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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3·1 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
여성공간의 상징 태화여자관 101주년
3·1운동 발상지 태화관에서 탄생한 태화여자관이 성신여대
민족의 성지 태화관의 장소성 (Placeability)과 여성
태화관은 대일항쟁기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낭독한 장소이다. 이후 근대사를 논할때 태화관의 장소성(場所性)은 '민족의 성지'라는 접두사가 따라다닌다.
태화관이라는 장소성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도구로서 장소의 의미를 확장시키며, 3·1운동이 가져온 가장 가시적 변화도 ‘여성’이라는 존재의 대두였다. 이러한 시각에서 작가는 왜 태화관이 여성의 공간이 돼야하는지를 주장하고 있다
3·1운동 발상지 태화관에서 탄생한 태화여자관이 101주년을 맞은 2022년, 작가는 3·1운동이 한국여성의 삶과 여성사에 미친 혁명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태화관을 조명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탄생한 태화여학교가 국내 굴지의 여자대학인 성신여대로 발전한 사실을 재발굴하고, 이 장소에서 어떻게 한국여성운동의 초석이 다져졌는지를 집중적으로 추적한다. 더 나아가 개신교 첫 여성선교사가 입국한 18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여성의 공교육과 전문직업이 생긴 연원까지 헤집어내며 ‘연혁 복원’을 강력히 설파해낸다.
‘여성사가 여성이 받아야 할 권위를 되찾아준다고 확신’했던 ‘한국 최초 민간신문사 여기자 최은희’를 기리며 시작하는 이 책은 후배 여기자가 부르는 송가이기도 하다. 최은희로 시작, 김마리아, 이각경, 이숙종, 정종명, 한윤명, 이금전, 한신광, 유영준, 서대인, 앤 월리스 서 등 희미해지거나 아예 잊힌 수많은 여성인물들을 호명하며 여권을 이끌어온 진보적 여성상의 계보를 그려낸다. 동시에 주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당대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신문보도상의 에피소드와 사진들도 꼼꼼히 펼쳐놓아 대중서로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올해도 격동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여러 사건들이 한 세기를 기념했다. 2019년 한민족 전반에게 ‘근대’를 깨우친 3·1운동이 100주년이 맞은 이래로, 2022년 3·1운동의 수장으로 지목됐던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 순국 100주기가 도래했다. 손병희의 사위 방정환이 제정한 어린이날이 100년이 됐다. 돈암동을 배경으로 활동한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 권진규를 비롯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선우휘와 손창섭, 시인 김춘수, 건축가 김중업 등이 탄생 100년을 맞이했다. 한 세기 전 이 땅은 오늘날 삶의 모습을 탄생시킨 ‘근대’가 발화하는 혼돈과 창조의 시간이었다. 그 누구보다 세상의 절반, 여성들에게 닥친 급격한 변화는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최초’라 할 만한 일들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해 획득한 여성참정권은 ‘남녀동권’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일대 개혁이었고, 여학교/여학생의 등장은 여성에게 공적교육이 작용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남성의 부속물처럼 여겨지던 여성이 하나의 인격으로 재탄생하며 스스로 삶을 개척하게 된 데는 여성에게 행해진 최초의 제도권 교육과 그 여파가 절대적이었다. 신간 ‘3·1 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 ; 여성공간의 상징 태화여자관 101주년’은 한 여자대학의 묻혀버린 근원을 파헤치며 한국 여성교육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 내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단락 하나하나를 독립된 기사로 풀어내도 될 만큼 문제의식과 자료조사가 철저한 것은 기자 출신 작가가 보여주는 최장점이다. ‘태화관’의 한자표기에 대한 문제제기와 같은 것들은 지금까지의 역사연구가 얼마나 상투적이고 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역사를 역사책 속에만 가두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대목들이다.
"필자의 전작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에서도 지적했듯이 집권당의 완고하고 견고한 ‘내로남불’ 권력욕에 균열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에 의한 ‘미투혁명’이었다. 이러한 여성의 힘을 잊고 있던 자칭 진보·좌파의 여성혐오는 곳곳에 드러났고, 결국 민심조차 떠나게 하는 원흉이 됐다. 태화관의 역사적 추이만 잘 살펴봐도 새롭게 ‘여성’이라는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지점은 많았다. 2010년대 들어 꾸준히 재발견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여성사적 흐름에만도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3·1운동100주년은 아주 새로운 계기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p51~52)
3·1운동이 가져온 가장 가시적 변화도 ‘여성’이라는 존재의 대두였다. … 여러 보도매체들에 남아있는 근대사의 증언만 봐도 역사가들에게 여성과 여성사가 얼마나 소외당하는지를 알 수 있다. 수개월간 지속된 만세운동 가운데 여성들에 의해 조직되고 주도된 평화적 행진이 많았고, 임시정부에서 여성참정권을 얻는 계기가 되지만 이에 대한 기억은 너무 쉽게 사라져버렸다. 임시정부의 적통을 계승하겠다면 한국여성의 활약상과 참정권 쟁취에 관한 부분을 반드시 한 몫으로 다뤄야할 것이다. 여성의 광범위한 독립운동은 임시정부의 여성정책에 큰 영향을 미쳐 남녀평등 방침이 제도화됐고, 여성과 여성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p58~59)
태화여자관은 교파와 이념, 정파를 떠나 ‘여성’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합동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열린 공간이었다. 그밖에도 당대 신문을 살펴보면 조선여자청년회, 경성여자청년회, 망월구락부, 직업부인협회, 가정부인협회, 경성여자소비조합 등 다양한 조직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고, 연합영아보건회, 연합아동보건회 등도 사무소를 뒀다. 극예술연구회의 공연, 조선음악가협회 ‘음악과 강연의 밤’, 각종 간담회와 각급 행사가 열리는 등 문화예술단체들도 이곳에 사무소를 두고 판을 깔았다. . (p144~145)
‘泰和’라는 한자표기는 태화여자관을 설립한 초대관장 마이어스가 정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태화복지재단 측은 하나님의 ‘큰 평화(泰和)’를 뜻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안순환이 개명한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많은데, 마이어스 취임시 바뀐 것은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1921년 2월27일자에 ‘明月館支店이 太華女子舘으로’라고 썼다가 한 달 뒤 3월25일 마이어스 인터뷰기사에서 ‘泰和女子舘’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p197~198)
태화관의 장소성은 서울과 근대시민의 정신을 상징하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불려도 충분한 역사적 배경을 담보하고 있다. 여기에 근대 여성사의 발판이 되는 장소성에 대한 백년사를 담은 이 책은 현재 페미니즘 관점에서도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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