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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14)
청자기린머리편

특집부
기사입력 2021.10.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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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 있는 그 자체로

      이규진(편고재 주인)
     
     
    미로의 <비너스>는 팔이 없고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목이 없다그런데도 이 두 조각 작품은 세계적인 걸작으로 손꼽힌다그러나 신체의 일부가 없는 이것들과 달리 신체의 작은 일부분만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걸작으로 회자 되는 것이 있다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의 <왕비 얼굴의 파편>이 그 것이다이 것은 신체는 물론이거니와 머리와 눈코가 없고 입술과 턱만 동그마니 남아 있는 파편 조각에 불과하다그런데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관장을 지낸 필립 드 몬테벨로는 `이것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아니 전 세계 모든 문명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라고 칭송하고 있다부분이 전체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자 반증인 셈이다.

    필자는 도자기 파편에 관심을 갖고 수집을 해온지가 꽤 오래 되었다마냥 즐겁고 흥겨우면서도 때로는 회의감에 사로잡힐 때가 더러 있다형태가 온전한데도 불구하고 깨졌느니 금이 갔느니 하면서 타박이 심한 오늘의 고미술계 현실에서 볼 때 나의 취미랄까 수집 활동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느냐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그런데 근래 우연히 유경희 씨의 <가만히 가까이>라는 책에서 메트로폴리탄 소장의 <왕비 얼굴의 파편이야기를 보고서는 새삼 용기를 얻을 수가 있었다그래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이 전체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의 자각은 이 얼마나 신나는 새로운 개안이랴내가 소장하고 있는 청자기린머리편도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존재 가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상형청자 중에는 향로들이 많다질과 형이 뛰어나 국보나 보물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청자향로의 매력은 아무래도 위짝그러니까 동물의 형태로 만든 후 향을 피웠을 때 입으로 연기를 뿜어내게 만든 부분들이 아닐까 생각된다근래 우연찮게 지인 집에서 사자머리로 만든 향로의 위짝만 남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밑짝이 없어서 그렇지 완전한데다 이미 알려진 국보나 보물급에 준하는 명품이었다그러나 주인이 아끼는 물건이어서 언감생심 군침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몸체를 잃고 머리 부분만 남아 있어 그렇지 내가 소장한 청자기린머리편 또한 질과 형태면에서는 기존의 명품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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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청자기린머리편, 가로 세로 좌 6.5X2.5Cm 우 6.5X2.5Cm . (편고재 소장)

     

    청자기린머리편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천왕동 허사장이 구해 준 것이다그런데 두 점의 청자기린머리편은 형과 질 모두 조금씩 다르다왼쪽의 것이 여성적이라고 하면 오른쪽 것은 남성적이라고나 할까여성적인 것이 청녹색의 비색인데 비해 남성적인 것은 유약 면에서는 발색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모양도 섬세한 면에서 차이가 나는데 여성적인 것은 귀와 뿔의 흔적이 보이고 턱부분이 달아나 이빨과 혀는 보이지 않는다그에 반해 남성적인 것은 가지런한 이빨과 혀도 보인다두 점 모두 눈은 음각으로 새긴 뒤 눈동자는 검은색 안료를 이용해 철화점을 찍어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

      

    청자향로에 보이는 기린은 아프리카에 사는 목이 긴 짐승이 아니라 상상속의 동물이다이 상상속의 기린은 오색의 찬란한 빛깔의 털을 갖고 있으며 이마에는 외뿔이 나있다사슴의 몸소의 꼬리말의 발굽과 갈기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예로부터 용거북봉황과 더불어 사영수(四靈獸)로 신성시 된 동물이다이러한 기린을 청자향로에 응용한 고려인들의 멋스러운 안목이 조각으로나마 남아 있어 내 곁에 있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랴나는 가끔 이 청자기린머리편을 보며 향불을 피우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내음을 맡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고는 한다그만큼 남은 부분은 비록 작지만 내게 즐거움과 희열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두 점의 청자기린머리편을 보다가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두 점을 입을 맞추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그래 두 점을 붙여놓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그랬더니 키스보다는 남성적인 것이 여성적인 것을 물고 있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생각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그래도 어떻든 재미있는 모습이 아닌가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관장을 지낸 필립 드 몬테벨로가 <왕비 얼굴의 파편>에 대해 감탄한 것은 훼손되고 남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높이 산 결과이지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예찬한 것이 아니다그렇다면 나도 손상된 부분을 염두에 두지 말고 청자기린머리편을 현재 남아 있는 생김새 그 자체로 사랑하고 아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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