaning of the music but when they all held hands, started practicing, and sang, they all related to each other and the music came out wonderfully. Absorbing the strengths of each country and reviving this in the current age, that is the task that is given to us. Q. I think the time for me to ask other questions that I’m curious about has run out. You are leading the foundation of this Korean Music Department, I hope that through more compositions or the training of our younger generation our music can proudly spread abroad. A. Yes, as we were in a hurry I have spoken in rambles, but our music is always the beginning. What is clear is that we should not cling to the past and with new music should not just create gugak but also a wide range of Korean music. The answer lies in the fact that nowadays almost all university departments choose the name Korean Music Department. Now we have to find and create Korean music, and we are confident that the foundation of our Dongkuk University’s Korean Music Department under the best leaders of our time creates the opportunity to meet this desire and expectation. Thank you. English translation: Linda Pauw (Intern reporter) Linda Pauw is a Dutch student of Korean Studies and Critical Heritage Studies. Pauw came to Korea after finishing her Master's program at Leiden University to attend Yonsei University's Korean Studies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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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 이해] 역사와 전통의 3대 전국 국악경연대회일반적으로 문광부(국립국악원)가 주최하는 ‘온나라 국악경연대회’를 제외하고 큰 대회 셋을 꼽는다면 남원 ‘춘향국악대전’, ‘전주 대사습전국대회’, 그리고 ‘KBS 국악대경연’을 이른다. 이 세 대회는 역사와 개최 배경은 다르지만 국악의 진흥과 대중화라는 지향은 같다. 춘향제는 지난 5월에 통산 49회를 개최했고, 전주 대사습전국대회는 통산 48회를 치르는 중이다. KBS 국악대경연은 32회를 오는 10월 말에 결선을 개최하게 된다. 이 3대 전국 국악경연대회를 트랜드 이해 차원에서 살피기로 한다. 남원 춘향국악대전 전북 남원시 ‘춘향제’ 일환 1974년 첫 회, 올해 5월 5일-7일 치러져 판소리 부문 세분화 올해 제49회를 치러낸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 경연대회’는 전남 남원시의 지역 전통문화예술축제인 ‘춘향제’의 일환으로, 전통문화와 민속예술 계승·발전과 국악 대중화의 취지를 가지고 1974년 그 첫 회를 열었다. 남원시와 춘향제전위원회의 주최로 열리는 이 대회는 해마다 5월 초에 열리며, 올해의 경우, 5월 5-7일 경연이 이루어졌고, 허정승 명창이 판소리 명창부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첫 대회 장원 조상현 명창을 시작으로, 최승희, 안숙선, 이난초, 박애리 등 당대 최고의 국악 명인을 배출하는 등용문으로서 그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원 분야를 살펴보면, 판소리가 세분화된 점이 특징이다. 명창·일반부·학생부(고등·중등·초등부)로, 그 외 무용, 기악·관악, 기악현악·병창, 민요 부문은 일반·학생부로 나뉘어져 경연이 이루어진다. 판소리 명창부 대상 수상자에게는 대통령상이, 그 외 각 부문별 일반부의 대상 수상자들은 종합결선 후, 순위에 따라 국무총리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전라북도지사상 등이 수여된다. 경연 장소는 춘향문화예술회관, 함파우소리체험관 등이다. 전북 남원시청 문화예술과 박승용 과장은, "남원시는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로서, 판소리의 역사를 품은 중심 고장입니다. 남원의 판소리의 전통을 계승·발전하고, 지역주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우리 소리를 알리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참가자들에게는 대회 출전에 대한 자긍심과 명예를 드리고자 주최지로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회 취지와 발전 의지를 밝혔다.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8월 21일-9월 5일 현재 진행 중 전국대회, 학생전국대회 각각 운영 연령별, 분야별 세분화로 지원 기회 넓혀 ‘궁도, 시조, 농악’ 대사습놀이 부문 포함 올해, 고법 일반부문 신설 현재 제48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는 현재 전북 전주시에서 진행중이다.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에 따르면, ‘사습놀이’는 조선시대 숙종 때의 마상궁술대회(말을 타면서 활쏘기), 영조때의 물놀이,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무예놀이를 종합하여 일컬었고, 영조 8년, 최초로 전주에서 대사습대회가 개최됐다. 외침으로 중단된 후, 1975년 전북 전주에서 부활되어, 현재는 전북 전주시와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주최로 개최됐다. 대회 기간 동안 국악경연대회를 포함하여,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를 마련했다. 학생전국대회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고, 지원 부문에 국악 분야가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어, 연령별·분야별 지원의 기회가 보다 확대되어 있다. 지원 부문은 판소리와 무용 부문이 명창(명인)·일반·신인부로, 민요·고법부는 일반·신인부로, 기악·관악, 기악현악·병창, 궁도, 시조, 농악은 일반부로 총 15 부문으로 나뉘어졌다. 특히 고법 일반부문이 올해 신설되어 고법의 전승과 대중화를 위한 주최측의 의지가 반영되기도 했다. (학생전국대회의 경우, 올해 제40회를 맞고 있으며, 고법·시조·관악·현악·민요·가야금병창·초등판소리(저학년.고학년)·판소리·무용· 농악부로 지원이 가능하다.) 주요 본선 경연은 MBC를 통해 생방송으로 방영된다.(학생전국대회 본선 경연은 녹화방송) 오정숙, 조상현, 이일주, 조통달, 왕기석 등의 명창들을 배출했으며, 판소리 명창부 장원 수상자는 대통령상을 받게 된다. 판소리, 무용, 기악 등 일반부 장원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분야 공익근무대상자로 병무청에 추천되고, 전주대사습청 상설공연 기회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대회장소는 국립무형유산원, 전주대사습청, 전주시청 등이다.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송재영 이사장은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전통 국악을 온전하게 전수 받고 습득한, 실력을 갖춘 국악인을 배출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판소리 명창부 지원자격의 경우, ‘완창 가능한 자’가 아닌 ‘실제로 완창한 자’로 지원자격을 제한했습니다. 또한 예선과 본선 심사위원을 일부 다르게 구성하여 심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대회기간을 여유 있게 두어, 참가자들의 기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KBS국악대경연 10월 22일 결선 예정 작년, 창작국악 부문 신설 올해, 새로운 결선 방식 선보여 방송사의 물적·인적 자원, 국악대중화 영향 앞선 두 대회가 전통국악 전승과 명인·명창 중심의 경연대회라면, 올해 제32회를 맞는 KBS국악대경연은 전통국악의 계승은 물론, 역량을 갖춘 신인 국악인 발굴과 국악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지원 연령 또한 만 18에서 만30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어, 젊은 국악인들의 등용문이자 국악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원부문은 성악, 기악(관악, 현악), 창작국악 크게 3부문이며, 결선 진출자들은 전문가 멘토링 기회가 부여되며, KBS국악관현악단과 협연 무대 및 방송 프로그램 출연 등의 기회가 주어진다. 오정해, 계성원, 지애리, 진유림, 남상일 등의 명인들을 배출했으며, 수상자들은 KBS를 통해 국악인으로서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지원받는다. 대회 주최 측은 대중문화를 이끄는 방송사로서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국악을 모색하고자, 해마다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올해의 경우, 본선에서 순위를 가르지 않고 선정된 결선 진출자들이 최종 무대에서 대상을 겨루는 열린 경연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작년에, 창작국악 부문이 신설되어 젊은 국악인들의 새로운 도전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 대회 연출을 담당한 정현경 PD는 "KBS국악대경연이 시대에 발맞춰 ‘국악계 등용문’을 넘어, ‘미래의 국악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도록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라고 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본선에서 각 부문별 선정된 3팀(총9팀)은 10월 22일 결선을 앞두고 있다. 결선은 KBS1TV를 통해 녹화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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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단체의 이상한 공문, 이상한 ‘지시 건’군사정권 시절의 공문 투(套)는 일본제국주의 시대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제목에 ‘**건(件)’이라고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투(舊套)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공문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것도 첫번째 공문을 그렇게 써 보낸 단체가 있다. 이상한 단체의 이상한 공문인 셈이다. 번호 "22-01”의 지난 8월 11일자 공문 제목은 ‘제27대 *** 이사장 지시 건’으로, 수신자는 ‘16개 시·도 지회장’이다. 번호를 통해 이 공문이 이 단체로서는 첫 공문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 공문의 본문이다. 단 두 문장이다. "중앙회에서는 2022년 4월 21일(목) 총회를 통해 제27대 (사)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 현 이사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각 지회에서는 중앙회의 업무지시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끝” 첫 문장은 4개월 전의 총회 사실, 이를 통해 단체 이사장을 선출했는데, 그가 ‘현 이사장 ***’이다라는 세 가지를 전하는 3중 복문이다. 그런데 절차상 아직 구성 되지도 않은 ‘중앙회’가 주어가 되는 비문이 되었다. 그래서 ‘이사장으로 ***’와 ‘현 이사장으로 선출’이라는 목적어 없는 문장이 되었다. 이런 우격다짐 문장으로 씌여진 공문을 발송한 주체는 당연히 시대 착오적 인식을 드러내게 되었다. 바로 두 번째 문장에서 확인된다. "각 지회에서는 중앙회의 업무지시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끝” 대단히 고압적이고 단호한 ‘지시’형 문투이다. 요즘 말 많은 검찰의 20여 년전 공문을 연상시킨다. 전부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상명하복의 위계 관계인 요즘의 검찰이나 군대에서도 ‘업무지시’는 ‘협조 요청’이나 ‘주지하시길’이란 표현 등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금년, 그것도 신설 4개월 정도의 단체 공문이라면 분명 시대에 뒤쳐져 있는 단체인 것이 분명한듯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공문에 ‘업무지시’ 내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적시되지 않은 ‘지시’ 사항을 따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공문 제목을 보면 미루어 짐작되는 바가 있다. 즉, 이 공문은 앞으로 수신자는 발송처의 지시는 무조건 따르라는 공문인 것이다. "제목: 27대 *** 이사장 지시 건”에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첫 공문이 이런 ‘따르라’식 지시 하달이니, 가히 그 위세가 폭압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21일, ‘한국의 집’ 총회 때 그 구구함이 이런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던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담당 기자는 자료 요청과 내용 확인차 공문에 있는 전화번호 (02)774-2963으로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없는 번호’였고, ktma@naver.com으로 메일을 보냈으나 수신자가 없는 정체불명 이메일 주소라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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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명창 등용문, 대구최계란명창전국아리랑경창대회, 대상에 백선혜(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가 주최한 제16회 대구 최계란 명창 전국아리랑 경창대회에서 명창부 백선혜(대구,1987년생)씨가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봉선화(진도), 곽윤정(대구), 신유딧(진도), 이영순 외 11명(정선)이 명창부, 일반부, 학생부, 단체부에서 각각 금상을 수상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백선혜씨는 "10대 초 처음 배운 남도소리,이어서 경기소리. 영남민요를 정은하 명창에게 사사했다. 서울예술대학 국악과를 전공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 굳은 결심을 하고 다시 20년만에 소리를시작한지 1년만에 이 대상을 받게 되어 너무나 영광스러운 날이다. 다시 소리를 시작하는 날부터 죽어라고 매일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런 성과를 받게 될 줄 몰랐다"라고 수강소감을 전했다. 대회는 지난 20일 대구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열린 제20회 대구아리랑축제와 함께 열렸다. 올해 축제에선 조선말 국채보상운동 당시 여성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기생 영무 염농산의 삶을 주제로 한 소리극 '염농산 아리랑'(연출 최석민, 대본 김재만)을 선보였다.정은하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장은 "최계란아리랑경창대회는 대구 출신 최계란 명창이 1936년 밀리온레코드에서 취입한 '대구아리랑'을 2005년 다시 찾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했다"며 "민족의 얼이 담긴 인류무형문화유산 대구아리랑이 꾸준히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부문별 입상자는 아래와 같다.▷명창부 서금옥(은상), 조희진(동상), 민진기(장려상) ▷일반부 정지선(은상), 권수현(동상), 최경남‧성은주(장려상) ▷학생부 안세현(은상), 박서현(동상), 서민호·박민지(장려상) ▷단체부 최은주 외 7명(은상), 위정순 외 6명(동상), 서옥숙 외 9명·노계숙 외 3명(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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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대구아리랑제 20년, ‘아리랑축제 레전드’ 되다2003년 8월 24일, 유럽의 한 음악가 모임에서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맨트로 시작한 제1회 대구아리랑제.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아리랑 주제 행사였다. 이후 20년, 2022년 8월 20일 오후 7시, 대구 아양아트센타 아양홀에서 대구아리랑제가 열렸다. 제20회, 20년을 맞은 역사적 공연이다. 정은하 회장 총지휘에 의해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정주년이라는 꺽는 해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불가에서 20세를 이름값을 하는 나이라는 의미로 명자사미(名字沙彌)라고 하고, 남자 20세를 비로소 관모를 쓸 수 있는 나이라 하여 약관(弱冠)이라 말한다. 이렇게듯 20회의 연륜은 의미가 큰 회수이다. 곧 '대구아리랑제'라는 전형성을 획득했다는 성과 때문이다. 2003년 제1회에서 ‘김삿갓 8도아리랑’이란 소리극 형식을 중심으로 아리랑 전승자들을 통해 전통과 창작 아리랑 판을 펼치는 형식이다. 정리하면 해설과 소리극(매년 역사인물 제재)을 통한 아리랑 주제 실현, 그리고 전통과 창작아리랑을 담아내는 무대이다. 금년 제20회에서도 주제 이해를 돕는 해설과 경상감영 예기 앵무 '염농산'의 애민정신을 아리랑의 대동정신 구현을 주제한 소리극과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이춘희,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김길자, 진도아리랑 예능보유자 강송대 명창을 비롯하여, (사)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회장 등 영남지역 아리랑 전승단체가 모두 참가하여 아리랑 한마당을 꾸몄다. 창작아리랑은 '곽동현과 슈퍼 밴드'가 함께 하여 다채롭게 하였다. 이런 형식은 ‘실내형 아리랑축제’의 전형으로써, 전국 전승단체 중 대구아리랑제가 제일 먼저 선도한 것이다. 대구아리랑제를 통한 실내형 아리랑축제 전형을 구축하는 데는 단연 영남아리랑보존회 정은하 회장의 공로가 주목된다. 30년 전 영남지역 아리랑을 조사하여 학계와 언론에 알려 전국에서 아리랑 전승 중심지가 영남지역이고, 현대적 활성화의 본 고장을 대구지역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작창 ‘대구아리랑’을 발표하여 ‘대구아리랑의 탄생’이란 음반 발매하여 창작 아리랑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이를 통해 1937년 발매한 최계란의 ‘대구아리랑’ 음반 발굴의 계기를 마련하게 한 공로는 주목해야 한다. 이 음반을 통해서 대구 지역이 1930년대 아리랑을 재 발화 시킨 지역임을 알게 한 것이다. 대구아리랑(정은하 작창) 어데에 아니라예 핑계만 찾지말고 좋으면 좋다고 눈만 껌뻑하이소 팔공산 수태골 감도는 구름아 우리님도 내 못잊어 그리 떠도느냐 아이구 이 문둥아 좋다 말만말고 추야장 긴긴밤에 날 찾아오이소 금호강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오면 가신님 그리워서 내 못살겠네 경상감영 선화당은 대구의 자랑 아름답게 보존하여 후세에 남기세 또한 20년간의 무대를 통해 가려져 있던 여러 아리랑을 가시화 시킨 것도 주목하게 된다. 제주아리랑, 울릉도아리랑, 영천아리랑, 경상도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대구아리랑(최계란 창), 동래아리랑, 상주아리랑, 사할린아리랑 등이다. 금년은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대구아리랑제가 아리랑의 다양성과 무형유산의 '창조적 계승' 실상을 보여주어 유네스코 등재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대구아리랑제는 전국의 전승 아리랑, 다양하게 이뤄진 창작아리랑을 무대화 하는 행사로도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년 제21회 행사부터는 새로운 트랜드를 찾아 진전된 실내형 아리랑축제를 선도해야 한다. 내년부터 문화재청의 아리랑 전승단체 지원책 시행을 계기로 아리랑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년의 대구아리랑제, 이를 이끈 정은하 회장, 분명 아리랑축제의 역사에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이제 새로운 아리랑축제 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바이다. 대구아리랑 얼쑤!. 정은하 명창 얼쑤! 우리 아리랑 얼쑤! ‘앵무 염농산가’ 기미양 작/낭송 여보시오 동무님네 이내하소 들어보소 대구삼절 염농산을 어느만큼 아시는교 옛날옛적 그시절에 대구감영 수행이니 그 예명 앵무로서 그 동생 비취라네 그 앵무 하신말쌈 영남뜰에 남아시니 기녀도 나라위해 몸바칠수 있단말쌈 나라빚 덜어내고 방천뚝 쌓을세라 누구든지 따라나서 교남대륜 세웠다네 염농산 제언공덕비 상주용암 세웠으니 대구삼절 영남풍류기적비 감영터에 세울세라 춤에 시조에 소리 박록주 최계란을 키워내고 달성권번 대들놓아 영남풍류 세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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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훈 석좌교수, '한국음악의 새길 찾다'8월의 한가운데, 창밖의 일기 변화에 눈을 두지 않고 연구실에서 뭔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분. 국악인. 작곡가, 지휘자, 국악학자, 대학총장, 교육문화정책가, 다시 국악학자로 돌아와 연구실을 지키는 박범훈 석좌교수. 최근 동국대 서울캠퍼스에 ‘한국음악학과’ 개강 준비와 전임교수, 석좌교수 내정 등으로 분망(奔忙)한 틈에 KBS기자 시절부터 친분을 가진 이동식 대기자가 찾았다. 80분 간의 인터뷰에서 그의 화두가 종립대학(宗立大學)으로써의 불교음악 진흥이 곧 우리 음악 새길 찾기임을 확인했다. 이제 그의 공안(公案)을 함께 하기로 한다. Q. 이동식 대기자- 이 염천에 피서 안가시고 무얼 하십니까? A. 박범훈 석좌교수- 반갑습니다. 이번 가을 학기에 학생들을 모집하는 예술대학 한국음악과의 개설에 차질이 없도록 제반 사항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학과 개설은 일이 많지요. 우리 학과는 다 수시모집으로 신입생 모집이 이뤄지는데 그게 딱 한 달 남았거든요. 새 학과의 비전과 설립목적에 맞는 교과목의 교육내용과 방법, 교수확보, 또 전형방법의 확정과 구체적 평가기준의 숙지 등등 하나하나가 다 확인하고 점검해야할 일이니까요. Q. 이- 동국대학교는 원래 경주캠퍼스에 한국음악과가 있었는데 서울 한복판에 새로 학과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의외입니다만. A.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예술관련 학과는 관계되는 예술인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운영되지 않으면 교수진 확보나 학생들 수업 등에 문제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학이 불교 조계종이 설립한 종립대학인데 그동안 지역(경주캠퍼스)에 있으면서 불교음악의 진흥이라는 차원에서는 미흡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당국이 기왕이면 불교음악의 바탕을 더욱 심도있게 연구하고 가르쳐 한국음악의 새 길을 열기 위해서는 뛰어난 예술인들이 선생님으로 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서울 한복판에 한국음악과를 신설하자고 해서 성사된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수도권에는 대학의 정원이 늘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대학으로서는 종립대학으로서 그동안 조금 미진했던 불교음악의 연구와 연마를 배양해서 이 시대 세계가 환영하는 한류, 우리나라가 요구하는 한국음악의 인재들을 키워내야 할 시점이라는 고심을 한 끝에 기존의 정원을 돌려서 서울에 한국음악과를 만들기로 한 것이지요. Q. 방금 불교음악을 통해 우리 음악을 키운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아는 불교음악은 이를테면 찬불가라던가 범패, 염불, 또는 김영임이 불러 유명해진 회심곡 등등 특정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데 이것은 전통음악의 주류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요? A. 한국음악의 바탕은 곧 불교 음악입니다.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우리민족과 1500년 이상 같이 살아온 불교이기에 거기에서 만들어지고 남아있는 가락과 사설과 장단 등 전통음악의 요소인 가, 무, 악 3요소가 모두가 어느 새 우리 속으로 파고 들어와 있고 그것이 현대에서도 알게 모르게 발현되고 있는데, 우리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우리가 음악이란 개념을 접한 것도 불교경전을 통해서였고, 염불이나 범패뿐 아니라 국악에서 연주하는 영산회상, 회심곡, 비나리, 탑돌이, 산염불 등 민요가 다 불교음악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이미 우리음악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런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에서 취하고 버릴 것을 연구하고 그것을 이 시대 우리들의 예술적인 재능으로 다시 피워내는 일이 중요한데, 그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모집인원이 15명이라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우수한 교수진들과의 직접 교육을 통해 최고의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목표입니다. Q. 그럼 교수진들은 다 확정이 되었나요? A. 나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인들이 다 망라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는 김덕수 안숙선을 비롯해 김영재, 김성녀, 박애리, 이춘희, 김해숙 등등 성악, 기악, 무용, 작곡 부문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다음 오는 9월에 학생들을 모집해서 내년 3월에 학과의 문을 열게 됩니다. Q.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에 국악과 혹은 한국음악과가 있어 국악계의 인력수요가 포화상태가 아니냐는 걱정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최근 우리나라가 반도체나 원자력 분야를 키워나가려고 보니까 절대 인력의 배출구조가 없어서 인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음악의 현주소는 한류라는 현상으로 기대에 차 있는데, 이런 추세에 맞추려면 새로운 인력, 인재들이 더 많이 나와야지요. 그 인재들은, 과거의 것을 연주하는, 말하자면 답습의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해 내야하는 것이고요. 잘 보시면 우리 전통음악은 언제나 창작음악이었습니다. 그것이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 시대 우리들은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인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음악들을 이미 만들어서 전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려면 우리 전통의 힘을 찾아내어 이를 다시 재창조하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최근 사이의 곡 '강남스타일'이 휘몰이장단을 바탕으로 했기에 세계인들에게 먹혀들었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 그 한 사례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주는 물론이지만 각 분야에서 새 음악을 만드는 역량을 극대화하는 작곡 교육이 절대 필요합니다. 우리 학교는 교수진들이 학생들에게 1 대 1 맞춤형 수업을 제공하도록 합니다. 거기에 국립극장이 가까이 있으니 늘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움으로서 이 시대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역량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일각에서는 현재의 우리 아이돌의 인기나 한류가 보편적인 인정을 받지 못해서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하던데요 A. 우리가 지나치고 있는 것으로, 서양음악도 그 모체는 종교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천주교)가 서양의 음악문화를 탄생시켰기에 서양음악의 모체는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동양의 음악은 불교가 그 모체이지요. 서양음악은 그런 바탕에서 민족적인, 지역적인 음악을 흡수했지요. 헝가리, 핀란드, 러시아, 스페인 등의 민족음악들이 19세기 중반 이후에 서양음악의 본류로 올라가서 현재 세계를 풍미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음악은 불교가 그 바탕에 있는 것이고, 이제는 아시아의 민족음악들이 세계음악으로 올라갈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이제 현대음악, 세계의 음악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Q. 그런데 어디까지가 우리 음악이냐 하는 문제가 늘 우리를 고민하게 합니다만···. A. 아, 그거요, 음악이건 문화건, 새로운 것은 본질적으로 비빔밥입니다. 우리 비빔밥을 생각하면 됩니다. 거기에 고명으로 나물을 갖가지 넣고 참기름도 넣고서 마지막에 고추장을 넣어 비비는데, 그게 핵심이지요. 그 고추장을 얼마나 넣느냐의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일단 우리 음악의 고추장이 들어가면 그게 곧 우리 음악이지요. 그럼 그 고추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하고 또 물을 수 있는데, 그것은 요소별로, 즉 장단이나 곡의 형식, 음계문제, 소리를 내는 방법, 몸짓에 따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의 문제이고, 그것을 잘 하면 그게 최고의 우리 음악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요소들을 우리가 알아내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Q. 너무 학과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 아시다시피 코로나로 우리 국악계, 전통음악계가 공연 취소, 관객 감소 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조금씩 회복되긴 하지만, 이거 어떻게 봐야 합니까? 해결 방법이 있나요? A. 하하. 음악이나 민속을 통해서 보는 우리 민족은 참으로 지혜로운 민족입니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거나 귀찮게 하는 대상을 우리는 별신, 잡신으로 규정하고 이를 굿으로 보내는 지혜가 있지 않습니까? 코로나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까지 힘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가장 슬플 때에 노래로 이겨내듯이 우리는 이 위기를 별신굿을 해서 추방해야 하죠. 그것은 해학이자 우리들의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Q. 우리들이 안고 있는 고민은 서양악기가 워낙 표현력이 강해서 우리 악기가 따라가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A. 서양악기와 우리 악기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우리 음악의 한계를 미리 규정짓는 일이 아닐까요? 전에 남북한 음악회를 평양에서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첼로 연주자가 한복을 입고 나오기도 하고, 서양악기와 전통악기가 공존하고 있더라구요. 오자와 세이지라고 하는 지휘자, 세계적인 서양음악의 지휘자이지요. 그 양반이 중국에 왔다가 얼후(二胡)의 매력에 푹 빠져 중국 연주자를 보스턴에 초청해 보스턴 오케스트러와 협연을 열어준 일이 있고, 그 이후 얼후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이제는 악기나 양식의 구분을 넘어서서 원하는 음악세계를 열어가는 지혜가 있어야하지요. 이미 외국에서는 그런 쪽으로 많이 음악세계가 넓어지고 있고요. 그것은 악기나 형식에 우리가 얽매이지 않고 그것들을 우리의 음악에 '복종'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사실 이 말은 북한식 어법이기는 하지만···. 우리 동양 3국만 해도 각각의 민족적인 특징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것들을 필요하면 끌어 쓰고 넘치면 버리고 해서 보다 보편적인 음악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Q. 그래도 우리들은 아직 일본에 대해서는 민족적인 감정이 있고, 요즈음에는 일본 엔카(演歌)의 원류가 한국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A.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시대 우리 음악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사실인 것 같고. 그렇게 그들의 음악으로 되었는데 우리도 중국 음악이나 서양음악을 받아들이면서 또 우리 식의 음악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아요? 일본 엔카의 원류에 대해서는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인천에서 살았다는 전력이 있고 최근에는 한국인이라는 설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엔카의 기본 음계는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것이기에 우리 것을 베꼈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소리도 있지요. 그것은 연구가들이 밝힐 일이지만 누가 원조니 어디가 어디를 베꼈니 하는 민족적인 감정에 함몰되기 보다는 그런 저런 요소들을 우리가 다 어떻게 우리 것으로 수용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중일 세 나라 음악인들이 함께 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악보로 보면 음악의 표현이 살지 못하는데 함께 손잡고 연습하고 부르고 하면 다들 마음이 통하고 음악이 멋지게 나오더라고요. 각 나라의 장점을 흡수하고 이를 현대에 다시 살리는 작업, 그게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이지요. Q. 이런 저런 궁금한 점을 묻다 보니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이번 한국음악과를 창설하는데 주도적인 일을 하고 계시는데, 더 많은 창작이나 후진 양성으로 우리 음악이 당당히 세계에 퍼지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A. 네 급한 김에 저도 두서없는 말을 했습니다만, 우리 음악은 언제나 늘 시작입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새 음악으로 국악만이 아니라 넓은 한국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지요. 요즈음 대학의 학과가 거의 다 한국음악과라는 이름을 택하는 데에 그 답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음악을 찾고 만들어가야 하고, 우리 동국대의 한국음악과 창설이 당대 최고의 지도자들에 의해 그런 희망과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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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박범훈 석좌교수, ‘원로의 품격’‘원로(元老)’란 더 이상 단순히 나이 든 사람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단순히 늙음을 뜻하는 나이 개념이 아니라 높은 덕망과 함께 분야의 오랜 시간 이바지하며 명예로운 평판에 도달한 인물을 칭하는 용어로서 변해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우리 국악에도 오랜 시간 묵묵히 밑거름이 되어준 ‘국악계 원로’들이 있다. 이들의 원로라는 이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국악 원로(元老)’들이 가진 대표성, 공적, 명예, 연륜과 경험까지 이들의 작품이 바로 한국 국악계의 본보기가 되고 이정표가 된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 제국을 거치면서 닥친 한국의 전통음악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를 지켜오며 국악을 계승해온 많은 예술인들, 그들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빛과 어둠을 마다 않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킨 이들이다. 얼마 전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2'를 거쳐서 다시 화제가 된 '배 띄워라' 라는 곡이 있다. '배 띄워라'의 작곡자인 ‘박범훈 현(現) 동국대 석좌교수’ 역시 국악음악과 국악교육에 오랜 세월을 이바지한 ‘국악 원로(元老)’ 중 한 명이다. 그의 십여 년 전 국악 명곡이 '미스트롯2' 에서 다시 나오므로 국악과는 거리감이 있는 젊은 세대에게 국악의 정겨움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의 행보를 보면 '국악 원로(元老)'로서 앞으로 국악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사람들의 머리에 뿌리박힌 건조한 느낌이 아닌 여러 대중적인 소리들이 활기차게 엮인 새로운 국악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하루 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박범훈 교수'가 1988년 한국 지휘자로 북한에서 열린 ‘윤이상 통일음악제’에서 평양 국립교향악단의 '아리랑 환상곡'을 지휘하고, 90년대 들어 한·중·일 3국 민족 악단 ‘아시아 오케스트라’를 결성, 순회 연주를 하며 음악교류를 시도하는 등 꾸준히 국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 왔다. 이런 '박범훈 교수'의 신념이 이제는 새롭게 신설되는 동국대 서울캠퍼스 한국음악과의 목표와 비전을 통해 선명히 드러난다. 이는 단순히 국악에 오래 몸담아 온 '원로(元老)'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국악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역할로서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하는 큰 포부를 보여준다. 이 새로운 동국대 서울캠퍼스 한국음악과의 출범은 국악계의 큰 변화를 견인할 것이 분명하다. 2023년 학기 학생 15명으로 출발, 국악계 각 종목 최고 명인들로 구성된 교수진의 면모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도 남는다. 당연히 이를 이끄는 분은 ‘박범훈 석좌교수’이다. 아직도 팔팔한 열정, 풍부한 견해, 친화와 설득력 있는 화법 앞에서 초자 기자의 수식은 다만 "박범훈 석좌교수, 원로의 품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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