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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다완임을 감안할 때
이규진(편고재 주인)
녹청자를 시중에서는 흔히 이라보로 혼동해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고려다완 중의 한 종류인 이라보다완의 이라보는 녹청자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처럼 녹청자와 이라보를 혼동하게 된 것은 아마도 표면의 거친 유약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거침의 강도는 사뭇 달라 실물을 놓고 비교해 보면 조금도 닮지 않은 사실을 확연히 알아 볼 수 있다.
녹청자가 처음으로 얄려진 것은 1965년과 66년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인천경서동요지를 발굴하면서 부터다. 이 곳의 특징은 초벌과 재벌을 거치지 않고 단벌구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형 후 건조 상태에서 재 성분이 함유된 유약을 입혀 산화 번조를 한 듯 갈색을 띠며 유약이 말리는 등 품질이 좋지 않은 편이다.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경 지방 수요를 위해 값싸게 제작된 조질청자로 녹청자라는 이름도 이때 처음으로 붙여진 것이다. 이 인천경서동요지와 비슷한 것으로는 해남진산리요지가 알려져 있다. 조질 청자로 품질은 비슷하지만 철화 안료를 사용한 장고나 합 등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그렇다고 하면 녹청자와 혼동되기도 하는 이라보다완(伊羅保茶碗))의 진면목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서 이라보는 그릇 표면의 유약이 어른거린다는 일본말 이라이라의 의성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라보다완의 공통적인 특징은 연한 노랑빛의 흙에 모래가 섞여 있고 다갈색의 유약은 태토에 밀착되지 못한 듯 거친 느낌이다. 종류로는 황(黃)이라보 고(古)이라보 완형(碗形)이라보 정조(釘彫)이라보 천종(千種)이라보 편신체(片身替)이라보 등이 있다. 이중 황이라보와 정조이라보는 일본인들의 주문에 의해 양산 법기리 창기에서 빚어졌고 그밖의 것들은 부산 왜관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다완 중의 한 종류인 이라보다완편은 양산 법기리 창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모래가 섞인 약간 노란색의 태토와 거친 다갈색의 유약이 거칠거칠하게 입혀져 있으며 죽절굽의 굽에는 모래받침 흔적이 남아 있다. 굽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을 뿐 입술 부분들이 모두 사라져 정확한 크기를 알 수는 없지만 주문다완임을 감안할 때 입지름은 14~15Cm 정도의 규격품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볼 뿐이다.
양산 법기리 창기 가마터를 생각하면 아주 오래 전 추억들이 떠오른다. 고속버스로 부산까지 간 후 물어물어 일반 버스로 갈아 탄 후 범어사를 지나 한 참을 더 가면 국도변 마을인 법기리 창기에서 차를 내릴 수가 있었다. 창기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는데 가마터를 구경하고 서울로 귀경을 하려면 먼 길이다 보니 여간 서둘러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차에 시달리다 보니 이만저만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그런 열정과 호기심이 넘쳤던 때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그것은 그때가 아마도 내게 젊음이 충만했던 청춘 시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버린 그 추억들이 아쉽고 그립지 않을 수 있으랴. 이 한 점의 이라보다완편을 통해 시중에서 더 이상 녹청자와 이라보가 혼동되는 일이 없기만을 기대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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