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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구이편의 어문은
이규진(편고재 주인)
도자기를 구울 때 고려 초기 벽돌가마에서는 초벌구이를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 탓인지 한 점 한 점을 갑발에 넣어 굽는데도 불량품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청자든 분청이든 백자든 초벌과 재벌을 거치게 된다. 그렇다고 하면 왜 번거롭게 초벌구이를 하는 것일까. 그 것은 태토의 적절한 강도를 통해 유약 시유시 적당한 흡수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초벌구이는 700~800도 정도에서 굽게 되는데 이처럼 1차 소성을 거친 도자기는 잘 부서기지는 하지만 흡수율은 높은 편이다.
초벌구이를 하는 이유는 이처럼 태토의 강도를 높이고 흡수율을 제고해 유약 시유를 용이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벌구이를 하지 않을 경우 흡수율이 거의 없어 시유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초벌구이는 재벌구이보다도 소성 과정이 어렵다. 초벌구이시 조금이라도 서둘러 화목을 많이 넣게 되면 온도가 급상승해 기물이 터지거나 금이 가는 등 손상을 입게 된다. 따라서 초벌구이야말로 오랜 경험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재벌구이는 1250~1300도 정도에서 시유된 유약을 녹여 줌으로서 기물을 완성시키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상회구이라고 해서 3차 소성 방법도 있지만 중국의 삼채나 오채 등에서 보일 뿐 우리 도자기에서는 전혀 시도되지 않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백자상감어문접시편은 초벌구이편이다. 말하자면 시유를 해 재벌구이를 하지 않은 전 단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감도 자토 그대로 남아 붉은색을 띠고 있다. 여기에 유약을 시유해 고온에서 다시 재벌구이를 하면 상감의 붉은색이 검은색으로 변해 흑상감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 백자상감어문접시편은 흔치 않은 상감이 들어간 초벌구이편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도편의 고향은 도마리4호백자가마터다. 지금은 흔적이 거의 없지만 도마리4호백자가마터에서는 도편 중 사(司)자 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관요 이전의 공납용 자기를 만들던 도요지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반파된 백자상감어문접시편은 초벌구이편이라 흙기운이 남아 있어 못 같은 것으로 긁으면 태토가 긁혀지는 연질이다. 커다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물고기를 배치하고 있는데 달아난 반대편에도 물고기가 있는 쌍어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남아 있는 물고기는 자토 그대로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입과 커다란 눈, 지느러미와 꼬리 등 사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백자상감어문접시편을 재벌구이를 해 눈부시게 흰빛깔의 바탕에 검은색의 물고기가 살아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편이 아닐 수 없다.
물고기는 우리 민속품에서 많이 보이지만 도자기에서도 더러 응용되고 있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자 벽사의 의미가 강하며 많은 알을 낳기 때문에 다산의 상징성도 있다. 민속품이나 도자기에서 물고기 문양이 들어가는 것도 이런 벽사와 다산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자기에서 흑상감 된 물고기도 보기 어려운 것이거니와 자토 그대로인 초벌구이편의 어문은 더욱 더 보기가 힘든 것이어서 참으로 귀하고 신비롭기만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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