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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사할린에 남겨진 아버지의 노래(1편)
박승의/전 사할린국립사범대학 한국학 교수
2023년 제25회 한민족 체험수기 우수상 작품
2023년 제25회 한민족 체험수기에서 사할린 동포 3분이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어 오는 2일 시상식이 예정되어 있다. 공동 우수상을 받은 수기는 박승의 씨의 '사할린에 남겨진 아버지의 노래', 러시아 사할린 코르사코프시 발레리 오(오석만) 씨의 '사할린 한인 2세, 오래된 희망',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인무학 씨의 '내가 아는 고려극장 맹동욱'이다. 이 수상 소식을 듣고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이 우리 사할린에 살고 있는 동포들도 다 읽어볼 수 있게 국악신문에 개재를 요청하게 되어서, 3분의 수상작을 5부로 나누어서 게재를 한다.
이 글은 사할인 한인 1세 아버지(박득수, 1915년생)와 어머니(1922년생), 할머니(1883년)에게 전해 들은 밀양박씨 집안과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이가 끌려간 가라후토
전라도 무주에서 살던 나의 아버지 박득수는 16살 어린 나이에 누님 박봉순이 살고 있는 가라후토로 가기로 결심한다. 일제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대대로 부치던 땅을 빼앗기자 아버지는 화병을 얻어 졸지에 아버지를 잃게 되고. 형님마저 큰집으로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당시 피폐해진 조선의 농촌은 먹고 살길이 막연하였다. 박득수는 강제모집에 속아 가라후토에 끌려간 누나가 있는 곳에 가면 무언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박득수는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한 방책으로 일본 교장집에 가사도우미로 맡겨 놓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라후토로 향했다.
"어머이! 내 누님한테 갈래!
여기선 할일이 너무 없어서 못 견디겠어.
왜놈들 때문에 우리 조선사람들은 죽을 지경이야!"
"니 아직 어린데 혼자 낯선 데서 어떻게 살라고?"
"어머이! 가라후토에서 2년만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대.
또 거기 누님 있잖아.
어머이, 걱정마! 꼭 2년만 갔다 올께”
늦은 가을이었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덮었고 비가 올가 말가 했다. 마치 자연도 박득수의 기분에 동정하는듯 ...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기차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새벽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 항구는 사늘했다. 때는 1931년 동짓달 그믐이었다. 먼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축축한 바람은 습기로 말미암아 눅눅해진 얇은 외투를 입은 부산항에 도착한 득수에게 뼈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부두에는 몇 백명의 젊은 남자들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부산항을 출항할 때는 늦은 밤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득수는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항구의 불빛을 바라봤다.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시 한편에 실어본다.
<고향>
잘 있거라 나의 조국!
귀여운 삼천리 금수강산!
출렁이는 바다 물결!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버리고
무얼 찾아 이국땅을 향하리까?
나의 어머니(강순예)는 당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다음날 네 아버지는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동경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동경서 친하게 지내던 양반이 있었대요.
그래 그 집에 가서 구경도 하고 하루 쉬어 가주고 자고 그래 인제 갔지요.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후에 급속도로 근대화를 달성한 도쿄의 모습,
즉 카페나 댄스홀, 영화관, 유곽 등 향락적인 거리의 모습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일제강점기 빈곤에 시달리거나 일본사람에게 멸시당하는 조선사람들의 비애를 체험한 박득수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 동경에서 어디, 그 오래 되어서 인제 잊어부려.
그 북해도 있지. 사할린 가는 배 타는 아오모리까정까지 가주고
거기서 또 인제 화태로 들어가는데. 그래갔고 언젠가 모르겠어….,
하여간 니 아부지가 동짓달 여기 오니께 눈이 막 오고, 배가 좀 출렁거렸대.
오도마리. 지금 콜사코프 (코르사코프)라 하지. 거 가서 내려갔어."
드디어 사할린 오도마리에 도착하니 매형이 보낸 일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라후토는 득수 총각을 땅위에 쌓인 눈과 추위로 맞이했다. 누님이 살고 있는 마누이라는 촌은 오찌아이(현 돌린스크시)에서 한 130리 떨어진 두메산골이었다. 말이 끄는 발구를 타고 5시간 이상을 매서운 바람이 부는 눈길을 헤치면서 나아갔다. 득수는 이렇게 많은 눈을 처음 봤다. 참 신기했다. 조선에서는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발구(말이 끄는 눈썰매)에서 내려 눈길을 걷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나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래 누님 집에 가니께 농사를 크게 짓고 그 외딴 집이 있대.
거기서 농사를 짓고 혼자 그렇게 있고 말 두 마린가 그렇게 메기고,
농사라야, 뭐랄까, 말 메기는 거 그런 농사지.
뭐 밀, 기밀 것은 농사 지어 갖고 그래 팔아 먹었데.
인제 일본 사람들 거기서, 산판에서, 이 말 메기는데서 사다가 멕여 (먹이려고 갖고) 가데.
그래 갔고 누님집은 괜찮게 살데. 돌린스크 오찌아이)서 한 130리 들어가는덴데 우리도 갔다 왔어.
아주 산중에 농촌인디 거기 한국에서 조선 사람들 모집해다가,
막 일본사람들이 모집해다가 벌목시켜. 나무 비는 거.
거기는 그 시누 있는데서도 많이 떨어졌어.
누님네 집은 가다 중간이고, 그니까 누님은 그 산판에서 가는 중간에
그 외딴집을 사가주고 남편하고 거기서 농사짓고 살고 있었지.
그래 농사를 지은 걸 저게 벌목하는 데 돌려보내서 이제 돈 벌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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