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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6)<br> 최승희의 아리랑 춤사위최승희의 아리랑춤 한국 현대무용의 개척자, 홍천 출신 최승희(崔承喜)의 대표작 '보살춤'과 '초립동', '도라지'와 함께 알려진 아리랑 춤사위이다. 일본과 1939년 유럽 순회공연에서 선사된다. 당시 조선춤과 전통 춤사위을 근간으로 만든 창작춤 공연은 유럽 현지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단기간이나마 한성준으로부터 태평무와 한량무를 배우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춤이다. 우리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최고 기량을 지닌 조선의 악사들의 생음악이 더해져 당시 최승희의 조선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장콕도 등 세계인들에게 신비한 동양의 무희로 알려진 국제적 불세출 무용가이다. 우월한 신체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남성 춤도 잘 추었다. 노래도 잘해서 영화 '반도의 무희'의 주제가 자작곡 '향수의 무희', 번안곡 '이태리의 정원' 등 음반이 전해진다. 최승희(1911-1969) 1911년 강원도 홍천 출생 북한에서 조선무용가동맹위원장, 무용학교교장, 최승희무용연구소 소장 역임 1937년 세계 순회공연(3년간 150회) 19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51~1952년 중국 공연예술대 무용과 교수 1929년 최승희무용연구소 설립 1946년 월북 후 최승희무용연구소 설립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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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6) <br> 이동안 명인의 '재인청 이동안류 태평무' 춤사위이동안류 태평무 격조와 품격의 아름다움이 절도 있게 드러나는 춤이다.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구름 위를 걷듯 출렁이면서 살얼음을 깨뜨리지 않는 사뿐한 디딤은 압권이다. 여기에 긴 한삼자락을 펼치고 뿌려 거둬들이는 팔사위와 의식을 거행하는 제관(祭官) 같은 위엄이 깃든, 그러면서도 무심한 듯한 표정은 절제의 멋을 더해 준다. 장단으로는 긴 호흡을 가다듬는 춤의 첫 장면에서는 ‘길군악’ 음악을 뒤집어 ‘낙궁’이라 부르는 장단으로 시작한다. 구음이 들어가는 행차 걸음으로 의식무로서의 분위기를 잡는다. 부정놀이 장면에서는 24박을 한 장단으로 엮어 제관의 의식처럼 사방을 다니며 인사로 예를 다하는 춤을 춘다. 반서림(터벌림)에서는 5박 x 5박을 한 장단으로 하여 홑박의 묘미인 밝고 경쾌함이 나타나며 ‘흥’의 감정으로 리드미컬한 발동작과 팔사위로 짜임새를 만든다. 엇모리로 넘어오면서 타악기로만 반주하는 음악이 10박을 한 장단으로 하여 기악과 구음이 들어와 떠들썩하게 흥청거리고 비틀거리고 고뇌하며, 서민적인 정서를 엮어 고뇌가 깃들어 있는 관과 민을 아우르는 마음이 드러난다. 갑자기 번개치는 올림채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장구와 꽹과리 음악으로 몰아치며 춤이 잘게 쪼개어지고 급박한 다이나믹함으로 숨 막히게도 하지만 결코 위엄을 잃지 않는 속도감 있는 역전의 분위기를 만든다. 잦은몰이 일환인 경상도 엇굿거리, 넘김채, 겹마치기장단이 이어질 땐 급하면서도 질서와 규범이 있는 발동작이 이어지는데, 땅을 꾹꾹 디디는 발놀림이 화려하다. 열정과 신명이 솟는가 하면 넉넉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생기 있고 발랄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하늘을 향하여 한껏 펼쳐지는 한삼은 땅과 하늘이 하나 되듯 연출되며 태평성대를 느끼게 한다. 위의 요소들은 여느 태평무와는 다르게 이동안 선생의 태평무만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래서 이동안 태평무는 민속무의 대표적 두 줄기인 승무와 살풀이춤 못지않은 극적 요소를 갖춘 춤으로 인정받는다. 이동안 이동안 선생은 전통 무용가이며 재인청의 춤꾼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인으로, 화성 재인청 마지막 도대방(수장)이었다. 재인청은 조선시대 직업적인 예능인들의 연예 활동을 행정적으로 관장하고 교육하던 기관으로 오늘날의 예술인총연합(예총) 격인데, 예로부터 전해오던 모든 춤을 다듬고 창안하며 전승시킨 위대한 춤꾼 김인호 선생이 재인청 출신이다. 이동안 선생은 재인청의 수장이 되어 우리 전통춤과 장단 그리고 당대 최고의 명인들로부터 배운 기예와 전통 예술을 지키고 보존하며 전통 예술과 예맥의 전승이라는 과업을 완수하고자 했다. 당대의 춤 명인이던 김인호 선생은 이동안 선생의 뛰어난 춤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유일한 제자로 삼아 10여 년에 걸쳐 살풀이, 태평무, 승무, 진쇠춤, 검무, 희극무, 북춤, 소고춤 등 30여 종의 전통무용과 장단을 전수해주었다. 이동안 선생은 국극전용극장인 광무대를 시작으로 원각사, 문락정 등 극장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재인청 춤을 공연하였다. 또한 우리 전통춤의 맥을 잇고자 부산대, 동아대, 부산교대, 선화예고, 리틀엔젤스 어린이무용단과 전통예술고 등에서 우리 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여성농악단을 조직하고 무용연구소를 열어 내로라하는 춤꾼들을 길러내고 전통문화의 기틀을 세우는 데 공헌했다. 김인호 선생의 전통을 잇는 이동안 선생의 태평무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발탈과 함께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보고 조사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동안 선생이 가지고 있는 기예인 ‘발탈’을 독특한 종목이라 판단한 심사위원들은 ‘발탈’을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결정하였다. 80년 춤 인생을 인정받지 못한 이동안 선생은 "내가 안 하면 끊긴다고 해서 발탈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지만, 사실 나는 춤꾼이지 재주꾼이 아니다”라며 크게 낙심하였다. 기회는 다시 왔다. 1988년 태평무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한 심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심사과정에서 발탈로 인간문화재가 된 이동안 선생을 춤꾼으로, 그의 춤을 무형문화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선에 갇히고 말았다. 결국 전통 그대로의 바지춤을 고수하며 재인청의 예맥을 이어온 이동안류 태평무는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해 무형문화재에서 탈락하였고,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김인호와 이동안의 태평무는 전통을 지켜왔음에도 비주류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고 말았다.(재인청춤보존회장 정주미) 이동안(1906-1995) 1920 광무대 생활 시작. 태평무, 진쇠춤 등 공연 1927 일본 전역 순회공연 (태평무, 진쇠춤) 1929 대동가극단의 임방울, 이화중선 함께 중국 순회공연 1983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로 지정 1992 한국명인전 (엇중몰이신칼대신무) 1994 이동안 전통무용 발표회 (태평무, 진쇠춤, 엇중몰이신칼대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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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5)<br> 이매방 명인의 '살풀이춤' 춤사위살풀이춤 살煞 또는 액厄을 예방하거나 풀기 위한 무속에서 나온 제의적 성격의 춤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한말 신분제의 폐지로 무인(巫人)들이 무업(巫業)을 버리고 그중 일부가 기방(妓房)에 모여들면서 감상을 위한 예술춤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살풀이춤은 무속춤으로 출발해 재인이나 기생 등 예인에 의해 기방예술로 자리 잡았으며, 근대 이후에 무대화를 거치며 장르화 된다. 살풀이춤에 내재된 심성은 깊은 한(恨)이지만, 단순히 슬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희와 신명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이중 구조의 인간적 감정을 표현한다. 따라서 한의 감정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승화의 길로 접어드는데, 맺고, 삭히고, 움켜 안는 등의 소극적인 정서와 포용하고, 풀어내고, 떨쳐내는 적극적 정서가 서로 교차하며 발전해 간다. 이매방 명인은 한국 전통춤의 거목이자 승무, 살풀이춤의 명예보유자이다. 전라남도 목포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대까지 무(舞)업을 이어왔으며 광대 출신으로 권번 기생을 가르쳤던 할아버지 이대조에게 7살 때부터 6년간 검무, 승무, 법무 등을 배웠다. 이후 박영구에게 승무와 북을, 이창조로부터 검무를 사사했다. 목포공고 졸업 후에는 군산 영화동, 서울 창신동, 아현동 등에 무용 연구소를 개관하고 1940년대부터 전승 활동을 시작해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73년 전통춤 학원인 이매방무용연구소를 열고 춤을 가르쳤다. 1980년대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활동을 이어나갔다. 80년 넘게 전통춤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명인은 생전 입춤, 검무 등 19종류의 춤을 선보였다. 특히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 제97호 살풀이춤(1990)의 명예보유자로 두 가지 명예를 보유한 사람은 이매방 명인이 유일하다. 생전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서 공연을 하며 한국 춤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매방(李梅芳)(1927-2015). 전라남도 목포 목포공립공업학교 졸업 1996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1993 인간문화재진흥회 부회장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2015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2004년 임방울 국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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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54)<br> 김병섭 명인의 '설장고' 춤사위설장고 장구잽이가 혼자서 장구를 메고 노는 놀이를 설장고라고 하고, 장구잽이 2명이 노는 놀이는 쌍장고(雙杖鼓)이고, 세 사람의 경우는 삼장고(三杖鼓)라고 하며, 여러 명이 노는 경우에 장고놀이라고 한다. 설장구란 원래 농악에서 장구잽이의 우두머리를 뜻하였으나, 농악을 치는 판굿에서 우두머리인 설장구가 나와 솜씨를 보이는 놀이를 한다 하여 설장구놀이라 하던 것을 줄여서 이렇게 부르고 있다. 농악대(農樂隊)의 장고잽이 중 제1 장고수(杖鼓手). 설이란 으뜸을 뜻하는 말이다. 장고는 농악기 중에서 으뜸가는 악기이다. 그 가락은 매구·걸궁의 모든 굿가락에서도 으뜸이요, 또한 사위로도 으뜸이기 때문에, 설장고란 말이 유래되었다.전라도 우도농악(右道農樂)의 판굿에 나오는 장고놀이. 일명 홋장고·장고놀이. 일명 홋장고·장고놀이. 장고잽이 중 상장고가 혼자 나와서 하는 장고놀이인 설장고는 덩덕궁이·세산조시·구정놀이·호드래기·굿거리 등 여러 가락을 변주시키며 장고놀이를 짠다. 설장고에서 많이 연주되는 장단은 덩덕궁이·다드라기(호두락가락)·구정놀이·굿거리이다. 본래 상쇠와 둘이서 놀이판 가운데 나와 서로의 가락을 주고받으며 놀던 것이었으나, 전라북도 정읍의 유명한 장구잽이 김홍집(金弘集)에 의하여 오늘날과 같이 혼자 하는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서양음악의 카덴차(cadenza)와 같이 연주자의 즉흥성이 요구되고 또한 중간에 자유리듬이 포함되기도 한다. 근래에는 무용수들에 의하여 장구춤으로 안무되기도 한다.설장구는 전라도 우도농악권 지역에서 크게 발달하였으며, 김병섭은 이를 바탕으로 개인 설장구를 만들어 현재까지 설장구 유파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다. 김병섭 선생은 장고 하나로 한국농악판에서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던 명인이다. 김병섭(金炳燮)1921~1987년1921년 정읍시 북면 출생1930년 김학순에게 장구 사사1935년 싱카포르 함락 기년 축제 참가1937년 징용으로 아오지 탄광으로 징용1956년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인상 수상196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개인상 수상1975년 한양대, 서울예고, 선화예고 출강1986년 서울국립극장 명무전 출연 1987년 9월 11일 향년 75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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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53)<br> 김천흥 명인의 '춘앵무' 춤사위춘앵무 19세기 초 조선 순조(純祖) 창작된 궁중정재의 하나로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순원왕후의 탄신 40주년을 기념해 지은 춤이다. 버드나무 가지에서 맑게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궁중 대잔치 때 화문석 하나만 깔고 한 사람의 무기(舞妓)가 그 위에서 주악에 맞춰 추는 춤으로 무산향과 더불어 궁중무용의 유일한 독무다. 춘앵무는 지극히 절제된 춤을 추기 때문에 그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심소 김천흥은 1909년 한성부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고, 정동보통학교를 졸업 후 1922년에 이왕직 아악부 아악사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했다. 1923년 순종황제 오순탄신연에 무동으로 참가하여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불렸다. 해금을 전공, 양금을 부전공으로 하여 1926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1940년까지 이왕직 아악부에 근무하며 아악수, 아악수장을 역임했다. 궁중정재의 대가로 통했으며,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평생 후학을 양성했다. 민속무용에도 일가를 이루어 살풀이춤, 승무로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2007년 99세로 타계하기까지 국악계의 대원로로 활동했다. 만년까지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이애주, 인남순 등 제자들을 지도했고, 중요한 사승 인맥 중 한 사람이 한성준이다. 궁중무용은 정악 거문고의 대가였던 이수경에게서 배웠으며, 권번 재직시절에는 탈춤과 같은 민속무용을 배우는데에도 주력하여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을 겸전했던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때문에 살풀이춤이나 승무로도 제법 많이 무대에 섰다.장기는 '처용무'와 궁중 정재 가운데 독무인 '춘앵전'이다. 춤에만 능했을 뿐 아니라 정재 전반의 구성에도 탁월한 면모를 보였는데, 특히 창사(唱詞)도 잘했다. 담백한 창법으로 부르는 그의 창사는 일품으로 꼽힌다. 김천흥(1909~2007) 2006.03~2007.08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 2006.03~2007.08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명예보유자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이왕직 아악부 아악수장(1922년~1940년)대한국악원 이사(1945년~1950년)국립국악원 원로사범(1951년~2007년)대악회 이사장(1973년~1993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1978년~2007년)무형문화재예술단 단장(1983년~1993년)심재 정악단 창단 고문(2004년)문교부 문화보존위원회 위원국립국악원 예술사국립국악원 국악사서울특별시 문화위원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경희대학교 강사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수상2001년 금관문화훈장 1997년 방일영 국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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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2) <br>하보경 명인의 '밀양북춤' 춤사위밀양북춤 밀양북춤은 밀양백중놀이 셋째마당에서 연희되고 있다. 민속악에 있어 북춤은 크게 외북춤과 양북춤으로 나뉘는데, 밀양북춤은 외북춤과 밀양오북춤이다. 다섯(五)이라는 동양철학적인 의미가 가미되어 다섯 명의 북잽이들에 의해서 추어지는 군무(群舞)형태이다. 경상도의 꿋꿋한 심성이 북가락에도 그대로 드러나, 꾸밈이 없이 원박 위주로 진행되며, 남성적인 힘이 배여 있다. 구조적 완결성이나 동작의 다양성 등에 있어 단조롭지만 독특한 춤사위는 독창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민속춤이다. 하보경 명인의 춤사위 특징은 장대하고 든든한 체격에 활기있고 기운찬 신명을 끌어내는 자연의 품안에서 섭리대로 살아가려는 풍요로운 멋과 의연함이 표출된다. 틀에 맞추려는 꾸밈이 없고 정형화 되지 않는 자연스런 호흡에 따르는 춤사위가 특징이다. 그만큼 장소나 관객에 따른 즉흥성이 압권이다. 무형식의 밀양오북춤은 1971년 하보경 옹에 의해 재구성 되어 1974년 5명의 군무로 정형화 되어오다가 손자인 하용부의 노력으로 점차 무대화 되어 국내외 큰 무대에서 많은 공연을 해 왔다. 이때 해외 공연에서 소박한 한국 민속춤의 춤사위로 큰 호평을 받아왔다. 특히 넓은 무대 공간이라도 넘나드는 독무의 춤사위와 북소리가 하나가 되어 공간을 채우는 조화미가 두드러지고, 정중동의 미와 신명성은 가히 관객 반응이 압권이다. 이러한 솟구치는 신명을 일으키는 내재적 동인은 민중적 미의식에의 존립 근거인 '놀이정신'의 발현이라고 본다. 하보경 (1906-1997) 경남 밀양 출신. 밀양백중놀이의 보본계(報本契)라는 친목단체 농악단원이었던 하성옥(河聖玉)·이삼선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놀이판에서 춤을 배웠고 20대에 기방춤에 전념하여 영남 한량춤 가락을 창출하였다. 김성숙에게 북과 북춤, 부친에게 북과 양반춤, 백내원에게 범부춤 사사받있다. 걸립농악단의 모갑(某甲)이면서 큰북을 치기 시작하여 가락과 춤동작을 나름대로 연구하여 독특한 맛을 내는 일에 열중하다가 20세에 백중놀이 정식회원이 된다. 1980년 밀양백중놀이를 정립하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된다. 김상용·권재업·조병환(趙炳煥)에 이어 박동영(朴東英)과 손자인 하용부(河龍富)가 대를 계승했다. 밀양 민속놀이 발굴과 복원작업과 보유자 지정 이후 평생 밀양백중놀이 전승활동에 전념하였다. 수상 및 경력 밀양아랑제 등 밀양 지역 민속놀이 발굴, 복원 1925년 밀양백중놀이의 보본계 가입 1946년 오삼친목회 결성 1960년 밀양국악협회 발족 1971년 밀양오북춤 재구성 1980년 '밀양백중놀이' 정립 1980년·1981년·1982년 민속경연대회 경남 예선에서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 1980년 제주도 민속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 기예능보유자 인정 1981년 인천국악경연대회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 미국 뉴욕·워싱턴·로스앤젤레스 등 7개 도시, 일본 동경 등 순회공연 1988년 올림픽 문화예술축제 ‘노스토이(Nostoi)’ '천상의 신'배역 1993년 제2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999년 제1회 밀양시민대상 수상(작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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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1) <br> 이애주의 명인의 '승무' 춤사위승무 승무는 우주가 열리면서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성숙하고 열매 맺은 다음 다시 제자리로 회귀하는 생명 본성의 근본을 형상화한 춤이다. 승무에서 춤 이름에 나타난 ‘승’의 의미는 소승小乘을 넘어선 대승大乘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포함한 온 중생, 우리 모든 사람들을 뜻하여 인간의 춤, 우리들의 춤이라는 큰 의미의 보편성을 갖고 있으며 춤에 불교의 고깔과 가사·장삼이 차용되어 승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다.춤은 사람들이 살면서 움직여지던 몸짓이 토대가 되어 나왔듯이 승무 또한 우리가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몸짓에서 그 골격이 세워졌다고 할 수 있다. 고대 부족국가시대부터 하늘을 숭배하고 제의를 지내던 몸짓, 수렵과 사냥의 몸짓, 농사의 몸짓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지신을 밟고 씨를 뿌리는 모습, 김매고 추수하는 움직임에서 승무의 가고 오는 발놀림이라든지 장삼을 뿌리고 앉는 사위 등이 서로 일맥상통하고, 울러 메고 타작하는 모습 등이 승무에서는 어깨에 메고 흩뿌리는 춤사위로 나타난다. 이애주 (1947-2021) 서울 출생 1954년 김보남(1912~1964) 선생 입문 1970년 한영숙(1920∼1989) 승무 사사 1992년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 2017년 제7회 박헌봉 국악상 2013년 옥조근정훈장 2003년 제7회 만해대상 예술부문 2019년 제1회 대한민국 전통춤 4대명무 한영숙상 수상 2020.03~2021.05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2019.09~2020.03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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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0) <br> 최승희 명인의 '보살춤' 춤사위최승희 '보살춤' 세계적인 무용가로 이름을 날렸던 최승희가 안무한 불교 춤이며, 동양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 추어졌는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관음보살의 자비행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지만 보현보살의 행원을 형상화 했다고 보는 설이 정설이다. 보살춤은 한자리에 머물러 추는 것이 특징인 춤으로, 불상에서 나타나는 자세와 여기서 품어 나오는 정서적 영감 그리고 감성적 환영을 춤으로 승화시킨 이른바 정중동(靜中動)의 기예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조명을 뒤에서 비추어 후광처럼 처리함으로써 보살의 환영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으며, 역광을 통해 실루엣으로 처리된 신체의 선은 더욱더 그 신비스러움을 배가 시킨다. 대일항쟁기 신무용가 최승희는 외세의 외압 속에서 민족성을 고취하고 민족적인 것을 구현하기 위해 조선의 민족무용을 현대적 계승 작업에 성공하였다. 그는 민간 무용, 승무, 무당춤, 궁중무용, 기생춤 등의 전통무용들에서 민족적 정서가 강하고 우아한 춤가락 등을 찾아 내며 현대 조선 민족무용 발전의 기초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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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9) <br> 김백봉 명인의 '부채춤' 춤사위(2)부채춤 '김백봉부채춤'은 세계인들에게 한국무용의 대명사로 잘 알려졌다. 한국무용'의 르네상스를 개척한 김백봉에 의해 1954년 창작된 양손에 접부채를 들고 추는 춤이다. 부채춤은 평안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국 전통춤의 근 현대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꽃피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춤이다. 김백봉 부채춤의 형태적 특징은 중후함, 유연함, 탄력성을 들 수 있으며 부드러운 곡선과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춤사위 그리고 한국적 정서가 깊게 묻어나는 부채춤만의 독특한 예술미학적 기법 등이 그 춤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굿거리와 자진모리장단으로 이루어진 반주음악은 흥겹고 경쾌한 리듬이 약동적인 춤사위로 창출되며 八字형과 之字형으로 태극선과 포물선상의 곡선을 만들어가는 부채사위의 기본적 구조는 자연의 이치를 근본으로 삼아 묘사된다. 1992년 한국무용협회에서 명작무 2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등록되었다. 김백봉 명인은 부채춤'과 '화관무' 창시자로 한국 무용계를 이끌었다. 한 평생 춤과 함께 해온 고인은 근·현대 한국무용 역사의 산증인이다. '화관무', '부채춤', '산조', 만다라', 무용극 '심청', '춘향전' 등 평생 600여 편이 넘는 창작춤을 만들며 한국 신무용의 형태와 기틀을 다졌다. 1954년 신무용 부채춤을 발표했으며,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부채춤을 처음으로 선보여 전 세계에 한국 전통춤의 미를 알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는 2000명의 무용수가 대형 군무 ‘화관무’를 선보였다. 김백봉(金白峰, 본명-김충실, 金忠實) 평양남도 기양, (1927-2023)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화체육관광부) 학력 사항 ∙ 1937 평양사범부속국민학교 졸업 ∙ 1939 평양 명륜실업여학교 졸업 ∙ 1943 동경 쇼인고등여학교 졸업 ∙ 1966 서라벌예술대학교 무용과 졸업 ∙ 1965 대학 부교수 자격취득 (학사1018-154) ∙ 1983 미국 Union University 명예 이학박사 취득 수련과정 ∙ 1939~1943 동경 최승희무용연구소 ∙ 1946~1950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 (무용창작법 전공) 주요 수상 ∙ 2004.06 한국무용협회 ≪서울무용제≫ 특별공로상 ∙ 2005.01 무대예술전문인협회 2004년을 빛낸 무대예술인상 ∙ 2005.10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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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8) <br> 김백봉 명인의 '부채춤' 춤사위부채춤 '김백봉부채춤'은 세계인들에게 한국무용의 대명사로 잘 알려졌다. 한국무용'의 르네상스를 개척한 김백봉에 의해 1954년 창작된 양손에 접부채를 들고 추는 춤이다. 김백봉 선생이 1947년 스승이었던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의 '무당춤'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민속무용 ‘부채춤’은 오랜 역사적 기간에 각이한 생활적 계기와 정황들에서 추어진 ‘부채춤’들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재형상한 무대예술작품이다. 부채춤은 한국무용사의 근·현대 과정에서 서양식 무대로 옮겨지는 변모과정을 거쳐 예술적으로 새롭게 창출되어 발전한 작품이다. 부채는 단순한 춤의 소도구나 장식품이 아닌 춤의 주제이고 모든 춤사위를 유도해 내는 기동인起動因이다. 부채춤이 표현하고 추구하는 미의식은 우리 춤의 전통적 깊이와 현대적 미의 오묘한 조화를 들 수 있다. 이 춤의 매력은 민속악 반주에 부채를 접고 펼 때의 마찰음과 부채를 펼쳐 들었을 때의 포물선, 의상이 만들어 내는 곡선, 부채를 펼쳐 들 때 시원스레 뻗은 팔의 선, 바람을 가르며 빙글빙글 휘돌아가는 부채의 움직임이 밝고 화사하다. 독무의 부채춤이 군무로 재구성되어 발전하게 된 것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이다. 1992년 한국무용협회에서 명작무 2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등록되었다. 김백봉(金白峰, 본명-김충실, 金忠實) 평양남도 기양, (1927-2023)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화체육관광부) 학력 사항 ∙ 1937 평양사범부속국민학교 졸업 ∙ 1939 평양 명륜실업여학교 졸업 ∙ 1943 동경 쇼인고등여학교 졸업 ∙ 1966 서라벌예술대학교 무용과 졸업 ∙ 1965 대학 부교수 자격취득 (학사1018-154) ∙ 1983 미국 Union University 명예 이학박사 취득 수련과정 ∙ 1939~1943 동경 최승희무용연구소 ∙ 1946~1950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 (무용창작법 전공) 주요 수상 ∙ 2004.06 한국무용협회 ≪서울무용제≫ 특별공로상 ∙ 2005.01 무대예술전문인협회 2004년을 빛낸 무대예술인상 ∙ 2005.10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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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7) <br> 최승희의 '빛을 구하는 사람들' 춤사위신무용 '빛을 구하는 사람들' 근대를 상징하는 모던댄스, 1910년 미국에서 발생한 새로운 무대무용이다. 신무용 '빛을 구하는 사람들' 작품은 최승희가 전통춤과 서양춤을 배합시켜 창출된 춤이다. 말 그대로 최승희는 조선 신무용의 창시자가 되었고, 오늘날 한국과 북한, 중국의 무용계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최승희의 공연 레파토리나 의상은 똑같은 춤을 추더라도 공연하는 나라마다 약간씩 다 달랐다고 한다. 신무용가 최승희가 전통춤을 배우기 위해 지방의 춤꾼들, 기생들을 찾아 다니면서 배웠다고 한다. 특히 한성준에게서 승무를 사사했다. 1930년대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는 '한류 1호'라고 할 수 있는 국제 스타이었다. 당시 피카소도 반한 최승희의 ‘월드 투어’는 1937년부터 3년간 유럽 및 중남미, 미국 등 150회 순회 공연을 통해 세계무대에 진출하였다. 「초립동」·「화랑무」·「신로심불로」·「장구춤」·「춘향애사」·「즉흥무」·「옥저의 곡」·「보현보살」·「천하대장군」·「아리랑」등 작품을 선보였다. 뉴욕 공연 후 ‘세계 10대 무용가의 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다. 당시 에로틱한 의상과 관능적 몸짓으로 선보인 '보살춤'과 '초립동이춤'이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어려웠던 한계점은 반주자나 보조 출연자 없이 최승희 혼자 축음기 연주에 맞춰 모든 프로그램을 꾸려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경비 문제로 악사나 제자들을 데리고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요극장 3천석이 만석으로 찼을 정도로 세련된 춤사위는 파리의 명사들을 매혹시켰다. 최승희(1911-1969) 1911년 강원도 홍천 출생 북한에서 조선무용가동맹위원장, 무용학교교장, 최승희무용연구소 소장 역임 1937년 세계 순회공연(3년간 150회) 19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51~1952년 중국 공연예술대 무용과 교수 1929년 최승희무용연구소 설립 1946년 월북 후 최승희무용연구소 설립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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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6) <br> 임웅수 명인의 '상공놀이춤' 춤사위상공놀이(춤) 상공이란 광명농악에서 상쇠를 높여 부르는 것으로 머리에 부포를 대신하여 상모고깔 또는 상투를 쓰고 춤(놀이)을 추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상쇠놀이란 부포놀이를 중심으로 쇠가락 위주로 판이 짜여 지지만 상공춤(놀이)은 굿거리 가락을 많이 쓰며 능계가락 중심으로 태평소 소리에 맞춰 판을 벌인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 보유자 임웅수의 춤(놀이)으로 450여 년 전 구름산 도당굿이 성행할 당시에 무녀였던 김선화, 원이쁜 선생이 추었던 춤 동작의 일부를 재현한 것이다. 임웅수 1962년 충남 세종시 출생 (사)대한민국농악연합회 이사장 (사)경기무형문화재 총연합회 이사장 (사)광명농악보존회 이사장 1977년 15세에 농악 입문(정인삼, 김복섭, 박병천 사사) 1979년 민속촌농악단 입단 1986년 마당풍물놀이 창단 (1992년까지 활동) 1997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 보유자 지정 2007년 광명충현고 농악반 지도 (대통령상 수상) 2011년 '양주들노래' 연출 (한국민속예술제 대통령상 수상) 2012년 '함안농요' 연출 (한국민속예술제 대통령상 수상) 2013년 '평안남도 향두계놀이' 연출(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 수상) 2014년 '광명 철산리 디딜방아액막이놀이' 연출 (한국민속예술제 대통령상 수상) 2018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대한민국농악연합회 길놀이 주관(광화문 광장) 2019년 '평안남도 향두계놀이' 연출 (한국민속예술축제 60주년 '왕중왕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수상) 2022년 강원도 동해시 '원님답교놀이' 연출 (한국민속예술축제 문화체유콴광부장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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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5) <br> 이병옥 명인의 '송파산대놀이' 춤사위송파산대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는 약250여 년 전부터 송파진(현재 잠실 석촌호수 남쪽 주변,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한강 줄기)에 서던 송파장을 중심으로 연희되어온 산대탈놀음이다. 연희 형태는 춤이 주가 되고 시대상을 풍자하는 재담과 창, 등 여러 가지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주음악은 삼현육각(三絃六角 장구, 북, 피리2, 대금, 해금)의 악기구성으로 염불 12박, 타령, 굿거리장단이 주가 되며, 당악, 자진타령, 자진모리, 휘모리장단 등이 쓰인다. 송파산대놀이 춤사위는 염불장단 거드름춤, 타령장단 깨끼춤, 굿거리장단의 건드렁춤으로 분류되며, 기본춤사위는 주로 타령장단의 깨끼춤으로 화장무, 자진화장, 여닫이, 배치기, 어깨치기, 곱사위, 멍석말이, 깨끼리, 거울보기, 빗사위, 팔뚝잽이 등 40여종이 있고 배역마다. 독특한 배역 춤사위가 있다. 즉 상좌 합장재배, 옴중 용트림, 노장 복무, 소무 자라춤, 샌님 삼진삼퇴, 말뚝이 채찍춤, 완보 곤장춤, 원숭이 깡총춤, 왜장녀 배춤, 해산어멈 엉덩춤, 취발이 녹음채춤 등이 있다. 이병옥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송파산대놀이 전수 교육조교 선정 (1981) (사)국가무형문화재 49호 송파산대놀이보존회 회장 (2010-2022) 종신 국가무형문화재 '송파산대놀이' 명예보유자(2023. 7) (사) 송파민속보존회 이사장 ( 2010– 2022) 대표저서 ( 총29권, 공동집필 35권) 1982. 송파산대놀이 연구, 집문당. 1991. 북한의 공연예술 Ⅱ<무용. 음악 편>, 고려원(3인 공저). 1996. 한국무용사 연구Ⅰ<고대편>, 도서출판 노리. 2013.『한국무용통사』고대편, 민속원. 2014.『Dance of Korean』(영문판),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 씨리즈 6(9인 공저). 2014.『진주교방과 민간전승의 예술 연구』, 진주문화연구소(6인 공저). 2015. 전통춤의 흐름과 전승현황, 한국전통춤협회(3인 공저) 2019.『전통춤 4대 명무』(한영숙, 강선영, 김숙자, 이매방), 한국전통춤협회(5인 공저), 민속원. 2019, 이동안 선생의 예술세계, 화성문화원(5인공저) 2020. 송파산대놀이 연행과 기원, 송파산대놀이보존회(단독 집필) 2020. 경기재인청 복원과 활용을 위한 연구, 오산문화원(6인 공저) (기타 연구논문 80여 편, 학술발표 50여 편, 비평논단30여 편, 비평리뷰 17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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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4) <br> 김나영 명인의 '태평무' 춤사위태평무 20세기 초반 한성준이 창작한 작품으로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왕과 왕비의 춤이다. 한성준으로부터 강선영 한영숙으로 전승되었으며 김나영은 강선영류 태평무를 이수하였다. 한성준이 경기 도당굿에서 행해진 무속 음악과 무속 춤을 재구성하여 1935년에 처음 선보였다. 198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92호로 지정되었다. 의젓하면서도 경쾌하고, 가볍고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돋보인다. 김나영의 태평무는 때론 휘몰아치는듯 하면서도 넉넉한 평화로움으로 세상을 품어가는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한국전통춤을 근간으로 재창작한 전통창작춤을 무대화 하는 김나영은 자신만의 춤세계가 분명하다. 춤의 본질적 매력에 극적 요소를 더하여 촘촘한 짜임새가 있는 스토리 구성, 각 장면마다 미학적 감각을 더한 예술성으로 끌여올린 절정에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춤의 들숨과 날숨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삶의 호흡이 담겨있다. 김나영의 정중동을 가르는 춤사위를 따라가 보면 잠시 멈춘 뒤태에서 관객들도 숨이 멎는다.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김나영 춤사위의 백미는 바로 절제미이다. 김나영 1956년, 경북 안동 출생 아리예술단 대표(예술감독) (사)한국전통춤협회 안동시 지부장 전주대사습놀이 무용부분 장원상 수상 (1976) 국가무형문화재 제 92호 '태평무' 이수자 국립극장(서울) 국립무용단원 재직(1978.01.~1995.12.) 용인대학교 서울예술대학 창원대학교 강사 역임(1996~1998) 한국춤평론가회 평론상 특별상 수상 (2022) 예술감독 및 안무 춤극 <종천지애-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2016~2020) 춤극 <연이>(2020~2022), 춤극 <신령한 탈 이야기>(2023~) 춤극 '불멸의 여인' <논개>(2014) 춤극 <함께아리랑 >(2015) 춤극 <물처럼 바람처럼>(2021) 그외 다수 국립창극단, 국립극단 등 안무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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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43)<br> 이희춘 명인의 '박관용류 진도북춤' 춤사위진도북놀이 진도지역에서 모내기를 할 때 한바탕 풍장굿에서 양손에 북채를 들고 치는 북춤놀이가 '진도북놀이'다. 1987년 전남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로 지정되었다. 제1대 예능보유자 박관용, 제2대 예능보유자 김관우. 제3대 예능보유자 이희춘 명인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중 '박관용류의 북놀이'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즐겨치는 북놀이다. 단순한 가락에 부치는 춤사위는 다양한 꾸밈이 용이하여, 유려한 아름다운 선이 백미이다. 한민족 고유한 전통 북가락을 온전히 지니고 있고, 일찍이 악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정형화된 군무와 독무로 완성되어 있다. 전 과정은 입장(자진몰이)⟹굿거리⟹자진몰이⟹오방진⟹휘몰이⟹굿거리 인사굿까지 맛깔스런 구음에 곁들여 북춤의 춤사위를 정중동 몸짓은 온몸으로 자아내어 신명으로 풀어낸다. 첫발 디딤은 왼발이며, 북가락은 손목의 유연성을 살려 북을 어루만지듯 양 팔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살풀이성 굿거리 장단에 나비 춤사위가 곁들어 지면 흥이 절로난다. 진도북춤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희춘 명인의 춤사위는 한마디로 꽃을 희롱하는 훨훨 나르는 호랑나비다. 강렬한 북 가락과 맺고 풀어가는 다듬이 가락의 유연한 몸놀림은 신명과 함께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더더구 가락'에 원무를 그리며 태극진법, 촤우치기, 꽃봉오리사위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오방진 가락의 도리깨질사위, 그리고 '휘몰이가락'으로 원형을 돌며 '우반뒤집기'로 한층 열정을 뿜어내어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놓고 굿거리로 인사굿(축원)을 한다. 특히 까치걸음을 멋스럽게 보여줄 때는 속에 숨어있는 흥이 오르기 시작한다. 얼쑤! 좋다. 이희춘 1960년 진도출생 전라남도지사상 표창 문화예술부문 (2001) 한국예술문화대상 (풍물지도자 부문) (2001)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연출단장.예술감독 역임 (2010) 제58회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2014) 전남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2015) (사)한국국악협회 한국국악대상 수상 (2019) (사)한국국악협회 진도군 지부 지부장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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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42) <br>이광수 명인의 '부포놀음' 춤사위부포놀음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가 된 농악은 타악 합주(관악기 포함), 행진, 춤, 연극, 기예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 장르이다. 특히 개인놀이에 쓰이는 '부포놀음'은 사사, 산치기, 퍼넘기기, 배미르기, 돛대치기, 좌우치기, 연봉놀이, 공중매기, 용솟음, 이슬털이 등이 있다. 변화무상한 장단 안에서 부포짓과 함께 다양한 허튼 춤사위를 연행한다. 농악에서 뽑아 낸 사물놀이의 백미는 판굿에서 이어지는 개인 놀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 명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꽹과리 가락과 어우러지는 부포놀음 무보를 가지고 있다. 이광수의 부포놀음은 각 지역 농악의 '부포놀음'들에 이광수의 뛰어난 허튼 춤사위들이 녹아 들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디딤과 호흡에서 즉흥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부포 동작들은 이광수의 꽹과리 가락과 어우러져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곤 한다. 일정한 패턴이 없어 보이는 그의 가락과 동작들 속에서 세련되고 정제된 허튼 춤사위의 진수에서 한민족 전통의 전율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부포가 놀아대는 춤사위를 따라가던 두 눈은 봄날의 아지랭이 피어오르듯 어질어질하다. 이광수 1952년 충남 예산 출생 1957년 남사당패 입문 1978년 사물놀이 창단 1993년 민족음악원 창단 (現) (사) 민족음악원 이사장 1962년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1997년 12월 17일 'KBS국악대상' 단체 연주상 수상 2000년 1월 17일 (私) 국악협회 공로상 수상 2009년 9월 3일 제36회 한국방송대상 국악인부문 수상 2011년 12월 (사)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대상 수상 2014년 5월 14일 충남전통예술강사협동조합 설립 (現) 충남전통예술강사협동조합 이사장 2015년 12월 4일 대한민국 한류대상 수상 2019년 2월 27일 한국국악대상 수상(주관:한국국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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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1) <br>최신아의 최승희류 '쌍북채춤' 춤사위쌍북채춤 북한의 최승희류 '쌍북채춤'은 검무와 비슷한 의상과 모자를 쓰고 양손 북채끝에 길게 끈을 만들고 끝에는 수장식을 달아 휘두르며 양손을 서로 어울어 뒤로 제치며 북을 치는 동작이 특별하다. 진도북춤과 대비한다면 잦은(빠른)발 동작이 많고, 한손은 북에 얹어 한손은 뒤로 제치며 수장식을 이용해서 북을 치는 동작이 많다. 또한 양손으로 빠른 장단으로 북가락을 치고 뒷발로 원을 그리다 빠른 회전으로 원을 두바퀴 돌며 마지막 동작을 마무리한다. 한국의 진도북춤은 중간 정도의 빠르기라고 하면, 북한 쌍북채 춤사위는 진도북춤 춤사위 가락보다 더욱 빠르며 경쾌하고 흥겨운 춤사위와 테크닉이 높은 기교를 부각하고 있다. 남한의 춤이 부드럽고 무게감이 있다면, 북한의 춤은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남과 북의 무용은 음악, 장단 등 전통적인 문화의 뿌리는 공유하고 있다. 최신아 1969년생, 평양 출생 함경북도 청진예술 대학 졸업(1983~1986년) 함경북도 예술단 무용수, 예술감독 24년(1986~2010년) 최신아예술단 대표 (2015~현재) 최신아무용연구소 소장(2019~현재통일) 러시아 사할린아리랑제 초청공연(2019년) 교육위원회 위원(2020년~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사위원(2020~2022년) 서울 시립무용단 특강수업 (2022년 6월) 예원예중 특강 수업(2022년 12월~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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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40) <br> 김채원의 '이매방살풀이춤' 춤사위이매방류 살풀이 춤 국가무형문화재 제 97호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살 또는 액을 예방하거나 풀기위한 무속에서 나온 제의적 성격의 춤에서 유래한다. 고도로 다듬어진 뛰어난 기교의 전형적인 기방 예술 춤으로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춤사위를 보여주며 동서남북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원형적 춤 형태를 지니고 있다. 또한 여성의 교묘하고 화려한 매력과 남성의 민첩하고 추동적 역동성을 표출하는 이중적 멋으로 관객을 사로 잡는 것이 이매방 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채원 이학박사 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무용과 전임 전 동국대 국악과 강사 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강사 한민족아리랑제전(정선) 예술감독(1999년) 진도아리랑축제 (진도) 예술감독(2000년) 북한아리랑축전(서울) 예술감독(2001년) 사할린아리랑제(사할린) 예술감독(2016/2017년) 문경새재아리랑제(문경) 예술감독(2017/2018년) 아리&랑댄스컴퍼니 대표 호주아리랑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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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39)<br> 김정미의 '영남교방춤' 춤사위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부채로 들고 추는 교방계열의 춤으로 경쾌한 민요에 마추어 추는 흥겨운 춤으로 버선발의 현란함이 부채 움직임과 조율되어 여성적 관능미가 돋보이는 춤이다. 김정미 약력 박경랑류영남교방청춤보존회 서울지회장 및 영남교방청춤보존회 부회장 숙명여자대학교전통예술대학 졸업 고양아람아리 전통예술단 예술감독 홈플러스 문화센터 문화예술강사 은평신협 나비채 문화예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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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38)<br> 오금의 '승무' 춤사위승무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독무로 한국무용 특유의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정수가 잘 표현되어, 민속무용 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금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나고야 김묘선전수소 대표 평양음악무용대학 통신학부 무용과 졸업 원광디지털대학 전통예술공연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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