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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90)

까마귀 모른 식게

특집부
기사입력 2023.04.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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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우리 집 제사상이나 차례상의 구성은 늘 본상과 정체모를 상, 그리고 성주상 등이었다. 물상들에 대한 지각이 생긴 후였을 것이다. 어머니께 정체모를 상에 대해 여쭸다. 작은아버지 말씀을 하셨다. 혼인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내력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늘그막에 나를 낳으셨으니 1900년생인 작은아버지를 내가 알 리 없었다. 아버지는 동생을 잃고 수년간을 자다가 울고 자다가 울고를 반복하셨다고 했다. 


    친형제라지만 무엇이 그토록 아버지를 애달프게 하였을까? 작은아버지는 도회지에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격리되셨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병막이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떤 전염병이었던 모양이다. 거적과 마람(이엉)으로 둘러친 병막에서 얼마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바람 숭숭 뚫린 거적때기, 죽은 자들을 뉘는 초분 같은 병막에서 홀로 겪었을 스무 살 남짓 총각의 쓸쓸함, 어떤 수사를 동원한들 그 절대고독을 형용할 수 있으랴. 

     

    제공=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jpg
    제사상 (사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혼인하지 못했으므로 형인 아버지가 동생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후손이 없는 망자의 영혼을 위한 제사' '까마귀 모른 식게(제사)'라 한다. 제주도 무가 '차사본풀이'에서 까마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다. 까마귀도 모르게 조용히 지내는 제사라는 뜻이다. 


    한센병을 포함한 온갖 역병에 대한 대응이나 처방은 격리에 방점을 두었던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것이 소록도처럼 하나의 섬에 환자들을 가두거나, 병막을 설치해 격리하는 방식이다. 처방만 달라졌지 지금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대면을 강조하는 것도 사실은 간접적인 격리방식의 하나다. 심각한 역병에 그나마 격리조치를 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랄까.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경신대기근이다.

     

     경신대기근

     

    경신대기근은 1670년 경술(庚戌)년부터 1671년 신해(辛亥)년에 일어난 기근(饑饉)으로 두 간지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18대 현종 때 일이다. 역병이 돌고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참상이 발생한다. 코로나19사태를 두려운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이라고나 할까.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의 기록들이 끔찍하다. 


    "기근이 이미 극에 달하여 살해하고 약탈하는 변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만 무덤 도둑에 있어서는 전에 듣지 못하던 일입니다. 보성군의 교노(校奴) 일명과 사노 최일과 남원부의 어영군 김원민과 사노(私奴) 철석 등이 남의 고장(무덤)을 파 옷을 벗겨서 버젓이 팔다가 시신의 친척에게 발각되었는데 추위에 다급하였기 때문이라 하며 군말 없이 자복하였습니다." 

     

    입을 것이 부족하여 무덤을 파고 죽은 자의 옷을 벗겨 팔았다는 것 아닌가. 전쟁기에 죽은자들의 이불을 걷어내 빨아서 다시 사용했다는 구술보다 참혹한 풍경이다. 이 참상은 급기야 잔혹스런 풍경을 향해 달린다. 제주 목사 노정이 기근에 대해 치계한다.


     "본도에 굶주려 죽은 백성의 수가 무려 2천2백60여 인이나 되고 남은 자도 이미 귀신꼴이 되었습니다. 닭과 개를 거의 다 잡아먹었기 때문에 경내에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어서 마소를 잡아 경각에 달린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사람끼리 잡아먹는 변이 조석에 닥쳤습니다." 

     

    현종실록 19권 4월 3일의 참혹한 보고서다. 어디 제주뿐이겠는가.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기후재앙, 가뭄, 홍수, 지진, 태풍, 역병이 확산되고 전국은 죽은 자의 시체로 덮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삶아먹었다는 보고가 올라올 정도로 천륜과 인륜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조선인구의 10%에 달하는 150~200만 명이 죽어나갔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참 지혜다. 경신대기근이 저편에 있다면 이편에 코로나19의 전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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