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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특설강좌의 추억
이규진(편고재 주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설한 박물관특설강좌를 일 년간 수강했던 적이 있었다. 세상을 뜬 아내가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할 때였다. 병원 밥을 사 먹고 병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잠을 자며 24시간 직접 간병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강의가 제대로 귀에 들어올 까닭이 없었다. 가망도 희망도 없이 나날이 시들어 가는 아내의 지치고 힘든 모습이 목요일 오전에 한 번 병원을 잠시 떠나 있는 동안에도 자주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결국 박물관특설 강좌가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떴다.
박물관 특설강좌가 끝나갈 무렵 수강생들에게 과제물이 주어졌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리포트를 써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동원 이홍근 선생이 기증한 백자상감당초문태일전명탁잔과 내가 일찍이 광주 우산리 4호 요지에서 습득한 바 있는 도편을 비교 분석한 글을 써냈더니 수료식 날 우수상을 주었다. 따라서 지금도 백자음각태일전명편과 상장을 보면 아내가 생각난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목요일만 되면 나보다 먼저 박물관 특설강좌 시간을 챙겨주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세상을 떴을 때의 막막함이란---. 싸늘히 식은 아내의 시신을 침대차에 싣고 어둠침침한 긴 낭하를 따라 영안실로 향하던 그 날의 그 참담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백자상감당초문태일전명탁잔에 대해서는 일찍이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 관장이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주장은 이 탁잔이 연질인 것으로 보아 남쪽 지방 어느 곳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리포트에서 그 근거를 몇 가지 거론했지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글씨체였다. 탁잔의 태일전(太一殿)은 흑삼감이고 4호 요지의 도편은 음각에 글씨체도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는데, 두 점 모두 콩태(太)자가 아니라 대(大)자 밑에 일(一)자가 붙어 태일전(太一殿) 아니라 대일전(大一殿)이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유사점 등을 들어 탁잔은 적어도 우산리 일대에서 만든 것이 아니냐고 주장을 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근래 재미있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경기도자박물관에서 우산리 4호 요지를 발굴한 결과 '백자음각태일전명' 접시가 출토된 것이다. 이 또한 태일전(太一殿)이 아니라 대일전(大一殿)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왜 도공은 태(太)자를 대(大)자로 써야만 했던 것일까. 한자를 모른 탓에 생긴 실수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엉성하게 쓴 백자음각태일전명접시의 전(殿)자가 아무래도 눈에 익어 자료를 찾아보니 내게 전(殿)자만 남은 도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또한 백자음각태일전명편을 습득할 당시 함께 수습한 것으로서 백자음각태일전명편 글씨체와 동일인의 솜씨가 분명한 것이었다.
돌아보니 아내가 세상을 뜬 것도 박물관 특설강좌에서 리포트를 쓰던 시절도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잎 떨군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를 귀 가득히 들으며 우산리 골짜기에 서 있던 때는 그 보다도 더 아득한 세월 저 편의 일이다. 그러나 그런 세월들이 아득하다 한들 그릇에 태일전 명을 새기며 공납을 위해 도공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기만 했을 그 시절에 비하면 어찌 길다고만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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