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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향수, 2023 관현악 시리즈 ‘전통과 실험-풍물’6월 13일 화요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는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탐구를 엿볼 수 있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2023 관현악 시리즈 ‘전통과 실험-풍물'이 무대에 올랐다. 관현악 시리즈 ‘전통과 실험’은 2022년 김성국 단장 취임 이후 ‘명연주자 시리즈’와 함께 선보인 새로운 시리즈 공연이자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으로, 위촉 작곡가들이 우리의 전통예술 중 엄선된 하나의 공통 주제를 연구하고 실험한 창작곡을 선보여 나가고 있다. 2022년 ‘동해안 별신굿’을 주제로 첫선을 보인 ‘전통과 실험-동해안’에 이어 올해는 ‘풍물(농악)’을 주제로 한 창작곡들로 무대가 채워졌다. 1부에서는 임준희의 관현악곡 '혼불8-맥(脈)', 도널드 워맥의 거문고 협주곡 'Black Dragon', 장태평의 관현악곡 '춤꽃'이, 2부에서는 국악의 거장 박범훈 작곡가의 명곡인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이 전 악장 연주되었다. 초여름의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던 화요일, 세종문화회관은 공연을 보러 온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이번 무대는 특히 ‘풍물’을 주제로 작곡가들이 제각기 실험하고 해석한 음악이 초연되었기에, 다양한 풍물 장단이나 풍물 악기를 어떤 식으로 관현악에 조화롭게 녹여내었을지 큰 기대를 품고 무대를 관람하였다. 1. 국악관현악을 위한 ‘혼불8-맥(脈)’ㅣ위촉 작곡 임준희 무대는 임준희 작곡가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혼불8-맥(脈)’으로 열렸다. 전통 음악을 세계화, 현대화하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는 임준희 작곡가는 새롭고 다양한 시선으로 전통 음악을 해석하며 많은 음악을 발표해 왔다. 산조, 판소리의 어법이나 선율, 장단 등을 차용하여 서양악기로 연주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댄싱산조’나 ‘세 개의 사랑가’ 등의 작품을 통해 이미 큰 관심이 있던 터라, 이번 무대 또한 더욱 기대하게 되었다. 임준희 작곡가에 따르면, 풍물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영혼을 고양시키고 공동체적인 정신의 맥을 생동케 하며 유지, 전승하는데 그 핵심적인 역할이 있기에, 이 작품에서 한국인의 삶과 역사 속에 면면히 흘러온 혼불을 통해 발현되어 왔던 정신의 맥, 생명의 맥 등의 이미지를 풍물 속의 장단과 역동적 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표현해 보았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이 곡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콘트라베이스와 아쟁의 베이스 역할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베이스 음역대가 확실하게 들리며 그 안에서 화성이 진행되니 음악적 풍성함과 우직함이 돋보여 높은 완성도가 느껴졌다. 음악은 총 두 악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든 악기가 국악의 시김새와 장단의 세부 리듬 꼴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각 국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색과 특징을 가감 없이 나타내는 동시에 조화로움을 이루며 한국적인 색채를 물씬 드러냈다. 무대는 장구를 중심으로 꾸준히 다양하게 장단을 변화시켰다. 끊기지 않고 자연스레 계속해서 장단이 변화하는 가운데 관현악이 그 장단을 타고 조화롭게 연주되니, 열정적이고 여유로운, 공동체적인 정신의 맥이 뜨겁게 이어짐을 느꼈다. 2악장은 칠채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관현악기들은 타악기가 이끄는 칠채 장단의 기본 강세와는 다른 박에 강세를 둔 엇박을 연주하며, 장단의 기본을 가져가되 그 안에 현대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 선율은 5음 음계 평조를 기본으로 가져가 동양적인 이미지를 드러냈고, 특히 생황의 묘한 음색이 화음으로 들려주는 구간은 생경한 신비함을 더해주었다. 악기들은 어느 하나 튀거나 밀리지 않고 조화롭게 장단 위에서 음악을 펼쳐나갔다. 특히 1악장부터 계속해서 태평소가 풍성하고 힘 있는 사운드로 음악을 끌어 나갔는데, 마치 농악을 이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는 임준희 작곡가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글귀를 통해 영감을 받은 것처럼, 선조들의 숨결과 소리의 맥을 풍물 소리를 통해 표현하고 관현악으로 구현하고자 한 특징이 잘 드러났다. 경험하지 못했지만 우리 안에 꿈틀대며 살아있는 얼과 숨결이, 역사적 자취가 계속해서 이어져 오기에 우리는 지금도 이 땅에서 그때의 풍물을 무대에서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2. ’춤꽃’ㅣ위촉 작곡 장태평 ‘춤꽃’은 호남여성농악단을 모티브로, 강렬하면서도 우아하게 숨통을 조였다 푸는 듯한 쇠가락과 우도농악의 특징을 관현악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곡가 장태평은 어릴 적 명성과 예술적 노련미가 가득한 호남여성농악단의 대표 상쇠 유순자 명인에게서 호남우도농악(풍물굿)을 배웠으며, 그때 체화한 춤과 소리는 그가 하는 모든 음악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한다. ‘춤꽃’은 단조를 바탕으로 다양한 반음계가 활용된 묘한 분위기로 연출되었다. 특히 해금의 음을 당겨내는 주법과 가야금, 거문고 등의 발현악기가 튕겨내는 주법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어두우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악기들의 다양한 음색과 효과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그 안에서 장단의 리듬 꼴 또한 계속해서 들려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금과 가야금, 생황이 엇모리의 리듬 꼴을 짧은 스타카토로 연주하거나 장단의 맺는 가락을 모든 악기가 함께 연주한 부분은 장단을 확연히 드러내며 효과음 같은 음향 효과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음악은 전반적으로 다양한 장단 변화의 흐름 속에 음끼리 부딪치는 느낌을 주는 증4도 화음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더욱 어두우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 안에서 연주된 자유로운 선율 진행은 이질적인 조화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작곡가가 우도농악에서 각각 장단과 선율의 동기를 차용, 그 특유의 호쾌한 가락과 복잡하면서도 유려한 마당을 작품에 녹여냈다고 전한 것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화음 진행과 신비로운 분위기 안에 농악이 가지고 있는 힘과 수려한 매력이 국악기의 특색 있는 음색으로 표현되고, 새로운 음향과 분위기가 연출되어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다. 3. 9현 거문고 협주곡 ‘Black Dragon’ ㅣ위촉 작곡 Donald Reid Womack 도널드 워맥(Donald Reid Womack)은 다양한 장르에서 수많은 곡을 써 온 작곡가로, 한국의 전통 굿과 제례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전통문화를 표현한 곡을 많이 발표해 온 작곡가이다. 특히 전통 악기의 고유 음색과 무한한 표현 가능성을 다양한 시각에서 제시하며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던 음악을 만들어 내 왔기에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지 기대를 품고 관람하였다. 9현 거문고 협연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부교수이자 블랙스트링의 단원으로 세계적인 위상을 떨쳐 나가고 있는 허윤정 연주자가 참여했다. 이번에 초연된 작품 ‘검은 용(Black Dragon)’은 거문고의 고대 명칭인 ‘현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협주곡으로, 거문고 독주를 통해 강렬하고 상서로운 저널 속의 검은 용, 신령함과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용의 모습을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무대는 마치 용이 꿈틀대듯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음의 크레센도 지속음이 반복되며 시작되었다.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9현 거문고의 힘 있는 타점은, 딴딴하지 않고 느슨한 굵은 현을 울리며 더욱 힘 있고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거문고는 꾸준히 변화하며 이어지는 장단을 기본에 두고 자유로운 연주를 펼쳐 나갔는데, 미완의 용이 완전한 존재로 승천하는 과정처럼 장단의 기본 강세와 다른 부분에 강세를 주거나 장단 위에서 빠른 비트로 음을 쪼개 펼쳐 나가는 등 정제되지 않은 특색 있는 연주로 점진적인 변화를 끌어냈다. 2악장에서는 하나의 짧은 주제 선율을 반복되는 리프 형식으로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독주 거문고가 제시한 주제 선율을 타악기의 리듬 꼴로 받거나, 관현악기가 번갈아 가며 뒤에서 반주하거나 앞으로 가지고 나와 연주하기도 하며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귓가에 맴도는 짙은 주제 선율과 함께 연주된 대금의 바람 소리가 섞인 반음계 선율, 그리고 악기들이 만들어 낸 슬프면서도 묘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된 거문고의 애절하고도 어지러운 듯한 소리엔 용의 고독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마지막 3악장은 용의 온전한 힘을 폭발적으로 드러낸 악장이다. 3+2 소박이 반복되는 리듬 형태를 반복해서 들려주고, 그 위에서 거문고가 강약을 살리며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연주를 선보였다. 강한 아우라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관현악과 타악의 장단 진행, 거문고 독주가 함께 어우러지며 용의 승천을 향해 함께 달려간다. 이때 서로 밀고 당기는 리듬으로 선율을 주고받고 확장시키며 풍물의 자유로운 에너지를 보여준다. 허윤정 연주자의 강렬하고 감성 어린 힘 있는 연주와 풍물의 신명나는 자유로움, 그리고 국악 관현악단의 우직한 분위기 조성이 한데 어우러진 이 무대는, 우리 음악의 다양한 매력과 면모를 ‘용’의 이미지로 감상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4. 사물놀이를 위한 국악관현악 ‘신모듬’ 작곡 박범훈 국악관현악의 정수로도 불리는 ‘신모듬’은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이 만난 최초의 곡으로,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으며 연주되온 스테디셀러 관현악곡이다. 보통 3악장 '놀이'가 가장 많이 연주되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풍물’이 주제였던 만큼 전 악장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물놀이는 사물광대가 협연하였으며, 그들의 깔끔한 합과 세련되고 섬세한 연주는 사물놀이의 매력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제 1악장 '풍경'은 농악의 장단을 인용한 악장이다. 1악장에서는 민요 성주풀이의 선율이나 동부민요의 시김새 등이 활용 및 연주되며 한국적인 우리 소리를 구현해 냈다. 1악장이 시작되고 바로 든 생각은, 국악관현악이 연주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에 관현악과 사물놀이의 합을 생각해 낸 박범훈 작곡가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네 개의 악기로 무대를 꾸리는 사물놀이를 국악 관현악 위에 얹은 것은 대단한 발상이며, 자칫하면 음향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부분을 오히려 더 강하고 감성 어리게, 한국적으로 살려낸 박범훈 작곡가에게 찬사를 보내며 음악을 감상하였다. 2악장 ‘기원’은 가정의 평화, 국태민안 등을 비는 뜻으로 작곡된 은은하고 평화로운 기원 악장이다. 정주의 맑은 여운이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며 선조들이 기원했던 안온한 삶을 함께 느껴볼 수 있었다. 사물놀이 악사들은 잠시 사물 악기를 내려놓고 정주나 작은 북 등을 활용하여 연주했는데, 2악장이야말로 안녕을 비는 기원과 관련이 깊은 ‘굿’, ‘풍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구간이라고 느꼈다.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원했던 모두의 바람이 들어가 있는 2악장의 음악은 한국적인 향수를 그윽이 자아냈다. 마지막 3악장 ‘놀이’는 말 그대로 신명 나게 치고 즐기는 무대였다. 관현악단과 사물패, 그리고 관객들까지 모두 함께 음악에 빠져들어 흥겹게 그 공간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사물광대의 눈을 뗄 수 없던 화려한 연주와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 풍물놀이의 신명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관객들의 ‘얼씨구’, 큰 박수와 함성과 함께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전통은 그 자체로도 지켜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우리의 역사인 동시에, 계속해서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실험하며 발전시켜야 할 지금 이 세대의 숙제와도 같다. 그런 의미로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탐구를 엿볼 수 있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2023 관현악 시리즈 ‘전통과 실험’은 음악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국악관현악이라는 장르 안에서 어떠한 전통 보존과 어떠한 실험을 해 나갈 것인가는 우리가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중요 논제이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나오듯, 내 선조의 선조와 그 너머 더 먼 선조의 숨결이 스민 자취가 지워지지 않는 터를 잡아 오늘까지도 자국을 역력히 남기고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그 아름다운 혼이 담긴 전통을 꾸준히, 그리고 창의적으로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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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창작국악동요 공모전’ 대상, 민유리 작곡가올해 국립국악원이 개최한 ‘제37회 창작국악동요 작품 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 ‘소금을 만드는 맷돌’을 작곡한 민유리 씨가 수상했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작곡가로서 창작국악 동요에 대한 열정이 담긴 민유리 작곡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동요와 학교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Q. 안녕하세요. ‘소금을 만드는 맷돌’로 대상을 수상하셔서 정말 축하드립니다. A. 지난 2018년에는 ‘그랬으면 좋겠네’로 본선 우수상을 받고 올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자는 마음이었는데 뜻밖의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한테 ‘창작국악동요 작품 공모전’은 참 감사한 공모전입니다. 대상 수상이 더욱 창작국악동요를 열심히 쓰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Q. 창작국악동요 작곡 활동을 다양하게 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창작국악동요 작곡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오셨나요? A.작곡가로서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을 하면서 국악기를 접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국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연구하면서 국악에 관심이 생겼고, 국립국악원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곤 했습니다. 작곡가들과 팀을 이뤄 국악대학원을 나오신 선생님께 스터디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작곡가로서 국악을 공부할수록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마음가짐, 국악적인 것을 많이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최대한 국악의 기본을 동요에 접목하고 활용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대상을 받은 ‘소금을 만드는 맷돌’을 작곡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점이 있나요? A. 한은선 작사가 선생님의 가사를 처음 받았을 때 유명한 전래동화가 떠올랐습니다. 가사 속에 있는 의성어, ‘돌돌돌 돌아라’ ‘빙빙빙 돌아라’를 리듬감 있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맷돌이 도는 모습을 유쾌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흥이 나는 자진모리장단을 활용했습니다. Q. ‘소금을 만드는 맷돌’ 가사가 재미있습니다. 작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나요? A. 한은선 작사가 선생님께서 어렸을 때 읽었던 전래동화를 떠올리며 노랫말을 쓰셨다고 하셨어요. 그동안 한은선 작사가 선생님께서 전래동화 소재의 국악동요로 ‘요술 부채’와 ‘삼년 고개’를 발표하셨고 이후에 ‘소금을 만드는 맷돌’ 노랫말을 쓰셨습니다. 전래동화와 국악동요가 잘 접목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작사를 하셨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노랫말로 완성하셨습니다. Q. 서양음악(클래식)을 전공한 작곡가로서, 국악창작동요를 작곡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A. 국악을 전공하지 않은 작곡가이기 때문에 일반 동요보다 더 어렵게 느낄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장단을 사용할 때 제한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 속에서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 또한 작곡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국악창작동요를 작곡할 때 여러 장단을 활용하려고 노력해요. 국악창작동요에 어울리는 장단은 따로 있다고 국한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쉽게 국악의 여러 장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Q. 국악창작동요 작곡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국악창작동요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뜻이 있나요? A. 저는 어렸을 때 동요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창작국악동요를 부른 기억이 거의 없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민요 정도만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국악에 대해 더 모르는 세대가 됐고, 어른들이 우리 것을 지켜 전수해야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쉽게 국악을 전달하는 방법이 ‘국악창작동요 보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악이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느끼는 매력이 있습니다. 국악의 매력을 어렸을 때부터 듣고 몸으로 익숙해지면 커서도 국악을 가깝게 느낄 것입니다. 아이들이 국악창작동요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음악가로서 우리나라 국악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국악을 책으로만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악 자체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국악기 체험, 사물놀이 등 국악 체험 활동이 늘어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한 많은 작곡가들도 국악을 넣은 동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만든 음악들이 많은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어릴 때부터 국악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창작국악동요 작곡가로서 바라는 점과 꿈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A.세상에 빛을 본 창작국악동요가 잘 보급돼 아이들이 즐겁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창작국악동요를 찾아서 듣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지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창작국악동요의 지평을 넓혀보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 아이들이 부르는 판소리 동요 작곡에도 도전할 계획입니다. 창작국악동요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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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정기연주회, 4편을 보다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5월 11일(목)과 12일(금), 이틀에 걸쳐 전통 곡을 재해석한 국악관현악 무대 ‘전통의 재발견 Ⅲ’를 선보였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전통의 재발견’ 시리즈는 현재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곡들을 오늘의 음악으로 재해석하여 선보이는 무대로 지난 2년 동안 여덟 작품을 선보였으며, 올해는 그 세 번째 무대로 수제천, 평조회상, 씻김굿, 서도음악을 바탕으로 창작된 국악관현악 4곡이 무대에 올랐다. 새로이 창작된 음악이지만 전통곡을 재해석한 곡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어떤 형식으로 편곡되어 해석되었을지 기대를 품고 관람하였다. 1. 국악관현악으로 노래하는 수제천 ‘소중한 빛...’_작곡 강은구 ‘수제천(壽齊天)’은 ‘정읍사(井邑詞)’를 관악합주곡으로 연주하는 ‘정읍(井邑)’의 아명(雅名)이다. ‘정읍사’는 멀리 떠나 있는 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의 노래로, 이를 위해 강은구 작곡가는 이 노래에 나오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에 주목하여 작품의 한 축은 차분한 가곡조의 여창으로, 다른 한 축은 꽹과리, 징, 장구, 북, 모듬북 등으로 그리움의 이면에 끓어오르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무대는 피리가 빠져있는 상태로 관악기들이 기존 수제천의 선율을 연주하며 시작되었다. 수제천의 백미로 꼽히는 연음형식(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연결되는 형식)과 악기별로 주고받는 구간이 기존의 수제천과 거의 동일하게 연주되었고, 피리와 대금, 해금, 아쟁이 적절하게 주고받으며 웅장하게 음악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다 수제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짧은 구의 선율을 발전시켜 현악기들도 함께 연주하기 시작하며 점점 음악이 빌드업되고, 꽹과리 등의 타악기가 점차 들어오며 자진모리장단으로 몰아가 정악과 민속악이 한데 어우러졌다. 웅장하고 정갈한 관악곡이 현악기와 타악기를 덧입혀 새로운 형태로 연주되니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 안에 갑작스러운 반음계적 코드 진행이 들어와 전통 선율의 진행이 어딘가 희석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위에 갑자기 서정적인 서양 음악적 화음 요소가 덧입혀지며 모든 장르가 어지러이 얽히는 느낌을 받아 아쉬움이 남았다. 역동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관현악의 연주가 어느 정도 끝나자, 정가앙상블 Soul지기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나리의 노래가 시작됐다. 현재 정읍사는 노래가 남아 있지 않지만, 강은구 작곡가는 ‘소중한 빛(마음)을 널리 밝히는 노래’로 ‘중명지곡’을 만들었다. ‘달아 높이 솟아올라-’로 시작한 노래는 김나리의 맑고 청명한 음색으로 들으니, 마치 달빛 아래 유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가야금의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선율과 악기들의 반주가 잘 어우러졌다. 비록 기존 수제천 음악과는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었지만, 수제천을 관통하는 소중한 마음을 노래하던 희망이 음악에 짙게 묻어나 사랑과 희망을 더욱 느낄 수 있어 좋은 무대였다. 2. 대금과 피리를 위한 협주곡 ‘유초신지곡’_작곡 장석진 장석진 작곡의 ‘유초신지곡’은 거문고 중심의 줄풍류 ‘영산회상(靈山會上)’을 향피리 중심의 관현악곡으로 변주한 정악곡 ‘평조회상(平調會相)’을 바탕에 두고, 이 곡의 아명(雅名)인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을 작품명으로 붙인 관현악곡이다. 무대가 시작하고 놀란 것은, 서양악기가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스트링 계열 악기와 금관악기, 팀파니까지 합세하여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기대되었다. 무대는 상령산의 시작 선율인 ‘나니레-’를 시작으로 열렸다. 국악기로만 연주되던 기존의 상령산과는 달리 서양악기의 역동적이고 큰 사운드가 함께 연주되어 더욱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태평소가 염불도드리 멜로디를 연주하고 모든 악기가 tutti(다 같이 합주함)로 다 함께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 후 협연자인 대금연주자 류근화의 대금 솔로로 음악은 다시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대금은 정악의 시김새가 확연히 드러나는 선율과 대금의 바람 소리 등의 특색을 보여주었고, 그 위에 자연스레 피리 연주자 임규수의 피리가 얹어지며 두 관악기의 유초신을 그려냈다. 이때 관현악단은 대금, 피리와는 다른 유초신 곡 선율을 반주하며 이질적이면서도 한데 어우러지는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이 곡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야금이 아름다운 리프를 반복하는 선율 위에 다른 국악기들이 유초신지곡 선율을 감성적으로 연주한 부분이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역할을 나누어 주고받기도, 같은 선율을 연주하기도 하며 음악을 쌓아 올렸는데, 16비트나 엇박 등 다양한 리듬꼴을 활용하여 지루하지 않게 곡을 이끌어 나갔다. 마치 무릉도원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한 동양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신비로움을 조성했고, 그 안에 유초신, 우리 정악의 선율이 확실하게 깔아냄으로 전통의 색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대금과 피리가 독주로 연주하는 카덴자 구간에서는 서양 현악기-바이올린, 첼로, 베이스-와 특종이 함께 반주함으로 오묘한 화성 진행으로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 후 국악기가 들어오고 나서 진행된 화성이나 선율이 서양악기로 연주되었던 부분과는 극단적으로 달라 흐름이 깨지고 국악기, 서양악기가 잘 어우러지지 않는 듯 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모든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이 시대의 새로운 유초신지곡을 만들어 낸 것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관악기의 부드럽고 힘 있는 협연이 함께 연주되어 더욱 단단한 한국적인 미를 느낄 수 있었다. 3. 아쟁ㆍ가야금ㆍ목소리를 위한 협주곡 씻김(Redemption)_작곡 유민희 유민희 작곡의 ‘Redemption’은 이태백 명인이 구성한 ‘진도씻김굿’의 틀에 작곡가가 직접 채보한 이완순 무녀의 희설(진도씻김굿 가운데 무당이 부르는 노래) 중 앞부분의 선율과 장단, 박병천의 ‘남도굿거리’ 가락을 적용한 곡이다. 종교적 구원을 의미하기도 하는 작품명 ‘Redemption’은 진도씻김굿의 구체적 재현을 담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슬픔과 구원에 관한 주제를 작품 안에 담아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삶의 무게나 슬픔은 아쟁과 대금으로, 삶의 끝이 평안을 기약하는 잔치라고 말하는 부분은 소리로 표현했다. 가야금과 징의 특색있고 집중되는 단조 선율로 구성된 반복적인 리프 위에 아쟁의 진계면 선율이 덧입혀지고, 관현악단이 다 함께 힘껏 웅장한 계면조 선율을 연주함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아쟁 협연자 이태백과 가야금 협연자 이지혜는 진양 장단에 맞추어 계면조를 활용한 솔로를 연주했는데, 가야금과 아쟁이 조화롭게 빚어내는 남도제 연주에는 우리 음악의 특징적인 애환과 울림 있는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앞서 진계면이 연주되었다면 ‘남도굿거리’에서부터는 김나영 소리꾼의 소리가 덧입혀지며 신명 나는 잔치 한마당으로 우리 민족의 흥이 드러났다. 성주풀이를 비롯한 평조 선법의 연주가 진행되니 다양한 민속악적인 요소가 관현악에 붙어 더 웅장하고 한국적이었다. 또 굿거리와 타령 장단 위에 평조 선법과 반음 음계도 등장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 또한 볼 수 있었는데, 반음 루트 진행에 감성적인 느낌을 주고자 한 것은 좋았으나 조금은 익숙한 레퍼토리의 화음 진행이 전체적인 민속악 색채를 내는 곡 안에서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해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망자를 떠나보내는 슬픔과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지는 희망을 함께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던 무대였다. 4. 국악관현악 ‘풍류 그 너머에’_작곡 강상구 강상구 작곡의 ‘풍류 저 너머에’는 서도풍류, 서도민요 등 서도 지방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전통음악의 독특한 음악적 어법을 국악관현악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무대는 모든 악기가 ‘서도풍류’를 연주하며 시작되었다. 서도풍류는 대중적으로 많이 연주되지 않는 곡이기에 관현악으로 함께 연주하는 이 무대가 더욱 특별하게 와 닿았고, 서도음악 위에 대중적이고 감성적인 베이스 화성진행 리프를 덧입힌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서정적인 봉산탈춤을 연상시키는 선율로 곡이 이어졌는데, 신명 나는 장단에 맞추어 악기들이 함께 맺고, 끊고, 시김새를 표현하며 서도제의 느낌을 물씬 드러냈다. 장단은 다양하게 변화했으며 그 변화 안에 웅장한 악기들의 앙상블이 크게 돋보였다. 생황이 연주된 구간도 독특했는데, 묘한 선율과 민속악적 분위기가 어우러지며 마치 북청사자놀음을 보는 듯 동양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앞서 나온 서도민요의 선율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음악이 웅장하게 마무리되었다. 이 곡은 전반적으로 타악기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 역동적이고 장단의 역할이 뚜렷한 것은 좋았으나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이미지 가운데 서도제의 색이 갈수록 흐려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하지만 현재 많이 연주되지 않는 서도음악을 중심으로 만들어 낸 관현악곡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 너머의 세상을 잠깐이나마 바라볼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수제천’, ‘유초신지곡’, ‘진도씻김굿’, ‘서도풍류’ 라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우리의 전통음악이 국악관현악 곡으로 탈바꿈하여 대중들에게 선보여지는 순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은 기회였다. 전통은 우리가 아끼고 지켜내어 원형을 고수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전통을 현대의 흐름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발견하여 새로운 흐름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또한 중요하기에 이번 공연이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하지만 네 곡 모두 기존의 창작 관현악곡과 뚜렷하게 다른 큰 특징이 드러나지 않고, 화성진행이나 음악적 요소가 거의 익숙한 래퍼토리로만 연주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전통을 살리되 더 새롭고 다양한 시도가 가미되어 연주된다면, 전통을 비롯한 국악관현악이 더 넓게, 멀리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든 국악인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행보를 마음 깊이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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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기원 '세종 전국 국악경연대'를 개최하는 한국보훈선양예술협회한국보훈선양예술협회는 세종시(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생천길 76-7)에 10년 전 자리를 잡고 세종시 시민들에게 국악을 통해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의 공로를 기리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하여 보훈의미를 널리 알리고 있다. 통일기원 ‘세종 전국 국악경연대회’를 올해 9회째 개최하고 있다. 다가오는 6월 보혼의 달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신영숙 회장에게 12일 단체 소개와 경연대회 성과에 대해 전화 인터뷰를 하였다. Q. 한국보훈선양예술협회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보훈선양'이라는 협회 설립 목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한국보훈선양예술협회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의 공로를 기리며, 다양한 전통문화예술 행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훈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국가에 공로를 쌓고 희생하신 분들을 우리는 기억해 나가야 할 것이고 그것을 예술활동을 통해 알리고 기억시키고자 합니다. 또 본 협회가 문화예술활동에서 노력하는 부분은 우리의 전통문화예술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의 일환으로 통일기원 세종전국국악경연대회를 올해 9회째 개최하였으며 전통문화예술인들의 명맥을 잇고 젊은 예술인을 육성하는 것이 우리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K-컨텐츠의 밑거름이 되는데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Q. 올해 4월 개최된 '세종 전국 국악경연대회'는 개최 목적은 A. 통일기원 경연대회 목적은 국악발전과 보훈정신 발현입니다. · 한국전통문화예술 진흥 및 저변 확대 · 통일시대를 대비한 우수한 문화예술인 발굴과 육성 · 국가유공자 참여를 유도하여 국가관의 인식을 드높이기 위한 올바른 국가관 확립 Q. 경연대회 참가 자격은 A. 일반인과 전국 초·중·고교·대학교 재학생들은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대회는 판소리와 민요, 한국무용, 기악 등 개인전 부문과 민요·한국무용 등 단체전 부문, 민요·한국무용·기악 등 부문으로 진행됩니다. Q.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많은 참가자가 경연을 벌렸다고 하는데, 경연자 모집을 어떤 방식으로 하셨는지요 A. 이번 대회는 예선에서 코로나19로 비대면 영상심사 단심제로 진행했으며 명인·명창부, 일반부, 고ㆍ중등부, 초등부, 단체부로 나눠 열띤 경연을 펼쳤습니다. Q. 코로나 전후 경연대회 달라진 점은? A.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심사를 3년동안 진행하였는데 이리도 길게 상황이 이어질지 아무도 생각지 못했고 비대면으로 인해 현장성을 반영하기 못하는 부분에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무대 예술은 그 공간과 시간동안 많은 변수와 현장성을 발휘하여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영상에서의 제한적인 부분으로 진행하다 보니 아쉬움이 있지만 한편 장점으로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 먼 지역에서의 참가가 용이해지고 대회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이 덜해져 참가하는 예술인들에게는 보다 많은 기회제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대상을 받은 수상자는 A. 대상을 받은 서울예대 한국음악전공 한국음악단은 최무근, 박소연, 강진원, 김영윤, 여민서, 홍준서, 신승훈, 정연승, 이수빈, 장서진 학생으로 구성됐으며 이번 타악 팀을 지도한 김한복 교수는 우수지도자상을 받았습다.. Q. 역대 수상자 중 소개해주실 분은 A. 역대 수상자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분들이라 누구하나 꼽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대회에서 추구하는 바처럼 어린 새싹같은 국악인들이 해다마 늘어나고 초등부에서 중등, 중등에서 고등학교 진학까지 국악을 전공하여 다회 출연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국악을 전공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역량에 성취를 얻고 더욱 정진하게하는 촉매제를 주며 많은 국악인들을 육성하는데 이바지하는 기쁨으로 매년 대회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Q. 올해 경연대회 수상자 중 소개해주실 분은 A. 올해 수상자 중 중고등부 종합대상으로 교육부 장관상을 받은 김세빈 학생입니다. 일반부, 명인명창부의 훌륭한 참가자와 수상자 분들이 계시지만 모두 직업으로 국악을 하고 국악계에 많은 역량을 펼치고 계시고 학생부는 아직 그 역량을 국악계에 펼치기 전이라 이번 수상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처음 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김세빈 학생도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느껴져 감사하고 이 수상을 자신감의 기반으로 삼아 앞으로 더 정진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가졌습니다. 저희 또한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발전하는 예술인이 되기를 바라며 꼽았습니다. Q. 한국보훈선양 예술협회에서 보훈의 날이나 국경일에 기념 행사를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 가장 기억나는 3·1절 기념음악회는 A. 2017년 한국보훈선양예술협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세종국악원이 후원하는 3·1절 만세운동 기념음악회가 오는 3월1일 세종시 전동면 아람달 농촌 체험관에서 개최했습니다. 이날 음악회에는 대구 달구벌국악관현악단 등이 출연, 비틀즈 모음곡, 민요, 국악가요, 대중가요 등을 선보였습니다. 한국보훈선양예술협회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의 공로를 기리며, 다양한 국악 행사와 '통일기원 세종전국국악경연대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훈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내년이면 경연대회가 10년이 된다. 앞으로 '통일기원'이라는 목적을 구현하는 이 단체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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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 '아리랑'을 심은 두 주역을 만나다지난 4월 22일, ‘아리랑’을 주제로 부다페스트의 복합문화공간(Magvető Café)에서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 강연은 해외문화홍보원(KOCIS, 원장 김장호)과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원장 인숙진, 이하 문화원)은 '코리아 살롱 1.5' 라는 제목으로 총 4회에 걸쳐 진행되는 인문 예술 강좌 중 첫 번째 회차이다. 강연에는 45년의 역사를 지닌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자 ‘아리랑의 연구자’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김연갑 선생이 강연자로 나서, ‘아리랑은 한국의 창窓’이라는 주제로, 아리랑의 역사와 세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위상, 해외 전파와 디아스포라 아리랑, 민요에서 모든 장르로 확산된 문화로서의 아리랑, 그리고 한류의 원류로서의 아리랑의 의미 등을 정치, 외교, 문화예술 영역의 역사적 사건과 함께 풀어갔다. 강연 후에는 민요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음악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음악집단 ‘민요밴드 bob(비오비)’의 공연으로 현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헝가리에서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5월의 초입, 강연자 김연갑 이사장님과 민요밴드 bob를 함께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얼마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국악을 널리 알리고 오신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헝가리에서 아리랑에 관해 강연을 맡아주신 김연갑 이사장님께 질문드릴게요. 이사장님께선 옛날부터 아리랑의 보편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 오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 외국인 대상의 강연은 이번이 몇 번째였나요? A. 한러수교 직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구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주최의 아리랑 행사로부터, 일본, 중국, 사할린, 그리고 이번 헝가리까지, 이렇게 다섯곳에서 강연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중국, 사할린은 청중이 대부분 교민이어서 통역 없이 했는데, 레닌그라드와 헝가리는 통역을 통해 했습니다. 이 두 곳은 부담이 컸습니다. 아리랑은 우리 현대사와 식민지 상황, 그리고 남북 분단 체재 등을 이해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통역을 통한 강연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번 헝가리 행사로 이를 더욱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에 대해 책임감과 함께 대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는 민요에서 모티브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민요밴드 bob그룹 여러분께 질문드릴게요. 대중적이면서도 한국적인 bob그룹의 헝가리 공연 반응이 참 뜨거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마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A. 헝가리의 원어가 아닌 우리 오리지널 민요를 보여드렸기에, 헝가리 대중분들에게 이 음악이 잘 와닿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었어요. 하지만 역시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는 걸 다시금 느끼고 온 공연이었습니다. 관객분들 모두 음악에 집중하여 귀 기울여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놀랐고, 큰 에너지를 받고 왔습니다. 관객분들이 음악에 임하는 자세가 매우 진지했어요. 매너가 참 좋으셔서 오히려 연주자로서 감동하였던 시간이었습니다. 타국의 민요와 전통음악이 외국인분들이 받아들이고 해석하기에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음악. 우리의 전통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Q. 김연갑 이사장님께서 진행하신 아리랑 강연의 반응도 참 좋았다고 들었는데요, 옛날과 비교했을 때 해외에서의 우리 국악과 아리랑에 대한 입지 변화가 있나요? A. 당연히 차이가 있지요. 2000년 이전만 해도 외국에서의 반응은 6.25 전쟁과 관련한 아픈 사연을 연관 지어 말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아리랑이 나오는 록허드슨 주연의 ‘Battle Hymn’(전송가)같은 영화를 본 세대들이 많았으니까요. 이 반대 현상은 베트남의 경우지요. 파월 장병들의 위문공연 등을 통해 아리랑이 월남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88올림픽 경기와 월드컵 대회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통해서 한국의 위상을 아리랑이 대신하게 되었어요. 특히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등재 이후 유럽에서는 아리랑을 ‘탁월한 보편성’을 지닌 노래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 분명하게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Q. 이사장님께서 아리랑을 널리 알리고자 하시는 이유와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A. 아리랑은 한국인의 창조 정신을 입증하는 노래입니다. 90여 종에 1만 3천여 수의 노랫말을 가진 민족공동체 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근대사 속에서의 기능 또한 특별합니다. 민중적 비애와 한(恨)에 의한 비극적 정조(情調)의 수렴제로, 권력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저항적 민중 의지의 발현체로, 고통과 모순을 극복한 미래 의식의 추동체로, 상상되고 가치화 되어 불리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리랑은 식민지를 거친 나라나 남북 분단과 같은 분열 상태에 있는 민족공동체에는 보편적 가치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본조아리랑 같은 경우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변용이 가능하여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치와 특성을 세계인들과 함께하고자 해서입니다. Q. 이사장님의 끊임없는 노력만큼 아리랑이 앞으로도 더욱 위상을 떨쳐 세계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bob그룹이 이번 헝가리 공연을 위해 준비하셨던 레퍼토리는 어떤 것이었나요? A. 이번 헝가리 공연에서는 전통민요 아리랑을 비롯하여 전통/창작을 구분 지어 소개해 드렸어요. 원래 저희 팀은 창작음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공연을 계기로 전통민요를 근간으로 만든 작품활동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평창아리랑과 본조아리랑을 공연했고, 음성군에서 전해지는 토속민요를 가지고 편곡한 ‘깨끼저고리’를 연주했습니다. 또 밴드식으로 편곡한 ‘경복궁타령’, ‘한오백년’을 모티브로 재즈 편곡한 기악곡 ‘섬머타임(Summer time)’을 선보였어요. 그리고 K-POP 가수 태연의 ‘아이’를 편곡한 곡과 민요 ‘권주가’를 모티브로 한 ‘주술’이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닐리리야’까지 연주함으로 헝가리 대중분들과 음악으로 즐겁게 소통했습니다. Q. 외국인을 대상으로 토속민요를 활용한 음악도 하신 게 신기합니다. 토속민요는 통속민요와 달리 잘 기록되고 전해지고 있지 않아 편곡에 어려움을 느끼셨을 법한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나요? A. 토속민요 ‘깨끼저고리’의 경우에 음성군에서 구전으로 전래되는 민요를 복원해서, 민요의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는 '후렴구'를 가지고 작업했어요. 정확한 선율이나 리듬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시집살이 애환을 담고 있는 가사가 남아있어서, 시집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토속민요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게 확실히 어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대중분들께 친숙하게 우리 토속민요를 들려드리기 위해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답니다. Q. 민요를 중심으로 두고 작업할 때 가장 염두에 두고 작업하시는 건 어떤 부분인가요? A. 기존에는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민요가 갖고 있는 특유의 느낌을 전해주려고 노력했었어요. 그리고 요즈음은 민요에서 모티브만 따 와서 새로운 가사를 창작하고, 다양한 변화를 통해 현대인들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방향으로 작업을 해 나가고 있어요. 음악적인 코드나 선율 등의 경우도 모두 함께 회의하며 발전시키고,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Q. 전통음악을 중심에 두고 서양악기로 음악을 만들어 나가며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A. (드럼) 장단이나 리듬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녹여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드럼세트에 꽹과리를 얹는다든지, 다른 창작국악팀은 어떻게 장단을 사용하는지 항상 살펴보며 공부하고, 음악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기본 장단 외 변형 장단까지도 살펴보며 장단을 활용하기도 하고요. 제가 국악 전공이 아니다 보니 조금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은, 무엇보다 민요. 소리에 리듬을 자연스레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금) 저희가 처음 모였을 때는 실용음악의 칼박에 맞추는 리듬과 국악에서 맞추어 나가는 호흡이 조금 안 맞아 합주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계속 함께 음악을 하다 보니 서로 듣고 호흡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서로의 소리를 알고 이해하다 보니 우리만의 호흡이 생겼달까요? (건반) 코드 진행 같은 경우 무엇보다 민요에 너무 많은 코드의 변화를 넣을 때 원곡을 헤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대중적이면서도 깔끔한 코드 진행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특징적인 섹션이나 실용음악적인 색을 자연스레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전통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Q. 이번 공연에서 헝가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bob그룹의 음악적 고민이 궁금합니다. 우리 아리랑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셨나요? A. 사실 처음에는, 한국의 아리랑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오자는 취지가 가장 컸어요. 우리 민요와 전통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공연을 가서 함께 아리랑 강연을 듣고 공연하다 보니, 그저 아리랑과 우리 전통음악을 기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한국의 전통음악을 매개로 그들의 마음 안에 어떠한 위로와 정서를 남기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음악만이 가진 애환이나 흥과 신명 등의 특징적인 정서를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참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젊은 창작 국악팀으로서, 어떤 가치를 두고 음악을 만들어 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bob그룹은 어떤 음악을 하는 팀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A. 저희는 민요를 중심으로 두고 음악을 하는 팀이기에, 아무래도 ‘민요’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민요는 옛날 대중들의 음악이잖아요. 그 당시의 대중음악을 지금도 대중들에게 편하게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어디서든 흘러나오는 K-POP이나 클래식처럼 저희의 음악도 어디서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 전통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언젠간 대중분들도 참 편하게 좋아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들었을 때 좋은 음악. 무엇보다 이걸 가장 많이 추구하는 것 같아요. 사실 대중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게 저희의 꿈이자 목표에요. 저희의 음악이 국악이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그냥 하나의 ‘음악’으로 인식되어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편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저희가 연주하면서도 신나고, 편하고 즐거운 게 먼저겠죠? 늘 저희가 즐겁고 좋은 음악을 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모두가 좋아하는 음악을 오래오래 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bob그룹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이번 헝가리 공연을 계기로 해외 공연을 조금 더 가려고 많이 알아보고 있습니다. 외국의 대중들에게 우리 전통음악을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또 늘 저희가 음악 작업을 하며 깰 수 없었던 틀이 있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대중적인 음악’만 고려하지 않고, 진짜 대중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더 많이 듣고 공부하며 bob만의 음악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새로운 작·편곡 방향을 시도하며 앨범 발매도 할 예정이니,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이사장님의 앞으로 계획과 준비하시는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사할린아리랑제’를 3년간 하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것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가 다시 할 수 있으려나 했지만, 또다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중공연을 하지 못하게 되어 올해에도 못 갈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네요. 또 2012년 중국과의 아리랑 갈등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어 가장 긴밀했던 연변 교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를 복원하는 일이 급합니다. 마지막은 코로나 이전 9회까지 해 온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중단되어 크라운 해태와 논의를 통해 재개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마음은 너무나 바쁜데 지난 10월에 코로나를 앓은 후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걱정입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다시 준비하며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김연갑 이사장님의 오랜 세월 아리랑을 향한 사랑이 보여주는 뜨거운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져감을 공감했고, 그러한 단심이 이번 헝가리 행사에서도 빛을 발했다고 본다. bob그룹과 인터뷰하는 내내 느낀 것은, 무엇보다 이들의 팀 분위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서로를 허물없이 편하게 대하며 음악적인 것들을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공유했다는 것이 모두의 대화에서 드러났고, 함께 더 즐겁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명맥을 더 널리 이어 나갈 김연갑 이사장님, 국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악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좋은 음악’ 그 자체를 대중들에게 더 많이 들려주고 싶다는 bob그룹, 앞으로 보여줄 그들의 멋진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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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희국악예술단, '2023하동세계차엑스 대한민국 명창대전' 개최한다지난 4일 1,200년 역사를 이어온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 하동에서 '세계 차 엑스포'가 개막했다. 하동야생차박물관 및 하동스포츠파크 일원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한달동안 개최된다. 하동군과 '손양희국악예술단'은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한다. 명칭은 '하동세계차엑스 대한민국 명창대전'(05.11-12.)과 '하동세계차엑스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05.27.)을 개최한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은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를 맡고 창원 지역을 비롯해 경상남도와 타 시도의 축제, 기념비적인 행사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9년부터 창원어린이국악단,'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단장과 지회장을 손양희 단장이 맡고 있다. 특히 25년째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25년 구독자인 손양희국악예술단의 활동과 전국국악경연대회 진행에 대해서 국악신문 기미양 객원기자가 손양희국악예술단 손양희단장을 한달동안 전화와 방문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손양희 국악예술단 설립목적과 전승활동 Q. 손양희 국악 예술단 설립 목적은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민족예술의 정수 국악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몸으로 느끼고 배우며, 나아가 우리 음악을 이끌어갈 전문 국악인의 밑거름인 차세대 명창과 명인들을 육성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Q.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언제 조직되었나요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창원에서 1996년 제1회 창원 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를 주관하면서부터 조직되었다. Q. 손양희국악예술단 소개해주세요.. 설립 목적, 전승활동, 회원수.전승활동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1995년 손양희국악교습소로 시작하여, 2007년 손양희국악예술단으로 거듭났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자체 기획공연과 시, 도, 국가 공모사업을 기본으로 실행하면서, 각 시군의 축제나 국가 공식 기념일 행사에 초청을 받고 전국 순회공연을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을 비롯 미국, 유럽 등 20여개국 해외 순회공연을 하며 폭넓게 공연 활동을 하는 전문 국악공연단체이다. 또한 후진양성과 계승발전을 위해 규칙적인 전승교육 활동에도 30여 년간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올해로 26회차가 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통해, 인재 양성발굴에 핵심 사업 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예술단체이다. 회원은 100여 명과 예술단원은 25여 명이 활동한다 Q. 초대회장, 역대회장은? A. 초대 대회회장은 1996년 당시 창원국악협회장이셨던 故 박미숙선생을 필두로 노키아티엠씨 이재욱 회장, 공민배 전창원시장, 현, ㈜부경 김찬모회장으로 연결되어 국악발전에 도움을 주고 계신다. 26년이 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Q. 1996년 제1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가 올해는 26회가 되는데, 언제부터 손양희 회장이 이어오고 계시나요 A. 1996년 제1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창원 국악협회장의 별세로 존립의 기로에 선 국악경연대회를, 2년 지난 1998년 제2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25살밖에 안된 제가 맡아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작년 11월까지 제25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초반기 국악 불모지 창원에서 이 국악경연대회를 알리기 시작할 때, 국악신문 김호규 사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Q.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가 올해 26년 돐을 맞이하는데, 자랑 좀 해주세요. A.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는 창원이 공업도시라, 예술 장르 특히 국악 분야는 아직도 열악한 편이다. 하여 고른 발전을 꾀하며 종합대회를 유치했다. 종합대상은 국회의장상이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교육부장관상, 도지사상, 창원시장상, 도교육감상, 시교육장상 등 판소리, 기악, 민요.가야금병창, 무용, 풍물... 5개부문을 각파트에 5분의 권위있는 심사위원을 모시며 투명한 대회를 만들어 왔다. 그 결과 문화관광부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평가에서 작년(2022년)은 B+ 등급과 그 3년 전에는 A등급을 받아 공명정대하고 내실있는 우수대회로 평가받았다. Q.최근 서울에서 하동차엑스포 알리기 행사를 했는데..오셨나요? 특별한 행사가 있었나요 A. 그날 행사가 이미 잡혀 있어서 참석못했다. 특히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유명한 국민배우 ‘국민 아버지’ 최불암 씨를 행사 중 2023하동세계차엑스포 명예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뜻깊은 위촉식도 가졌다는 소식을 방송을 통해 들었다. '2023하동차엑스포'와 '2023하동차엑스포 대한민국 명창대전' Q. '2023하동차엑스포' 소개해주세요. A. 산수가 아름답고 인심 좋은 하동... 1,200년 역사를 이어온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 하동이지요. 하동야생차박물관 및 하동스포츠파크 일원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2023하동세계차엑스포가 개최된다. Q. 전국에서 산수가 아름답가로 유명한 하동의 유래에 대해 자랑 좀 해주세요. A.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은 하동의 아름다움을 ‘호중별천(壺中別天)’으로 표현하며 ‘동쪽 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신선이 옥베개를 밀치니 순식간에 천년이 되었네’라고 극찬했다. 천년이 지난 오늘날 바로 세계적 차(茶)의 주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Q. 이번 손양희국악예술단에서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개최하는 국악경창대회 취지는 A.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23 대한민국 명창대전'과 '2023 전국청소 년국악경연대회'을 개최한다. 이는 세계가 주목하는 엑스포장에는 신명나고도 우수한 우리 전통음악인 풍악이 빠질 수 없으므로, 단순한 경연대회가 아닌, 축하공연 같은 경연대회를 통해 우리음악의 신명, 전통성을 하동을 찾은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함으로 엑스포장을 더욱더 활기차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꾀한다. 손양희 명창 국악계 입문과 국악활동 Q.국악계 입문은 어떤 계기로 언제 들어오셨는지요. 스승은? A. 부산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3년에 한국무용에 입문하였고, 초등학생때부터 노래를 잘 부른다고 인정 받아, 합창부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한국무용에도 두각을 나타내며 열심히 하였으나, 고2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유한 가세가 기울자, 9년 동안 받아온 무용교습은 포기해야 해서 절망적이였다. 그런데 그즈음 한국국악협회 창원지부에서 판소리 무료 강습회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찾아가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판소리가 나를 다시 소생시켰다. 故 선동옥 선생님(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입문하여 지금껏 소릿꾼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故 선동옥(수궁가), 故 이명희(흥보가,춘향가), 故 한갑주(적벽가), 성준숙(심청가)선생님들께 이수를 받았다. 2008년 12월에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 9호 판소리 '수궁가' 전수조교로 지정되었다. Q.손양희 선생님 전국경연대회에서 상을 많이 타셨는데, 가장 큰 상을 받은 때는 언제인가요 A. 2017년 판소리 입문 32년만에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5년 제16회 대구 국악제에서 판소리 부문에 참가하여 종합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후 12년만에 받은 상이다. 이때 가장 공력을 많이 들였을 때, 받은 상이다. Q. 창원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악단체로 손꼽히는 손양희국악예술단 자랑 좀 해주세요. A. 국악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의 학부 출신 또는 재학생을 회원이 많다. 그만큼 젊고 활력 넘치는 전문 국악단체이다.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김선희, 타악과 풍물로 전국 국악 경연 대회에서 종합 대상인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송기혁, 가야금 전공의 김수아 등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부터 겨울방학 여름방학 기간 ‘2008 국악학교’를 개설하여 창원과 주변 국악인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지속해오고 있다. 그래서 창원은 물론 경남에서는 널리 알려진 국악단체이다. Q. 가장 뜻깊고 추억에 남는 공연은 A. 2003년 10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기이자 여류 문인으로 꼽히는 황진이를 소재로 한 창극 '황진이'를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국립 창극단 수석 단원 등 주요 출연진과 연출, 시나리오, 음악 등 주요 제작진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주인공은 창원 지역의 소리꾼을 대표하여 제가 황진이 역을 맡았죠.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가 제작한 최초의 경상남도 지역 창극이었다. 2006년에는 창원 성산 아트홀 소극장에서 '제2회 손양희 판소리 '수궁가' 완창 발표회'를 가졌다. 2009년 창극 '토끼야 수궁가자' 에서 창원에서 연출자를 구하지 못해서 연출과 주인공을 맡았다. '황진이' 역과 '별주부'역을 맡은 때가 저희 소리에 대한 정열을 태웠던 시절인가 보다. 수궁가 완창발표회가 큰 동력이 되었다. 이후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Q. 기억에 남는 해외공연은 A. 2011년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왓에서 한국의 아리랑 콘서트’를 공연하였다. 우리가 갔던 곳은 캄보디아의 우리나라의 불교인 조계종이 세운 고아원 겸 보육시설 '아름다운나라'이다. 그해 여름 창원어린이국악단 14명의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지리산 산공부(합숙) 대신, 봉사 차원으로 15일 일정으로 갔다. 원장님은 조계종의 스님이셨고, 직원들도 한국분들이 고생하고 계시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우리는 캄보디아 학생들과 교류 및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풍물과 민요를 가르키며 함께 공부하고 신나게 뛰어 놀았다. 우리 창원어린이국악단 학생들이 신명나는 공연도 선보여주는 등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신명을 잘 전달하고 왔다. 이는 학생들에게 봉사하는 마음과 우리 국악의 뿌듯한 자긍심을 가지게 했던 큰 계기로 기억된다. 양명창은 어려운 청년기, 국악에 입문하면서 판소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일찌기 20대 중반에 제2회 창원전국악경창대회를 맡으면서 국악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대구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명실공히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가무악에 타고난 재능으로 판소리·풍물·전통무용 등을 섭렵하고 공연 연출까지 해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초창기 2003년 뮤직컬 형식 창극 작품을 맡았지만 창원에서 국악 분야 연출자를 찾지 못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의 전승활동 Q. 하동 출신으로 유명한 국악인 누구신가요 A. 여러분이 계셨지만, 손꼽히는 두분을 소개합니다. 하동 악양에 '명창 유성준, 이선유 판소리 기념관'이 있는데, 유성준(1873~1949)명창은 판소리 근대 5대명창중의 ‘동편제의 제왕’으로 불리어졌으며, 하동 악양면 신대마을에서 활동하시다 세상을 떠나시고, 이선유(1873~1949) 명창은 송우룡 명창과 김세종 명창에게 사사했고, 최초로 판소리 다섯마당 창본 '오가전집'을 펴냈으며 진주권번의 소리사범으로 활동하셨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두 분의 명창이 하동을 기점으로 폭넓게 활동을 하셨고, 이 두 분을 기리는 판소리 기념관이 하동 악약면 있으며, 판소리 전승발전을 위해 중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Q.그동안 창원에서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A. 첫째로는 판소리를 30여년간 후학을 가르키며 차세대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체 기획공연 및 타 지역 축제 기념비적인 행사이 공연과 시, 도, 국가의 다양한 공모사 업 지원 및 선정으로 경남을 비롯하여 국내외 등 수 많은 순회공연을 하였고, 26년째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며 인재 발굴과 대중화에 힘쓰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Q. 가장 좋아하시는 민요는 A. 우리의 민요는 웬만하면 다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육자백이', '흥타령'을 특히 좋아한다. 구성지면서 질펀한 우리네 삶이 녹아있어 절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Q.한국국악협회 창원시지부, 하동지부와 같이 국악활동을 하시나요 A. 초창기 한국국악협회 창원지부 창단 맴버였으나, 현재는 협회 활동은 하지 않고, 개인적이지만 공적인 일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국악협회 하동지부는 풍물놀이, 판소리, 한국무용 등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국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저변을 확대하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Q. 하동에는 어떤 축제가 있나요. 그 축제에서 판소리를 많이 알리고 계시죠 A. 하동 송림 백사장과 섬진교에서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및 다리밟기 행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먹점마을에서 산골 매실 매화 축제, 제17회 화개장터 벚꽃 축제, 하동군민의 날 기념식, 새해맞이 공연, 하동 야생차 문화 축제 등에 초청 받아서 판소리를 알리고 있다. Q.코로나 3년간 경창대회 치루시면서 힘드신 부분은 A.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방법에 처음에는 우왕좌왕 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고 큰 어려움 없이 대회를 치뤘다.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가 참가해주었다. Q. 20대 중반부터 쉬지않고 30여 년이 넘게 공적 국악활동 단체를 이끄시면서 힘드셨던 점, 보람이 되신 점은 A. 국악단체를 이끌어 간다는게 다른 단체도 그렇겠지만, 경제적으로 녹녹치 않아 어려움도 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단원들과 더불어 함께 하면서 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아서 슬기롭게 해결하며 걸어 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지역에서 후원자들도 차츰 생겨나면서 공고히 자리를 잡아가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Q. 국악발전을 위해 한 말씀하신다면. A. 우리 경남에는 대학에 국악과도 없고, 시립.도립 국악예술단체도 없다 보니, 국악발전에 악순환이 되고 있다. 특히 영남민요는 동부민요로 몰아가서 딱히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서울까지 가서 경기민요를 배워서 이수증을 받고 학원간판을 내걸고 있다. 이렇게 국악발전이 타 시.도에 비해 열악한 현실을 못 벗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회원들과 창원시립 또는 도립국악단 창단을 희망하며 오늘도 묵묵히 걸어 간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의 전승활동을 통해 경상남도 창원 지역 국악 발전의 현황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올해 26회를 맞이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통해 국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뒤에는 손양희국악예술단의 노력이 숨어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 받아서 이번 하동군과 함께 하동차엑스포 대한민국 국악명창대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가 된다. 손양희 2012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후보. 2003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한승호 '적벽가' 사사. 2005 대구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 이명희 '흥보가' 사사 2020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성준숙 '심청가' 사사 경상남도판소리보존회장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총집행위원장(26회) 경상남도무형문화재 판소리전수관 외 다수 출강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 대표 (2016~2022) 동국대학교(한국음악과-판소리) 외래교수 (2005~2008) 마산창신대학교(음악과-판소리) 외래교수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판소리 학사 및 석사 졸업 2017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2016 제24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6 제25회 땅끝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인부 대상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 2016 제19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명창부 우수상 '전남도지사상' 2015 제3회 미주 한국국악경연대회 '지도자상' 2006 제16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종합대상 국무총리상' 2005 제2회 DELPHIC GAMES(문화올림픽) 한국대표(판소리) '단체우수상' 수상(말레이시아 쿠첸) 2003 제21회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명창부 최우수상 '전남도지사상' 2000 제2회 여수 전남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명창부 '우수상' 2000 제18회 광주특장부문 판소리전국대회 특장부 '우수상' 1995 제6회 대구 전국국악제 '금상' 1989 제8회 창원 고향의 봄 축제 전국민요경창대회 '장원' 1985 제30회 부산 영남무용제 '최우수상' 1979 제1회 영남지구 무용콩쿨 '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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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글서예가회 ‘이즘’, 제3회 전시회 폐막지난 2일 전통에 기반 한, 한글서예의 새로운 발 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창립된 한글서예가회 ‘이즘’이 세 번째 전시회를 인사동 KOTE에서 마첬다. 31명의 회원들의 참여로 한글서예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기획전이었다. 참여 작가는 50대 8명, 60대 12명, 70대 11명이다. 이는 현재 한글서예계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구자송 김광희 김두경 김문희 김선숙 김진태 류시혁 문제명 문영희 박경희 박병옥 박정숙 서복희 서혜경 신명숙 유혜선 은성옥 이병도 이성숙 이정옥 이종선 장용남 정복동 정영필 조주연 조현판 최미연 최민열 최재연 한소윤 홍영숙 이종선 회장은 27일 개막식 인사말에서 "한글서예는 문자 구조상의 조형적 한계를 지니고 있고, 서예로서의 역사도 길지 않지만, 변화의 여지를 갖고 다양한 형태의 변모가 시도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변화의 시도에 앞서 전통에 대한 천착”을 강조하기도 했다. 개막식에는 서예계, 전각계, 언론계 원로들이 참가하여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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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이 들려주는 하나의 수궁가 ‘절창 1’국립창극단은 이 시대 젊은 소리꾼의 참신한 소리판을 선보이기 위해 2021년부터 ‘절창 시리즈‘를 기획하여 선보였다. ’절창‘은 우리 소리의 전통을 이어 가면서 참신한 구성과 현대적인 무대를 통해 소리꾼들이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치며, 관객들과 더욱 친밀하게 교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 공연이다. 올해는 총 세무대로 나뉘어 진행되며, ‘절창Ⅰ’에서는 소리꾼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절창Ⅱ’에서는 민은경과 이소연이, ‘절창Ⅲ’에서는 안이호와 이광복이 각각 무대를 맡아 2인극 형식으로 무대를 꾸린다. 4월 27일 목요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의 김준수와 유태평양의 ‘절창Ⅰ’을 시작으로 ‘절창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국립창극단의 단원이면서 막역한 친분을 보여 온 두 소리꾼이 만들어 낸 이 무대에서는 이들의 ‘수궁가’를 들을 수 있었다. 수궁가는 현존하는 판소리 중 유일한 우화로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작품이며, 두 소리꾼 모두 수궁가 완창 경험이 있기에 이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짜임새 있고 새로운 수궁가는 어떨지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수궁가의 유명한 하이라이트 부분만 모아 구성한 이번 무대는 빠른 이야기의 진행과 유쾌하고 흥미로운 연출로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여 무대를 즐길 수 있게 꾸며졌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역할에 따라 소리를 나누어 부르는 분창(分唱)에서 벗어나 판소리 장단에 맞춰 가사를 주고받거나 등장인물을 번갈아 넘나들며 역할을 맡아 부르고, 연극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보여주며 무대를 채워나갔다. 이 무대를 연출한 남인우 연출가에 의하면, ‘전통 판소리의 동시대성을 어떻게 극장에서 구현하느냐’에 중점을 두며 구성한 2021년 ‘절창Ⅰ’에서 고민에서 더 나아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더욱 성숙해진 두 소리꾼의 면면이 잘 보이도록 작품을 전반적으로 보완했다고 한다. 소리꾼의 발림(판소리에서 창자가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손·발·온몸을 움직여 소리나 이야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청각적 상상력이 시각적 상상력으로 전환됨을 활용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무대에서 여실히 잘 드러났다. 자라와 토끼, 각종 동물을 흉내 내 연기하고, 노래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마치 극 중 모든 동물들이 눈앞에서 대화하는 듯 생동감이 넘쳤다. 특히 이들의 표정 연기와 몸짓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주었는데, 쫓아가고, 쫓기고, 쓰러지고 깡충깡충 뛰는 등의 다양한 몸짓을 통해 더더욱 소리와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판소리에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특히 수궁가는 동물들이 주인공이 되어 육지와 바다를 넘나들고, 장면이 다양하게 전환되어 이야기적 요소가 매우 크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전달해 주기 위해 중간중간 유머를 곁들이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며 소통하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소리 대목의 경우 소리를 하기 전에 그 대목과 장면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별주부가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용궁으로 들어갈 때 풍경의 아름다움을 부른 ‘범피중류’를 부르기 전 관객들에게 천천히 그 가사를 읊어주며 소리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쉽게 와닿을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관객들은 소리를 듣기 전 가사를 천천히 음미하며 더욱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경드름’에 대해 설명할 때는,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리가 불리던 시대와 그 느낌, 부르는 방식까지 찬찬히 설명해 주니 판소리를 어렵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대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소리 중간중간 계속하여 소리와는 관계없는 설명이나 이야기를 하느라 수궁가 자체의 이야기 흐름이 끊기는 것은 아쉬웠다. 관객과의 소통은 좋았으나 이야기의 맥이 끊긴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점이 조금 보완된다면 다음 절창 무대에서는 더욱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악기 반주로는 계속해서 소리를 반주해 주는 고수의 북, 거문고, 피리(생황, 태평소), 타악기가 사용되었다. 소리의 적재적소에 악기가 덧입혀짐으로 수궁가의 희로애락과 감성, 유쾌한 감정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태평양이 유쾌하게 ‘별주부 호생원 부르는 대목’을 부른 후, 김준수가 등장하며 호랑이가 위엄있게 등장하는 대목인 ‘범 내려온다’를 부르며 등장할 때는 태평소의 우렁찬 소리와 힘 있는 타악기의 타점이 어우러지며 좌중을 압도했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생황 선율과 평온한 파도 소리 위에 얹힌 ‘범피중류’는 바다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생황은 특히 무대의 처음과 끝에 밝고 웅장한 주제선율을 연주하며 두 소리꾼의 따뜻하고 즐거운 공연을 성황리에 시작하고 끝낼 수 있도록 해 주어 무대가 더욱 빛났으며, 다른 서양악기 없이 최소한의 국악기로만 사용되었기에 더욱 판소리 자체에 집중하면서도 한국적이고 다채로운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 소리꾼의 이야기와 음악을 넘어 가장 좋았던 건 역시나 ‘소리’ 그 자체였다. 각기 다른 음색과 특징을 소유하고 있는 두 명의 소리꾼이 부르는 서로 다른 소리를 통해 그 힘과 매력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두 소리꾼이 하나 되어 화합된 무대를 꾸려나가는 것 또한 의미 있었다. 소리와 더불어 두 소리꾼의 우정과 화합, 하나 되는 호흡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두 명이 꾸려나가는 소리 ‘절창’의 큰 매력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관객들은 무대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수궁가의 등장인물을 통해, 두 명의 소리꾼을 통해함께 웃고 울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고,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을 향한 박수갈채는 끝날 줄 몰랐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수궁가를 통하여 인생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판소리의 진짜 멋을 선보이며, 힘들고 지치는 날 안에서도 웃을 수 있는 쉼을 선사한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는 토끼처럼, 첩첩산중 가운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며 힘을 전해주었던 편안하고 쉼이 된 공연 ‘절창Ⅰ’. 누군가가 이들의 판소리를 통해 얻었을,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간을 넘어설 힘을 응원하며, 두 소리꾼이 앞으로 보여줄 가치 있고 깊이 있는 무대를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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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하는 송파산대놀이, 보러가자29일 토요일, 오후 3시 제58회 송파산대놀이 정기공연이 개최되는 서울놀이전수관을 찾았다. 반가운 봄비가 소슬소슬 내리는 가운데 둥근 돔 모양의 천막으로 친 마당에서 신명나는 탈춤판이 벌어졌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앞 줄에 자리를 잡고 박경래 송파구청장, 김웅 국회의원, 정창래 송파구의회의장을 비롯한 김광철, 장종례, 이강무, 전 정 의원이 참석해서 2시간이 넘는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탈과 탈춤의 기원은 원시 수렵과 어로생활에서 동물탈을 쓰고 위장하여 사냥의 성과를 올리는 한편, 사냥 성공을 기원하며 탈춤을 추거나 그 염원을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 서울경기에서는 '산대놀이' 혹은 별산대놀이, 황해도 지역에서는 '탈춤' 도는 '놀탈', 강원도 지역에서는 '탈놀이'로 경상도에서는 '들놀음', '오광대', '탈놀이', '별신굿놀이'라는 명칭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송파산대놀이는 약 250여 년 전부터 송파진, 현재 잠실 석촌호수 남쪽 주변,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한강 줄기 주변에 서던 송파장을 중심으로 연희되어 온 산대탈놀음이다. 1973년 1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산대놀이는 구파발, 애오개(阿峴), 사직, 녹번, 노들(露梁津) 등지에 전승 되었으나 모두 소멸되었다. 현재는 경기도 양주와 서울의 송파지역만이 전승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퇴계원산대놀이가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22년 ‘한국의 탈춤’ 18종이 유네스코 인류뮤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병옥 교수에 의하면 "송파산대놀이는 오늘 보여주는 탈놀음 12마당이 온전히 전승되고 있으며, 탈 32개가 되는 산대도감 탈들이 거의 보존되어 있어 비교적 고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연희 순서는 먼저 산대놀이 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며 탈춤을 추면서 길놀이로 마을과 장터를 돌아와 탈을 벗어 고사상 앞에 놓고 탈고사를 지낸 다음 12마당을 진행한다. 기미양 객원기자가 당일 행사장에서 이병옥 명예보유자에게 송파산대놀이의 전승주체 및 연행과 예술성에 대해 살펴보았다.(편집자 주) Q. 송파산대놀이 유래 및 역사는 A. 조선시대에는 산대도감(山臺都監)에서 국가적 행사를 담당하여 산대도감놀이가 성행하였다. 산대도감 폐지 후 산대놀이패들이 처음에는 애오개(현재 서대문구 아현동 일대)에 본거지를 두고 민간인들을 상대로 탈춤을 추었기 때문에 이것을 ‘본산대(本山臺)’라고 하였으나, 점차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가 사직골, 녹번, 구파발, 노들(노량진)에서 전승되다가 소멸되었고, 지금은 그 맥을 이은 송파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 퇴계원산대놀이만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송파진은 전국 15대 향시(鄕市) 중의 으뜸인 상역지로 강원도의 뗏목상인과 삼남지역의 마행상과 보부상들이 몰려들어 270여개의 객주집이 성행한 장터였다. 연희형태는 춤이 주가 되고 시대상을 풍자하는 재담과 창 등 여러 가지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파장은 270호의 객주가 성업을 이루어 산대놀이가 성행하였으나 을축년(1925) 한강 대홍수로 송파장과 마을 전체가 유실되어 신송파로 물러나면서 자연히 산대놀이도 시들해졌다. 그 후 송파산대놀이는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신송파 옛 장터에서 전수하다가, 1985년 잠실 석촌호수 공원 안에 송파산대놀이 전수관과 서울놀이마당을 건립하여 전승되고 있습니다. Q. 송파산대놀이라는 명칭에서 '산대'라는 명칭은 A. 서울, 경기지방에서 전승되는 탈춤을 산대(山臺)놀이라고 부르며, 현재는 양주와 송파 두 지역의 '산대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산대(山臺)라는 명칭은 일명 채산(彩山), 채붕(綵棚)이라는 가설무대로서 주로 궁중에 설치하였습니다. 송파산대놀이처럼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성행한 ‘가면극’에 ‘산대놀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산대놀이의 ‘산대’가 뫼 산(山) 자에 무대 대(臺)자로 이뤄진 것과 같이 ‘산과 같이 큰 무대’, ‘비단으로 장식된 무대’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놀이가 열린다’라는 깃발을 들고 돌지만 예전에는 산대놀이를 앞두고 조금 큼직하게 만든 우마차 위에 얇은 판을 깎아 산 형상을 층층으로 올려 만든 ‘산대’를 끌고 다니며 연희 구경을 오라고 알렸다고 합니다. ‘산대’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습니다. Q.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양주별산대놀이의 경우 이름에 ‘별’ 자가 추가된 것은 기존 놀이패들의 맥을 이은 것이 아니라, 양주읍에서 ‘별도’로 만들었다고 해 붙여진 글자이고, 노들산대, 구파발산대 등을 이은 송파산대놀이야말로 조선 시대 산대놀이의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Q. 한반도 지역 탈춤 중에서 한양과 가까운 송파산대놀이와 양주산대놀이는 주로 궁중에서 많이 연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나요. A. 특히 송파산대놀이는 궁중 연회에 가장 많이 불려갔습니다. Q. 그렇다면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의 전승 주체를 담당했던 계층은 다른가요. A. 양주는 관원들에 의해 전승되었고, 송파는 장터의 장꾼들과 마을주민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주로 사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에 송파 장터에서 상업적 흥행을 목적으로 펼치던 놀이입니다. Q. 송파산대놀이에는 양주별산대놀이와 비교한다면 기원과 등장 인물이 다른가요? A. 기원과 유래를 보면 송파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는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송파는 나루터여서 장꾼의 속성을 반영, 타령장단의 신명 나는 놀이춤으로 발전했고, 양주는 관에 대한 예속성 때문인지 염불장단에 의식춤이 발달했고, 송파산대놀이에는 양주별산대놀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초라니·당녀(唐女)·해산어멈·신할멈·무당탈 등이 남아 있습니다. Q. 탈춤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예술성에 대해서 정의한다면 A. 춤(무용)과 음악·연극의 요소가 융합된 탈춤은 전통 공연예술과 무형문화유산을 상징하는 종합예술입니다. 내용과 형식의 자유로움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이고 바로 예술성의 조건이지요. 특히 사회비판적 주제는 현대의 다양한 예술창작에 영감을 제공하면서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Q. 반주음악은 A. 반주음악은 삼현육각(三絃六角/ 장구, 북, 피리2, 대금, 해금)의 악기구성으로 염불 12박, 타령, 굿거리장단이 주가 되며, 당악, 자진타령, 자진모리, 휘모리장단 등이 쓰인다. 춤사위로는 염불 거드름춤, 타령 깨끼춤, 굿거리 건드렁춤 유형으로 나뉘며, 40여종의 춤사위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Q. 그래서 탈춤을 보다 보면 이 세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서나 대치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이 핵심이라는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A. 그래서 일년 중 하루쯤은 지배자 집단이 억압 받는 피지배자들에게 그날은 욕도 먹고 너희들 목소리도 한번 질러보라고 풀어줍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변혁성을 가지고 있죠. 탈춤의 마무리는 갈등과 대립의 화해, 나아가 상호존중을 통해 사회 전반의 조화를 강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연희 종목 중 탈춤만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탈춤이 우리 무형문화유산을 넘어 인류가 함께 즐기고 향유하는 무형유산이 되었다고 봅니다. Q. 송파산대놀이의 열두 마당순서는 다음과 같다. A. 첫째 마당은 상좌춤놀이, 둘째 마당은 옴중, 먹중놀이, 셋째 마당은 연잎, 눈끔적이놀이, 넷째 마당은 애사당 북놀이, 다섯째 마당은 팔먹중 곤장놀이, 여섯째 마당은 신주부 침놀이, 일곱째 마당은 노장놀이, 여덟째 마당은 신장수놀이, 아홉째 마당은 취발이놀이, 열 번째 마당은 샌님말뚝이놀이, 열한 번째 마당은 샌님, 미얄할미, 포도부장놀이, 열두 번째 마당은 신할애비, 신할미놀이이죠. Q. 보다보니 등장인물마다 여러 춤사위가 나와서 웃음이 나옵니다. 장단에 따라서도 다르면서 유사한 춤사위가 궁금합니다. A. 춤사위는 염불장단의 거드름춤, 굿거리장단의 건드렁춤, 타령장단의 깨끼춤으로 상위개념으로 불린다. 염불장단의 거드름춤은 특수 배역만이 추는 춤으로, 첫 상좌의 합장재배와 사방재배, 옴중의 용트림, 노장의 복무(伏舞)와 함께 부채춤, 팔뚝잡이, 활개펴기, 활개접기, 장삼치기, 복무, 삼진삼퇴 등이 있습니다. Q. 송파산대놀이 춤의 기본이 되며 흥과 신을 풀어내는 춤, 여러 탈춤 중 송파산대놀이 춤사위 중 깨끼춤이 백미 중 백미라고 하는데, 과장마다 등장 인물마다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네요. 가장 인기있는 깨끼춤은 A. 탈춤 중 송파가 가장 많은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고, 40여 종이나 넘네요. 집단적이며 민중들의 순수한 감정에서 생성된 춤이기 때문에 주로 팔먹중, 취발이, 말뚝이와 같은 민중성을 띤 인물들이 춤을 춘다. 깨끼춤 종류로는 화장무, 반화장, 자진화장, 곱사위, 여닫이, 긴여닫이, 배치기, 어깨치기, 깨끼리, 염풍댕이, 돌단이, 거울보기, 팔뚝잡이, 멍석말이, 덜미잡이, 자라춤, 장단먹기, 궁둥치기, 배춤, 갈지자춤, 몰아치기, 장삼치기, 한삼치기, 몰아치기, 장삼치기,한삼치기, 맞춤[對舞]과 더불어 양반까치걸음, 취발이까치걸음, 빗사위, 갈지자걸음, 뒷짐걸음, 원숭이재롱춤, 활개걸음, 건드렁, 껑충걸음 등의 걸음걸이가 있다. 그 중 가장 인기있는 춤은 기본적인 화장무가 가장 섹시하고 화려한 춤새를 보여주죠. Q. 굿거리장단에 맞추어서 추는 건드렁춤은 주로 다음 막이 오르때,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건들건들 거리면서 나오니까 관중들이 와 하면서 흥을내는 데요. 등장인물마다 추는 춤새가 정해져 있고, 다양한 것 같아요. A. 건들걸음의 춤사위 종류는 뒷짐사위, 들사위, 쳐들사위, 흔들사위, 돌사위, 멜사위 등이 있다. 그밖에 배역에 따라 연닢·눈끔쩍이는 한손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손은 뒷짐이나 들사위로 등장하고, 말뚝이는 채찍을 휘돌리며 채찍춤을 추면서 샌님 가족을 이끌면서 뒷걸음, 돌걸음으로 등장한 다음 깡총걸음으로 장내를 뛰어 돌며 채찍을 휘돌린다. 이때 샌님·서방님·도련님의 걸음걸이는 한발 까치걸음으로 부채를 내렸다 들었다 하다가 건들걸음으로 들어와 나란히 자리 잡는다. 신할아비·신할미는 허리가 굽은 상태로 지팡이를 짚고 나머지 손은 뒷짐을 지고 어기적 걸음으로 등장하면 박수가 나오지요. Q. 탈춤을 출때, 복장과 탈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요. A. 탈춤 종목 중 송파가 가장 많은 탈을 보유하고 있죠. 가장 관객이 많은 한양이라는 지역성과 궁중에 불려간만큼 자본이 달리지 않았죠. 외국 사절이 오면 요즘으로 말하면 카퍼레이드 환영인사 같은 거죠. 사직동 모화관가지 거리 공연을 하면서 외국사절을 모시고...매일 공연도 보여주고, 지방에 있는 탈춤과는 관객의 눈높이가 높았죠. 한양으로 몰려드는 전국소리패들, 광대패들과 경쟁을 해야하니...자연히 분장도구가 화려해지죠. 탈은 바가지로 만든 탈인데, 소나무 껍질을 깎아 눈썹, 코, 볼, 입을 붙이고 한지(韓紙) 조각으로 여러 겹 덧붙여 말린 다음 단청(丹靑)으로 채색하여 보자기를 붙여 머리에 쓰고 묶는다. 복식은 팔먹중들은 반장[赤·靑·黃·綠色]에 옷깃과 허리 띠는 주로 붉은 색이나 대비색이며, 각 배역마다 신분적 특징을 보여 주는 의상을 입는다. 의물과 무구도 배역에 따른 것으로 양반들은 합죽선, 취발이 녹음채, 말뚝이 채찍, 먹중갑(완보)은 곤장, 무당은 방울·부채, 샌님·미얄은 지팡이 등을 사용합니다. Q. 민족문화예술 '탈춤'의 예술성에 대해서 강조하신다면 A. 탈춤은 재담과 노래, 가무극적 총체성을 띠고 있죠. 재담이나 노래에 비하여 춤을 위주로 하고, 거기에 연극성까지 구비해야 박수를 받죠. 풍자성이 강한만큼 탈을 쓴 등장인물과 주인공의 캐릭터를 잘 나타내 주어야 하고,..가무에 능해야 하고. Q.인류무형문화유산 '탈춤'의 보편적 가치는 A.부조리와 갈등을 풍자하는데 머물지 않고, 해원상생을 위한 전통유산이며, 공동체 결속에 기여한다는 거지요. Q. 오월에는 축제의 달인데, 초청공연 가는 지역 축제는 어디인가요. A.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6일, 안동민속축제 7일,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지역사회 복지관에서 8일 공연합니다. Q. 전승교육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A. 10여년 동안 송파구 중대초등학교에서 송파산대놀이를 가르쳐왔다. 그런데 교장이 바뀌면서 올해부터는 수업이 사라졌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우링 자랑스런 민속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탈춤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과장·유형화한 탈을 쓰고 권력과 사회의 부조리·인간의 이중성 등을 적나라하고 신랄하게 풍자·비판하면서 나아가 사회변화에 대한 변혁성을 담보하고 있다. 관객의 동조·야유 같은 능동적인 참여까지 이끌어내 완성하는 적극적 소통 방식의 예술이기도 하다. 세계 유네스코 신사위원단은 탈춤이 문화적 전통으로 공동체에 정체성과 연속성을 부여한다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주목했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했다. 이러한 탈춤의 보편적 가치를 널리 공유하는 기회와 장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첫째마당: 상좌춤놀이 첫째상좌가 맨 처음 등장하여 중앙에서 염불장단에 합장배를 하면서 천신께 탈춤의 시작을 알리고, 사방재배를 하며 놀이판을 정화하고 성황을 이루기를 기원하며 춤판이 무사히 끝나도록 기원하는 의식무이다. 이어서 타령장단에 깨끼춤을 추면 둘째상좌가 등장하여 서로 대무하고 첫째상좌가 퇴장한다. 둘째마당: 옴중·먹중놀이 옴중이 제금을 치며 요란하게 등장하여 장내의 잡귀를 몰아내고 둘째상좌도 내쫓고 염불장단에 용이 승천하는 용틀임춤을 추고 놀 때 먹중이 등장하여 서로의 얼굴을 못생겼다고 흠 잡으며 곰보타령 사설을 늘어놓는 것이 흥미롭고, 비위생적 생활에서의 옴(전염병, 악귀) 발생을 예방의 중요성을 알린다. 셋째마당: 연닢·눈끔재기놀이 양반인 연닢과 눈끔재기가 얼굴에 흠이 있어 과거도 못보고 양반사회에서 소외당하지만 서민들인 먹중들은 이들을 받아들여 어울려 놀면서 서민들의 포용력을 부각하고 양반사회의 폐쇄성을 풍자한다. 넷째마당: 북놀이 먹중들이 북을 가지고 장난치며 노는데 왜장녀가 등장하여 예쁜 색시(애사당)가 벗고(법고)를 칠테니 돈을 달라고 하자 돈을 건네준다. 애사당이 옷을 벗지도 않고 법고를 치니 속았다고 북채를 빼앗지만 허세를 부리면 돈만 날린다는 것을 풍자한다. 다섯째마당: 곤장놀이 팔먹중들이 불도에 정진하지 않고 술만 먹고 노는 것을 곤장으로 호되게 다스려 공부를 게을리 하지마라고 훈육한다. 여섯째마당: 침놀이 가난한 서민이 잔치에서 과식 급체하여 쓰러지자 신주부(의원)와 먹중들 사이의 치료방법에 대한 내용을 표현하여 의원들의 의술을 풍자하고 굶주린 서민생활을 폭로한다. 일곱째마당: 노장놀이 팔먹중이 노장을 끌고 등장하여 색을 탐하면 무서운 질병(흑달)에 감염된다는 경고하고 조롱하지만 노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색을 탐하여 파계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여덟째마당: 신장수놀이 신장수가 원숭이를 업고 등장하여 노장에게 신을 팔면서 불도에 정진하지 않고 여색에만 빠진 수도자에게 원숭이를 보내 조롱한다. 아홉째마당: 취발이놀이 사찰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취발이가 노장이 파계했다는 말을 듣고 홧김에 술을 마시고 취한 채 등장하여 노장을 내쫓고 소무와 합방하며 아들을 낳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고 공부시키며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열째마당: 말뚝이놀이 양반집 하인 말뚝이가 양반인 샌님가족을 모시고 나들이 나갔다가 숙소를 돼지우리로 정해주며 놀리면서 서민들을 개돼지처럼 하찮게 여기는 양반들을 역으로 풍자한다. 열한째마당: 샌님·미얄·포도부장놀이 샌님이 본처인 미얄할미를 내치고 젊은 마누라와 놀아나지만 결국은 젊은 포도부장에게 빼앗기는 애정의 삼각관계를 표현하며 부도덕한 생활을 풍자하고 조강지처를 버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열두째마당: 신할애비·신할미놀이 노부부의 갈등으로 신할미가 죽자 자식인 도끼와 도끼누이가 애통해 하며 무당을 불러 죽은 신할미의 넋을 위로하는 넋두리와 지노귀굿을 하여 극락왕생을 빌며 살아있는 자를 위로하는 무속적인 의식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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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불쌍한 사람들의 삶, 그 너머의 뭍을 향하여4월 8일부터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입과손스튜디오’의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 공연이 화제 속에서 펼쳐졌다. 2017년 창단한 ‘입과손스튜디오’는 고수 이향하, 김홍식, 신승태와 소리꾼 이승희, 김소진, 프로듀서 유현진으로 구성된 창작 공동체로, 고전 문학작품을 통해 동시대의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지금까지는 없었던 판소리를 선보인다는 극찬을 받으며 꾸준히 그들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들은 ‘완창 판소리 프로젝트’, ‘19호실로 가다’, ‘판소리동화 안데르센’ 등을 무대에 올리며 판소리가 갖고 있는 연희 양식의 가능성을 다양한 각도로 실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통 국악, 동화, 현대소설, 외국 고전 등을 가리지 않고 재해석해 자신만의 판소리로 만들어 나가는 데 치중하여 무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번 공연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1862)’의 서사와 인물을 밑바탕에 두고 쓴 이 시대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탄 한 척의 ‘세상’은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출발하여 닻을 내리고자 한 이 무대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소설이자 이야기적 매력이 큰 소설 ‘레미제라블’을 택하여 창작함으로써 이야기 예술인 판소리와 같은 맥락으로 끌어 나갔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특히 ‘K-VOX 한국소리 페스티벌’에서 ‘구구선 사람들’을 선보인 후 팀원들이 함께 레미제라블의 원작자 빅토르 위고의 생가에 다녀오고,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가짐으로 더욱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만들어 냈다. 아늑하고 작은 공간의 무대에는 북이 놓여있었고, 가림막 커튼으로 가려진 무대 뒤편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연주자들이 자리했다. 소리꾼 이승희는 이 이야기의 화자가 되어, 구구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구구선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수 김홍식이 소리판의 중심에서 북을 치며 극을 함께 이끌어갔고, 소리꾼 김소진과 배우 백종승은 각각 가열찬, 백군 등의 다수 역을 맡으며 무대를 꾸려나갔다. 원작의 장발장은 ‘장영식’으로 설정되었으며, 가난하고 아름다운 여자 방미영(팡틴)과 조병렬(자베르)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사정과 생각, 슬픔 등을 모두 드러내며 이야기를 전달했다. 소리꾼 이승희의 소리는 단단하고 깔끔하며 시원스러운 동시에 마음을 울렸다. 슬픔 가득한 방미영과 구구선이 삶의 전부인 엄격한 조병렬 등 다양한 인물을 넘나들며 소리에 그 모든 감정을 담아내며 부르고, 외치고, 속삭이기도 했으며, 몸짓과 동작, 표정 하나하나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가득 담아 표현해냈다. 공연을 관람하는 100분 내내 ‘소리’를 통해 함께 웃고 울며 생경한 몰입도를 느꼈는데, 그게 바로 판소리의 근본적인 매력임을 깨달았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장르이다. 말 그대로 ‘이야기’ 그 자체인데, 어느 순간부터 판소리를 이야기로 듣기보다 대목별로 들을 일이 많아 그 내용을 관통하는 긴 줄기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판’에서 사람들과 함께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공감하고, 웃고 울기도 하던 우리의 오랜 이 예술 장르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 이승희의 소리, 입과손스튜디오가 선사한 이 작품에는 창의적이면서도 분명하고 확고한 이야기가 존재했고, 그건 바로 이 작품이 이 시대의 진정한 판소리라는 증거였다. 고수 김홍식의 북 반주 외에 다른 국악기는 연주되지 않았고, 일렉기타와 드럼, 신디사이저의 밴드사운드로 무대가 채워졌다. 소리꾼이 부르는 대다수의 소리는 북 반주로만 이루어졌지만, 중간 중간 앙상블로 노래하는 부분이나 곡의 전환, 역동적인 효과를 주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밴드음악이 훌륭하게 그 역할을 다해 주었다. 가장 와닿았던 건 북을 포함한 모든 악기가 장단에 기본을 둔 채 함께 연주했다는 것이다. 장단을 살려 창작된 음악은 전통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선율적, 리듬적 움직임을 동시에 보여줌으로 한국적인 이미지와 밴드 음악의 청량하고 강렬한 사운드가 가미되어 극의 집중도를 한껏 높여주었다. 또한 기타의 리프(반복되는 짧고 간단한 프레이즈)가 전반적으로 많이 연주되었는데, 귀에 맴도는 반복적인 선율과 소리꾼의 소리가 어우러지며 신선한 매력을 이끌어냈다. 민요를 다양하게 활용한 것도 음악적으로 도드라지는 특징 중의 하나였다. ‘오봉산타령‘이나 ‘풍구소리‘ 등의 민요를 활용하여 새롭게 작창 된 곡들은 내용으로도, 선율적으로도 극의 이야기와 잘 들어맞았고, 유쾌한 집중도를 선사해 주었다. 무력 사태로 번지게 된 극의 후반부, 조병렬은 바다에 빠질 뻔하지만 구구선에 타고 있던 모두가 협력하여 그를 살려낸다. 그때만큼은 아군도 적도 따지지 않고 모두 하나기 되어 그 한 사람을 구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모두의 도움으로 그가 간신히 배에 올라타자, 휘몰아치던 폭풍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그리고 한 줄기 햇살이 내리쬐며 희망을 보여주는데, 바로 뭍이 보이기 시작한 것. 구구선에 타고있던 모두는 갑자기 찾아온 그 한 줄기 희망을 멍하니 바라본다. 구구선의 사람들이 과연 뭍에 도착하게 될지, 도착한다면 새로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그들의 전쟁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타난 희망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주며 무대는 끝이 난다. 작은 균열에도 크게 흔들리는 세상에서 비참하고 불쌍한 인생을 살아가던 그들의 인생은 지금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그 세계 속의 그들은 이 세계의 우리들이고, 처절하고 안쓰러운 그들과 우리는 모두 그 고난을 통해 고통 받지만, 그로 인해 성장하고 희망을 발견한다. 함께 연대하고 서로를 구원해 주며, 믿음과 책임을 나누며 이 세상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동아줄이 아닐까. 세계적인 원작을 판소리로 다시 씀으로써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선보일 때, 이 시대의 삶에 투영되는 무언가와 깊이 생각할 거리, 새롭게 다짐하고 실천되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입과손스튜디오의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를 거듭함에도 늘 존재하는 불쌍한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함께 살아나가야 할 지 고민해 볼 수 있다. 평안한 믿음과 책임, 그리고 사랑을 통해 모두가 존재할 수 있는 삶. 다 함께 연대함으로 이 고난을 묵묵히 넘어, 저 멀리 보이는 땅에 닻을 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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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음악의 가능성. 원장현 명인의 가치 있는 방향완연한 4월의 봄, '비하인드 스토리 1'이라는 제목으로 예정된 공연을 일주일 앞둔 대금 명인 원장현 선생님을 안국동에서 만났다. 한평생 대금과 함께한 시간들로 뭉쳐져 있는 그의 삶을 비롯하여 이번에 있을 공연 이야기, 전통 음악이 나아갈 방향과 목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렇게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근래 어떻게 지내셨나요? A. 곧 있을 공연 준비를 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공연이 아니더라도 늘 오전/오후/저녁에 꾸준히, 쉬는 날일지라도 규칙적으로 연습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연습하지 않을 때는 레슨을 하거나, 공원 산책을 하는 등 루틴을 지켜가며 살고 있어요. Q. 선생님께선 대나무의 고향인 담양이 고향이라고 들었습니다. 대금의 주원료가 대나무이다 보니, 뭔가 선생님과 운명적인 장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릴 적부터 대금 소리를 듣고 자라신 거죠? A. 어릴 적 우리 집 앞엔 대밭이 있었어요. 대밭 속에 집이 있는 거나 다름없었죠. 태어나면서부터, 사물을 보기 시작할 때부터 대밭을 봤고, 아버지가 대금을 부셨기 때문에 대금 소리를 듣고 보며 자랐죠. 아무래도 집안의 환경에 따라 다양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어린 나이 때부터 늘 대금을 들어서 그런지 대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항상 대금 소리가 마음에 와닿고 좋곤 했습니다. Q. 선생님께서 대금을 시작하신 시기는 1960년대라고 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가난하고 힘겨워하던 시절인데요, 사실 먹고 살기 어려운 때에 예술을 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의 전통음악,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나가신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A.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참 어려운 시기였어요. 말 그대로 보릿고개였죠.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실 예술을 하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숙부님 영향으로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금을 시작했는데, 대금이 너무 좋고 재밌었어요. 그래서 어려운 환경이나 시기와 관계없이 그저 악기가 좋아서 악기를 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유명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어렵게 공부했어요. Q. 선생님의 스승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스승님들은 어떤 분들이었나요? A. 따뜻한 분들이셨습니다. 음악을 배우기 참 어려운 시기였지만, 선생님들께선 그 형편을 다 알고 품어주셨어요. 음악을 하고 싶다는 학생을 내쫓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셨죠. 그렇게 은혜를 입었고, 갚아드리고 싶은데 일찍 돌아가셔서 늘 마음에 걸립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Q. 사실, 사제 간이라는 것은 예술계에서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깊이 있고 중요한 관계잖아요. 특히 이 전통 예술계는 다른 분야보다 좁고,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전통 음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제관계는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시나요? A. 요즘은 국악을 배울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이 있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도 있긴 하지만, 우리 국악은 교과서적인 공부 외에도 더 심층 있게 파고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럴 때 선생님의 영향이 굉장히 중요해요. 학생들은 실력있는 선생님을 찾아가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과 열정으로 선생님을 귀찮게 할 정도로 찾아다니며 공부해 나가야 해요. 예술은 상품입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음악적 가치가 필요해요.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나가려면 실력을 늘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의 경우도 최선을 다해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음악, 전통 그 자체를 가르쳐야 해요. Q. 선생님께선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창시하신 창시자시잖아요. 어떻게 산조를 창시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A. 예전엔 ‘유파’의 개념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1985년 국립국악원에 있을 때, 상설 공연에서 독주를 맡을 일이 있었어요. 그 당시 국립국악원 악사장으로 계시던 이승열 선생님께서 제게 무슨 유를 하냐고 물어보셨죠. 그런데 그때는 딱히 어떠한 유를 한다고 하진 않았기에 그간 선생님들께 배워 온 음악들과 내 음악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그럼 원장현류네.’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후로 제가 저의 산조를 ‘원장현류’라고 명칭 하였고, 그 이후로 다양한 유파가 정리되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Q. 전통 어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산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요즘도 종종 시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산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사실 ‘조’나 ‘어법’ 등의 틀 안에서 창의성을 드러내야 하기에 새로운 창작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산조, 더 나아가 민속악에 기반을 둔 음악을 만들 때는 어떤 걸 가장 중심에 놓고 작업해야 할까요? A. 무엇보다 음악 안에 기승전결이 있는 게 중요합니다. 시작과 맺음을 한 ‘마루’라고 하죠. 마루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음악이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가며 복잡하게 들려선 안 돼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시작했다면 근본을 두고 확실하게 맺어준 후에 다른 주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해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정해진 기본적인 틀을 잘 세워두고 그 안에서 창의성을 펼쳐내야 합니다. Q. 곧 있을 공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Behind Story 1>이라 하여 공연이 열리게 될 텐데, 공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이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내 음악세계를 풀어나갈 예정이에요. 지금까지 대금을 배우고 연주한 과정과 앞으로 해 나갈 것들을 펼쳐낼 생각입니다. 이 공연은 가족 연주로도 진행이 돼요. 우리 가족은 모두 국악을 하고 함께 연주해 왔긴 하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생각이에요.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춤 산조>를 통해 함께 무대를 꾸립니다. 또 중학생 손자가 만든 곡을 가지고도 연주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Q.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연주해 나갈 때 장단점이 있을까요? A.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이라는 주제만 드러나고 연주실력은 아쉽다는 이야기를 들어선 안 되겠죠.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공연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연주’에 대한 타이틀로 인해 부담될 때도 있어요. 또 각자 연주 활동하는 분야(정악/민속악/창작곡)가 다르기에 호흡을 맞추기 어려운 부분도 있죠. 하지만 그만큼 가족이기에 훨씬 더 다양하고 진중하게 음악적 고민을 하며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Q. 열쇠없는집 후학들과도 함께 하는 무대로 하셨는데, 열쇠없는집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A. 80년대 후반 삼청동에 있을 때 내게 배우러 오는 제자들이 언제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자 늘 문을 개방해 두곤 했어요. 제가 공부하던 시절, 선생님들 또한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레슨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어요. 선생님 댁에서 가락만 배우고 나와 산에서 홀로 연습하곤 했죠. 그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꼭 국악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었어요. 그리고 80년대부터 편하게 배우고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 열쇠없는집을 개방했죠. 이번 공연에서도 열쇠없는집 후학들 여섯 명 정도와 함께 무대를 꾸릴 예정입니다. Q. 국악, 전통음악은 오랜 세월을 지켜온 그 가치는 분명하고, 계속하여 발전해 나가야 하죠. 이렇게 음악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전통음악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연주하시거나 음악을 창작하실 때, 어떤 가치나 목적을 중심에 두고 음악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원래 저는 음악적으로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민속악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산조/시나위 외에 창작곡은 할 생각도 안 했었어요. 하지만 1998년도에 ‘날개’라는 창작곡 음반을 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담은 곡을 만들어 직접 연주할 때 그 의미가 더 잘 전달될 것이라고 여겼기에 작업하게 된 것인데, 그 음악을 대중들이 정말 좋아해 줬어요. 말 그대로 대박이 났죠. 이 앨범을 내기 전 발매했던 산조나 민속악 앨범은 거의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전공자들만이 주로 들었는데, 창작곡은 그 반대였죠. 그때 느꼈습니다. 우리 전통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쉽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요. 국악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국악이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이 접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거예요. 듣기 쉽고 흥미가 느껴지는 음악일 때 사람들은 관심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저는 음악을 작업할 때 쉽고 편안하게 만드는 걸 가장 중점적으로 두어요. 쉽고 편한 국악을 듣고 관심을 두는 사람은, 점점 더 국악에 빠져들어 결국 전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국악의 발전은 우리 국악인들의 몫이에요. Q. 그렇다면 전통이나 창작음악을 하는 국악인들이 음악 작업을 하며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 그건 간단합니다. 전통이든, 창작이든 어떤 음악을 하든지 내면에는 우리 것을 갖고 있어야 해요. 정통, 바로 기본기죠. 창작곡을 만든다고 해서 서양음악을 흉내 내고 공부하기만 한다면 그저 우리 악기로 서양 음악을 흉내 낸것밖에 안 됩니다. 모든 음악의 바탕에는 우리 전통음악이 확실하게 깔려 있어야 합니다. 초연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연주되는 곡을 만들기 위해선, 우리 음악의 정통성을 잘 공부하여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죠.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나무는 빨리 말라 죽어요. 전통의 뿌리를 잊지 않고 음악을 해 나가는 것.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원장현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전통의 뿌리를 강조했다. 국악인들이 더더욱 최선을 다해 국악을 사랑하고, 배우며 우리 음악의 근본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선생님 본인도 앞으로 계속하여 끊임없이 전통 음악을 연주하며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평생을 대금과 함께 걸어온 꾸준하고 정통성 있는 그의 음악 인생을 귀감으로 삼아, 우리의 뿌리, 전통이 꾸준하게 발전해 나갈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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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자 '김덕묵의 민속기행' 유튜브 채널 소개민속학자 '김덕묵의 민속기행' 유튜브 채널 소개하고자 11일 외국어대학에서 한국학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김덕묵 교수를 캠퍼스에서 만났다. '김덕묵의 민속기행' 채널은 민속이라는 시각으로 현상을 재해석하고, 우리에게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시해 주는 신선한 채널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진행되는 영상이 기다려졌다. 김교수는 민속기록학회 설립부터 총무이사를 맡고 있고, 민속 아카이브 작업을 하면서 문헌조사를 정리하다가 문득 영상으로 민속기록을 남겨 보자는 의미로 시작이 되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안타까운 것이 고향 문경에서 하나 둘 늘어나는 폐가가 이제는 철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주인을 잃고 버려진 녹슨 철대문 문양부터 주춧돌, 멍석발이, 절구통, , 창틀, 바구니, 고무신까지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는 로컬 민속을 영상 텍스트로 남겨 보자는 마음으로 채널을 열게 되었다고 전한다. Q. 안녕하세요.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김덕묵의 민속기행' 유튜브 채널 목적은 무엇인지요. A.첫째 민속 현장 답사를 통해 민속학의 시각으로 우리 한민족 정체성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학술적인 해석보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민속의 현장을 찾아가서 그 의미를 알아보는 데 있다. 텍스트 밖의 현장은 또 하나의 교과서이다. 따라서 '김덕묵의 민속기행'에서는 민속의 현장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의미를 밝혀내어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주는 데 목적이 있다. Q. 교수님, 전공은 A. 석사, 박사 논문은 '황해도 무속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나의 민속학 관심 분야는 넓은 편이다. 민속 전 분야에 대해 다루어 보려고 한다. 민속신앙을 중심으로 ... Q.처음 시작한 날 A. 2021년 10월에 ‘민중들의 사랑을 받은 인왕산 국사당과 선바위’라는 영상을 처음 올리면서 유튜브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39편의 영상을 올렸다. Q. 국내외 답사를 하셨는데, 다녀오고 다루었던 주제는 무엇인가요. A.그동안 서울,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민구, 민속신앙, 민속놀이, 옛집, 무덤, 마을, 마을제, 유교제례 등을 다루었으며 해외로도 눈을 돌려 일본에서 민속놀이, 의례, 사찰 등을 다루었다. 김덕묵의 민속기행에서 그동안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대목은 '인왕산의 무속신앙'(2021년 10월), '개발로 사라지는 마을에 대해'(2021년 12월), '일본의 민속'(2022년 1월) 등이 있다. 전국 각지의 두지를 찾아다니면서 촬영했던 '두지 찾아 삼천리'(2022년 6월), '무덤은 사연을 싣고'(2022년 5월) 등이 있다. Q.앞으로의 계획 A.민속 전 분야에 대해서 다루어볼 계획이다. 또한 몽골, 중국 등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지역으로도 활동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저서 단독 1.『민속기록학과 지역공동체아카이브』, 민속원, 2016. 2.『전국의 기도터와 굿당』(전3권), 한국민속기록보존소, 2002. 3.『민속종교 연구방법론』, 한국민속기록보존소, 2011. 공저 1. 공저,『우리 인문학과 영상』, 푸른역사, 2002. 2. 공저, 『황해도굿의 이해』, 민속원, 2008. 3. 공저, 『샤머니즘의 사상』, 민속원, 2012. 4. 공저, 『샤머니즘의 윤리사상과 상징』, 민속원, 2014. 5. 공저, 『광명사람들의 삶과 놀이, 문화』, 광명문화원, 2016. 6. 공저, 『아카이브 콘텐츠 아카이빙』, HUNE, 2017. 학위논문 1.「황해도 진오귀굿 연구」, 한국학대학원 석사논문, 2000. 2.「황해도굿의 무속지적 연구」, 한국학대학원 박사논문, 2009 논문 :6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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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명물, '진도북놀이' 전승하는 진도북놀이보존회일제강점기 잠시 침제되었던 진도북놀이는 1954년 진도민속국악원이 창립되면서 후진양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1984년 진도북놀이보존회를 조직하였다. 1983년·1984년·1985년 명무전에 진도북춤을 선보여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985년 광주남도문화예술관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88올림픽대회' 참가 이후 전국에 알려지게 된다. 진도북춤의 류파로는 들노래를 통해 발전된 장선천류의 진도북춤과 소포리의 마을굿에서 발전된 박관용류 진도북춤, 그리고 신청농악에서 발전된 양태옥류 진도북춤 3류파가 1987년 8월 25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로 지정 받아 전승되고 있다. 진도북놀이보존회 설립과정과 전승활동을 살펴보기 위해 현재 3류파의 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희춘 회장이 찾아갔다. 매주 전수교육을 지도하고 있는 날을 잡아서 5일 진도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Q.진도북놀이보존회 초대회장과 그동안 맡으신 회장님은 누구이신가요. A. 장성천 선생이 1984년 진도북놀이보존회를 설립하고 전승에 힘썼으나 1992년 작고하여 그 뒤를 김길선이 잇고 계시다가 5년 전 작고하시고, 보존회장은 3분이 2년간씩 맡아오고 있다. 지금은 제가 맡고 있죠. (1대 장성천, 2대 양태옥, 3대 장성천, 4대 박관용, 5대 김길선, 6대 조열환, 7대 박관용, 8대 김길선, 9대 박강열, 10대 이희춘, 11대 김병천, 12대 박강열, 13대 박강열, 14대 김병천, 15대 김병천 ,16대 이희춘으로 회장을 맡고 있다.) 진도북놀이보존회 역대 회장단 대수 재임기간 회장 총무 1대 1984-1987 장성천 조오환, 조열환 2대 1988-1989 양태옥 서권덕 3대 1990-1991 박관용 서권덕 4대 1992-1993 장성천 조열환 5대 1994-1996 박관용 이희춘 6대 1997-2000 김길선 이희춘 7대 2001-2006 조열환 이희춘 8대 2004-2006 박관용 이희춘 9대 2009-2012 박강열 김병천 10대 2013-2014 이희춘 김병천 11대 2015-2017 김병천 박강열 12대 2018-2019 박강열 김병천 13대 2020-2021 김병천 박상준 14대 2021-2022 김병천 박상준 15대 2023- 이희춘 노준영 Q. 서울에서도 유명한 진도의 명물, 진도북놀이 소개 한번 해주세요. A. 진도북놀이는 진도지역에서 농사일 특히 모내기를 할 때 못방고 북을 쳤다. 북잽이는 북채를 지휘봉 삼아 모 줄 간격이 맞지 않거나 모 이가 빠진 것을 지적하면서 모내기를 흥겨웁게 진행하는데 북소리 음률에 맞추어 모꾼들은 흥을 내어 때론 일어서서 한손에 모춤을 쥐고 춤을 추면서 피곤함을 잊고 고된 모내기를 하였다. 모내기 중 쉬는 시간을 틈타 풍년을 기원하는 한바탕 풍장굿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때 북놀이가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흥을 돋우기 위해 행하였던 것이 진도북놀이다. 이런 놀이에서 점차 독립된 북춤으로 형성되어 오늘날 설북놀이 북춤으로 볼 수 있다. 북을 어깨에 메고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북을 치면서 흥을 돋우며 춤을 추는데 진도지역의 토속성이 진하게 베어있는 지역민들의 순수한 토속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 북춤보다 역동적이고 강렬한 북소리와 하나가 되는 춤사위가 일품이지요. Q. '북놀이'. '북춤'은 용어의 의미가 다른가요. 또 타 장르인 장구춤 춤사위와 비교한다면 A. 북놀이는 놀이적 성격이 짙고, 북춤은 무용적 요소가 많다. 하지만 같은 북놀이라고 할 수 있다. 장구춤이나 소고춤 같은 경우 여성스러우며 유연성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북춤은 남성적이고 강하며 활발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진도북춤은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요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Q. 지역마다 특성이 다양한가요. 그러면 영남과 호남이 다른가요 A. 지역에 따라 제각기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크게 경상도 북놀이와 전라도 북놀이로 나눌 수 있다. 전라도의 북놀이는 외북치기와 양북치기로 다시 나뉜다. 외북치기는 전라도 지방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북을 어깨에 메고 한손으로 북채를 들고 친다. 이 때문에 원래 박자에 충실하며 웅장하고 강렬한 소리를 낸다. Q. 양손을 쥐고 장구를 두드리는 것은 예술적으로 어떤 장점이 있나요. A. 진도북놀이는 양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변화무상하고 즉흥성이 뛰어나다. 북을 장구처럼 비스듬이 어깨에 메고 양손에 북채를 사용하여 장구를 치듯이 두드리기 때문에 잔가락이 많이 사용되며, 멈춤과 이어짐이 빠르고 가락이 다양하다. 그래서 한손보다는 자유로운 가락과 묘기를 변화무쌍하게 구사한다. 그래서 즉흥성이 뛰어나다. 북가락과 춤사위가 어우러져 더 흥을 돋우며 다양한 변주를 모색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Q. 진도북춤의 춤사위 특징은 A. 강렬한 북소리와 유연한 율동이 하나가 되어 뿜어나오는 신명과 더불어 아름다운 춤사위가 큰 몫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진도북춤만의 특징이다.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요소를 동시에 형상화 하고 있다. 춤의 특징은 느린 굿거리에서 무게 있는 춤을 추며 내면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춤사위가 압도적이다. 양손을 자주자재로 사용하기에 힘차게 북을 울려서 생동감이 역동적이다. 발동작은 제자리춤, 전후로 전진, 후진, 제자리 후진하기, 뛰면서 원선상을 회전하는 기법으로 아주 독특하다. Q. 진도북춤의 양손으로 치는 양북잽이 특징은 A.1.양손을 사용하기에 자유로운 춤사위나 동작의 전환을 즉흥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2.북채끝에 너설이 달려있다.(상북을 의미한다.) 3.상북을 친다.(다른 지역에서는 상쇠가 앞잽이인데 진도는 상북 의미로 채끝에 삼색 너설을 달고 앞서서 선소리를 한다) Q. 진도북춤 전수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농악대를 든다면 A. 진도북춤의 전수로는 산청농악과 지산면 소포농악과 같은 마을 풍물을 중심으로 한 전수과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일제시대 진도읍 성내리에 무속인 중심의 산청에 전통민속 국악기를 전수하는 예기조합을 성립하여 북춤을 전수하기 시작하면서 회장 최상인, 부회장 채중인을 중심으로 매년 당상굿나 풍년을 기원하는 풍장굿을 행하였다. 이 기능은 양태옥, 소포농악의 박관용을 중심으로 이어졌으며 가락은 김관우(1925년생),이희춘(1958년생)으로 이어져 있다. Q.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전승계보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A. 보유자로는 박관용(1921년생), 양태옥(1919년생), 장성천(1923년생)이 지정되었다. 양태옥은 1954년 진도민속국악원을 창립하여 후진 양성과 북놀이 계승에 힘썼으며, 타계 후 양태옥계는 박강열 예능보유자가 명맥을 잇고 있다. 박관용은 박태주의 가락과 몸짓 바탕에 여러 가지 즉흥적인 춤사위를 곁들인 세련된 북놀이를 연출하고 있다. 장성천은 20세 때 북놀이 가락과 장구, 판소리 등을 배웠는데, 농악 판굿의 구정놀이인 북놀이 가락에 충실하여 선이 굵고 흥겨운 진도의 전통적인 맛을 느끼게 한다. 진도에 거주하면서 전승에 힘썼으나 1992년에 작고하여 지금은 김길선(1936년생)이 가시고 김병천(1962년생)이 그 뒤를 잇고 있다. Q. 그렇다면 3류파의 전수관도 각각 어디에 있나요. A. 박관용류는 빗기내민속전수관,양태옥류는 의신민속전수관, 장성천류는 임회민속전수관에서 전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Q. 정기발표회 외 무대에서 3류파가 모두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때도 있나요 A. 네, 매년 10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정기발표회, 그리고 10월에 개최되는 진도북페스티발에 한 무대에서 각각 공연을 합니다. Q.박관용류 진도북놀이 전승계보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A. 제1대 예능보유자 박관용, 제2대 예능보유자 김관우. 제3대 예능보유자 이희춘으로 비롯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소포리농악대에 설북 박태주의 기능은 박관용, 김관우, 이희춘으로 이어졌다. Q. 스승이신 박관용류의 북놀이의 특징은 A. 스승의 북춤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북으로 추는 살풀이라고 할 수 있다. 까치새로 엮어가는 발사위나 게걸음 같은 옆걸음뛰기, 무섭게 휘돌아가다가 한 장단 슬쩍 먹어버리는 발림 등이 상쾌하고 순수하며 소박하다. 그는 스승에게 배운 북춤 위에 풍류 살풀이의 멋을 얹어 자신만의 북춤을 추고 있다. 박관용류의 북놀이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즐겨치는 북놀이다. 가락은 단순하지만 꾸밈이 많아 여성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며 우리 전통 북가락을 온전히 지니고 있고, 일찍이 악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정형화된 군무와 독무로 구성되어 있다. Q. 박관용류 진도북춤은 '나비춤사위'로 소개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A. 나비춤은 마치 나비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을 형용한 것이다. 굿거리 장단에 추는 나비춤사위를 말한다. 첫발 디딤은 왼발이며, 북가락은 손목의 유연성을 살려 북을 쓸 듯 어루만지 듯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살풀이성 굿거리장단에 나비 춤사위는 추임새가 곁들어 지면 흥이 절로난다. 더더구 가락에 원무를 그리며 태극진법.꽃봉오리사위.까치걸음등 맺고 풀어가는 다듬이가락의 유연한 몸놀림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오방진 가락의 도리깨질사위 그리고 휘몰이가락으로 원형을 돌며 우반뒤집기로 한층 열정을 뿜어내어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다음 굿거리로 인사굿을 한다. Q. 박관용류 진도북춤은 전 12과장 중 무대화 공간에서는 어느 과장을 주로 보여 주나요 A. 입장(자진몰이)⟹굿거리⟹자진몰이⟹오방진⟹휘몰이⟹굿거리 인사굿까지 맛깔스런 구음을 곁들여 북춤의 정중동을 온몸으로 자아내어 신명으로 풀어낸다. Q. 사진을 보니 지금은 예전 의상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3류파가 의상도 각각 다른가요. A. 복색은 처음에는 다른 농악과 마찬가지로 무명바지 저고리에 짚신 차림이었으나, 타 지역 무대로 불려 나가거나 전국경연대회 등을 준비하면서 점차 전문성을 띤 의상으로 변하여 화려해지고 근래에 와서는 북춤이 한층 유희성 성격이 강해지고 무대화 되면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편으로 변하면서 기존 복색과 다르게 화려하게 나타나고 있다. 박관용.양태옥류는 농민들이 입었던 흰색 무명 베옷으로 만든 저고리.바지.조끼, 두건를 고수한다. 두 파에 비해 장성천류는 다양한 색상의 쾌자를 즐겨 입는다. 두건 대신 남성는 상투를 쓰고 여성은 꽃봉오리를 얹은 두건을 맨다. 빨강·파랑·노랑 3색띠 중 노랑색 띠를 어깨에 가로 질러 걸치고 빨강·파랑 띠는 허리에 맨다. 신발은 모두 주로 베이지색 미투리를 신는다. Q. 현재 진도북놀이 전승사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일주일에 2번씩 초등학교, 일반인은 진도군민들인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2시간씩 하는데, 5년 이상 매진해야 무대에 설 수 있다. 현재 타 지역 사람들이 진도북춤 이수를 받고 돌아가서 진도북춤예술단을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고, 영남지역에서도 진도북춤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진도북춤 채를 한번 잡으면 그 신명과 매력에 빠져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신이 나서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통예술의 고장 진도를 대표하는 진도북춤을 나아가 국내외 동포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진도북놀이의 발생과 전승계보를 통해 그 연계성을 알 수 있고 무대화에 따른 진도북춤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진도북춤은 원형 안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고 개인의 예술성과 결합하여 세분화되고 발전·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즉흥적이고 소박한 멋을 가진 북춤으로 다양한 춤사위의 비교를 통해서 무대예술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농악 속에 나타나는 북놀이가 현재에는 세대와 세대를 거치면서 북춤으로 진화하여 진도북춤의 예술적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진도의 명물, 진도북놀이에 대한 가치인식과 발전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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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과 과제 (2)인류무형문화유산 '탈춤'이 문화적 전통으로 공동체에 정체성과 연속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탈춤'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과장·유형화한 탈을 쓰고 권력과 사회의 부조리·인간의 이중성 등을 적나라하고 신랄하게 풍자·비판하면서 관객의 동조·야유 같은 능동적인 참여까지 이끌어내 완성하는 적극적 소통 방식의 예술이기도 하다. 송파산대놀이는 서울시 송파구 송파동과 가락동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가면극으로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울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근처에 있는 서울놀이마당에 전수회관을 두고 있다. 놀이판은 주로 송파장 마당이었으며, 놀이마당은 장마당의 넓은 터에 둥글게 말뚝을 박고 새끼줄을 쳐서 원형의 야외무대를 만들고, 악사석에는 멍석을 깔고 광목 천막을 쳐 악사와 동네어른들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1925년 7월 대홍수로 인해 송파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모래사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현재 가락동 일대로 이주해 살면서 한두 번 산대놀이를 거행했으나, 이내 전승이 단절되었다. 연희자 허호영(許浩永, 1914-1990)의 증언에 의하면, 송파에 거주하고 있던 허윤(許鈗, 1867-1935)이, 1900년부터 구파발 본산대놀이의 연희자 윤희중(尹熙重, 1840-1923)을 초빙하여 쇠진한 송파산대놀이를 재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1930년대 초부터 돌말이(석촌리)에서 한유성과 이범만 등이 송파의 윤종현에게 가면극을 전수받아 재건에 성공했다. 그 후 일제강점기 말에 단절되었던 돌말이의 산대놀이는 광복 이후 몇 차례 공연되었으나, 다시 전승이 끊겼다가 1960년대에 복원되었으며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서울놀이마당 전수회관에서 전승되고 있다. 송파산대놀이는 오래 전에 채록된 대본이 없고, 1970년대에 들어와 복원되었기 때문에 대사에 현대적인 표현이 많다. 현재 연희 교재로 쓰이고 있는 송파산대놀이의 '이병옥본'연희본은 1975년에서 1980년까지 이병옥이 당시의 예능보유자인 이범만, 한유성, 문육지, 김윤택, 이충선의 구술을 토대로 채록한 연희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송파산대놀이』(2006)에 수록되어 있다. Q.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으로 등재된 ‘송파산대놀이보존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가치를 평가했는지요. A.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위원회는 ‘한국의 탈춤’이 강조하는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 신분제에 대한 비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주제이며,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특히, 안건으로 올라간 총 46건의 등재신청서 중에서 ‘한국의 탈춤’ 등재신청서를 무형유산의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의미를 명확하게 기술한 모범사례로 평가하였습니다. Q. ‘한국의 탈춤’ 등재를 위해 언제부터, 어느 단체와 기관이 협력했나요. A. ‘한국의 탈춤’ 의 유네스코 등재는 10여년전 국가무형문화재 13개 탈춤단체인 대한민국탈춤단체 총연합회 출범 때부터 등재를 추진했던 것이지만 이번에 등재된 것은 민·관이 협력하여 국제사회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쾌거를 거둔 좋은 사례입니다. 특히 문화재청과 외교부, 경북 안동시, 탈춤과 관련한 13곳의 국가무형문화재보존회와 5곳의 시도무형문화재 보존단체 및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이 준비 과정에서부터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Q 현재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 어떤 종목의 탈춤이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나요. A. '한국의 탈춤'은 모두 18개 종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양주별산대놀이·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강릉관노가면극(강릉단오제)·북청사자놀음·봉산탈춤·동래야류·강령탈춤·수영야류·송파산대놀이·은율탈춤·하회별신굿탈놀이·가산오광대 등 13개의 국가무형문화재와 속초사자놀이(강원)·퇴계원산대놀이(경기)·진주오광대(경남)·김해오광대(경남)·예천청단놀음(경북) 등 5개 시도무형문화재입니다. Q. 현재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을 하는 회원의 구성원은 몇 분이신가요. A. 1973년 지정당시 6명이던 보유자가 1995년 이후 1명뿐입니다. 보유자를 늘리고 국가지원 확대가 필요합니다. 송파산대놀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전승자가 줄어 위기를 겪는 현실은 여전하고, 현재 송파산대놀이에는 2006년 보유자가 된 함완식, 지난 7월 명예보유자가 된 이병옥을 비롯해 전승교육사(안병인, 김명하, 이수환, 이영식, 강차욱) 5명, 이수자(전수교육을 마친 자)20명, 전수자(전수교육을 받는 자) 26명이 있다. 이 중 현재 활동 이수자는 11명, 전수자는 23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유자가 하나 둘 사망하면서 1994년 이후 송파산대놀이 초기 보유자는 한명도 남지 않았다가 1995년 5월 김학석(1940~2014)이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작고하여 현재 송파산대놀이 보유자는 함완식 1명에 불과합니다. Q. 왜 보유자를 늘리지 못하나요. A. 문화재청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단체 몇몇 사람을 보유자로 인정하는 데 따라 전승자 간에 불화를 조성할 수 있고 예산 관계상 다수의 보유자 인정이 어려워 단체 성격별로 주된 기능을 보유한 자를 1~2명 이내에서 두기로 내부적인 방침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존단체의 시각은 다릅니다. 보유자를 1명 이내로 두게 되면서부터 내부갈등은 더 첨예해졌고 인정되지 못한 전승교육사들은 자괴감에 빠져있고 이수자나 전수자들은 미래희망을 잃고 전승활동을 중지하고 떠나는 사례가 더 많아져 회원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리하여 몇 개의 인기있는 개인종목을 제외한 단체종목 대부분이 전수자가 많이 줄어들고 있으며 송파산대놀이도 언제까지 존속할지 걱정이 크죠. 전수자뿐만 아니라 보유자가 돼도 탈춤으로 생계유지가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거리입니다. 국가 지원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공연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하는 제자들을 볼 때가 가슴 아프죠. 겨우 1년에 한번 정기 공연하는 것과 운영비 정도 받는 게 전부죠. 더구나 요즘에는 젊은이들은 살기 어렵다고 잘 오지 않는 현실이고,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쳐도 중학교 2학년을 마치는 순간 안 나와요. 대학 입시에 도움이 안 되니 부모들이 아무도 자기 자식을 보내지 않는 거죠. 예능을 가장 감수성 있게 받아들이기 쉬운 때를 놓쳐버리고 마는 거죠. Q. 명예보유자는 공식적으로 받는 어떤 혜택이 있나요. A. 또 하나의 문제는 명예보유자에 대한 시각과 대우입니다. 명예보유자는 전수활동에서 은퇴하는 것으로 전수의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양성이나 전수자 교육을 인정받지 못해 해당종목 이수자 추천이나 신청을 할 수 없는 직함입니다. 평생을 몸 받쳐 전승활동을 했는데 명예보유자가 되는 순간 뒷방노인으로 전락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보유자가 건강이 악화되어 전수활동을 못해도 명예보유자로 가지 않으려 하는게 현실입니다. 그 이유 중에 중요한 것은 보유자가 10년전에 120만원을 받았으나 조금씩 인상되어 현재 150만원이 되었고 전승교육사는 50만원에서 현재 90만원으로 인상되었지만, 명예보유자는 전승비도 특별지원금이라하여 10여년 전에 지급하던 100만원이 10년이 지나도 한푼도 인상하지 않고 그대로 현재도 100만원입니다. 대를 이어 면면이 이어 온 전통문화는 본연의 가치가 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평생 동안 천착 해 온 원로(보유자)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인간문화재입니다. 그런데도 존재 이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전수활동 의무만 강조하는 시각은 속히 바로 잡아야할 대목입니다. 일부 원로들은 지병과 노환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서 명예를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가족과 제자들의 짐만 안겨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수자들이 살기위해 생업을 택하고 떠나가는 추세입니다. 계승하는 제자들이 없어서 일년에 소멸되는 문화유산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국가에 평생 봉직하고 퇴임한 분들에게 지급하는 연금도 물가상승에 따라 매년 조금씩이나마 인상지급하는 형평성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Q. 해방이후 탈춤이 가장 활발하게 전승활동이 이루어진 때는 언제인가요 A. 1970~80년대는 대학 탈춤패가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대학마다 문전성시를 이뤄 전수관에도 엄청 나게 몰려왔어요.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강사를 초청하여 이수자들을 여러 대학에 파견하여 산대놀이 탈춤강습을 집중시켜 탈춤발표회를 가졌고 지방대학까지 전수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당시는 정신없었죠. 20여년 동안 활발한 전승이 이뤄졌다고 봅니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전수장학생 25명 중 5년간의 교육을 마친 18명이 이수자가 됐고, 1986년에는 전수교육 대상이 전수장학생뿐만 아니라 전수장학생 연령을 초과한 일반전수생까지 확대됐습니다. Q. 전승활동 기간 중 외부의 원인으로 전환기나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나요. A. 대학 탈춤패가 일부 운동권 학생이 중심이다 보니 탈춤 추는 사람들을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봤죠. 당시 탈춤 배우러 가면 경찰에서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 이후 점차 배우러 오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대학가에서도 탈춤외에 풍물, 민요 등 다른 전통문화를 배우려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전수자가 줄어들었고, 다양한 문화향수와 개인취향의 대중문화와 현대문화에 관심이 높아지는 2000년 밀레니엄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젊은이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점차 약해져 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IMF 이후 경제적인 문제가 더욱 현실적으로 두드러지는 시대를 맞이하자 젊은 전승자들은 생계를 위해 더욱 줄어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부 종목이나 보존 단체에서는 기예능 보유자가 세상을 떠나고 전승하는 제자가 없어서 소멸되어가고 있는 것이 무형문화재의 실정입니다. 우리 고유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한편,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에 따라 문화다양성과 인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지속적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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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현악, 탐(耽) 탐(探)할 가치 있는 길3월의 마지막 날, ‘가장 익숙한 국악관현악을 탐(耽)하고, 가장 낯선 국악관현악을 탐(探)하다!’를 주제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 시리즈 공연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이번 무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며 사랑받은 레퍼토리를 선정, 해당 작곡가에게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신작을 위촉하여 대표 레퍼토리와 한 무대에서 연주되었다. 무대의 작품으로는 한국 창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3인 박범훈·김대성·황호준의 음악이 선정되어, 이들의 대표곡과 위촉 신작을 각 2곡씩 감상할 수 있었다. 원영석 지휘자가 지휘를 맡았으며, 창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정상급 작곡가들의 음악세계를 탐험하는 동시에 낯설고도 익숙한, 국악관현악 레퍼토리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는 무대로 펼쳐졌다. 국악관현악은 ‘국악기만으로, 또는 국악기를 중심으로 서양 오케스트라 악기를 추가 편성하는 대한민국 국악의 관현악 형식’을 뜻한다. 조선 후기 서양식 관현악 개념이 자연스레 도입되며 국악계에서도 국악관현악 형식이 생겨났는데, 다양한 악기를 배치하여 소리의 조화와 대비 효과를 노리는 서양식 관현악 형식을 국악기로 연주하는 합주에서도 적용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다양한 악곡이 만들어지고 연주되고 있다.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995년 창단된 이래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다양한 작곡가들과 함께 독자적 양식과 한국적 미학을 탐색하며 한국 창작음악의 시대를 선도해 왔으며, 늘 완성도 있는 연주를 선보여왔기에 이번 무대가 특히 기대되었다. 가장 익숙한 국악관현악을 탐(耽)하다 공연은 총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세 작곡가의 많이 대표작들이, 2부에서는 위촉 초연작들이 연주되었다. 1부의 문을 활짝 연 음악은 황호준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이슬의 시간’이었다. 2021년에 위촉 초연되었던 ‘이슬의 시간’은 황호준 작곡가의 동명 자작시 ‘이슬의 시간’에 펼쳐진 정서적 전개를 국악관현악으로 형상화한 곡으로, 국악관현악 작품에서 각 악기 군의 음향적 역할에 대해 탐구하며 악기들 각각의 축소와 확장을 교차 진행하여 음악적 색채를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한다. 곡 설명처럼, 음악은 시작부터 악기들 각각이 지닌 고유한 음색이나 음향을 뚜렷하게 나타내며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보였다. 화성적인 진행과 나열에 치중하기보다는, 짧은 리듬 꼴을 반복하여 드러내거나 장단 위에서 각 악기의 특색을 도드라지게 연주하며 화합을 이루었다. 하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곡의 초반에 보였던 음향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적이고 서정적인 극적인 요소에 음악이 치중돼 갔다. 단조와 장조를 넘나들며 다양한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훌륭하였으나, 조금 더 하나의 테마나 주제 선율 혹은 악기의 특색이 더 표현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두 번째로 김대성 작곡가의 '금잔디'가 연주되었다. 김대성 작곡가는 민요·풍물·무속음악 등 한국음악의 현장 연구와 체험을 기반으로 현장성 짙은 음악을 선보이며 한국음악의 발전 가능성을 증명해온 작곡가로, 자신의 창작곡에 적극적으로 주제 의식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금잔디는 고구려 산성에 핀 한 송이의 꽃을 보고 험난한 역사를 견뎌온 고구려인과 현대의 민중을 떠올리며 작곡된 곡이다. 굿거리 풍으로 시작되어 3박 계열로 시원스레 연주되는 이 곡을 듣는 내내 국악기로 우리 음악의 고유한 장단과 어법을 연주하는 것이 가장 한국적이고 국악관현악에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 곡에서는 김대성 작곡가가 각 악기의 특성을 뚜렷하게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는 음계의 사용뿐 아니라 적재적소에 각 악기가 활용되어 음악적으로 조화를 이루었으며, 단순하게 흘러가는 선율을 받쳐주는 화성 진행은 뻔하지 않고 독특하면서도 편안했다. 또 확실하게 들려주는 주제 선율은 이 곡의 완성도를 크게 높여주었다. 한민족의 역동적 힘과 굳건한 의지는 이 곡에서 힘차게 그 책임을 다했다. 1부 마지막 곡으로는 국악관현악 대표곡으로도 손꼽히는 박범훈 작곡가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뱃노래'가 연주되었다. 30년 넘게 끊임없이 연주되어 온 국악관현악 대표 레퍼토리인 이 곡은 경기민요 ‘뱃노래’를 주제로 한 국악관현악 곡이다. 나발과 나각, 태평소와 타악의 조합은 힘 있게 출항하는 거대한 배를 연상시켰으며, 우리 전통의 강인한 특색을 그 어느 곡에서보다 대중적이면서도 위엄있게 표현한 부분이었기에 웅장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전통적인 선율, 민요의 어법과 장단이 가장 우선되어 음악이 이끌어 가는 부분에서는 국악기의 매력이 크게 돋보였으며, 이 곡이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사랑받고 꾸준히 연주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낯선 국악관현악을 탐(探)하다 2부 순서는 세 작곡가들의 위촉 초연 곡들로 이루어졌다. 첫 무대는 황호준 작곡가의 '에렌델;. 지구에서 129억 광년 떨어진, 최장 거리의 별인 에렌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고대어로 ‘새벽별’ 또는 ‘떠오르는 빛’을 의미하는 에렌델을 바라보며, 우주의 탄생 과정에서 생성되는 빛과 소리를 상상해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우주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니 작곡가 홀스트(Gustav Theodore Holst)의 ‘행성 모음곡’이 떠올랐다. 웅장하고 위엄 있으며 신비로운 우주를 연상시키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으로 연상되는 우주의 느낌을 서양음악으로는 익숙하게 감상해 왔으나 우리 음악, 전통적인 느낌으로는 접하지 못하였기에, 이 음악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되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곡은 더욱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국악기의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음색이 그려내는 에렌델은 강인하고 신비로웠다. 단조 스케일에 b2를 활용하여 어둡고 오묘한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아쟁과 콘트라베이스 등의 베이스 악기는 계속해서 반음계적 베이스라인을 반복 연주해 음악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뻔하지 않은 화성 진행과 대중적이면서도 현대음악적 선율, 확실한 주제 선율과 국악기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음색의 조화는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에렌델의 이미지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다음으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 영감을 받은 위촉 초연작 교향시 ‘동양평화(東洋平和)’가 연주되었다. 음악은 7발의 총성으로 시작했다. 모든 악기가 포르티시모(fff)로 격렬하고 짧게 총성을 울리고, 박자는 2/4, 3/4, 4/4, 5/4, 3/4박으로 마디마다 변화했다. 이는 표적을 향해 쫓아가는 총성의 박자가 고정되고 안정될 수 없다는 표현으로, 마치 진짜 총성이 울리듯 강렬하고 극대화된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7발의 총성 이후 아쟁으로 들려준 어긋난 불협화음에서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설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곡에서는 특히 찰현 악기의 효과가 크게 드러났다. 아쟁의 오묘한 화성으로 진행되는 베이스 라인과 해금의 가냘프지만 굳건한 음색의 조화는 마음을 흔들었다. 깊이 있고 힘 있는 주제 선율과 악기군의 역동적 확장, 계속되는 반음계 진행의 낯섦은 아팠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한·중·일 3국의 전통민요가 어우러진 부분도 크게 와닿았다. 어두운 불협화음의 코드 위에 희망을 나타내는 화합과 상생의 주제 선율이 연주된 부분은 지난 역사를 절대 잊지 않고 자각하는 동시에 평화와 희망을 그려내자는 주제가 확연히 드러났다. 음악으로 메시지를 담는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훌륭한 무대였다. 마지막 무대는 박범훈 작곡가의 ‘가기게’. 이 곡은 보통의 협주와 달리 별도 독주자 없이 관현악을 이루는 각 악기 군이 서로 독주의 역할을 번갈아 맡는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제목인 ‘가기게’는 해금의 가락을 구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자연스레 추임새가 나올 정도로 흥겨운 곡이었다. 실제로 원영석 지휘자는 관객석을 향해 몸을 돌려 추임새와 박수를 유도하고, 연주자들도 ‘가기게’와 ‘얼쑤’ 등 추임새를 외치며 공연장의 모든 이들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다. 악기들이 허튼타령을 중심에 두고 솔로 연주를 펼쳐 악기의 매력을 드러내고, 우리 장단과 우리 음악의 신명과 흥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 무대는 관객과 연주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고민하는 원로 작곡가의 생각과 음악에 대한 사랑이 모두 묻어난 무대였다. 특히 이 공연에서는 원영석 지휘자의 지휘가 밝게 빛났다. ‘가기게’에서 자연스럽고 신명 나게 관객들을 음악에 동화시킬 수 있던 것도, ‘동양평화(東洋平和)’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며 눈물을 자아낸 것도 원영석 지휘자 특유의 유쾌함과 감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모든 곡을 완전히 분석한 듯한 거침없고 카리스마 있는 그의 지휘는 연주에 온전히 몰입하고 홀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국악관현악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일까. 국악기는 본래 독주 악기로만 연주되었으며 음색이 뚜렷하고 특징이 진해 서양의 오케스트라처럼 자연스레 합주로 묻어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많다. 하지만 오랜 기간 국악관현악은 계속해서 연주되고, 발전되어 왔으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국악인들은 국악기가 지닌 고유한 색채와 전통적인 어법과 대중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국악관현악을 연주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을 우선에 두는 것이 아닐까. 3월의 마지막, 날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겨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무대. 우리 음악의 멋과 고유한 본질을 음악적인 우선으로 두고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간다면, 앞으로의 국악, 국악관현악은 익숙하고도 낯선 그 어떠한 예술 형태를 탐(耽)하고 탐(探)하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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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과 과제 (1)지난해 11월 모로코에서 개최 한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문화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탈춤(Talchum,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의 등재가 되었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한국의 탈춤'은 대일항쟁기 기간에는 일제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법제적 금압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확산과 농민층의 분해로 잠시 농촌공동제의 전승력과 활동이 희박하게 되어 점차 탈춤의 존재양상도 변화하게 되었다. 한민족 고유 정서를 표출하는 민속이 일제의 외압으로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해방후 1950년대 후반 다시 복원되기 시작한 송파산대놀이는 1973년 1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다. 탈놀음 12마당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고 32개 탈 중 신할미, 신할애비, 포도부장, 무당 등 송파산대놀이에만 쓰이는 탈이 4개나 있다. 당시 연희자 5명과 악사 1명 등 6명이 보유자(인간문화재)로인정받았다. 202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이 등재된다. 이번 등재로 우리나라는 총 22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송파산대놀이보존회'는 매년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 오고 있다. 또한 청소년, 지역주민,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 체험 활동도 펼치고 있다. 작년까지 보존회 살림을 해온 이병옥 회장에게 그동안 전승활동에 대해 들어본다. Q.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으로 등재된 '송파산대놀이보존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가치를 평가했는지요. A.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위원회는 "'한국의 탈춤'이 강조하는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 신분제에 대한 비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주제이며,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특히, 안건으로 올라간 총 46건의 등재신청서 중에서 '한국의 탈춤' 등재신청서를 무형유산의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의미를 명확하게 기술한 모범사례로 평가하였습니다. Q. '한국의 탈춤' 등재를 위해 언제부터, 어느 단체와 기관이 협력했나요. A. '한국의 탈춤'의 유네스코 등재는 민·관이 협력하여 국제사회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쾌거를 거둔 좋은 사례입니다.문화재청과 외교부, 경북 안동시, 탈춤과 관련한 13곳의 국가무형문화재와 5곳의 시도무형문화재 보존단체 및 세계탈문화예술연맹이 준비 과정에서부터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Q. 현재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은 어떤 종목의 탈춤이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나요. A. ‘한국의 탈춤’은 모두 18개 종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양주별산대놀이·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강릉관노가면극(강릉단오제)·북청사자놀음·봉산탈춤·동래야류·강령탈춤·수영야류·송파산대놀이·은율탈춤·하회별신굿탈놀이·가산오광대 등 13개의 국가무형문화재와 속초사자놀이(강원)·퇴계원산대놀이(경기)·진주오광대(경남)·김해오광대(경남)·예천청단놀음(경북) 등 5개 시도무형문화재입니다. Q. 현재 송파산대놀이 전승활동을 하는 회원의 구성원은 몇 분이신가요. A. 6명이던 보유자가 1995년 이후 1명뿐이다. 보유자 늘리고 국가 지원 확대 필요합니다. 송파산대놀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전승자가 줄어 위기를 겪는 현실은 여전하고. 현재 송파산대놀이에는 2006년 보유자가 된 함완식, 지난 7월 명예보유자가 된 이 회장을 비롯해 전승교육사(전수교육을 하는 자) 5명, 이수자(전수교육을 마친 자) 20명, 전수자(전수교육을 받는 자) 26명이 있다. 이 중 이수자는 11명, 전수자는 23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유자가 하나둘 사망하면서 1994년 이후 송파산대놀이 보유자는 한명도 남지 않았습다. 이후 1995년 5월 김학석(1940~2014)이 보유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송파산대놀이 보유자는 1명에 불과합니다. Q. 왜 보유자를 늘리지 못하나요. A. 단체 몇몇 사람을 보유자로 인정하는 데 따라 전승자 간에 불화를 조성할 수 있고 예산 관계상 다수의 보유자 인정이 어려워 단체 성격별로 주된 기능을 보유한 자를 1~2명 이내에서 두기로 국가 방침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전수자가 많이 줄어 송파산대놀이가 언제까지 존속할지 걱정이 크죠. 전수자뿐만 아니라 보유자가 돼도 탈춤으로 생계유지가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거리입니다. 국가 지원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공연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하는 제자들을 볼 때가 가슴 아프죠. 겨우 1년에 한번 정기 공연하는 것과 운영비 정도 받는 게 전부죠. 인간문화재가 매달 국가에서 받는 150만원으로는 생계유지도 힘들어요. 더구나 요즘에는 젊은이들도 잘 오지 않는 현실이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쳐도 중학교 2학년을 마치는 순간 안 나와요. 대학 가는 데 도움이 안 되니 부모들이 아무도 자기 자식을 보내지 않는 거죠. 예능을 가장 감수성 있게 받아들이기 쉬운 때를 놓쳐버리고 마는 거죠. Q. 해방이후 탈춤이 가장 활발하게 전승활동이 이루어진 때는 언제인가요 A. 1970~80년대는 대학 탈춤패가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대학마다 문전성시를 이뤄 전수관에도 엄청나게 몰려왔어요. 그 당시 정신없었죠. 20여년 동안 활발한 전승이 이뤄졌다고 봅니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전수장학생 25명 중 5년간의 교육을 마친 18명이 이수자가 됐고. 1986년에는 전수교육 대상이 전수장학생뿐만 아니라 전수장학생 연령을 초과한 일반전수생까지 확대됐습니다. Q. 전승활동 기간 중 외부의 원인으로 전환기나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나요. A. 대학 탈춤패가 대부분 운동권 중심이다보니 탈춤 추는 사람들을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봤죠. 당시 탈춤 배우러 가면 경찰에서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 이후 점차 배우러 오는 사람이 줄었습니다.(계속)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현황은 종묘 제례악(2001), 판소리(2003), 강릉 단오제(2005),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2009),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제주해녀문화(2016), 씨름(남북공동, 2018), 연등회(2020), 한국의 탈춤(2022)이다. 그러나 전승활동을 위한 현실은 많은 과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젊은 계승자가 생계를 위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 보존 단체에서는 기예능 보유자가 세상을 떠나고 전승하는 제자가 없어서 소멸되어가고 있다. 우리 고유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한편,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에 따라 문화다양성과 인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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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정년이’, 새로운 왕자들의 합창2019~2022년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된 ‘정년이’(글 서이레·그림 나몬)가 3월 17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29일까지의 모든 공연은 빠른 속도 전석 매진되며 대중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매번 창극단 작품이 화제가 되긴 했었으나 두 달 전에 전석 매진이 된 경우는 드물기에, ‘정년이’의 파급력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서울의 여성국극단을 배경으로 국극 배우가 되고 싶은 목포 소녀 '정년이'와 국극 단원들의 성장기를 그린 이 작품은, 여성 국극(國劇)을 배경으로 그 당시 여성 소리꾼들의 성장과 우정, 꿈 등에 초점을 맞춰 '진정한 여성 서사 웹툰', '성 고정관념을 탈피한 웹툰'이라는 평을 받으며 큰 인기를 누려왔다. 여성 국극은 창극의 한 갈래로서 1948년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와 여성국악동호회라는 것을 조직한 것이 그 뿌리다. 고전적 표현 방식으로 ‘소리’를 사용하였고 여성들만이 단원이었기 때문에 여성국악인들이 남장(男裝)을 하고 공연한 점이 특징이다. 사랑과 이별,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이야기를 다루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영화의 발달과 텔레비전의 보급, 그리고 여성들로만 구성된 이 장르가 창극의 제 모습을 잃는다며 차별받고 배제, 폄하되며 1950년대 말부터 급격히 쇠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년이’는 소리와 춤, 연기가 어우러진 창극 자체를 소재로 하는 만큼 국립창극단만이 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기대에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전통예술 속 연극적 원형을 꾸준히 탐구해온 남인우가 연출을, ‘패왕별희’ ‘나무, 물고기, 달’ 등에서 창극 음악의 다채로움을 보여준 이자람이 작창을 맡았기에 어떤 방향으로 무대가 만들어질지 더욱 기대되었다. 공연 둘째 날이었던 토요일 오후, 달오름극장은 공연 30분 전부터 ‘정년이’ 공연을 보기 위해 온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객석은 놀랄 정도로 가득 찼다. 현대의 창극으로 재현하는 70년 전 국극은 어떤 모습일지, 판소리를 중심에 두고 현대적인 음악을 보여주는 작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원작 웹툰의 주제를 얼마나 뚜렷하고 명확하게 나타낼지, 마지막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소리’, ‘전통’이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초점을 두고 공연을 관람하였다. 첫 곡 ‘이 시대의 왕자들이 온다’ 합창으로 막이 열리자마자 엄청난 환호성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악기 반주는 타악기와 아쟁, 피리, 거문고, 대금, 가야금, 그리고 건반으로 구성되었다. 이자람 음악감독에 의하면, 기악부의 수성가락(정해진 악보 없이 노랫소리를 따라 반주하는 가락)이 중심을 튼튼히 잡고, 음악적 사운드의 질감은 피아노와 신디사이저가 담당하였다고 한다. 작품의 내용상 합창 외에도 소리꾼 한 명이 전통 혹은 작창된 소리를 부르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때 북 반주와 거문고나 대금의 수성가락이 덧붙여지며 무대의 풍성함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웬만한 곡의 수성가락을 대부분 거문고가 맡은 것은 아쉬웠다. 물론 전통적으로 거문고가 수성가락을 많이 담당하고, 음색이 소리와 잘 어우러지는 것은 맞으나, 다른 국악기를 활용하여 수성가락을 연주하는 새로운 시도가 있어도 신선하고 현대적인 색깔을 내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악기 반주는 무대를 관통하며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소리를 적절하게 받쳐주고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훌륭한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195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나타내는 엔카(메이지 시대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일본의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로,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나 정서에 기초한 장르)풍의 연주에 반도네온 소리를 입히고, 엔카 선법인 요나누키 음계를 활용한 음악을 창작하여 적절한 분위기를 자아낸 부분은 무대의 집중도와 흥미를 높이는데 효과적이었다. 이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첫 번째 장면은, 처음으로 팬이 생겨 설레고 기뻐하는 정년이와,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무대에 서지만 결국 엄마가 무대를 보러 오지 않았음을 알고 슬퍼하는 영서의 대비되는 감정을 노래한 장면이다. 행복해하는 정년의 마음을 장조(Major)로, 영서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단조(Minor)로 하여 두 조를 조화롭게 섞인 하나의 음악이 연주되었고, 같은 선율을 노래하지만 정년이는 높게, 영서는 한 옥타브 낮게 부름으로 감정의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주었다. 이 부분은 주인공들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가사와 연출, 음악까지 완전히 어우러지며 큰 울림을 주었다. 다음으로 정년의 엄마인 채공선과 정년이가 바다에서 함께 대화하고 소리 하는 장면은 무대의 꽃처럼 빛났다. 더 이상 소리를 하지 못한다고 좌절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정년에게, 정년의 엄마이자 유명 국극 배우였던 채공선은 온몸으로 노래하라며 정년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조용히 ‘추월만정(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으로, 황후가 된 심청이 부친을 생각하며 부르는 대목)’을 부른다. 이때 그 어떤 악기 반주도 연주되지 않았고, 그저 바다의 파도 소리만이 무대를 감쌌다. 소리를 사랑하는 모녀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여진 그 장면은, 무언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커다란 마음에 대한 경외와, 두 여성의 고뇌와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눈물을 자아냈다. 정년이는 계속하여 ‘나는 소리 하는 게 좋을 뿐’이라며 소리에 대한 사랑을 계속하여 내보인다. 그 마음은 정년이의 대사와 창작된 음악에도 온전히 드러났는데, 이는 작창을 맡은 음악감독이자 소리꾼인 이자람의 마음과도 동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작품뿐 아니라 수많은 작품의 작창을 담당해 온 이자람의 이번 작품에는 더욱 깊이 있는 감성이 묻어났다. 오랜 시간 소리와 함께해 왔고 소리를 통해 다양한 작업을 해 왔던 그였기에, 더더욱 이 무대에서 소리를 향한 그 마음을 작창에 아낌없이 쏟아부었을지도 모른다. ‘소리는 내 바닥, 내 하늘, 나의 전부’라는 가사는 정년이와 이자람 음악감독의 공통된 마음이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 무대에 서는 것을 염원하고 소리와 전통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매란국극단 단원들의 모습은 전통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우리 선조들에 대한 숙연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외압과 전쟁 상황에서도 우리 음악을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창극 '정년이'를 무대에서 관람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창극 작창 작업에서는 전통 판소리의 음악적 어법을 따르는 수많은 선율적 실험을 비롯하여 팝(Pop) 음악의 코드 진행 위에서 우평조 악조를 사용한 선율 만들기, 엔카의 코드 진행을 따르며 계면조 선율 만들기, 전통적 악조를 사용하지 않는 선율에서 판소리를 특징짓는 시김새를 잃지 않기 등의 시도를 구현했다고 한다. 그 모든 시도는 우리의 전통을 다루는 이 무대에 잘 어울렸으며, 이게 바로 창극이 보여줄 수 있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트로이의 여인들’, ‘오르페오전’ 등 국립창극단에서 선보였던, 해외 극을 배경으로 한 무대는 참신하고 매력적이었으나 우리 문화와는 다른 부분이 있었기에 이질적이고 어딘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소리와 전통,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이 무대에서 국립창극단은 우리 정서와 우리 음악을 아낌없이 펼쳐낼 수 있었고, 바로 이런 한국적인 문화가 가득 담긴 무대야말로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멋진 우리 예술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벅차 올랐다. 매란국극단 단원들이 각자의 꿈을 향하는 모습, 소리와 무대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연습하는 모습, 그리고 가부장적인 세상에서 차별받고 억압 당하던 여성들의 아픔과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결국 모두가 평등하고 하나의 꿈을 좇는 새로운 시각의 ‘자명고’ 무대를 올린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하였다. 남자 됨과 여자 됨이라는 가소로운 잣대의 역할에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왕자들은 오늘도 함께, 당당히 걸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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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관현악의 ‘내일’에 공감!지난 3월 10일(금) 서울시 여의도 KBS홀에서 KBS국악관현악단 제260회 정기연주회 ‘내일’이 열렸다. 지난 1월 위촉된 박상후 제6대 상임지휘자의 첫 정기연주회이기도 하다. 박 상임지휘자는 지난 2월 위촉 기자간담회에서 "정기연주회는 순수예술단체로서 악단의 예술적인 목표와 정체성을 보이는 기회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그것을 이번 무대에서 구현했다. ‘내일’이라는 주제로, 관객과 함께 국악관현악의 과거, 현재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조명한다는 취지를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음악적 소재와 구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구축하며 국악관현악의 장르적 색채를 만들어가는 네 명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 이해식(1943-2020) 작곡 - 국악은 춤추듯 쉽고도 재미있다. 곡의 도입부는 기존의 창작국악에서 듣지 못했던 경쾌한 약강 리듬으로 새롭지만 익숙하게 다가온다. 마치 시골의 장난기 가득한 소년과 함께 뛰노는 강아지가 연상될 정도로, 토속적이지만, 경쾌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가락이 반복된다. 이어지는 탬버린의 리듬은 현대적이면서도 국악기들 안에서 녹아든다. 현악기들의 적절한 농현은 경쾌함을 더한다. 이후 북의 힘찬 독주와 함께 곡의 강렬한 전환을 알린다. 다시 주제선율이 반복되면서, 처음의 가락이 이어지고, 관객에게 각인된다. 리듬에 색을 더하는 타악기들의 연주도 인상적이다. 경쾌한 주제선율이 국악적 연주와 어우러져, 순수한 동심을 연상시키고, 춤을 자극한다. 춤은 자연 안의 바람처럼 인간에게 내재된 또 다른 바람일 지도 모른다. 이 곡은 1990년대 ‘젊은이를 위한 춤의 말Ⅱ’, ‘젊은이를 위한 춤의 말’과 함께 젊은이들이 국악을 쉽게 이해하기를 바라는 취지로 창작된 세 작품 중 하나로 알려졌다. 젊은이들이 국악의 세계로 입문하도록 토속적이지만 쉽고도 경쾌한 가락을 신선한 방식으로 반복하여 들려줌으로써 각인시킨다. 이해식 작곡가는 민요, 무속음악 등에 뿌리를 두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속음악은 그 특성상 인간의 삶과 노동의 일부였으며 자연 또한 그러했다. 때문에 ‘춤’, ‘바람’ 역시 작곡가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는 주요한 소재였을 것이다. 하루(Haru) / 토머스 오즈번(Thosmas Osborne) 작곡 - ‘cycle(주기, 순환)’의 한국음악적 형상화 곡은 ‘해 뜨는 아침’, ‘한낮의 폭풍우’, ‘황혼’, ‘보름달’ 4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마치 기승전결로 삶의 굴곡과 주기를 말하는 듯하다.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곡이면서도 ‘주기·순환(cycle)’을 삶의 주요 과정으로 보고, 나아가 삶과 삶을 잇는 ’윤회‘의 과정까지 맥을 같이하는 동양적 메시지가 강한 곡이다. ‘해 뜨는 아침’ 도입부에서, 고음 가야금의 빠른 연주와 저음 아쟁의 깊은 농현이 주고받는 듯한 연주는 신비롭고도 긴장감이 감도는 새벽을 연상케 하며, 은은한 주발(놋그릇 모양의 금속 타악기)의 합류는 고요를 감싸는 듯하다. 악기들이 합류하고, 박자는 빨라지며 아침 해를 맞이하는 절정을 맞이한다. 아쟁의 활을 튕기는 듯한 연주(살탄도, Saltando)는 긴박감을 더하는 등 악기들의 연주에서 다양한 시도가 엿보인다. ‘한낮의 폭풍우’ 강렬한 단조 느낌의 합주로 불안, 긴장을 담은 시작이다. 아쟁이 강한 음으로 곡을 주도하며 북 등의 강렬한 타악기의 빠른 두드림으로 긴장의 극대화에 이른다. 특히 곡의 절정에서 꽹과리 연주는 관현악 안에서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황혼’ 거문고를 2개의 술대를 이용하여 나지막하고도 긁는 듯한 소리로 시작한다. 작은 소리의 독주는 더 집중하게 한다. 아쟁의 선율에서 나오는 굵고도 단조 느낌의 곡이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보름달’ 생황 특유의 신비로운 화음으로 시작한다. 양금의 선율도 그 신비로움을 더한다. 가야금, 대금 등의 악기들의 합류로 서서히 오르는 달을 떠올리게 한다. 박자는 서서히 빨라지며, 꽹과리 등 타악기 등 악기들의 강렬한 합주는 보름달의 밝음과 완전의 극치를 말하는 듯하다. 다시 고요함 속에서 1악장의 곡이 반복되며, 점차 절정을 맞으며 곡은 마친다. 1악장 곡의 반복은 아마도 ‘주기·순환(cycle)’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탄탄한 음악적 구성은 물론, 전체적으로 다양한 국악기들과 다양한 연주법들이 등장하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곡가가 노력해왔던 국악기에 대한 탐색과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곡이다. 작곡가 토머스 오즈번(Thomas Osborne)은 동·서양, 전통·현대 음악을 넘나들며 음악적 시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폭넓은 작품세계를 펼쳐온 작곡가이며, 다수의 한국 창작곡들을 발표해오며 한국음악과의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파도(波濤): 물의 춤 / 장석진 작곡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곡가 전체 합주로 강렬하게 시작한다. 이후 현악기의 빠른 박자와 피리의 힘찬 연주, 대금은 망망대해를 연상케 한다. 이후 전체 합주로 이어지는 웅장함은 높은 파도가 쏟아지는 듯하다. 가야금, 거문고 등의 연주와 함께 곡은 다시 느려지고 대금이 합류하며 고요한 바다를 연상케 한다. 해금 합주는 구슬픔과 삶의 역경이 느껴진다. 양금, 가야금 등의 신비로운 음색이 돋보이며, 이어지는 저음의 현악기, 고음의 해금 연주로 망망대해를 헤치는 듯하고, 이후의 북소리는 점차 거세지는 파도를 연상케 한다. 이 웅장함과 힘, 음색, 선율의 감동은 파도 안에서 휩쓸리는 듯한 강렬함을 느끼게 한다. 이 곡은 작년 성남시립국악단 송년음악회에서 위촉 초연된 곡으로 창작음악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장석진 작곡가는 서양음악과 국악 모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금, 소아쟁, 거문고를 위한 협주곡 ‘내일’ / 작곡 김성국 - 그들의 내일을 사는 오늘과 다음 내일, 그리고 창작국악의 내일 이번 공연에서 가장 꽉 찬 무대는 단연 ‘대금, 소아쟁, 거문고를 위한 협주곡 ‘내일’’이었다. 관객들의 호응이 압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 네 개 국악관현악단 구성원들이 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났기 때문이다. 김상훈(아쟁,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오경자(거문고, 국립국악관현악단), 류근화(대금,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연주자가 수준 높은 연주로 무대를 빛냈다. 이 곡은 남도 시나위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한 곡이며 떠나간 이들, 남은 자들의 성찰, 그리고 그들이 바라던 내일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굿이라는 사회적 의미도 갖는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내일을 준비한다는 면에서 현재의 국악관현악에도 의미 있는 선곡이다. 연주자들의 높은 음악적 역량이 요구되는 시나위답게 각 협연자들은 애절한 남도 가락을 타고 자신만의 모든 음악적 역량을 쏟아내며, 관객을 압도하는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아쟁은 깊고도 구슬픈 음색으로 위로를, 거문고는 묵직하고도 짙은 음색으로 진중함을, 대금은 훨훨 나는 새와 같은 부드럽고 고운 음색으로 처연함을 전했다. 또한 관현악의 웅장함과 엄숙함이 더해져 감동은 더욱 무르익었다. 무엇보다 장단 위에서 협연자들과 악단이 시나위에서와 같은 즉흥 연주를 격렬하게 펼치는 부분은 ‘한(恨), 슬픔, 위로, 벅차오름’ 등 복합적인 감정이 동시에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하게 했다. 다른 듯 같은 길을 가는 연주였으며, 저마다의 음악으로 관객에게 말했으며, 저마다의 악기는 저마다의 인간 군상이었으며, 그들의 말하는 방식이었다. 각자의 곡을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합주로 느껴지는 이유는 하나의 장단 위에서, 우리 선율로, 우리만의 정서를 공유하는 ‘한(恨)과 공동체’의 음악 ‘시나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주가 끝난 후, 협연자들과 악단은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주었으며, 협연자들은 손을 맞잡고 이 날의 감동을 관객들과 공유했다. 또한 박 상임지휘자는 각 연주 후마다, 곡의 주요 연주자들이 단독으로 관객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관현악은 지휘자만의 것이 아닌, 연주자들과 함께 만드는 것임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공감을 이끌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공연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채 감상평을 주고받으며 KBS홀을 나섰다. 초등학생 손녀와 함께 온 여성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신00 / 60대,(여) 국악은 한복입고 하는 옛 음악으로만 알려졌는데, 개인적으로 오늘 공연 보고나서 드는 생각이, 서양 관현악이랑 어우러져서 독특한 우리만의 독특한 음향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국악이 좀 더 활성화되면, 서양 클래식 못지않게 세계화 되고,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 같아요. KBS국악관현악단 공연을 두 번째 관람한다고 전한 50대 부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00 / 50대, (남) 화끈하게 좋았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한00 / 50대, (여) 하모니가 너무 좋더라고요. 웅장하면서도 화려함이 있고요. 국악 비전공자인 20대 한 여성은 국악을 듣고자 혼자 왔다고 전했다. 전00 / 20대, (여) 평소에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특히 꽹과리 소리가 좋아서 혹시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왔는데, 마침 연주 부분이 있더라고요. 소리가 미래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오늘 연주에서 3중주 부분이, 특히 거문고 연주가 너무 좋았어요. 위아래 오르내리면서 타는 듯한 소리가 다른 악기에 비해서 저한테는 거문고가 더 잘 느껴지더라고요. 산조는 대화 같고, 합주는 발표하는 느낌이랄까? 관현악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국악을 전공하는 10대 고등학생들은 배움의 과정에서 얻은 자극과 영감으로 자신의 전공과 관련하여 느낀 특별한 감동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홍00 / 10대, (여) 거문고 연주(3중주)를 처음 듣는 순간, 눈물이 나왔어요. ‘아, 나는 그 동안 감정을 안 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가짐을 다시 가지게 됐어요. 김00 / 10대, (남) 대금 연주(3중주)에서 꺾는 음, 태(太)농음이 기가 막혔어요. 처음 도입부 솔로 부분에서 반음, 음정관계, 연주 모든 것이 멋있었어요. 김00 / 10대, (여) 거문고 연주(3중주)할 때 대점이, 힘 조절이 중요한데 오늘 연주는 정말 완벽했어요. 아쟁 연주도 훌륭했고 소리의 여백을 잘 채워주셨고요. 관현악단 호흡도 정말 훌륭했어요. 노00 / 10대, (여) 대금과 소금에 비해서 중금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이 없는데, 오늘 중금 연주를 처음 들었거든요. 너무 좋더라고요. 색다른 충격이었어요. 국악(타악)을 전공한 20대 아들과 동행한 아버지는 이전에도 KBS국악관현악단 공연을 몇 차례 관람했다고 전했다. 부자는 각자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김00(아버지) / 50대, (남) 이번 공연은 새롭고 다채로운 것 같아요. 지휘자가 바뀌어서 그런지 음악들이 새롭고, 곡도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마지막 곡이 좋았어요. 협연자들이 음악적 표현도 잘 살려주시고, 관현악단과도 잘 어울렸고요. 곡이 역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느낌 모두가 살아있더라고요. 김00(아들) / 20대, (남) 악기 편성도 좋았고, 웅장하고, 음향시설도 좋아서 소리도 잘 들렸어요. 곡마다 분위기도 잘 살아서 집중할 수 있었어요. 서정적일 때, 웅장할 때 그 때마다의 감성이 잘 표현된 것 같았어요. KBS국악관현악단의 예술적 목표와 정체성 앞서 언급했듯이, 박 상임지휘자는 정기연주회를 악단의 예술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번 연주회의 곡 구성에서 그 의지와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민속음악에 뿌리를 두고 현대적 어법으로 한국적 창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이해식의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공간을 초월하여 외부의 시선에서 한국적 관현악을 선보이는 토머스 오즈번의 ‘하루’, 서양음악과 창작국악을 넘나들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지는 장석진의 ‘파도:물의 춤’, 그리고 떠난 이들의 미래, 즉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다음 미래를 향한 ‘내일’과 그 안에서 협력과 상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3중주 협주곡 ‘내일’. 이것들이 바로 KBS국악관현악단이 바라본 과거와 현재이며, 지향하는 ‘내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네 곡 모두 전통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현대 음악에 대한 탄탄한 기량, 그리고 전통음악과의 결합 지점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반영된 곡들이다. 전통국악이 과거의 음악을 탐색한다면, 유일하게 현대를 다루고 논할 수 있는 국악 장르가 창작국악일 것이다. 그 특권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통음악과 우리를 잇는 가교로서, 한국음악의 새로운 전통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이기를 기대한다. 다음 정기연주회는 9월 예정되어 있으며, ‘시청자 감사음악회’가 4월 16일 ‘실내악 시리즈Ⅰ- 명곡 Talk+’라는 주제로 관객을 찾아간다. ‘시청자 감사음악회’는 보다 대중적인 성격을 가지며 9월을 제외하고 11월까지 매달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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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사암리어린이농악단을 꿈꾼다지난달 춘천사암리농악회에서 주관한 '제4회 사암리공지어샘굿'이 지역 주민의 참여와 성원으로 성공적으로 마치었다. 공지어 전설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와 마을 곳곳에 공지어를 줄에 걸어두는 설치미술이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국악신문에서 '춘천 사암리 샘굿' 행사 기사를 내보내고 나서 이 행사를 주관한 춘천사암리농악단 오선주 단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되었다. 왜냐하면 잊혀져 가는 마을제의 복원과 샘굿의 주제를 전설의 물고기 '공지어'라는 신성한 대상을 구현해 내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을 담보한 공지어는 샘에서 사는 주인장이고, 물의 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공지어에게 소원도 빌어본다. 특히 샘굿에서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가 공지어를 표상하는 퍼포먼스까지 더한 콜라보는 마치 한장의 그림처럼 각인이 되어버렸다. 마을제 샘굿의 전승주체는 마을사람들과 사암리농악보존회이다. 특히 여성이 상쇠라는 농악단이라서 더욱 오선주 단장을 만나보고 싶었다. Q. 안녕하세요. 오선주 단장님, 서울 출생이신 분이 어떤 계기로 전통을 만나서 '농악'을 택하고 오늘까지 춘천사암리농악보존회를 이끌어 오셨는지요. A.광화문에 있던 경기여자고등학교 학예회 무대에서 '소고춤'을 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때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봉산탈춤 김선봉선생님께 탈춤을 배우면서 즐겁고 낭만에 젖었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고, 1996년 대학로에서 풍물 동아리 '굿누리'를 결성해 활동하다보니, 서울에서 소도예술단 상쇠로 활동하고, 2006년 정철기 선생의 '부포놀음' 장르까지 욕심이 나서 찾아가서 부포 돌리기까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2000년부터 마임이스트인 유진규씨와 함께 해마다 프랑스 미모스축제.영국 런던마임축제.독일 하노버엑스포,벨기에 하멜축제 등에 참가하여 상술놀이반주와 상포판굿 공연을 하면서 문화교류 민간외교사절단의 역할도 톡톡히 했습니다. 이후 남편을 따라서 춘천에 정착하게 되면서, 2005년부터는 춘천문화원에서 사물놀이와 농악을 지도하게 되었으며, 2009년 중국에서, 우리 한반도에서 발생한 농악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것을 보고 크게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후 2011년 문화원에서 사암리농악학술조사를 위해 사암리에 파견되면서, 나중에는 사암리에 이주하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고, '사암리 농악'과 반평생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Q. 본업인 농악보다도 '남사당놀이'를 먼저 배우게된 계기는, 남사당놀이 전수는 누구에게 받으셨나요? A. 풍물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있던 차에 이화여대 다니던 20대 초 시절,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님이 기획하신 '발탈' 공연을 너무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생생해서 가슴에 담고 있다가....풍물과 인형극이 어우러지는 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남사당놀이' 보유자이신 고 박용태(1944년) 선생님을 찾아가 '꼭두각시놀음'에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남사당놀이를 배우려다가 욕심이 나서 다른 장르의 농악도 함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Q. '꼭뚜각시놀음'은 누구에게 전수받으셨나요. A. 고 박용택 선생님께 '꼭뚜각시놀음'을 전수받았습니다 아쉽게도 인형극 연습은 많이 못하고 풍물 반주에 관심이 더 있어서, 남사당놀이 중 농악 풍물공부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Q. '대전웃다리농악'도 사사했는데 스승의 계보를 밝히신다면? A.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대전웃다리농악'을 인간문화재이신 송덕수'선생님을 찾아가 공부하여 전수자가 되었습니다. 전수조교 김은빈 선생님과 김경수 사무장님께서 보조 강사로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해마다 '농악전수 여름캠프'에 참여해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Q. '사물놀이'를 언제부터 배웠는지요. A.사물놀이 공연은 1978년 공간사랑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매료되었으며, 직접 배우게 된건 1992년 춘천 사회문화연구회 강습을 통해서이고, 1993년에는 ‘우리소리' 풍물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96년 여성풍물패 '굿누리'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공연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소리에서 활동하던 분들과의 인연은 사암리농악단까지 어어지고 있습니다. 오단장은 여고시절 소고춤을 접하고 대학시절 발탈을 보고 영감을 받고나서, 고 김용택 선생님을 찾아가 '꼭두각시놀음'에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남사당놀이를 배우려다가 농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Q. 농악을 하시는 분들이 탈춤. 회심곡, 비나리 같은 장르도 배우시는데. 오단장님은 민속문화, 즉 전통예술 장르 중 더 배우고 싶은 장르는 무엇인가요? A. 저희 동네에 강원도 도청 신청사가 신축되는데, 전통방식으로 부르는 토속소리 '지경다지기'를 배워서 농악단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 마을 공동체사업중 하나인 '농요배우기' 시간에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지경다지기소리'를 전수받을 계획입니다. 마을제 '샘굿'과 사암리농악보존회 Q. 사암리농악보존회를 결성하게된 계기 A. 2013년 춘천문화원학술대회에서 중국에서 2009년 유네스코에 등재돼 중국 조선 동포들이 향유하는 '농악무'의 뿌리가 "1927년 춘천 사암리 주민들이 가난을 피해 중국으로 이주해 영벽에 자리잡게 되었고, 낮선 이국땅에서 배고품과 추위를 달래기 위해 영벽바위 밑에서 풍물을 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랬다"는 길림신문에 난 기사를 바탕으로 자료 수집을 위해 사암리농악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게 되었고 그 당시 생존해 계시던 97세 상쇠 최정하 옹을 만나 많은 고증을 통해 최상쇠님이 중국으로 이주해 간 선조들이 춘천에서 농악할 때, 무등을 타셨다는 사실, 또한 송봉규, 송학규, 김봉렬, 신현수님, 등 1950년대에 농악을 하셨던 어르신들의 고증도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파도파도 끝이 없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물지도가 사임리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인류문화유산을 발굴해 가는 체계적인 과정을 이어 나가고자 2015년 보존회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Q. 농악대를 이끄는 여성 상쇠로서의 자부심이 어떤가요? A. 딱히 괭과리 소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1992년 취미생활로 참가한 '춘천사회문화연구회'에서 그나마 빨리 장단의 구조를 이해하다 보니 상쇠를 맡게된 후로는 계속 제 역할이 꽹과리를 맡게 되어 자연스럽게 꽹과리 인생이 풍물인생이 된듯 합니다. Q. 1999년 제1회 강원도 사물놀이 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하신 감동? A. 대상을 타기는 했는데 1회로 끝난 의미없는 대회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제 이력에서 삭제하겠습니다. 수상해서 기뻤던 것은 2010년 강원도 문화원 사물놀이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으로 그 당시만해도 일반인이 상모돌리면서 연주하는팀이 거의 없었던 시기인데. 제가 지도하는 춘주농악팀 전원이 상모를 돌리며 연주하여 관객들이 깜짝 놀라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2017년 전국웃다리경연대회에서도 제가 지도하는 춘주농악팀이 차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Q. 2010년 전국농어민 풍물경연대회 강원도 대표 참가하셨는데, A. 춘천문화원에서 농악을 지도하다보니 전국대회에 까지 자연스럽게 참가하게 되었고 하도 긴장을 해서 우리가 어떻게 했냐보다는 전국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보며 흥미로웠고 남산한옥마을 구경하며 즐거워 했던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Q. 평창올림픽 때 어찌해서 참가하게 되었는지요? A. 평창문화올림픽 연출하시는 백형민 선생님과의 인연이 있어 문화버스킹 공연 총3회 참가하는, 저에게는 너무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Q. 작년 예술의 전당 유진규 마임 50주년 기념 헌정공연으로 농악을 선보였는데, 궁금합니다. A. 유진규씨와는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을 맡았던 2002년부터 프랑스 페리그 미모스마임축제, 영국 런던마임축제, 독일하노버엑스포, 네덜란드 하멜축제, 벨기에 마임축제,일본 도야마 마임축제, 홍콩 프린지 초청공연, 중국 상하이국제연극제 등에 참가했던 작품 "빈손”의 사물놀이 반주자로 오랜기간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임인생 50주년기념 헌정공연을 서울 예술의 전당과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기획하여 초청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런 뜻깊은 공연을 마치고 커텐콜을 할 때, 남편이 뜬금없이 관객을 향해 그동안 내조를 해 준 저를 언급해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한평생 예술가라는 외길 인생을 걸어온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난관들이 이상하게도 한번에 다 보상받는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Q. 2007년 풍물부 장원을 받으셨는데, 사진이 있나요? A.아쉽게도 그 당시 찍은 사진은 없고, 그 다음해 포스터에는 전해년도 장원 수상하는 사진이 들어가는 관습이 있어서, 제가 들어간 팜플렛 사진을 찾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Q. 해외공연 중 기억에 남는 장소는 A. 해외공연중에는 그저 비행기 타고 가서 공연장 주변에 숙소를 구하고 공연장 리허설, 그리고 공연후 귀국 등 바쁜 여행일정이었는데, 딱 한번 프랑스미모스축제 참가 후에는 공연을 마친 후 거의 한달간 벨기에,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등 주변,국가를 자유롭게 여행 다닌 기억이 제일 추억에 남습니다. 마침 축제기간과 겹쳐서 민속공연도 볼 수 있었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국적불문하고 모두 통한다는 거죠. 외국어를 서로 몰라서 말이 안 통해도 예술은 통한다는거죠.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국민들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Q. 존경하는 국악인은 누구신가요? A. 농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안성바우덕이' 상쇠입니다. 19세기 대원군이 경복궁 중수시 전국에서 강제동원된 젊은이들이 고향이 그리워서 밤마다 궁에 불을 지르자. 대원군이 이들을 위로하게 위해 전국 소리패 광대패들을 서울로 올려서 전국 단위 콘서트를 벌렸죠. 거기서 최고상으로 옥관자를 받은 바우덕이입니다. A. 전통이란 무게를 30여 년 동안 가지고 오시면서 가볍지는 않은 시절을 보내셨는데.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은 언제이셨는지요. Q. 의무기록을 보니 2010년에 뇌수막종 수술 받았네요. 너무 어지러워서 하던 농악 전수 공부를 더 이상 못한 게 가장 아쉽습니다. 이후에 이 전통놀이 농악대가 저를 살려낸 거지요. 우울하다가도 벽에 걸린 상모를 보면 농악이 생각나고. 그러면 몸을 추수려서 밖에 나가게 되지요. 그래서 지금은 완치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어요. 전환점이 된거지요. 다행인건 그 덕분에 우리 마을에 더 애정을 갖고 집중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살아야 인간이 산다" Q.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과 이번 공지어축제를 같이 해보시고, 유진규 선생과 앞으로 '농악+퍼포먼스' 콜라보 작품 구상을 하시는지요. A.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동내면 '대룡산 공지어놀이'에서 유진규씨가 총연출, 제가 기획을 맡았습니다. 사암리 대룡산과 공지천 공지어를 잇는 스토리텔링으로 첫번째는 사암리 약물샘에서 샘굿으로 제의적 축제를 벌였고, 두번째는 동내면민이 함께하는 마을축제와 소리꾼을 찾는 경연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몸짓으로 제의적 행위를 할 때에 원초적 소리도 있어야지요. 반주가 곁드려져야 더욱 효과적이기에 마임과 풍물은 계속 함께 공동작업을 할겁니다. Q. 내년 제5회 샘굿에는 올해와는 좀 더 확장된 새로운 장르를 기대해도 될까요. A. 내년에는 퇴계선생이 공지천에 볏짚을 뿌리자 물고기로 변했다는 전설을 근간으로 공지어 제작에 좀 더 신비한 비주얼을 가미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공지어 설화'를 소재로 한 마술도 축제 마당에 끌어오려 합니다. Q. 올해 샘굿은 언제 개최되었나요. 공지어 샘굿할 때 부르던 노래 가사는 기억나시나요 A. 첫번째 놀이 대보름맞이 ‘대룡산 샘굿’은 지난달 4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사암리 약물샘 (원창고개길 96-1)과 사암2리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신비한 물고기 ’공지어‘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공지천 곰짓내는 사암리 대룡산에서 발원합니다. 가사는 뚫으세 뚫으세 뻥뻥 뚫으세 수정같이 맑은 샘물 뻥뻥 뚫으세 대룡산 하늘기운 맑은물로 콸콸 솟아 곰짓내로 흘러흘러 공지어가 춤을 추니 올해도 풍년이요 내년에도 대풍일세 Q. 올해 제3회 샘굿에서 택한 주제는 '전설의 물고기 공지어'인데 어떤 역사적/지역적 배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신건가요. A. 춘천엔 퇴계 이황선생의 공지어 설화가 있고, 공지어가 살고 있는 곳이 공지천이며 공지천의 원류중 한곳으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암리 약물샘에서 깨끗한 물과 대기순환을 기원하는 '생명굿'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Q. 내년 사암리 샘굿의 주제나 슬로건에 대해, 기획의도에 대해 구상해 놓으신 것이 있나요. A.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살아야 인간도 산다" 즉,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석유보다도 물이 더 비싼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평소 늘 생각한 이 말이 사암리 공지어전설과 맞아지고, 실제 전해지는 전설의 장소가 있습니다. 사암리 주민들이 지켜나갈 책임이고 과제라고 봅니다. Q. 이번 제3회 샘굿 개최에서 성과는 A.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마을사람들과 하루종일 얼굴 맞대고 볏집으로 공지어를 999마리 만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겨운 시간들을 공유했습니다. 이쁜 공지어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면서 마을 곳곳에 매달면서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Q. 언제나 마을제 샘굿을 함께 하시는 남편, 동반자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예술가 유진규 소개하신다면? A. 1981년 국악 관련 행사에서 만나 결혼을 해서 40년이 넘게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누구에게나 두절 두절 말이 없는 편이시고, 공부를 많이 하십니다. 시사, 철학, 다큐 등...늘 그냥 지나치는 것이 없습니다. 하늘 땅, 물... 등 발밑에 있는 개미까지.....최근에는 청개구리 집을 만들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말한 것(작품)은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믿고 따르는 국내외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진규 하면 '신뢰' 그 자체입니다. 춘천마임축제가 런던 마임축제, 프랑스 미모스축제와 함께 세계 3대 마임축제 중 하나로 정착하는 데는 유진규 선생의 신뢰가 모든 사람들을 집결하게 했습니다. Q. 단장님, 춘천사암리농악보존회의 미래를 위한 계획은 A. 사암리 마을에 다시 사람들이 살러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귀촌을 하고, 어린이들이 태어나고, 학교종이 울리는 것입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사암리농악보존회입니다. 그러면 힘이 나서 더 북을 치고, 어린 계승자들도 이어질거고, 욕심을 낸다면 향토문화재가 되어서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는 지속가능성을 확고히 하는 겁니다. Q. 단장님, 사암리농악보존회 리더로서 꿈이 있으시다면? A. 어린이농악단을 결성하여 사암리농악을 전승하려는게 제 목표입니다 올해부터 어린이농악단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춘천을 대표하는 어린이농악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전통을 계승하는 꿈나무들을 육성하는 것이 꿈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제가 할 일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조선족의 농악무'를 전승하고 있는 '왕청현농악단'과의 교류를 계속 진행할 겁니다. 3년간 코로나로 서로 오고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김명춘 단장과 오늘도 통화해서 서로 교류하길 원한다고 확인했습니다. 올해 9.9절 조선자치족 행사에도 참가할 계획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는 두 부부 중 한 분은 안정된 직장이나 사업장을 운영할법도 한데, 모두 예술가의 길을 가신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오선주 단장이 자식들을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는 20년 동안만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평생 예술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그냥 웃음뿐이다. 내년 제5회 사암리 공지어 샘굿이 기대된다. 전설 속의 공지어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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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풍 같은 아리랑비 건립 100일기념 공연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신선하고, 강물과 구름은 유유히 흘렀다. 15일 12시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 기념비 앞. 정성스런 제물이 차려지고 제문이 낭송되었다. "2022년 12월 5일 정선군과 정선아리랑보존회, 아리랑연합회와 40개 보존회가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을 다짐하여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오늘 비 건립 100일을 맞아 ‘자발적 전승’, ‘형질 전승 유지’, ‘생활 밀착 활동’, ‘공동체 결속 기여’라는 창조적 계승 실천의 자리로 모였습니다. 원류로서의 정선아리랑과 동두천아리랑, 지류로서의 왕십리아리랑과 봄내아리랑이가 비교와 교류를 하는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 담론을 형성하여 논의를 확장시키는 장도 마련했습니다. 흠향!" 이에 모든 참가자가 재배하고 공연을 시작했다. 행사에는 특별히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김남기, 김형조, 김길자 선생, 그리고 이현수 전승교육사도 참관하여 뜻을 더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후렴)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정선아라리) 첫 출연은 정선아리랑보존회, 외지 출연단체를 맞는 의미로 정선아라리를 선보였다. 단촐한 장고 반주의 정선아라리는 아리랭이가 피어오르는 봄 누리를 잔잔히 적서 주었다. 아마도 외지 출연자들의 가슴도 적셔 주었을 것이다. 이어 (주)국악신문사 고문 이무성 화백은 주관사로써의 인사말에서 "이 아리랑비가 아리랑의 메카로서의 기능이 확정되어 세계적 명소가 되길 기원하며, 오늘 이 행사가 그 출발이 되길”바란다고 전했다. 아리랑 특강에 나선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은 "기념비 지역은 청동기 유적으로서의 역사성과 한강 최상류 아우라지라는 지역성은 아리랑의 메카로서 이의가 없다”고 하며, "이 시기와 지역은 아라리 형성과 매우 밀접하다”고 '아리랑의 시원설'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런 사실을 4월 24일 주헝가리한국문회원 초청특강에서 구체적으로 알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어진 공연은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 ‘왕십리아리랑’을 들려주었다. 본조아리랑을 근간으로 창작 되어 따라부르기 쉬운, 근래 넓리 불리는 창작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 갈래요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아리랑 고개에를 함께 넘어요(왕십리아리랑) 왕십리 지역성과 역사 문화를 6절의 가사에 "아리랑 고개에를 함께 넘어요”로 아리랑의 형질을 담았다. 이혜솔 이사장 외 15명이 함께했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유은서 회장과 노옥진씨가 ‘동두천아라리’를 선보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후렴) 꽃이야 곱다마는 가지 높아서 못 꺽었나/꽃은 꺾어 머리에 꽂고 잎은 훓어다 입에물고 동산올라 구경하니 길가는 행인 왜 모르나/ 천하일색 나하나와 놀다가지 못하고(동두천아라리) 메나리제 전통 선율을 담고 있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2020년에 결성되어 지역에서 활발한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마지막 무대는 ‘봄내아리랑’으로 장식했다. 이번 무대가 초연인 만큼 많은 관심을 끈 막내 창작아리랑이었다. 춘천지역 전통 선율에 기반한 작곡, 역사적 지명과 유적의 유려한 표현, 창자 오승현의 농익은 목구성으로 불러준 유려한 선율로 신명이 올라가자 관객은 박수로 답했다. 아리아리 아리랑 쓰리쓰리 쓰리랑/아리랑고개가 왠 고개 곰실곰실 넘어간다 오근내 조근내 날아드는 봉황/소양강 맑은물 춘경 좋기로 봄내로군아 반짝이는 별빛 대룡산 눈꽃/의암호 물결 넘실넘실 웃어있네(봄내아리랑) 이번 모임은 작은 공연과 가벼운 강의를 겸한 렉쳐 형식이었다. 여기에 왕십리아리랑보존회가 준비한 맛있는 봄나물 음식과 눈이 시로도록 파란 화창함이 더해져 참가자들은 ‘봄소풍’ 같다고 했다. 가는 길에는 정선아리랑보존회원들이 준비한 정선 특산품 수리취찰떡을 나누어 먹으며 아리랑 꽃을 피웠다. 한편 행사장에는 정선군 여량면 문용택 면장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 자리에서는 이무성 화백의 ‘뗏목 정선아리랑’ 족자를 정선군에 기증하기 위해 전달 받기도 했다. 이무성 화백은 지난해 12월 5일 군수님의 건립식 기념사에 감명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주관사인 (주)국악신문은 앞으로도 ‘아리랑비’ 의 특화를 위해 소규모 모임과 관광객이 찾는 시기에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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