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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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34)김종욱 청년작가로서 일찍부터 우리 문단에 빛나는 작품을 내놓아 꾸준한 정진을 하여온 안동수 씨는 일작 28일 오후 마침 일요일을 이용하여 동료들과 한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불행히도 익사하였다 한다. 연 35 현금까지 명성고녀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고 뜻하지 않은 유작으로는 목하 인쇄 중에 있는 ‘신문예’ 지 제3호에 단편 ‘산가山家’가 되고 말았다 한다.(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 음악 = [8. 15 기념일 아악부가 연주]: 문외불출의 귀족적인 예술로서 있었다면 일부로 편성되는 겨우 연 수회의 라듸오 방송으로부터 우리에게 사귀어온 것뿐인 구왕궁 아악이 금번 8월 15일 기념일엔 창경원내에서 전원 총동원의 특별 기념연주가 있으리라고 한다. 이것이 만약 기획만이 아니고 실현될 수 있다면 빛나는 우리의 고전이 일반에게 재인식되는 의미로 적지 않은 의의를 가지리라고 벌써부터 고대된다.(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대한연주’ 임시총회서 ‘전국 음악문화협회’로 개칭, 신임위원 박태준 씨 피선]: 대한연주가협회에서는 지난 27일 오후 2시부터 동 임시사무소인 경성 영락정 중앙애육원에서 50 여명 출석 하에 임시총회를 개최한 바 있었는데 석상에서 회합 명칭을 ‘전국음악문화협회’로 변경하는 동시에 그에 따른 역원 개선과 8. 15 행사에 관한 건, 연주 사업에 관한 건 등을 결의하고 동 6시 경 원만 리에 폐회하였다 한다. # 신 역원= 위원장 박태준 ,부 위원장= 채동선, 위원= 이흥렬, 이상춘, 계정식, 안성교安聖敎, 최희남崔熙南, 이유선, 김형로, 이인범, 이관옥李觀玉, 김순애, 김영이金永伊, 한규동韓珪東, 박용구, 김성태, 박태현, 김세형, 김학상金學相 (이상 19명)(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청우대] 26일 오후 한 시 경 모 극장 입구에는 때 아닌 활극 한 막이 벌어졌다. 때마침 제1회 개장시간이 임박한 무렵이다. 관객은 극장 안의 구경보다 이쪽 구경이 낳았든가 그렇지 않아도 벅찬 입구의 혼란은 바람 지나간 수수비를 이루다. 활극이란 그맘때 시간이면 으레 한 차례 쯤은 있는 일도 아니지만 모 요인씨 님이 열을 지어 입장하는 옆 틈에 화살같이 끼어들어 입구 수원守員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소위 무찰입장無札入場을 한 데서 발단- 아무리 요인이라 한들 으레 소지하였을 통감通鑑이나 혹은 증 등을 응당 제시할 의무가 있을 것이고 또한 인정상으로 보더라도 그 편이 우리 예의일 것인데 이 요인은 ‘누구십니까’ 하는 수원에게 다짜고짜로 ‘사람을 깔보는 거야! ’하고 노성대갈怒聲大喝! 이런 버릇은 확실히 일제 강점기의 못된 행세의 한 가지. 해방도 좋으나 아런 좀 버러지들 철부지의 망동은 이제 누가 달궈 빼줄꼬! 이런 무뢰한들을 울며 개자 먹기로 그냥 묵인타가는 우리 수도 문화에 치욕의 뿌리를 키우는 것이 될 것이니 관계자들 한 차례 여론으로 가르쳐줌이 약하若何?(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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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33)김종욱 군정청 예술과 미술계의 발표에 의하면 앞으로 두 주일을 앞 둔 우리 해방의 역사적 기념일 8. 15 당일의 기념행사는 방금 각지 각 단체에서 거족적으로 준비에 분망 중인데 이에 감鑑하여 동계에서는 관할 미술단체 소속 전원에 자격을 띄워 그 행사 장식 등에 적극 협조 혹은 지도하기를 요청하였다 한다. 이에 대하여 각 미술관계 단체에서도 전폭적으로 이를 지지하기로 대개 응낙된 모양인데 이 성과는 매우 기대될 바 있다 한다. [‘미동美同’, ‘조형造型‘, ’조협彫協‘ 협동으로 해방기념미술전 ]: 민족문화 건설에 강력한 통일적인 보조를 가질 필요를 느끼어 이번에 8. 15해방 1주년기념 미술전을 조선조형미술동맹과 조선미술가동맹과 조선조각가협회의 3단체가 합동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하는데 합동전은 조선 문화단체 총연맹 주최의 해방 기념 문화 대 전람회의 일익으로서 문화부면에 광채를 더하게 할 것이며 그 개최시간과 반입기일 회장은 아래와 같다 한다. 시일 8월 20일-27일 장소 동화백화점 반입기일 8월 17일 반입장소 동화백화점(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동양화연구소 신설,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 계획]: 단구미술원에서는 이번에 동원 2층을 이용하여 동양화연구소를 신설할 예정이라는바 준비가 되는대로 근간 개소開所케 하겠다고 한다. (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미협’ 위원회]: ‘미협’에서는 금 30일 오전 10시부터 동 회관 회의실에서 위원회를 개최한다는데 토의될 요항은 다음과 같다 한다. # 해방1주년기념행사 건. # 동 연구소 신설에 관한 건. # 회원 질적 향상에 대한 방침.(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미술인에게 고함(2)]: 이응로 나는 오늘 날 미술인(미술인만이라고 국한하지 않음)의 커다란 두 가지 결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 첫째는 ‘노력의 결핍’ 이요 그 둘째는 ‘태만의 만성화’일 것이다. 과거 왜정시대에 우리는 자기의 내적 요구에 의한 만족스러운 작품을 제작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가 없었으니 그 얼마나 비참한 운명이었으랴. 그러면 우리는 해방되었다는 오늘 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꺼릴 것이냐. 작가의 양심대로 자기의 욕망대로 야심을 충족시키는데 얼마나 좋은 환경이 아닌가 말이다. 자기의 재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고 발전시켜야 할 오늘에 현실은 이와 상반하는 현상을 이루고 있다. 건국도상에 있어서 전 민족의 위대한 민족적 의무라면 그것은 곧 각자의 직책에 충실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금전에 맹목盲目되고 혹자는 정권욕에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한 상태에 있다. 문인도 정객 화가도 정객 민족 전체가 다 위대한 정치가요 시대의 영웅이라면 결국은 사회를 혼란케만 할 따름이요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농군은 농사에 학도는 배움에 문인은 글쓰기에 힘쓸 것이요 화가는 한 폭의 그림이라도 더 그린다는 것이 건국에 대한 가장 큰 이바지라고 생각한다. 연합군이 우리 땅에 진주한 후 우리의 모든 부면은 그 중 특히 문화면에 있어서는 일층 활기를 띄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동양화는 특이한 성격과 사명을 띄운 존재라고 하겠다. 그런 고로 우리 동양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존재일 것이다.(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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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32)김종욱 경향지방에서 가장 많은 문학청년을 포옹하고 있는 인천문학동맹에서는 그동안 과학적 행사 방법을 고려 중이던 바 금반에 시인 김기림 씨와 오장환吳章煥 씨를 초빙하여 28일 즉 어제 오후 7시 반부터 인천 제2 공회당(무덕전武德殿)에서 시강연과 낭독회 ‘시의 밤’을 개최하였는데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인천 발) (藝術通信 251호. 1946년 7월 29일) = 무용 = [최승희 여사의 38 이북 행은 북조선에 큰 수확-조택원趙澤元 씨 담- ] : 작보昨報한 무희 최승희 여사의 38도 이북에 대하여 조선무용예술협회 위원장 조택원‘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귀지貴紙를 보고 비로소 처음 알았는데 동 여사의 이번 38도 이북 행에 대하여서는 위선 나로서는 조금 섭섭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술의 중심지대인 38도 이남 남조선무용계에 있어서 같이 할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 여사의 38도 이북 행은 북선 예술가는 물론 일반에게도 큰 수확이 있을 것을 믿는다. 물론 그 반면에 남조선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요컨대 나는 언제든지 38도 선이 철폐될 것을 믿으며 또한 급속히 실현될 것을 갈망하는 바이므로 나는 그때까지 동 여사의 북조선 예술계의 재건에 있어 건투하여주기를 바란다. ”(藝術通信 251호. 1946년 7월 29일) = 음악 = [군악대원 제2차 모집]: 인천해안경비군악대 경성사무소(명치정 국제악기상회 내)에서는 작일부터 월말까지 제2차 군악대원(하사관 급) 수명을 모집 중인데 지원자는 전기 사무소로 문의하여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藝術通信 251호. 1946년 7월 29일) [8. 15 기념행사첩]: 국악원= 8. 15 기념행사로 예술과의 후원을 얻어 해방 1주년 기념 공연으로 임서방씨 구성의 국악 ‘언 파레이드’를 동원 전원 총동원하여 오는 8월 23일부터 5일까지 3일 간 시내 국도극장에서 개최.(藝術通信 251호. 1946년 7월 29일) = 영화 = [‘영화연구’ 예회 연기]: 지난 번 영화동맹 강좌 수강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영화연구회’ 예회는 8월에 한하여 부득이 18일 오전 11시로 연기하였다고 한다. 장소는 동회 사무실(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군정 영화시보 9. 10보 내용]: 군정청 공보부 영화과 제작 뉴스의 9, 10보는 얼마 전의 8보와 함께 불일 일반 공개되리라 한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런데 이 시보는 원래 일정한 발행 시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대략 우금까지 월 1회의 실시를 보고 있었으나 금번에 한하여 주보적인 형식으로 연속 공개케 된 것은 주목할 만한 능률이라 할 것이다. 9보 내용: 1. 연희대학교 창립30주년 기념식 2. 인천해안경비대의 훈련 3. 불탄 법요식 거행 4. 조미친선 육상경기 실황 5. 특보 ‘아이젠하워; 원수 내조 6. 특급 해방자호의 진급 7. 미국의 종자 도착 10보 내용: 1. 전국 농악대회 광경 2. 미국 영령 추도식 3. 전국 특산품 전람회 4. 군정청 공로직원 표창 5. 자유신문 도시 대항 야구실황 (藝術通信 252호. 1946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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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31)1. 지난 25일 군정청 예술 당국에서는 현 38선 이남에 이쓴 39 악극단 대표자 전원을 초집하고 가극단문제 대책위원회를 개최한 바 있었다 한다. 이 대책위원회란 당국으로서는 전번의 음악위원회 결성과 아울러 주관 사무의 한 가지 처리에 불과한 발동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이 회의의 소집은 작금 혼란 이상으로 저조된 악극문제를 두고 볼 때 가장 시의時宜를 얻은 조치라 할 것이다. 2. 돌이켜 악극계를 일별一瞥컨대 해방 후 그들 단체는 실로 우후죽순처럼 족생簇生되었다. 이것은 우금 껏 일제영화가 전 극장에 판을 치는데 반하여 급격히 그것들이 자취를 감출 운명에 이르게 됨에 소위 극장 일정에 구멍 채우기엔 영리적으로 무엇보담 이들 악극이 활개칠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관계로 그 주인主因을 양성釀成했을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부 진지한 악극인들은 이 기회를 포착하여 보다 낳은 악극을 내놓으려고 일약 가극으로 도약한 것 같은 일도 기억에 새로웁다. 하지만 이 역시 한 시간의 유행으로 화하여 끝에는 자기도취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진 채 금일의 저락에 빠진 온상을 이루고 만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3. 이와 같은 의미로는 악극은 확실히 찬스를 실失하였다. 일부 그들이 희구希求한 영리추구는 물론 악극에서 가극에의 향상전환을 꿈꾸고 노력하던 양자 다 현상유지에 급급한 지경에 이르려고 끝내는 다시금 소생할 길 없는 한갓 ‘에로티즘’ 적 관객영합에 마비되고 말았다. 혹 열혈한이 있어 장치 의상 각본 등 자재난에 빙자하는 일도 없지 아니 있을지 모르나 이것은 한갓 패망자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4. 여기에서 우리는 악극 대책협회에 최후의 기대를 갖는 자이다. 그러나 당국의 알선제의도 좋으나 어디까지든지 당사자 악극인자체가 관건을 가진 문제인줄 안다. 기획의 쇄신- 악극인의 질적 향상 경영체의 합리화 등 어느 것이나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될 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왕 마부 역을 산 당국 역시 이 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양자 발본적인 대책의 수립을 바라마지 않는다. (藝術通信 251호. 1946년 7월 29일) ‘무대예연’ 시연試演프로 결정: 해방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시내 욱정 무대예술연구회에서는 그간 제1회 시연의 개최 준비를 거듭하여오던 바 이번에 다음과 같은 3연演 제목과 뒷 스탭으로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였다 한다. 'W. B. 예이츠‘ 작 유희정柳熙貞 번안, 유영탁 연출 ’혁명에 각성‘ 1막 및 송태령 각색, 김병수 연출 ’원숭이와 궤‘ 1막 3장, ’마이켈 골드‘ 작 ’김종옥金鍾玉 번안, 최규석 연출 ‘돈’ 1막 이상 뒷 스탭. 무대감독 김종옥, 황매성黃海星, 허빈許斌, 장치 김식태金植台, 박동朴同, 김호준金虎俊, 조명 박찬영朴贊榮, 장재화張在華, 소도구 김호준, 박동, 임종태林鍾大 음악 김순남金順男, 성기석成耆石, 현백玄白, 의상 이영희李英喜, 유희정, 백상임白相任, 무용 조익환曺翊煥(藝術通信 251호. 1946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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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9)김종욱 극단의 반성,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극도의 자본 의존의 배격, 성급한 자주독립주의의 표현으로 성립된 운영위원제의 극단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자본가 공포증에 걸린 운영위원회는 극단 운영위원에 예술가 중심으로의 극단적인 자립을 고집하는 나머지 극단의 빈한을 자초하고 드디어는 청빈에 자기도취하여 기획의 원숙성을 스스로 말살하고 있는 비극적 성격의 제도로 대개 가장 량심적이고 우수하다고 인정되는 단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빈학도의 소인극운동에 돌아갈 밖에 없고 신극의 기업화 전문화는 백주몽白晝夢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연극의 현 단계에 있어서 진보적인 자본의 협력 없이는 극문화의 활발한 전개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예술가 각자가 진실이 그 예술가로서의 명예와 사명에 자각하는 바 있고 진정히 합치하는 이념에서 결과된 조직체라면 그렇게 옹색壅塞한 배타적 자립주의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양심적인 자본의 활동할 여지를 주고라도 그 자립성이 침범될 까닭은 없는 것이다. 해방 후 극단조직에 있어서 풍속도화한 운영위원회 제라는 것이 다만 그렇게 공식제로서 이용될 것이 아니라 각자 각 단체에 있어서 그 내부적인 구체성에 있어서 좀 더 원융자재圓融自在한 활용을 가지기를 나는 요컨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새 술을 새 가죽 푸대에’ 다시 말해서 새로운 내용에만 새로운 형식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끝)(藝術通信 250호. 1946년 7월 27일) [낙랑극회樂浪劇會 차회 공연, ‘바람 부는 시절’로 결정]: ‘뇌우雷雨’ 공연을 끝마친 낙랑극회에서는 단성사에서 오는 7월 30일부터 임선규林仙圭 작인 ‘바람 부는 시절’을 상연키로 되어 목하 맹연습 중(藝術通信 250호. 1946년 7월 27일) [희곡의 밤 성황]: 문학 동맹 희곡부와 연극동맹 공동 주최의 ‘희곡의 밤’은 예정대로 일작 25일 야 서울 YMCA 대강당에서 개막되었는데 정각 전부터 운집하는 애극인愛劇人의 장사진으로서 장내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만원을 이루어 획기적인 대성황 가운데 순서가 진행되었다.(藝術通信 250호. 1946년 7월 27일) = 문학 = [문학사文學史 편찬과 문학상文學賞 창설, 문동文同 중집위회中執委會 결의]: 문학가동맹에서는 24일 오후 1시부터 시내 인사정 임시사무소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8. 15기념행사에 대하여 토의하였는데 동 사업으로 문화단체총연맹 주최의 문화전람회에 협력할 것과 또 독자사업으로 조선문학사朝鮮文學史의 편찬과 문학상 창설을 건의하였다. 이번 선임된 문학상 심사위원은 다음과 같다. 정지용鄭芝溶, 안회남安懷南, 홍명희洪命憙, 김기림金起林, 김남천金南天, 이원조李源朝, 이병기李秉岐, 조벽암趙碧岩, 이태준李泰俊, 김태준金台俊, 권환權煥, 양주동梁柱東, 임화林和, 박치우朴致祐(藝術通信 250호. 1946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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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8)김종욱 당국과의 대책회의에서 결정: 화급한 조선가극계의 당면문제를 해결하여 조선가극의 수준향상을 꾀하고자 군정청 예술과에서는 예정대로 작 25일 오전 10시부터 문교부 회의실에서 시내 각 가극단체 대표들을 초청하여 가극단 문제 대책회의를 개최하였는데 결국 가극 재건을 하기 위하여는 현 가극협의회를 발전적 해산하고 다시 내 8월 3일(장소 미정)에 조선 가극인대회를 소집하여 강력한 가극단의 통일조직체를 결성하자는 데 대하여 전원 의견일치를 보았다 한다. (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조선예술대학 설립취지서 전 예술계 총동總動으로 목하 기성 준비 중에 있는 ‘예술대학’에 관하여는 누차 보도한 바 있거니와 동 준비회 당국에서는 금일 다음과 같은 설립취지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교사는 당분 동안 노량진 용봉정龍鳳亭을 사용케 되리라 한다. "우리는 유구悠久 5천년의 문화민족으로서 특히 예술방면에 우수한 천품을 가졌다. 고난의 역사가 자주 빛나는 전통을 중단하여 선업先業을 후계치 못함이 많았을망정 개개로 지닌 유적이 오히려 타민족의 경탄하는 바가 아닌가. 이 희유의 천품을 발휘하여 민족긍지를 더욱 고양함은 세계문화에 대한 우리의 사명이요 또 의무다. 그러나 봉건 조선은 예술인을 천시하여 ‘광대’ ‘ 공인’ ‘환쟁이’로 폄하하고 그들의 지위향상과 기술 연마를 위하여서는 하등의 조처도 시설도 함이 없었으며 일제의 폭정이 또한 노예화교육에만 치중하여 그 잔학한 의도가 우리 천여天與의 만능을 여지없이 위축시켰으니 이 때문에 예술의 옥야沃野가 불모不毛의 지地로 화하여 바라보아 황량함이 유심인有心人의 우분을 자아내린 것이다. 이제 폭압暴壓은 물러가고 자유의 신국가가 힘차게 건설되려는 이 무렵에서 마다 교육이 중대사요 급선무라 하여 각종 학교가 처처에 족생簇生하며 기설旣設 학부도 승격이라 확장이라 하여 진취의 기운이 전역에 팽배澎湃함은 경하慶賀하여 마지않거니와 예술방면에 있어서는 의연히 교교翏翏하여 혹 1, 2 단과 교校의 신설을 보되, 다 기초가 박약薄弱하고 범위가 협소하여 이로써 후일 백화요란百花擾亂의 성관盛觀을 기하기는 어려우니 지금이 정히 예술의 진흥에 관심하는 이 총 분기奮起할 때다. 이에 오등吾等은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의 각과를 포괄包括한 종합예술대학의 설립을 기도한다. 기구가 종합임을 요함은 예술발전이 파행적 현상을 방지하여 각계의 호조공진互助共進을 도圖하자는 것이요 명실이 대학임을 요함은 예술인의 교양과 기술을 고도화하여 일은 종래의 천시와 자기自棄를 시정하고 일은 장래의 활약과 웅비雄飛를 기하자는 것이니 이 방면의 전문학부요 최고학부인 바에 대학됨이 당연하다. 이같이 방대하고 심원深遠한 계획은 민간 일부의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능하 할 바가 아니고 정히 국가적 사업임에 당국의 보조와 유지의 희사喜捨를 원하지 않음 아니되 성질 상 의의상 예술인 급 일반 문화인의 성誠과 력力에 기초를 둠이 가장 타당함을 알아 완성 연도 5개년 계획으로써 기금 일천만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우선 가능의 최선을 다하여 금년 9월 신학기로써 빛나는 발족을 보려하면서 이에 당국의 권호眷護와 예술계의 협력을 갈구渴求하는 바이다. (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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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7)김종욱 광복행진곡(나운영 곡): ‘신 애국가- 안익태 곡, ’철벽위 진용‘-살타니 곡, ’검창‘(스탈케 곡), ’연대의 자랑‘(크람몬드 곡) 값 50원 25일부터 국제악기상회서 발매(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연극= [극단조직 기구에 대한 반성]: 이서향 즉 단체의 전주와 또 흡사 소작인 대표들과 같은 운영위원들은 서로 동지라 일컫고 ‘백백교’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며 또 기타 무슨 사기며 무슨 전기를 들고 나서며 실로 그 생존을 위하여 용감하고 후안무치한 일당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양심적인 연극단체의 건설을 파괴하고 연극운동의 체계있는 진전에 혼란을 주며 기간 무수히 생멸生滅한 극단의 정체가 모두 이런 류의 것이었던 것이다. 그밖에 자타가 인정하는 유력한 단체 가운데도 운영위원제 또는 약간 명칭을 변경해서 동인제 등의 기구로서 지극히 ‘색트’ 적인 일종의 이익제가 성립되어 있는 단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위원 혹은 동인은 결국에 있어서 과거적인 단장의 신분이요 조직 내의 특권계급으로서 그 기구의 본의를 떠나 오히려 단원의 노예화를 요구함으로써 유지될 밖에 없는 그러한 제도를 조직의 민주주의화라고 고집하려드는 것이다. 이익을 위주로 하고 결합한 위원 제씨와 동인 제씨는 그 목적이 상부치 않을 때는 언제나 이 산이 위기에 직면하는 것이며 또 그들 특권계급에 봉사만 해야 하는 단원 일동은 언제는 또다시 방랑의 준비를 게으르지 않는 역시 딱한 종속의 일종인 것이다. 이러한 단체가 스스로 안심하고 발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그 기획과 예술적 실천이 일관하여 양심적일 수 있으리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며 결국은 우리들의 새로운 민족연극 건설의 추진력으로서 연극운동의 주류에 참가할 단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청춘극장’의 신기도新企圖, 경연으로 향상 기필期必]: 각 극단은 현 정세를 타개하고 새로운 발전, 향상 책을 강구해야 되고 그 필요성이 느껴지던 중 전반 극단 ‘청춘극장’에서는 솔선 자단自團의 실질적 향상을 기필코자 다음 같이 경연 공연을 열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심사방법은 목하 연극동맹에 일임하고 있는데 동 심사에 당선된 연기자에게는 동단 좌장으로부터 상금으로서 5천원을 수여하기로 되었다는바 이러한 방법으로서 극단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므로 그 성과는 자못 기대된다. 김춘광金春光 작 안종화安鍾和 연출 채남인蔡南人 장치 ‘미륵왕자’ 5막 7장 9월 8일부터- 10일 간. 국도극장(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연동‘이 문화강좌 개설 ]: 연극동맹에서는 래 27일부터 5일 간 시내 중앙애육단中央愛育團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연극 8 문화강좌를 열기로 되었는데 강좌와 강사는 다음과 같다. 1. 한글(초보)-이희승 조선역사-(초보)- 노성석盧聖錫(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영화= [영동 여우진이 여, 김 양씨 위문]:추민秋民, 김한金漢, 김소영金素影, 문예봉文藝峰, 이숙삼李淑三 제씨는 영화동맹을 대표하여 26일 여운형呂運亨, 김규식金奎植 양씨를 각각 방문하고 위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광경을 조영 뉴스에 수록된다고 한다. (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영화 검열보]검열월일 제명 소유자 7. 22 ‘망향’ 조영 同 ‘북극괴물’ 금강 同 ‘목란종군’ 조영(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영사기협 총회]: 조선영사기술협회朝鮮映寫技術協會에서는 25일 오후 1시부터 훈정정 동 협회 사무실에서 총회를 열고 당면문제를 협의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각 극장에 대하여 방화설비의 완전을 기하게 할 것. *협회 기구를 일신하고 그 회원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것. *8. 15 기념행사 개최에 관한 건 (藝術通信 249호. 1946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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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6)김종욱 김병덕金炳德 씨(전 신협信協 계획주임) 금번 한성극장협회 기획과장으로 신임인사차 래사 라판수羅判洙 씨(조영 광주출장소장) 사무社務 연락차 23일 입경 체재중(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신인 포부](1) : 하연남河燕南(고려영화협회 여우) 지난 날 희망의 불꽃을 안고 배우 채용시험을 보려고 여러 선생님 앞에 나서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카메라의 꿈은 나날이 익어가고 출연할 그 날을 상상하면 그저 가슴만 두근거렸습니다. ‘자유만세’의 캐스트 가운데 이름이 씌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 거? 하루 종일 대본을 읽고 어쩔 줄 몰라 뛰노는 가슴만 안타까웠습니다. 카메라 앞에 처음 서던 날 마음은 든든히 갖추었으나 떨리는 가슴은 제지할 바를 몰라 감독 선생님의 말씀은 생각나지 않고 카메라의 모터 소리만 귀를 뚫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꼭 할려고 자신이 들 때까지 연습을 하였으나 카메라의 도는 소리만 나면..... 이것이 초심자의 비애라 할까요. 그러나 여러 선생님의 따뜻한 지도하에 용맹을 다시 하여 힘껏 노력하여보았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안타깝고 원망스럽던 카메라의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어 요사이는 자기 자신에도 나날이 연기가 익어가는 듯하여 재미있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충분한 연기가 스크린에 오르는 날을 생각할 때 어떡하나 하고 얼굴을 불그립니다. 시사회가 연기자의 제일의 동경이라고는 하지만도.(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연극= [연동 희곡의 밤, 출연자 배역 결정 ]: 오는 7월 25일 밤 YMCA에서 여는 ‘희곡의 밤’에 출연할 연기자와 배역은 아래와 같다. 체홉 작 김이식金二植 연출 ‘백조의 노래’ 노우老優- 黃澈 프롬프타- 이상백李相白 유진 오닐 작 안영일安英一 연출 ‘고래’ 벤(보이)- 유현兪玄, 쿡- 장진張進, 키니(선장)-심영沈影, 스로감(2등 운전사)-한일송韓一松, 키니의 처 - 김선영金鮮英, 죠- 박고송朴孤松 함세덕咸世德 작 연출- ‘감자와 족제비와 여교원’ 진陳 청년- 태을민太乙民, 그의 처- 南宮남궁 련蓮, 예중태芮中太- 이재현李載玄, 그의 처- 兪慶愛, 군서기- 김승호金勝鎬, 방훈도方訓導- 박학朴學, 상인풍商人風의 사나이- 황영일黃英一, 정교장- 金益煥, 수방秀芳- 문정복文貞福, 생도- 조미령趙美齡(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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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5)김종욱 영화 ‘삼일혁명사三一革命史’를 기획한 계몽구락부啓蒙俱樂部 문화부에서는 이미 완성된 ‘안중근사기’를 남선 각지에 공개하여 소기 이상의 성과를 걷우고 있는데 이번 다시 제2회 작품으로 기미 삼일운동 때 왜적에게 우리 민족이 당한 학살사 중에서 취재한 ‘삼일혁명사’ 전 2편을 방금 기획 중이라 한다. 각색과 감독은 이구영李龜永씨, 촬영은 韓昌燮, 孫勇璡, 李德興 등 제씨의 공동 담당, 그리고 주연자는 특히 전 배역에 긍亘하여 신인을 기용한다 하며 크랑크 개시는 늦어도 금월 말 경 강원도 춘천, 파주지방을 무대로 실시하게 되리라 고 한다.(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음악 키노드라마 불원 촬영 개시!]: 신경균 씨가 계획 준비 중이던 음악 키노 드라마(제명 미정) 4권 물의 제작은 기획 당초엔 대한문화흥업회사가 담당하기로 되어 있는 바 이번에 사정에 의하여 청구영화사와 박시춘朴是春악단이 합동으로 제작하기로 되었는데 촬영은 8월 15일부터 인천항을 중심으로 지방 로케를 개시 하리라는 바 결정된 뒤 스탭은 다음과 같다. 원작- 박학수朴學守, 구성, 각색- 조명암趙鳴岩, 연출- 신경균 촬영 미정.(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영화 검열보] 검열월일 제명 소유자 7. 16 ‘적은 자의 구함’ 금연 7. 17 ‘시보’ 7호 공보부 동 ‘구하자 귀환동포’ 동 동 ‘제2정보’ 남선영화 7. 22 ‘몬파르나스의 밤’ 조영(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극장= [서울 시내 극장 동원표(23일)](서울국 연예관계) 극장 제명 입장 인원 국제 ‘로미오와 쥴리엣’(제1일) 4094 국도 ‘나가자 용기병’ CMC악단(제4일) 1409 수도 영화 ‘거성 지그필드’ (제4일) 3898 중앙 혁명극장 ‘ 세 동무’ (제4일) 468 서울 가극단 ‘청춘지대 ’ (제1일) 800 장안 ‘그대와 하룻밤을’ (제4일) 730(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무용= [최승희 여사 38 이북 행은 허설虛說]: 최승희 여사는 항간에 38 이북으로 떠나갔다는 등의 수소문이 떠도는 모양이나 목하 서울 시내 중국전재동포대책위원회의 사무국 위원을 위촉받아 활약하고 있다 한다.(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탭 댄스 경연대회, 불일 서울서 개최]: 시내 명치정 2의 조선 탭댄스 연구소에서는 이번에 중앙에서 전국 남녀 탭댄스 급 성악경연대회의 예선대회를 개최한다는데 심사원은 다음과 같다 한다. 유행가- 박송, 손목인 외 4명 탭 댄스- 배구성裵龜成, 윤춘尹春 외 8명(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미술= [미협 개관기념 소품전(24-30)] :지난 11일에 개최 예정이던 조선미술협회 개관기념 소품전은 사정에 의하여 연기되어 작 24일로 30일까지 개최되었는데 그 출품자 씨명은 다음과 같다. 동양화= 고희동高羲東, 최우석崔禹錫, 노수현盧壽鉉, 이상범李象範, 배렴裵濂, 金永基, 이응로李應魯, 이유태李惟台 서양화= 장욱진張旭鎭, 박득순朴得淳(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청우대]: 문화청년 거운데 소위 발표광이라는 병자가 있다는 말은 자주 듣는 소리이나 겨우 그 대목을 벗어질락 말락 한 친구 중에 요새 발표 밸류 광이라는 것이 생겼다. 확실히 이것은 전자이후의 ‘신판광’의 한 종족인데 예로 따지면 그까짓 잡지, 그까짓 신문! 겨우 부수가 00 뿐인데- 따위로 주제넘은 수작! 쓰는 작품이라고는 원래 역량의 한 축蓄이라고는 없을 뿐 아니라 있다면 일본 친구 문하에 몇 달 겨우 걸식한 것뿐이라 동서남북에서 의례 가위질 해다 껴 발라 붙인 젬병! 주제에 무슨 위원 감투 하나 뒤집어쓰면 ‘내가 발표한 작 이외엔 모두 신용할 수 없소.’ 따위로 안하에 무인행세! 선철先哲 가로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 하였겠다. 제발 겸허謙虛를 배울지어다.(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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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4)김종욱 현 가극계의 복잡다기複雜多岐한 문제를 적극적이나마 해결하여 좀 더 조선 가극의 수준 향상을 꾀하고자 가극협의회에서 시내 15 가극단체대표자들을 소집하여 임시총회를 개최한 바 있었는데 동회에서 결의한 안건은 대략 아래와 같다. 1. 금후의 가극단체 대표자의 자격은= 조선 가극문화 향상에 대한 정신과 실천능력을 가졌으며 가극을 기획할 수 있는 자격자로 할것. 2. 금후의 단체 내부 조직은= 매 단체에 연기자 25명이상으로써 구성할 것. 3. 위선 전기 결의사항을 실현키 위하여 가극단체 심의회를 다음과 같이 구성할것= 가극협회 회원 3명, 작가 1명, 연출가 1명, 예술과 2명. 극장협회 2명 (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 영화 = [영화 검열보] 검열월일 제명 소유자 7. 16 ‘옥토沃土의 낙원’ 금강 동 ‘2인의 애아愛兒’ 동 동 ‘천일야화千一夜話’ 동 동 ‘서커스 동지’ 동(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변사 구락부원들 방역防疫 선전에 일투一投]: 조선변사문화구락부에서는 이번에 제3차 사회사업으로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6일 간 경성시 보건과의 적극 원호를 얻어 시내 각처에서 방역 가두선전 방송을 실시하고 있는바 매우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다.(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청우대晴雨臺]: 관객 동원수의 매일 공표는 영업방해라고 거절하는 극장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실시되었던 일이거니와 외국 대도시가 다 하고 있는 일 극장을 석두石頭아닌 ‘문화인에게! ’의 소리는, 소리에만 끝이지 말고 어서 실현되어야 해결될 한 가지! 만약, 그 발표가 상업 방해라면 이 같은 비밀주의가 엊그제 인원 사기로 한동안 요로의 준엄한 추궁과 프로 제공자의 분격을 샀던 사건에 연결될 가능! 혹은 전제(?) 아니라고 누가 보증하랴. 요는 아직도 극장을 갑종 요리점이나 카페로 알고 낮잠 자는 탓! 거듭 말하거니와 극장을 문화적인 운영에로!(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金聖泰 씨 '춘향전春香傳‘ 작곡화]: 경성음악학교 교무과장 김성태 씨는 해방 전부터 조선이 세계에 자랑하는 고전 오페라 ’춘향전‘ 5막을 작곡하여 오던 바 드디어 이번에 5막 중 3막까지가 거진 완성하게 되어 그 발표회를 불원 가지리라는데 김성태 씨의 이번 작곡은 많은 기대와 주목을 끌고 있다.(藝術通信 248호. 1946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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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23)김종욱 극장 선전의 정화를 꾀하고자 한성극장협회에서는 22일 동 협회 회의실에서 시내 각 극장 선전부장을 초청하여 회의를 하였던 바, 도시 미풍 상 선전 포스터 벽 상 난첨亂貼을 금지할 것. 시내 중요 20여 처에 게시판을 신설하여 이곳 이외에 난첨을 엄금할 것. 선전문에 관하여 예를 들면, ‘눈물 씻을 손수건을 미리 준비해가지고 오시오.’ 등 류類의 저열하고 비문화적인 선전문 사용을 철저히 할 것. 등 기타 선전책의 획기적인 신 방도의 구체적 토의가 있었다. (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한성극협 야유회]: 한성극장협회漢城劇場協會에서는 산하 각 극장의 종업원 위안 야유회를 불일 열기로 결정하고 목하 각 극장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서울 시내 극장 동원표(22일 현재)] 극장 제명 입장 인원 국제 자유극장 ‘율곡과 그 어머님’(제7일) 420 국도 나가자 용기병龍騎兵CMC 악단 (제3일) 1748 수도 영화 ‘지그필드’ (제3일) 4428 중앙 혁명극장 ‘세 동무’ (제3일) 517 서울 ‘오페라 햇’ (제5일) 1200 장안 ‘그대와 하룻밤을’ (제3일) 788 제일 ‘타잔의 복수’ (제3일) 1008 (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각 극장 릴레이 구제 흥행 보고]: 한성극장협회와 본사 공동 주최의 제1회 각 극장 릴레이 수해구제 조조 흥행은 지난 12일 수도극장을 필두로 하여 개관되었는데 제2차 성남까지의 수입 성적은 아래와 같다. 특히 조조를 이용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호성적을 지었다. 수도극장- 503원야, 성남극장- 1056원야也 계 1559원야 (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 연극 = [극단조직 기구에 대한 반성(1) ]: 이서향李曙鄕(연출가) 해방이 되자 과거의 극단의 전부가 해산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당시의 혁명적인 분위기가 가져온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과거의 극단 조직이 내포했던 모순에서 필연적으로 결과된 사실이었다. 즉 스타를 중심으로 한 단장제의 반봉건적 규명糾明 기계적 극단 체제로서는 새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으로써였다. 기후 해방 연극의 신 발족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나선 다수 극단의 조직은 그 전부가 내용에 있어서나 조선 연극의 근본적인 개혁과 비약에 대한 뜨거운 희망을 함축하고 지극히 진보적인 지향을 표시한 것이었다. 이 혁신적인 극단 개改 조직의 보편적인 특징은 운영위원회제도였다. 이 운영위원회의 취의趣意는 과거에 있어서의 극단 조직의 반 봉건성을 배제하고 극단운영의 민주주의화를 실현하는 데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해방 1년을 경과하는 금일에 있어서 극단 활동의 특징적인 현상을 개괄하여 보면 전면적으로 침체 이산지경離散之境에 직면하여 바야흐로 조선연극의 위기를 부르짖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원인은 나변奈邊에 있었는가. 여기에는 물론 정치적 경제적 객관 정세가 비단 연극뿐만이 아니라 문화 전면 적에 긍亘하여 그 발전의 전제조건을 해결치 못하고 있음이 큰 원인이겠으나 그러나 운영위원제 자체에 또는 그 운영에 자기비판할 점이 있었는가. 한번 반성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심영沈影씨 중심으로 극단 고협 재건]: 과반 혁명극장을 탈퇴한 심영씨는 그 후 침묵 자숙하고 있던 중 최근 왕년의 극단 ‘고협’을 재건하고자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하고 있다 한다.(藝術通信 247호. 1946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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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22)김종욱 지난 19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연극동맹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상임위원을 선출한 다음 8. 15 행사건을 토의 가결하였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연극전람회 개최 1. 무대용어 제정 1. ‘주간동맹뉴스’와 희곡집 출판 1. 회비 징수(10원) 1. 연극인의 계몽강좌(과목, 조선역사, 한글) 준비위원: 채정근, 허집 1. 상임위원= 박창환, 박영호, 박춘명, 박고송, 한일송, 황철, 박민천, 이재현, 박학, 안영일, 김태진, 박상진, 장진, 이상백李象伯, 김득창金得昌, 김일영, 김이식金二植, 이서향, 윤세중, 심영, 서일성, 박로아, 채정근, 강호 1.부위원장= 박제행, 변기종, 조영출, 함세덕 1. 서기장= 이강복李康福 (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무대예연 시연회 8월 하순 공개 예정] : 무대예술연구회에서는 해방 1주년을 기념하여 8월 하순 경 제1회 시연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다음과 같은 ‘레파토리’로 방금 맹 연습중이라 한다. 1. 애란 ‘예이츠’ 작, 박재익朴載益 번안 1막. ‘혁명에의 각성(원명 ’카스팅니 후아링‘) 연출 유영탁柳英卓 2. 조선고전 전설 극화 송대령宋太嶺 각색 ‘원숭이와 궤’ 1막 3장 연출 김병수金炳秀 3. 미국 ‘마이클 골드’ 작 김종국金鍾國 번안, ‘돈’ 1막 연출 최규석(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혁명극장 성하 공연: 혁명극장에서는 차기 공연으로 현진건 원작 함세덕 각색, 박춘명 연출 김일영 장치 ‘무영탑’(5막)을 8월 6일부터 상연키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 극장 = 서울 시내극장 동원표(21일 현재) 극장 제명 입장인원 국제 자유극장 ‘율곡과 그 어머님’(재6일) 2017 국도 ‘나가자 용기병’ CMC악단(제2일) 2674 수도 영화 ‘거성 지그필드’ (제2일) 5419 중앙 ‘세 동무’ 혁명극장 (제2일) 1395 서울 ‘오페라 햇’ (제4일) 1957 장안 ‘그대와 하룻밤을’ (제2일) 1967 제일 ‘타잔의 복수’ (제2일) 2137 시내 극장 동원표(21일) 극장 제명 입장인원 국제 영화 ‘어느 날 밤의 살인사건’(제7일) 2227 국도 영화 ‘라인강의 감시’(제2일) 5300 수도 영화 ‘회의는 춤춘다’(제7일) 1808 중앙 박시춘樂團 (제6일) 919 서울 영화 ‘골든 보이’ (제1일) 2091 단성 영화 ‘비도比島 결전기’ (제3일) 3869 제일 극단 황금좌 (제5일) 3880 명동 영화 ‘로이드의 난투사’ (제1일) 833 장안 영화 ‘황금마도’ (제5일) 471(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입장시키고 주사 국도 신 전술: 현재 시내 각 극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호역 주사증 소지자에 한한 입장이 기대할만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데 비추어 국도에서는 지난 20일부터 극장 내에 호역虎疫주사시행소를 설치하고 아직 주사를 시행치 않은 관객들에게는 이것을 시행하여오던 바 매우 양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한다.(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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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21)김종욱 서울 명치정 다방 초원草苑 자리에 국제악기상회를 개업.(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 사진= [ ‘제2회 기록사진전’ - 기록사진문화사 주최 ]: ‘동아’, ‘한성’, ‘조선’, ‘민주’ 등 4사 사진부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기록사진문화사에서는 오는 8. 15 기념일을 복卜하여 제2회 ‘기록사진전람회’를 개최키로 되었다는 바, 그 시일과 회장은 아직 미정이나 목하 제1회전 이후 카메라를 통한 국내의 모든 기록을 집성키에 분망 중이라 하여 일반의 기대가 크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사진예연 7월 월례회] : 사진예술연구회 7월 월례회는 지난 20일 문진양행文進洋行에서 개최하였는바 이달 사진 작품 심사는 호선互選한 결과 45점 중 다음 9점이 입선되었다 하며 심사 후 동인 일동은 수재동포 의연금으로 천원을 거출據出하였다고 한다. * ‘저물 녁’(정도선鄭道善)‘, ’독(이해선李海善)‘, ’방아(김석현金奭鉉)‘, ’오午(동)‘, ’석불石佛(오찬종吳讚鍾)‘, ’달걀(김진수金珍洙)‘, ’여름(정도선)‘, ’초하初夏(이규완李揆完)‘, ’ 베가을(임석제) (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 청우대晴雨臺(단평)= 창간 당초부터 염원이던 활자판이 이재야 실시를 보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건대 ‘예통’이 오늘에 이른 십삭十朔은 언간이 조선적 현실로는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각 방면 독자 제현이 성원에 비쳐 너무 어색한 것뿐이었으나 다만 일간으로서 한 호도 거르지 않았다는 것만이 유일한 자부라 할까! 어쨌든 모든 점은 이 활자판 실시와 아울러 금후에서 시정되리라 믿는다. 특히 오늘에 이르는 동안 안 예술과장의 직접 간접 편달을 삼가 이 기회에 감하感荷드린다. (정혁생正革生) (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 무용 = [삼화 양 미군송별회 출연 ]: 무희 삼화 양은 거 23일 오후 3시 반부터 시내 풍문고녀에서 열리는 ‘락하드’ 고등교육국장 등 송별회에 출연한다고 한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 연극= [ 상업주의 배격. 극을 민중 속에, 사계 권위 20여씨 총궐기! -새로운 연극도의 태동] : 영리적인 추궁秋窮으로 폐쇄일로廢頹一路를 밟고 있는 이땅에 연극을 근본적으로 개혁 향상시키고자 사계의 중진들은 철추적鐵錘的 대책을 협의 중이던 바 이번에 각계의 함의찬동을 더 이 연극동맹을 중심으로 이서향, 서항석, 안영일, 박로아, 김태진, 채정근 외 20여 씨의 발기로써 배퇴적排頹的인 강력한 연극단체로 ‘신연극동우회(가칭)’를 조직하게 되었다 한다. 즉 이것은 열렬한 애극가愛劇家의 조직적 활동으로 새로운 연극의 창조와 구각격파舊殼擊破를 목표로 하는 단체로서 연극, 영화, 미술, 음악, 문학, 과학, 기타 각계각층의 권위를 총망라키로 한 것인데 동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스로건을 세우고 가장 견실한 발족을 하였다. * 강령 1. 상업주의 연극 배격 1. 연극의 민중화 1. 사영극장私營劇場의 개혁과 공공 극장제 확립과 그 실시 * 사업 1. 공보 발행, 연극도서 발행. 1. 연 2, 3회의 연구공연 1. 공공극장 건립(藝術通信 246호. 1946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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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20)김종욱 영화동맹에서는 래 21일 정오부터 동 동맹서기국에서 해방 기념 영화전람회에 관한 준비 위원회를 소집한다고 한다. (藝術通信 243호. 1946. 7. 19) = 인사= ‘리어든’ 대위(군정청 영화과장) 17일 자동차로 공주에 출장, 20일 귀임 예정/ 김두수金斗洙씨(한성극장협회 사무국장) 회장 인사 차 래사(藝術通信 243호. 1946. 7. 19) = 영화 = 영화검열 제12보 수검일 제목 신청자 7월 13일 ‘청춘항로’ 열광 동 ‘원숭이와 대연大演’ 김정덕金正德 동 ‘해방조선 여수麗水편 열광 동 ‘조선여행’ 김정덕 동 ‘산모린스의 처녀’ 열광 동 ‘활의천녀活衣天女 물어物語’ 금연金聯 동 ‘아리랑’ 금연 동 ‘기생의 무용’ 동 동 ‘조선무악’ 동 동 ‘라라의 모험’ 한일영화 동 ‘술취한 아버지’ 동 동 ‘로이드의 구드망’ 동 7월 15일 ‘제9교향악’ 조영 동 ‘조춘早春‘ 조영 동 ‘몬테성 의 비밀’ 고려 동 ‘제철소製鐵所’ 열광=(藝術通信 244호. 1946. 7. 20) = 연극= 현 가극단체들을 정화? -예술과에서 각 단체 대표를 초청: 현재 조선의 가극단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저속하고 수준이 얕은 현상태를 타파시키기 위하여 군정청 예술과에서는 래 25일 오전 10시부터 문교부 회의실에서 현재 중앙에 있는 각 가극단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조선가극계 장래의 방향과 지도방침을 강구하기로 되었는데 이 회의 결과 여하로서는 현재 필요이상으로 난립되고 있는 군소 악극단의 숙청 병합 등으로 전혀 질적 향상을 위한 상당한 방침이 수립될 듯이 보여 그 결과는 매우 주목된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연극단체 8. 15까지 지방순연을 관망] : 방금 각 자방에서 맹위를 발휘하고 있는 호역虎疫으로 말미아마 교통두절, 각 연극단체 지방 순연이 전연 불가능한 상태에 있고 그 또한 오는 8. 15기념행사 준비문제도 있어 각 단체는 해방 기념일까지 지방 순연을 관망하기로 되었다고 한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남조선 연극인 참가로 북조선 연극계 활발화] : 해방 후 북선北鮮의 연극 활동 상황이 궁금하던 중 최근 북선에서 들어온 남조선 예술가의 참가와 함게 그 활동이 적극적으로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하는데 그 중에도 조선예술극장 소속이었던 박영신朴英信, 김두찬金斗燦 양씨와 왕년의 명 아역이었던 엄미화嚴美花 양 등은 북조선인민위원회의 파견으로 간도성과 목단강 일대의 동포위문 행각을 하고 있다 한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 영화 = ‘자유만세’의 배급은 고려영화회사에 의탁! 초 공개도 8. 15를 기期코 쾌조!: 고려영화협회 작품 이창용 제작, 최인규 감독의 8. 15 기념작 ‘자유만세’는 착수 후 연일 쾌조로 추진 중인데 동 협회 측으로서는 벌써 그 공개방법에 대하여 예의 준비 중 금번 전국배급 흥행은 고려영화주식회사에 의탁키로 결정되었다 한다. 이로써 동협회는 순연한 제작단체로서 기업성을 초월한 운영의 유지를 표명한 것으로 업계일반을 감명시키고 있다. 이에 대하여 배급을 의탁 받은 회사 측 최완규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리 회사가 첫 사업으로 이 작품을 맞게 된 것은 무한한 영광이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우리 사가 동 작품을 매수한 듯이 수소문되고 있는 모양이나 그런 말은 협회 측의 순연한 제작사로서 나간다는 양심을 짓밟는 것인줄 안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남일영화 작품 ‘똘똘이의 모험’ 근일 완성: 촬영기사 양세웅 씨를 수반으로 결성된 남일영화사 작품 이규환 감독 김영수 각색, 안석주 윤색의 ‘똘똘이의 모험’ 은 그동안 천후天候관계로 잔여의 로케이션에 부득이 대기 태세를 취하고 있던바 이제 그 전 촬영을 완료하고 방금 기술과정에 들어가고 있다는데 불일 전 완성을 보리라고 한다. 그리하여 8. 15 기념 제1회 작품으로의 영광을 안고 공개하게 되리라 한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중앙통신의 학우영화회 성황: 중앙통신사 사업부 주최 도학무부 후원의 서울 시내 학우영화회는 기보한 바와 같이 서울극장에서 5일 간 조조 흥행을 개최하였던바 참가 동원 학생수는 연 4, 800명이었다는데 제1회로서는 매우 호성적을 이루었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영화예술의 표현력-문장과 관련하여 비교할 때-](1): 안철영(영화감독) ‘촬구쓰’는 ‘영화는 대중적으로 제작하는 것이며 예술적 표현을 심각화할 수 없다.’라고 15년 전 당대의 영화 비예술론에 대한 이론異論은 ‘엘리자베스’조의 비평가 ‘필립. 시드니’ 경이 똑같은 사실을 연극에도 공격하였다고 ‘예일’ 대학 연극부장 ‘알라다이쓰 니콜’ 교수가 예거例擧한 일이 있다. 그러면 영화와 연극의 예술론은 근본적으로 표현방법을 구명하는데 단정될 듯 하다. ‘앙드레 레빈손’은 사진이란 것은 현실을 평면화 하고 틀에서 과장한 원근감을 주면 현실 모방 이상의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영상影像의 일련一聯은 ‘쇼트’이벼 ‘쇼트’ 자신은 일개의 단위인 까닭이다. ‘프도프킨’은 개개의 ‘쇼트’는 시인이 가진 단어單語라고 하였다. 아무리 짧은 ‘쇼트’라도 그 자체가 구체적인 어떤 것이나 표현하고 있다. 문법구성으로 보면 ‘쇼트’는 단어가 아니라 주어와 술어로 된 한 개의 문장이나 일구에 적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쇼트’의 연속적인 ‘컴비네이션’이 어떤 소주제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합성할 때는 영화에서는 ‘시퀜스’ 라고 부르며 문법에서는 일절이라 할 것이다. 표현에는 쾌快, 불쾌와 같은 감정과, 희노애락喜怒哀樂과 같은 복합감정이 있다.(藝術通信 245호. 1946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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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19)김종욱 =영화= 기보 조선영화사 제작 ‘조선의 손’ 기획 좌담회를 래 15일 조선고고학계의 권위자들과 군정청 예술과 기타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동사에서 개최하기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39호 1946. 7. 14) =음악= [고려교향악단 야외연주회 준비 ]: 고려교향악단에서는 시민 위안을 위하여 금하기 중 매 토요일마다 덕수궁에서 야외연주회를 개최코자 방금 준비 중인데 이 연주회는 자유신문사에서 후원하리라고 한다.(藝術通信 239호 1946. 7. 14) = 영화 = [조영 사진부 20일 개관 ]: 조영에서는 오랫동안 폐쇄되었던 보통 사진부를 이번에 동사 연기부원 김일해, 권영팔權寧八, 김걸金傑 씨 등 3씨에게 경영권을 일임하였다는데 방금 내부수리와 기구증설을 비롯하여 사진연구 상담실까지 완치하고 특히 이번 신장 후부터는 일반실도 설치한다는데 개관은 늦어도 오는 20일부터라 한다.(藝術通信 240호. 1946. 7. 15) [변사 구락부원 방역선전에 활약 ] : 제1차 가두방역 선전에 많은 성과를 걷운 변사구락부에서는 거 13일부터 또다시 2차 선전의 활동을 개최하고 있다.(藝術通信 240호. 1946. 7. 15) = 영화 = [영화동우회 임총 결의로 영화예술연구회로 개칭] : 영화동우회에서는 지난 14일 정오부터 본사 회의실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동회의 명칭을 영화예술연구회로 개칭하는 동시에 현존 간사제를 위원제로 변경한 다음 동 연구회는 매월 한번 씩 월례회를 개최하고 영화비판과 연구발표를 할 것과 기외에 동회의 사정으로 영화시사회, 간담회, 기관지 발행 등의 계획을 결의하였는데 특히 동 연구회는 절대로 기성 단체의 산하가 되지 아니하고 끝까지 자주독립 적에서 발전해 나아갈 것을 결의하였다 한다.(藝術通信 241호. 1946. 7. 16 ] =영화= [‘자유만세’ 출연 중 박순남朴順男씨 중상]: 고려영화협회 배우 박순남 씨는 지난 14일 성북정 성지城趾에서 ‘자유만세’ 탈옥 장면에 출연 중 높이 약 15미터 가량 되는 성 위에서 추락하여 발목에 중상을 입어 목하 자택에서 가료 중인데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한다고 한다.(藝術通信 242호. 1946. 7. 17) = 연극 = [무궁화악극단에서 고 박향림朴響林 여사 추도공연]: 무궁화악극단에서는 동 7월 19일부터 23일까지 동양극장에서 고 박향림 여사의 추도공연을 개최하여 수익 중 비용을 제외한 잔액 전부는 고 여사의 유가족에게 주기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42호. 1946. 7. 17) = 영화 = [고려영주映株 임시총회 소집 ]: 고려영화주식회사에서는 내 2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증자에 관한 건을 토의하기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42호. 1946. 7. 17) 음악. 키노드라마 제작 준비 대한문화흥업사大韓文化興業社의 신기획 ]: 대한문화흥업에서는 이번에 신계획으로 영화감독 신경균申敬均씨의 구성으로 음악, 키노드라마 약 4권 정도의 문화영화 제작을 준비 중인데 그 완성은 8월 하순 경이라 한다.(藝術通信 242호. 1946. 7. 17) = 사진 = [사진예술연구회원 3씨 태백, 오대 학술탐구대에 참가]: 조선산악회 주최로 거행되는 강원도 태백산, 오대산 연맥連脈의 학술탐구답사에 조선사진예술연구회 대표 회원 현일영玄一榮, 임석제林奭濟, 이동항李東港 3씨도 사진반 겸 학술부원으로 참가하여 오는 25일 30일 간 예정으로 서울을 출발할 터이라는데 이리하여 3씨의 손으로 사진에 수록된 태백, 오대산의 절경과 학술 탐구재의 활동 상황은 9월 중순 개관 예정인 사진전람회를 통하여 일반에 소개될 것이라 한다.(藝術通信 243호. 1946. 7. 19) = 무용= [조선무용예술협회 공연 8월 5일부터 3일 간 국도극장에서]: 조선무용예술가협회에서는 드디어 래 8월 5일부터 3일 간 국도극장에서 창립기념공연을 하기로 되었는데 프로 출연자는 다음과 같다 한다. 무고= 김선영金先英, 이석예李石藝, 이선옥李善玉, 산신무山神舞= 정인방, ‘희생’= 장추화, ‘산의 즐거움’ = 함귀봉, 미완= 김미선金美善, ‘비단나비’= 한동인, ‘아리랑 사상’= 진수방, ‘만종’= 이석예, 조택원, ‘원무곡’: 김령, 유성희, 이향희李鄕姬, 정지수, 한동인, ‘고독’= 이석예, ‘탕자의 골맥骨脈’= 김해성, ‘봉선화’’= 조용자, ‘해방’= 박용호,, ‘백이숙제伯夷叔齊’ = 정지수. ‘애국가’ 전원 (藝術通信 243호. 1946.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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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18)김종욱 [현 관리자 유임 설은 낭보 작일 재산관리처 양梁 과장 부인-극장 입찰문제-] : 시내 각 극장(제除 동양극장) 대여 입찰문제의 문화인 추천단 심사는 지난 중순에 끝났으나 아직까지 그 발표에 접하지 못한 이 방면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 바 있는데 작일 시내 모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현 관리인의 유임으로 결정을 본 듯한 내용의 기사가 게재되어 아연 그 파문은 또다시 전 관계자에게 새로운 충격을 던진 바 있었다.(藝術通信 232호 1946. 7. 6) ["극장 관리는 현 관리인에게”이란 제목 밑에]: 오래 전부터 논의되던 시내 긱 극장의 입찰문제는 문화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중이었었는데 지난 1일 경기도 적산관리처에서 시내 각 극장의 현 관리인을 소집하고 현상대로 경영을 계속하라는 언명을 한 것으로 보아 이 문제는 대체로 현상대로 계속하여 나아갈 것으로 보이며 이로써 극장 입찰문제‘는 일단락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의 정식발표는 어디까지든지 문화인 추천단과 사전 연락을 가진 뒤에 시행한다는 당국 측의 누차 표명이 전하여졌더니 만큼 이 돌연한 일방적 발표(?)는 상식 이상의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은데 실제에 있어서 관리 당국도 전적으로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기자의 질문에 양 관리과장의 말은 다음과 같다. (문): 금일 모지의 극장 입찰에 관한 기사의 출처는 당국이라 하는데? (답): 아마 그런 모양이다. (문): 그 기사대로 극장 입찰문제는 일단락 하였는가? (답): 그렇지 않다. 다만 극장 관계자들을 소집한 것은 계약을 하였는가 또한 하였다면 어떠한 경로의 계약을 하였는가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 관리자들에게 그 기사와 같은 의미의 말도 한 적 없고 또한 그런 자격조차 없다. (문):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러한 보도가 되었는가? (답): 아마 내가 ‘현 극장관리자들이 당분간 관리를 계속하게 되l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말한 것이 오보誤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藝術通信 232호 1946. 7. 6) [추천 심사 문화인 측 담 ]: 우리도 아침 그 신문기사를 읽고 놀랐다. 사실 ‘테마’가 항간에 전포傳布되고 있느니만치 지난 3일 우리 위원이 ‘앤더슨’ 도지사를 만나서 그 진상을 타진하였더니 ‘당신들이 모르는 것과 같이 나 자신도 알지 봇하는 일이다.’ 라고 언명한 바 있으니 그것은 다만 풍문으로만 끝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문제의 공격에 있어서는 당국과 우리 위원측이 사전에 연락을 가진 뒤에 발표하여달라고 요청하였고 이에 대해서 당국은 물론 시초의 방침대로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하였다. (藝術通信 232호 1946. 7. 6) = 영화 = [‘영동’ 산하 단체도 수해구제에 열성 ]: (전략) 조선영화사 500원, 고려영화협회 500원, 합동영화사 500원, 열광영화사 300원, 고려영화사 500원, 자유영화사 500원, 영사기술협회 300원, ‘서울키노’: 100원(藝術通信 232호 1946. 7. 6) [영맹 상임위원회 개최]: 영화동맹에서는 오는 10일 오후 1시 동 회관에서 중앙상임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바 토의사항은 아래와 같다. 1. 조직기구의 건. 2. 정기대회 소집의 건, 3. 8. 15 기념행사에 관한 건. 4. 기본구성에 관한 건.(藝術通信 232호 1946. 7. 6) = 미술 = [미협 간부회의 8일로 연기]: 조선미술협회에서는 4일 개최 예정이던 간부회를 사정에 의하여 오는 8일 오후 3시부터 남산정 동협회 희의실에서 개최하기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32호 1946. 7. 6) = 무용= [향토군무대회 선수 선발 방법 다시 각 지방 선수대회로 재 변경 ]: 국악원에서는 거반에 향토민요, 무용 발표대회에 출장할 선수 선발방법을 열려던 최초의 계획을 중지하고 추천제를 실시하기로 되었었는데 우수한 선수를 선출하려면 추천제보다는 본시 각 지방 예선대회를 거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여 금반 다시 추천제를 지방 예선대회로 선수 선발 방법을 재 변경하였다 한다.(藝術通信 233호 1946. 7. 8) =국악= [라듸오를 통하여 창악唱樂 보급을 기도-국악원-]: 국악원 문화국에서는 조선 창악 보급의 일책으로 라듸오를 통하여 창악의 지도와 감상을 계획하고 방금 중앙방송국과 절충을 하고 있는데 원만히 교섭이 되면 금주 내라도 이를 실시시킬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한다.(藝術通信 233호 1946. 7. 8) =영화 = [영사 기술협회원증 교부, 회원문제와 전연 무관]: 조선영사기술협회에서는 금반 간부회의 결정에 의하여 동 협회 회원의 영사기사 면허를 받은 영사기사에게는 동 협회 회원증을 교부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므로 아직 회원증을 받지 않은 각지 영사기사는 시내 훈정정 46의 1의 동 협회로 곧 교부를 받으러 와달라고 한다. (藝術通信 233호 1946. 7. 8) =영화= [경주의 고대미술을 문화영화로 제작(조영)]: 조선영화사에서는 이번에 국립박물관의 후원을 받아 경주의 고대마술을 중심으로 문화영화를 제작키로 되었는데 봉절은 오는 8월 15일 경이 되리라 한다.(藝術通信 233호 1946. 7. 8) = 연극 = [연극제전, 래 30일 국도로 결정]: 연극동맹에서는 과반 연극인대회의 결의로서 8월 15일 기념행사는 각 극단 단위로 그 연극제전은 7월 30일 국도극장에서 하기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33호 1946.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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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17)김종욱 우리 작품발표회를 듣고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작품으로 된 음악회란 점에서 그 작품가치를 운운을 말할 여유조차 없이 악조건으로 우리를 흥분시키며 감격을 준다. 결국 내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감정이 너무나 크게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 그러나 전애轉愛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정당한 비평이 활발히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문외한으로서의 소속으로 말초적 문제 몇 가지를 들어보면 먼저 이흥렬 작품(독습곡)과 김순애작품(바이올린 소나타)이 무슨 사정인지 연주 안된 것과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나 교향곡은 그만 두더라도 피아노 곡이 하나도 없었던 것, 그리고 너무 성악곡(10곡 중 7곡)이 믾은 것은 유감이었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만일 누구의 작품이란 인명이 씌어지지 않았다면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여도 좋을만치 특징이 없는 똑같은 인상을 주며 모두가 ‘센티’한 음조뿐이었다. 우리 작품이 모두 이러한가. 그런 것만 골랐는가는 모르나 프로 전체의 활기가 없이 들린다. 혹은 성악곡에 있어 성악가의 일률적인 습법習法의 소치인지 모르나 그 화려(?)한 ‘몸짓’, ‘눈짓’이 청중을 매료하려고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곡과 곡으로 떨어진 ‘제스튜어’와 ‘에스프레시브’에 침울을 일층 더하게 해온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작곡발표음악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발표회가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길래 그 후 주시해보니 전부가 다라고 할만치 모두 발 박자에 분주한데 이것은 음악의 미를 상쇄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된다. (藝術通信 227호 1946. 7. 1) = 무용 = [조선 최초의 군무대회 동원 무용가 연 2백명] : 조선무용가협회에서는 래 8월 7일부터 9일까지의 3일 간 시내 국도극장에서 전 조선남녀무용가를 동원하여 ‘솔로’와 군무대회를 개최하기로 되었는데 이는 조선에서 처음 보는 무용대회로 무용가의 연 인원은 2백명에 달한다고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 [똘똘이의 모험‘ 금월 말 완성 예정]: 남일영화사에서 방금 제작 중인 ’똘똘이의 모험‘ 은 요즈음의 일후日候관계로 다소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는데 앞으로 날만 좋으면 금월 말에 제작을 완성하여 래 8월 제1주로 시내 극장에서 봉절되게 할 예정이라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 연극= [‘연동演同 수재구제공연 준비]: 연극동맹에서는 이번 수재동포들을 위하여 불원 수재동포 구제흥행을 하기로 되었는데 동 공연의 準備委員은 다음과 같다.’ 김태진, 조영출, 박상진, 박학, 이재현, 황영일黃英一, 이동호李東胡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 [학병동맹 ‘피흘린 기록’을 영화화] : 학병동맹에서는 이번에 희곡 ‘피흘린 기록’을 임연수林連壽씨 윤색으로 16미리로 영화화할 계획을 가지고 방금 준비 중에 있는데 근간 모 영화사에 제작의촉이 결정됨으로 곧 본격적으로 제적을 개시하여 今月 이내로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영화배협’ 총회]: 조선영화배우협단에서는 작 1일 폐사 회의실에서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금후에 있어서의 공연기획에 대한 건을 토의한 바 동건은 동단 간사회에 일임하기로 결의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음악= [‘연협’ 수해구제연주회- 6, 7 양일 배재강당] : 대한연주가협회에서도 이번 수해이재민의 구제사업으로 래 7월 6, 7 양일 밤 시내 배재강당에서 동협회 회원을 동원하여 구제금모금 연주회를 하기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8호 1946. 7. 2) = 무용 = [9월에 무용콩쿨대회] 조선무용예술협회에서는 9월 초순에 전 조선무용 콩쿨대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동 하순에는 동협회 교육무용부 주최로 아동무용콩쿨대회를 열 계획이라 한다.(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남방 조선영화인의 기빨 , ‘바리’도島에서 활약하는 허씨 소식] : 남방에서 활약하는 조선영화 건아의 소식! 즉 얼마 전에 학병으로 출병 중 ‘자바’ 지역에서 소위 영화선무행정宣撫行政에 관계하다가 귀환한 모씨의 담에 의하면 수년 전 조선에서 활약하다가 남방으로 건너갔던 감독 허영許英씨가 그 뒤 ‘자바’에서 조선해방의 기쁨을 안고 즉시 ‘자바’ 조선인연맹을 결성하고 노력하는 한 편 조선인을 중심한 몇 영화 유지와 제휴하여 극영화 제작에 착수하였다 한다. 그런데 현재 모씨의 귀환선이 출범할 때까지는 ‘바리’도에서 ‘크랑크 인’ 중이었다는 바 완성 되는대로 고국판도 제작하여 보내오리라고 전한다. 특히 씨는 해지該地에서 ‘오란다’의 금발여성과 국제결혼까지 하였다니 멀리 다복을 빌건가.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문화영화의 승리!- ‘유황도’ 5일 간 35.000명 돌파-]: 미국무성 제작 태평양전사 영화 제2편 ‘유황도 결전’ 그 서울 공개에 28일부터 작 2일까지 5일 간 35.000명 돌파! 물론 총천연색이라는 전람회적 인기에 가까운 매력도 있을지 모르나 어쨌든 장안 팬의 열광은 문자 그대로 고조되어 드디어 조선극장 흥행 사상의 단 기록短記錄을 돌파하였다. 이로써 미루어 앞으로 보건대 앞으로의 5일 간을 예상컨대 6만명은 넉넉히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같은 기록은 과거 왜정시대 4관 동시상영으로 강제동원한 ‘병대는 앞으로’의 누계 52, 367면을 통쾌하게 깨뜨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로는 극영화의 여하한 작품에서도 이같은 기록을 일찍이 흥행계는 갖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문화영화의 승리라고 할 것으로 영화인의 재고를 촉하는 활동 경고라 하여 ‘센세이션’ 되고 있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남선영화사 이전] : 남선영화사에서는 이번 시내 합동영화사 내 사무소를 이전하였다 한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 [이동영사회사 창립 ]: 상설관의 설비가 구비되지 못한 농촌 벽지를 중심으로 농민들의 정신계몽대를 강화하고 계몽운동의 균형을 도모하여 이번에 김용택金容澤 씨는 이동영사회사를 창설하였다는 바 창립사무소는 청엽정 2정목에다 두고 첫 사업으로 조영뉴스 1, 2, 3 외 수편을 가지고 오는 6일 부터 16일 까지 10일 간 남선일대를 순회공연하기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해방뉴스‘ 제7보 내용]: 1. 농악전국대회, 2. 경기도 그네대회, 3. ’굿벨스‘ 씨 송별회, 4. 연평도 고기잡이 광경 (藝術通信 229호 1946. 7. 3) = 영화 = [월례학술영화회 개촤, 중앙통신사 주최로] : 중앙통신사 사업부에서는 시내 남녀중등학교 생도의 영화정조교육映畵情操敎育을 위한 학우영화회學友映畵會를 도 학무과의 후원을 얻어 매삭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되었다는 바 제1회로는 오는 8알부터 11일까지 3일 간 서울극장에서 매일 오전 중에 시행한다고 한다. 그 상영 영화는 유사 뉴스 3편과 ‘교과敎科의 자유’, ‘작은 악마’ 등이라 한다. (藝術通信 231호 1946.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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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16)김종욱 작 20일 군정청 최 교화국장 발표에 의하면 최근 북중국으로부터 귀국한 무희 최승희 여사는 지난 17일 ‘러’ 군정장관을 방문하여 대략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하였다. "나는 앞으로 교화국 예술과와 협력하여 불란서와 로서아 발레를 모방하여 조선발레를 창설하는 한편 조선 악기로 편성된 악단을 가진 무용연구소도 계획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군정 당국의 후원을 바라는 바이다,”(藝術通信 218호 1946. 06. 20) 무용예술학교 설립안 조선예술무용협회에서는 창립 당초부터 무용예술학교를 설립할 안을 갖고 그간 준비를 거듭하여 왔었는데 지난 19일 동 협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를 당분간 보류할 것을 결의하였다 한다.(藝術通信 218호 1946. 06. 20) 각 무용연구소 통합을 기획(무협) 해방 후 분산적으로 난립되어 있는 각 무용연구소를 현상대로 존립하고 있느니 보다 이를 통합하여 강력적이고 조직적l인 것을 설립하는 것이 조선민족예술무용 건설에 참 힘이 되지 않나 하는 일반 여론을 그대로 반영하여 조선예술무용협회에서는 이것을 약진시킬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藝術通信 219호 1946. 06. 21) 연극 연극인 위안 ‘희극의 밤’ 개최 조선연극동맹에서는 래 7월 초(장소 미정)에 조선 연극인의 위로를 도모하여 ‘희극의 밤’를 개최키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19호 1946. 06. 21) 무용 오케 무용연구소 제8기생 모집 오케 무용연구소에서는 금반 제8기 연구생을 좌기와 같이 모집하고 있다. 모집인원 본과(3년 간), 전공과(1년간) 약간명, 자격- 16세 이상 여자, 단 본과는 소학교 졸업 정도, 전공과는 여학교 졸업정도. 시험기일- 8월 말일. 장소 남대문 동 연구소 내.(藝術通信 220호 1946. 6. 22) 영화 총천연색 ‘유황도 작전’ 가지고 중앙극장 28일부터 영화 겸영兼營]: 중앙극장이 운영방침을 변경하여 영화 상영을 겸행하기로 되었다는 것은 기보한 바이거니와 그간 영화기 설치공사도 완료되어 오는 28일부터는 영화상영이 시작되는데 첫 영사막을 장식할 영화는 유명한 ‘유황도 작전’을 비롯한 수편이라 한다.(藝術通信 220호 1946. 06. 22) 영화 인사 * ‘리어든’ 대위(군정청 영화과장)= 동경 사령부 출장 중 25일 항공으로 귀임. * 홍사헌洪思憲(인천 동방극장 주) =인사차 래사(藝術通信 223호 1946. 06. 26) 음악 우리 해군군악대가 생긴다 조선에도 군악대가 생긴다. 국방해안경비대에서는 해군악대를 만들고자 인천부대를 중심으로 그간 각지 부대에서 군악 지원자를 모집 중 드디어 불일 인천부대에서 해군악대를 정식 편성하기로 되었다는데 이로써 우리 해군은 악대의 씩씩한 군악연주회 또는 가두행진의 장경壯景도 멀지 않아 보게 될 것이라 한다. (藝術通信 223호 1946. 06. 26) 영화 ‘제주도 풍토기’ 봉절 7월 1일 국제극장에서 과반 시사회에서 호평을 이루는 조선영화사 제작 문교부 제1회 영화 ‘제주도 풍토기’는 드디어 래 7월 1일부터 국제극장에서 일반에게 봉절하기로 되었는데 동 주간 중에는 악극단 KPK도 애트랙션으로 출연하기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24호 1946. 06. 27) 영화 영화검열 제8보 수검일 제목 신청자 6월 3일 ’11월의 화요일’ 공보부 동 ‘금붕어’ 경영京映 동 ‘승방비곡’ 경영 동 ‘해방뉴스’(5호) 조선영화사 동 ‘해방뉴스(3호) 동 동 ‘해방뉴스’(2호. 특집) 동 동 ‘해방뉴스’ (2호) 동 동 ‘해방뉴스’ (4호) 동 동 ’해방뉴스’(1호 특집) 동 동 ‘해방뉴스’(1호) 동 동 ‘급행열차’ 열광 동 ‘미소의 인생’ 합동 6월 6일 ‘알프스의 경비병’ 동 동 ‘집씨’ 고려 동 ‘풍년가’ 동 동 ‘권투왕’ 열광 동 ’춘희’ 조선 동 ‘국경’ 고려 동 ‘유납물어維納物語’ 조선 동 ‘춘희’ 열광 동 ‘한구漢口’ 남양 동 ‘전함 SOS' 열광 동 ’금발의 여자’ 동 동 ‘조선풍경‘ 동 동 ‘금항아리’ 최인무崔麟茂 동 ‘그리운 내 고향’ 동 동 ‘굳세인 남매’ 동 동 ‘실바’ 동 동 ‘공중의 패왕覇王’ 동 =(藝術通信 225호 1946. 06. 28)= 공연 축하공연 예술과와 조미문협에서 미국독립기념 축하공연 군정청 예술과와 조미문화협회에서는 오는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의 축하행사로 당일 국제극장에서 주야 2회 KPK 악극단과 극영화 ‘탱고의 밤’을 가지고 주재 미군을 초대하여 위안공연을 하기로 돠었다 한다.(藝術通信 225호 1946. 06. 28) 무용 [임경희 제1회 무용발표 시연회] : 임경희무용연구소에서는 7월 2일 국도극장에서 제1회 발표회를 앞두고 래 29일 하오 5시부터 시연회를 개최키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26호 1946. 06. 29) 영화 수해구제에 ‘영동映同’이 일치 대책위원회를 편성 ]: (전략) 총무부 추민秋民, 허달, 구호부 이재명, 이창용, 김정혁, 이기성李基星, 이근호, 이병일, 김소영, 이숙, 최완규, 사업부 가두책임 김한, 흥행책임 이ㅇ형衡, 촬영부 강신웅, 최순흥崔順興 (藝術通信 226호 1946. 6. 29) 제주도 풍토기‘ 봉절 연기 ]: 조선영화사 제작 문교부 제1회 추천 문화영화 ’제주도 풍토기‘는 기보한 바와 같이 7월 1일 국제극장에서 봉절키로 되었는데 사정에 의하여 수일 연기하기로 되었다 한다.(藝術通信 226호 1946.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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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15)김종욱 6월 15일 국제-극장-에서 시사]:조선영화사에서 제작 중이던 ‘제주도 풍토기’와 ‘해방뉴스’ 제 6호는 드디어 이번에 완성되어 래 15일 오존 10시에 국제극장에서 관계자를 초청하여 시사회를 개최키로 되었다 한다. (藝術通信 209호 1946. 6. 10) 무용가협회 역원 결정, 지난 8일 결성을 마친 조선무용가협회의 부서는 다음과 같다. 위원장 조택원, 부 위원장 함귀봉, 서기장 문철민, 중앙집행위원 조택원, 함귀봉, 문철민, 정지수, 장추화, 한동인, 박용호, 최승희 현대무용부 수석위원 최승희, 발레- 무용부 수석위원 정지수, 교육무용부 수석위원 함귀봉, 문예부 수석위원 문철민, 무용 미술부 수석위원 김정환 (藝術通信 209호 1946. 6. 10) [대한예술무용협회를 따로 조직]:선방예술무용연구소仙芳藝術舞踊硏究所 급 삼화예술무용三和藝術舞踊, 성미원무용연구소成美園舞踊硏究所에서는 거 8일에 신발족한 조선무용가협회와 별개 조직체인 대한예술무용협회를 조직하였는데 동회의 역원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김천규金天圭, 상무위원- 成美園, 양선방梁仙芳, 김삼화金三和, 정인방, 김윤호金潤鎬 (藝術通信 209호 1946. 6. 10) = 영화 = [개칭 ‘서울 영화동호회’로 발족]: 기보한 바와 같이 영화강좌를 계기로 수강 동인이 모여 조선영화동우회(가칭)는 지난 9일 결성식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 명칭을 ‘조선영화동우회’로 개칭키로 정식 결정하였으며 반원般員은 다음과 같다. 간사장- 박철朴哲, 간사- 김명수金明洙, 안청송安靑松, 최창원崔昌園, 박명옥朴明玉, 권영철權寧哲, 윤주전尹柱專. 임시연락사무소- 영화동맹 내 (藝術通信 210호 1946. 6. 11) =영화 = [선구영화 제작 활동 재시再始 준비]: 고협 ‘자유만세’ 제작에 전반으로 협조하고 있는 선구영화사는 이것이 끝나는 대로 다시 동사 자신의 제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고협에 협조하는 한편 기획 중인 ‘항구 부산’을 준비하고 있다. (藝術通信 210호 1946. 6. 11) [‘똘똘이의 모험’ 15일 크랭크 인 개시]: 남일영화사 각본 낭독회를 금 12일에 마치고 오는 15일부터 크랭크를 개시한다고 한다. (藝術通信 211호 1946. 6. 12) =영화= [조영 이용민씨 구성 촬영으로 조선사정 소개영화 ‘백의白衣’ 제작 착수]: 조선영화사에서는 순결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조선민족의 애인인 ‘백의’를 주제로 하여 조선의 풍물, 기계화 공업미에 대한 발전의 내용을 찾아 조선 사정 소개 영화(2권 160피트 정도)를 작 12일 크랑크 개시로 착수하였는데 구성과 촬영에 이용민 씨가 담당하고 있다 한다. (藝術通信 213호 1946. 6. 14) = 영화= [‘자유만세’ 예산 증액, 13일 크랑크 개시]: 고려영화협회의 ‘자유만세’ 의 제작 개시는 그간 제반사정에 의하여 예정보다 다소 지연되었는데 동 협회에서는 이를 기어코 오는 해방기념일에 봉절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 당초의 예산 12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군정청 영화과 급 예술과, 조선영화사의 적극적 후원 밑에 거 13일부터 크랑크를 개시하였다 한다. (藝術通信 214호 1946. 6. 15) = 영화= [열의는 이겼다-영화배우협단 공연 인상]: 연극배우가 영화에 출연하여 성공하는 예가 드물 듯이 영화배우가 또한 연극에 등장하여 성공한 예가 없다. 그 이유는 동양화가가 서양화에도 반드시 솜씨 있을 수 없는 비유를 들기 전에 상호 같은 연기의 길이면서도 그 방향에 전혀 딴 도표道標가 엄연히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의 교류(?)를 늘 경계하여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영화배우협회’ 제공의 ‘안개낀 항구’는 놀라운 시험이며 또한 주목되는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크랭크에서만 볼 수 있었던 얼굴, 소리, 그리고 동작 그것은 확실히 영화 팬 적인 인기의 매력을 갖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편집이 그리고 흑백 음양이 가위 생명이었지 결코 꿰뚫은 호흡적인 것이 못 되는 비밀한 매력임을 어찌하랴. 이 걱정은 비단 필자만이 가진 조바심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무대는 드디어 수즙음 없이 열려간다. 독은기, 최운봉, 남승민, 김소영, 이금룡, 남홍일南弘一, 김영金瑛, 서월영, 이숙李淑 모두 다 열연을 하고 있다. (藝術通信 215호 1946. 6. 17) = 영화 = [영화검열 제7보] 수험일 제목 신청자 5월 28일 ‘차플린 대생활’ 부청 5월 28일 ‘라리의 모험’ 후생부 5월 28일 ‘정말 체조’ 부내 5월 28일 ‘포경선捕鯨船’ 후생부 6월 11일 ‘로이드 무용장군武勇將軍’ 김영규金英奎 6월 11일 ‘아이의 마음’ 김영규 6월 11일 ‘무적 타잔’ 신한 6월 11일 ‘몬티 일만리’ 신한 6월 11일 ‘몬티 세계일주’ 신한 6월 11일 ‘엉터리 스키’ 新韓 6월 11일 ‘해방된 내 고향’ 한창섭 = (藝術通信 217호 1946. 6. 19) = 무용 = [조택원무용단 남선 공연]: 조택원무용단에서는 해방 후 처음으로 오는 26일부터 대구를 기점으로 다음과 같은 목표로 순례 공연한다. 26일- 28일 대구시보 주최로 대구공회당, 29일- 7월 2일 부산체육회 주최. 3일 동래체육회 주최, 5일 대전 (藝術通信 217호 1946. 6. 19) = 국극= [‘황진이를 중지코 ’흥보전‘ 공연 결정 -국극사] : 국악원 직속단체인 국극사에서는 이번에 신작공연으로 ’명기 황진이‘를 할 계획이었는데 사정에 의하여 다시 김희용金熙用 각색으로 ’흥보전‘을 근일 중에 동양극장에서 하기로 되었다 한다. (예술통신 217호 1946. 6. 19) = 영화 = [‘똘똘이의 모험’에 장 경찰청장 등장] : 남일영화사 제작 중에 있는 ‘똘똘이의 모험’ 은 금 20일 방산국민학교에서 세팅 크랑크에 들어가는데 이날은 특히 장 경찰청장이 ‘똘똘이 수상장면에 등장한다 한다. (藝術通信 217호 194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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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자 김종욱의 문화사 발굴 자료 (14)김종욱 남일영화사 작품 이규환 감독 ‘똘똘이의 모험’ 대강 이야기 똘똘이는 장난을 좋아하고 모험을 즐겨했다. 그러나 그냥 덮어놓고 장난을 좋아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동무를 위해서라면...’ 혹은 ‘나쁜 놈들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똘똘이는 언제나 무서움을 무릅쓰고 어디든지 나섰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선생님과 동무를 하고 한강으로 놀러나갔다가 물에 빠진 동무를 보고 위험을 무릅쓰고 모두들이 말리는 것도 돌보지 않고 용감히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동무를 구해 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똘똘이를 그다지 소중히 알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돌똘이가 장난이 너무 심하니 정학을 시킵시다.’ 고 주장까지 하였다. 그럴 적마다 똘똘이의 담임선생님이신 박은숙朴銀淑 선생은 똘똘이를 싸고 돌았다. 대 운동회가 있던 날이었다. 똘똘이와 복남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어른의 신음소리였다. 소리 나는 곳으로 뛰어가 보니 그것은 싸전 가게였고 신음하는 사람은 바로 싸전 가게 할아버지였다. 싸전 가게 할아버지를 묶어놓고 도둑놈들이 들어와서 쌀을 훔쳐내고 있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도둑놈들이 트럭을 갖다 대놓고 쌀을 실어내어 쌓고 있지 않은가. 똘똘이와 복남이는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도둑이 타고 달아나는 트럭 뒤에 가 매어달렸다. 트럭은 교외로 달려나갔다. 똘똘이와 복남이도 그냥 트럭에 매어달린 채 교외로 이끌려 나갔다. 어느 창고 앞으로 가서 트럭은 멈추었다. ‘얘, 빨리 순사한테 가서 일르자.’ 하고 무서움을 무릅쓰고 도둑의 뒤를 따랐으나 불행히도 그들은 도둑에게 잡히게 된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똘똘이와 복남이의 모험은 시작된다.<이하 생략: 편저자 주 >(藝術通信 205호 1946. 6. 5 ) = 영화 = [분주한 영화 검열-벌써 지난 24일까지 120편 수검受檢, 중앙 무無, 합동 27, 조영은 4편뿐 ] : 지난 4월 6일 군정청령 제68호에 의한 영화검열이 실시된 지 양삭兩朔, 그동안 동 영화관계 단체와 우의友誼문화단체들은 궐기蹶起로서 [판독 미상]을 꾸준히 전개할 듯이 보이던 것도 아직 기억에서 새로운 바 있거니와 과연 이 운동은 시초의 결의와 같이 열성으로서 지탱되었는가! 5월 4일 전기 각 단체 연명의 진정건의문이 당국에 제출된 데에 대하여 동 7일 [미상] 공보부장은 기자회견 석상에서 ‘그 조처가 불리하다면 정정하겠다.’라는 만미滿味[미상] 언명이 있어 이 문제는 급전직하 호전을 볼 듯이 인상되었던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 당사자 측인 영화 각사는 ‘뉴맨’ 부장의 언명대로 해 법령에 어떠한 확정 실시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는지 언간焉間의 전말은 아직 과문寡聞인지라 그 귀결을 모를는지 모르나 하여간 육속陸續 살화實話는 본색本色 첨부한 수검 작품이 날로 그 수를 높이었지만 5월 24일까지 110여 편이 통과되고 있다, 이제 그 총 수검 작품을 사별로 보면 중앙영화사의 38, 합동영화사의 27, 공보부의 14의 순으로 기타 12사가 각기 1 내지 3, 4편을 수검 받고 있다. 특히 가장 재고를 많이 갖고 있을 조선영화사가 이날 겨우 4편을 제출했다는 것은 주저할 일이다.(藝術通信 205호 1946. 6. 5 ) [신라문화 영화화, 조선문화영화사가 기획 ]: 대구 조선문화영화사에서는 창립기념작으로 경주의 우리 예술문화를 테마로 하여 ‘신라문화’란 가제의 기록문화영화를 제작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래서 7월 초 예정인 크랑크 인 개시를 앞두고 목하 김수향 제작부장이 카메라맨을 대동하고 경주 현지를 역방歷訪 중이라 한다. (藝術通信 205호 1946. 6. 5 ) ‘똘똘이의 모험’ 배역 결정‘ 남일영화사 제작 극영화 ‘똘똘이의 모험’ 배역은 다음과 같다. 김교장- 이금룡. 송교원-독은기, 박선생- 한은진, 똘똘이 어머니- 복혜숙, 똘똘이 아버지- 손전孫傅, 복남이 어머니-강정애姜貞愛, 황가黃哥- 안병록安炳錄 (藝術通信 205호 1946. 6. 5 ) = 예술일반 = [향토예술관계서 출판사 출현 ]: 국악을 비롯한 향토예술과 기타 무대예술을 목적하여 거 7일 조선문화사가 창립되었다는데 본사 대표자는 김윤환金潤煥씨, 사무소는 임시로 다옥정 국악사무소에 두었다 한다. (藝術通信 208호 1946. 6. 8 ) = 영화 = 소형영화(16미리)의 발전을 꾀하자고 오웅탁吳雄鐸, 하종河鍾 등 동인이 모여 본사 회관 2층에 ‘신영사新映社’를 설립하였다. (藝術通信 208호 1946. 6. 8 ) = 무용 = [조선무용가협회 수遂 발족 ]: 무용가의 통일조직을 확립하여 일체 불순한 무용을 배격하는 동시에 진지한 민족무용의 획기적 발전과 건설을 목적하자는 조선무용가협회는 드디어 재작 8일 오후 3시부터 시내 명동 중앙애청단中央愛靑團에서 결성대회를 열고 발족을 보았다. (藝術通信 208호 1946. 6.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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