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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46)<br> 이희문·송가인·이날치밴드 공연, 신명나는 민요 현장민요의 현장 논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그 현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희문, 또 여타 실험들에서 민요가 면면히 살아 있을을 확인한다 굿판·노동판·유희판 배경이 달라지고 노래의 양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경기소리는 이희문에게 보존해야 할, 혹은 발전시켜야 할 그 무엇으로서 가창자에게 의무와 당위를 부과하는 억압 기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 성악의 음악적 텍스트는 '만들어진 전통'이 빚어낸 페르소나(persona)를 벗고, 원형으로서의 경기소리와 그 텍스트가 꽃핀 문화와 물적 토대, 환경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이행대상(transitional object)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지난 6월 24일 한국민요학회 제75차 정기학술대회, 이소영 교수(명지병원예술치유센터)가 발표한 '민요의 공연예술화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희문의 경기소리를 중심으로'의 한 대목이다. 이소영은 이 발표에서 이희문의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실험들이 역설적으로 경기소리라는 민요의 원형적 양식을 재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가 좌장을 맡아 종합토론을 진행하였기에, 뒷풀이라고나 할까, 의미심장한 몇 풍경을 소환하여 공부자료로 삼는다. BTS보다 더 먼저 해외 진출에 성공했던 사례가 '이희문과 씽씽'이다. 나도 오래전 이 영상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전통적인 음악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복식이나 배경음악 등 파격적인 연출을 통해 전혀 다른 양상의 장르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같은 도발적 실험들은 이날치밴드, 잠비아니, 악단광칠 등을 필두로 주로 판소리계열 전공자들에 의해 실행 중이다. 민요를 포함한 판소리 전공자들이 트로트나 일련의 실험적인 장르 개척에 나서는 현상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국악의 르네상스'다. 나도 일찍이 수차례 송가인 신드롬을 분석했다.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로 대변되는 사회문화사적 현상, 특히 국악이니 민요니 우리 것이니 따위의 복고적 환기 현상에 주목했다. 전통이라고 해서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요 복고라 해서 퇴행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민요의 현장은 어디인가? 이런저런 현상을 통칭하는 용어로 흔히 컨템퍼러리(contemporary)를 든다. 전통이나 기왕의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대의 감각이나 의미로 포착해내는 일련의 행위라는 함의를 지닌 용어다. 어디 음악뿐이겠는가. 한자말은 다르지만 전해서(傳) 통하는(通) 것이 전통(傳統)이라는 저간의 내 주장을 복기해둔다. 전해서 통하지 않는 것은 인습(因習)이고 장차 폐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무당굿으로 알려진 장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동시대는 물론 관련 공동체와 교섭하면서 재구성되어 온 시대적 산물일 뿐이다. 문화 자체가 늘 현대적 변용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이희문의 사례뿐 아니라 몇 가지의 논의들이 중첩되었다. 관련 언급은 차후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전체주제였던 '민요의 현장'이 과연 어디일 것인가였다. 예컨대 논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던 노동요의 현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희문의 사례에서 또 여타의 실험들에서 민요가 면면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굿판과 노동판과 유희판의 배경이 달라지고 노래의 양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심지어 나는 송가인의 트로트를 '남도트로트'로 명명하고 전통이라는 틀 속에서 분석하고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기 때문에, 두루두루 참고 가능할 것이다. 노동요의 현장과 이희문의 무대 현장, 여전히 문제는 장르나 양식에 대한 고정관념 혹은 분과학문이라는 틀거리에 대한 편협한 진단에 있다. '무대민요'와 '극장민요'를 넘어 민요의 현장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기억된 현장과 사람들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 시기 포착했던 기억된 과거만이 민요의 정체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론을 통해 내가 제안했던 몇 가지를 민요연구의 공론장에 제물로 내놓는다.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한 민요라거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요 등은 일종의 무대민요 혹은 박물관민요다. 논밭에 나가 일하는 형식을 취한다더라도 야외무대라는 맥락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획, 연출, 안무, 소품들이 마련될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배치, 역할, 무대장치, 조명, 복식 등이 면밀하게 구성된다는 점에서 극장민요다. 미장센을 치밀하게 구성한다는 점, 전통 혹은 원형 따위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연극이라는 점에서 이런 호명을 붙일 수 있다. '극장민요'라는 언설은 기어츠가 창안한 극장국가라는 개념에서 내가 따온 말이다. 19세기 인도네시아 제의정치와 권력구조를 정의한 것인데, 근자에는 북한을 수식하는 용어로 사용되어왔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민요는 본래적 배경(context)이 거세되었다. 총체적이지 않다. 문화재 지정이나 전통 발굴을 목적 삼았던 기왕의 민속예술제 따위의 민요는 그것이 갖는 전통적인 양식 예컨대 선율이나 장단 따위의 음악, 노랫말이나 문학적 형식 따위에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이다. 박물관이나 극장에 전시된 혹은 실행되는 민요의 의미가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기획되고 연출된 장르를 폄하하며 이른바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언설로 그 가치를 훼손시킬 필요는 없다. 단지 이것을 총체적 의미를 지닌 것처럼 여기거나, 컨텍스트적 맥락을 요구하는 것을 비판할 뿐이다. 오히려 변화된 현장을 주목하고 재구성된 장르 속에서 원형적인 것을 추적하는 일이 긴요하다. 문화재라는 용어를 문화유산이라는 용어로 바꾸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책의 절반 이상을 민요(風謠)로 수록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살폈던 <시경>을 여전히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희문과 송가인, 이날치밴드나 악단광칠이 노래하는 곳이 현장이다. 민요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근대의 남상기를 기점 삼는 민중성에 대한 주목, 예컨대 민족, 민속, 민예, 민화, 민요 따위의 개념에 충실했던 일정한 시기를 이미 지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선은 분출했던 시대적 수요에 대한 향수, 그때 누군가 정해두었던 그 지점에 머무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근래 교과서에서 국악을 없앤다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다행히 무마된 것같다. 하지만 극장민요와 현장을 혼동하는 착종된 시각이라면, 여전히 잠자는 파도일 뿐이다. 이렇게 질문해본다. 동요를 잃어버린 어린이들의 문제를 의제화하고 우리 사회에 피드백시켰는가? 도대체 그 많던 '어린이'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패미니즘 등으로 고군분투해온 여성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다루고 그들의 행로에 동행했는가? 혹은 비판했는가? 민요 장르는 사실 남성보다는 여성의 지분이 압도적이고 주도적임을 주목하라. 북한민요가 이미 상당하게 입수되어 있는데, 이를 소재 삼아 남북갈등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재건하거나 치유하는 데 피드백되었는가? 민요를 대체하는 실천적 현장에 대해 주목하거나 의제 삼았는가 따위의 질문 말이다. 교과서에서 국악을 뺀다니 화들짝 놀라는 안이함을 나부터 반성한다. 우리 민요 혹은 국악이 지금, 여기, 우리, 특히 다음 세대에 어떻게 기능하고 피드백되는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전통을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자들의 책무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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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 삼일절을 맞아 나운규의 삶 소개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삼일절을 맞아 가수 송가인과 영화 ‘아리랑’을 만든 춘사 나운규를 소개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서 교수가 29일 공개한 4분 30초 분량 영상은 감독, 각본, 주연까지 1인 3역을 맡은 영화인 나운규 생애와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 작품 '아리랑'을 소개한다.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됐다. 이 영상은 일제 강점기 우리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영화 '아리랑'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수많은 관객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 새로운 방식의 '항일운동'이었다는 점을 조명했다. 서 교수는 "점차 대중들에게 잊혀져 가는 역사적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영상으로 이들의 삶을 널리 알리는 일은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각종 SNS로 전파 중"이라며 "특히 전 세계 주요 한인 및 유학생 커뮤니티에도 영상을 공유해 널리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가인은 이번 영상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내레이션을 맡았다. 송가인은 "이번 삼일절을 맞아 나운규의 삶을 목소리로 직접 소개하게 돼 기쁘다"며, "국내외 많은 누리꾼이 시청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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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파, 조선의 마지막 소리""소리의 영과 한이 오롯이 살아나 한 편의 아름다운 가사가 되었다. 소리 하나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다시 한번 소리를 위해 미련 없이 무대 밖으로 나온 허금파의 기구한 생을 따라가며 나는 새삼 놀랐다. 원하는 삶을 위해 세상에서 잊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금파가 우리 안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염원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금파의 애절한 소리가 슬픔을 타고 올라 힘이 되어주니, 음악인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운 작품이다. 부디 내 소리도 금파의 소리처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어주면 좋겠다." (송가인/가수) 1902년,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극장에 올라 소리판을 뒤흔든 여성 소리광대 허금파 실화소설."우리 역사소설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개성적 인물을 강렬하게 창출해 냈다”라는 평을 받으며 제1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빛낸 김해숙 소설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금파』. 2021년 제정된 이번 공모의 수상작 『금파』는 구한말 격변의 시대에 판소리와 창극 무대에서 독보적 소리꾼으로 활동한 실존 인물 ‘허금파’의 이야기다. 작가는 여성이 무대에 설 수 없던 시대에, 늦은 나이로 소리판에 들어와 최고의 가객이 되기까지 갖은 고초를 이겨냈던 ‘금파’의 생을 소설로 복원해 냈다금파가 오직 소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고창에 온 뒤로 판소리 학당 동리정사에는 소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의 세력가 주 영감은 금파에게 추근대다 망신을 당한 대가로 동리정사에 후원을 끊고, 소리선생 김세종은 빼어난 외모와 재주에 고개 숙일 줄 모르는 금파를 염려한다. 금파는 소리를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과거에 관청의 가녀가 된 일도 쪽 찐 머리를 풀어 댕기를 묶게 된 속사정도 모두 가슴속 깊이 묻는다. 그러던 어느 날 김세종은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 기념식 무대에 오를 이들을 가리기 위해 소리 경연을 열고, 금파는 단연 제일가는 소리로 관중의 찬사를 받지만 선발 명단에 오르지 못한다. 금파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그와 실력을 견줄 만한 유일한 상대 승윤 역시 결과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이 일에 주 영감이 연결되어 있으리라 직감하는데…….양반가의 자제이나 소리를 위해 집안을 버린 승윤, 그리고 승윤의 스스럼없는 장난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 흔들리는 금파…… 이들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소리를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허금파 (許錦波, 1866~1949)는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조선 후기, 금기를 깬 최초의 명창 진채선 이후 두 번째로 명창의 반열에 오른 여성 소리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연희극장 협률사協律司 무대에 올라 창극 춘향전의 월매 역을 맡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예술 활동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서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철종 또는 고종 재위 무렵 김천에서 태어나 고창 동리정사(桐里精舍)에서 소리선생 김세종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20대에 관기였고 후처가 된 후 뒤늦게 동리정사에 들어가 한성으로 올라갔을 무렵이 이미 30대였던 그는 소리에 대한 꿈을 결코 놓지 않는 예인이었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전국의 소리꾼들과 함께 자리를 겨루던 때에도 남성 중심의 소리판에서 주역을 맡아 권력에 승복하지 않으면서 하층민의 삶을 대변하는 월매로 무대에 선다. 진채선의 명성에 힘입지 않고 스스로 최고에 오르고자 했던 그의 소리 인생은 세상을 떠난 지 70여 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불온한 삶을 살면서도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대쪽 같은 소리꾼 금파.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오로지 소리 하나로 인생의 길을 찾고자 했던 금파는 ‘비가비’였던 승윤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지만 그녀는 애써 마음을 접는다. 후일, 나비떨잠으로 연결되는 승윤과의 아릿한 풍경은 장터에서 확인되고 이어지는데……. 남녀를 떠나 진정한 소리꾼이 되고 싶었던 금파의 꿈은 시간의 강을 건넌 지금에도 유효하다. 한곳에 뜻을 두고 정진하는 사람들의 표상이 될 것이다. 소리꾼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시선이 ‘빛나는 예인이었던 금파’를 찾아낸 것 같다." (권비영, 『덕혜옹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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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1)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왜 남도트로트인가 이제 트로트나 발라드가 아니라 새 장르의 음악을 직조할 것이고 시대를 공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저마다 횡경막을 울리는 공명의 방식이 그것이다 한국공연문화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손재오 극단갯돌 예술감독이 몇 가지 질의한 게 있어 답한다. 논문 한 편당 독자가 세 명뿐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논문의 심사를 대개 세 명이 맡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심사자 아니면 아예 읽는 이가 없다는 슬픈 고백이라고나 할까. 이를 총괄하는 학술재단의 무능력을 조롱하는 시선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으되 내 전공 혹은 인접 분야들의 경우, 철 지난 강령과 이념에 사로잡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의 차원에서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 어떤 족쇄들을 만들어 전통이니 문화재니 따위의 항목에 채워두고, 자연스레 일어날 창발을 막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어디 세 명만 읽는다는 논문의 문제뿐이며 철 지난 강령에 머물러 있는 학술단체의 일뿐이겠는가. 장차 문화재청을 문화창의청(文化創意廳)으로 바꾸고 기왕의 문화재들을 문화유산이라는 맥락으로 톺아내며 그간의 전통이니 콘텐츠니 하는 담론들을 미래지향적으로 발현시킬 필요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전통(傳統)과 인습(因習)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미스트롯에서 풍류대장, 조선판스타까지남도트로트는 수년 전 내가 만들어 쓴 용어다. 이유가 있다. 이즈음 화두가 되었던 미스트롯이니 풍류대장이니 조선판스타니 하는 노래시합 프로그램을 보면 이 행간을 읽을 수 있다. 미스트롯의 송가인을 필두로 김태연이나 이날치밴드가 승승장구한 이유 말이다. 여기에 풍류대장과 조선판스타라는 프로그램이 또 다른 팬덤을 형성하는 중이다. 모두 국악 혹은 판소리라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하거나 적어도 매개물로 삼고 있는 현상들이다. 나는 이를 '송가인의 시김새, 남도트로트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본 지면에 소개한 바 있다. 송가인 신드롬의 출처를 베이비부머세대의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한 바도 있다. 묻지마라 갑자생에서 오팔년 개띠,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사적 맥락을 송가인이라는 창을 통해 추적해본 것이다. 풍류대장에서는 판소리뿐만 아니라 민요, 정가 등 다양한 국악 장르 전공자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이것을 국악 전반의 부상이나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따위의 감상으로 접근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시경'의 「풍요」로부터 계승되는 노래(詩)의 본원, 남도의 흥그레타령과 육자배기를 거쳐 국악풍 발라드 김정호와 남도트로트 송가인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다. 판소리 창법을 가지고 가요계에 진출했던 이들은 한농선, 안향련 등이다. 김정호나 송가인이 가요계에서 판소리를 응용한 사례라면 판소리꾼이 가요계로 뛰어든 1세대라고나 할까. 지금의 풍류대장과 조선판스타에 선행하는 국악계 스타들이다. 하지만 거듭 상고해보면 트로트의 시조라고도 하는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조차 본래는 민요가수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보인다. 미세한 분석을 시도해보면 훨씬 다양한 층위의 장르교섭과 창발을 읽어낼 수 있다. 내가 '민요라는 이데올로기'라고 비평한 것도, 엔카와 트로트논쟁 북한민요의 정체라는 이름으로 쓴 글도 이런 일환이다.왜 남도트로트이고 남도발라드인가김정호의 노래 전반이 그렇지만 예컨대 '님'이라는 곡을 들어보면 완전4도 아래로 하강해 떠는 남도선율 특유의 창법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노래 자체가 사실은 육자배기 선율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 것이다. 김정호의 노래를 범박하게 평할 때 남도 삼음(三音)을 토대로 만든 노래라고들 한다. 나주시립국악단 윤종호 감독은 이것이 남도선율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늘 주장한다. 나는 이 육자배기의 선율을 남도 전통의 흥그레타령으로 끌어올렸고 「향가」의 맥락으로, 다시 '시경'의 「풍요」까지 끌어올렸다. 노래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손재오 감독은 '남도트로트'를 계속해서 추적하고 분석하며 체계화시킬 특별한 방법론이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내가 다 알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남도라는 로컬을 주목하는 시선과 트로트 창법을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해둘 필요가 있겠다. 보다 디테일한 방법론은 후학들이 승계해나가지 않겠는가. 기본적인 내 시각은 전통이라는 이름의 어떤 대상이 아니라, 가 행하는 예술과 연행의 틀 속에서 이전과 지금 나아가 미래를 찾는 방식이다. 판소리나 민요가 어떻게 승계되고 발화되었는지보다 예컨대 지금의 트로트나 랩 속에 전통적인 것들이 어떻게 스며들어있는지를 추적하는 셈이랄까. 주지하듯이 판소리는 동편제니 중고제니 따위의 전국적인 지평 속에서 남도의 선율 및 어법으로 정착되었다. 시대사적 수요와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나라 잃고 가족 잃고 죽을 지경에 이른 백성들의 심중을 힐링시켜준 처방전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이 계면조(界面調)라고 하는 즉 횡경막을 울리는 공명의 방식이었다고 나는 읽었다. 시대는 변한다. 시대정신도 변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나면 새로운 세대가 또 주인으로 등장한다. 이제 트로트나 발라드가 아니라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직조할 것이고 그 음악이 시대를 공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저마다의 횡경막을 울리는 공명의 방식이 그것이다. 이름이 바뀌고 장르가 바뀌어도 흉중의 경계를 넘나드는 계면(界面) 울림의 방식은 영원하다. 나는 남도트로트와 남도발라드라는 이름으로 접근했지만, 미래의 팬덤은 누군가 또 다른 이름으로 작명하지 않겠는가.로컬(Local)로의 전회(轉回)남도트로트는 '남도'로 지칭되는 로컬 미의식을 담아낸 명칭이다. 왜 로컬인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들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지방, 지역, 골목 등의 공간적 범주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문제는 지방분권의 시대, 문화분권의 시대로 호명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정의하고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분권자치와는 거꾸로 가는 서울 중심 정책이나 수도권 집중 현상들을 호도하기 위한 레토릭일 뿐인가? 지방이 죽어가고 마을이 없어져 간다고 징징대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온갖 기회요인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말이다. 근본적인 변화는 생각의 혁신에서 온다. 내가 로컬로의 전회를 주장하는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로컬은 중앙 혹은 수도권에 대응하거나 복속되는 개념이 아니다. 중심 심장과 변방 모세혈관이 대등하게 대칭하는 글로뮈론을 주창해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낱개의 사례로 풀어 이라 명명하고 본 지면에 연재해왔다. 그 일부를 모아 '남도를 품은 이야기'(다할미디어, 2022)를 펴냈다. 향후 남도트로트에 대해서도 갈무리작업을 할 예정이다. 오랜 세월 행간과 여백에 내뱉은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이들의 푸념이 펄펄 살아 시가 되고 소설이고,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어 사람들에 의해 불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시 송가인과 김태연의 절절한 수리성, 남도트로트를 듣는다. 미래세대로 올 또 다른 주인공들 그리고 또 다른 장르를 상상한다. 그곳에는 변함없이 배와 가슴 사이를 교섭하며 발끝에서 두성까지 온몸을 전율시키는 공명의 방식이 있다.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 서울과 지방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존재론적 전회(Ontological Turn)가 필요한 시대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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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2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싸구려 어허허 굵은 엿이란다 정말 싸다 파는 엿/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석달 열흘 백일삼제/ 화초가리 더덕가리 동삼가리가 다 들어간 엿/ 열아홉살 먹은 크내기가 동삼물로 제조를 했다 지름이 찍찍 흐른다~" 2009년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졸업식 발표회 장면 중 하나, 객석의 뒷자리에서 갑자기 엿판을 든 엿장수가 등장하더니 관객들을 훑으며 무대로 올라온다. 엿가위로 리듬을 맞추며 해학적인 엿타령을 구수하게 뽑아낸다. 저자에 흘러 다니는 말은 '엿장시 맘대로'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격조 있고 운율 있는 노래이니 '엿장수 가락'이라고나 할까. 무대에 오르자 걸쭉한 입담이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이어진다. "에, 이 엿장시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멀리 진도에서 올라온 엿장시인디, 오늘 엿을 쪼깐 많이 폴아서 진도 갈 여비를 해야 쓰거쏘!"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자그마한 키에 귄 있는 몸짓, 엿타령을 한 주인공은 졸업생 조유아다. 엿타령 하며 객석을 돌았는데 엿판에 수북이 돈이 쌓였다. 자그마치 진도를 십수 번 다니고도 남을 금액이었다나. 그뿐 아니다. 당시까지는 이름이 조은심이었던 송가인이 씻김굿으로 졸업 공연을 준비했으니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이 어쨌을 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후 조유아는 전공 판소리보다 엿타령 가수로 더 많이 알려져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송가인은 트롯트 가수로 전향하여 이미 국민가수가 되었다. 박색구, 조오환, 조유아로 이어진 삼대 엿타령 국립창극단 정단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유아가 엿타령을 잘하는 데는 그만한 내력이 있다. 아버지 조오환이 엿타령의 명인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닻배노래(전남도지정 제40호) 보유자이기도 한 조오환은 엿타령 뿐만 아니라 만년필타령, 뱀장수타령, 비손소리 등 못하는 소리가 없다. 일찍이 고향 민속문화의 보전 전승에 눈을 떠, 진도북놀이며 사물놀이, 상여소리 등에 주도적으로 관여해왔다. 조오환의 엿타령은 어머니 박색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민요대전(한국민요대전)에 고 박색구의 엿타령과 민요가 여러 곡 실려있다. 명실상부한 삼대의 엿타령이다. 뿌리를 추적하면 아득한 조상으로 연원을 좇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 엿타령이 현장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 남편을 여읜 박색구는 좁쌀 등으로 엿을 만들어 오일장인 진도군 의신면 돈지장이나 읍장에 내다 팔았다. 친척이나 이웃들의 비웃는 소리를 감수하며 목포, 무안 등 서남해 일대를 유랑하며 엿을 팔기도 했다. 그 현장에서 엿을 팔면서 불렀던 노래가 지금의 조유아 엿타령이다. 조오환은 이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진도민속예술단'이라는 연희단체를 만들어 활동한다. 진도읍에서 실제 엿을 만들어 팔면서 엿타령 공연도 하고 전수도 한다. 무쇠솥에 장작을 지피는 등 엿 만드는 과정도 전통방식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다. 농업이나 어업의 맥락이 사라져 노래만 남은 문화재들에 비하면 컨텍스트까지 보존하고 전승하는 명실상부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장시(場市)와 엿타령 엿타령은 엿판을 지고 엿을 팔면서 부르던 노래다. 엿장수타령, 엿파는 소리 등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통칭하여 엿타령이라 한다. 어떤 시점 이후에 유흥을 위한 노래나 현장 맥락이 소거된 민요로 정착했다. 근대 이후 무대화되어 유희 민요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북한 민요집이나 전국 각지의 민요자료에도 엿타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 정보 중 하나는 김홍도의 씨름 그림이다. 엿판을 지고 엿을 파는 엿장수가 그림의 포인트다. 당대 풍속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엿판 지고 엿을 팔기에 통상 시장을 배경 삼는 상업풍속으로 해석한다. 상업민요니 상업노동요니 하는 이름이 그래서 나왔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5년(1520) 3월 21일자 기사를 참고한다. "신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철저하게 금지했는데도 지금은 전일보다 심하여 시장에 나오는 자가 몇만 명에 이르니 (중략) 장시(場市)는 근년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남녀간에 주육(酒肉, 술과 고기)을 마련하여 시장에서 팔아 그 이(利益)를 취하고 있으니..." 이 행간에 엿장수가 있다. 엿의 문화사를 추적해보면 명절떡과 조청엿에 닿고 장시의 엿장수에 닿는다. 16세기 이후 서울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장시(오일장)가 엿장수의 배경이라는 점 명백해 보인다. 엿파는 행위만 있는게 아니다. 예컨대 농사를 지어 좁쌀을 생산하고 무쇠솥과 장작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엿을 만들며 또 오일장에 내다 팔면서 엿타령을 연행하는 것은 명백한 종합장르다. 개별단위가 아닌 종합장르를 무형문화재 지정 등의 방식을 빌어 보존 전승할 필요가 있다. 장시의 맥락을 전제하면 장타령, 각설이타령까지 포괄한다. 생산, 유희, 소비까지 포섭한다. 더구나 김치, 식혜, 주류 등 우리 발효문화의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에서 엿타령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조유아(들)의 활동을 응원한다. 어뜬 엿장시/이윤선 우리집 모방에 총각 엿장시가 한 분 살았습니다. 쌀엿 좁쌀엿 호박엿 감자엿 통째로 엿 한 통을 솥에 곱고는 손뿌닥 철석철썩 때래감시로 가락엿을 맹글았습니다. 양짝에서 질게 엿을 느래 잡고 고운 가루 무채 찰싹찰싹 때래 니리믄 크내기 허벅지만하던 것이 쫑쫑한 가락들이 됩니다. 귀갱삼아 문을 빼꼼이 열믄 어서 들온나. 어서 문 다채라. 바람 따라올라 조막만한 나를 다그채며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가락엿 맹글 때 바람 들어오면 안 된담시로요. 어짜다 한골목에서 총각 엿장시 만나믄 가락엿을 냉큼 집어 고사리 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쥔집 귀한 아들래미라 그러했을 것입니다. 버짐한놈 코흘린놈 종기난놈 내 동무들 앨곤하니 쳐다보믄 어찌 나 혼자 먹을 수 있겄습니까. 대가리 큰놈부터 척척 나놔주고 엿치기를 합니다. 딱 부러띠래갖고 끊어진 자리 훅! 불고서는 모도 벌어터진 손꾸락 사이 삐죽삐죽 엿가락들을 대봅니다. 어뜬 날은 똘똘말이 몰아주어 한 입 못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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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公, 2023년 명예 수문장, 가수 송가인 등 임명경복궁에서 행해지는 수문장 교대식을 재구성한 '인천공항 명예 수문장 임명식'이 오는 4일 개최한다고 1일 밝혔다..인천공항공사는 이날 오후 3시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중앙 밀레니엄홀에서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2023년 인천공항 명예 수문장 임명식을 개최한다.이번 행사는 경복궁에서 행해지는 수문장 교대식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매일 인천국제공항 탑승동에서 ‘공항수문장교대식’을 선보이고 있다.특히 대한민국 문화의 발전과 공항 운영에 기여한 명예 수문장을 매년 임명해 감사를 표한다. 올해 인천공항 명예 수문장에는 가수 송가인 씨와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의 정종섭 팀장(심사13과)이 임명된다. 가수 송가인 씨는 판소리를 전공한 국악인이자 대중가수로, 한국문화재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정종섭 팀장은 지난달 7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쓰러진 70대 여객에게 심폐소생술 등 신속·정확한 응급처치를 시행해 소중한 생명을 구한 바 있다.이번 임명식에는 배우 임호가 왕 역할로 출연하고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 원주시 자원봉사 청소년 합창단과 가수 송가인의 축하공연도 이어진다.공사는 이날 인천공항과 한국문화재재단 간 ‘전통문화사업 운영 협약 연장 조인식’을 체결할 예정이다. 양 기관은 지난 2004년부터 약 20년간 공항을 통한 한국 문화 홍보를 위해 협력해 왔으며 이번 협약 연장을 통해 더 많은 공연과 전통문화시설을 계획하는 등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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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얼굴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몸 선을 드러내는 새빨간 의상을 입은 우희는 경극 '패왕별희'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동명 영화에서 장궈룽(장국영)이 극 중 경극 배우로 여장했던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이 역을 창극 무대에서 소리꾼 김준수(32)가 맡는다. 다음 달 11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창극 '패왕별희'는 국립창극단의 가장 파격적인 레퍼토리다. 2019년 초연과 재연 이후 4년 만에 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규모를 키워 올리는 공연이다. 김준수는 초연과 재연 때도 우희 역을 맡아 중국 경극의 전설적 배우 메이란팡을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 25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준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더더더더' 노력했다"고 힘줘 말했다. 배역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창극 무대에 서는 소리꾼의 자질이지만, 남자인 그가 여자 캐릭터 우희를 연기하는 데는 '더'가 4번은 들어가야 할 만큼 노력이 필요했다. 캐릭터의 성별뿐만 아니라 손끝으로 세상을 표현한다는 경극의 몸짓을 익히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김준수는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유연함이 필요한 역이라 연습실에서도 계속 치마를 입고 있다"며 "손동작이나 몸동작을 여성적인 선을 살리면서 작게 해야 하고, 보폭을 아주 짧게 해서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요란하면 안 되고, 우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평소 걸음걸이가 빠르다. 사뿐사뿐 걷는다고 걷는데도 남성적인 면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머쓱해했다. 김준수가 여성 캐릭터를 맡은 건 '패왕별희'가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초연한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 역을 맡았다. 다만 헬레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캐릭터였다. 머리 스타일도 가발 없이 짧은 상태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반면 우희는 항우와 슬프고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여성이다. 머리카락도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오고, 진한 화장은 물론 긴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도 칠한다. 의상에서도 호리호리한 몸 선을 한껏 드러낸다. 김준수는 "사실 초연 때는 빨간 매니큐어나 긴 머리, 치마 모든 게 다 어색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지금은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에 얼굴에 뭐라도 하나 더 바를 수 있을지, 네일아트도 뭘 더 해야 할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살도 2㎏ 정도 뺐어요. 의상이 타이트하거든요. 재연 때는 의상을 좀 더 넉넉하게 만들어주셨는데, 핏(모양새)이 타이트할 때보다 안 예쁘니까 도저히 못 입겠는 거예요. 옷 자체에 우희의 예쁜 선이 들어가 있는데, 그 디자인을 포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번에는 핏도 살리면서 팔을 들거나 움직일 때 안 불편할 정도로 옷을 고쳤어요." 우희는 '패왕별희'의 명장면인 '쌍검무'도 소화해야 한다. 양손에 긴 칼을 들고 추는 고난도 검무다. 이 춤의 백미는 허리를 뒤로 90도 가까이 젖히는 장면이다. 김준수는 '쌍검무'를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자 "너무 혹독해요"라며 웃었다. 그는 "허리 꺾는 신이 딱 절정이다. 우희가 항우의 이별을 암시하는 이별의 춤이라 잘 마무리돼야 관객들도 함께 슬픈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허리를 꺾을 때 검이 땅에 닿는 순간까지 꺾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초연 때는 춤추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었다"며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호흡을 알고 있어서, 호흡을 분배할 줄 알게 되니 여유가 좀 생겼다"고 덧붙였다. 창극에는 없는 경극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판소리에도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인 '발림'이 있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마임처럼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차이가 있다. 김준수는 "소리꾼의 발림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정형화돼 있다"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손동작으로 표현한다. '대왕님, 근심을 달래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이 대사도 '근심', '달래다', '어떤가' 하나하나 표현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창극 '패왕별희'가 경극의 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인 부분은 경극의 요소를 살리되, 대사나 음악 등 청각적인 측면은 창극의 매력을 부각했다. 김준수는 "경극의 창법이나 발성은 쓰지 않고, 소리꾼에게 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며 "대신 우희는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제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보통 소리꾼은 단전에서 뽑아 올리는 힘찬 소리를 내잖아요. 슬프면 '아이고∼'라고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희는 전쟁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니, 그 절절한 마음을 누르면서 노래하려고 해요. 절제된 소리를 경극 특유의 동작들과 함께 보시면 새로운 맛이 있으실 거예요." 김준수는 창극뿐 아니라 TV 예능, 뮤지컬 등에서도 활약하며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지만, 자신의 뿌리는 '소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김준수는 방학 때면 스승 박금희 명창을 따라 '산공부'를 다녔다고 했다. 박 명창의 또 다른 문하생 송가인도 함께 산공부를 다니던 멤버였다. 고등학생 때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소리를 안 하겠다며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소리'라는 생각에 몇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이후 2013년 국립창극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고, 2018년에는 3시간이 넘는 '수궁가' 완창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에도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소리 공부를 해왔다. "몇 달 전에 10년 만에 춘향가 공부를 끝냈어요. 국립국악원 유미리 선생님께 배운 6시간 분량이에요. 공부를 게을리해서 이제야 끝냈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끝까지 소리를 놓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소리는 제 근본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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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19)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노래 '부용산'이다. 박기동이 노랫말을 쓰고 안성현이 지었다. 안치환과 윤선애가 불러 세간에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다. 지난해 본 지면을 통해 '산동애가'를 다루면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다. 부용산 가사를 빼닮은 절명(絶命)의 노래라는 카피를 붙였던 이유가 있다. 마디마디 포개진 혹은 다 말하지 못했던 굴절의 역사, 사람들이 전율하는 선율과 장단 행간에 겹겹이 쌓인 질곡을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그 중심에 월북이란 오명을 달고 있는 안성현이 있고 좌익이라는 딱지를 달고 평생 감시 속에서 살았던 박기동이 있다. 박기동은 천재 문학소녀를 위해 초빙될 만큼 출중한 문학인이었다. 안성현은 가야금산조의 중흥조라고 하는 안기옥의 아들이기도 하다. 훗날 박기동은 <부용산>이라는 책을 냈다. 나주문화원에서는 <안성현 백서>를 출간했다. <백서>에 의하면, 김 종 시인 등 숱한 연구자들에 의해 광폭의 추적과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가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부용산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해방 직후 1948년, 지금의 목포여자고등학교 전신인 항도여중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있었다. 천부적인 문학소녀였던 모양인데 당시 교장이던 조희관이 이 학생을 위해 박기동을 교사로 초빙한다. 당시 목포는 수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폭발되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근대문학의 시작을 목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다종의 문학인들이 배출되었고 각종 문예대회가 열렸으며 예술공연이 펼쳐졌다. 박기동의 <부용산>(삶과꿈, 2002)에 의하면, 미네르바 다방 등지에서 박화성, 조희관 등 문학인들, 시인들, 평론가들, 음악가, 미술가 등 예술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문학을 논하고 시대를 말하며 노래를 불렀다. 각종 다방이며 술집이며 공적 공간들이 르네상스기의 살롱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항도여중 예술제>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박기동과 함께 안성현도 채용되었다. 가야금의 중흥조 안기옥의 아들이어서인지 천부적인 작곡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부임한지 8개월여 뒤 김정희가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팔방년 열여섯 나이였다. 안성현은 박기동의 습작노트에서 '부용산'이라는 시를 발견하고 곧바로 곡을 붙인다.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육자배기 선율에 얹어 절절한 심중을 담아낸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 <부용산>이다. 물론 이 시는 박기동이 항도여중에 부임하기 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썼던 습작이다. 여수 돌산이 고향인데, 큰누이 박영애가 어린 나이에 벌교로 시집갔다가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방년 스물 넷 꽃다운 나이였다. 안성현이 곡을 붙이자 박기동은 마지막 구절을 상여 나가는 소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노래를 제망매가에 견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배금순이라는 상급학생에 의해 초연된 이 노래는 항도여중 학생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애틋한 사연들이 날개를 달고 스토리텔링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빨치산, 월북, 좌익감시 등 파란만장한 분단의 시절들이 눈물과 핏물 속에서 구겨지고 찢겨지며 오늘에 이른 것,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다. 부용산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해방 직후 1948년, 지금의 목포여자고등학교 전신인 항도여중에 김정희라는 학생이 있었다. 천부적인 문학소녀였던 모양인데 당시 교장이던 조희관이 이 학생을 위해 박기동을 교사로 초빙한다. 당시 목포는 수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폭발되는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근대문학의 시작을 목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다종의 문학인들이 배출되었고 각종 문예대회가 열렸으며 예술공연이 펼쳐졌다. 박기동의 <부용산>(삶과꿈, 2002)에 의하면, 미네르바 다방 등지에서 박화성, 조희관 등 문학인들, 시인들, 평론가들, 음악가, 미술가 등 예술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문학을 논하고 시대를 말하며 노래를 불렀다. 각종 다방이며 술집이며 공적 공간들이 르네상스기의 살롱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항도여중 예술제>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박기동과 함께 안성현도 채용되었다. 가야금의 중흥조 안기옥의 아들이어서인지 천부적인 작곡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부임한지 8개월여 뒤 김정희가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팔방년 열여섯 나이였다. 안성현은 박기동의 습작노트에서 '부용산'이라는 시를 발견하고 곧바로 곡을 붙인다. 아끼는 제자의 죽음을 육자배기 선율에 얹어 절절한 심중을 담아낸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 <부용산>이다. 물론 이 시는 박기동이 항도여중에 부임하기 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썼던 습작이다. 여수 돌산이 고향인데, 큰누이 박영애가 어린 나이에 벌교로 시집갔다가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방년 스물 넷 꽃다운 나이였다. 안성현이 곡을 붙이자 박기동은 마지막 구절을 상여 나가는 소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노래를 제망매가에 견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배금순이라는 상급학생에 의해 초연된 이 노래는 항도여중 학생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애틋한 사연들이 날개를 달고 스토리텔링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빨치산, 월북, 좌익감시 등 파란만장한 분단의 시절들이 눈물과 핏물 속에서 구겨지고 찢겨지며 오늘에 이른 것,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다. 누이와 제자의 죽음을 애달파했던 상여소리 제망매가(祭亡妹歌) "죽고 사는 길이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 우리 향가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월명사(月明師)의 제망매가다. 누이의 죽음을 다룬 노래여서 '위망매영재가'라고도 한다. 양주동이 해석을 하였는데, 연구자들에 따라 약간씩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월명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제사하였더니),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지전(紙錢)이 서쪽으로 날아가 없어졌다. 하늘을 감응하게 하고 귀신을 감복시켰다는 향가의 주술력을 말하는 것이다. 박기동의 <부용산>에서도 향가의 전통을 승계한 숨결들이 포착된다. 한 가지에서 난 잎들이 가을 낙엽이 되어 떨어지나 우리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 누이는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마치 낙엽처럼 날아가 버린다. 월명사는 미타찰(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세계) 곧 종교적 초월을 빌어 누이와의 재회를 염원하는데 박기동은 부용산 봉우리 휘감아 도는 바람결을 통해 누이의 흔적을 좇는다. 안성현은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을 이 심상에 포개어 마치 남도의 만가(輓歌)같은 선율을 직조해 낸다. 어디 이것이 노래에 그치겠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월명사의 낙엽이기도 하고 벌교 부용산 봉우리를 맴도는 바람결 자체이거늘. 금지곡 <부용산>은 오래도록 우리 곁을 떠나있었다. 민족동란 전후기에 월북하거나 이른바 산사람이 된 이들이 많고 그들에 의해 많이 불리었기 때문에 문제 삼았던 것일 뿐이다. 새삼스럽게 <부용산>을 소환하는 것, 안성현의 월북은 월북대로 냉정하게 평가하되, 향가에서 김소월로 혹은 박기동으로, 고려가요에서 안성현의 선율로 이어지는 얼개는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굴절의 시기를 거치며 쌓은 우리의 내공이 탄탄하다는 점에서 <부용산>은 보다 널리 불릴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자신감이 교착된 남북의 물꼬를 트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부용산>은 남도의 육자배기다 박기동이 글을 짓고 안성현이 곡을 붙인 <부용산>은 한마디로 말하면 남도의 육자배기다. 육자배기의 전형적인 떨고 밀고 꺾는 선율로 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도전통의 시김새들이 새록새록 들어있다는 점도 그렇다. 죽음을 앞둔 빨치산들이 고향에 두고 온 누이며 부모며 형제자매들을 그리며 불렀던 한의 노래였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에서도 남도의 어느 옴팍진(오붓한) 다방에서 이 노래를 숨어 부르던 이들이 있었다. 좌익이라서가 아니라 이 노래 자체가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얼개나 음악적 결은 거슬러 올라 향가에 닿고 굽이쳐 올라 육자배기에 닿는다. 나주시립국악단 윤종호 감독은 늘 그렇게 주장한다. 단조 즉 마이너 기반의 계면조가 <부용산>뿐만 <엄마야 누나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어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요 <엄마야 누나야>는 김광수가 작곡한 것인데, 본래 안성현의 곡 <엄마야 누나야>는 전통음악 계면조 기반의 곡으로 사뭇 다르다. 가곡풍의 <부용산>을 굳이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를 남도창법의 계승으로 풀이하지 않으면 법고창신의 큰 줄기를 놓치는 잘못을 범하고 만다. <엄마야 누나야>뿐만 아니라 김정호의 <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노래들, 내가 이름 붙여둔 송가인이나 김태연의 '남도트로트' 창법에 이르기까지 <부용산>류의 법고창신에 대해서는 차차 고를 달리해 다루기로 하겠다. 오늘 막걸리 한잔 마시며 <부용산>을 불러봐야겠다. 1971년경 목포 예술인 공연 장면. 목포예총 제공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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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복문화주간’, 한복 입어 좋은 날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16일(월)부터 22일(일)까지 서울 종로구 일대와 전국 각지에서 ‘한복 입어 좋은 날!’이라는 주제로 ‘2023 한복문화주간’을 개최한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한복문화주간’은 매년 10월 셋째 주에 일상 속 한복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전시, 체험, 패션쇼 등 다채로운 한복 관련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행사이다. 올해는 서울 종로구를 거점으로 다양한 한복문화 체험을 제공한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한복상점’을 운영해 한복을 판매하고 ‘인생네컷 무료 체험’ 등을 진행한다. 10월 20일(금)에는 ‘2023 한복문화주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개화기 한복을 전시하고 한복 입기, 한복 퀴즈, 전통 놀이, 전통 꽃신(화혜) 만들기, 다도 체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운영한다. ▴종로구 3개 거점인 ‘청진공원’, ‘남인사마당’, ‘종묘시민광장’에서는 게릴라 댄스 공연, 작은 음악회, 한복 미디어아트 큐브, 한복엽서 그리기, 전통 탈 열쇠고리 만들기 등을, ▴ 청와대 녹지원 앞 여민1관에서는 전통한복 전시와 한복 입기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한복 홍보대사인 가수 송가인 씨는 10월 16일(월), 한복진흥센터 유튜브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이와 같은 다양한 ‘한복문화주간’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축하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서울공예박물관 바깥마당에서 열리는 ‘2023 한복문화주간’ 기념행사(10. 20.)에서는 한복 유공자를 대상으로 표창을 수여하고 한복 패션쇼, 축하 공연을 펼친다. 한복문화 확산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와 기관 관계자 총 6명*이 문체부 장관 표창을 받으며, ‘호접몽’을 주제로 한 한복 패션쇼와 국악인 송소희 씨의 축하 공연이 이어진다. 패션쇼에서는 다양한 빛깔의 매력을 뽐내며 은은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연출한 한복 30여 점이 무대에 오른다. 올해는 경상북도와 강릉시, 부산광역시, 전주시 등 지자체와 연계한 한복문화 행사도 마련했다. ▴한복상점과 ▴국악공연, ▴전통성년례 행사, ▴한복패션쇼, ▴한복전시, ▴한복체험 등을 비롯해 국내 유관 기관 및 협회·단체 12개소와 연계한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주요 행사장인 서울 종로구 지역 상권 54개 업체와 연계해 다양한 혜택도 제공한다. 지정된 한복 판매‧대여점에서 한복을 구매‧대여하면 일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지정된 음식점과 카페에 한복을 입고 방문하면 일정 금액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전국 한복점과 공방, 박물관, 카페, 온라인 매장 등 온‧오프라인 일반 참여처 173개소에서도 ‘한복문화주간’을 기념해 할인 행사와 한복체험, 전시, 전통공예 체험 등 한복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상세한 내용은 공식 누리집(www.kcdf.or.kr→한복문화주간 배너 클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체부 유병채 문화예술정책실장은 "‘한복문화주간’이 한 업계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란다.”라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 옷 한복이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아 한복의 대중화, 일상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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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개천절 맞아 'K문화 힐링페스티벌국학원이 개천절을 맞아 'K문화 힐링페스티벌'을 펼친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국학원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서 3일부터 1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국민들에게 K문화 속 한국인의 정신과 그 의미를 되새기고, K힐링을 통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여주고 국민 대화합의 장으로 기획됐다. 10만 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권나은 국학원장은 ""전세계는 K팝, K드라마와 영화, K푸드, K스포츠 등 K문화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K문화에는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과 흥과 끼가 있다. 그것이 홍익이다"고 밝혔다.이번 행사는 상설로 K문화와 K힐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자연명상 체험존, 맨발걷기명상 코스, 전통놀이, K명상, 지구힐링라이프 등 다양한 코스와 부스가 운영이 된다. 또한 향기테라피, 뇌파측정, 라라쿨라 캔디명상, 단전돌, 힐링명상 등 K힐링 체험 박람회가 매일 운영된다. 특히, 3일은 개천절을 기념하여 K스피릿의 축제로 개천천제 재현 행사와 경축행사를 진행한다. 8일은 K문화 힐링 페스티벌의 개막식과 K웰니스의 축제로 120세 장생 콘서트를 진행한다. 11일은 K힐링공연으로 천신무예예술단의 공연과 인기가수 송가인의 특별 초청공연을 진행한다. 14일은 한민족기념관 건립기원 ‘노래경연대회’, 15일에는 K명상 컨퍼런스와 폐막식을 개최한다. 한편, 국학원은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 한민족의 정신문화인 홍익인간의 모델을 발굴·양성하고, 홍익정신을 실천하는 K스피릿운동과 홍익생활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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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취임 연주회 '건·곤·감·리' 개최대구시립국악단 제210회 정기연주회 ‘건·곤·감·리’가 오는 7일 오후 7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다. 이날 공연은 지난 7월 부임한 신임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제8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의 취임 연주회다. 한편, 이번 공연의 사회는 우리나라 1세대 국악 평론가인 윤중강이 맡는다. 공연의 첫 문은 춤과 관현악 '축연무'가 연다. 박범훈 작곡의 국악관현악곡 '축연무'에 대구시립국악단 한국무용팀의 창작무가 곁들여진다. 이 곡은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고, 경쾌한 리듬에 고양된 악상이 이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춤으로 축하의 의미도 더한다. 그 다음으로 '뱃노래'는 한·중·일 삼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민족악단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창단 음악회 때 초연된 곡이다. 우리나라 민요 '뱃노래' 가락을 주선율로, 나발·북·징 등이 존재의 힘에 대해 묘사하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국악가요 무대가 준비된다. MBN '조선 판스타'에서 최종 우승한 '김산옥'과 국립창극단 부수석 '민은경'이 무대에 오른다. 민은경은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아리요' 등을 준비하며, 김산옥은 '상사몽', '아름다운 나라', '열두달이 다 좋아'를 들려줄 예정이다. 송가인의 친오빠 조성재가 이끄는 '우리소리 바라지'가 타악협주곡 '무취타'를 대구 초연으로 선보인다. 이어 평소 접하기 힘든 개량민속악기 장새납 협주곡도 선보인다. 북한의 개량 민속 악기인 '장새납'은 태평소(새납)를 개량하여 길이를 늘이고, 키(Key)를 단 것이 특징으로, 오보에·색소폰·태평소의 음색을 조합한 것 같은 독특한 음색을 낸다. 한국개량악기협회장 이영훈 한국 개량악기 협회장이 '열풍'과 '용강기나리'를 통해 관현악의 민족적 색채를 살려냄과 동시에 민족목관악기 장새납의 익숙한 듯 낯선 매력을 전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타악 협주곡 '무취타'가 장식한다. '무취타'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무속장단을 활용하여 표현한 타악곡으로, 중견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가 무대에 선다.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는 "연주자로, 지도자로 오랜 시간 익히고 쌓은 경험을 토대로 대구시립국악단의 발전과 또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우리 대구시의 전통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며"다른 곳은 국악관현악단인데, 대구시립국악단에는 무용단이 있어 '가무악일체' 공연이 가능하다. 성악(판소리)도 인턴 단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계약이 만료되면서 함께 못하고 있다. 추후 여건이 된다면, 가무악일체의 단체로서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이어서 "이번 '건·곤·감·리' 무대에서 '가무악(歌舞樂)일체'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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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복상점’ 개막.. 한복 패션쇼 호응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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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102)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몸으로 체화되고 맘으로 발원된 몸짓과 소리들이 소박한 타악기들에 얹혀 시공을 가른다. 땅의 조건과 하늘의 이치를 목으로 풀어낸 소리를 정가(正歌)라 했지만, 오로지 장구 하나 혹은 징 하나로 풀어내는 이 소리야말로 천지를 왕래하는 아정한 소리임에 틀림없다. 아정(雅正)이란 무엇인가? 기품이 높고 바르다는 뜻이다. 정가에 비해 속가(俗歌) 그 중에서도 천한 계급이 담당하던 씻김굿의 소리를 어찌 기품이 높고 바르다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악(樂)의 격조는 계급의 대물림이나 신분의 귀천으로 상속되는 것이 아니다. 귀천의 이데올로기가 가리고 있던 행간을 들추면 비로소 보인다. 어떤 선율이 흉금을 털어내며 어떤 리듬이 격조를 재구성하는지. 나는 본 지면을 통해 "송가인의 엄마는 왜 무당이 되었나", "송가인 신드롬", "남도 트로트" 등 개인사를 넘어선 노래 기반의 사회현상을 여러 차례 주목해온 바 있다. 근자에 당골 송순단 선생이 음반작업을 한다기에 몇 줄 보태면서 이렇게 썼다. "송순단의 굿소리를 수리성이나 천구성을 넘어 귀성(鬼聲) 곧 신에 이르는 소리라 하는 것은 그녀의 영육에 베어든 삶의 서사를 두고 나온 말이다." 아름다운 동행, 운명의 굿판 숙명의 소리 기억을 되살려 정보 몇 오라기를 소환한다. 송순단의 소리는 진도 지산면지역 무당이었던 친정어머니 여금순으로 거슬러 오르며 나주출신 외할아버지로 거듭해 올라간다. 열다섯에 시작한 식모살이를 시작으로, 어머니, 오빠, 동생, 아이, 아버지 등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으로부터 그녀가 상속받은 것은 지상의 어떤 묘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암울한 것이었다. 외눈봉사 아버지와 가난한 집, 이 땅에 대대로 전승되어 온 심청의 현현이라고나 할까. 절절한 가족사를 넘어 지역의 역사에 깃든 그녀의 서사가 대하를 이룬다. 죽음을 딛고 일어나 오보살의 법제를 받고, 진도씻김굿 준보유자였던 이완순의 율격을 받았다. 남도씻김굿의 대표 연행자로 현장을 누비며 남도 전통의 소리 법제와 부채(負債)를 또한 한 몸에 받았다. 운명이었을까. 그 아스라하던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야 비로소 작은 음악 하나를 기록했다. 장구 하나 허리에 대고 온갖 역신들을 마주하는 담대함의 소리다. 징 하나 엷게 울려 지상의 혼령들을 일깨우는 소리다. 가곡과도 같고 남도전통의 '흥그래'와도 같은 선율이 고이 잠든 영성을 일깨운다. 차원을 넘어서는 공명의 소리요 죽은 자와 산자들이 더불어 가는 동행의 소리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보다 더 깊은 귀성(鬼聲)으로 백만군사 이끄는 북소리보다 더 넓은 몸짓으로 맞서는 담대함의 소리다. 이제 외동딸 송가인이 국민가수로 등극해 이 땅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 나는 연이어 이렇게 썼다. 지극한 가슴 열고 어깨 겯고 가는 송순단의 소릿길, 이 소리 닿는 심연의 저 끝에, 우리 모두에게 이를 축복 있으리니. 만조상해원경(萬祖上解寃經) 만조상해원경, 본 이름은 옥추경(玉樞經) 또는 옥추보경이다. 독경할 때 읽는 경문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1831년 묘향산 보현사에서 간행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외 출간본들이 몇 권 있고 그 뿌리는 중국 도교까지 이어진다. 영화 '사도'의 OST로 인용된 후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졌다. 압도적인 시퀀스, 정신병에 걸렸던 사도세자는 미친 듯 외는 옥추경을 배경삼아 칼을 휘두른다. 임오화변을 기록한 대천록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무작정 죽인 중관, 내인, 노속들이 100여명에 이른다. 뒤주에 갇혀 죽게 된 원인이다. 옥추경의 본래 기능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몸에 달라붙은 귀신을 쫓아내는 굿거리인데 사도세자는 이마저도 억제하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송순단의 만조상해원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선망조상 후망조상 부모좌우조상 혼령님과 다생사자 다생남녀 형제숙백 숙질남매 원근친척 무주고혼 금일영가 저 혼신은 혼이라도 오셨으면 만반진수 흠향하고 일배주로 감응하시고 살다 남으신 명과 복록은 자손궁에 전하시고~" 근자의 진도씻김굿에서는 연행되지 않는 장르이지만 송순단의 굿에서는 인용된다. 무경 연행은 친정어머니 여금순의 굿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뭇 사람들은 만조상해원경 자체의 의미를 높게 치지만 송순단의 경우, 영육으로 체화되고 발원된 장단과 선율의 의미가 더 크다. 흰쥐의 해, 잔뜩 계획을 세우고 포부를 가졌던 한 해가 기울어간다. 반백년을 더 살고도 항상 세모에 들면 후회가 남는다. 후회 중 가장 큰 일은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집값의 폭등과 경제난으로 자영업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으니 고대사회라면 왕살해가 일어날 상황이다. 하지만 원통한 마음 푸는 해원(解寃)뒤에는 상생(相生)이 달라붙는다. 해원상생, 맥락 없고 명분 없는 노래라면 희망고문이겠지만 적어도 핍진(乏盡)한 개인사를 극복해낸 송순단의 노래 아닌가. 화려한 반주음악도 수려한 무대도 없다. 그저 장구 하나 혹은 징 하나 들고, 천만군사 호령하는 담대함을 율격에 담을 뿐이다. 바라건대 이 소리가 해원일 수 있기를 바란다. 희망도 포부도 다 잃어버린 경자년 세모(歲暮), 타악기 하나 들고 외는 송순단에 그저 기대는 마음 처연하다. 가장 낮은 땅 이곳으로 해원이여 오라. 가진자 못가진자 우호(友好)하는 상생으로 오라. '안당'에서 '종천맥이'까지 안당굿: 조상이나 성주 등 가신에게 굿의 시작을 아뢰는 신고식이다. 큰방이나 대청마루에서 연행한다. 굿하는 날이 조왕(부엌의 신)과 관련 있는 날이면, 조왕반이라는 굿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징을 가볍게 두드리며 굿하는 장소와 의뢰자의 정보 등을 노래한다. 신들과의 교감을 상상하며 눈을 지그시 감으면 송순단 특유의 아정(雅正)한 성음들이 지상과 천상의 심연에 기우는 풍경을 접할 수 있다. 손님굿: 진도지역에서는 손굿이라고도 하고 마실이굿이라고도 한다. 천연두와 홍역 등 마치 손님처럼 임하는 질병들을 퇴치하는 굿이다. 손님으로 대별된 신격들을 받아들이고 모시고 보내드리는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송순단의 손님굿은 스승이기도 했던 고 이완순의 법제를 상속 받은 것이다. 스승 특유의 탁성과 송순단의 성음이 교합되어 절묘한 복선율이 탄생되었다. 장고 하나 들고 오로지 선율에 의지해 역신들을 맞이하는 자태가 장엄하다. 희설: 불교 색채를 가장 강하게 담은 무가다. 선율의 행로에 빼곡한 것들은 웅장한 천상의 계곡을 처연하게 걸어가는 한 영혼의 그림자임이 틀림없다. 안당굿처럼 당골 홀로 징을 가볍게 두드리며 연행하기에 그 심연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진도지역에서는 당골에 따라 회심곡을 부르거나 저승육갑을 푸는 노래를 하는데, 송순단의 희설은 전자의 이완순 법제를 이은 것이다. 극락에 이르는 동안 거쳐야 하는 여러 가지 관문을 따라가다 보면 비로소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종천: 종천맥이 혹은 중천이라고도 한다. 문밖으로 나가 사자맥이, 대신맥이 무가를 부르며 망자의 옷가지 등을 태운다. 타오르는 연기는 지상에서 천상에 이르고, 불꽃을 타고 오르는 징소리와 무가의 선율은 극락이며 천당일 안식의 공간에 가 닿는다. 배송하는 것이 어디 한 사람의 영혼뿐이겠는가. 이승과 저승을 오로지 선율 하나로 횡단하는 송순단의 동행이 오히려 아름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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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운 연희마당 ‘2023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개최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이 주최·주관하는 ‘2023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이하 전통연희축제)가 7월 12일(수)부터 16일(일)까지 국립국악원 일원에서 개최된다.전통연희의 생활화와 대중화를 도모하는 전통연희축제는 매년 2만여 명이 찾는 대규모 야외 축제로 2007년부터 개최됐다. 올해는 한여름의 전통연희축제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농악부터 무속음악, 줄타기, 탈춤까지 전통연희의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다.이번 전통연희축제는 지난해 우리나라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준비한 빅 프로젝트를 주목할 만하다. 탈춤꾼 100인이 각 지역의 대표 탈춤을 선보이는 기획 공연 ‘판 스테이지 100인의 탈춤 ‘섞어잽이’’와 더불어 탈춤 명인 5인의 환상적인 춤을 관람할 수 있는 ‘3cm의 시선 ‘탈무전’’이 기대를 모은다. 또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종목 가운데 긴급 보호 무형문화재인 ‘줄타기’와 발에 탈을 씌우고 노는 ‘발탈’, 두 종목이 만나 기예를 보여주는 특별한 합동 무대 ‘줄광대와 발탈꾼 ‘줄타기X발탈’’을 선보인다.개막작은 해남씻김굿 ‘이수자’ 명인과 진도씻김굿의 명인이자 가수 송가인의 모친인 ‘송순단’ 명인이 선보이는 ‘신이 내린 선물 ‘만신’’ 무대로 신명 나게 축제의 막을 올린다. 대한민국 최남단의 두 명인이 펼치는 소리와 함께 송가인의 오빠인 아쟁 연주가 조성재가 함께 무대를 꾸민다.이 밖에도 △사물놀이 원년 멤버 1세대 제자들로 구성된 ‘사물광대’의 무대 △영남 지역의 개성 있는 신명을 선보일 ‘타악집단 일로’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호남여성농악의 기예를 선보일 ‘호남여성농악보존회’ △한국전통연희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적인 창작 음악극을 선보일 ‘국악 재즈 소사이어티’와 더불어 대한민국 대표 연희 주자인 ‘청배연희단’, ‘타악그룹 진명’, ‘사물놀이 느닷’, ‘전통연희단 난장앤판’,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한누리연희단’, ‘연희집단 The 광대’의 청량하고 활력 넘치는 무대를 즐길 수 있다.문화체육관광부 정책 담당자는 이번 축제를 통해 한국의 신명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전통연희가 대중의 일상에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김삼진 이사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인과 차세대 연희자들을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관객과 출연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축제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전통연희축제 현장 공연은 전석 무료로, 축제 관련 상세 정보 확인 및 사전 예매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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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산에서 무형문화유산 공연 열린다5월 16일 연천군 수레울 아트홀과 6월 2일 군산예술의전당에서 ‘2023년 찾아가는 무형문화유산 굿(GOOD)보러가자’ 공연을 각각 개최한다.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국방부, 군산시,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하는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굿(GOOD)보러가자’는 국립무형유산원이 2004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운영해온 전통공연 프로그램으로, 무형문화유산 보유자부터 융합(퓨전) 국악인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가들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문화의 장이다.먼저, 16일 오후 3시 연천군 수레울 아트홀에서는 육군 제5보병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개최된다. 이번 공연은 한국민속촌 출신 배우 고평화와 정해은의 사회로 진행되며, ▲ 진도북춤, 부채춤 등의 전통 공연과, ▲ 국악단체 광대놀음 떼이루의 만담, ▲ 국악단체 소리꽃가객단과 JTBC 국악경연프로그램 ‘풍류대장’ 출연자인 이윤아가 선보이는 융합(퓨전) 국악 공연에 이르기까지 전통문화에 세련된 감각을 녹여낸 다채로운 구성으로 진행되어 우리 국군장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이어서, 6월 2일 오후 7시 30분 군산예술의전당에서는 군산시 산업단지 근로자를 대상으로 공연이 개최된다. 국악인 오정해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서는 ▲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김일구의 적벽가, ▲ 국가무형문화재 보유단체 진주삼천포농악의 다채로운 가락, ▲ 국악연주가 김주홍과 노름마치가 선보이는 신명나는 대취타, ▲ 음악집단 우리소리 바라지가 보여주는 무(巫)의식과 춤이 가미된 축원, ▲ 가수 송가인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굿(GOOD)보러가자’ 군산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며, 관람을 원하는 산업체 근로자는 5월 15일(월) 오후 2시부터 19일(금) 오후 2시까지 5일간, 일반인은 5월 23일(화) 오후 2시부터 31일(수) 오후 2시까지 9일간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를 통해서 선착순(1인 2매)으로 예매할 수 있다.공연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재재단(연천군 공연:☎02-3011-1720, 군산시 공연:☎02-3011-1720)으로 문의하면 된다.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 충북 옥천군(7.7.), 경남 진주시(9.13.), 경남 하동군(10.19.)에서 ‘굿(GOOD)보러가자’ 공연을 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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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빛 그리다' 제93회 춘향제, 25일부터 5일간 개최제93회 남원 춘향제가 오는 25일 개막해 닷새 동안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펼친다. 춘향제는 1931년 처음 개막해 매년 봄 개최하는 행사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축제 마당이다. 10일 남원 춘향제전위원회에 따르면 제93회 남원 춘향제는 ‘춘향, 빛을 그리다’를 주제로 오는 25일 개막해 29일까지 5일간 광한루원과 요천 일원에서 펼친다. 올해 축제는 ‘전통과 첨단의 빛’, ‘사랑과 낭만의 길’, ‘공연과 체험의 멋’, ‘먹거리와 국악의 흥’ 등 4개 분야에 걸쳐 47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행사 첫날인 25일에는 춘향제향과 한복패션쇼, 삼도농악 한마당 등을 연다. 26일에는 개막식과 함께 한국 최고의 전통미인을 뽑는 전국춘향선발대회 등을 개최한다. 27일 오후 7시 완월정 특설무대에서는 안숙선 판소리 명창, 장윤정, 소명, 이찬원, 양지은, 김다현 등 가수 10여명이 선보이는 ‘춘향달빛콘서트’를 선보인다. 제50회 춘향국악대전은 26∼27일 예선을 거쳐 28일 완월정 무대에서 본선을 치른다. 마지막 날 폐막식에서는 춘향국악대전 우승자들과 가수 송가인이 출연해 특별공연을 펼친다. 메인 주제인 ‘전통과 첨단의 빛’에서는 전통 꽃등을 체험하고 드론의 화려한 야광쇼를 관람할 수 있다. 축제에 참여자들이 한복을 입고 직접 만든 형형색색의 꽃등을 들고 거닐며 축제의 낭만적인 밤 풍경을 연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 ‘춘향, 대동길놀이’를 통해 다시 재현될 예정이다. ‘춘향, 대동길놀이’는 5월 25일부터 26일, 그리고 28일까지 총 3일동안‘하늘중학교에서 승사교 구간에 23개 읍면동팀 1,200명 등이 포함된 약 1,500명이 참가, 재미있는 퍼포먼스 등을 선보이는 등 춘향제의 명장면을 시민들이 만들 계획이다. 춘향제전위원회 관계자는 "남원 춘향제는 우리나라 전통 축제이지만 최근에는 세대를 넘나들어 모든 방문객이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축제로 승화했다”며 "특히 올해는 한층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MZ(1980∼2000년 출생)세대를 비롯해 남녀노소, 내외국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참여·체험형 프로그램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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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만나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개막'......'진도북춤 '선사지난 20일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4년만에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K-명예관광축제 명성에 걸맞게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수만명이 방문했다. 코로나19로 인해 4년 만에 열린 축제는 ‘소망의 땅, 기적의 바다로!’ 주제로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 동안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일원에서 열렸다. 김희수 진도군수는 "4년만에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막을 올렸다”며 "보배섬 진도군을 방문하면 볼거리·즐길거리·체험거리가 가득한 다양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는 ▲기적의 바닷길 미디어 아트 ▲뽕할머니 가족대행진 ▲컬러플 진도 ▲소망의 조약돌 바닷길 체험 ▲국제학술 심포지엄 등 총 70여종의 전시·공연·체험 행사 등을 즐길 수 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가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소개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가족 만남의 소원을 이룬 뽕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신비의 바닷길에서 가족의 안녕과 소망을 빌기 위해 매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진도를 방문하고 있다.개막식은 지난 20일 오후 3시 '호랑이 놀이'와 진도의 명물 '진도북놀이'을 시작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서 미스트롯 진에 선정된 진도 출신 가수 송가인씨와 세계적인 명성으로 최고의 기량을 갖춘 브레이킹 그룹인 '진조크루'가 출연해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행사 중 진도 신비의 바닷길 미디어아트가 주목된다 빛과 영상을 활용한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감을 통해 신비로운 자연경관인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표현했다.해상선박퍼레이드, 수상오토바이 퍼레이드, 플라잉 보드쇼 등 해상 공연과 200명이 펼치는 북놀이 퍼레이드 퍼포먼스, 강강술래, 농악, 다시래기, 남도들노래 등 전통 공연도 ‘호평’을 받았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유럽·미국·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국제적 축제인만큼 글로벌 음악여행, 글로벌 씨름대회, 응답하라 ‘모세의 기적’, EDM 나이트 쇼 등 다양한 행사도 개최되고 있다. 특히 거리퍼레이드에서 진도북놀이보존회(회장:이희춘)의 진도북춤 공연이 타 지역에서 온 관광객에게 신명과 흥을 선사했다. 이희춘 회장은 "이날에는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보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바닷길 순례를 하고 간다. 내년에는 국내에 있는 동포들을 초대해서 신비의 바닷길에서 함께 진도북춤을 치면서 동포애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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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의 ‘국악-신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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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9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남도풍속의 지형은 넓고도 깊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도 어렵고 풀어서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삼국시대의 향가로부터 오늘날의 가요까지, 영산강이며 섬진강에서 한라 백두까지 남도에서 발원하고 재구성된 문화들이 켜켜이 쌓이고 확산되었다. 이 스펙트럼을 가늠하기란 어린 날 운조리(망둥어) 잡으러 개옹에 나갔다가 잊어버린 검정고무신짝 찾는 일보다 어렵다. 전문적인 연구자라도 그럴진대 일반인들이야 말할 것이 없다. 그래서다. 어딘가 혹은 무엇인가 샘플이 필요하다. 다행이 우리는 다양한 장르가 국가의 강제나 지방정부의 요청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하고 더러는 잔존 유산으로 남아있는 지역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진도다. 전국 유일이라고 말하면 다른 지역에서 오해하겠지만 인구 삼만 안팎의 작은 섬에 강강술래,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들노래, 남도민요 등 십 수 개가 넘는 무형유산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탄탄하게 보존 전승되어 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중의 다섯 가지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내가 줄곧 주장해왔던 상가의 윷놀이나 유네스코 지정 매잡이 풍속 등은 거의 세간에 알려져 있지도 않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는 전통적인 통과의례, 씨줄날줄로 엮는 의례와 놀이, 들과 산과 바다에서 행하는 생업의 풍경들이며 그림과 글씨, 몸짓과 소리 예술들이 마치 한편의 소설을 축약해놓은 듯, 거대 보고서를 압축해놓은 듯 구성되어 있다. 우리 시대에 시, 서, 화, 창의 각 장르들을 이처럼 압축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지역을 갖고 있다는 점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즐겨 말해왔다. 남도풍속의 핵심을 보려면 진도를 보라. 진도지역 판소리 소사(小史), 이병기와 신치선에서 신영희까지 진도문화 중에서 그 위상에 비해 덜 알려진 것이 판소리다. 우리 판소리의 자존심이라는 김소희를 이어받은 인간문화재가 진도사람 신영희라는 점을 놓고 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 그 일단을 소개해두기로 한다. 판소리에 전념한 예인들로 박동준, 신치선, 이병기, 양상식, 허회, 최귀선 등을 들 수 있고, 고수로는 김득수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진도지역 판소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신영희의 부친 신치선과 이태백의 부친 이병기(본명 이병규)를 거론해야만 하다. 신치선은 1899년 전남 담양에서 신창연(申昌連)과 나주임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년을 담양에서 보내고 소년기는 목포에서 성장했다. 당시 명창이던 김정문(송만갑의 제자)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배웠다. 1920년대 20세에 협률사에 들어가 활동했다. 나이 40에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정착하여 신영희를 낳았다. 1946년 임회면 석교리로 이사하여 진도사람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쳤다. 1948년 의신면 초사리로 옮겨 아들 하나를 더 두었다. 이때 제자들이 안득윤, 박연수, 박옥수, 신홍기, 신천행, 회동리의 허휘 등이었다. 제자 중 지산면 인지리의 박병두는 촉망받는 명창이었으나 1960년대에 요절했다. 초사리에서는 흥보가를 창극화하여 공연하기도 했다. 제자 안득윤은 군산, 인천 등지에서 크게 알려진 소리꾼으로 경기명창인 전숙희(全淑姬)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목포로 옮겨 안향년의 부친 안기선을 도와 목포 판소리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춘향전을 창극화하여 전국순회공연 및 만주공연 등을 했다. 1959년 지병의 악화로 타계했다. 이병기는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사람이다. 해방 직후 정의현이 설립한 진도 최초의 국악원에서 판소리 강사생활을 했다. 진도 전역을 돌며 판소리 강습 및 창극지도 및 활동을 했다. 특히 지산면 지역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다. 판소리 강습생이었던 이임례와 혼인하여 지금의 아쟁 명인 이태백을 낳았다. 이 스토리를 토대로 만든 것이 영화 '휘모리(1994년작)'다. 최근 국가지정 판소리 문화재로 지정된 이난초, 해남씻김굿 명인 이수자, 우수영 부녀요 보유자 이인자, 광주시 지정 판소리 문화재 이임례 등이 모두 형제 조카 사이다. 이병기 작곡이라고 전해지는 해물유희요 <빈지래기타령>을 포함하여 <숙영낭자전> <봄이 오면> 등이 전해진다. 진도사람 신영희는 김소희 수제자로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된 국창이다. 1942년 2월 6일 지산면 인지리에서 신치선의 딸로 태어났다. 인지리에서 성장하다가 의신면 초사리로 이사하였고 다시 아버지를 따라 목포로 이주했다. 어려서 부친 신치선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이후 안향련의 부친 안기선, 정순임의 모친 장월중선, 이난초의 스승 강도근 등 수많은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1975년에 서울에 올라가서 김소희에게 판소리를 배워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소희 문하에서 수업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후보로 있다가 인간문화재로 인정되었다. 흔히 신영희, 안향련, 김동애를 판소리 삼걸이라고 했다. 1976년부터 국립창극단 단원, 1979년 연극'다시라기'로 배우 데뷔를 했다. KBS코미디 쇼비디오자키-쓰리랑부부(도창역)로 장기간 출연하여 판소리의 확장에 힘을 쓰기도 했다. 한승석, 주호종, 조유아 등 지금 한국을 휘두르고 있는 소장 소리꾼들 중 진도출신들이 50여명 된다. 여기에 트로트의 여왕으로 등극한 송가인까지 있으니 가히 소리의 고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진도는 육자배기나 흥타령, 진도아리랑 등 민요 전승이 활발하다. 대금․아쟁과 같은 기악전승 활동도 활발하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판소리가 진도 내의 독자적인 유파를 구성할 만큼 활발하게 전승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판소리를 배우고 익히는 자생적인 활동들이 활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신치선, 이병기, 김득수 등이 소리선생으로 활동하면서 마을별로 아마추어 소리꾼들을 많이 양성했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진도의 구비문학 및 국악 전승의 기반이 되었다. 국립국악원이 진도에 생기고, 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된 이유이도 하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데가 진도신청이다. 판소리를 포함한 오늘날의 민속문화를 한군데 갈무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 민속문화의 정체를 확인하려면 남도로 와야 하고 남도 민속문화의 핵심을 보려면 진도로 가야하는데 그 중의 핵심이 신청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지금 진도에 신청 혹은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곳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까지 신청이 남아 있었고 그 기능을 하던 곳이 진도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지면상 자세한 얘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지난 칼럼에서 나주신청 복원을 거론하며 자세하게 설명해두었으니 참고 가능하다. 전국적으로 보면 나주신청 복원에 이어 경기도가 <재인청>을 복원한다고 한다. 남도지역에서는 화순 능주, 장흥지역에서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현재의 국립남도국악원이나 진도군립예술단의 수준하고는 결이 많이 다른 공간이다. 신청의 단순 복원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열린 공간으로의 신청을 말하는 것이다. 교육과 체험과 체류와 힐링 등 본원적 노스탤지어로서의 안식이 발현되고 확장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코로나 19이후 진도에 가면, 친정 딸 맞이하듯 명절에 막내아들 맞이하듯 맨발로 달려 나오시는 어머니와 남도지역 태내의 소리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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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송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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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母 송순단, '무가Ⅱ' 진도씻김굿 전판공연송가인의 어머니인 남도명창에 버금가는 송순단(64) 명인이 오는 11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진도씻김굿 전판 공연을 펼친다. 6일 서울남산국악당에 따르면 송 명인은 이번 공연에서 3시간에 걸쳐 소리와 춤으로 문화유산인 진도씻김굿 전판을 무대에 올린다. 진도씻김굿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들을 잇는 의식으로 씻김굿이라는 명칭도 죽은 사람이 생전에 풀지 못 한 소망이나 원망 등 한이 될 것들을 씻어낸다는 데서 비롯됐다. 마음의 매듭과 슬픔을 풀어 씻겨내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 공동체 구성원 두루 평안하길 바라는 무속의례다.송순단 명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다. 이번 공연에서 진도씻김굿의 '안당', '초가망석', '손님굿', '제석거리', '씻김거리', '희설', '길닦음'을 선보인다.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이윤선이 해설을 맡아 관객의 이해도를 높인다. 우리소리 바라지, 남원시립국악단 악장 임현빈 소리꾼, 연희컴퍼니 유희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송순단 명인은 무당이었던 어머니 여금순에 이어 31살에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2001년 진도씻김굿 보존회의 전수교육조교로 지정, 진도씻김굿을 이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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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7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남도소리란 무엇일까? '한국호남학진흥원' 주관으로 '남도학'이라는 교재가 만들어졌다. 나는 그간 써두었던 기록들을 병합해 '남도소리' 항목을 집필하였다. 여기 그 일부를 소개하여 '남도소리'가 무엇인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은 무엇인지 밝혀두고자 한다. 협의의 남도소리는 '남도잡가'를 말한다. 1928년 평양 권번에서 예기(藝妓)들을 가르치기 위해 김구희가 엮었던 '가곡보감(歌曲寶鑑)'에 보면, 가곡, 가사, 시조, 서도잡가, 남도잡가, 경성잡가 등이 실려 있다. 남도잡가라는 이름이 일찍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의 잡가라 풀이해두었다. 전라도지역의 보렴, 새타령, 화초사거리와 경상도지역의 골패타령, 성주풀이 따위로 설명한다. 하지만 문화권역으로서의 남도는 호남의 이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호남지역의 잡가로 범주를 좁히는 것이 유용하다. 그런데 육자배기, 농부가, 진도아리랑, 흥타령 따위를 거론하게 되면 잡가의 범주를 넘어선다. 토속민요을 포함하는 호명방식이기 때문이다. 흔히 남도지역의 '창(唱)'이라는 뜻으로 '남도창'이라 한다. 판소리를 포함하는 인식이다. 여기에서 광의의 남도소리에 대한 개념이 대두된다. 민요, 잡가를 포함해 판소리, 시조, 가곡, 무가, 나아가 남도에서 노래했거나 남도를 노래한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개념 말이다. 따라서 광의의 남도소리는 남도의 모든 노래를 포섭하는 개념이다. 이들 모두를 대표하는 곡목이 육자배기다. 흥그레타령에 토대한 이 노래는 문학적으로 따지면 민요와 잡가를 거쳐 가요까지 연결된다. 한(恨)과 흥(興)의 정서가 어떤 장르들까지 파급되었는가를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금은 연구가 무르익지 않았지만, 재창조 100여년을 앞두고 있는 트로트 또한 남도소리의 한 분파로 개념화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남도학'이 씨줄 날줄의 시공을 교직하는 현재적 어떤 정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마땅히 남도소리의 개념범주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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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 해외까지…‘2022 전국투어 연가’ 성료가수 송가인이 전국투어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송가인은 지난 18일 서울 경희대학교에서 개최한 ‘2022 전국투어 연가’ 서울 앵콜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약 7개월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5월 ‘2022 전국투어 연가’ 첫 콘서트를 펼친 송가인은 서울을 시작으로 인천, 대전, 일산, 부산, 수원, 천안, 광주 등 총 22회 공연을 개최해 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송가인은 공연마다 게스트 없이 홀로 20곡 넘게 소화하며 명품 라이브의 진수를 보여줬다. 송가인은 대표곡 ‘가인이어라’부터 ‘오늘같이 좋은 날’, ‘물음표’, ‘밤차에서’, ‘엄마아리랑’, 트로트 메들리까지 열창, 객석 아래로 내려가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등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뿐만 아니라 송가인은 미국 LA에서도 ‘2022 전국투어 연가’ 단독 공연을 개최해 글로벌 팬들을 만났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90% 이상의 좌석을 완판시키며 매진 행렬을 일으킨 송가인은 약 3년 만에 현지 팬들과 가까이 호흡을 맞췄다. 송가인은 콘서트를 마친 후 소속사를 통해 "지난 봄부터 겨울까지 공연을 함께 해준 어게인(팬클럽명)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어게인 덕분에 7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행복하게 공연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도 저 가인이 많이 사랑해달라”고 따뜻한 소감을 전했다. 한편, 송가인은 오는 25일 ‘2022 송가인 팬미팅 'Happy Gain day'’와 30일 ‘2022 송가인 연말 디너쇼’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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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들고’ 송가인, 흥+끼+가창력 모두 섭렵 完가수 송가인이 명불허전 보컬로 태국을 장악했다. 송가인은 지난 7일 오후 10시 방송된 TV조선 ‘복덩이들고(GO)’에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태국 교민 노래자랑 ‘방콕트롯’이 개최된 가운데, 송가인은 "태국에 계시는 교민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 날아왔다”라고 밝히며 ‘방콕트롯’의 포문을 열었다. 송가인은 ‘방콕트롯’의 참가자들을 향한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건넨 것은 물론, 폭발적인 호응과 감탄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어 "여러분들에게 복을 드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뜻깊은 시간이다”라고 밝힌 송가인은 ‘비 내리는 고모령’을 열창, 한 서린 감정과 압도적인 보이스로 관객들과 시청자에게 전율을 선물했다. 특히 ‘진도아리랑’, ‘단장의 미아리 고개’ 무대까지 선보인 송가인은 폭발적인 가창력은 물론, 무대 중간 애절한 연기로 감동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무대를 완성하며 태국 교민들과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 송가인은 앞으로도 다채로운 활동과 음악으로 대중들과 소통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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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 역시 '트롯퀸'....9주 연속 1위가수 송가인이 트로트 가수 인기투표 서비스 앱 ‘트롯스타’에서 12월 2주 차 주간 랭킹 투표 결과, 9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송가인은 전국 트로트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앱 트롯스타 12월 2주 차 주간 랭킹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송가인은 트롯스타 투표에서 782만2514표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434만1150표를 얻은 임영웅, 3위는 217만2557표를 획득한 이찬원, 4위는 147만9889표의 양지은, 5위는 89만3303표의 김희재로 각각 집계됐다. 트롯스타 서비스는 팬들이 직접 자신이 응원하는 트로트 가수에게 투표해 순위를 결정하는 랭킹 투표로, 실시간 투표를 집계해 한국 시간으로 매일 밤 10시에 초기화된다. 투표 순위와 상관없이 일정 득표 이상만 달성하면, 스타에게 지하철 광고 등의 특전이 주어지기 때문에 많은 팬이 참여하고 있다. 트롯스타 12월 1주 차 주간 랭킹 1위~15위는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양지은 △김희재 △홍지윤 △정동원 △전유진 △영탁 △홍자 △김다현 △조명섭 △이솔로몬 △박군 △나훈아 순으로 집계됐다. 한편 송가인은 12월 25일 자신의 생일인 12월 26일 맞아 2022 송가인 팬 미팅 ‘해피 가인 데이’(Happy Gain Day)를 열고 팬들과의 거리를 더욱 좁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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