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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청황(赤靑黃)이 한바탕 어울려
이규진(편고재 주인)
고려다완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이 이도다완(井戶茶碗)이다. 그런 이도다완 중에서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기자에몬다완이 가장 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다완은 유명세를 타다보니 그에 따른 일화도 많이 전한다. 그중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오래 전에 이를 들려주었던 분도 이제는 고인이 되어 그 자세한 출전은 알 길이 없다.
일본의 사카이항에 기자에몬(喜左衛門)이라는 거상이 살고 있었다. 중국에 필요한 물건을 일본에서 보내 팔고 일본에 필요한 물건을 중국에서 사들여 오는 이른바 왕복 무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번 사람이었다. 재산이 있다 보니 상류사회의 사교 모임인 다회에도 참가를 했고 이에 필요한 이도다완도 거금을 주고 구입을 했다.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때였다. 중국으로 많은 물건을 실어 보낸 무역선단이 황해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좌초를 하고 만 것이다. 엄청난 손해를 본 기자에몬은 이를 복구할 욕심에 있는 돈을 모두 털고 남의 빚까지 얻어 또 다시 많은 물건을 구입 선단을 꾸려 중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운명이 거기까지였는지 이 무역선단 또한 황해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모조리 수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그렇게 부자였던 기자에몬은 하루아침에 알거지에 빚쟁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에 더 이상 사카이항에서 살 수 없었던 기자에몬은 이곳에서 야반도주를 하고야 만다. 그 후의 인생이란 참으로 고단하고도 참담한 것이었다. 창녀촌에서 호객 행위를 해야 할 정도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그는 끝내 지치고 병들어 어느 이름 모를 다리 밑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품속에서 나온 것이 이도다완이었다. 거금을 주고 산 것이어서 이것만 팔아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으련만 기자에몬은 이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품에서 놓지 못한 채 가난과 병고 속에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도 눈물겨운 일화인가.
이처럼 애절한 일화를 간직한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는 이후 여러 곳을 유전하다 하나의 전설 같은 징크스가 생기게 되는데 이를 소지한 사람은 반드시 종기를 앓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다완을 마지막으로 소장했던 후마이코도 종기로 괴로워했는데 그가 죽자 그 아들인 겟탄이 다시 종기를 앓게 되었다. 이에 겁이 난 부인이 교토의 고호안(孤蓬庵)에 기증을 해 지금까지 이곳에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이 다완에 대해서는 이를 천하 제일의 찻사발이라고 상찬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도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하면 고려다완 중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되는 이도다완은 어디에서 만든 것일까. 주로 거론되는 것이 하동의 백련리와 진해의 웅천도요지다. 이들이 거명되는 것은 지명과 굽 주변의 매화피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나도 전에 이 두 도요지를 답사한 일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이곳을 이도다완의 고향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웅천도요지에 대한 발굴조사보고서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보고서는 두 권인데 1권은 대형판 51페이지에 일문 19 페이지가 보태져 총 70페이지의 비교적 얇은 책이다. 이에 반해 2권은 대형판 411페이지로 상당히 두꺼운 분량의 책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1권과 2권의 이도다완에 대한 다른 관점이다.
보고서 1권의 관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실 웅천 자기요지가 도자사학계나 도예가 및 세간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이유는 고려다완, 그중에서도 정호다완의 제작처일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이번 시굴조사를 통해 단순한 추측이 실증적 증거를 확보한 셈이 되었지만 금번 시굴조사는 국내에서 고려다완의 요지가 첫 발굴된 것으로 새로운 과제를 낳은 것이기도 하다.” 보고서 2권의 관점은 이와는 다르다. "굽에서 관찰되는 특기할 만한 특징으로는 유약 말림 혹은 엉김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는 건조가 불량한 상태에서 굽을 깍아 시유 번조했기 때문인데 이를 어떤 기물의 외관 장식과 동일시하거나 관념화하여 매화피 운운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보고서 1,2권의 관점을 놓고 보면 웅천도요지가 이도다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어떻게 같은 기관에서 발굴한 조사보고서가 이토록 달라야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보고서와 상관없이 하동의 백련리와 진해의 웅천도요지가 이도다완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에 대해 나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하지만 웅천도요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소개하고 싶은 도편이 한 점 있다. 오래 전 웅천도요지에서 만난 백자완편이다. 이 백자완편은 아주 연질이어서 깨진 부분들을 살펴보면 태토에 흙 기운이 많이 남아 있다. 그 뿐 아니라 백자라고 하기에는 유약의 색감이 너무도 다채롭다. 자세히 보면 푸른색도 보이고 붉은 색도 보이고 누런색도 보인다. 말하자면 청적황(赤靑黃)이 한바탕 어울려 은근히 묘한 색감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매화피도 없고 이도다완과는 전혀 무관한 이 도편을 소개하는 뜻은 왜 우리는 고려다완이니 이도다완이니 하면서 일본인들의 미감에 충실히 따라야 하느냐에 있다. 고려다완도 이도다완도 애초부터 다완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왜 우리라고 새로운 관점에서 선택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백자완편이 완전한 것이라면 크기나 색감으로 보아 충분히 특징적인 다완으로 톡톡히 제 몫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자 오늘 여기에 이를 소개하는 근본 뜻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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