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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나무는 성음을 품는다. 성음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의 음성으로 하는 음악이라 풀이해두었다. 종류에 따라서는 창가, 민요, 가요, 가곡 따위로 구분하고 연주 형태에 따라서 독창, 중창, 합창, 제창으로 구분한다. 목소리나 음성을 넘어 음악 전반을 지시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판소리 등의 성악을 감상할 때 성음이 좋니 나쁘니 한다. 절대음감으로의 톤이나 키만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의 성음은 그 단계를 넘어선다. 높고 낮음, 맑고 탁함, 깊고 얕음, 슬프고 기쁨, 화나고 차분함 등을 넘어, 소리에 투영한 휴머니즘의 융숭 깊음과 그 지극함을 따지기 때문이다. 절대음가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 음가(音價)라고나 할까.
성음이라는 기표에 함의된 미학의 세계가 매우 광범위하다. 악기의 성음을 따져 묻기 전에 나무의 성음을 먼저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주시 지정 무형문화재 이복수(1953~본래 이름은 이준수다) 장인의 주장은 단호하다. 우리 악기를 만드는 제 일차적인 일은 좋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좋은 나무는 어떻게 고르는가? 산이나 들에 들어서면 토양과 산세의 지형을 보고 바람과 구름의 흐름을 듣는다. 동남쪽 비탈에서 자라는 나무와 서북쪽 비탈에서 자라는 나무는 성질이 다르다.
계곡에서 자라는 나무와 산 정상에서 자라는 나무가 확연하게 다르다. 우거진 숲과 메마른 들판에서 자라는 나무가 또한 다르다. 눈에 보이는 풍경만이 풍경이 아니요, 귀에 들리는 바람만이 바람이 아니다. 햇볕이 잘 든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음지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나무가 좋은 성음을 품는 것은 천지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을 경우다. 오동나무가 선호되는 것은 다른 나무에 비해 성장의 균형과 가치 음가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돌밭에서 자라는 이른바 석산오동(石山梧桐)이 선호되는 것도 재질의 장력이 견고해서만은 아니다. 벼락 맞은 오동나무에 대한 환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 나무에 스며든 햇빛과 달빛과 별빛들, 수많은 가뭄과 장마를 반복하며 단련되었을 그 호흡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나무를 잘라보면 안다. 나이테와 수분의 함량과 옹이와 가지들의 향방이 그것을 말해준다. 손으로 만져보면 안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베어든 성음들이 손끝으로 전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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