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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3)<br>강원도아리랑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노다 가세. 십오야 뜬 달이 왜 이리 밝아 산란한 이 마음 달랠 길 없네.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밤에 다다미 소리도 처량쿠나.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 만나보세. 감상 아리랑에 대하여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아라리…’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一群)의 민요로,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이들 여음에서 비롯하고 있다. 아리랑은 남과 북에 고루 분포되어 있고, 국외 180여 개 동포사회에도 널리 향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부른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 등이 전승되어 오고, 멀리 소련시대 우즈베케스탄,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고려아리랑', 러시아 사할린 한인들의 '사할린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랫말에서 ‘십오야 밝은 달’과 ‘풀벌레 우는 밤’을 강조어로 뽑아 고체로 도드라지게 하고 후렴과 더불어 세 구절을 민체로 흘려 잇달아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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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2)<br>강원도아리랑봄바람 불어서 꽃 피건마는 고닯은 이 신세 봄 오나마나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노다 가세. 감상 허난설헌 시 <가난한 여인>이다. 手把金剪刀 夜寒十指直 爲人作嫁衣 年年還獨宿 (추운 밤 가위 잡은 손가락이 뻣뻣하네. 남의 혼수 옷을 짓고 있는 나는 되레 올해도 독수공방) 언 손을 호호 불며 새색시가 입을 고운 옷을 마르는 여인. 정작 본인은 혼처가 나서질 않아 빈방을 홀로 지킨다. 새 봄이 와 온천지가 꽃동산이건만 밭갈이로 고개 처들 겨를조차 없는 처지나 다를 게 없다. 가난한 이들한테는 모두가 그림의 떡! 아리랑이나 목 놓아 불러보자.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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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절창 정선아리랑!’#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공연이 지난 4월 26일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렸다. 20대에서 60대까지의 제자들 20명과 5명의 반주자와 함께 경기잡가, 경기민요, 강원도민요, 아리랑모음, 이렇게 4개 종목 13곡을 선보였다. ‘2024 국가무형문화유산 전승지원 기획공연인 만큼 경기12잡가 중 선유가·제비가·영변가 3곡은 일종의 보유자가 계승해야 하는 의무 곡인 셈이고, 나머지 경기민요를 비롯한 강원도 민요와 아리랑 모음곡은 제자들의 전승 실상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인 듯하다. 이 중에 이호연 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함께 전해준 소리는 12잡가 중의 '선유가'와 '영변가', 그리고 경기민요 '노랫가락'이다. 그리고 보유자가 독창으로 부른 것은 12잡가의 하나인 제비가와 강원도민요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 이렇게 4곡이었다. 이 중에 관객의 반응이나 보유자의 목성대로 구사하여 자신도 만족스로운 표정을 보여준 것은 단연 '정선아리랑'이었다. 이 정선아리랑은 보유자의 10여 종에 이르는 음반 대부분에 수록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연에서도 빼놓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 정선아리랑은 대체로 경기민요 소리꾼들이 선호하는 곡이다. 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서도 명창부가 선택하는 대표적 소리이다. 그러나 누구나 부를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잘 부르는 소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시인 신경림 선생의 다음과 같은 감상평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내게는 노래이기 이전에 내 정서의 깊은 샘”이라고 했다. 곧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소리로서, 이 정서를 표현해 내지 못하면 ’정선아리랑‘이 아니라고 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유튜브 매체를 통해 한 서양음악 전공가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독일과 유럽에서 30여 년 서양 고전음악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을 듣고 한참을 운 적이 있다.”라고 한 것이 그렇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 이 소리는 한국전쟁 말기 당시는 강원도였던 이천 지역에서 있었던 ‘육군예대’(성경린 단장) 공연에 갔다가 ‘정선 아라리’를 듣은 이창배 선생과 김옥심 선생이 돌아와 다시 짜 불러 알려진 소리이다. 이런 탄생 배경은 생전 이창배 선생의 후원자였던 전 종로문화원 반재식 원장, ‘종로 국악로 지킴이 김뻑국 선생’의 증언이 있고, 명고(名鼓) 장덕화 선생이 김옥심 선생과 친했던 명창 이은주 선생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필자에게 전한 말로는 거의 일치한다. 이런 연유에서 음반을 통해 확인되는 정선아리랑은 네 가지 버젼이 존재한다. 전주(前奏)와 간주(間奏)의 유무, 대표사설을 "강원도 금강산~”으로 한 것과 "네 칠자나 내 팔자나~”로 한 것 등이 있기 때문이다.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하고 ‘경기제(서울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명칭을 하는 이유인 것이다. 절창(絶唱), 이 말은 ‘다시 없는 명창’ 또는 ‘비할 데 없는 뛰어난 노래’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빼어난 노래이기도 하고, 빼어난 명창을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다”나 "김옥심은 절창이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흔히 김옥심을 ‘하늘이 내린 소리’(La Voix Celeste) 또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명창’이라고 한다. 특히 그 목을 말하면서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표현은 거의 ‘정선아리랑’을 말할 때 동반되는 수식어이다. 그래서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라는데 이의가 없는 것이다. 필자의 단견으로는 동시대 명창들 간의 경기민요 절창은 이렇게 본다. 묵계월은 ‘한오백년’(CD 경기민요의 향연), 안비취는 ‘이별가’, 이은주는 ‘긴아리랑’, 김옥심은 ‘정선아리랑’(오아시스 레코드 1476 경기민요 2집)이라고 본다. 이 네 분의 경기민요 4곡은 가히 다른 소리꾼들이 그 정서를 그만큼 표현해 내기는 쉽지 않을듯싶다.(그 원인의 하나로는 이들 소리가 성창(盛唱)된 시기로 보아 한국전쟁의 민족적 수난이란 정서가 반영된 것을 들기도 한다.) # ‘2024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이호연도 정선아리랑도 절창이다. 이호연의 활동 이력이나 수상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러나 그가 해낸 공연과 음반 취입과 방송 출연 레파토리 이력을 꼽아보면 알 수 있다. 매우 실험적이었고, 파격적이기도 했다. 공연으로는 1999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통일의 소리 옥피리’ 초연을 들 수 있다. 이 공연 메세지는 야심찬 ‘밀레니엄 프로젝트-’한국의 소리가 바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전공 종목으로 전체 국악판을 견인하겠다는 뱃심은 경기 소리꾼으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음반 발매로는 2015년 발매한 광복 70년 주년 기념 발매 ‘통일아리랑’이 있다. 리딩통월드 오케스트라와 어린이 합창단을 동원한 음반이다. 이는 ‘분단 70년 남북 이산가족 예술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공연으로 전환해 4년간이나 지역 순회공연을 한 원천이었다. 국악인으로서 민족문제를 자신의 소리 주제로 반영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창작 작품을 취입, 발매하는 기획력이나 경제적 여유만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나름의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어 2008년 취입, 발매에 이은 ‘이호연 唱 경기12잡가’ 음반과 악보집을 2021년에 내놓았다. 경기민요 전승 능력과 전수 활동의 최종 결정체를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경기 12잡가 전승자로서의 의무감과 그간의 전수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있다. "우리 세대의 역할이 무형문화재 1세대 스승님들의 예능 원형을 보존, 계승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교육 과정에서 갖춘 지식을 기반으로 앞 세대에서 보존, 계승한 원형을 연구해 경기소리의 유래와 유형을 밝혀 학문으로서 정립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음반과 악보집의 신뢰를 담보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화려한 이력의 종결판을 확보했다. 지난해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사실을 말한다. "국가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종목의 전승능력,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 등의 탁월”함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1968년 이창배, 정득만 선생 사사와 1970년 안비취 선생 경기민요 전수, 1984년 제1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민요부문 장원으로 기량을 인정받고 활동. 다소 늦은 67세에 보유자 인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더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민속극장 ‘풍류’에서의 ‘이호연 경기소리 숨’ 공연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해설이 다소 밋밋했고, 음향이 너무 커서 앞자리에서 듣기에 불편한 정도 외에는 그렇다. 그러나 이 무대를 더욱 빛내준 것은 단연 보유자의 독창 ‘정선아리랑’이다. 이 소리는 1979년 한국음반의 ‘한국고전민요 제3집’(안비취 이은주 묵계월 3인 녹음)까지의 전주 형태 버젼이다. 1995년부터 연주되는 목탁소리와 합창의 인트로 버젼이 아니다. 이 버젼은 처음부터 감정을 고조시켜 다소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은데, 원래의 버젼은 후렴을 먼저 부르고 "강원도 금강산~”으로 시작하여 온전히 정서를 수용할 수 있게 하는 버젼이다. 보유자의 이번 정선아리랑은 원래의 버젼 그대로이다. 보유자가 부른 정선아리랑은 두 번째의 독창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은 중반쯤의 무대로 관객들의 호응은 준비된 상태였다. 여유와 관록이 배인 자태였다. 첫 음도 그렇고 전체적 요성(搖聲)이 매우 안정적이었다. 고음이 보유자의 특징으로 매우 청아했다. 사설의 해석도 담담하여 오히려 전달이 쉬웠다. 보유자에게 따르는 목성 평가, '청아 담백'이 충분히 전달된 정선아리랑 무대였다. 절창, 이호연, 그리고 정선아리랑! 그 여음이 오래갈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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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이즘 한글서예가전 '아리랑특별전'.13일 개막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남과 북이 유네스코에 공동등재 된 '아리랑'이 한글 서예작품으로 출품되어 소개된다. 다시 ‘이즘한글서예가전’이 펼쳐진다. 이즘한글서예가회(회장 이종선)는 한글서예계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네번 째 전시를 개최한다. 오는 13일부터 1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에서 개최한다. 개막 행사는 오후 4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 한글 서예계를 대표하는 중진 및 신진작가로 구성되어 있는 이즘한글서예가회는 2021년 처음 전시를 열어 중량감 있는 전시라는 평과 함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한글서예의 진면목을 보였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매년 연 이은 전시회를 열면서 한글서예의 정체성을 구축하며 변화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어 서단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이즘한글서예가전'에는 총 30명의 작가가 개성이 돋보이는 독창적인 작품 90여 점이 출품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주)국악신문사(대표이사:기미양)의 지원을 받아 '아리랑 특별전'을 병행하여 진행하게 된다. 본조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문경새재아리랑, 대구아리랑, 예천아리랑, 경산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춘천아리랑, 북한아리랑, 서도아리랑, 등 한반도 각 지역 아리랑과 동포사회가 향유하는 디아스포라 아리랑, 사할린아리랑 사설이 담긴 한글 서예작품이 전시된다. 출품된 아리랑 작품은 전시회를 마치고 (주)국악신문사에 기증되어 국내외 지역에서 열리는 아리랑 행사에 순환 전시될 예정이다. 한편 국악신문은 2022년 ‘이즘한글서예가전’에서 한글서예의 매력과 감동을 국악신문 독자들과 함께하고자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사설’을 주간 연재를 강권하게 되었다. 한얼 이종선 회장의 글감 선정에서 해설까지, 직접 맡아 현재 200회 연재를 앞두기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 국악계의 큰 성과로 평가 받고 있다. 시작할 당시 시조·가사·가곡·사설 중심에서 민요 아리랑 사설에 이르렀다. 주간 접속 수가 가장 높은 연재물이다. 독자들은 앞으로 신민요 사설은 물론, 창가와 가요 사설까지 기대한다는 요청이 들어 오고 있다. 이는 한얼 선생이 구사하시는 서체의 기운은 물론, 깊고 풍부한 해설의 격조를 받아 드리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일부 독자들은 한글서예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신 것에 큰 감사를 드립다고 전했다. (주)국악신문사 기미양 대표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참가 작가 모두가 아리랑 작품을 내신다는 소식에 기대가 매우 큽니다. 3월의 꽃 향기를 찾아가는 설레임으로 ‘2024 이즘한글서예가전’, 그리고 그 속의 ‘아리랑특별전’을 보러 가겠습니다" 이어서 "그리고 독자들은 물론 전국 아리랑 식구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아가 국내외 동포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전시회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출품작가는 다음과 같다. 구자송 김광희 김도임 김두경 김문희 김선숙 김진태 문재평 문영희 박경희 박병옥 박정숙 서복희 서혜경 신명숙 유혜선 은성옥 이광호 이병도 이성숙 이종선 장용남 정복동 정영필 조용연 조현판 최미연 최민렬 한소윤 홍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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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시의 날' 아리랑 메아리지난 일요일 9월 9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시의 날'에 아리랑이 메아리쳤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가 주최한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시의 날' 부대행사로 치루어진 김치페스티벌에서 사할린아리랑무용단(단장 박영자)이 강원도아리랑 선율에 추는 아리랑춤을 선사했다. 이어 회원들과 광장에 펼쳐진 장소에서 러시아인들에게 '김치 담구기' 방법을 실연했다. 2020년부터 유즈노사할린스크시는 매년 '도시의 날'에 김치페스티발을 열고 있다. 사할린은 물론 러시아 전역에서 김치는 러시아인들에게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할린 2세 박영자 단장은 "매년 이날에 우리 아리랑무용단은 '아리랑춤'을 무대에 올려요. 사할린에서 아마도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라고 전했다. 이어서 오후 3시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은 전문예술단체 '루스키 테램 앙상블'이 개최한 '우리는 다 같이(Мы вместе)' 페스티벌 무대에서 3가지 춤을 선사했다. 사랑의 아리랑춤, 도라지춤, 사할린아리랑을 선보였다. 아름다운 한복과 퍼포먼스를 곁들인 춤은 시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루스키 테램 단장은 본 행사 사이트 게시판에 "아리랑 춤이 오늘 행사를 더욱 빛내준 멋진 공연이다"라고 기록을 해주었다고 박단장은 전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한국어교사인 박영자 단장은 2007년 서울문화재단에서 파견된 목진호 선생에게 우리 전통춤 입춤을 시작으로 국악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2014년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을 조직했다. 이번 달에도 5차례 공연을 해왔다고 가슴 벅차 했다. 돌린스크, 우글레고르스크, 홈스크, 유즈노사할린스크 등에서 한인들과 러시아 국가 행사에서 아리랑을 춤을 선사해오고 있다. 박단장은 "전쟁으로 인해 현재 한러교류는 언제 다시 재개가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 가고 싶다. 안산에 사는 어른들이 공연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안산으로 영주귀국한 친구도 보고싶고, 매년 사할린아리랑축제에 오신 아리랑 식구들도 보고싶다"고 전했다.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은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에 초청을 받고, 전국아리랑경창대회 늘푸른청춘 부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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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의 ‘국악-신반’ <11>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김민지 가야금 연주자의 첫 음반, '김윤덕류 가야금산조'이다. 연주자는 중앙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로 중앙가야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윤덕 명인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정남희 명인으로부터 가야금산조를 배워 1968년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부문 첫 보유자가 되었다. 그의 산조는 이명희 명인에게 이어져 김윤덕류로 명명되어 있다. 연주자는 이영희 명인을 사사하였다, 김윤덕류는 뿌리가 실하고 호쾌하고 다른 산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드렁조가 존재함으로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고 한다. 산조는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단모리’로 이어지는 6악장으로 2022년 6월 11일 한국문화의 집에서 공연(김민지 가야금독주회 ‘김윤덕, 흩어진 가락’)한 실황 녹음이다. 장단은 김청만 명인이 잡았다. 해설서는 간단하며, 실황이지만 가야금 소리는 깔끔하며 장단도 조화롭다. ● 김죽파류 산조 음반을 출반한 다른 김민지 연주자가 있음. 양은희 '추담제 수궁가' 이 3장의 음반, 양은희 '추담제 수궁가'는 2014년에 국악방송 991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판소리 완창으로 PC로 제작하여 홍보용으로 사용한 음반이다. 최근에 디지털음반(음원사이트), USB음반, SD음반으로 다양하게 보여 구하게 된 음반이다. 양은희 연주자는 원광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음악학 석사를 마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수궁가 이수자이다. 2017년 시작한 브랜드기획공연 ‘부창부수’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판소리꾼이다. 수궁가는 소리꾼의 첫 음반이다. 추담는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홍정택 명창의 호이다. 추담제는 사라질뻔한 정정렬, 이기권 명창의 수궁가를 새롭게 다듬고 김연수 명창의 동초제를 일부 차용하여 완성한 한 바탕이다. 3장의 음반은 트랙 작업이 잘 되어있으며 북은 박정철 고수가 맡았다. 2014년 녹음이지만, 오래간만에 들은 판소리 한바탕이다. 음원사이트에서는 디지털음반 <추담제 수궁가> 1, 2, 3집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해설서가 전혀 없어 아쉽다. 유성기음반 : 1925년 난난타령 '아쥬가루동백아여지마라'-해주아리랑- 1925년 출반된 유성기음반 닙보노홍 K-158A 난난타령 <아쥬가루동백아여지마라>의 복제품이다. 12번째 복제품으로 20장을 제작하고 있다. 1925년 출반된 2장 4면 중 첫 면(K-158A)을 복제한 것이다. 1923년 녹음으로 ‘해주아리랑’의 첫 모습입니다. 당시 광고에는 ‘강원도아리랑’으로 표기하고 있다. 음반 뒤에 부착한 제작자의 글을 인용한다. 1925년 일본 일본축음기상회의 3번째 녹음(1923년)에서 <난난타령>(닙보노홍 K-158A. B. K-159A. B) 2장(4면)이 출반됩니다. 그 중 첫 곡인 K-158A <난난타령 아쥬가루동백아여지마라>를 복제했습니다. <난난타령>은 조선레코드총목록에는 <강원도아리랑>으로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해주아리랑>의 첫모습입니다. 유성기(SP)음반은 유성기로 들어야 제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성기로 감상하기 위해 제작하였습니다. 본 음반은 영국(Vulcan Record Co.)에서 쪽 반으로 제작하였습니다. (현재 양면 제작 불가) 음원은 제작자가 소유한 유성기 음반으로 악당이반(대표 김영일)에서 녹음·숙달(엔지니어 오지영)(엔지니어 오지영)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음원이 길어 소개 목소리를 앞에 넣지 못했습니다. 해설서의 가사채록이 미진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유성기음반 : 1934년 남도민요합창 '진도아리랑'-김소희. 오비취- 1934년 출반된 유성기음반 Okeh 1728 남도민요합창 '진도아리랑'의 복제품이다. 13번째 복제품으로 20장을 제작하고 있다. 김소희 명창이 부른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김소희, 오비취 명창이 같은 비중으로 부른 음반이다. 김소희 명창의 회고에 의하면 녹음시에는 ‘남도아리랑’을 넣었는데 출반시에 곡명이 ‘진도아리랑’이 되었다고 한다. 음반 뒤에 부착한 제작자의 글을 인용한다. 1934년 Oke(No. 1728) 레이블로 출반한 남도민요합창 <진도아리랑> 유성기음반의 복제품입니다. 김소희, 오비취 명창이 부릅니다. ‘진도아리랑’의 첫 모습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출반된 ‘진도아리랑’은 3종입니다. 유성기(SP)음반은 유성기로 들어야 제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성기로 감상하기 위해 제작하였습니다. 본 음반은 영국(Vulcan Record Co.)에서 쪽반으로 제작하였습니다.(현재 양면 제작 불가) 음원은 제작자가 소유한 유성기음반으로 악당이반(대표 김영일)에서 녹음.마스터링(엔지니어 오지영)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앞부분에 음반 소개 목소리는 제가 넣었습니다. 해설서는 원본 해설서를 참조하여 만들어 보았습니다.향후 주요한 ‘아리랑’ 유성기음반을 계속 제작할 예정입니다. 많은 성원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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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아리랑제’, 가능성 확인되었다‘제2회 동두천아리랑제’가 지난 25일 오후 5시 시민회관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호국보훈의 달에 마련한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하는 동두천아리랑제이다. 토속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8수,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 10수.... 2곡이 발표 되었다. 동두천에는 전래되는 어러리(아라리)와 본조아리랑 선율이 불려진 것이다. 이 아리랑을 유은서 회장이 아리랑학회 자문을 받고 현지 답사를 병행하여 발굴하고 복원하여 동두천 시민들에게 지난해 제1회 동두천아리랑제에서 알렸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이후 유은서 회장은 아리랑학회에서 동두천에도 아라리가 불려졌다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경로당을 찾아서 발굴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유회장은 경기북부 지역에서 30여 년간 국악 활동을 하면서 북한강 수계를 따라서 불려지는 포천어러리, 연천어러리(아라리) 등에 주목했다. 이후 '경기아리랑에 관한 연구'로 국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동두천 관내 많은 경로당을 찾아가며 귀담아 들었던 아라리를 정리하였고, 8년 전 동두천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이담이라는 옛 지명이 담긴 이담어러리 30수를 찾았다.이렇게 동두천에도 향토민요인 이담어러리타령과 아리랑이 채록되었다. 현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에서 향토민요 ‘이담어러리타령’이 전수되고 있다. 이담어러리타령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나를넘겨주게 아리랑 고개는 열두고개 아리랑 고개로 날만 넘겨주게 올라가는 신감사야 내려오는 구감사야 구관이 명관이라고 말 전하거라 내가 넘어가는 고개는 한 고개라 우리 님 고개는 열두 고개 이담면 흐르는 물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린 날 안고 돌줄 모른다 해는 지는데 갓을 쓰고 어디를 가오 첩의 집에 가거들랑 나 죽는 꼴 보고 가소 앞집의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메러 간다 여보게 총각아 목메러 가지 말고 이내몸 시집간데로 몸살러 오게 아리랑사(史)에서 6.25전쟁과 동두천은 깊은 관계가 있다. 주한 미군 제7사단가 '아리랑', 안흥리 '아리랑다리', 동두천 위안부 모임 '아리랑'이다. 1953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주한 미군 (캠프 케이시)제7사단가가 '아리랑'이다. 특히 동두천 양공주로 불린 위안부들의 모임도 '아리랑'이고, 1964년 3월 10일 준공이 된 주한 미군 제7사단 장병들이 지어준 '아리랑다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리랑다리는 "64년 3월 10일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 안흥리에 주한 미 제7사단 장병들이 손수 지었다. 제7사단장 그레이 소장이 양주 군수에게 '아리랑다리'를 지어서 인계했다. 폭 2m, 길이 120m로 미국과 한국의 굳은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아리랑다리라고 지었다"(대한뉴스 제 460호)라고 한다. 당시 동두천에서는 2만 6천명이나 되는 주한 미군 제7사단의 단가 아리랑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미군들과 주민들이 만나면 손 붙잡고 아리랑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혹자는 출렁거려서 아리랑다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당시 미제 통조림 깡통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서 '깡통다리'라고도 불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서양속담에도 "사랑받는 아이는 이름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1967년에 '아리랑다리'라는 영화로도 나왔다. 그런데 1972년 노후한 아리랑다리를 헐고 현재는 새로운 다리를 짓고서 안흥교라는 이름을 부쳤다. 지난 6일 동두천아리랑보존회원들과 함께한 동두천아리랑답사에서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에서 관내 역사 유래에 대한 지명이나 시설을 적극 발굴하여 안흥교를 다시 아리랑다리로 복원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 아리랑다리를 지어주고 1971년 3월 2만명의 미군들이 철수하면서 제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미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코리아라는 나라는 전쟁 페허 속에서도 남녀노소가 모였다 하면 아리랑을 부르면서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설명하면서.....(주한 미군 제7사단에 3대가 복무한 마이클람부라우 박사(손자) 증언) 당시 동두천은 지나가는 개들도 입에 파란 달러를 물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급작스럽게 자본 집중과 유입으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1950년 전쟁이후 동두천이야말로 아리랑이 가장 많이 불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군가로 불린 아리랑은 자연스럽게 미군들과 위안부들에 의해 불려져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계적 뮤직션들이 아리랑 음반을 발매하고, 미국 동포들까지도 아리랑을 애국가처럼 불렀다. 지금도 6월 보훈의 달 뉴스에서 한국을 다시 찾는 미군 참전용사들은 의례적으로 당시를 기억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유은서 회장은 "새로 작창한 동두천아리랑에는 동두천 미군 기지촌의 애환이 담겨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반 강제동원이나 속여서 끌려온 어린 여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들의 한을 아리랑으로 정화하고 치유하시기를 바라며...."라고 설명하면서 어느새 울컥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함께 눈물이 고였다. 작년에서부터 그분들을 무대에 모시려고 수차례 청을 드렸는데 아직까지는 만나주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세상인데...아직까지 그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보존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오늘을 동두천아리랑제 개최일로 정례화 하기로 하였다. 식전행사로 풍물패 밝달이 지신밟기와 풍악을 울려 신명과 흥을 올렸다. 이어 동두천에서 전래되고 있는 향토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이 첫 막을 열었다. 동두천아리랑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우리낭군 먼동이 트면/모랫말가고요 아낙네들 신천물/빨래터에서 놀고요 저기가는 기차는/검은연기만 나고 이내가슴 타는데도/검은연기가 나네 동산올라 구경하니/길가는행인왜모르나 천하일색 나하나와/놀다가지못하고 고추당추 맵다해도/시집같이나 매울소냐 못살겠네 영죽겠네/이내시집은못살겠네 자재암 풍경소리는/ 바람따라 울리고 소요산 공주봉에는/ 바람소리 좋구요 만경창파방을삼고/연화수다가 옷을입고 이리떠도 둘이나둥둥/저리떠도 둘이쌍쌍 꽃이야 곱다마는/가지 높아서 못꺾었나 꽃은 꺾어/머리에 꽂고/잎은흝어다 입에물고 미군부대 앞마당에는/민들레꽃 고운데 꽃답던 이내청춘/어느새 시들어졌네 아리랑다리는 깡통강통/깡통다리라네 아리랑다리는 출렁출렁/출렁다리라네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회장과 회원들이 지난해 동안 갈고 닦은 가량을 펼쳤다. 2019년 함양산삼엑스포에서 음반으로 발매된 '황석산아리랑'(작곡:양평수, 소리:유은서)도 함께 선보였다. 한국무용 '살풀이'(이해영예술단), 변검, 동동구루무(송해문화예술진흥회), 한국무용 '강원도아리랑'(늘춤무용단), 인형극 (정승재)이 펼쳐졌다. 이어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과 이병일(특별회원), 회원들이 소극으로 꾸며서 배역을 맡고 들려준 왕십리아리랑과 사할린아리랑을 생생한 감동으로 선사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사할린에는 왜왔나 왜왔나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많은 남화태 징용왔네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안성경서도잡가 보유자)과 회원들이 1911년에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안성아리랑을 선사했다. 조명숙 명인은 안성권번이신 어머니를 따라서 70 평생 노래만 불렀다. 뛰어난 공력으로 무대를 신명나고 신나게 만들어서 초청 단체 중 가장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관객으로 오신 귀명창들에게 전화가 왔다. '귀한 소리 들었다고" 동두천 시민들에게 서울경기 지역과 사할린에서 향유하고 있는 아리랑들을 선보였다. 안성아리랑, 동두천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사했다. 총 10개 단체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박형덕 동두천시장, 김승호 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회 김경수 지회장, 김성보 대한노인회 동두천시지회장, 동두천여성단체협의회 윤한옥 회장, 동두천농업협동조합 목현균 조합장, 동두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형남선 센터장,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 회장,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 이무성 화백, (주)국악신문 관계자,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 등 300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시민들에게 "동두천아리랑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은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인자"라고 전했다.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김승호 회장은 "이제 두 돐을 넘은 동두천아리랑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지역 전통문화 창달을 위해 온 김경수 동두천국악협회장의 배려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한편 동두천 전통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는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 김경수 지부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늦었지만 동두천 지역 아리랑의 발굴과 복원작업을 통해 동두천의 역사성을 '동두천아리랑'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지난 2012년 12월에 세계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과 함께 향토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아리랑을 통해서 지역문화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비영리 문화단체다. 또한 아리랑 3대 정신(저항, 대동, 상생)을 계승한다. 지난 12월 등재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선에 세운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에 동두천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유은서 회장은 "이번 동두전아리랑제를 위해 동두천아리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아리랑답사를 회원들과 수행하면서 더욱 아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내년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주제의식을 구축하고,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다듬어서 소극으로 동두천아리랑을 올려보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제2회 동두천아리랑제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고 동두천시, 동두천시의회,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주)국악신문, 동두천예총,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동두천농업협동조합이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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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왕십리아리랑제, 제주아리랑부터 사할린아리랑까지지난 3일 왕십리아리랑보존회가 주최주관하는 제13회 왕십리아리랑제가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6월 보훈의 날을 맞이하여 보훈 가족 50여 명과 성동구민 등 300여 명이 객석을 채워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45명이 무대에 오른 이번 공연은 1부 이산의 노래, 2부 해원의 노래, 3부 상생의 노래로 구성되어 7개 지역 아리랑과 경기민요, 전통춤으로 구성되었다. 특별출연으로 김명남 명창이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선사했다. '왕십리아리랑'은 순수 창작곡이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장 이혜솔 명창이 작사하고, 양금 연주자 윤은화가 작곡했다.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사랑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 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한양도성 동쪽 십리 응봉산 정기. 세세년년 우리 삶터 희망의 샘터. 살곶이벌 응봉기슭 응방의 옛터. 역사문화 오래오랜 우리의 터전. 인류유산 아리랑은 우리의 자랑. 슬기로운 매사냥도 인류유산이래요." 첫 막은 '왕십리아리랑으로 열었다. 1부에서 '이산의 노래' 사할린아리랑은 소극으로 엮어내어 대일항쟁기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가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당하는 고난과 슬픔을 아리랑에 담아낸 이산의 아픔을 형상화 하였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우리 조선은 따뜻한데 그 땅에 못가고 내 여기 사나 우리 영감님은 어데로 갔나 나만 혼자 두고 자기만 갔네 강제징용의 땅 사할린에서 한인 1세대들이 고국을 그리며 부르는 망향의 노래 ‘사할린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3연은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땅으로 이중징용 가는 대목이다. 우리님 따라서 사할린에 왔는데, 다시 나만 혼자 두고 일본 해저 탄광으로 끌려가는 이산의 고난을 고하고 있다. 2부 '해원의 노래'에서는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회장과 박옥희가 제주아리랑을 선보였다. 이때 제주해녀의 복장을 한 장경숙(제주아리랑연구회장)의 제주 해녀의 고난과 역경을 몸짓으로 표현하며 제주아리랑을 함께 불러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내었다. 이어 김용자, 최순이, 박연춘이 상주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을 연곡으로 불러서 신명과 흥을 돋구웠다. 관객들이 후렴을 따라서 부르면서 손뼉을 치고 발을 굴리면서 추림새를 던져주었다. 얼쑤, 좋다! 3부 '상생의 노래'에서는 대일항쟁기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한 호국선열을 추모하는 의미로 만든 '아무르아리랑'이 소극으로 펼쳐져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무르아리랑 넘어간다.(후렴) 원수하고는 같은 하늘아래 살수가 없어, 팔걷고 뛰어나와 의병되었네, 동양평화 하자하자 외치는 소리 하늘땅 온세상 진동하누나 다섯발 내디뎌 도적 쓰러지니동양평화 대역사 시작되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아무르아리랑) 이 아리랑은 이혜솔 회장이 2018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열리는 안둥근의사추모제에 한국대표로 초청되어 헌정한 의병아리랑이다. 국내 거주하고 있는 광주 고려인문화원 및 고려인합창단,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이 사는 인천, 김포, 양주 등에서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알려오고 있는 의병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오고 있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소극으로 만들어서 무대화 하여 레파토리화 하고 있다. 성동구 거주하는 한 보훈가족(75세)은 "보훈의 날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주는 '아무르아리랑'이 가슴에 와 닿는다. 주말이라서 마침 손자들과 같이 와서 더욱 의미가 깊다. 감사하다"라고 이회장의 손을 두손으로 잡아주었다. 휘날레가 끝났는데도 관객들이 계속해서 '앵콜'을 외쳐 주었다. 주말이라서 가족과 함께 온 모습이 화기애애하다. 전국아리랑공연연합회에서 축시를 보냈다. "우리 왕십리아리랑은 아리랑은 역사와 민족을 노래한다. 아리랑은 우리가 사는 땅을 노래한다. 왕십리아리랑은 서울의 역사를 노래한다 왕십리아리랑이 탄생한지 5년 이제 ‘아리랑의 아리랑’으로 자리한다 왕십리아리랑은 오늘의 우리 아리랑이다 구아리랑 긴아리랑 본조아리랑 정선아리랑 왕십리아리랑은 서울의 아리랑이다 이혜솔과 그들은 왕십리아리랑 전승자들이다 발표회를 하고 축제를 펼친다 제주도에서 정선까지 또 사할린까지 동포들과 외국 손님들과 우리들과 함께한다 아리랑의 역사를 아리랑의 위상을 아리랑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막내 아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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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연정국악단 상설공연 - '토요국악'전통음악부터 창작음악까지, 악樂ㆍ가歌ㆍ무舞를 골고루 맛볼 수 있어 보는 내내 지겨울 틈이 없는 대전시립연정국악단의 시그니처 공연 <토요국악>이 기대돤다. 단 한 번의 무대에서 전통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무대가 주말마다 펼쳐진다. 매월 둘째 주에는 궁중과 민중에서 행해지던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흥겨운 전통 국악을 선사한다. 매월 넷째 주에는 성악, 무용 등 장르를 특화한 프로그램과 사랑을 주제로 한 창작 프로그램 등 주제가 있는 프로그램으로 국악의 다양성과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통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하여 우리 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는 시간과 어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우리 음악으로 듣는 동화 구연 시간까지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 펼쳐진다. 지난 11일에는 관악합주 '수제천', 가야금독주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 궁중무용 '춘앵전' ,남도민요 '새타령', '진도아리랑', 민속무용 '진주교방굿거리춤' 김수악류, 연희 '웃다리 사물놀이'가 펼쳐졌다. 오는 25일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목이 펼쳐진다. 종묘제례악 '전폐희문',가곡 우조 '언락, 아리랑 '긴아리랑', '강원도아리랑', '해주아리랑', '밀양아리랑', 강강술래, 농악 '판굿'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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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문경새재’도 아리랑?삼목 作 "선생님, 제가 보낸 카톡 사진 보셨어요? 점촌 버스터미널 사거리에 걸린 프랭카드인데요, 내일 강연 안내인데, 아리랑연합회 김** 선생 문경에 온다는 내용만 있어요. 아리랑 강연 내용은 없고요. 점촌 시내 곳곳, 문경읍 면 단위에는 200개나 부쳤다고 합니다. 재밌네요.” 문경시가 주최하는 시민 대상 아리랑 특강 안내 프랭카드. 내용이 아리랑을 강의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아리랑 연합회 김**가 문경에 온다는 식의 표현이라서 어색하고 재미있다고 기찬숙 선생이 알려온 것이다. 이 시기 문경아리랑은 물론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20012년 6월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이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한 강연이었다. 강연 주제는 아는 이들이라면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내용이다. 70분간의 강연은 다음의 세 문장으로 요약이 된다. "모든 아리랑의 후렴에 나오는 ‘아리랑고개’는 바로 ‘문경새재’입니다. 문경새재가 바로 '아리랑 고개'라는 말입니다. 문경은 아리랑의 고향입니다.” 이 요지의 강연을 계기로 문경지역에서는 소위 ‘문경아리랑 붐’이 일어났다. 당시 송옥자 회장이 문경아리랑을 알려오고 있었지만, 시청과 문화원과 일반인들에게 "문경에도 아리랑이 있다”는 인식이 번지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2020년까지 문경지역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행해진 사업과 행사를 보면 그야말로 획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망하게 이뤄졌다. 정선이나 밀양 또는 진도 지역에서 20여년간 이뤄진 것들이 한 시장의 5년 임기 내에 이뤄진 것이다. 대충 추려도 이럴 정도이다. 첫째는 문경새재아리랑제‘가 대규모, 정례화, 대외 행사로 확대, 개최 둘째는 국립아리랑박물관 건립을 공식화, 국회 정책발표회, 아리랑 가사 서예 작품화 셋째는 문경새재아리랑과 다듬이 소리 브랜드화 행사(광화문 천명 다듬이 행사) 넷째는 문경시 ‘아리랑도시’ 선포 다섯째는 경복궁 중수 후의 아리랑과 문경새재아리랑의 연결고리 학술 담론화 여섯째는 헐버트 채보아리랑과의 연결, 독일 홈볼트 아카이부 독일포로 고려인 유리콜라이 아리랑 음원 전시 및 관련자 초청 행사 일곱째는 최초의 통속아리랑 H. B. 헐버트 채보 아리랑악보비 건립 여덜째는 문경시장 사할린아리랑제 동행 및 해외 연주자 초청 공연 아홉째는 민요학회 주최 문경새재아리랑 주제 학술대회 등 개최 열 번째는 전승단체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와 아리랑문화단체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양립 이상의 과정에는 문경시청이라는 관官의 지나친 주도로 전승주체가 소외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10여 년간 점령하였다는 부정적인 평가, ‘아이디어만 빼 먹는 관’이라는 구태도 구설에 올랐다. 이 중심에 삼목이 있었다. 삼목은 이 아리랑 공사公事에 스스로 "공도 있고 과도 있다.”고 평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기간에 드러나게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크게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문경새재아리랑’의 존재와 그 위상이 정립 또는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즉, 문헌과 음반 기록으로 그 실체를 밝혀냈다는 사실이다. 1896년 H. B. 헐버트가 기록한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오/ 아르랑 얼싸 배 띄어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라는 대표사설은 이후 ‘구아리랑’에서부터 1926년 밀양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까지 전승된다는 사실에서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다. 즉, 경복궁 중수(1865~1872)7년 기간에 문경의 새재에서 나는 특산물인 박달나무가 공사장 도구 자루로 다 베어져 나간다는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고, 또한 이 새재는 경복궁 중수 기간 삼남의 부역꾼들이 반강제적으로 오가며 넘었던 고개이다. 여기에서 ‘새재’는 ‘고개’로, 고개는 ‘고난’의 상징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문경새재아리랑의 존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삼목은 1985년 헐버트 기록을 발굴, 소개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1905년 오키타 긴조(㳞田錦城)의 ‘한국의 이면韓國 裏面’ 소재 아리랑 기사, 1925년 동아일보의 ‘박달나무 민요’. 1929년 ‘개벽開闢’의 ‘문경요聞慶謠’, 1930년대 이재욱의 ‘영남민요조사자료’의 문경지역 민요자료 등을 발굴하여 존재를 밝혀냈다. 이러한 문헌 전승을 통한 문경새재아리랑의 존재 확인은 거의 삼목의 몫이었다. 한편 이 시기 더불어 거둔 성과가 또 있다. 그것은 일제시대 발매된 지역 아리랑 음반의 발굴이다. 즉, 1936년 밀리온 레코드사가 발매한 최계란 소리 ‘대구아리랑(1936년)’이 2008년에 발굴되고, 1937년 오케이레코드사가 발매한 서영신 소리 '동래아리랑(1937년)’이 2009년 발굴 되고, 같은 해 '신밀양아리랑(1936년)' 등이 신나라음반 자료실에서 발굴되었다. 이미 장소성을 부여한 강원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대구와 부산의 지명 아리랑이 뒤늦게 발굴됨으로써 다른 지역의 지명 아리랑도 발굴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음반 수집가들에 의해 또는 대학 연구소 음원 아카이브가 주목한 장르는 판소리 명창 음반이나 월남 이상재 선생이나 손기정 선수 같은 역사인물의 육성 음반 등이었다. 지역 아리랑에 대한 관심은 그리 두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특히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전국적인 아리랑 신드롬과 함께 지역 아리랑 음반들에 관심을 보여 발굴되었다. 이에 의해서 ‘경주’, ‘춘천’, ‘문경’ 지명의 아리랑도 음반으로 발매되었으리라는 추정을 하게 되었다. 삼목으로서는 당연한 기대였으며, 국내와 일본 및 해외의 음반 판매사의 싸이트를 주목하고, 1930, 40년대 신문 광고도 살피게 되었다. 2017년 11월 초, 제10회 문경새재아리랑제 개최를 준비하기 위해 문경을 바쁘게 오가던 시기이다. 고속버스가 충주를 거쳐 점촌을 향하는 중에 기 선생 특유의 높은 톤이 들려왔다. 기 선생이 안국동 아리랑연합회 사무국에서 일제시대 신문기사 색인 작업을 통해 ‘아리랑연표’를 작성하다 찾아낸 것이다. "포리돌 음반 광고에 ‘문경새재’라는 것이 나옵니다. 이건 분명 문경새재아리랑인 것 같아요. 왜냐면 오태석과 정남희 반주에 조앵무와 임소향이 부른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분명 이건 문경아리랑 음반입니다.” 나는 문경문화원 일을 보면서도 건성이었다. 마음 한쪽은 빨리 서울에 들어가서 기록을 보고 싶어서 다. "일제강점기 문경아리랑이 음반으로 나왔다?”는 기대는 했지만, 실제 그 존재가 드러날 줄은 몰랐다. 요 몇 년 동안 추정한 것이 실제 현실로 드러난 것이니 신비하기도 했다. 급한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 온 삼목은 기 선생이 출력해 놓은 조선일보 1939년 1월 19일자 ‘포리도루 조선음반 신보’ 광고를 보았다. 분명하게 2월 신보 광고란에 ‘聞慶새재’가 들어있다. 반주자 두 분과 노래한 두 분도 분명히 나와 있다. 다만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없을뿐이다. 그러나 삼목은 확신을 했다. 여러 문헌에서 ‘아리랑’이 붙지 않은 ‘문경요’나 ‘박달나무 민요’가 모두 문경아리랑이었기 때문이다. 1949년 성경린과 장사훈이 펴낸 ‘朝鮮의 民謠’에서도 ‘聞慶새재’로 곡명을 달았는데, 그 가사는 문경새재아리랑이다. 그런데 이 광고만으로는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데, 하나는 실제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기사와는 다르게 광고 게제 일시와는 시점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음반은 발매 되지 않고 광고만 나왔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광고만 나오고 발매는 되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70여년이 지나도록 실물이 확인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삼목과 기 선생은 이 두 가지 의문을 염두에 두고 음반을 찾기 시작했고 관련 기록을 수소문 했다. 이 과정에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매일 색인 검색을 하는 김종욱 선생에게 부탁한 결과 의미있는 자료가 왔다. 그것은 매일신보 1938년 7월 17일자와 9월 25일자 경성방송국(JODK) 국악 프로그램에서 ‘문경새재’가 송출되었음을 확인했다. 여기에 따르면 부른 이는 다르지만 같은 반주자에 의해 방송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음반 발매 여부와는 또 다르게 ‘문경새재’가 국악인들에 의해 연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삼목과 기 선생은 광고자료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음반 존재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발굴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이를 언론에 알리고자 했다. 그러자 기 선생은 "우리가 음반을 찾고 발표해야지 이 자료만 알리면 안된다"라는 의견을 냈다. 이어 "그 음반 찾게 되면 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 기사를 보고 찾았으면서도 마치 자신의 눈이 밝아서 '최초 발굴'이라고 떠들면서 찾았다는 기사를 내는 노략질을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삼목으로서는 누가 찾든 빨리 음원을 확보하여 문경아리랑의 위상을 제고하고, 연구 자료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의견을 달리했다. 드디어 2017년 11월 3일, 문경문화원 고성환 사무국장을 통해 문경매일신문과 대구매일신문에 자료를 공개했다. "문경새재아리랑 전국 확산…방송·음반 발매 기록 발견. 한민족아리랑연합회와 아리랑학회는 2일 문경새재아리랑이 1938년 7월 17일 오후 8시 KBS라디오 전신인 조선방송(JODK)에 방송됐고, 영국의 레코드사가 취입해 음반으로도 내놓았다는 당시 조선일보 기사와 광고를 비롯한 방송자료를 발견해 매일신문에 공개했다.” 기사의 말미는 이렇게 여몄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문경새재아리랑은 헐버트 선교사가 서양 악보로 채보하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 1930년대 방송을 타고 임소향이 음반을 낸 이후인 1940년대까지 서울 경기 지역에서 널리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만일 임소향이 월북하지 않았다면 문경새재아리랑은 해방 후에도 전국에서 널리 불렸을 것이다-고 했다.” 이 기사는 ‘문경새재’라는 음반명과 곡명을 아예 ‘문경새재아리랑’으로 특화, 단정하였다. ‘문경새재’는 ‘문경새재아리랑’ 또는 ‘문경아리랑’으로 특정, 검색 키워드로 제시했다는 사실에서 음반이나 기타 문헌에서 문경새재아리랑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했다. 이 기사로 문경과 소장자들에게 전해져 반향이 컸다. 유튜브 ‘정창관의 아리랑’ 운영자 정창관 선생이 공감을 표해왔고,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이만유 회장도 "문경아리랑이 다른 지역 아리랑과 함께 중요한 위치였음을 확인시켜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다. 드디어 기사의 결과가 나왔다. 존재에 대한 기사가 나간지 1년,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면 관장이 소장 자료를 공개했다. 광고 문안과 동일했다. "Polydor X-517-A(10386BF) 南道雜歌 梅花打鈴·聞慶세재 吳太石·丁南希·曺鸚鵡·林素香 伴奏 韓成俊·金德鎭·鄭海時” ‘南道雜歌 聞慶새재’ 불은 라밸의 폴리도루 음반, 너무나 반가운 음반이다. 그리고 2년 후 역시 노재명 관장이 가사지歌詞誌까지 발굴, 공개했다. 획기적인 발굴이다. 이로서 3절의 가사가 분명하게 밝혀졌다. "(중모리)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 구부야 눈물이 난다.아르르르르르 아르르르르르 아라리요.아리랑 장단에 노래허여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가세.이 밭을 매고 저 논 갈아 양친 부모님을 봉양허세.아르르르르르 아르르르르르 아라리요.아리랑 장단에 노래허여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가세.이 물을 건너고 저 산 넘어 우리 님 계신 곳을 찾어가세.아르르르르르 아르르르르르 아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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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本調가 뭐야?”(하)삼목 作 이튿날 상기된 얼굴로 奇 선생이 찾아왔다. 이어 시인 최(광린) 선생도 관심을 갖고 찾아와 비좁은 원서동 자료실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奇 선생은 K교수 주장의 부당성을 논문화하겠다며 몇 년 전의 스터디노트를 펼치며 본론으로 직진했다. K교수가 ‘조선의 민요’에서 본조를 "처음 사용된 명칭”이란 것을 "처음 본조아리랑을 확정하였다”로 오독誤讀한 수준이고, 갑작스럽게 "서울시를 엄두에 두고 서울아리랑을 들고 나선 것은 불순하다"는 주장이다. 奇 선생의 다소 감정적인 대응 논리에 최 선생이 그것보다는 더 본질적인 문제로 장사훈 교수의 본조아리랑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 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다. 장사훈 교수! 삼목에게 30여 년 전의 기억을 소환하게 했다. 30대 중반, 사방팔방을 다니며 애국가와 아리랑 자료를 추스르던 시기, ‘예술인의 마을’에 살던 장사훈 교수댁을 오갔다. 1982년 서울대에서 정년을 마치고 청주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시기였다. 삼목의 관심사인 ‘대한제국애국가’ 작곡가 에케르트(譽啓爐/汝巨多/어: Franz Eckert, 1852~1916)에 대한 자료와 당연히 아리랑에 대한 자료를 구득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1951년 국악개론서 ‘국악개요’ 내용에 대한 민요자료와 관련 에피소드를 얻는 목적으로 한 계절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그 덕으로 1991년 작곡했을 때 KBS라디오 ‘장인백선’ 프로그램을 집필할 때 추모특집을 제작하기도 했다. 삼목의 과거 행적을 奇 선생이 현실로 불러냈다. "장사훈 교수로부터 들었던 얘기를 다시 해 주세요. 여기 메모에는 장례식도 참가했고, 추모 프로그램도 제작했었다면서요. 그때 아리랑에 대해서도 얘기했다면서요?” "그야 당연하지, 꼭 찝어서 질문한 건 아니지만, 중요한 얘기를 많이 들었지. 당시 성경린 선생님이나 자신은 아리랑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거야. 해방직후 개론서가 필요해서 국악 전반을 알리는데 주력을 했다는 거지.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리랑 같은 민요는 음반업 종사자나, 공연 연출가, 연주자, 경기민요 창자 정도나 관심을 가졌던 상황이란 것야, 그런데 핵심적인 얘기를 하셨어, 뭐냐면, ‘본조’라는 말은 자신들이 한 말이 아니라 공연계 연출가들이 한 말로 연극, 무용, 만담 같은데서 중심적으로 쓰는 영화‘아리랑’ 주제가를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지. 당시는 아리랑하면 바로 주제가‘아리랑’을 말하는 정도였다는 것이지” 이에 두 사람은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 기 선생이 이를 방증하는 자료라며 석사논문에서 인용했다는 두 가지 자료를 내놓았다. "아리랑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이 영화 <아리랑>과 이 영화 주제가 <아리랑>과 함께 조선 영화계에서 보지 못한 센세이슌을 일으키었으니 지금도 그 ‘아리랑’ 노래 소리 들리지 않는 곳이 없고, 춤에도, 연극에도, 지금의 영화에도 이용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조선일보, 1940, 2, 15. ‘걸작 아리랑 만들고 마음대로 살다간 나운규’) "아리랑의 민요가 혹은 무용화가 되고 혹은 영화화가 되었으나 극화가 된 것은 토월회의 금번 공연이 처음이라 하겠다. 첫째 제재를 거기에서 취한 것부터 매우 기민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름만이 얼마나 많은 흥미를 끄는지 알 수 없다. 조선 사람으로 누구든지 친함을 가진 민요이다. ‘아리랑고개’ 조선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장 조선 정조를 대표한 것이다. 그것이 공리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별문제라고 하더라도 ‘아리랑고개’는 마음 깊이 우리들에게 하소하는 바가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쯤은 어찌함인지 조선 땅의 모든 것과 빈틈을 발견할 수 없이 꼭 들어 맞는 감을 준다. 가장 조선 정조를 대표한 것이다.”(동아일보, 1929, 11, 26) 매우 의미있는 자료이다. 영화주제가‘아리랑’이 왜 ‘본조’라는 위상을 얻게 되었는가라는 배경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 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했다. "그러면 서울대 교수로 가서 국악연구로 유명세를 얻는 장사훈 교수의 아리랑론이라고 볼만한 어떤 체계나 흐름 같은 것은 확인되지 않나요? 그게 궁금하고, 그 중에 본조아리랑을 어떻게 기술했는지가 궁금하네요.” 삼목은 책장에서 미리 빼 놓은 장 교수의 국악개론서 ‘국악개요’·‘한국음악사’·‘국악개론’·‘국악총론’을 내보이며, 본조아리랑에 대한 기록을 제시했다. "사실은 아리랑에 관한 글은 장교수님이 가장 많이 썼어요. 내가 확인한 것만 봐도 토막 글을 포함해서 5편이나 있으니까요. 이 시기에는 양주동 박사나 임동권 선생보다 더 많아요. 이 중에 앞에서 거론한 공편 ‘朝鮮의 民謠’ 이후에 초초의 단독 저서인 ‘國樂槪要’(1951년 정연사)를 보면 매우 의미가 있어요. 뭐냐면 이 책의 아리랑 대목은 3쪽 정도로 확대하여 거론하였는데 언급한 대상 아리랑은 문제의 ‘朝鮮의 民謠’와 같아요. 本調아리랑·新아리랑·아리랑세상·別調아리랑·긴아리랑·강원도아리랑·정선아리랑·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 이렇게 9종이예요. 그런데 본조에 대한 해설이 이래요. 한번 비교해 봐요” "본조아리랑과 신아리랑은 요새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과 같은 곡조이나 이 밖에도 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아리랑세상·별조아리랑·긴아리랑·강원도아리랑·정선아리랑 등 그 종류가 많다.” 분명히 1951년 시점에서 본조아리랑과 신아리랑은 같은 곡조로 널리 부르는 아리랑이라고 했다. 곧 1949년의 ‘朝鮮의 民謠’나 이 책의 본조아리랑은 곧 오늘의 본조아리랑과 같은 것으로 결코 K교수가 주장하듯이 헐버트 채보 아리랑(舊아리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장 교수가 덕성여대 교수시절 본격적인 아리랑론으로 ‘민요해설 아리랑의 유래’를 1958년 ‘교통’ 44호에 발표했는데, 여기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총 7쪽 분량의 논고 중 해당 부분은 이렇다. "이 아리랑에는 이른 바 본조아리랑이라 하여 우리가 항용 듣고 부르는 아리랑이 있고, 그 밖에 밀양아리랑~ ” 1958년 시점에서 "우리가 항용 듣고 부르는 아리랑”이 본조아리랑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이 시기 헐버트 채보 아리랑(舊아리랑) 곡조가 항용 불리는 아리랑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오늘의 본조아리랑임을 말한 것이 분명하다. 장 교수의 일관된 본조아리랑관觀을 재확인 시켜주는 것으로 의미가 크다. 이상을 들어 정리하면 이렇다. 즉, 성경린과 장사훈이 ‘본조’를 처음으로 언급한 문제의 ‘朝鮮의 民謠’ 중 ‘본조아리랑’은 영화주제가‘아리랑’으로 오늘의 ‘본조아리랑’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후 장사훈 교수의 글들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주제가‘아리랑’에의 ‘서울아리랑’ 명명 부여는 이미 헐버트 채보 아리랑(구아리랑)을 ‘京卵卵打令’(서울아리랑타령)으로 음반화 하였기 때문에, 이 역시 불가한 것이다. 그러므로 K교수나 이에 동조한 Y교수의 주장은 오독과 오판임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세 사람의 두 시간 정도의 논의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문제는 K교수와 Y교수의 주장이 이상과 같은 오독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서울아리랑’의 특화를 위한 목적에서 한 주장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고, 두 전직 회장의 발언이 학술회의에 함께한 회원들이 어떻게 수용될지도 문제이다. 기 선생의 논문이 이를 잠재울 수 있을지가 더욱 궁금하다. 2023년 2월 말쯤 아리랑학회 정기 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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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本調가 뭐야?”(상)삼목 作 "朝鮮에도 民謠가 있다. 四千年의 오랜 歲月을 두고 이 겨레의 착한 性情이 純一하게 發露한 게 곧 우리의 民謠이다.” "朝鮮民謠 중에서 가장 널리 普及된 것으로 적어도 朝鮮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사람이면 이 노래(아리랑)를 모르지 않는다.” 겨레의 착한 성정으로 부르는 것이 민요이고, 그 민요 중에 모두가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하였다. 이는 1949년 발행된 ‘朝鮮의 民謠’ 공편자共編者인 성경린成慶麟과 장사훈張師勳의 인식이다. 전자는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를 수료한 거문고 연주자로 이미 ‘조선의 아악’(1947), ‘조선음악독본’(1947)을 지은이요, 후자 역시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를 수료한 거문고 연주자이다. 그리고 함께 현 KBS의 전신인 경성방송국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이력으로서 당시로서는 민요나 아리랑뿐만 아니라 국악 전반에 대한 해석권解釋權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최근 한 학회에서 ‘‘朝鮮의 民謠’를 들어 기존의 아리랑 명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 논란을 촉발시킨 바가 있다. 이로서 삼목의 ‘한국의 아리랑문화’ 외에서는 거의 인용되지 않았던 이 책의 아리랑 언급이 오랜만에 소환되기에 이르렀다.(문제를 제기한 이도 삼목의 책을 보고 반론으로 제기한듯하다.) 2022년 10월 초, 기奇(찬숙) 선생의 통화음이 다급했다. "혹시 학술회의 소식 들으셨어요? 방금 끝났는데요. K교수가 논평하면서 '본조아리랑'은 주제가 아리랑이 아니라, 1894년 헐버트 채보 아리랑이고, 주제가 아리랑은 '서울아리랑'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 근거가 제가 듣기로는 성경린과 장사훈 공편 ‘조선의 민요’를 거론한 것 같아요. 그런데요~?” 기 선생이 다급한 어투와는 다르게 조금은 미심쩍은 투로 말끝은 흐렸다. "그런데라니요? 그게 뭐요? 또 뭐가 있었나요?” 기선생이 이 본조아리랑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바로 한국민속박물관이 펴낸 ‘한국민속문학사전’ 표제어 ‘본조아리랑’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목과 함께 ‘아리랑 스터디그룹’에서 많은 논의를 한 주제로, 다양한 전거典據를 들어 스터디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그 사전 편찬의 책임자 중 한 분이 뒤늦게 자신이 참가한 사전의 내용과 다른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해당 항목의 본문 일부는 이렇다. "본조(本調)아리랑은 주제가‘아리랑’으로 출발하여 ‘신민요 아리랑’, ‘유행가 아리랑’으로 불리다가 ‘신아리랑’ 또는 수식 없이 ‘아리랑’으로 부르게 된 것을 말한다. 본조아리랑은 성경린·장사훈이 최초의 민요 개론서 ‘조선의 민요’에서 처음 사용된 명칭이다. ‘본조’는 1940년대 말 국악계에서 사용한 용어로, 음악적 원류(源流)나 본류(本流)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랑의 확산 장르에서 본(本)·원(元)·중심(中心)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용어이다. ‘각 장르 아리랑 표제 작품에서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아리랑’이라는 의미에서 다른 아리랑과의 변별을 위해 1960년대에 일반화된 것이다.”(기미양, 본조아리랑,한국민속문학사전) 분명히 본조아리랑은 1926년 개봉된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의 주제가를 지칭함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그 ‘본조’의 의미는 음악적 본류의 의미가 아니라 ‘각 장르 아리랑 표제 작품에서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아리랑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는 지금까지의 학술상에서나 공연분야에서 일반화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틀렸다고 한 것이다. 삼목은 기 선생이 말끝을 흐린 것이 마음이 쓰여서 다시 되물었다. "아니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어요? K교수가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학술대회에서 서울아리랑으로 하자는 주장은 있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주장한 바가 있는 거 아녜요? "예 그렇긴 한데요. 이번에는 좀 감정이 실렸어요. 100%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M학회가 있는 한 이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논리나 팩트에 의한 학술적 성과가 아니라 마치 M학회가 유권해석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또 뭐가 있어요? 하필 내가 전화를 받느라 컴퓨터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있어서 듣지 못했는데. 참. 뭐예요?” "예, 그에 대해서 논평자로 참가한 Y교수도 동의를 했어요. 두 전직 학회장이 이런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그렇다. 우선 감정적인 부분은 두고, 팩트를 다시 체크하기로 했다. 삼목은 다시 서고에 들어가 해방 후에 간행된 국악개론서들에서 아리랑 언급 부분들을 체크했다. 특히 ‘본조아리랑’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성경린·장사훈의 민요 사설집 ‘朝鮮의 民謠’를 찾았다. 이 책의 일러두기에는 참고한 서명이 나오는데, 속가집·조선민요선·가곡보감·가요집성·가요집 등에서 사설을 간추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민요집이 사설 중심의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음악적 창을 주안主眼으로 본 가사, 후렴, 구호 등 확연하게 구별하여” 수록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기 선생의 집필에서 분명히 한 것이 이 가사집에서 ‘본조아리랑’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 것이지, 이 책의 ‘본조아리랑’ 기록(해석과 사설)이 반드시 본조아리랑임을 밝힌 최초의 기록이란 뜻은 아니다. 주관처에서 원고 내용을 줄여달라는 요청에 의해 그 부분은 삭제 된 것이라고 한다. 이제 실제 기록을 살펴보기로 한자. 이 책의 첫 아리랑은 경기도편의 本調아리랑·新아리랑·아리랑세상·別調아리랑·긴아리랑, 5편이다. 이어 강원도편의 강원도아리랑·정선아리랑, 평안도편 긴아리·경상도편의 밀양아리랑, 전라도편의 진도아리랑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본조아리랑과 신아리랑, 그리고 긴아리랑이다. 우선 문제의 세 편의 사설과 해설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本調아리랑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세 ①이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씨의 팔촌이 되려므나 ②남산 밑에다 장충단을 짓고/ 군악대 장단에 받들어 총만 한다 ③아리랑고개다 정거장 짓고/ 전기차 오기만 기다린다 ④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이냐 ⑤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차장되네 ⑥말 깨나 허는 놈 재판소 가고/ 일 깨나 허는 놈 공동산 가네 ⑦아 깨나 낳을 년 갈보질 가고/ 목도 깨나 메는 놈 부역을 간다 ⑧신장로 가장자리 아카낢은/ 자동차 바람에 춤을 춘다 ⑨먼동이 트네 먼동이 트네/ 미친님 꿈에서 깨여나네 ⑩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⑪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新아리랑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①산천에 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의 청춘은 늙어만 간다 ②성황당 까마귀 깎깍짖고/ 정든님 병환은 날로깊어 ③무산자 누구냐 탄식마라/ 부귀와 빈천은 돌고돈다 ④감발을 하고서 주먹을 쥐고/ 용감하게도 넘어간다 ⑤밭 잃고 집잃은 동무들아/ 어데로 가야만 좋을가보냐 ⑥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 ⑦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소/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⑧쓰라린 가심을 움켜잡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⑨감발을 하고서 백두산 넘어/ 북간도 벌판을 헤메인다 ⑩원수로다 원수 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⑪일간 두옥의 우리 부모/생각할수록 눈물이 난다 ⑫아리랑고개는 얼마나 멀게/ 한번 넘어가면 영 못오나 ⑬우리의 성립 군아/ 뜻과 같이 성공을 하세 긴아리랑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 구료/ 아리랑 고개로 나를넘겨주소 ①만경창파 거기 둥둥 뜬배/ 게 잠깐 닻주어라 말 물어보자 ②기차는 가자고 왠 고동을 트는데/ 님은야 팔을 잡고 낙루만 한다 ③우연히 저 달이 구름 밖에 나더니/ 공연한 심회를 더욱 산란케한다 ④달도 밝고 별도 총총한데/ 임은 날 버리고 왜 아니 찾노 ⑤물속에 뜬 달과 낭군의 맘은/ 잡힐 듯 하고도 내 못 잡아 ⑥누구를 보고자 이 단장했나/ 임가신 나루에 눈물비 운다 이상 세 편에서 해설이 있는 것은 두 편이다. 그런데 이 중 유의미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본조아리랑-"서울의 것을 본조아리랑 그 밖에 밀양아리랑~ ” 긴아리랑-"아리랑에서 가장 일쯕이 생긴 거라고 하지만~ ” 이상과 같이 매우 소략하다. 여기에서 ‘본조아리랑’의 정체성을 발견하기란 부족하다. 그 이유를 짚어 보자. 첫째는 본조아리랑의 해설에서 단지 서울에서 불리는 아리랑이란 정도일뿐이라고 했고, 긴아리랑 해설에서는 헐버트 채보 아리랑 즉 구아리랑 또는 京卵卵打令(서울아리랑타령)의 존재를 무시하고 가장 오랜 긴아리랑이 가장 오랜 것이라고 했다. 정리하면 전자는 지역적 분류 정도이고, 후자는 분명한 오류인 것이다. 둘째는 제시된 本調아리랑과 新아리랑의 사설에서도 '구아리랑'인지 '본조아리랑'인지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구분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奇선생이 본조아리랑 사설로 제시한 것을 대비하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본⑩-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본⑪-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신①-산천에 초목은 젊어나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본④-문전에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동냥의 쪽박이 왠말인가 이상에서 대비한 바와 같이 ‘긴아리랑’을 빼고는 사설만으로는 독자성을 갖지 못함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첫 자료 ‘본조아리랑’은 명칭만 본조아리랑이지 실제는 구아리랑과 또 다른 아리랑 사설들의 모음일 뿐이다. 물론 후렴과 일부 사설들이 ‘구아리랑’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이 명칭들은 특별한 인식 없이 편의적으로 부여한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신’이나 ‘긴’에 대해 변별로서의 ‘본조’를 부여한 것일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K교수가 이 책을 보고 ‘구아리랑’(헐버트 채보 아리랑)을 ‘본조’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주제가‘아리랑’을 본조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 곡명을 ‘서울아리랑’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폈듯이 이 책이 명명한 본조아리랑은 그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임으로 타당성이 없다. 또한 음반 역사에서는 이미 ‘구아리랑’을 ‘서울아리랑’(‘京卵卵打令’/1913년 N6170/1928년 V49047)으로 명명하였음으로 주제가‘아리랑’을 본조아리랑이 아닌 서울아리랑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것도 부당한 주장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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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4년 동안 공주에서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는 공주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는 제24회 공주아리랑제가 지난달 27일 공주하숙마을에서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주제는 '공주아리랑 꽃피우다'이다 제1부는 공주의 전래민요와 토속아리랑, 2부는 창작아리랑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 은개골아리랑, 3부는 의병아리랑인 우금티아리랑, 휘날레로 진행되었다. 오프닝 공연으로 '다듬이 연주+공주아리랑'(김계화)이 막을 열었다. 이어서 공주에서 전래되는 토속민요 '산아지타령', 토속아리랑인 공주아리랑(남은혜 외 15인)이 공주의 정취와 공주민의 심상을 전해주었다. 도라지타령과 공주군밤타령 (서민호,박고운,박세아,장다은,김나림,지유리,안수지)으로 신명을 높였다. 2부에서는 아리랑,치르치크아리랑(남은혜), 태평가,밀양아리랑(전수경 외 15인), 김죽파류'가야금산조' (안은정), 3부에서는 공주아리랑,은개골아리랑 (서민호 외 9인),우금티아리랑(공주의병아리랑),해주아리랑(전수경,박순복,허경자)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남은혜,김계화), 휘날레로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어 아리랑 대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반주에는 피리(조성환), 장구(김영덕),가야금(안은정)이 함께 했다. 공주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공주민요와 공주아리랑을 면면히 계승 발전시켜 온 공주아리랑보존회는 매년 3월 1일 삼일절에 공주아리랑제가 정례화 되어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줄확산으로 8월에서야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남은혜 회장은 "올해 벌써 24돐이나 되는 아리랑제와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10월에 개최되는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를 통해 전국 아리랑 소리꾼과 국악인들에게는 공주아리랑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공주아리랑이 공주 시민들에게 애창하는 고향의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남은혜 명창은 2011년부터 우즈벡에서 개최된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기념 세계아리랑실크로드축제(단장:권오성 교수)에서부터 사할린아리랑제에서 '공주아리랑'과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치르치크아리랑'을 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오고 있다. 2011년부터 매년 중앙아시아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을 알려오다가 키르키르탄 동포사회에서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축제에서 초청공연을 매년 정기적으로 정례화 해오고 있다. 남명창은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 중 충청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2003년 공주아리랑보존회를 창립하였고, 충남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특히 남명창의 레파토리인 '북간도아리랑'과 '치르치크아리랑'은 중국과 러시아 동포들이 애창하고 있는 아리랑이다. 그동안 회원들과 갈고 닦은 토속아리랑과 창작아리랑을 배합하여 소리극으로 발표한 2019년 '유관순아리랑'에서 불린 의병아리랑, 우금치아리랑, 유관순의사아리랑이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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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유럽투어…5개국 초청 공연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다음 달 9~23일 폴란드·헝가리·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체코 한국문화원 및 대사관의 공식 초청으로 한국 음악을 알리는 유럽투어를 떠난다.30일 경기아트센터에 따르면 이번 유럽투어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로 단체명을 변경한 뒤 초청받은 첫 해외공연이다.한국의 전통음악부터 현대적인 음악 레퍼토리까지 가장 한국적인 오케스트라인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유럽 5개국에서 선보인다. 이를 통해 유럽 음악계에 한국 동시대 음악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계문화예술의 산실인 유럽 음악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예정이다.이번 유럽투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사를 둔 문화예술기획사인 WCN(World Culture Networks)이 주관사로 참여한다. ◆ 유럽 5개국에서 6차례 공연폴란드 바르샤바 크로스컬쳐 축제(Festiwal Skrzyżowanie Kultur)는 폴란드 문화유산부가 후원하고 바르샤바시청이 주관하는 중부유럽 최대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다. 유럽 최고의 페스티벌에만 부여하는 에페(EFFE·Europe for Festivals, Festivals for Europe) 라벨을 가진 세계적인 페스티벌이기도 하다.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페스티벌 마지막 날인 9월11일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 내 위치한 '드라마티츠니극장'에서 폴란드 현지 음악가, 음악계 주요 인사, 음악 애호가를 대상으로 공연을 선보인다.폴란드 바르샤바 크로스컬쳐축제-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초청공연은 축제와 주폴란드한국문화원의 공동주최로 개최된다.9월13일에는 헝가리의 '리스트 음악원'에서 공연한다. 낭만주의 음악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가 직접 세워 근간이 되는 곳으로, 현대음악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벨라 바르톡(Bela Bartok)과 헝가리 국민음악의 건설자로 불리는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 등이 교수로 이곳에 몸담았다.'리스트 음악원' 건립 이후 처음 선보이는 한국 음악 무대다. 주헝가리한국문화원 관계자는 "워낙 들어가기 까다롭다는 이 고유한 음악의 성지에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무대를 올릴 수 있어서 의미가 깊다"고 전했다.이번 공연에는 헝가리 외교부, 주요 대학 총장, 그리고 한국대사관의 대사 및 주헝가리 각국 대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과 한국-슬로베니아 수교 30주년을 맞아 9월15일·17일·19일 오스트리아 그라츠 무직페어라인,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칸카르예프 돔, 오스트리아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각각 공연한다.각 나라 정계인사, 그리고 문화계인사, 음악관련 연주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수교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주오스트리아대한민국대사관·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WCN(World Culture Networks)의 공동주관으로 열린다.9월21일에는 낭만의 선율이 흐르는 블타바 강변에 위치한 체코 조핀 궁전에서 국경일 리셉션 문화공연으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나선다.'체코인이라면 누구나 음악가(Co Čech, to muzikant)'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깊은 조예를 가진 체코인에게 한국음악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과 체코의 깊은 우정을 위해 역할을 하고 있는 각계각층 분야의 체코 주요 인사들과 주체코 각국 대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역(易)의 음향 - 변화의 소리(Dynamic Sound of Changes)유럽투어는 한국의 다양한 소리와 음향에 마음을 열고 깊게 침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부 '한국의 미' ▲2부 '다이나믹 코리아'로 구성했다.1부는 한국의 선율을 통해 한국적인 서정미와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한국 전통음악의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섬세한 정서를 노래와 현악기의 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다.한국 행진곡풍의 팡파레 음악인 '대취타 역(易)'으로 서막을 열고, 한국 지형에 따라 형성된 선율과 정서의 자연스러운 리듬·흥이 담긴 민요 '정선아라리', '한오백년', '신고산타령', '강원도아리랑'을 선보인다.이어 전통사회에서 지식인이 수양을 위해 연주했던 기악독주의 꽃인 '거문고산조'를 들려준다.1부의 마지막은 한국의 클래식 성악곡 가운데 가장 느리고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곡인 '이수대엽'에 재즈 화성을 더한 음악과 편수대엽을 주제로 한 '중용'을 연주한다. 새로운 분위기로 동시대의 음악성을 느끼게 할 예정이다.2부는 원일 예술감독의 작품으로 2022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초연된 '디오니소스 로봇'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예술가 백남준에 대한 작곡가의 오마주가 담긴 작품이다.인간 내면에 내재된 광기란 과연 무엇이며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질문한다.타악기들과 한국의 전통악기, 그리고 전자음향과 인성(人聲)의 소리 조합을 통해, 다양하고 역동적이며 현대적인 음향으로, '다이나믹 코리아'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장르와 융합하는 창의적인 시도로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선도하는 단체"라며 "이번 5개국 6회 유럽투어를 통해 보다 확장된 음악 스펙트럼을 보여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에 기대가 모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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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돐 맞는 대구아리랑축제, 소리극 '염농산 아리랑' 메아리친다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가 주최하고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정은하)가 여는 제20회 대구아리랑 축제가 20일 오후 7시 대구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열린다. 같은 날 오전 10시부터는 제16회 대구 최계란 명창 전국아리랑 경창대회도 함께 펼쳐진다. 올해 20년 돐을 맞는 대구아리랑축제는 조선말 국채보상운동 당시 여성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기생 염농산의 삶을 주제로 한 소리극 '염농산 아리랑'(연출 최석민, 대본 김재만)을 선보인다. '앵무(鸚鵡)'로 불렸던 염농산(廉嚨山(본명:염경은 1890-1947년)은 경상감영 교방의 관기 출신으로 불과 열여덟 살 때 국채보상운동 당시 대구 거상 서상돈과 같은 거금 지화(紙貨)100환을 기부하여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1907년) 해마다 물난리를 겪던 성주 사람들을 위해 제방을 쌓았고, 주민들은 공덕비를 세워 존경을 표했다. 1927년 68세가 되던 해에는 합자회자 '달성권번'을 설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말년엔 폐교 위기에 몰린 대구 교남학교를 위해 재산의 절반을 희사하여 살려냈다. 위기를 극복하고 명문 대륜고등학교로 성장했다. "금번 국채보상은 힘에 따라 내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거늘,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1푼이라도 더 낼 수 없으니 누구든지 기천원을 출연하면 나도 그만큼 죽기를 무릅쓰고 출연하겠다" 대구 기생 앵무가 100환(당시 집 한채 값)을 쾌척했다는 소식은 운동을 삽시간에 부녀자와 하층민중에게까지 확산하였다. 당시 대구에서는 걸인들까지 의연금을 내기에 이를 정도였다. 대구에서 일어난 운동은 경남, 황해, 평안, 함경지역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참여는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는 "기생은 돈많은 사람만을 섬겨서는 안되며,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위해서 한 몸을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정은하 회장은 "송도3절에 황진이가 있다면 대구에는 앵두, 석재 서병오,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3절'이 있다. '여성이 국민이 된 권리와 의무를 내세우면서 독립된 참여와 활동'은 국채보상운동에서 처음이었다. 당시 노비, 백정과 함께 '팔천(八賤)'으로 불린 기생은 사실상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천민이었지만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일어났다. 이러한 운동에 앞장 선 리더가 바로 대구 달성권번 기생 앵무이다." 이어서 "그의 의로운 구국운동을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에 담아 기리고자, 소리극 '염농산 아리랑'을 기획했다. 특히 올해 20돐이 되는 대구아리랑제를 기념하기 위해 대구를 빛낸 인물 독립운동가 염농산의 구국운동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영남아리랑보존회(정은하), 대구아리랑보존회(김상진), (사)정선아리랑보존회(김길자), 진도아리랑연구보존회(강송대),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전은석), (사)울릉도아리랑보존회(황효숙), 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최문희)가 출연한다. 영남, 강원, 남도, 경기, 서도 5권역의 민요권에서 불려지는 아리랑을 전승하는 6개 지역, 총 7개 아리랑전승단체가 계승하는 다양한 아리랑을 대구아리랑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곽동현 예술감독은 "영남의 메나리토리로 부르는 '대구아리랑', '성주의병아리랑', '영천아리랑', '독도아리랑', '경상도아리랑', '독립군아리랑'과 경토리가 섞인 밀양아리랑과 밀양아리랑 선율로 부른 광복군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 태백산맥을 넘어가서 강원도 메나리토리의 정수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남도의 육자배기토리로 부르는 '진도아리랑'을 만나볼 수 있다. 아리랑 중 비장미가 가장 높은 '경기 긴아리랑', 서도지역에서 불리는 '해주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특별출현으로 이춘희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김길자 강원무형문화재 '정선아리랑'예능보유자, 강송대 '남도잡가' 예능보유자가 관중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예술감독은 곽동현, 연주는 '곽동현과 슈퍼밴드'가 맡는다. 오전에 진행되는 제16회 '대구최계란명창전국아리랑경창대회'는 명창부(대상 300만원), 일반부(금상 100만원), 단체부(금상 100만원), 학생부(금상 30만원)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코로나로 인해 예선은 전날 동영상 심사로 이루어졌고, 본선은 대면심사로 이루어진다. 한편 아리랑명창 등용문인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는 공정한 심사와 투명한 점수 공개로 정평이 나 있는 전국단위 경연대회이다.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는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의 공식 문화행사로 대구아리랑축제를 처음 선보인 이후, 매년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8월 15일 개최되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코로나 줄확진으로 올해는 20일 개최된다. 053-424-6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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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 명반유람 99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이 음반은 2013년 한국고음반연구회가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이 2012년에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음반이다. 한국고음반연구회는 한국음악 음향자료의 연구 및 보존을 통해 관련분야의 예술과 학술 및 문화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1989년에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해마다 <한국음반학>이라는 학술지를 발간하면서 그 부록으로 CD음반을 출반하고 있다. <한국음반학> 제23호(한국고음반연구회 음향자료선집(20)) 부록으로 회원들이 소지한 아리랑 유성기음반 가운데 주요한 아리랑 음원 18곡을 수록하였으며 동명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음반은 4부분으로 나누어 ‘이 땅은 아리랑 강산:아리랑 삼천리’라는 이름으로 지역아리랑인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동래아리랑’, ‘정선아리랑’을, ‘아리랑, 음반에 소리를 담다’라는 이름으로 ‘경성란란타령’, ‘가야금병창 아리랑’, ‘아리아리랑’을 ‘나운규 아리랑을 영화를 찍다’라는 이름으로 ‘영화주제가 아리랑’을, 마지막으로 ‘새로운 아리랑이 싹을 띄우다’라는 이름으로 ‘신아리랑’ 4곡을 담았다. 여기에는 주목해야 할 음원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은 필자가 유튜브채널(정창관의 아리랑)에 모두 공개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수록된 ‘진도아리랑’, ‘동래아리랑’, ‘대구아리랑’은 모두 첫 모습이다. ‘밀양아리랑’ 3곡 중 김관보의 ‘밀양아리랑’은 북한에서 전승되고 있는 ‘밀양아리랑’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리랑이다. ‘경성란란타령’은 지금의 ‘긴아리랑’으로 1913년 상업용 유성기음반으로 출반된 현재 확인되는 제일 오래된 아리랑이다. ‘란(卵)’은 ‘알’을 말하며 ‘란란’은 ‘알알’이 되면 바로 아리랑을 뜻하는 것이다. ‘영화주제가 아리랑(아르렁)’도 처음 소개되는 음원으로 본조아리랑의 원형이다. 또 새로운 가사, 새로운 형식으로 녹음된 4곡의 ‘신아리랑’이 수록되어 있다. 해설서에는 자세한 설명과 곡마다 원반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모두 유성기음반 복각이라 음질은 양호하지 못하지만, 아리랑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명반이다. 부록으로 출반된 음반이지만 지금도 중고시장에 드물게 올라오고 있다. * 본 글은 이전에 소개한 글을 수정하여 완성함.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HKYCD-02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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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예인들의 창작법은?국립국악원이 연주자에게 내재된 창작 역량을 드러내는 민속악단 기획공연을 오는 6월 29일(수)과 30일(목)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선보인다. 이번 민속악단(예술감독 지기학)의 기획공연 ‘관(管) 현(絃)과 놀다 – 자작자주(自作自註)’는 명인들이 스승으로부터 배운 음악에 자신만의 음악적 해석을 더하여 가락을 짓는 전통적인 창작법을 되짚어 보고, 그동안 합주와 반주 등으로 가려진 민속악단 단원들의 숨은 재능을 펼쳐보고자 마련됐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관악기와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연주자들의 창작 역량을 선보이는데, 민속악단 연주 단원이 직접 해석하고 창작한 산조와 시나위, 판소리와 굿음악 등 총 6곡의 새로운 음악을 소개한다. 민속음악의 즉흥성 돋보인 ‘풍류시나위’와 ‘동해안 별신굿’ 자유로운 형식과 극적 긴장감 더한 음악으로 꾸며낸 ‘심청가’ 깊은 성음으로 명인들의 정신 이은 ‘거문고 산조’와 ‘아쟁중주’ 전체 공연을 여닫는 곡으로는 민속음악의 즉흥성이 짙은 시나위와 굿음악이 맡았다. 문재덕·변상엽(대금), 원완철(소금), 김충환(퉁소), 박다솜(철가야금), 강형수(장구)가 함께 구성한 금(笒)·소(簫)·금(琴)을 위한 ‘풍류시나위’가 먼저 첫 무대에 오른다. 관악 중심의 대풍류와 현악 중심의 줄풍류, 그리고 경기시나위를 한 데 엮어 각 악기의 특징을 살리고 즉흥성을 더한 자유로운 선율을 입혀 시나위 형식에 멋을 더했다. 마지막 무대는 해금연주자 김정림이 구성한 메나리가락에 의한 ‘동해안 별신굿’이 장식한다. 다양한 동해안 별신굿의 장단에 동부민요인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 상주모심기 등에 나타나는 메나리가락을 해금 3중주로 표현한다. 드렁갱이·푸너리·자진모리 등 변화무쌍한 장단에 즉흥 연주가 더해진 민속악 특유의 흥이 느껴지는 무대다. 김정림·김지희·조여경(해금), 신원섭(장구), 윤재영(징)의 연주로 선보인다. 판소리 심청가를 중심으로 한 두 곡도 선보인다. 해금연주자 김선구가 구성한 ‘심, 놀다’에서는 ‘심봉사 물에 빠지는 대목’을 김선구의 저음 해금과 이선화의 거문고, 윤재영의 북, 조정희의 판소리로 꾸민다. 목소리의 음성과 비슷한 저음 해금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노는 소리의 멋을 각 악기의 다양한 음역대로 표현해 창극 반주 형태로 재구성했다. 아쟁연주자 윤서경이 구성한 ‘인당수 시나위’는 심청이 인당수 물에 빠지는 대목에 아쟁과 거문고가 수성반주(隨聲, 소리를 따라 자유롭게 도우며 연주하는 형식)로 장단의 다채로움을 악기로 표현해 더 극적이고 긴박한 대목으로 표현한다. 윤서경(아쟁), 이재하(거문고), 이주은(판소리), 정준호(북)가 함께한다. 민속 기악 독주 형식인 산조의 멋을 살린 새로운 두 곡도 무대에 오른다. 거문고 연주자 이재하는 30대에 작고한 故임동식 명인의 거문고 산조에 자신의 해석을 더해 거문고 독주 ‘산(散)·조(調)’를 선보인다. 자연스러운 변화와 주법이 특징인 원곡에 새로운 가락과 장단, 그리고 금속악기의 음색을 더해 신명나게 구성했다. 타악 연주자 신원섭이 함께한다. 아쟁연주자 배런과 김승철이 함께 구성한 아쟁 2중주 ‘금당 별산조(金堂 別散調)’도 선보인다. 섬세한 감정과 세련된 기교가 특징인 아쟁 명인 금당 박종선의 산조를 바탕으로 판소리 장단과 다양한 선율을 도입해 아쟁산조만의 깊이 있는 음색을 들려준다. 장구 연주는 강형수가 맡는다. 연주자이자 창작자인 이 시대 예인들의 멋, 이 시대 관객에게 전해지길 국립국악원 지기학 민속악단 예술감독은 "연주자이자 창작자였던 옛 예인들의 창작법을 돌아보면서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히며 "민속악단 단원들이 스스로 음악을 짓고, 스스로 연주로 해석해 선보이는 이번 공연을 통해 이 시대의 예인들이 전하는 전통 음악의 깊은 멋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기획공연 ‘관(管) 현(絃)과 놀다 – 자작자주(自作自註)’는 오는 6월 29일(화)과 30일(수)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개최된다. 전석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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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회 영재국악회...강원도아리랑크라운-해태제과가 주최하는 '영재국악회'는 국악영재들에게 대형무대에서 공연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 큰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기 위해 열리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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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23일 올해 첫 무대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이 올해 첫 정기연주회를 갖는다.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추진하는 시리즈 연주회 중 하나인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3’가 오는 23일 오후 7시30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펼쳐진다.올해로 세번째를 맞는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 시리즈는 광주와 전남 일대의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된 전통예술을 발굴해 작품으로 개발하고 무대화해 시민과 함께하는 공연이다.이번 공연에는 시립국악관현악단 한상일 지휘자의 지휘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기명창 김영임과 대한민국 최초 퓨전 국악 오디션 ‘조선판스타’ 우승자인 김산옥 등 국악계 스타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어서 티켓팅부터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첫 무대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류’(작곡 조원행)이다. 시립국악관현악단만을 위한 위촉 작품인 ‘류’는 새로운 흐름의 한국음악을 관현악을 통해 풀어낸 곡이다.이어 국악관현악으로 ‘진도 들노래’를 들어본다. ‘진도 들노래’는 전남 지역의 농요 중 하나로, 봄철 논을 갈고 못자리에 모가 자랄 때 농민이 품앗이 하면서 선창과 제창으로 부르던 노동요이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국악가요와 경기민요가 연달아 관객과 만난다. 먼저 국악인 김산옥이 ‘조선판스타’ 무대에서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던 ‘인연+이별가’와 ‘Hit Me+제비노정기’ 등 국악과 인기가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곡들을 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명창 김영임은 국악관현악곡과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을 붙여 김영임만의 소리를 ‘한’으로 풀어낸 오케스트라 ‘한’을 시작으로 세마치 장단의 경쾌한 느낌을 주는 ‘해주 아리랑’과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어업노동요인 ‘뱃노래’ ‘잦은뱃노래’ 등을 잇달아 들려준다.공연의 피날레는 타악협주곡 ‘신모듬 3악장’을 사물광대와 협연으로 장식한다. 경기 이남지방의 무속 음악에서 비롯된 ‘신모듬 3악장’은 신명나다·신바람 등의 ‘신’과 어울린다·모으다 등의 ‘모듬’이 합성된 것으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창작곡이다. 민속악장단의 역동성에 바탕을 둔 이 곡은 태평소와 사물놀이의 신명난 가락에 잘 담겨 있다. 흥과 신명을 사물놀이로 더욱 고조시켜며 마지막 정점에서 끝을 맺으면서 전체적 타악 가락 구성이 충정·전라·경상도 등 삼도의 흥겨운 가락이 특징이다.한편,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의 올해 첫 공연인 ‘민족의 숨결 겨례의 노래3’ 공연은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공연 안전 수칙을 준수하며 운영된다. 티켓은 광주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와 티켓링크에서 예매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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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예술의전당, 장사익&김영임·웨스턴심포니 ‘판’ 공연경주 예술의전당이 장사익&김영임·웨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 ‘판’을 무대에 올린다.28일 경주문화재단에 따르면 이 공연은 5월 25일 한수원과 함께하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로 화랑홀에서 개최된다. 우리 시대 삶과 희망을 노래하는 소리꾼 장사익과 전통 소리를 대중화시킨 국악 명창 김영임이 만나 ‘판’을 주제로 관객의 심금을 울릴 예정이다. 이들은 대표곡 ‘찔레꽃’, ‘봄날은 간다’,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 ‘창부타령’ 등을 부른다.솔리스트의 음악적 성향과 호흡을 잘 이해하기로 유명한 지휘자 방성호가 이끄는 웨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더욱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색소포니스트 김성훈도 특별무대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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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사설 (85)십오야 뜬 달이 왜 이리 밝아 산란한 이 마음 달랠 길 없네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밤에 다디미 소리도 처량쿠나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랄리요 아리아리 얼시구 노다 가세 작품감상 보름달 바라보며 다드미질로 간절한 그리움을 추슬러 보지만 풀벌레 구슬피 울어 마음은 더욱 산란하다. 말 못한 채 그리는 정을 민체 정자로 써서 헤아려 보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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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고, 장고치고, 소리하는 월곡리 얼쑤!(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회장이 춘천 시내 연습실을 청산하고, 북면 월곡리에 전수관를 건립, 개관한지 1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가졌다. 오전 11시부터 12시 까지 전수관에서 개최한 기념공연 ‘국악한마당’이다. 보존회 회원들과 월곡리 안중현 이장과 함께 주민 50여명이 함께하였다. 참가한 주민들은 사실은 이 전수관에서 북 치고, 장고 치고, 소리하는 회원들이기도 하다. 기연옥 회장은 "보존회 회원들을 통한 의병아리랑 전수관은 물론 마을 주민들의 소리마당으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사)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회장은 강원도 잦은아리랑(강원도아리랑)과 함께 춘천의병아리랑 전승자로 많은 제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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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사설 (77)흙물에 연꽃은 곱기만 하다 세상이 흐려도 나 살탓이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랄리요 아리아리 얼시구 노다 가세 작품감상 주제어인 ‘흙물의 연꽃’을 중앙상단에 고체로 강조하여 배치하고 본문을 하단에 둥글게 구성하여 주제어를 감싸 안은 듯한 장법을 취했다. 본문은 민체를 부드럽게 운필하여 구성진 가락을 표현하였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으로 있다. 작가 이종선님께서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을 기념하여 12월까지 아리랑 사설을 주제로 연재한다고 밝혀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사설’,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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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아니리] (29) 김유정 ‘강원도아리랑 작가’음악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지니고 있었던 독일 문호로 194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1877~1962)을 꼽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자기 작품에도 음악인을 등장시키거나 음악과 관련된 구절을 즐겨 넣었다. ‘유리알 유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고전음악을 문화의 정수이자 화신으로 여긴다. 그것이 우리 문화의 가장 명확하고 특징적 몸짓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헤세와 음악의 관계는 깊고도 다층적이다. 자신의 작품에도 음악과 관련된 구절이나 음악인을 즐겨 등장시켰다. 동시에 그의 시에 동시대 작곡가들이 곡을 붙인 노래만 2000여 곡에 이를 만큼 음악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헤세가 끊임없이 음악에 영향을 받고, 음악인들은 다시 그의 문학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가가 없을까? 있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이다. 아리랑을 자신의 여러 작품에 소재화 했다. 확인이 되는 작품으로는<총각과 맹꽁이>(1933)·<만무방>(1934)·<산골나그내>(1933)·<안해>(1935)·<솥> (1935)이다. 아리랑을 얼마나 사랑했나, 얼마나 이해했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많은 작품에 아리랑을 소재로 하였기에 김유정을 ‘강원도아리랑 작가’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김유정의 재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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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 명반유람 55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아리랑은 지속적으로 재창조되며 다양성을 지녔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고 사회적 단결을 재고한다.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한 결과 2012년에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적으로 보존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노래로 인정받은 것이다. 여기서 ‘아리랑’이란 후렴에서 ‘아리랑’, ‘아라리’ 또는 이와 유사한 어휘를 노래하는 특징을 지닌 곡들을 통칭하고 있다. 이 음반은 78회전의 유성기음반 복각으로 서울지역에 전승되는 한 배 느린 ‘긴아리랑’ 3곡, 본조아리랑 이전의 ‘구조아리랑’ 2곡, ‘본조아리랑’ 3곡,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 라랑’, ‘진도아리랑’, 신민요인 ‘꼴망태아리랑’과 영화설명 ‘아리랑’ 등 14곡의 아리랑이 수록되어 있다. 광복 이전인 1930년대와 광복 이후, 당시에는 ‘아리랑’의 과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음반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영화설명 ‘아리랑’은 1934년 일본 콜럼비아사의 리갈음반(C107 & 108) 4면을 복각한 것이다. 나운규가 제작•주연한 영화 ‘아리랑’을 변사(성동호)가 해설하는 방식으로 취입하여, 강석연의 노래에서 지금과는 다른 ‘본조아리랑’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음반의 해설서는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회장(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이 집필하였다. 아리랑의 역사, 각 아리랑에 얽힌 이야기, 복각 유성기음반에 대한 자료 및 가사가 실려 있어 아리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1991년 이 음반을 출반한 신나라레코드는 현재 최대의 국악음반을 출반한 회사로 남아있다. 음반번호 1번으로 출반되어 당시에는 ‘아리랑’이 지금같이 화제가 된 시기가 아니었으니 선견지명이 있는 기획이었다. LP음반과 CD음반으로 선보인 본격적인 아리랑 음반 출반의 시초이다. 또한 음반으로서는 2012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등재의 출발점이 된 음반이기도 하다. 유성기음반 복각이라 음질은 양호하지 않지만 ‘아리랑’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음반이다. 현재 LP음반은 고가로 거래되지만 CD음반은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SYNCD-001&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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