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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이 없는 붓글씨를 보는 듯
이규진(편고재 주인)
'천자문(天字文)'은 4언절구의 한시로 된 대표적인 한문 교본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 양무제 때의 학자인 주흥사(周興嗣)가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주흥사가 양무제의 노여움을 사 주살 당하게 되었는데 이를 용서 받는 조건으로 하룻밤에 4자씩 250구절의 시를 짓되 한 글자도 중복되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심초사 끝에 이를 만든 주흥사는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그 후 백두(白頭)또는 백수(白首) 선생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천자문 또한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천자문은 원래가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한문을 배우기 위한 입문서로 널리 쓰이게 되어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내용이 중국을 배경으로 해 어려운데다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글자도 많아 초심자 교육용으로는 적당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다산 정약용도 천자문 교육의 비효율성을 강하게 비판 '아학편(兒學編)'이라는 아동용 교재를 직접 집필한 바도 있다. 여하튼 교육용으로 널리 쓰이다 보니 천자문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친숙해 보이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천자문의 첫구절은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첫구절에 대한 일화도 많이 전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학생이 스승에게 하늘이 어찌 푸르지 검으냐고 대드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해와 별들을 지우고 보면 하늘은 검은 것이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와 같은 천자문의 첫 구절인 천지현황은 도자기에서도 보이는데 이 것이 의미하는 바가 알려져 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초기 관요백자의 굽에서 보이는 천지현황은 도대체 무엇을 표시하고자 한 것이었을까.
백자에서 보이는 천지현황은 관요 설치 이후의 명문들이다. 각각 한 글자씩만을 굽 안바닥에 새기고 있다. 초벌구이를 한 기명 위에 유약을 시유한 후 뾰족한 기물로 유약을 긁어내듯 음각기법으로 글자를 새긴 것이다. 이러한 천지현황명 백자는 경기도 광주 일대의 우산리를 비롯해 도마리 오전리 귀여리 번천리 무갑리 학동리 열미리 등 초기 관요 백자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천지현황의 의미는 확실치 않지만 한 가마에서 함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그릇의 구분을 위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이러한 백자의 명문은 16세기 후반에는 좌우(左右)명이 보인다는 점에서 천지현황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지현황명은 끝이 뾰족한 도구로 유약을 긁어내듯 음각을 한 것임으로 글자는 가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글자가 가늘지 않고 획이 굵은 것이 있어 주목된다. 백자지(地)자명접시편이 그것이다. 이 접시편은 오래 전에 도마리에서 만난 것이다. 1호 요지가 있는 외딴집 뒤쪽에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소로가 있는데 전에는 비포장이어서 비라도 내리면 흙이 씻기며 도편이 더러 보이고는 했었다. 그 곳 밤나무 밑에서 만난 것이 바로 백자지자명접시편이다. 다른 천지현황명들과 마찬가지로 지명은 굽 안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주목되는 것은 뾰족한 도구로 유약을 긁어내듯 음각을 한 것이 아니라 무슨 손가락이나 붓 같은 것으로 유약을 훑어내듯 글씨를 새기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명은 음각이 아니라 먹물이 없는 붓글씨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백자지자명접시는 관요에서 만든 기명답게 역삼각형굽에 모래받침을 하고 있으며 정선된 태토에 색감은 눈부시게 하얀 설백색이다. 굽보다 약간 큰 내저원각이 있으며 붓글씨로 쓴 듯한 지명이 굽안 중앙에 의젓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왜 이 백자지자명접시편의 지자는 통상의 가는 음각이 아니라 붓글씨 형태의 것으로 새기고 있는 것일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해서체의 단정한 지자명 글씨는 흡사 한석봉의 <천자문> 글씨를 보기라도 하는 듯 우아함 마저 느끼게 하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지(地)자와 관련해 고백을 해보자면 내 호가 지산(地山)이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호가 정말이지 호일까 하는 의문은 들지만 이런 호를 갖게 된 되는 사연이 있다. 전라북도 부안엘 가면 저 유명한 내소사가 있다. 그 내소사 옆에 김영석 시인이 살고 있다. 김시인이라면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썩지 않는 슬픔> 등의 시집이 있는 중견 시인. 대학교수를 정년 후 이 곳에 그림 같은 2층 집을 지어 살고 있는데 몇 해 전 김시인과 친한 서정춘 시인을 앞세워 지인 몇이 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도다리쑥국이란 것을 얻어먹어 보는 등 하룻밤을 묵으며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 때 한학에 밝은 김시인이 방문 기념으로 지어준 호가 바로 지산이다.
'주역' 64괘 중에서 15괘가 지산겸(地山謙)이다. 형태를 보면 위에 있어야 할 산이 땅 아래 있는 상이다. 이 괘를 얻은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며 말과 행동을 삼가하는 자세 즉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상경 후 김시인은 정성들여 쓴 작호기를 보내왔는데 여기에도 그런 의미로 호를 지어준 뜻을 밝히고 있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호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 뜻만은 늘 가슴에 새겨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런데 지산의 지자는 백자지자명접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하면 산(山)자는 없는 것일까. 산자도 마땅한 것이 있다. 전에 계룡산에서 만난 것인데 작은 분청접시편이다. 그런데 이 분청접시편에는 분이 접시 중앙에 뭉치며 기가 막히게 음각으로 산자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백자지자명접시와 지산과 분청산자명접시편. 이 절묘한 어울림과 계시를 통해 운명처럼 겸손을 늘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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